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정남 김정현 기자] ‘가계부채의 양(量)은 감소하고 있으나, 질(質)은 오히려 나빠지고 있다.’
문재인정부가 취임 초부터 내건 가계대출 규제의 결과는 이처럼 요약할 수 있다. 당장 올해 2분기도 그랬다. ‘몸통’인 주택담보대출(주담대) 문턱을 높이자 부채 증가율이 3년여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지만, 동시에 여기서 밀려난 이들이 ‘더 위험한’ 신용대출(10조1000억원↑)로 옮겨간데 따른 것이다. 이른바 ‘풍선효과’다.
가계부채 총량이 어느덧 1500조원에 육박한 것도 우리 경제에 부담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文, 주담대 조이자…부채 총량 둔화세
2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4~6월) 가계신용은 1493조2000억원으로 전기 말(1468조2000억원)과 비교해 24조9000억원 증가했다. 한 달에 8조원 꼴이다. 가계부채 1500조 시대가 코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105조2000억원 늘었다.
문재인정부 들어 가계대출 증가 폭은 둔화하고 있다. 2분기 중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7.6%였다. 2015년 1분기(7.4%) 이후 3년여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가계대출이 폭증한 건 박근혜정부 때였다. 2015년 3분기~지난해 2분기 2년간 분기 증가율이 두자릿수를 상회했다. 그러다가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3분기 9.5%로 하락하더니, 지난해 4분기와 올해 1분기 8% 초반대까지 내려앉았고 2분기에는 7%대로 하락했다. 이는 가계대출 급등기 이전 과거 10년(2005~2014년) 평균 증가율(8.2%)을 하회하는 것이다. 문재인정부의 전방위적인 주담대 조이기에 대출 오름세가 한풀 꺾인 것이다.
전(全)금융권 통틀어 주담대 증가 폭은 줄었다. 2분기 예금은행의 주담대는 6조원 늘었다. 제2금융권의 경우 오히려 8000억원 감소했다. 주택금융공사·주택도시기금(3조4000억원)까지 더하면, 전체 주담대 증가액은 8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14조5000억원)보다 6조원 가까이 적은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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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가계부채 위험이 완화했다는 평가는 이르다. 주담대를 억누르자 반대로 신용대출이 늘고 있는 탓이다. 신용대출은 절차가 간소하지만, 금리가 높다는 단점이 있다. 2분기 중 예금은행 기타대출은 6조8000억원 늘었다. 지난해 2분기(5조7000억원) 보다 1조원 이상 더 증가한 것이다. 기타대출은 신용대출, 마이너스통장대출, 상업용부동산담보대출(상가·오피스텔 등), 예·적금담보대출, 주식담보대출 등을 말한다. 대부분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대출이라고 보면 된다.
제2금융권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2분기 3조3000억원 증가해 전년 동기의 오름 폭(3조1000억원)을 앞질렀다. 대출자들이 제2금융권 주담대는 갚아나가고 있는 반면, 신용대출은 더 늘리고 있다는 얘기다. 예금은행과 제2금융권에서만 10조원 넘게 증가했다. 만에 하나 미국의 금리 상승기 여파가 국내에도 미칠 경우 뇌관이 될 수 있어 보인다. 문소상 한은 금융통계팀장은 “신용대출 사용처를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주택거래 입주 관련 비용 등에 사용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최약계층의 생계형 자금 수요가 늘고 있다는 추정도 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담대를 억제하다보면 금융 접근이 어려운 계층일수록 신용대출로 갈 수밖에 없고, 가계부채의 질은 나빠진다”며 “서민들의 금융 접근 문턱을 낮춰주는 서민 금융을 제도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가계부채 증가세가 여전히 가파르다는 지적도 있다. 가계신용 증가액은 2015년 3분기 108조5000억원(전년 동기 대비) 늘더니, 그 이후 계속 100조원을 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가계신용 증가율은 여전히 소득 증가율을 상회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