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에 극단 선택까지…'문턱 노동자' 참극, 그래도 바뀌지 않았다

[오늘도 남의 집 간다, '문턱 노동자' 보고서]②
10명 중 4명 "극단적 선택 생각해봤다"
폭력, 성희롱 경험 응답자도 20% 넘어
'깜깜이' 악성 고객 정보, 노동자 간 폭탄 돌리기 우려
  • 등록 2021-05-02 오전 9:35:00

    수정 2021-05-05 오전 9:29:14

전기제품 설치·수리기사에서부터 가스안전점검원, 렌탈제품 방문점검원, 요양보호사까지. 고객의 집에 방문에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숫자는 약 141만명에 달합니다. 이들 노동자는 고객의 집에 들어서는 순간 그 곳이 ‘공포의 문턱’으로 변한다고 호소합니다. 폭언과 폭행과 성범죄에 노출된 것은 물론 목숨을 잃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법·제도적 보호장치는 사실상 없는 형편입니다. 131주년 노동절을 맞아 소외된 ‘문턱 노동자’를 조명해보고 해결책을 모색해봅니다. [편집자주]

■싣는 순서

①“보호자 나가자 노인이 돌변했다”…‘공포의 문턱’ 넘는 노동자들

②살인에 극단 선택까지…‘문턱 노동자’ 참극, 그래도 바뀌지 않았다


③“코로나19에 무방비, 고객들은 세균취급”…구멍 뚫린 보호법

④선진국도 예외 아닌 ‘문턱 노동자’ 폭력…美·日, 보호대책 마련 분주

⑤“반복되는 ‘문턱 노동자’ 관련 사건, 고용주 책임 강화해야”<끝>

[이데일리 박기주 박순엽 공지유 기자] 지난 2017년, 인터넷 속도가 느리다는 민원에 가정을 방문한 인터넷 설치기사가 살해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2년 뒤인 2019년, 도시가스 안전점검을 하러 방문했다가 감금·추행을 당한 점검원이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또 다시 2년 뒤인 2021년, 가구방문 노동자 10명 중 4명은 극단적 선택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폭행이나 성추행 등 고객의 인권침해가 생존권까지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앞선 사건들이 발생할 때마다 대책 마련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결국 공염불에 그친 셈이다.

(그래픽= 이미나 기자)
‘비극→대책 마련’ 반복되지만…4명 중 1명은 여전히 폭력 당해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의뢰로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가구방문 노동자 81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40.8%가 ‘자살을 생각 해본 적 있다’고 답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이 극단적 선택까지 선택한 이유는 고객의 부당대우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25.9%는 신체적 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고, 성희롱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도 22.1%에 달했다. 심지어 무기 위협이나 성폭행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도 7.0%, 2.0%가 나왔다.

가구방문 노동자(문턱 노동자)들과 관련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고, 더 큰 사건으로 번질 우려도 큰 상황이지만 제도적 보완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히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가구방문 노동자들은 ‘2인 1조’ 업무를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정부에서도 이를 권고하고 있지만 결국 변한 것이 없다.

실제 지난 2019년 가스점검원의 극단적 선택 시도 사건 이후 일부 회사에서 2인1조 업무를 약속했지만, 이번 설문조사에서 매번 2인 1조로 업무를 한다는 응답자는 7.4%에 불과했다. 한번이라도 2인 1조 업무를 했다는 비율도 18.2%에 그쳤다. 결국 사건이 발생한 회사만이 봉합 차원에서 이를 도입했을 뿐 전체 업계로 확산하지 못한 것이다. 법에서 강제로 정하는 것이 아닌 권고 사항에 그치다보니,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2인 1조 업무 도입을 사업자들이 꺼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장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다. 설치·수리기사 A(38)씨는 “2인 1조가 원칙이긴 한데, 회사에서 사람을 더 뽑을 생각이 없다고니 오히려 업무강도가 더 세진다”며 “그러다보니 대다수의 업무를 혼자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윤수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조직부장은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지자체에서 (악성) 세대를 특별 관리하고, 탄력적으로 2인 1조 근무를 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구체적인 시행계획이나 방식 등은 나오지 않아 현장에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2인1조 근무를 제한적으로라도 도입해 노동자를 지켜야 한다고 조언한다. 남우근 비정규직노동센터 연구위원은 “모든 가구방문노동에 2인1조를 도입하는 것은 비현실적이지만 반복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이용자에 대해서는 경고 조치와 함께 2인 1조 근무를 시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래픽= 이미나 기자, 사진= 연합뉴스)
‘깜감이’ 악성 고객 정보…성폭행 당해도 대응 매뉴얼 없어

또 하나의 문제는 악성고객으로부터 가구방문 노동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가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이다. 성희롱 등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고객에 대한 정보를 노동자들이 알 수 없는데다 성범죄자 정보도 제공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스안전점검원 B(51)씨는 “업무용 휴대전화기에 성범죄자 정보를 알려주면 좋은데, 이미 점검을 진행한 후에야 (여성가족부 성범죄자 알림e를 통해) 문제가 있는 집인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점검원 C(50)씨는 “우리는 (성희롱을 당한 집이어도) 거부권이 없다”며 “회사에서 그런 집에 대한 특별관리를 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과거 점검원의 성추행 사건이 논란이 되자 PDA나 스마트폰 앱에 위치추적이 가능한 위급버튼을 설치하기도 했지만, 이 마저도 위치추적이 정확히 되지 않아 실제 사건이 터졌을 때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김종진 공인노무사는 “(요양보호사 등 가구방문 노동자 보호를 위해) 폭행이나 성추행 등이 발생했을 경우 이에 대응할 매뉴얼이 필요하다”며 “폭행이 발생하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경고를 하고,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비상호출을 하도록 하고, 폭행의 수준이 높다면 단계를 뛰어 넘는 조치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질적인 피해 예방을 위해 고객에 대한 패널티 부여도 고려해 봐야한다는 지적도 있다. 피해 노동자가 다시 그 고객을 상대하지 않는다 해도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남 연구위원은 “폭언 및 폭행을 저지른 고객에 대해서 설치·수리업체(고용주)가 일정한 패널티 및 책임을 부여하도록 법제화하는 방식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고객에게도 가구 방문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을 안전하게 지켜야 하는 의무를 지워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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