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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만9천원` 제주도 여행상품 어떨까?
- [edaily 피용익기자] 9만9000원에 제주도를 2박3일 여행할 수 있는 여행상품이 등장했다. 지금까지 소개된 제주도 여행상품 가운데 가장 저렴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캉스여행사는 2일 "지난달부터 9만9000원에 제주도를 여행할 수 있는 `제주 타이타닉 투어` 여행상품을 선보이고 있다"며 "주5일 근무제 실시와 항공료 인상 등에 따라 뱃길을 이용한 저비용의 제주 관광 여행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밝혔다.
캉스여행사가 내놓은 초저가 여행상품은 월·수·금 오후 7시에 인천항을 출발해 다음날 아침에 제주도에 도착, 하루 동안 관광한 후 다시 저녁에 배를 타고 다음날 오전 인천에 돌아오는 코스다. 선상에서 2박을 하게 되므로 실제로 제주도에서 머무는 기간은 한나절이다.
인천항에서 제주항까지는 6000톤급의 카페리선 `오하마나호`를 이용한다. 그러나 영화 `타이타닉`에 나오는 호화 유람선을 생각하면 안 된다. 일본에서 10년 사용한 배를 들여와 다시 4년 남짓 사용한 선박이라 다소 낡았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이 여행상품으로 배를 탄 사람들은 3등실을 이용한다. 군대 내무실처럼 여러명이 일렬로 누워 잠을 자야 하는 구조의 단체실이다.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려 잠을 자기가 불편한 사람들은 예약시 3만원을 추가로 내면 침대가 있는 2등실을 준다.
인천에서 제주까지의 항로는 1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운항중 선상에서는 레크리에이션, 라이브 공연, 불꽃놀이 등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진다. 아침에는 제주도의 일출을 선상에서 감상할 수 있다.
선상에서는 출발 당일 저녁식사와 다음날 아침식사가 무료 제공된다. 밥과 국에 김치, 나물 등이 반찬으로 나온다. 돌아오는 배에서는 5000원을 내야 저녁을 먹을 수 있다. 또는 선상 편의점에서 라면 등으로 끼니를 대신할 수도 있다.
제주도에 도착하면 한라산을 등반하거나 제주 시내를 관광하게 된다. 제주 시내 관광은 소인국 테마파크, 상황버섯 농장, 외돌개, 섭지코지, 유채꽃 촬영지, 제주공예마을, 해수 사우나 등의 코스로 짜여 있다. 등반 및 관광이 끝나고 인천행 배에 승선하기 전에는 내국인 면세점을 이용할 수 있다.
`제주 타이타닉 투어` 여행상품은 선상 생활을 즐길 수 있는 단체 관광객에 적당하다. 다만 화려한 호화유람선을 타고 우아한 선상파티를 즐기는 `영화같은` 상상을 하면 곤란하다. 9만9000원 초저가라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둬야 여행이 즐겁다.
- (채권전망)⑤상당기간 금리인상 가능성 희박 -LG증권
- [edaily 최현석기자] LG증권 서철수 애널리스트는 "경기회복 기대감이 채권시장에 이미 선반영됐으나, 일부에서는 기대가 너무 앞서 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급이 호조세를 보이고 있어 경기회복 기대에 따른 금리 상승에 대한 본격적인 조정이 가능하다는 것. 다만 당분간은 채권시장이 방어적 입장에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서 연구원은 "4.2% 근처에서는 매수 가능하나, 3%대 진입시에는 이익실현도 괜찮다"며 "중립적 관점을 유지한다"고 강조했다.
◇LG증권=레인지 장세...중립 관점
경기회복 기대감은 이미 반영되었다고 보며, 다소간 앞서나가는 측면이 있을 수도 있다. 이미 여러 차례 밝혀 왔듯이 우리의 기본 입장은, 현 시점에서 예상되는 하반기 경기회복 강도를 감안할 경우 상반기 중 선반영 차원의 금리 고점은 4.2%대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이 다. 주지하는 것처럼 연초부터 시작된 금리급등은 수급상 꼬임과 정책상의 불확실성 확대로 비롯된 측면이 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쨌든 간에 결과적으로 금리가 과도할 정도로 많이 올랐었다는 점이, (수급 꼬임이 해소되고 정책 불확실성도 크게 완화되었으나) 또 다른 한편으로 최근 들어 확대되어온 경기회복 기대감에 의한 금리 상승 압력을 이미 충분히 흡수해 버린 꼴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최근 주식시장과 언론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경기회복 기대감이, 현실보다 ‘다소 앞서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다소 앞서간다’는 것이지, ‘거꾸로 간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우리도, 내수경기가 바닥을 형성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지난 주 3월 금통위 직후 한은총재가 내린 꽤 긍정적인 경기 판단만큼은 아니지만 말이다. 사실, 내수경기 회복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실물 데이터는 아직 없다. 일부 데이터의 개선 조짐이 있고 선행지수의 상승 반전이 이제 처음 나타난 상황에 불과하다. 이러한 가운데, 심리지표들이 먼저 급등하고 있는 것이다.
