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와 '걸' 공통점? "잘빠졌고 유능하고 조용해야"

대중문화 속 '진화한 성차별' 해부
미디어가 만들어낸 왜곡된 환상
"능력 보이되 섹시해야
현명하되 시끄럽지 않아야"
이중적 여상상 재등장 꼬집어
…………………………………
배드 걸 굿 걸
수전 J 더글러스|580쪽|글항아리
  • 등록 2016-05-25 오전 6:17:35

    수정 2016-05-25 오전 6:17:35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175㎝는 족히 넘기는 늘씬한 키가 날렵하기까지 하다. 몸을 전혀 사리지 않는다. 총까지 겨누고 덤비는 악당에게 묘한 미소와 동시에 긴 팔과 다리를 쭉 뻗어 날린다. 굴곡이 뚜렷한 조각상 같은 몸매와 풍성한 머리칼은 옵션. 아니 덕목! 흔들림이 없는 주장은 또 어떤가. 모든 행위엔 분명한 목적이 있으며 무력을 쓸 줄 알고 세상을 구하는 막중한 임무수행 중이다. 실패란 없다. 이런 조건에서 어찌 실패란 게 있을 수 있겠나.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닌지 정확히 확인은 안 되지만 어쨌든 이들을 부르는 이름은 따로 있다. ‘여전사’다. 영화·드라마·소설, 하다못해 만화에도 등장하는. 이들 앞에 붙는 평가도 화려하다. “신체적으로 민첩하고 감정적으로도 회복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외모를 꾸미는 데도 능하다.”

맞다. 최소한 여기에는 고개를 돌리고 조용히 한숨을 내쉬거나 눈물을 훔치고 있는 신데렐라는 없다. 남성의 도움 따윈 필요로 하지 않고 늘 보살펴야 하는 희생자 역할도 아니다. 남성을 능가한다? 아니 가끔은 그 이상. 가장 우세한 남성성을 옮겨온 캐릭터다. 그래 이제 인류가 문명을 만든 이래 최대의 고민거리던 성차별을 극복한 건가. 그렇다면 여권신장을 주구창창 주장해온 ‘페미니즘’은 소임을 다한 건가.

그런데 이런 시각에 문화비평가인 수전 J 더글러스는 한마디로 “천만에 말씀”이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대중매체에 힘입어 확산한 ‘힘의 환상’일 뿐이란 거다. 그러곤 한마디로 이를 ‘진화한 성차별’이라고 진단한다. 저자인 더글러스가 볼 때 ‘진화한 성차별’은 새로운 성별체제가 가하는 위협에 대한 반응이다. 풀어 말하자면 ‘페미니즘으로 그동안 충분한 성과를 냈으니 이제 재미삼아 성적코드 한번 꺼내볼까’에서 나온 것이란 소리다. 시작점은 성평등이 실현됐다는 착각. 예전 담론 따윈 다 필요없다는 전제 위에 새롭게 쌓은 성차별주의라고 했다.

근거는 충분하다. 미국 페미니즘이 부흥한 1970년대 이후부터 대중문화·뉴스 등 각종 매체를 통해 여성성이 어떤 식으로 자리잡고 어떤 굴레를 만들어왔는지 분석에 들어갔다. 특히 1990년대 초부터 최근까진 보도·영화·드라마·노래·출판 등에 드러난 내용을 죄다 파헤쳤다. 이를 토대로 세상은 이제 ‘여성이 무엇이 될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대신 이렇게 말한단다. “여자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 능력도 있고. 그래도 여성스러워야 해.”

▲여전사의 덕목 ‘섹시하게 잘 싸울 것’

“예쁘고 섹시하지만 헤퍼 보여선 안 되고, 유능하지만 위협적이어선 안 되며, 현명하지만 시끄러워선 안 된다.” 마치 자동차를 살 때 요청하는 주문사항 같은 이것은 ‘진화한 성차별’을 집약한 것이다. 조금만 더 붙여볼까. 옛 성차별 세태 따위엔 여유롭게 대처하고, 남성과 확연하게 차별한 능력으로 외모를 가꿔 그들의 눈을 즐겁게 해야 하며, 쇼핑을 하는 데 많은 시간·돈을 투자해 끝없이 아름다워져야 한다. 참, 한 가지 더. ‘남성을 잘 이해해줘야 하지만 남성을 많이 알아선 안 된다’도 있다.

