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철의 스포츠시선] 클린스만이 되새긴 ‘감독의 자격’

  • 등록 2024-02-17 오후 2:30:49

    수정 2024-02-17 오후 2:40:32

아시안컵을 마친 뒤 전격 경질된 위르겐 클린스만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사진=연합뉴스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 앞에 축구 팬이 항의의 뜻을 담아 보낸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이날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는 위르겐 클린스만 국가대표팀 감독의 경질을 협회에 건의했다. 사진=연합뉴스
[안준철 스포츠칼럼리스트] ‘감독’(監督)의 사전적인 의미는 어떤 일의 모든 사항을 통괄하여 책임지는 사람을 가리킨다. 영화, 방송, 스포츠 영역에서 감독은 하나의 고유한 직책이다.

특히, 스포츠 분야에서 감독의 역할은 중요하다. 물론, 종목마다 특성에 따라 그 역할이나 비중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경기와 관련한 주요한 결정권자는 감독이다. 팀 스포츠에서는 결정권자로서의 감독의 역할이 승패를 바꾸기도 한다. 선수의 기용, 경기에 대한 계획, 경기를 치르면서 내리는 전략적인 요소들 때문이다.

위르겐 클린스만(60) 전 남자 축구대표팀 감독의 선임과 국가대표 감독으로서의 행보, 경질까지의 과정을 보면서 ‘감독의 자격’에 대해 생각해봤다.

선수로서 클린스만의 업적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독일을 1990 이탈리아월드컵과 잉글랜드 유로 1996에서 우승으로 이끈 공격수였다. 하지만 감독으로는 자격 미달이다. 잦은 기행과 무능으로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실제 한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서도 모든 면에서 무능했다.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주지 못했다. 무전술, 무계획 축구는 아시안컵 대회 동안 ‘해줘 축구’로 조롱당했다. 선수들의 자율적인 플레이를 통해 창의성을 극대화한다는 게 클린스만의 설명이었지만, 그냥 변명이었던 것으로 판명됐다. 아시안컵에서 클린스만이 한 것이라고는 골 세리머니 밖에 없었다. 혹자는 1994 미국월드컵 한국전에서 2골을 터트린 후 보여준 세리머니와 같았다고 비꼬기도 했다.

흔히 치어리더 형으로 분류되는 리더십이기도 하는데, 손흥민-이강인 몸싸움 사태에서 보듯 팀 관리도 하지 못했다. 감독으로서 게임을 풀어가고 선수단을 하나로 만드는 리더십 부재 등 하나부터 열까지 감독에 맞지 않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특히, 워크에식(work ethic) 논란은 지난해 감독 선임 당시에도 나왔던 우려이자 지적이었다. 클린스만이 결정적으로 공분을 산 건 국내 상주 근무 약속을 저버리고 툭하면 미국 집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시안컵 결승 진출에 실패하고 국내로 돌아와서도 전력강화회의가 열리기 전에 미국으로 나갔다. 자신의 거취가 결정된 회의는 온라인으로 참석했다. 성실한 모습이라도 보여줘야 두둔하는 목소리라도 나오는데, 클린스만은 팀이 패하고도 실실 웃으면서 친목질에만 열중했다. 축구팬들의 혈압을 올리는 두 번째 장면이었다.

더욱이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고자,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손흥민과 이강인이 싸워서라는 변명을 댔다는 사실에서는 가장 기본인 인간성마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클린스만을 통해 감독으로서 됨됨이, 자격은 정리된 것 같다. 먼저 실력이 있어야 한다. 경기를 보는 시야, 안목 등이다. 이번 극적인 동점과 역전이 나온 아시안컵 16강과 8강은 클린스만이 한 게 없다. 선수들이 알아서 풀었다. 클린스만이 한 것이라고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그가 한 것이라고는 고작 세리머니였다. 경기를 치르는 플랜, 지향점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경기 중 전술 변화도 없었다. 말 그대로 무전술이었다. 상대를 제대로 파악한 것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전력 분석 파트에서 일을 제대로 했다고 한다면 전력 분석을 들여다보지도 않았다는 얘기다.

두 번째는 감독으로서의 색깔, 철학이다. 이는 전임 파울루 벤투 감독(현 아랍에미리트 감독)과 극명하게 비교되는 부분이다.

한국 축구는 2018년 벤투를 감독으로 선임하면서, 한국 축구가 가야 할 방향성부터 짚었다. 그래서 나온 게 볼 소유, 점유를 높이면서 골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췄고, 적임자로 벤투를 데려온 것이다. 벤투는 ‘빌드업’이라는 자신의 색깔을 보여줬다. 2022 카타르월드컵 본선에서 이전 한국 축구와 다른 끈끈함으로 16강 진출을 이뤘다.

그러나 클린스만이 추구하는 축구에 대한 색깔, 철학은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다. 굳이 한다미로 정의를 한다면 ‘없다’라고 할 수는 있겠다.

세 번째는 선수 관리이다. 물론, 그라운드 안에서 플레이하는 선수들끼리의 캐미스트리는 주장을 중심으로 형성될 수밖에 없다. 근데 아시안컵에서 문제가 된 지점은 주장 손흥민과 막내 이강인과 몸싸움 갈등이다. 정확히 사실관계가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조심스럽다. 하지만 분명히 드러난 사실은 주장이 세우려는 팀 내 규율에 어린 선수들이 반발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몸싸움이다. 이 정도 사태에서는 감독이 개입하고 선수단 분위기를 정리해야 한다. 클린스만은 SNS에 글만 올리고 있었다. 팀워크가 깨진 상황에서 팀워크를 세우고, 원 팀(one team)으로 만드는 역할과 책임은 감독에게 중요하다.

네 번째는 책임 인정이다. 실패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개선하려는 움직임이다. 감독으로서 확고한 철학이 있고, 이를 지속하고 유지는 해야 한다. 하지만 실패했는데도 계속 실패한 방식을 지속한다는 것은 고집이다. 이런 면에서 클린스만은 낙제점이다. 자신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선수의 ‘탓’으로 돌리는 장면이 많았다.

근태도 같은 맥락이다. 국내 상주 근무 약속을 어기고 툭하면 미국 자택으로 간 것이 해당한다. 감독이라면, 성실한 근무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무능한 것보다 성실하지 못한 게 더 나쁘다는 의견도 있다.

사실 이러한 논의를 국가대표 감독이나 축구 감독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 스포츠로 국한된 얘기도 아니다. 공직이나 기업의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모두 적용할 수 있다.

다만, 클린스만의 업적이 하나도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바로 ‘감독이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떠올리게 해준 것이다. 그런 점에서 클린스만에게 약간의 고마움은 있다.

적어도 클린스만 같은 사람만 아니면 되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전 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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