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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민속박물관, 흘러넘치는 전통미
  • 살아있는 민속박물관, 흘러넘치는 전통미
  • ▲ 외암마을 참판댁 [조선일보 제공] 외암민속마을은 관광객을 위해 일부러 조성한 모형적 마을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이 거주하는, 5백년 넘는 세월 동안 삶의 향기가 고스란히 전해져 내려오는 마을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민속박물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여행객들은 이리저리 휘어지고 갈라졌다 다시 만나는 마을 돌담길(총연장 6km)을 걸어보면서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느낀다. 주민들의 이야기소리가 도란도란 흘러나오는 담장 너머로, 대문 틈으로 눈길을 주면서 공동체 삶의 소중함을 목도한다. 민박집 온돌방에서 하룻밤을 묵거나 떡메치기 등 농촌체험도 하면서 잠시나마 외암마을 주민이 되어보는 것도 여행객들에게는 평생 잊지못할 추억거리이다. 외암마을은 금북정맥에 솟은 설화산(441m, 일명 오봉산)을 진산으로 삼고 있다. 이 마을이 예안 이씨 집성촌이 된 것은 이사종이 평택 진씨 참봉 진한평의 사위가 되어 마을로 들어온 인연이 있고나서 부터이다. 이사종의 5세손인 외암 이간은 설화산에 대해 이런 시를 남겼다. ▲ 외암마을 돌담길‘우둑 솟아 이이하고 빼어나게 하늘로 솟았으니 / 옥과 같은 정신이 울타리에 가득하네 / 견줄 바 없이 특출하여 기뻐하고 근심함에 홀 모서리가 젖는데 / 하늘과 땅이 벼락으로 씻어도 결코 흔들기 어렵다’ ‘외암’이란 마을 이름은 어디에서 유래됐을까. 조선 경종 3년(1723)에 성리학자 외암 이간(1677∼1737)이 쓴 ‘외암기’를 보면 그 이전부터 외암이 마을 이름으로 사용됐다. 조선 초기부터 외암리 서쪽에 시흥역이라는 ‘역말’(파발마를 교대하는 곳)이 있었고 외암마을은 시흥역의 말을 거두어 먹이던 곳이라 ‘오양골’이라 불렀다. 오양골의 ‘오야’에서 ‘외암’이라는 마을 이름이 유래됐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추측한다. 그러니까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였던 이간선생은 마을 이름을 자신의 호로 삼은 것이다. 외암리에는 5백여년 전에 강씨, 목씨 등이 정착했다고 하나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예안 이씨 족보와 외암기에 따르면 외암마을 주인은 평택 진씨였다. 그러다가 예안 이씨 이사종(?∼1589)이 딸만 셋인 거부 진한평의 맏사위가 되고 난 뒤부터 외암리는 예안 이씨 집성촌이 됐다. 예로부터 외암마을은 ‘3다 마을’로 불렸다. 돌이 많아서 석다(石多), 말이 많아서 언다(言多), 양반이 많아서 반다(班多)라고 했다. 현재 외암마을은 전체가 중요민속자료 제236호로 지정되어 있다. 택호를 지닌 기와집, 백성들의 숨결이 서린 초가집 등 모두가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건재고택은 영암군수를 지닌 이상익이 살던 집이라서 ‘영암군수댁’이라고도 한다. 이상익은 예안 이씨의 18세손. 외암 이간선생이 이 집터에서 출생했다. 사랑채와 문간채 사이의 넓은 사랑마당은 소나무, 향나무, 단풍나무 등이 우거진 아름다운 정원이다. 사랑채 처마 밑과 기둥에는 많은 편액과 주련이 걸려 있어서 상당히 고풍스럽다. 중요민속자료 제233호. ▲ 외암마을 건재고택(좌) - 외암마을 느티나무(우)참판댁(큰댁)은 이조참판을 지낸 퇴호 이정렬이 살던 집이다. 이사종의 11세손인 이정렬은 할머니가 고종비인 명성황후의 이모라서 명성황후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집은 이정렬이 고종황제로부터 하사받은 집이다. 중요민속자료 제195호. 이참판댁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가주인 연엽주는 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연엽주는 찹쌀로 빚은 누룩에 연의 잎, 줄기, 뿌리와 솔잎을 넣고 발효시켜 만든 술이다. 송화댁은 송화군수를 지낸 이장현의 집이라서 그같은 택호를 지녔다. 이장현은 이사종의 9세손이다. 넓은 사랑마당에는 정원이 꾸며졌는데, 자연미가 흘러 넘친다. 물길 주변에는 다양한 형태의 돌을 갖다 놓아, 산중 계곡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 외암마을 연만들기체험교수댁은 이사종의 13세손인 이용구가 성균관 교수를 지낸 사연으로 붙여진 택호. 현재는 사랑채가 없어지고 안채와 행랑채, 사당만 남아있다. 정원의 크기는 건재고택이나 송화댁보다 작다. 반석은 외암마을 입구에 있는 바위이며 ‘외암동천(巍岩洞天)’과 ‘동화수석(東華水石)’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외암동천 글씨는 예안 이씨 20세손 이용찬, 동화수석은 예안 이씨 21세손 이백선이 쓴 것이다. 이 반석 앞을 흘러가는 개천은 외암마을의 경계를 이룬다. 개천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면 마을로 들어간 것이고 다리를 건너지 않으면 마을 밖에 있는 것이다. 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가면 두 개의 정자목을 만날 수 있다. 하나는 마을 안길로 들어서 첫 번째 샛길이 갈리는 길목에 자리잡았고 다른 하나는 마을 후면의 가장자리인 개천변에 있다. 마을 안의 정자나무는 수령 6백년의 느티나무로 매년 음력 정월 14일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목신제가 이 나무에서 치러진다. 마을 후면의 정자나무는 주민들의 쉼터 노릇을 한다. ▲ 외암마을 홍보관한편 외암마을에서는 떡메치기, 두부만들기, 탁본뜨기, 솟대만들기, 연만들기 등의 체험학습을 해볼 수 있다. 농가에서는 민박이 가능하며 숙박비는 5만원(6인 이하)부터 17만원(20인 이하) 선이고, 생활관 전체를 빌려 숙박할 경우는 25만원이다. 체험문의는 041)541-0848. 외암마을 초입 물레방아 옆에는 외암민속관과 홍보관이 들어서서 마을 산책을 마친 다음 답사를 총정리하는 기분으로 들러보면 좋다. 민속관에는 상류층, 중류증, 서민층 가옥 12동이 들어서있고 주거용구류, 부엌살림류, 농기구류, 기타 소품류 등 각종 생활공예품 1천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홍보관에 들어서면 외암마을을 배경으로 진행된 각종 드라마와 영화 등의 몇몇 장면들을 감상하게 된다. ‘취화선’, ‘태극기 휘날리며’, ‘클래식’, ‘임꺽정’ 등에 외암마을이 등장한다. 설화산 동쪽 편에는 맹사성고택(맹씨행단)이 있다. 고려 말 충신이던 최영장군이 지은 건물로 그의 손자사위인 고불 맹사성의 부친 맹희도가 인수, 대대로 살아왔다. 고택은 ㄷ자형 맞배집이며 처음 지어진 연대는 14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맹씨행단은 ‘맹씨가 살고 있으며 은행나무 단이 있는 집’이라는 뜻이고 또 행단은 학문을 닦는 곳이란 말이다. ▲ 맹씨행단(좌) - 현충사 유물관(우)온양시내에서 4km 거리에 떨어져 있는 현충사는 민족의 성웅 이순신장군의 영정을 모시는 사당이다. 충무공 이순신장군은 무과에 급제할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충무공이 1598년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자 그로부터 108년이 지난 숙종 32년(1706) 이곳에 충무공의 얼을 기리기 위하여 사당을 세웠으며 1707년 숙종은 친히 ‘현충사’란 이름을 내렸다. 현충사 안으로 들어가면 사당, 구본전, 유물전시관, 옛집과 활터 등을 만난다. 온양민속박물관은 1978년 개관됐으며 우리 민족이 살아온 발자취와 민속자료들을 입체적으로 전시, 고유의 전통문화를 한 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게 했다. 시원스럽게 조성된 뜰에는 연자방아, 디딜방아, 너와집 등이 들어서있고 2만여 점의 민속자료들이 5개의 전시실에 나뉘어 전시되고 있다. ▲ 온양민속박물관 실내(좌) - 아산세계꽃식물원(우)도고면의 아산 세계 꽃식물원은 일년 내내 꽃이 피는 곳이며 월별로 다양한 꽃축제가 벌어진다. 입장객에게는 미니 꽃화분도 증정한다. 손수건과 꽃을 이용한 천연염색, 예쁜 꽃화분만들기, 압화만들기, 천연목욕비누만들기, 꽃비빔밥이나 꽃주먹밥 먹기 등도 체험해볼 수 있다. 영인면의 피나클랜드는 물, 빛, 바람을 테마로 한 휴식 공간이다. 메타세쿼이아로드, 느티나무광장, 잔디광장, 동물농장, 라일락산책로, 과수정원, 윈드밀가든, 워터가든, 수목원, 암석원, 허브가든, 피크닉장 등의 시설을 갖추었으며 정상에 오르면 아산만과 서해바다가 시원스럽게 조망된다. 인주면의 공세리성당은 1백년을 넘는 역사와 32위 순교자의 얼이 살아 숨쉬는 성지이다. 성당 건물은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제144호로 지정되어 있다. 1895년 부임한 에밀 드비즈신부는 세곡창고 터를 헐고 그 자리에 복음창고인 고딕 양식의 공세리 성당 공사를 시작했다. 1922년 10월 8일 성당 건물은 봉헌됐으며 이후 내포지방 신앙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성당 내의 박물관은 구 사제관을 개보수한 건물을 이용하고 있으며 1천5백여점의 유물을 모시고 있다. ▲ 피나클랜드의 봄(좌 / 사진제공:피나클랜드) - 아산공세리성당(우)::: 여행정보 ○ 관련 웹사이트 주소 - 아산시청 : www.asan.go.kr/tour/ - 외암민속마을 : www.oeammaul.co.kr - 현충사 : www.hcs.go.kr - 아산 세계 꽃식물원 : www.asangarden.com - 피나클랜드 : www.pinnacleland.net ○ 문의전화 - 아산시청 문화관광과 : 041)540-2565 - 외암마을 안내소 : 041)540-2110 - 현충사 : 041)539-4600 - 온양온천역 안내소 : 041)540-2517 - 아산 세계 꽃식물원 : 041)544-0746 - 피나클랜드 : 041)534-2580 - 공세리성당 : 041)533-8181 ○ 대중교통 정보 [ 기차 ] 용산역-온양온천역, 장항선 하루 16회 운행, 온양온천역 : 041)545-7788 천안아산역(고속철도) : 1544-7788 [ 버스 ] 동서울터미널, 서초동 남부터미널에서 온양행 버스 수시 운행 온양시외버스터미널 : 041)542-6848 ○ 자가운전 정보 [서울-아산] 경부고속도로 천안나들목-21번 국도-외암마을 [광주-아산] 호남고속도로-천안논산간 고속도로 남천안나들목-21번 국도-외암마을 [부산-아산] 경부고속도로 천안나들목-21번 국도-외암마을 ○ 숙박정보 - 온양관광호텔, 온천동 : 041)545-2141 - 온양그랜드호텔, 온천동 : 041)543-9711 - 온양팔레스호텔, 온천동 : 041)547-2500 - 파라다이스호텔도고, 도고면 기곡리 : 041)542-6031 - 도고로얄호텔, 도고면 기곡리 :, 041)543-5511 - 팜스프링호텔(굿스테이), 음봉면 신수리 : 041)543-0188 ○ 식당정보 - 현미쌈밥 : 모종동, 쌈밥, 041)547-7117 - 일신족탕 : 온천동, 설렁탕, 041)545-2696 - 유림분식 : 온천동, 칼국수, 041)545-4273 - 청국장집 : 온천동, 청국장, 041)533-9942 - 맷돌손순두부 : 좌부동, 두부수육보쌈, 041)549-2033 - 방수마을 : 염치읍 방현리, 한정식, 041)544-3501 ○ 축제 및 행사정보 - 아산 성웅이순신축제 : 매년 4월, 041)540-2542 - 아산 외암마을 짚풀문화제 : 매년 10월, 041)540-2404 ○ 주변 볼거리 신정호관광지, 봉곡사, 인취사, 세심사, 광덕산, 인주면 장어구이촌, 장영실묘, 김옥균묘소, 윤보선 전 대통령 생가, 강당계곡 ▶ 관련기사 ◀☞오동도 일출·백야등대, 장엄한 불멸의 빛☞해변따라 3㎞ 100여개 대게집 맛나고 눈시린 ‘게걸음 여행’☞‘영화속 주인공’ 전남 완도, 바다에 안긴 섬
