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정책에도…'NO' 할 수 없는 韓기업

脫원전정책 등 정권따라 바뀌어
기업 타격 커도 靑 '압박'에 벌벌
"경제활성화 주체인 점 고려해야"
  • 등록 2017-09-07 오전 6:02:00

    수정 2017-09-07 오전 7:27:34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7월27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주요 기업인들을 초청해 개최한 ‘주요 기업인과의 호프미팅’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소상공인 수제맥주를 마시며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이재운 경계영 기자] “우리나라 기업은 이류, 관료는 삼류, 정치는 사류.”

이건희 삼성전자(005930) 회장이 지난 1995년에 내뱉은 ‘폭탄 발언’은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놨다. 더욱이 서슬이 퍼렇던 권위주의가 득세하던 시절에 정부와 정치권을 정면으로 겨냥한 발언을 뒷수습하느라 삼성그룹 대외협력 부서가 꽤나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 전해졌다.

그 후에도 삼성은 5년마다 바뀌는 정권에 장기 사업계획을 계속 수정해야 했다. 동반성장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 기조에 맞춰 2013년 삼성SDS(018260)는 국내 시스템통합(SI) 구축사업을 접었고 수많은 인력이 회사를 떠나기도 했다.

이는 비단 삼성만의 얘긴 아니다. 당장 지난해만 해도 합성고무 원료로 쓰이는 부타디엔(BD) 시장이 일시적으로 위축되자 정부는 업계의 반발에도 화학업종을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했고 이듬해 시황이 나아지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뺐다.

지난 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불법체류 청년 추방 유예 프로그램(DACA·다카) 폐지에 반발한 현지 기업인들이 잇따라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낸 데 대해 국내 기업인이 부러움을 표한 것 역시 이같은 맥락에서다.

‘소신 발언’ 美 기업인, 말도 못 꺼내는 韓 기업인

우리나라와 미국 모두 정권 초기다. 하지만 미국 기업인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과 달리, 우리 재계의 언로(言路)는 막혀버렸다.

대표적인 사례가 탈(脫)원전 정책과 정권 초기 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 사례다. 탈 원전 정책의 경우 산업통상자원부의 정책 방향이 180도 바뀌어야 하는 상황이고, 관련 기업도 동의하지 않는 정책이지만 반대 목소리는 크지 않다. 원전 관련 업종이 하루 아침에 기반을 상실하고, 해외 수출 경쟁력까지 위협받고 있는데도 이를 제대로 말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 것. 그러면서 원전 해체기술과 같은 새로운 시장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하지 않았지만 기업의 의견을 내기 어려운 환경 탓에 현재 관련 논의가 표류하고 있다.

박병원 경영자총협회장에 대한 청와대의 ‘경고’는 이런 분위기에 방점을 찍은 대표적 사례다. 지난 5월 25일 박 회장은 정규직 전환 확대 요청에 따른 기업의 부담을 호소하며 “모든 근로자들이 더 나은 일자리를 원한다고 해서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으로 옮긴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어렵다”며 “이는 중소기업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라고 발언했다.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차원에서 무리한 발언은 아니었지만, 청와대는 대통령의 “경총은 비정규직으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를 만든 주요 당사자다. 책임감을 갖고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발언을 언급하며 압박을 가했다.

이후 경총은 물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 다른 경제단체마저 발언을 꺼리기에 이르렀고, 사회적인 논의에서 주요 주체인 기업과 재계의 의견은 완전히 실종됐다. 결국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법인세율 인상, 주당 근무시간 축소, 통상임금 관련 신의칙 조항 해석 등 주요 현안마다 철저히 노동자 측 의견 위주로만 흐르고 있다.

“사라진 경제 논리…차근히 기업 입장 반영할 필요도”

정부뿐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도 기업에만 부담을 지우는 쪽으로 흐르다보니 기업 현장에서 느끼는 애로는 상상 이상으로 크다. 경제의 활력소 역할을 할 기업이, 청산해야 할 ‘적폐’ 대상으로 규정돼버렸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 경쟁력이 약해지면 결국 사회 전체 수입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도 다들 이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눈에 띄는 규제가 강해지기보단 행정부의 재량권을 극대화하는 방향 또한 기업으로선 부담이다. 공정위원회나 검찰, 경찰 등이 기업 관련 조사를 강화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정부 재량권이 강해지는 가운데 초반에 잘못 얘기했다간 5년 내내 경영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며 “지금 반대 목소리를 내면 개혁 대상이 개혁을 불만스러워하는 것으로 제기하는 것으로 오해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조심스럽다”고 우려했다. 다른 관계자도 “경제적 논리가 아닌 진영 논리로 붙이는 경향이 강하다”며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봤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기업은 정부가 추진하는 일자리 창출의 주체이자 노사 관계의 양대 축”이라며 “기업 목소리도 반영할 필요가 있고 노사 관계도 현실에 맞게끔 차근차근 풀어나가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를 보면 스스로는 절대 정신 차리지 못할 것”이라며 “언론을 비롯해 외부에서의 문제 제기와 비판을 통해 변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의 마인드를 바꿔야 현재 기업인의 발언 기회가 가로막힌 현 상황을 해소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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