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고, 10년 무관심과 발뺌이 낳은 최악의 화학참사

'괴질' 치부하다 239명 목숨 앗아가
원인규명·제품폐기에 5년 걸려
양심불량 옥시, 법인 바꿔 책임회피
청문회 추진 정치권 진상규명 뒷북 지적도
  • 등록 2016-05-08 오후 8:05:00

    수정 2016-05-09 오전 9:39:51

[이데일리 이승현 유현욱 기자] 가습기살균제는 가습기 내부 미생물 번식과 물때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물에 첨가해 사용하는 화학제품이다. 1994년 유공(현 SK케미칼)의 ‘가습기메이트’라는 이름으로 출시한게 시초다. 이 제품은 2001년부터 애경이 판매를 담당했다. 2011년까지 20여종이 연간 60만개 가량 팔렸다. 그동안 800만 명 이상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개당 몇천 원에 불과한 이 생활 화학제품이 소리없이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가면서 우리나라 역사상 최악의 화학사고로 기록될 전망이다. 2006년부터 시작된 이번 참사는 인체에 치명적인 유해 제품을 판매하고도 모르쇠로 일관한 양심불량 기업들과 무책임한 정부 탓에 10년이 지나서야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고 있다.

영유아와 산모의 알 수 없는 죽음..5년 만의 원인 규명

2011년 4~5월 서울아산병원에는 출산 전후의 20~30대 산모 7명과 40대 남성 1명 등 8명이 의문의 폐질환으로 입원했다. 이 중 산모 4명이 폐 조직이 딱딱하게 굳는 ‘섬유화’ 증세를 겪다 숨을 거뒀다. 역학조사에 나선 질병관리본부(질본)는 같은 해 8월 이들이 사용한 가습기살균제가 위험요인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질본은 이어 같은 해 11월 동물(쥐) 흡입독성 실험을 바탕으로 가습기 살균제와 폐질환 사이의 인과관계를 확인했다며 시중의 가습기살균제 6종을 모두 수거조치했다.

△옥시싹싹뉴가습기당번(옥시) △와이즐렉 가습기살균제(롯데마트PB) △홈플러스 가습기 청정제(홈플러스PB) △세퓨 가습기살균제(버터플라이이펙트) △아토오가닉 가습기살균제(아토오가닉) △가습기클린업(코스트코 판매제품)이다. 옥시와 애경 등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업체들은 생산과 판매를 중단했다. 이마트와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도 기존 제품을 모두 폐기하거나 반품 처리했다.

이에 앞서 2006년 서울아산병원에서 원인 미상의 폐질환을 앓은 영유아들이 입원했다가 일부가 사망했다. 전국적으로 매년 비슷한 사례가 계속 이어졌다. 2008년 서울아산·서울대·삼성서울·연세대 병원 등 4개 대형병원 의료진이 학회 논문발표 등을 통해 공론화를 시도했지만 질본이 “감염병은 아닌 것 같다”며 결론지으면서 원인미상의 질환으로 치부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1년 12월에야 비로소 가습기살균제를 제조 및 유통이 자유로운 ‘공산품’에서 당국의 제조허가와 승인이 필요한 ‘의약외품’으로 바꿨다. 그러나 지금까지 식약처에 신제품 승인은커녕 신청한 제조사도 없다. 국내 가습기살균제 시장은 이렇게 사라졌다.

미적대는 정부·반성 않는 기업..피해자들의 힘겨운 투쟁

괴질로 여겨졌던 폐질환의 원인이 가습기살균제 때문이라는 사실이 정부 조사로 밝혀졌지만 가해업체 조사와 피해자 구제까지는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피해자들은 2012년 1월 국가와 제조·판매업체를 상대로 배상금과 위자료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일부 유족은 같은 해 8월 제조업체를 과실치사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수사에 나선 서울 강남경찰서는 3년이 지난 2015년 9월 제조·판매업체 15곳의 대표이사를 불구속 입건해 검찰로 넘겼다. 법원은 2015년 1월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정부 차원의 피해자 조사는 질본의 발표 이후 2년이 지난 2013년 7월 처음 시작됐다. 2013년 국회에선 환경노동위원회를 중심으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구제법·특별법’ 제정 움직임이 있었지만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기업들도 반성하지 않았다. 공식 사과는 없었다. 가장 많은 피해자(총 403명·사망자 103명)를 낸 옥시는 사건이 불거지자 주식회사를 유한회사로 바꿔 새 법인을 만드는 꼼수로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정부는 2014년말 가습기살균제 업체 15곳을 상대로 정부가 지원한 피해자 의료비와 장례비에 대한 구상권을 청구했지만 산도깨비와 다이소를 제외한 13곳이 구상금 지급을 거부했다. 정부는 거부 업체들을 대상으로 구상권 청구소송을 제기해 법정다툼이 진행 중이다.

피해자들은 힘겨운 싸움을 계속해 나갔다. 광화문과 국회, 검찰 등 앞에서 400회에 가까운 1인시위를 했고 전국을 돌며 도보·자전거 캠페인을 했다. 최대 가해업체 옥시레킷벤키저의 영국 본사도 항의방문했다. 피해자들의 노력과 아픈 사연들이 환경보건시민센터 등 시민단체들과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알려졌다. 여론이 움직이자 검찰이 나섰다. 검찰이 올해 1월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하면서 사태는 급진전됐다. 롯데마트가 가장 먼저 공식사과와 함께 배상을 약속했고, 옥시가 뒤따랐다. 피해자들은 진정성 없는 사과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뒤늦게 정치권도 나섰다. 여야는 청문회 등 진상규명 활동을 할 예정이다.

검찰수사·불매운동..국민감정 폭발

현재 검찰의 수사는 옥시에 집중돼 있다. 옥시는 2001년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를 사용한 ‘옥시싹싹뉴가습기당번’을 출시, 사장 점유율 80%를 기록했다.

PHMG는 1996년 12월 당시 유공(현 SK케미칼)이 카페트항균제로 개발한 화학물질이다. 옥시는 이 물질을 흡입유해성 검사없이 가습기살균제로 용도변경을 사용했다. 당시에는 화학물질의 용도변경 때 사전 유해성검사 규정이 없었다.이와 관련 환경부는 유공이 개발한 PHMG에 대해 흡입유해성 검사 없이 ‘유독물 미해당’으로 고시했다. 환경부는 2012~2013년 가습기살균제 원료물질인 PHMG와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HG), 클로로메틸이소치아졸리논/메칠소치라졸리논(CMIT/MIT)을 각각 유독물로 지정했다.

검찰이 수사에 속도로 내면서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고 제조회사들에 대한 불매운동으로 이어졌다.

지난 4월 25일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가피모)과 환경·소비자단체 등 37개 단체가 옥시에 대한 불매운동을 선언했다. 불매운동에는 소상공인단체와 일반 소비자들이 적극 참여하면서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대형마트들과 오픈마켓들도 잇따라 불매운동에 동참, 옥시 제품 판매를 중단하고 있다.

가피모 유족 대표를 맡고 있는 안성우(40)씨는 가습기 살균제로 아내와 둘째 아이를 잃었다. 그는 “진실성 있는 사과를 받길 원한다. 기업들이 정부조사 때의 은폐·조작 행위를 사과하고 정부도 사과해야 한다”며 “국회는 가습기 살균제를 승인 및 관리를 맡은 부처에 대한 청문회를 하고 피해 구제를 위한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가습기살균제피해자모임이 2011년 9월 서울 중구 레이첼카슨홀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사례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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