  • 김수환 추기경, 그 ''낮은 삶''을 돌아보다
  • [노컷뉴스 제공]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이 16일 오후 6시 12분경 향년 87세의 나이로 선종(善終)했다.지난 2008년 10월 4일 강남 성모병원에 입원한 김 추기경은 그동안 노환으로 치료를 받아오다 이날 선종했다.김 추기경은 1922년 음력 윤5월 8일(양력 7월 2일) 대구 남산동 독실한 구교우 집안에서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조부 김보현 요한은 1868년 무진박해 때 충남 연산에서 체포돼 서울에서 순교했다. 천주교로 인해 몰락한 집안에서 유복자로 태어난 김 추기경의 부친 김영석 요셉은 옹기장수로 전전하면서 가난하게 살았다. 김 추기경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선종하자 모친인 서중하 마르티나는 옹기와 포목행상을 하며 엄격하게 아이들을 키웠다.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온 김 추기경은 5년제 소신학교(小神學敎)인 동성상업학교(지금의 동성고등학교) 을조(乙組)에 입학했다가 '황국 신민으로서 그 소감을 쓰라'는 시험 문제에 "나는 황국 신민이 아님. 따라서 소감이 없음"이라고 썼다가 교장실에 불려가 크게 야단을 맞았다. 그 길로 일본으로 유학을 다녀오라는 대구대교구장을 명령을 받고 1941년 4월 도쿄 조치(上智)대학 유학길에 오른다.2차 세계대전으로 잠시 휴학했던 김 추기경은 해방 이후인 1947년 9월 혜화동 성신대학(지금의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 복학해 마치고 1951년 9월 15일 대구 계산동성당에서 사제로 서품됐다.1966년 4월 부산교구에서 분리, 새 교구로 설립된 마산교구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됐다. 1968년 5월29일 대주교 승품된 그는 제12대 서울대교구장에 올랐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69년 4월28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하여 추기경 서임됐다. 그의 나이 47세였다. 당시 주교였던 김 추기경은 1968년 2월 9일 한국 교회에서는 처음으로 사회적 발언에 나선다. 노동자들의 인간 존엄성을 되찾기 위해 나선 것이다. 가톨릭노동청년회(JOC; Jeunesse Ouvriere Chretienne)의 총재주교였던 그는 합법적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노동자를 불법 해고한 ‘강화 심도직물 사건’에 맞서 ‘사회 정의와 노동자 권익 옹호를 위한 주교단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 발표 이후 정부가 사태 수습에 나서 6일 후 해고자들이 전원 복직되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이후로도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생존권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절규는 끊이지 않았다. 그때마다 김 추기경은 그들을 큰 품으로 끌어안았다. 김 추기경과 명동성당이 민주화의 큰 버팀목이 되는 순간이었다.김 추기경은 근대화의 과정에서 파생된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기본권과 사회 정의가 지켜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1969년 3월 교황 바오로 6세가 발표한 새 추기경 명단에 김수환 대주교의 이름이 올랐다.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 탄생한 것이다. 추기경 서임식은 1969년 4월 28일 로마 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렸다. 당시 김 추기경의 나이는 47세로, 전 세계 추기경 134명 가운데 최연소였다. 교황을 보필하고 교황 선거권과 피선출권을 갖는 고위 성직자라는, 자리의 높고 낮음을 떠나 한국 교회가 세계 교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크다는 반증이었기에 한국 천주교회 2세기만의 큰 경사였다.김수환 추기경은 이후 30년 동안 서울대교구장으로 재임하면서 두 차례에 걸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을 역임했고, 주교회의 산하 여러 분과 위원장과 전국 단체들의 총재를 맡았으며, 1975년 6월 1일부터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했다. 또 1970년에는 아시아 천주교 주교회의 구성 준비 위원장으로 선출되었으며, 1967년 이후에는 한국 대표로서 여섯 차례에 걸쳐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김수환 추기경은 1998년 5월 29일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직을 사임한다. 서울대교구장을 맡은 지 30년, 목자 생활 47년 만이었다.김수환 추기경은 선교사 없이 신앙이 전파된 한국 천주교회의 형성과 발전이 세계 천주교회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1984년 5월 6일에는 한국을 처음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과 103위 시성식을 여의도 광장에서 개최했다. 순교의 피로 전해져 내려온 한국 교회의 신앙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9년에도 한 번 더 방한해 제44차 세계 성체대회를 주례했다. 세계 성체대회를 계기로 1988년에 시작한 ‘한마음한몸운동’은 성체성사의 깊은 뜻을 삶으로 실천하자는 운동으로 지금까지 많은 결실을 맺었다. 김 추기경은 북한 교회와 동포를 항상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서울대교구의 관할 구역이 휴전선을 넘어서 황해도까지 이어진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었다. 미사 마침예식에서 주교는 오른손으로 세 번 십자표시를 하면서 신자들에게 강복하는데 김 추기경은 언제나 그 마지막 세 번째 십자표시를 마음에 품고 있는 북녘 형제들을 생각하면서 그었다고 한다. 통일에 대비하고 앞으로의 북한 선교를 위한 실질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1995년 ‘민족화해위원회’를 설립하게 된다. 같은 해 3월 7일 명동대성당에서 시작된 ‘민족화해미사’는 지금도 매주 화요일 오후 7시에 봉헌되고 있다. “이 세상 누구도 존중받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이 제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주목한 이유입니다. 그들을 위한 ‘우선적 사랑’에서 더 나아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사랑’으로 가야 합니다.”1970년대 민주화운동의 편에 선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지학순 주교가 구속되기까지 한 1974년 민청학련 사건, 1978년 동일방직노조 사건 등 김 추기경은 성탄·사순 메시지나 강연, 시국담화문 등을 통해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짚어내는 일에 앞장서기 시작했다. 70-80년대를 지나는 동안 김 추기경은 우리사회 민주화 운동의 버팀목이자 잣대였다.1987년 6·10 민주항쟁 때도 명동성당 공권력 투입이라는 일촉즉발의 위기를 그런 믿음 하나로 막았다.“성당 안으로 경찰이 들어오면 맨 앞에 내가 있을 것이고, 그 뒤에 신부들, 수녀들이 있을 것이오. 우리를 다 넘어뜨리고 난 후에야 학생들이 있을 것이오.”김수환 추기경이 종교를 넘어 이 땅의 버팀목으로 여겨지는 것은 그가 더 낮는 자리에 있는 이들을 한 없이 끌어안았기 때문이었다. [참조=김수환 추기경 홈페이지]
병목골 깊은 계곡에서 만난 순교자-수리산성지
  • 병목골 깊은 계곡에서 만난 순교자-수리산성지
