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예산 60% 늘린다지만…"명확한 비용추산 선행돼야"

[세종=이데일리 원다연 기자] 정부가 내년 탄소중립 예산을 올해보다 60% 이상 대폭 늘린다. 정부는 2030년 탄소 배출 35% 이상 감축 목표를 향해 내년 12조원의 예산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이같은 투자는 정부의 탄소중립 목표에 비해서는 여전히 미미한 수준으로 정부의 목표 단계별 명확한 비용 추산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29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2050 탄소중립위원회 출범식’에 참석, 격려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NDC 목표 상향 대응”…탄소중립 예산 7.3조→11.9조 확대

기획재정부가 31일 발표한 2022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 온실가수 감축과 기후위기 대응 등 탄소중립 예산으로 11조 9000억원을 편성했다. 이는 지난해 7조 3000억원보다 4조 6000억원(63%) 늘어난 규모다.

최상대 기재부 예산실장은 “탄소중립을 위한 근거법인 탄소중립기본법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고 이에 대한 뒷받침으로 내년 투자를 대폭 확대한다”며 “재정적 측면에서는 2조 5000억원 정도의 기후대응기금을 신설해 이를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국회 법사위는 지난 24일 탄소중립기본법(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제정안을 의결했다.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마련된 제정안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2018년 대비 35% 이상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만큼 감축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기존 24.4%(2017년 대비)에서 대폭 강화된 것이다.

정부는 화석연료 기반의 산업구조를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지원하는데 내년 전체 탄소중립 예산 가운데 70% 수준인 8조 3000억원을 투입한다. 정부는 우선 내년 친환경차 보급 50만대 달성을 위해 올해(11만 6000천대)보다 2배 이상 많은 23만 6000대로 보급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올해보다 1조 2000억원 늘어난 2조 8000억원이 투입된다.

또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20%까지 확대하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을 위한 설비 및 발전 금융지원에 7000억원, 축사·산단 지붕 등 친환경적 지역보급 확대에 3000억원을 투입한다.

정부는 아울러 도시숲도 대폭 확대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생활밀착형 숲을 기존 34개에서 108개까지 늘리고, 미세먼지 차단숲도 156ha 규모에서 193ha 규모로 확대한다. 이를 위해 내년에 투입되는 예산은 2700억원이다.

“탄소중립 비용 명확히하고 재원조달 방안 공론화해야”

탄소중립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는 데에는 모두 2조 3000억원이 투입된다. 정부는 내년 탄소저감 설비 자금조달을 위한 탄소중립 보증을 신설하고 탄소중립전환 저탄소 설비 융자를 새롭게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또 부문별 탄소배출량 감축을 위한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등 기술에 대한 맞춤형 투자에 1조 4000억원, 탄소국경조정제도 등 새로운 국제질서에 대한 탄소영향산정방법을 개발하는 등 기반구축을 지원하는데에는 300억원을 투입한다. 아울러 탄소중립 정책으로 인해 재편되는 사업 분야의 종사자들의 직무 전환과 전직을 지원하는데에도 5000억원의 예산이 편성됐다.

정부는 탄소중립 지원을 위한 기후대응기금도 새롭게 만든다. 탄소중립기본법을 근거로, 탄소배출권 매각 수입 등을 기반으로 하는 2조 5000억원 규모의 기후대응기금은 탄소저감 설비전환 지원과 탄소중립 핵심 기술 R&D 및 제도 등 기반 구축을 위한 지원에 활용된다.

다만 학계에서는 정부의 탄소중립 목표에 비해 정부 투자 규모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산업연구원은 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 3개 업종의 저탄소 전환 비용만도 최소 400조원이 들 것이란 연구결과를 밝히기도 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각 업계별로 산별적으로 나오는 수십, 수백조원 규모의 저탄소 전환 비용에 대한 주장은 업계의 입장을 일부 감안해서 볼 필요가 있다 하더라도 정부 차원에서 탄소중립을 위한 총체적인 비용에 대한 추산과 이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명확한 비용 추산이 없는 상황에서는 예산 규모를 일부 확대한다 해도, 이는 정부의 급격한 탄소중립 목표에 비해서는 미미한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며 “비용에 대한 추산을 명확히 하고, 이에 필요한 재원 조달을 위해 증세와 같은 민감한 논의도 공론화해 적정한 예산 규모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