여기서 저자가 찾아낸 것은 과격한 이중성이다. 싸움을 잘하는 능력이 절대적인 여전사인데 도자기같이 매끈한 피부는 기본이다. 칼·총·창 등 무엇을 쥐었든 간에 정작 최대의 무기는 날씬하고 매력적인 외모고. ‘전쟁도 여성스럽게, 운전도 여성스럽게, 용접일을 한다면 그것도 여성스럽게.’ 바로 그거다.

‘진화한 성차별’의 가장 큰 문제는 이처럼 다시 강요를 시작한 여성성이란다. 뭐든 할 수 있다며 시대의 주체적 문화소비자로 띄어놓은 어린 소녀가 점차 대중매체가 선전하는 섹시즘의 강박에 시달리며 갈등하는 여성으로 변해가는 과정에 대한 우려를 건져낸다.

▲페미니즘은 다 지난 일?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았던 건 아니다. 굴곡이 있었다. 1990년대 중반 무섭게 등장한 ‘걸 파워’가 여성의 자존심을 키워놨는데 갈수록 ‘파워’는 시들해지고 ‘걸’만 남더라는 거다. 저자는 그 분수령을 밀레니엄이 되풀이 된 2000년으로 잡았다. 그즈음 TV드라마를 분석해봤더니 잘나가는 여성은 죄다 하버드대를 졸업한 변호사 아니면 의사, FBI 요원. 그런데도 직업적 성취감은 늘 떨어졌다. 남성으로부터 받는 사랑에 비교하면 턱없이.

한편에서 실현 불가능한 완벽한 어머니가 되기 위한 현상도 생겨났단다. 저자는 이에 ‘마미트랙’이란 이름을 붙였는데. 설명하자면 이렇다. 성차별을 이겨내고 예일대나 하버드대의 MBA를 졸업한 여성이 월마트의 운영예산에 해당하는 급여를 받는 남성과 결혼한 뒤 아이를 갖기로 결심, 직장을 때려치운다. 이때 포기한 것이 직장뿐만이 아니란 게 저자의 판단이다. 페미니즘도 같이 날아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페미니즘을 거북해 한다. 남성은 물론 여성조차도. ‘꽉 막힌 투사, 하나밖에 모르는 외통수에다가 급진적이고 공격적이며 까다롭고 예민하다.’ 이것이 보편적인 이미지다. 하지만 한때 이런 페미니즘은 현실이었다. 덕분에 유리천장은 깨졌고 여성은 CEO도 됐고 대통령도 됐으며 우주에도 간다. ‘여자가 무슨!’이란 금기어도 깼고.

▲유리천창 깨고 몸매관리나 해서야

미디어분석을 틀로 잡고 뽑아낸 적나라한 사례들 덕분에 잘 읽히는 책이 됐다. 다만 필터링은 필요하다. 한국과 지독히도 닮았지만 미국의 사회분위기를 온전히 가져오기가 어려울 수도 있는 탓이다. 어쨌든 결론은 분명하다. 미디어가 조롱하고 희화화한 페미니즘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거다. 아이디어보단 얼굴, 정치보단 몸매, 사회변화보단 쇼핑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으라고 최면을 거는 대중매체를 역으로 반격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사실 현대 여성은 외모의 절대성을 강조하지 않은 환경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반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단다. 여성의 빈곤·폭력·불평등 같은 산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거다. 무엇을? 페미니즘을.

당장의 성과에 묶일 일은 아니라고 했다. 슈퍼우먼이 되지 못해 자책하기 이전에 자신이 먼저 변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 중요하단다. 깨진 유리천장 아래서 몸매관리나 해서야 되겠느냐는 일침. 잘 닦인 거울 앞에 서서 물어봐야 할 건 따로 있단 얘기다. “거울아, 거울아. 얘는 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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