  • ▲ 안양팔경 중 제1경인 망해암 일몰<사진제공:안양시청>&nbsp;[조선일보 제공] 병목골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수리산성지는 박해를 피해 신자들이 피난와 살았던 교우촌이자 최경환 성인의 유해를 모신 천주교 성지다. 김대건 신부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신부가 된 최양업 신부의 아버지이기도 한 최경환 성인은 아내 이성례와 함께 수리산 아래 담배촌에 정착해 교우촌을 이루며 천주신앙을 전파했다. 신자들이 이곳에서 담배농사를 짓고 옹기를 구워 생활했기 때문에 ‘담배촌’이라고 불렸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났을 때 최경환은 천주교 신자들이 무수히 죽임을 당하자 한양을 오가며 순교자들의 유해를 거두어 안장하고, 불안해하는 신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돌보던 중 서울에서 내려 온 포졸들에 의해 체포되었다. 배교하라는 고문과 회유 속에서도 최경환은 신앙을 고수하며 모진 형벌을 받다가 35세의 나이로 장렬히 순교하였고, 부인 이성례 역시 당고개에서 참수되고 만다.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했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최경환은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 순교자 최경환 성인의 반신상 (좌) / 성당을 겸하고 있는 최경환성인의 생가(우)순례자성당 앞에는 최경환성인의 반신상이 서 있으며, 기념관에는 최경환 성인의 생애와 담배골의 역사를 볼 수 있다. 맞은편 이성례 마리아집은 현재 식당과 피정의 집으로 사용되고 있다.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최경환 생가는 위에서 내려다 볼 때 초가가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다. 벽면은 황토벽으로 꾸며져 토속적이며 아늑하다. 생가 안 성당에서는 한꺼번에 300명의 신자가 미사를 드릴 수 있는데, 2층 다락방에 앉으면 제단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다. 제단 한 가운데는 최경환 성인의 유해(팔뼈)가 모셔져 있다. 벽면은 토굴처럼 바위가 돌출되어 있으며 촉감 좋은 마루에 앉아 조용히 기도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최경환성인 묘역 가는 길은 돌계단이 놓여 있어 산책코스로 그만이다. 가장 위쪽에는 최경환 성인의 묘소와 기념비가 서 있다. 솔숲으로 둘러싸인 야외 미사터는 조용히 사색하기에 그만이다. 골짜기의 생김새가 병목처럼 잘록하게 좁아서 ‘병목골’이라고 불리었는데 병목안 삼거리에서 수리산 계곡을 따라 성지까지 가는 길이 호젓하며, 가까이에 있는 수리산삼림욕장에 들러 머리를 식혀도 좋다. ▲ 고요한 수리산 성지에서 기도하는 모습(좌) - 솔숲으로 둘러싸인 야외미사터(우)수리산은 경기도 안양시와 시흥시, 군포시와 화성군과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500m도 안되는 나지막한 산이지만 ‘X’자 형태로 뻗은 능선을 따라 다양한 산행코스를 가지고 있는데 특히 서쪽 능선의 수암봉에 올라 내려다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수리산 산림욕장-병목탑-태을봉-수리산 성지까지 대략 2시간이 소요된다. ▲ 큼직한 옹기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1층전시관한때 옹기촌이었던 수리산 성지에서 시내 쪽으로 내려오면 돌석 김석환 선생의 50년 도예작품을 전시한 돌석도예전시관이 나온다. 여성도예가의 손길이 닿아서 그런지 작품이 아기자기하고 소탈한 것이 특징이다. 1층은 비교적 큼직한 옹기작품 90여점이 전시되어 있으며 가죽신, 버선, 소줏고리 등 아기자기한 소품 도자기가 가득하다. 옹기작품 80편이 전시된 2층은 근사한 카페로 꾸며졌다. 테라스 쪽 창가에 앉아 전통차를 음미하며 도예작품을 감상하도록 꾸며졌다. 따사로운 볕을 쬐면서 독서 할 수 있는 북카페이다. 3층은 작은 도자기가 많은데 통유리 너머로 펼쳐진 수리산 자락과 도자기의 어울림이 좋다. 야외에는 대형항아리가 전시되어 있어 작품사이를 거니는 맛이 쏠쏠하다. 도자기 장승, 도자기 초가집 등 토속적인 작품도 눈에 들어온다. 지하 도예체험관에서는 석고틀을 이용해 콜라병, 주스병 등 생활에 필요한 도자기를 만들 수 있으며, 초벌기물에 그림 그리기체험을 할 수 있다. 4인 가족을 위한 체험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다. ▲ 독일작가의 작품인 숲속의 쉼터인 리볼버(좌) - 비토 아콘치의 작품인 선으로 된 나무위의 집(우)안양예술공원은 안양유원지의 새로운 명칭이다. 80년대 들어서 시설이 낙후되고 인근에 놀이공원과 동물원이 생기면서 안양유원지는 쇠퇴의 길을 걸었다. 2003년부터 상가시설을 정비하고 상류에 저수지까지 만들어 물이 맑아졌으며, 국내저명작가는 물론 일본, 벨기에, 포르투갈 등 각 나라의 대표급 디자이너 예술작품 50여점을 설치해 놓아 명실상부한 예술 공간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 안양전망대 오르는 길처음 간 사람들은 서울근교에 이런 멋진 공간이 있음에 감탄할 정도로 분위기가 좋다. 공원 주차장부터 작품이 시작되는데 한국건축의 기본단위인 1평을 모티브로 지어진 ‘1평 타워’가 하늘 높이 솟아 있다. 계곡과 산줄기를 따라 작품이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수려한 경관 속에서 ‘각목분수’, ‘신기루’ 등 흥미로운 작품을 감상하는데 시간가는 줄 모른다. 삼성산 중턱에 있는 16.6m 높이의 ‘안양전망대’는 안양예술공원의 하이라이트다. 산속에 다시 산이 솟은 형상으로 삼성산과 안양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해질 무렵 일몰도 좋고 야경 또한 볼만하다. 단순히 눈으로 보는 작품이 아니라 작품 위에 올라가기도 하고, 작품 안으로 들어가 놀 수 있는 참여형 공간으로, 체험을 통해 작품을 이해하도록 꾸며졌다. ‘공중을 가로지르는 산책로’ 작품은 투명한 터널을 산책하면서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끔 해준다. 10명이상 단체일 경우 사전예약 시 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다.(1~3시간 소요 031-389-5550) 관악산과 삼성산으로 이어진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산행과 함께 일정을 짜면 좋다. ▲ 망해암 용화전의 석조미륵불신라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망해암은 조선 영조 때 신경준이 지은 ‘가람고’에도 기록이 있을 정도로 유서 깊은 사찰이며, 정조임금의 모친인 홍대비가 중건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중심건물인 용화전에는 석조미륵불이 모셔져 있으며 보개를 쓰고 도톰한 코와 입, 길게 늘어진 귓불을 가지고 있으며 굵은 U자형의 옷자락선이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어 조선시대의 불상의 유형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바다를 볼 수 있는 암자’라는 의미를 가진 망해암에 오르면 관악산의 기암괴석과 안양시가지가 한 눈에 펼쳐진다. 특히 해질 무렵 일몰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풍광이 빼어나 안양팔경 중에서 제 1경으로 손꼽힌다. ::: 여행정보 ○ 웹사이트 주소 - 수리산성지 홈페이지 : www.surisan.org - 안양시청 홈페이지 : www.anyang.go.kr - 돌석도예전시관 : www.dolsukmuseum.net - 안양공공예술재단 홈페이지 : http://apap.anyang.go.kr ○ 문의전화 - 수리산성지 031)449-2842 - 안양시청 문화예술과 031)892-2064 - 돌석도예전시관 031)464-7735 - 안양예술공원 031)389-5550 ○ 대중교통 정보 [기차/버스] - 1호선 안양역 하차. 버스(10, 15, 15-2, 11-3) 병목안 삼거리 하차. 산림욕장 방향으로 도보 25분. [자가운전] - 서울-1번국도-안양역 앞에서 우회전-안양예고-병목안 삼거리에서 좌측방향-수리산성지 - 경부고속도로-판교JC-서울외곽순환도로-평촌IC-안양시청방향-중앙사거리에서 좌회전-병목안 삼거리 좌측방향-수리산성지 - 과천-47번국도-인덕원-관악고-비산대교 건너 우회전(서울방향)-안양 CGV-안양예교-병목안 삼거리 좌측방향-수리산성지 ○ 숙박정보 - 호텔소그노 : 안양시 만안구 안양6동 395-1번지, 031)444-6600 - 삼원프라지관광호텔 : 안양시 만안구 안양 1동 674-251, 031)448-6671 - 블루몬테 유스호스텔 : 안양시 석수동 241-43, 031)471-8111 - 쉴모텔 : 안양시 안양 6동 504, 031)448-6084 - 카프리모텔 :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 1502, 031)422-0070 ○ 식당정보 - 은행나무집 : 오리,닭요리, 수리산성지 입구, 031)442-1915 - 오작교 : 고추장삼겹살, 수리산성지 입구, 031)466-1212 - 두미원 : 해물순두부백반, 수리산성지 입구, 031)441-4494 - 갤러리 카페 작은박물관 : 볶음요리, 안양예술공원, 031)471-2020 - 두부사랑 : 두부요리, 안양예술공원, 031)474-5712 - 정오식당 : 해물모듬찌개, 남부시장, 031)449-9334 - 오성갈비 : 돼지갈비, 인덕원사거리, 031)421-9292 ○ 이색체험 정보 - 돌석도예전시관: 도자기 만들기 체험 031)464-7735 www.dolsukmuseum.net &nbsp;○ 주변 볼거리 안양사, 삼막사, 삼막천만안교, 병목안산림욕장, 평촌중앙공원 ▶ 관련기사 ◀☞"한겨울을 나는 역동적 여행"☞[목포] 수퍼 버스를 소개합니다☞[춘천] 수퍼 버스를 소개합니다
(정장진의 Tour & Culture)다보탑, 실내에 들여놓아야
  • (정장진의 Tour & Culture)다보탑, 실내에 들여놓아야
  • [이데일리 정장진 칼럼니스트] 경주 불국사에 있는 다보탑이 해체 수리 작업에 들어갔다. 8세기경에 세워진 다보탑은 그동안 풍화와 누수로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는 진단을 오래 전에 받았고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붕괴 위험이 있기 때문에, 지난 12월 10일 마침내 전면 수리에 돌입한 것이다. ▲ 다보탑83년 만에 다시 수리를 받게 된 다보탑은 국보이기 이전에 수많은 한국인들의 뇌리에는 수학여행과 관련된 추억의 명소다. 교복을 입은 채 친구들과 함께 다보탑 앞에서 포즈를 취한 사진을 누구나 몇 장씩 앨범에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nbsp;또 다보탑 하면 으레 석가탑이 떠오를 정도로 석가탑과 함께 초등학교 교과서는 물론이고 관광엽서에도 단골로 등장하는 국보 중의 국보다. (지금도 그런가?) 다보탑이 화려하고 여성적인 탑이라면 석가탑은 남성적인 탑이라고 말씀을 해주시던 초등학교 선생님의 설명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당시 그 설명이 얼마나 멋지게 들렸던지…… 수리 작업을 하시는 분들께 박수를 마치 환자처럼 초음파로 곳곳을 진단하고, 한 조각을 떼어 내기 위해 나흘 넘게 준비를 한 다음, 떼어 낸 조각은 랩으로 싸고 그것도 모자라 혹시 있을지 모르는 파손에 대비해 압박붕대로 감싸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한다. 작업에 임하는 분들의 전문지식도 놀랍지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눈 앞에 선하다. 