3월 지표가 3.5%까지 오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고 본다면(base-effect측면에서도 그렇고 9가지 구성요소의 동향을 봐도 그러하다), 채권시장이 설정해 놓은 81bp는 실물경기의 회복 가능성 지표 측면에서는 다소 과도하다고 볼 수 있다는 얘기이다.
요컨대 소비자기대지수는 81bp보다 큰 폭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고, 선행지수는 81bp도 많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황을 다소 도식적으로 정리해 보자면, 일반의 경우 기회복 기대감 > 채권시장 > 실물지표 의 순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앞서나가고 있는’ 일반의 경기회복 기대감이 (그것을 충분히 써포트 해 주지 못하는 실물지표들에 의해) 조정을 받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일단은 ‘앞서가는 기대감’의 양상이 이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상기한 바와 같이 채권시장은 이미 기대감을 선반영해 왔으나, 자꾸만 앞서간다면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채권시장 입장에서 당분간 ‘회복 기대감’은, 이미 반영되었다는 측면에서 방어되는 양상이 될 것으로 판단한다. ‘기반영’에 대한 믿음과 ‘기대감이 조정을 받게 될 날’에 대한 기대가 버팀목이 될 것이다.
우호적 수급 여건이 경기측면의 껄끄러움을 누그러 뜨리고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양호한 수급 여건이 커다란 우군이다. 지난 주 언론에도 나왔지만, 주요 기물 중에서 실제로 유통되는 물량은 많지 않은 상황이다. 반면, 연초 이후 계속되었던 손절매 끝에 지금은 곳간이 비어있는 곳들이 많다고들 한다. 최근에는, 금리 급등 결과 확보된 가격 메리트와, 적어도 상반기 중 고점은 확인한 것 같다는 안도감이 수요 우위의 장세에 일조하고 있다.
수급측면에서 보면 시장은 기로에 있는 듯 하다. 은행권이 매수행렬에 동참하느냐, 아니면 투신권이 이익실현에 나서느냐에 따라 (경기회복 기대감 측면에 의한 영향력을 중립으로 보았을 때) 지표금리가 3%대 안착하느냐 4.2%대까지 다시 밀리느냐가 결정될 것 같다.
그런데 단기적으로만 보자면 어느 쪽도 뚜렷한 움직임을 가시화하지는 않을 듯 하므로 당분간 3.90%∼4.20%의 레인지 장세를 예상한다. 신중한 매수 타진이라면 4.2%대에서, 캐리를 염두에 둔 매수세라면 4.1%대에서도 매수 가능하다는 3월 월간전략의 입장을 견지하며, 다만 단기적으로는 3%대 진입시 일부 이익실현도 괜찮다는 판단이다.
만일 조금 더 보수적인 투자자라면 숏엔드 쪽에서의 급격한 스티프닝 결과 쏠쏠한 재미를 볼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롤링 전략을 추천한다. 금리 인하는 몰라도, 적어도 인상 가능성은 상당기간 희박하다고 본다면, 만기 1년 혹은 1년 반 이하에 대한 롤링은 금리변동 리스크가 작으면서도 괜찮은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다.
- "미안해… 미안해…" 3남매 잃은 부모 통곡
- [조선일보 제공] 9일 새벽 5시45분. 강동소방서 대원들이 새카맣게 탄 문간방에 들어갔을 때 아이들은 잠든 것처럼 누워 있었다. 첫째 정민(11)이와 셋째 경철(6)이는 침대 위에, 둘째 청훈(8)이는 방바닥에 누워 있었다. 이들은 몸 전체 또는 일부가 그을려 있었으나, 몸부림 친 흔적은 없었다. 질식해 숨진 듯했다.
