[줌인]"아 영란법"…고급 한정식집 '엑소더스'

직원 줄이고 2만원대 메뉴 개발에도
이미 손님 발길 뚝 끊겨 '속수무책'
한정식집 몰려있는 인사동 매물폭탄
  • 등록 2016-10-10 오전 5:00:00

    수정 2016-10-14 오후 1:50:54

△‘김영란법’의 직격탄을 맞은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의 한정식집 ‘두마’가 지난 8월로 영업을 종료하고 업종 변경을 위한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 중이다.
[글·사진=이데일리 원다연 기자] 나는 고급 한정식집이다. 한때는 유명 정치인들과 고위 관료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유명했지만 최근 들어 나를 찾는 손님이 뚝 끊어졌다. 1인당 식사비 상한선을 3만원으로 정한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부터다. 이 법이 시행된 지난달 28일부터 내가 많이 몰려 있는 종로구 광화문 일대와 인사동, 영등포구 여의도는 한산하기 그지없다. 법 시행 전부터 예약이 반으로 줄더니 법이 시행되니 아예 찾는 손님이 없다. 3만원 이하까지 메뉴를 내놓고 있지만 별 소용이 없다. 결국 어떤 곳은 종업원 수를 줄였고 더 어려운 곳은 업종을 바꾸기도 했다. 점포를 내놓고 아예 장사를 접은 곳도 있다.

우리 업계에서 꽤 유명한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두마 한정식집. 이 집이 최근 내부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1인분에 7만 5000~13만 5000원에 달하는 고급 메뉴을 팔던 곳이다 보니 ‘김영란법’ 태풍을 피할 수 없었다. 식당 관계자는 “김영란법 얘기가 한창 나오던 지난 6월부터 평소보다 손님이 60~70% 수준으로 줄었다”며 “8월로 영업을 종료하고 대중 음식으로 업종 전환을 결정할 수 밖에 없었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종로구 필운동에서 30여년간 운영된 한정식집 Y식당은 최근 종업원을 반으로 줄였다. 식당의 김모 사장은 “이달 들어선 예약 손님이 한팀도 없는 날이 많다”며 “인건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종업원 3명을 내보내고 2명은 한달씩 돌아가며 쉬는 휴가제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손님들이 3만원 이상되는 메뉴를 찾지 않으니 더 저렴한 메뉴를 내놔봤다. 정부서울청사 인근 내자동 한정식집 거리에 있는 양지는 최근 2만 5000원짜리 저녁 메뉴를 만들었다. 기존 저녁 메뉴는 7만원대였다. 음식 가짓수를 줄여 김영법의 3만원에 맞춘 메뉴를 만들었지만 이전보다 손님이 3분의 1로 줄었다. 솔직히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막막하다.

또 다른 당황스러운 일도 있다. 나를 찾는 손님들을 노린 ‘란파라치’가 극성을 떨기 시작한 것이다. 세종문화회관 지하에 있는 한 한정식집에선 최근 예약 손님을 안내하는 예약 현황판을 치웠다. 원래는 손님의 모임이름이나 회사 이름을 적어놓은 안내판을 문 앞에 내놨었는데 식당을 기웃거리며 이를 찍어가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손님들이 찜찜해 하기 때문이다.

△서울 광화문 일대 한 한정식집에서 김영란법이 규정한 1인당 식사 상한선인 3만원에 맞춘 메뉴를 새로 내놨다.
영업이 어렵게 되자 문을 닫는 곳도 늘고 있다. 100여개의 한정식집이 몰려있는 인사동에는 장사를 접고 내놓는 한정식집 점포가 늘어나고 있다. 인사동 인근 M공인 관계자는 “하루에 하나 꼴로 한정식집을 팔아 달라는 문의가 들어온다”며 “조만간 적어도 20~30곳 정도가 문을 닫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까지는 주인들이 권리금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지만 찾는 사람이 없는데 계속 매물만 쌓이면 3~4개월 후면 권리금이 60~70% 가량 떨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요즘 같아서는 참 덧없다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만해도 정부가 나서 한식을 세계화·고급화해야 한다고 난리더니 이제는 비싸게 판다고 죄인 취급을 한다. 그저 좋은 식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판 것밖에 없는데 말이다. 그저 한숨만 나온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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