멀리서라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또 이렇게 떼어 낸 각 부위를 다시 원형대로 복원하기 위해서는 컴퓨터로 정밀하게 실측도를 작성해서 역순으로 재조립해야 한다고 한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경주석탑보수정비 사업단에 따르면 해체할 부위가 사각 난간만 35개, 팔각 난간이 16개, 상륜부가 9개라고 한다. 이 초음파 진단은 석재로 된 부분과 시멘트 모르타르로 된 부분을 구분하기 위한 핵심 과정이다. 1972년 다보탑의 난간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난간을 구성하는 부위 사이의 이음매를 모르타르로 채웠기 때문에 이를 제거해야 난간을 해체할 수 있다고 한다. 모르타르를 접착제로 사용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인데, 모르타르가 어디까지인지 확인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제거하다가는 국보를 망칠 수도 있어서 사업단원들은 한층 긴장하고 있다고 한다. 건축문화재 연구실장의 말에 따르면 “팔각 난간, 상륜부 등 해체 대상 부재는 다보탑 조형미의 핵심 중 하나이기 때문에 원 상태로 조립하는 게 가장 어렵다”고 한다. 이를 위해 “원 위치에 갖다 놓으면서 조형미를 되살리는 데는 3차원 스캐너를 통해 얻은 정밀실측 자료를 사용한다”고 한다. 다보탑, 실내로 들어올 때도 된 것 같은데…… 1300년의 풍상이면 그동안 잘도 견딘 셈이다. 서구의 장식 조각들처럼 석회암이나 대리석이 아닌 경도가 센 화강암이어서 천년을 넘게 견디었을 것이다. 물론 그동안 불자들의 기도와 무사함을 빌며 탑돌이를 한 정성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크게 한몫 했을 것이다. 하지만 노심초사하며 정성을 기울여 작업에 임하는 건축문화재 연구실 분들의 노고를 덜어드리는 의미에서도 다보탑은 이제 실내에 들여놓아야 하지 않을까. ▲ 다보답 세부천년 세월 앞에서는 화강암도 견디기 어렵다. 더 이상 풍화와 누수에 손상되지 않도록 원본을 실내에 들여놓을 때가 된 것 같다. &nbsp;물론 그 자리에는 원형을 그대로 복제한 레플리카가 들어서야 할 것이다. 3차원 스캐너를 통한 정밀실측도를 바탕으로 복제품을 만드는 작업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숭례문에서 보았듯, 한국의 문화재들은 목조가 많아 화재에 취약하다. 또한 석재로 만든 것이라 해도 다보탑처럼 노지에 자리잡고 있어서 비바람은 물론이고 심한 기후 변화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nbsp;게다가 공해도 무시 못할 훼손 요인 중 하나다. 논의를 거쳐 레플리카를 대신 세우고 원본은 실내로 들여놓아야 할 때인 것 같다. 박물관에 들어온 노트르담의 <왕들>과 마를르 <기마상>들 파리에 가면 누구나 노트르담 성당에 들르게 된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과 영화, 뮤지컬 등으로 유명한 성당이고 무엇보다 프랑스 역사 교과서라고 할 정도로 온갖 사건들이 일어난 곳이다. 성당 앞 광장에는 프랑스의 모든 도로가 시작되는 기점인 제로 포인트가 상징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동판으로 표시를 해 놓았는데, 이 기점을 밟으면 파리에 또 올 수 있다고 해서 움푹 패여 있다. ▲ 쿨뤼니 중세 박물관에 있는 노트르담 석상 조각들▲ 노트르담 성당의 유대왕 석상들노트르담 성당을 보면 한군데도 빼놓지 않고 성당의 벽이 구약과 신약을 나타낸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맹이었고 양피지에 쓴 고가의 성경책을 구입할 수도 없었던 중세에, 성당이 성경책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 전면에 자리잡고 있는 세 개의 문 위에는 수많은 조각들이 모두 왕관을 쓴 채로 길게 도열해 있다. &nbsp;이 석상들은 구약의 열왕기에 나오는 유대 왕들인데,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을 때 민중들이 프랑스 왕들인 줄 알고 끌어내려 부숴버린 것을 복원해 놓은 것들이다. 당시 한 이름 없는 사람이 폭도들이 갖다 버린 석상 조각들을 모아서 땅에 묻어놓았는데, 1970년대에 발견되어 현재는 소르본느 대학 인근에 있는 클뤼니 중세 박물관에 갖다 놓았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는 그런 때였다. 나폴레옹이 노트르담에서 대관식을 할 때도 다 허물어진 성당을 가리기 위해 임시로 그림을 그려놓고 식을 거행해야만 했다. 이후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계기로 노트르담 성당을 복원하게 되었고 당시 문화재 청장으로 일하던 소설가 메리메와 고딕 복원 전문가인 비올레 르 뒤크 등이 앞장서서 복원 작업을 했다. 다보탑은 프랑스 대혁명 같은 사건으로 파손되지는 않았다. 일본 놈들이 가져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고 6.25도 잘 견디어 냈다. 그러나 이제 풍상과 공해라는 또 다른 적을 만났으니 보존을 위해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nbsp;▲ 루브르에 있는 마들리 기마상 원본파리에서도 콩코드 광장에서 샹젤리제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던 마를리 궁의 기마상들을 루브르로 들여다 놓았다.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원작이 손상될 것을 우려해서다. 어쩌면 파리 문화재 당국에서는 누군가 팔아 치우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지도 모른다. 20세기 초, 한 미국인이 파리로 여행을 왔다. 이 미국인은 마를리 기마상에 홀딱 반했고, 이를 눈치 챈 한 프랑스 사기꾼이 마를리 기마상을 팔겠다고 접근 해왔다. 돈까지 다 지불한 미국인은 다음날 일꾼들을 데리고 다시 와서 사다리를 놓고 기마상 위로 막 올라가려던 참이었다. &nbsp;말을 탄 기마경찰이 달려왔고 그때서야 프랑스인에게 속은 것을 안 미국인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개 신세가 된 자신을 깨달아야만 했다.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지하 층에서 400년 가까이 된 마를리 기마상들을 볼 수 있다. 이런 예는 카르포의 유명한 조각 <춤>에서도 볼 수 있다. 파리 오페라 하우스의 장식 조각이었던 <춤>은 이젠 오르세 박물관 안에 들어와 있다. 워낙 빼어난 작품이어서 실내로 들여다 놓은 것인데, 원래 조각이 있던 곳에는 원작을 그대로 재현한 모각 작품이 들어가 있다. &nbsp;원작을 보존하려는 의도도 작용했지만, 카르포의 <춤> 역시 19세기 말에 휘장을 걷는 날 밤, 한 가톨릭 신자가 걸레에 잉크를 잔뜩 묻혀 조각을 검게 칠한 사건이 일어났었다. 이유는 벌거벗은 남녀를 조각했다는 것이었다. 파리를 비롯한 유럽에서 유난히 옛 조각들을 실내로 들여다 놓고 보존하는 데에는 김선달 같은 사기꾼이나 광신도들 혹은 풍화로부터 보존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비둘기 똥 때문이다. 19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퇴비로 썼던 비둘기 똥이지만 이젠 유럽이나 미국의 대도시에서는 큰 골칫거리가 되어버렸다. ▲ 조각상 위의 비둘기들그렇다고 평화의 상징이자 성령을 나타내는 비둘기를 마구 죽일 수도 없다. 또 동물보호협회에서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엽사를 고용하고 독극물을 타서 먹여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파리에서는 지상에 있는 전철 역사 같은 곳에는 뾰족한 바늘을 꽂아서 아예 비둘기들이 앉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차 위에 떨어진 비둘기 똥은 여간 해서는 잘 지워지지가 않아 정말 골칫거리다. 경천사지 석탑도 들여다 놓았다 ▲ 경천사십층석탑국보86호다보탑을 서울 중앙박물관에 갖다 놓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경주에 있어야 할 것이다. 마음이 넓은 경상도 사람들이 서울에 양보를 할 수도 있겠지만, 다보탑이나 경주 출토 문화재들은 고향에 있는 것이 좋겠다. 어쨌든 경천사지 석탑도 실내에 들어온 전례가 있으니, 어떻게 해서든 다보탑을 이번 기회에 실내에 들여다 놓는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해 봐야 하지 않나 싶다. &nbsp;다보탑만이 아니라 석탑이든 석물이든 보존 가치가 있는 유물들은 이제 실내로 들여다 놓아야 할 것이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처럼 피어리어드 룸, 즉 시대실을 별도로 꾸며서 통째로 옮기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그리고 중앙박물관이나 기타 적당한 장소에는 불국사를 통째로 다시 짓는 것이다. 연못 위에 떠 있는 불국사는 볼 만한 장관이 될 것이다. 파리 퐁피두 센터 인근에 있는 레지노쌍 분수는 분수를 장식하던 장 구종의 조각을 루브르박물관으로 들여다 놓은 후 옛 분수를 원형대로 복원해 놓았다. 포스트모던 건축의 효시인 퐁피두 센터 곁에 자리한 레지노쌍 분수는 500년 세월을 건너뛰어 파리가 옛 것과 새 것을 조화시켜 나가는 도시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복원이 능사인 것만은 아니다. 다보탑은 이제 실내에 들어와 불국사의 석탑이 아니라 한국의 국보로서 제대로 대접을 받아야 할 때가 된 것이다. &nbsp;여행·문화·예술 포탈 레 바캉스(www.lesvacances.co.kr) 대표 정장진
2008.12.22 I 정장진 기자
(정장진의 Tour & Culture)겨울의 빛, 루미나리아 Luminaria
  • (정장진의 Tour & Culture)겨울의 빛, 루미나리아 Luminaria