경찰관인 아빠 금모(35)씨는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건물 근처에서 철야 경비를 돌다가, 엄마 정모(37)씨는 신문을 돌리다가 비보(悲報)를 들었다. 강동성심병원 빈소에서 엄마는 나란히 찍은 세 남매 사진을 붙들고 “엄마가 미안해, 미안해” 하며 울었다. 울다가 쓰러지고, 사람들이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면 깨어나 또 울고….
“불쌍한 내 새끼들, 왜 거기 있니. 내 새끼를 살려주세요. 아직 할 일이 많아요” 하며 몸부림치는 엄마를 아빠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불은 이날 오전 5시11분쯤 3층 단독주택 맨 위층에 있는 금씨 집 거실에서 누전으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방이 3개 있는 18평 크기의 작은 집. 삽시간에 커진 불길은 거실의 식탁 등을 태우며 맹독성 연기를 뿜어냈다. 같은 집 2층에 사는 공형철(19)군은 “오전 5시 좀 넘어 위층에서 ‘펑’ 하는 소리가 연거푸 나 나가보니 3층이 자욱한 연기로 꽉 차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세 남매의 부모는 모두 생업을 위해 외출 중이었다. 서울경찰청 특수기동대 소속(경장)인 금씨는 전공노 파업과 관련해 11월 초부터 3교대로 철야 근무를 하고 있었고, 아내 정씨도 조간신문을 배달하기 위해 이른 새벽 집을 나선 상태였다.
정씨는 생활고를 덜기 위해 2000년 9월부터 월급 70여만원을 받고 신문 배달을 시작했다. 새벽 2~3시쯤 신문 보급소로 나가 1개 전문지와 3개 종합일간지 700여부를 돌린 뒤, 오전 7~8시쯤 집으로 돌아와 잠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워 아침식사를 차려주고 학교에 보냈다. 작년까진 낮에 학원 강사로도 일했으나, 더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보내야겠다며 그만뒀다.
동료 경찰관은 “금 경장은 봉급이 200만원 가량인데 애들 학비와 학원비로 늘 생활이 빠듯했다”며 “하지만 아내와 아이들을 끔찍히 사랑해 쉬는 날이면 새벽에 아내와 함께 신문을 돌리고 낮에는 온 가족을 데리고 공원으로 나들이를 가곤 했다”고 말했다.
함께 하늘나라로 간 아이들끼리의 우애도 각별했다. 누나 정민이는 엄마가 없을 때면 동생들 옷 입고 양말 신는 것까지 챙길 정도로 동생들을 아꼈다. 심부름 갈 때도 꼭 양손에 동생들 손을 잡고 함께 다녔고, 친구들을 만나면 “내 동생 귀엽지?”라며 자랑했다고 한다.
옆집에 사는 한원택(여·60)씨는 “막내 경철이는 우리집 개 ‘백구’를 좋아해 같이 놀다가도 누나가 학교 갔다 오면 쪼르르 달려가 누나에게 매달리곤 했다”며 “아빠처럼 나쁜 사람 잡는 경찰이 되겠다던 경철이의 천진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내가 죄인이야, 죄인. 밖에 나가지만 않았더라면…, 엄마가 너희 옆에 있었더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엄마는 끝없이 오열하며 세 남매의 영정 곁을 떠나지 못했다.
- (정명수의 월가 키워드)Sleeping With the Enemy
- [뉴욕=edaily 정명수특파원] 남의 나라 대통령 선거 결과를 놓고 이러쿵 저러쿵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 솔직히 조지 W 부시 대통령이나 존 케리 민주당 상원의원이 경제나 외교 외에 구체적으로 어떤 공약을 했는지 자세히 살펴보지도 않았다.
다만 선거를 지켜보면서 "무척 돈이 많이 들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부시를 극도로 싫어하는 폴 크루그만 교수의 칼럼을 읽고는, 선거 시스템이 `후진적`이라는 느낌도 받았다. "투표를 하기 위해 3~4시간 씩 땡볕에서 기다려야하다니..."
승자와 패자가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는 모습은 보기 좋았지만, 그 과정은 지저분하기 그지 없었다. 선거인 명부를 이중으로 등록하고, 흑인 밀집 지역에서는 투표를 방해하기 위해 자동차 타이어마다 구멍을 낸 사고도 있었다.
