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프리즘]기술유출, 제대로 처벌하려면

조재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 등록 2023-10-18 오전 6:15:00

    수정 2023-10-18 오전 6:15:00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설계자료 해외 유출사건, LG솔루션 2차 전지 핵심기술 유출사건, 삼성바이오로직스 영업비밀 유출사건 등 국가핵심기술 및 영업비밀 유출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영업비밀 유출로 발생하는 피해규모는 한 해 56조 원 상당이라고 한다. 그래서 검찰과 특허청은 기술유출 범죄의 심각성과 적정 수준 처벌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유출 자체를 막는 것이 우선이지만, 사후에 상당한 처벌이 이뤄져야 범죄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술유출 범죄에서 중형이 선고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점이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선고된 기술유출 사건 중 실형은 10.6%에 불과하고 2022년 선고된 영업비밀 해외유출 범죄의 형량은 평균 14.9개월이라고 한다. 피고인들이 이 방면의 최고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다양한 변명을 하면서 빠져나간다.

실제로 필자가 검사시절 2003년 수사한 기술유출 사건도 이런 유형이었다. 국내 차량용 A/V 시스템·항법 장치 1위 업체의 연구인력 27명이 H모비스 전무 등의 배후 조종 아래 회사를 이탈해 동종 회사를 설립한 후 핵심 영업비밀을 유출하고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끼친 사건이었다. 당시 피해 회사는 영업비밀 유출로 681억 원 상당과 업무방해로 2772억 원 상당을 각각 손해 봤다. 피고인들은 관련 분야 기술의 최고 전문가였고, 피해자이자 고소인 회사의 직원들은 그들보다 전문성이 조금 부족한 사람들이었다. 피고인들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영업비밀이 아니다’, ‘비밀로 관리된 바 없었다’, ‘기술을 개발한 사람은 나다’ 등의 변명으로 일관했다. 그럼에도 결과는 구속기소된 6명 가운데 주범은 징역 3년, 배후 조종자는 징역 2년 6월의 실형이 각각 선고됐다. 나머지 피고인도 유죄가 선고됐다.

이 사건을 돌아보면 지금도 수사와 공판 과정에서 참고할 대목이 적지 않다. 우선 수사 검사로서 직접 공판에 참여한 것이 주효했다. 검사의 전문성이 재판의 유무죄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필자는 수사 시작부터 현장에서 수사팀을 지휘했고 그 결과 주요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었다. 수사 착수 1개월 후 피해자 회사 관련자를 비롯해 이들을 배후에서 조종한 세력까지 모두 6명을 구속함으로써 기술 유출 범행의 전모를 밝혀낼 수 있었다. 수사를 직접 지휘한 필자가 공판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의 변명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검찰은 수사 검사가 공판에 참여하도록 조처할 필요가 있다. 범죄 발생 초기부터 관여한 수사 검사가 공판에 반드시 직관해 1심부터 상고심까지 공소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래야 피고인들의 주장에 대해 반박 의견서를 제때 그리고 제대로 제출할 수 있다. 그래야 유죄선고도 가능하고 적정한 실형도 선고될 수 있다. 앞서 사건으로 돌아가면, 결국 H 모비스는 첨단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피해자 회사를 인수합병했다. 법원이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피고인에게 중형을 선고한 것이 밑거름이 됐을 것이다. 이는 기술유출 사건에서 법원의 양형 기준이 제대로 정비돼야 하는 이유다. 다행히 현재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기술유출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시정하기 위해 양형 기준 정비에 착수한 상태다.

글로벌 경쟁시대 국가의 경쟁력은 기업이 가진 첨단기술의 총체적 가치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연구개발의 결과 얻게 된 기술정보나 상당한 경험을 통해 얻게 된 경영정보를 법적으로 보호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보다 적극적인 연구개발 투자가 가능하고 그럼으로써 기술과 산업의 발전이 가능한 것이다. 영업의 자유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영업비밀 보유자의 이익을 균형있게 보호할 수 있는 적절한 양형기준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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