  • [이데일리 정장진 칼럼니스트] 이제 12월이다. 늦더위에 가을 가뭄까지 들더니 어느덧 비도 오고 바람도 제법 차가워졌다. 군밤 장수, 오뎅과 떡볶이 장수들도 제철을 만나 삼삼오오 찾아오는 손님들로 붐빈다.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 거리엔 벌써 연말연시 분위기를 내는 화려한 네온들이 불을 밝히고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경기만 좋았다면 사실 한 번쯤 흥청댈 수도 있는 계절이다. 충동 구매도 좀 하고 선물도 많이 사고 연락이 온 여기저기 모임도 다 참석하고…… 화려한 불빛들 중에서도 크리스마스 트리는 단연 백미다. 단순히 아름답고 화려한 장식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종교적 의미보다도, 교회나 성당에 다니지 않는 이들에게도 크리스마스 트리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혹은 캐롤 같은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촉매제 역할을 한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던 추억이 있을 수도 있고 동생하고 선물을 놓고 다투다 추운 마루에 나가 손들고 벌을 서던 기억이 떠오를 수도 있으며, 산타 할아버지가 정말 있는지 보겠다며 밤을 새다가 그만 잠들어버린 추억도 떠오를 것이다. 해가 바뀌는 계절이고 한 해를 되돌아 보는 계절이라 크리스마스가 유난히 기억에 남는 지도 모른다. ▲ 서울 루미나리아서울에도 겨울이 되면 몇 년 전부터 ‘루미나리아’라는 낯선 이름의 빛의 축제가 열리고 있다. 몇 년째 계속되다 보니 이젠 루미나리아가 연말 행사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불빛 축제로 고쳐서 부르자는 제안을 받아들여 불빛 축제로 불렀으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외국에서 들어온 축제이니 외국 이야기를 할 때는 꼭 그럴 필요까지 있나 싶기도 하다.&nbsp;▲ 파리 오페라가 일대 백화점의 루미나리아▲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루미나리아서울만이 아니라 아시아, 유럽, 미국 등의 연말연시도 화려하고 추억이 깃든 계절이다. 연말연시에 관광 목적이든 사업 때문이든 외국 여행을 하게 되면 대부분의 도시에서 루미나리아를 만나게 된다. 성당의 빛, 거리의 빛 동양에서도 빛은 지혜와 자비를 상징한다. 허망을 버리고 참 깨달음을 강조하는 불교에서도 빛은 큰 의미를 지닌 상징이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에서도 빛은 사랑과 지혜를 상징한다. 거리마다 장식된 루미나리아는 물론 상업적 성격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화려한 겉모습 뒤에 상술이 숨어있는 것이다.&nbsp;&nbsp;▲ 불을 환히 밝힌 오스트리아 빈의 성 슈테판 대성당빨간 산타클로스도 사실은 유명한 탄산음료 회사에서 만들어낸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 산타클로스라는 말 자체가 세인트 니콜라스를 미국식으로 줄여서 편하게 부르다 만들어진 말이다. 디즈니 등의 만화영화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 미국식 성탄절을 퍼뜨린 장본인이다. ▲ 파리 생 세부륑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루미나리아는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에서 시작된 빛의 축제다. 물론 요즈음은 성당 외부에까지 조명을 켜놓아 성당은 이제 바깥쪽까지 모두 빛에 감싸여있다. 외국에서 오는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한 정책 탓에 생긴 현상이다. 아름다운 조명을 받은 성당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는 성당 내부는 텅 비어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문화재로 등록된 성당이나 교회 이외에는 민간인에게 팔려나가 디스코텍이 되거나 창고로 쓰이기도 하는 것이 요즈음이다. 어쨌든 서울, 파리, 뉴욕, 로마, 빈, 런던, 홍콩을 가리지 않고 12월의 도시들에서는 루미나리아, 불빛 축제가 벌어진다. 그리고 이 축제는 “하나, 둘, 셋” 카운트다운을 하며 새해를 맞는 지점까지 그 화려함으로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모네가 그린 빛 ▲ 모네의 <루앙성당연작>성당 안의 빛이 거리로 나왔다. 이 빛은 그러므로 가능한 한 성스러운 빛이 될 필요가 있는지도 모른다. &nbsp;인상주의 화가 모네가 루앙 성당 연작을 그렸을 때 파악해보려고 달려들었던 빛이 이 성스러운 빛이었을 것이다. &nbsp;19세기 말, 이미 누구도 성당을 예전처럼 진지하게 찾지 않던 시절, 모네는 석회석으로 지은 거무튀튀하게 변한 성당을 찾아가 아침에서 저녁까지 햇빛의 양과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성당 모습을 수십 장 그렸다.&nbsp;&nbsp;마음에 안 드는 것은 부숴버리면서 오래 작업을 한 끝에 완성된 모네의 성당 연작은 범상치 않다. &nbsp;성당이 무너져 그 밑에 깔리는 악몽을 꾸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던 이 집념은 빛이라는 것이 성당 안이나 밖이 아니라 정신 속에 있다는 사실을 일러준다.빛은 역설적이게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오직 그리움의 대상으로만 존재한다. 모네가 연작을 그린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움과 갈구의 대상인 이 빛에 비하면 루미나리아의 빛은 너무 가볍고 사납기까지 하다. 가장 화려하다고 자랑하는 루미나리아, 더 이상 나 이외의 빛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기도 하고 지나치게 화려해 쉽게 질리기도 한다. 누구도 루미나리아 앞에서 성당이 무너지는 악몽을 꾸지는 않는다. 성당 밖으로 나오자 빛은 어둠을 밝히는 빛이 아니라 도시의 조명시설이나 상업적 장식이 되어버렸다. 적어도 루미나리아의 기원만이라도 알고 화려함을 즐겨야 되지 않나 싶다. 특히 청계천 루미나리아나 세종문화회관 앞의 루미나리아는 무언가 허전하다. 몇 년 동안 계속 봐왔지만 전체적인 디자인이나 조명 방식 등이 파리 같은 도시의 것을 거의 그대로 모방했다는 느낌을 준다. 또 어딘지 비잔틴 냄새도 조금 나는데, 한 마디로 국적이 없는 불빛 축제가 아닌가 싶은 것이다. 실제로 나란히 놓고 비교를 해보면 거의 똑같다. 기독교 축제인데 불교 분위기를 낼 수도 없고, 여러 고민이 적지는 않겠지만, 차츰 창조적인 서울만의 독특한 빛이 나왔으면 싶다. 기억에 남는 런던 트라팔가 광장의 성탄 트리&nbsp;▲ 런던 트라팔가 광장의 트리런던에서 겨울을 보낸 경험이 있는 이들은 트라팔가 광장의 분수 옆에 세워진 성탄 트리를 기억할 것이다. 2차 대전 당시 도움을 준 영국에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노르웨이에서 매년 전나무를 하나 선물해서 세워지는 성탄 트리다. 추운 겨울, 인근 펍에서 한 잔 하고 지나치다가 차가운 물방울을 맞으며 이 성탄 트리를 보면서, 지나치게 화려하지도 않고 또 초라하지도 않은 적당한 모습에 잠시 서서 눈길을 보낸 기억이 새롭다. 그 앞의 국립 미술관이나 성당도 함께 어울려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 낸다. 화려하기만 한 파리의 샹젤리제나 오페라가 일대의 백화점 거리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다. 여행·문화·예술 포탈 레 바캉스(www.lesvacances.co.kr) 대표 정장진
2008.12.01 I 정장진 기자
(정장진의 Tour & Culture)박물관, 모여 있어야 힘을 쓴다.
  • (정장진의 Tour & Culture)박물관, 모여 있어야 힘을 쓴다.
  • [이데일리 정장진 칼럼니스트] 해외 여행에서 박물관은 필수 코스 중 하나다. 특히 유럽과 미국으로 떠나는 단체 여행 일정을 보면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 박물관 관람 일정이 꼭 들어있게 마련이다. 박물관 말고 또 하나 필수 코스가 있다면 조금 지겹다 싶을 정도로 일정에 들어가 있는 성당이다. &nbsp;▲ 파리 루브르 박물관한 가지 놀라운 것은, 몇 달을 봐도 모자랄 파리 루브르나 뉴욕 메트로폴리탄 같은 대형 박물관을 한 두 시간에 끝내는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정신이다. 단체 여행객의 경우, 루브르 같은 곳은 현지에서 정식 가이드 허가증을 받지 않은 가이드는 내부에서 코멘트를 할 수 없도록 되어있어서, 여행사를 잘못 선택하면 간단한 종이 한두 장으로 때우다시피 한다. 한 시간에 보는 루브르, 일정이 빡빡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긴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기가 막힌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주변에 많은데 대형 종합 박물관만 본다는 점이다. 비교적 젊은 개별여행자들은, 하루 정도 시간을 낸다면 어느 박물관과 미술관을 가면 좋겠느냐는 메일을 보내오곤 한다. 이런 이들에게 유럽과 미국의 박물관을 소개하는 일은 정말 신나는 일인데, 다름 아니라 유명한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대부분 서로 가까운 거리에 모여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별도로 안내를 할 필요가 없다. &nbsp;뉴욕은 센트럴 파크에 가서 메트로폴리탄을 보고 인근에 있는 현대 미술관인 모마MoMA, 구겐하임, 프릭 컬렉션을 보면 된다. 아이들을 데리고 간 젊은 부부라면 센트럴 파크를 건너 자연사 박물관에 가서 쥬라기 공룡들을 볼 수도 있다. 별도의 안내가 필요 없을 정도로 이 박물관들은 가까운 거리에 모여있다. &nbsp;▲ 파리 퐁피두 센타▲ 베를린 박물관섬의 페르가몬 박물관파리나 베를린, 오스트리아 빈과 스페인 마드리드 또 암스테르담도 마찬가지다. 베를린 같은 경우는 아예 박물관섬으로 불리는 곳에 마치 하나의 세트처럼 여러 박물관들이 다 모여있다. 파리의 인상주의 박물관인 오르세는 루브르와 센느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고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등 현대 미술품들이 소장되어있는 퐁피두는 루브르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다. 자연히 안내가 필요 없다. 박물관 정보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그래서 길 안내보다는 어떤 작품을 꼭 봐야 하는지, 그리고 그 작품이 왜 중요한 지 등 조금은 어려울 수도 있는 미학적 설명을 보내고 홈페이지를 참고하며 출력해 가도록 안내를 해주곤 한다. 뚝뚝 떨어져 있는 서울의 박물관들 한국 중앙박물관이 몇 년 전 오랜 논란 끝에 마침내 용산에 둥지를 틀었다. 프랑스 친구가 서울에 왔을 때 경복궁에 임시로 마련된 옛 국립박물관에 데리고 간 적이 있는데, 조금 창피했던 기억이 난다. 