두 가지가 궁금했다. 우선 선거 결과 미국은 얼마나 극심하게 분열됐는가. 다음은 그 분열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 것인가.
◇39억달러가 만든 분열
선거자금 감시 단체 CRP는 이번 대선에 39억달러 이상의 자금이 쓰인 것으로 추산했다. 2000년 대선 당시 30억달러보다 30% 이상 늘어났다.
동부에서 서부 알라스카까지 투표 마감 시차만 6시간이 걸리는 넓은 땅이니, 선거 자금이 많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민주주의 최고의 정치 행위인 선거가 갈등을 해소하기는 커녕, 갈등을 증폭시켰다는데 있다.
뉴욕타임즈가 분석한 아래 표를 보자. 투표구 별로 부시와 케리의 득표 차이를 원의 크기로 표시한 것이다. 한 눈에 알 수 있는 사실은 대도시에서 케리가 압도적인 표를 얻었다는 것이다.(파란색이 케리, 붉은색이 부시)
이번 미국 대선의 득표 양상은 이렇다. 가진 자는 부시를 찍었고, 못 가진 자는 케리를 찍었다. 백인 기독교도들은 부시를 찍었고, 흑인과 소수민족은 케리를 선호했다. 남쪽은 부시를, 대서양과 태평양 연안, 그리고 북부는 케리를 찍었다. 늙은이는 부시를 찍었고, 젊은이는 케리를 찍었다. 빈부, 지역, 세대, 종교에 따라 표가 극명하게 갈렸다.
"선거가 다 그런 것 아니냐"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 아래 그림은 차례로 1984년 레이건-먼데일, 1992년 부시(아버지)-클린턴, 그리고 이번 선거 결과를 표시한 것이다. 공화당 후보가 선거인단을 확보한 주는 붉게, 민주당이 확보한 주는 파랗게 표시했다.
1984년 레이건은 미네소타를 제외하고 거의 미국 전역에서 지지를 받았다. 동서, 남북, 인종, 빈부 격차에 따른 지지도 차이가 크지 않았다. `강한 미국`을 내세우며 소련과의 냉전을 진두지휘한 레이건을 미국인들은 모두 존경했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고, 쌍둥이 적자도 심화됐지만, 레이건은 압도적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8년간의 레이건 치세와 4년간의 아버지 부시 시대를 마감하고자, 민주당은 젊은 클린턴을 내세웠다. 1992년 중앙 정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클린턴은 돌풍을 일으키며 동부, 북부 지역을 장악했고, 남부 일부에서도 승리했다. 걸프 전쟁으로 기세등등했던 아버지 부시는 중부 지역의 카우보이와 농부들의 지지에 만족해야했다. 민주당 경선 단계에서부터 성추문에 휘말렸던 클린턴은 보수적인 남부의 표심까지도도 끌어들이는 매력을 과시했다.
조지 W 부시는 2000년에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남부와 중부 지역을 싹쓸이 했다. 최대의 격전지 플로리다와 오하이오에서 승리함으로써 케리의 항복을 받아냈다. 그러나 부시는 대도시가 밀집해 있는 태평양 연안, 대서양 연안에서는 여전히 인기가 없었다. 지역적인 한계와 함께 계층간, 세대간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렸다.
정치의 속성이 갈등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시 진영이 이번 선거에서 구사한 전략은 `갈등의 해결`이 아니라 `갈등의 증폭`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3일 워싱턴 레이건 센터에서 당선 연설을 하면서 1등 선거 참모 칼 르보의 이름을 직접 거명했다. 르보는 `전쟁을 수행한 대통령`이라는 전통적인 캠페인 전략에 만족하지 않고, 비타협적인 우익 성향을 강조함으로써 케리와의 차별화에 주력했다.
민주당이 경제, 이라크 전쟁을 이슈로 끌고 갈 때 공화당은 동성결혼, 줄기세포 복제 같은 윤리적 문제를 물고 늘어졌다. 이것이 백인 기독교 표를 결집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 선거 분석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부시는 이미 동성연애가 `기이한 일`이 아닌 미국 사회에서 전통적인 가족관과 동성애 사이의 갈등을 어떻게 풀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았다. 갈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극단적인 전략을 취했다.