용산 중앙박물관은 건물이나 주위 경관 모두 훌륭하다. 물론 안의 소장품은 아직 양이나 질에 있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지만. 용산의 중앙박물관이 안고 있는 진정한 문제는 사실 이것이 아니다. 덩그러니 홀로 있는 고미술 박물관의 이 지독한 고독, 즉 고립된 위치가 문제다. 고미술품들을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의 근현대 미술과 함께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연결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루브르, 오르세, 퐁피두로 이어지는 뮤지엄 트라이앵글과 베를린의 박물관섬 그리고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을 중심으로 형성된 뮤지엄벨트는 너무나 부러운 곳들이다. 대부분의 서구 대도시에서는 ‘뮤지엄 패스’ 같은 카드를 만들어 일일이 별도의 입장권을 사지 않고 한번에 모든 박물관에 입장할 수 있도록 마케팅을 하고 있다. 박물관들이 가까운 곳에 모여있기 때문에 가능한 아이디어다. 외국의 사례를 들어 비교를 하는 일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며 합리적인 사고가 아닐 수도 있다. 또 한국의 문화 전반이 그렇지만, 고미술과 근현대 미술의 접점이나 연결 고리가 서구 미술사에서처럼 일관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의 문화사적 단절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단절이 피치 못할 역사적 산물이든 아니든 그것마저 우리의 유산의 일부일 것이며 따라서 이에 대한 전시와 조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산 속의 현대 미술관? 한국 현대 미술관은 멀리 과천에 떨어져 있다. 그것도 경마장과 서울대공원 곁, 한적한 산 속에 자리잡고 있다. 승용차가 아니면 가기 쉽지 않고, 남태령을 넘을 때면 교통체증도 각오해야 한다. 물론 어렵사리 도착하고 나면 새소리도 들리고, 공기도 맑고 볼거리도 많다. 기획전도 규모 있는 전시회가 자주 열린다. 학예사들의 수고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러나 찾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더 좋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는 분명 대중문화시설로서는 결코 칭찬받을 만한 요소는 아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영화관이나 쇼핑몰로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미술을 좋아하는 일부 사람들을 위한 시설이 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과천 현대 미술관은 극히 적은 일부의 사람들을 위한 미술관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때론 미술관 직원을 위한 시설 아닌가 하는 생각도 스쳐 지나가곤 한다. 만일 한국을 대표하는 과천 현대 미술관이 뉴욕이나 파리처럼 시청 앞이나 광화문 네거리 같은 곳에 있다면 어떨까? 오다가다 누구나 한 번씩 들르고, 그러다 어느 날 멋진 전시회가 열리면 가족들과 함께 찾기도 할 것이다. 이런 장소가 덕수궁 옆에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덕수궁 안에도 비록 대관 위주로 운영을 하지만 분관이 있기도 하다. 또 조금만 내려가면 로댕 갤러리도 있다. 하지만 로댕 갤러리를 제외하면 이곳들은 상설 미술관이 아니다. 또 그 위치로 볼 때 용산 중앙박물관과 하나로 묶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지도 않다. 로댕 갤러리는 어떤 이유에선지 걸음이 잘 내키질 않는다. 하지만 진정 심각한 문제는 그래도 서울의 대표적인 산책골목이라고 하는 인사동이나 인근의 한옥 마을 그리고 종묘, 비원, 경복궁 등이 용산 중앙박물관과는 물론이고 시청 앞 시립미술관과 로댕 갤러리와도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서 연결은 도로와 같은 도시설계의 인프라를 뜻하지 않는다. 한국의 현대미술과 고미술이 분리되지 않고 함께 전시되고 함께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거리와 거리, 박물관과 박물관들이 조금 더 미학적인 거리를 좁힐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운보의 산수화와 성화 등을 용산에 갖다 놓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옛 산수화 곁에 말이다. 베를린, 파리, 뉴욕의 박물관 벨트들 유럽과 미국의 대도시에서 박물관들을 가까운 거리에 모아놓은 이유는 뭘까? 그것도 소장된 유물들이 서로 다른 박물관들을. 파리를 잠깐 보자. 루브르, 오르세, 퐁피두 세 박물관을 한 구역에 모아놓음으로써 예술이 발전해 온 전체적인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세 박물관을 가까운 거리에 모아 놓은 이유를 예술이 발전해 온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이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예술이 발전해 온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말은 거짓에 가깝다. 우선 예술은 그렇게 존재하질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술도 과학처럼 발전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예술은 변화하기는 하지만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 뒤샹의 <샘>예를 들면, 퐁피두에 있는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품인 <샘>은 화장실에 있는 남자소변기에 지나지 않는다. &nbsp;몇 년 전에 한 노인이 망치로 부셔버리는 소란을 피우기도 했던 작품인데, 시가로 약 40억 원 정도 나가는 작품이라고 한다. &nbsp;남자 소변기인 이 <샘>을 보면 예술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먼 선사시대로 되돌아가는 것만 같다. &nbsp;또 퐁피두에 있는 탱글리 분수도 거의 폐품 수준의 물건들을 모아 피댓줄로 돌리고 있고 부인인 니키 드 생팔이 만들어 빙빙 도는 원반 위에 올려 놓은 인형이나 오브제들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서툰 솜씨로 그린 것 같은 야릇한 것들이다. &nbsp;이른바 정크아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몇 년 전 과천 현대 미술관에서 니키 드 생팔의 초대형 전시회가 열렸는데, 과연 서울시민들 중 몇 명이나 이 전시회를 보았는지 궁금하다.) &nbsp;▲ 퐁피두의 탱글리 분수뒤샹의 남자 소변기로 만든 <샘>이나 탱글리 분수 같은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미술은 퇴보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모든 것이 눈코 뜰 새 없이 발전하는 요즈음 퇴보가 오히려 발전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루브르, 오르세, 퐁피두로 이어지는 박물관 삼각지대가 예술의 발전 양상을 보여주는 곳은 아닌 것이다. 줄여서 메트로 불리는 뉴욕 메트로폴리탄도 마찬가지이다. 최근에 메트에서는 유명한 만화와 SF 영화들의 주인공들이 입고 다니는 의상을 중심으로 한 패션쇼가 열린 적이 있었다. &nbsp;예를 들면, “스파이더맨 속옷”, “배트맨 망토”, “슈퍼맨 티셔츠” 등이 그것이다. 거미줄 모양의 여성 속옷은 엽기적이지만 그런대로 참신하다. 고대 이집트 유물과 동양의 불상을 함께 볼 수 있고 인상주의 회화에서 팝아트까지 소장하고 있는 뉴욕 메트에서 이러한 대중적 캐릭터들이 입던 옷들을 주제로 패션쇼를 한 것이다. 용산 중앙박물관에서 한국의 만화전이나 게임산업의 캐릭터들을 대상으로 기획전을 할 수 있을까? 비보이들이 풍물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는 공연이 중앙박물관에서 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의 눈부시게 발전한 게임산업이나 비보이들은 그 뿌리를 어디에 두고 있을까? 이런 의문은 아예 불가능하다. 한국의 전통 문양이나 산수화 혹은 십장생을 이용한 게임은 없을까? 미술과 건축을 이해하는 학습용 게임도 나올 법한 일이다. 모여 있어야 아이디어가 나오고 산업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 &nbsp;▲ <미륵반가사유상>, <생각하는 사람>, <다다익선>, <경천사지 십층석탑>그러나 무엇보다 예술의 원동력인 상상력과 감동을 위해서 박물관들은 모여있어야 한다. <미륵반가사유상>과 <생각하는 사람>을 함께 보아야 하고, 1,003대의 모니터를 쌓아 올린 백남준의 <다다익선>, 그리고 그와 비슷하게 생긴 중앙박물관의 <경천사지 십층석탑>도 동시에 보아야 한다. 과천에 있는 현대 미술관을 서울시청 자리로 옮기면 어떨까? 엉뚱한 생각이고, 행정과 공무원 세계를 모르는 이야기라고? 잘 아는 이들에게 박물관 행정을 맡겼더니, 모여있어야 할 박물관들을 뚝뚝 떨어뜨려 놓았다. 무식한 사람 이야기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입만 열면 지식 산업, 문화 산업, 자원빈국의 인재 육성, 관광산업 활성화를 외치는 정치가들에게 박물관을 맡길 수 없는 이유는, 절간처럼 산 속에 있는 국립 현대 미술관이 잘 일러준다. 한국의 국립 현대 미술관은 거의 산사 수준의 적막함에 감싸여 있다. 공장건물처럼 생긴 퐁피두 센터는 말 그대로 문화 예술을 생산해 내는 미술 공장이다. 퐁피두 센터는 가장 번잡한 파리 한복판, 지하철이 7개 노선이나 겹쳐 지나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교통 운운하는 핑계는 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새소리, 풍경 소리 들리고, 진한 낙엽 냄새 폴폴 나는 산 속의 현대 미술관…… 기가 막힌 궁합이다. 여행·문화·예술 포탈 레 바캉스(www.lesvacances.co.kr) 대표 정장진
2008.11.06 I 정장진 기자
(정장진의 Tour & Culture)<반가사유상>의 미소만 오묘할까?
  • (정장진의 Tour & Culture)<반가사유상>의 미소만 오묘할까?