그렇다면 이같은 갈등과 분열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적과의 동침
정치적 갈등의 극한을 생각해보자. 아버지는 공화당원, 아들은 민주당원. 세대간 갈등을 생각하면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극단적이지는 않다.
같은 이불을 덮고 사는 부부가 정치적 성향이 정반대라면 어떨까. 아내는 공화당 대통령의 일등 정치참모, 남편은 민주당 선거 핵심 브레인이라면..
실제로 미국 사회에는 이런 부부가 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아놀드 슈와츠제네거는 공화당원으로서 부시 지원 유세에 적극 참여했다. 슈와츠제네거의 부인 마리아 슈라이버는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조카딸이다. 케네디 가문은 지금도 민주당의 핵심 세력이다. 슈라이버는 그러나 민주당을 위해 뛰는 정치적 인물은 아니다.
진짜 `적과의 동침`은 민주, 공화 양당의 정치 참모인 제임스 카빌과 마리 마탈린의 경우다.
마탈린은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의 정치 참모로, 이번 선거에서도 부시의 재선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마탈린의 남편 카빌은 1992년 빌 클린턴을 당선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미국 최고의 선거전략가 중 하나다. 1992년 당시 "It`s the economy, stupid!"라는 선거 슬로건을 만들어낸 인물이기도 하다. 카빌은 케리 진영이 선거 막판 부시를 따라잡기 위해 끌어들인 클린턴 사단 중 한명이다.
마탈린은 1970년대 웨스턴 일리노이 대학을 중퇴하고 제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뒤늦게 정치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용 기술을 배우던 중 정치와 인연을 맺었다. 지방 선거 출마자들의 참모 역할을 하다가, 1981년 워싱턴으로 진출한다. 호프스트라 로스쿨을 다니면서 공화당 선거 참모 일을 하던 그녀는 1988년 아버지 부시의 선거 운동 본부에서 중책을 맡는다. 1992년 아버지 부시의 재선 캠프에서는 부시 대통령의 오른팔 역할을 한다. 그녀는 선거 기간 내내 대통령과 함께 이동하며 클린턴 진영과 대적했다.
공교롭게도 이때 남편인 카빌을 만난다. 카빌은 클린턴 진영의 핵심 참모였다. 카빌은 남부 루이지애나 카빌 출생으로 루이지애나 대학을 나왔다. 1970년대 말까지 법률회사에서 일하던 카빌은 어느날 "만약 내가 변호사를 선임해야한다면, 나는 절대로 나같은 변호사를 선임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일을 때려 치운다.
마흔살이 될 때까지 변변하게 승리하는 선거에 참여해본적이 없던 카빌은 1986년 펜실베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열세에 몰려 있던 로버트 케이시를 당선시키면서 정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카빌은 1992년 클린턴 선거 참모로 발탁, 클린턴 선거본부인 이른바 `워 룸(The War Room)`을 이끌게 된다. 당시 카빌과 클린턴 선거 참모들의 활약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The War Room`은 아카데미상 후보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부시의 핵심 참모 마탈린과 클린턴의 핵심 브레인 카빌은 일생일대의 선거전을 치루면서 사랑을 키웠다. 두 사람이 연인이라는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마탈린의 신뢰성이 의심받는 일까지 벌어졌다.
1992년 선거에서 부시가 클린턴에 패하면서 카빌은 미국 최고의 선거 전략가로 명성을 날렸다. 1993년 추수감사절 카빌과 마탈린은 결혼식을 올렸다.
마탈린은 결혼 이후에도 공화당 선거 참모로 계속 활동했다. 2000년 아들 부시의 선거운동과 이번 재선 운동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마탈린은 CNN의 정치 토론 프로그램 `Crossfire`를 남편과 같이 진행하기도 했고, 나중에는 CNBC에서 자신만의 정치 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녀는 직설적인 화법과 유머로 최고의 진행자가 됐다. 대통령과 부통령 모두의 정치 자문을 맡은 것도 마탈린이 처음이다. 마탈린은 올해 부시의 재선 운동이 시작되기 전 백악관을 떠났다가, 선거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캠페인에 참여했다.
남편 카빌은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만든 이후 너무나 유명해져서, 미국내 정치인 중에서는 그를 선거 참모로 쓰려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카빌은 그리스, 아르헨티나, 캐나다 수상, 심지어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까지, 해외 정치인들의 선거 참모로 활동했다.