  • [이데일리 정장진 칼럼니스트]&nbsp; '벨기에 한국페스티벌'의 “부처의 미소”전 IMF 위기 못지않은 어려운 시대 탓인지, 지난 10월 초,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한국문화 페스티벌에 대한 기사는 상당히 의미 있는 전시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읽은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다. 10월 9일 시작된 이번 한국문화페스티벌은 벨기에 브뤼셀 한복판의 종합예술기관인 보자르(BOZAR) 예술센터에서 열렸다. (불어를 사용하는 벨기에서 미술을 뜻하는 말은 BOZAR가 아니라 Beaux-Arts이지만, 특별히 같은 발음이 나는 말로 신조어를 만들어 문화센터를 지칭하고 있다.) &nbsp;정문 옆에 현대자동차 '싼타페'와 유럽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기아자동차 '시드'의 새 모델이 전시되기도 해 문화 마케팅에도 일조를 했다. 현관에선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어린이들이 청사초롱을 들고 입장객에게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며 입장객들을 맞았다. '벨기에 한국페스티벌'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한 인파가 꼬리를 물고 들어섰으며, 대형 포스터에는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은은한 미소로 그들을 맞았다. ▲ 백남준의 대형 비디오아트 작품 〈백팔번뇌〉이번 전시회에는 국보 83호인 과 보물 338호 신라 금령총금관도 가고 백남준의 대형 비디오아트 작품 〈백팔번뇌〉도 전시되었으며, 정면 계단 위에 석굴암 본존불의 거대한 복제품이 놓이는 등 색다른 전시를 보여주었다. 벨기에 정부가 30억, 한국이 20억 정도를 부담해 총 50억 원 규모의 비용이 들어간 이번 전시회에서는 특히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전시된 “부처의 미소”전이 인기를 끌었다. “부처의 미소”전은 이번 페스티벌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다. 벨기에인들에게 생소한 한국불교가 국보와 보물급 불상, 불화를 통해 오랜 전통을 드러낸 것이다.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번에 마련한 ’부처의 미소’전은 한국 불교미술의 걸작 중 걸작만 모았다”면서 “이 가운데 국보 83호 미륵반가사유상은 불교문화가 한반도에서 시작된 지 2세기 만에 성취한 놀라운 걸작으로, 독립적인 예배 대상으로 반가사유상이 제작된 곳은 한반도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무엇보다 한쪽 다리를 무릎에 올리고 한쪽 손에 얼굴을 기대어 사유하는 자세를 자연스럽게 구현한 금동반가사유상은 당시 금속주조기술과 인체조형미학의 정점을 대표한다”고 덧붙였다. 최 관장은 “세계에 알려진 한국은 전쟁의 폐허 위에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 스포츠 강국 등의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면서 “그러나 한국은 반만년의 오랜 역사를 이어온 유서 깊은 문화를 가진 나라이며, 한자문화권이면서도 중국이나 일본과 다른 독특한 정신문화와 물질문화를 일궈왔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벨기에 “부처의 미소”전 유감 하지만 다양한 볼거리가 제공되고 많은 예산이 투입되고 또 전시기간도 긴 이번 전시회가 흔히 말하듯 2% 부족한 전시회가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든다. 박물관장이 한 말들, 이를테면 “한국은 전쟁의 폐허 위에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 스포츠 강국 등의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국은 반만년의 오랜 역사를 이어온 유서 깊은 문화를 가진 나라이며, 한자문화권이면서도 중국이나 일본과 다른 독특한 정신문화와 물질문화를 일궈왔다”는 등의 말은 식상한 외교적 발언이지만, 개막식 연설이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체 전시회의 미학적, 학술적 의미를 묶어줄 핵심 주제가 없는 것이 우선 눈에 띈다. 쉽게 말해 이번 전시회도 여러 유물들을 복잡하게 갖고 나갔고, 또 음악도 공연되고 문학가들도 갔지만 핵심이 없는 것이다. 한국 불교문화 전시회라고? 하지만, 왜 벨기에인들에게 한국 불교문화를 소개해야 할까, 그리고 그 방법은 무엇이어야 할까? 이런 고민의 흔적이 이번 전시회에 없는 것이다. 이런 고민이 없었기 때문에 백화점식 전시회가 되고 말았다. 불교문화를 전시하기 위해서는, ‘종교와 미술’이라는 더 큰 주제로 올라가야 한다. 종교와 미술이라는 전체 주제 하에서 ‘불교와 미술’을 다루고, 다시 그 밑에서 ‘부처와 미소’를 다루어야 했던 것이다. 텅빈 성당들이 매물로 나와 급기야는 뮤직홀로 개조가 되기도 하는 종교 무관심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의 유럽에서 불교미술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없다. 학술적 접근이 없이 백화점식 전시를 기획했기 때문에 벌어진 가장 안타까운 현상은 다름 아니라, 최광식 박물관장을 비롯해 많은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미륵반가사유상의 오묘한 미소”라는 인식이다. 진정으로 의미 있는 전시회를 기획했다면, 비록 한국불교 미술전이긴 했지만,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반가사유상>을 나란히 전시하는 기획이 필요했다. 게다가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벨기에 브뤼셀은 로댕이 젊은 시절 고생을 하며 조각을 공부하던 곳이기도 하다. <생각하는 사람>과 <반가사유상> ▲ <생각하는 사람><지옥의 문> 위에 웅크리고 있는 이 괴로운 인간, 은 통일신라 시대의 걸작 중 하나인 미륵반가사유상의 그 온화하고 여성스러운 웃음과 함께 보아야 제멋이다.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왜 서구사람들은 온 몸을 긴장한 채 고통 속에서 사유했고 부처는 웃음 속에서 사유했을까? 생각 자체가 달랐던 것일까? 아니면 표현만 달랐던 것일까? 이 질문은 참으로 큰 깨달음을 우리에게 줄지도 모른다. 서양의 팡세, 즉 사고는 로댕의 작품 제목인 <지옥의 문>에서 알 수 있듯이, 많은 경우 죄에 대한 생각이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가련한 인간 군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부처처럼 온화한 미소를 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nbsp;이 죄에 대한 생각은 복음을 전하는 기독교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13세기에 교리로 정해진 가톨릭의 고해성사와 관련된 서구인 특유의 사고 유형이다. 면죄부라는 가톨릭의 치욕스러운 과거도 여기서 나왔다. 나아가 죄에 대한 생각과 고해성사는 서구 문학사에서 고백문학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탄생시켰다. ▲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반면 동양의 <반가사유상>의 그 온화한 여성적 자태는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부처의 얼굴이다. 그래서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야릇한 신비감을 준다. 하지만 동양이라고 죄가 없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인간들이 없었을까? 오히려 고통 속에서 <생각하는 사람>이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과 더 닮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돈 걱정, 자식 걱정, 취직 걱정, 나라 걱정, 게다가 요즈음은 초강대국이라던 미국 걱정까지 해야 하니 말이다. 동양과 서양, 현대와 고대가 함께 전시되어야, 죄 개념을 중심으로 사고했던 서구의 사유와 심리분석적이면서 내면 독백조인 서구 문학의 큰 갈래를 이해할 수 있고, 그와 전혀 다른 문화적 전통에 자리잡고 있는 동양과 한국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다. &nbsp;<반가사유상>만 전시하는 경우, 종교와는 무관한 조각전이 되고 만다. 그래서 이번 벨기에 한국전의 “부처의 미소”는 오묘한 미소라는 두리뭉실한 환영을 강조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대체 뭐가 오묘하다는 것인가?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동양의 불상은 그 기원을 간다라 미술에 두고 있으며, 그 간다라 미술은 그리스 조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른바 그리스 조각의 엄격양식이나 고대 로마의 숭고미 등도 모두 오묘하지 않을까? ▲ 멜랑콜리아 (좌), 회개하는 막달리아 (우), 지중해 (아래)유명한 독일 르네상스의 판화가이자 화가인 뒤러의 <멜랑콜리아>는 우리가 보기에 <반가사유상> 못지 않게 오묘하다. &nbsp;그 작은 판화가 지니고 있는 오묘한 뜻을 해석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도상학자들이 달려들었는가. &nbsp;이러한 서구의 사유 전통은 17세기 프랑스 화가 조르주 들라투르는 물론이고 19세기 말의 조각가 마이욜, 초현실주의자인 데키리코의 이른바 ‘피투라 메타피지카’로 불리는 형이상학 회화로 연결되며 현대로 이어지고 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만 놓고 보더라도, 모델로 삼았던 단테는 물론이고 몽테뉴의 <수상록>과 장 자크 루소의 그 유명한 회고록인 <고백> 역시 같은 사유의 전통 속에 자리잡고 있다. &nbsp;반면 고백문학이 극히 드문 한국 문학의 특성은 어디에 있는가? 왜 반가사유상은 고려와 조선에서는 그 맥이 끊겼는가? <생각하는 사람>의 저 고통스러운 모습과 <반가사유상>의 여인의 미소를 연상시키는 부드러움 역시 함께 보아야만 둘 모두를 이해할 수 있다. 예산을 많이 쓴다고, 다양한 볼거리를 들고 나간다고 해서 좋은 전시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반가사유상>을 나란히 놓고 죄에 대한 팡세와 인간 조건에 대한 사유의 치열한 표현을 함께 생각하려고 할 때 좋은 전시가 이루어질 것이다. 백화점식 전시회가 아닌 이러한 익사이팅한 전시를 할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nbsp;여행·문화·예술 포탈 레 바캉스(www.lesvacances.co.kr) 대표 정장진
2008.10.31 I 정장진 기자
(정장진의 Tour & Culture)현대 미술과 현대 도시, 몬드리안과 뉴욕
  • (정장진의 Tour & Culture)현대 미술과 현대 도시, 몬드리안과 뉴욕