카빌과 마탈린은 각자의 정치적 입장이 분명하게 다르지만, 11년간 두 딸을 낳고 지금까지도 충실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애정의 조건
이번 대선을 일주일 남겨두고 카빌과 마탈린이 펜실베니아의 한 대학 강연회에 동시에 참석했다. 정치적 입장이 다르면서, 부부라는 점 때문에 이들은 자주 이같은 강연회에 불려 나간다.
마탈린은 "이번 선거는 역사적인 선거"라며 "부시는 미국 외교사에 혁명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마탈린은 "케리는 단지 `나는 부시가 아니다`고 말할 뿐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남편 카빌은 "만약 케리가 펜실베니아에서 이긴다면 부시는 오하이오와 플로리다에서 동시에 이겨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실제 투표 결과는 케리가 펜실베니아에서 승리하고, 부시는 오하이오와 플로리다를 모두 차지했다.)
카빌은 "2000년에 앨 고어에 투표했지만, 부시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이번에 부시를 찍겠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면서 케리의 승리를 장담했다.(실제 선거에서는 2000년에 투표를 잘하지 않았던 보수적인 백인 기독교도들이 부시에 몰표를 던졌다.)
이처럼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사람이 어떻게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까. 4년마다, 아니 거의 매 순간 극심한 정치적 충돌을 피할 수 없을 텐데, 이 부부는 어떻게 11년간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일까.
마탈린은 카빌을 처음 만났을 때 그가 공포영화 `딜리버런스`의 악당같은 인상을 받았지만, 그 이상의 남편 감은 없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함께 출연한 HBO의 정치 드라마 `K스트리트`에서는 첫 데이트 장면이 이렇게 묘사돼 있다. 카빌은 마탈린을 보고 "당신처럼 내 어머니를 쏙 빼닮은 여자는 처음이요"라고 말한다.
마탈린은 "우리는 정치 외에는 싸우는 것이 없다"며 "남편이 출연하는 정치 프로그램은 아예 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심지어 남편과 같이 쓴 책에서 남편이 쓴 부분도 읽지 않았다고 실토했다.
마탈린은 "우리는 여섯살, 아홉살 딸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아이들에게 절대로 특정 정치 이념을 주입시키지 않겠다고 서약했다"고 말했다.
카빌은 "올 가을 우리 집안의 최대 행사는 선거가 아니라 할로윈데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카빌은 "자기 형제들을 싫어하는 마누라를 얻는 것보다 정치적 성향이 다른 아내를 얻는 것이 더 쉽다"고도 했다.
이들 부부는 일상에서는 평범한 아내와 남편일 뿐이다. 마탈린은 911 테러 당시를 회고하며 이런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날 체니 부통령과 함께 있었습니다. 부통령께서는 세계 각국 지도자들과 바쁘게 통화를 하고 계셨죠. 저는 우리 딸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너무나 걱정이 됐어요. 부통령께 `전화를 써도 될까요? 시내 통화인데요`라고 말하고 싶을 지경이었어요."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클린턴 대통령이 성추문에 휘말려 탄핵 위기에 몰렸을 때 마탈린과 카빌은 결혼 서약, 결혼의 맹세를 재검토할 뻔한 시기가 있었다.
마탈린은 한 인터뷰에서 "제임스는 밤늦게까지 클린턴을 변호하느라 바쁘게 뛰어다녔죠. 파김치가 돼 집으로 돌아와서는 침대에 눕곤했어요. 피곤한 제임스가 저를 안을 때, 저는 낮으막히 이렇게 속삭일 수 밖에 없었어요. "저한테 뭐라고 하지 마세요. 난 부시를 찍었으니까" 그 당시는 정말 남편에게 도움을 줄 수 없는 어려운 시기였죠"라고 말했다.
극단적인 정치적 분열과 대립. 카빌과 마탈린은 일에 대한 열정과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분열을 극복할 수 있었다.
이쯤에서 이런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부시에 표를 준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의 백인 가장이 동성결혼을 주장하는 게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부시의 감세 정책에서 직접적인 혜택을 받는 부자가 흑인 파트타임 노동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911테러 당시 아랍계 이민자에게 보복 테러를 했던 텍사스 카우보이가 뉴욕 유니온 스퀘어에서 반전 구호를 외치는 젊은 대학생을 사랑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