  • [이데일리 정장진 칼럼니스트] 최근 뉴스를 보면, “아름다운 건축에는 용적률을 상향 조정하겠다”는 서울시의 방침이 정해졌다고 한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무엇인지, 집값 상승과는 무관한 것인지 등을 두고 찬반 양론이 있을 수 있겠다. 한 쪽에서는 공연한 도시미화 계획으로 인해 노점상들이 죽을 판이라는 원성도 들린다. 천만이 넘게 사는 서울에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은 기대하기 어렵겠지만, 어려운 일을 하라고 뽑아놓은 시장이고 보면 최대 공약수를 추출해내는 지혜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요구가 아닐 것이다. 해외 여행을 떠나는 한국인들을 위해 각종 문화 예술 정보를 생산하고 가공하는 일을 하다 보면, 순수 여행 콘텐츠들인 명소와 작품, 역사, 생활 등을 소개할 때 거의 대부분의 내용들이 건축에 관련된 것들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성당, 궁전, 기념물, 다리, 문, 탑 등이 모두 건축물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인데, 각론을 넘어서서 도시 전체를 개괄할 때면 각 나라 대도시의 장단점이 비교가 되면서 한눈에 파악이 된다. 이럴 때면 자연히 서울이나 부산 같은 한국의 대도시들이 떠올라 비교 대상이 되곤 한다. 거의 모든 대도시들이 구시가지와 신도시를 갖고 있다거나, 강을 끼고 발달했다는 쉽게 눈에 띄는 공통점들도 비교 대상이지만, 도시 전체의 미학에 관심을 갖고 보면 단연 뉴욕 같은 대도시를 우선 꼽게 되고 서울과 비교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화가 몬드리안의 미학적 이성 ▲ 몬드리안 컴퍼지션네덜란드 태생의 추상화가 피트 몬드리안의 그림은 그 의미를 따지고 들면 상당히 어려운 그림이지만 현대 미술로는 보기 드물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림이기도 하다. 건축, 실내 디자인, 패션은 물론이고 가장 많이 광고에 이용된 그림이어서 친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담뱃갑에도 응용이 될 정도다. 몬드리안은 신비주의에 경도되었던 시절도 있었고 화가로 활동하면서도 평생 이러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몬드리안에게 그림은 눈에 보이는 것이나 가슴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닌, 다른 무엇이어야만 했다. 비단 몬드리안만이 아니라 20세기 초 많은 젊은 화가들이 이런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고, 이 생각으로부터 전위적인 실험작들이 나왔으며 추상화가 태어났다. 몬드리안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칸딘스키, 피카소, 마티스 등이 모두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칸딘스키는 어느 날 자기 집에 돌아와 문을 열고 들어서다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못박힌 듯이 섰다. 지저분한 집안 한 켠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던 그림 한 점이 눈에 들어온 것인데,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깜짝 놀라 가까이 가보니, 언젠가 자신이 그린 그림이 거꾸로 놓여있었다. 그때 문득 한 가지 의문이 칸딘스키의 머리를 때리고 지나갔다. “그림이란 무엇인가. 내가 조금 전에 느꼈던 아름다움은 그림이 무엇을 그렸는지 모르고 받은 느낌이었는데, 그렇다면 그림의 아름다움은 대상과는 무관한 것 아닌가……” 이 의문은 그를 십 년 가까이 사로잡았고 그 결과 나온 그림들이 서정적 추상화로 분류되는 그의 그림들이다. ▲ 몬드리안 의자반면 몬드리안의 그림들은 검은 수직선과 수평선, 삼원색을 이용한 평면 분할로 이루어져 있어서 흔히 기하학적 추상화로 불리곤 한다. 여기서 삼원색은 모든 색의 근원으로서 배합을 주도하는 원형 색들이다. 붉은 색과 노랑 색이 만나면 주황이나 주홍이 된다. 그 사이에 무수히 많은 색들이 존재할 것이다. 노랑과 파랑이 만나면 초록색이 되는데 여기서도 수많은 간색들이 존재한다. 수평선과 수직선도 모든 선들의 근원적 선으로 조밀하게 교차할 수도 있고 넓게 이격되어 궁극적으로는 하늘과 대지의 선이 될 수도 있다. 몬드리안의 이른바 컴퍼지션 연작들은 삼원색과 수평 수직선의 거의 기계적인 바리에이션이라고도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자연히 규칙성과 기하학적 명석함을 느끼게 해준다. 이러한 도안의 분위기가 나는 그림을 예술작품으로 인식하고 제작하여 발표한 감각은 선구자적인 것이었으며 종교적 심원함이 그림의 밑바탕에 깔려있음은 물론이다. 뉴욕 부기우기, 몬드리안 ▲ 몬드리안의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몬드리안은 고향을 떠나 파리, 런던 등에서 활동을 했고 나치가 유럽을 점령하자 1940년대 초에 미국 뉴욕으로 건너왔다. 그의 나이 70이 가까운 때였다. 뉴욕에 도착한 몬드리안은 말로만 듣던 뉴욕을 보자 자신의 그림들이 거대한 도시에 그대로 구현되어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애브뉴로 불리는 12개의 대로와 스트리트로 불리는 155개의 소로로 바둑판처럼 구획되어있는 맨해튼은 그가 캔버스에 표현한 세계 그대로였던 것이다. 그는 뉴욕으로 건너오기 전인 1920년경 흔히 '신조형주의'로 불리는 독특한 스타일을 창안해 삼라만상을 지배하는 근원적인 형태와 색을 단순화시킨 그림들을 그렸다. 그림들은 직선과 직각, 검은색의 수직선과 수평선 그리고 삼원색의 색면으로 분할된 일정한 형식성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는 선의 상징적 의미와 우주의 수학적 구성에 대한 거의 종교적인 직관에서 나온 것이었다. 뉴욕은 바로 이 수직으로 서로 교차하는 선들과 그 선들이 만들어내는 사각형의 면들로 구성된 도시였다. 하지만 몬드리안은 자신의 그림과 맨해튼이 다르다는 것 또한 깨달았다. 다름 아니라 그의그림에는 소리가 없었지만, 뉴욕에는 온갖 종류의 소리가 바둑판 같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던 것이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도 말이었지만, 자동차 소리 같은 소음으로 가득 찬 뉴욕의 거리는 나치를 피해 뉴욕에 온 몬드리안에게는 소음이 아니라 삶의 활기로만 느껴졌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생명성이 발현된 모종의 외침으로 들렸다. 그러다 브로드웨이에서 강렬하면서도 불규칙한 리듬의 재즈를 듣는 순간 몬드리안은 뉴욕의 소리를 생명의 외침으로 파악한 자신이 옳았음을 새삼 깨달았다. 그 순간 몬드리안은 붓을 들었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현재 세계 최고의 현대 미술관 중 하나인 뉴욕 현대 미술관인 모마MoMA에 있는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Broadway Boogi Woogie >이다. 이 작품을 완성시킨 후 급하게 다시 한 점을 더 그리다가 그만 숨을 거두고 만다. 미완성으로 남은 작품이 <빅토리 부기우기, Victory Boogie Woogie>다. 랜들 플랜이 만들어 낸 맨해튼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를 잘 보면, 이전의 몬드리안의 그림들과 다른 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선 캔버스에서 검은 색들이 사라졌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전의 그림들을 압도하던 검은 색의 수직선과 수평선들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크고 작은 사각형의 점들이 그림 곳곳에 나타나있다는 점이 보이는데, 마치 유전자 지도를 그래픽으로 처리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크고 작은 사각형들은 음악적 리듬을 느끼게 하고 있다. 이 리듬이 바로 부기우기의 리듬일 것이다. 뉴욕을 가본 사람들은 알 것이고, 또 가보지 않았어도 뉴욕 맨해튼의 지도를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듯이, 몬드리안의 <브로드웨이 부기우기>가 그 미학적 의미를 제쳐둔다면, 마치 맨해튼의 한 구역을 공중에서 찍은 사진 같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 이스트 42번가의 모습을 많이 닮았다. ▲ 맨하튼 전경현재의 맨해튼이 보여주는 이 바둑판 같은 도시 구획선은, 존 랜들이 만든 선이다. 독립전쟁 직후 영국을 지지하던 왕당파들에게서 몰수한 토지를 서로 차지하려고 하는 투기꾼들로 인해 확대일로를 걷던 뉴욕이 자칫 무계획한 이상한 도시로 변모할 것을 예견한 존 랜들은 폭 30.5m의 12개의 수직 대로와 그보다 작은 폭 18.3m의 155개에 달하는 수평 소로를 이용해 맨해튼 전역을 바둑판처럼 구획한 다음, 그렇게 해서 나오는 각 블록을 다시 이등분하여 그 안에서만 건축을 하도록 한 것이다. 이때가 1811년이었다. 역사에 가정은 허락되지 않지만, 만일 존 랜들이 나서서 이러한 계획을 입안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뉴욕은 없었을 것이다. 또 몬드리안도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를 그리지 못했을 것이다. 현대 미술과 현대 도시 ▲ 몬드리안의 콩코드 광장몬드리안은 네덜란드에서 그림을 그리던 당시 이미 회화의 기하학적 순수성을 실험했고 그실험을 통해 회화가 건축과 디자인에 응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물론 그 당시에는 뉴욕 맨해튼의 바둑판 형태의 도시구획을 모르고 있었다. 또 존 랜들이 19세기 초에 그어놓은 맨해튼의 구획선은 무분별한 건축을 막기 위한 의도에서 시작된 것으로서 미학적 성격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추상화와 맨해튼의 도시 계획을 지배하는 기하학적 구획을 단선적으로 동일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맨해튼의 바둑판식 도시 구획 정리나 빽빽한 고층건물들이 아름다운 것만도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몬드리안은 뉴욕 맨해튼에 매료되었다. 부기우기라는 재즈의 선율, 활기찬 사람들의 모습, 전쟁의 공포를 벗어난 안도감 등이 작용을 했겠지만, 몬드리안의 그림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는 현대 회화가 현대 도시의 감수성을 표현하는 미술 형식임을 잘 일러준다. 건축가들은 몬드리안의 그림을 보면서 도시 설계의 원형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몬드리안은 평생 순수성을 추구한 화가다. 여기서 순수성이란 비상업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형태와 색의 순수성, 즉 다양한 사물들의 근저에 자리잡고 있는 추상적 원리를 말한다. 이 형태와 색의 순수성은 단순하고 근원적인 것이며, 그래서 그만큼 보편적이며 수많은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포용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순수성은 동시에 엄청난 자제와 삶과 세계에 대한 통찰을 요구한다. 몬드리안의 그림은 수직선 수평선을 이동시키고 색면의 크기를 조절함으로써 수많은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 &nbsp;뉴욕에 오기 전에 그린 그의 그림들은 작품들 스스로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수직선과 수평선은 사라지지 않고 그림의 변화를 통제하고 있다. 그 결과 그림은 이른바 ‘비대칭의 대칭’을 이루며 질서와 혼란의 대립을 넘어서서 벌어지고 있는 축제를 보여준다. <브로드웨이 부기우기>에서도 크고 작은 색면들은 재즈 리듬처럼 춤을 추지만, 산만하거나 난잡하지 않다. 한국의 몬드리안을 기다리면서 화가나 조각가를 그림이나 그리고 조각이나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안 될 것이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화가와 조각가가 있다면 장인이나 장사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같은 논리로 도시 계획가, 건축가, 관료들은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몬드리안의 형이상학적 순수성 같은 것을 읽으려고 노력해야 할지도 모른다. 청계천에 물이 흐르고,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광화문 사거리가 복원되고 있다. 또 판상형 아파트 설계가 여러 번 반려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몬드리안의 그림에서처럼, 질서와 혼란의 대립을 넘어서서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처음에는 인간이 공간을 만들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은 이후 사람을 만든다. 풍수라는 한국의 공간 사상도, 많이 퇴색하고 타락했지만, 공간에 대한 이러한 인식에 기초해 있었다. 풍수가 터무니없는 논리적 비약과 얼버무리는 측면이 많고, 땅의 정기나 물과 바람이 가져가고 가져온다는 길흉화복을 믿기는 어렵지만, 마음이 편해지는 공간을 만들 의무가 건축가들에게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집장사가 아닌 건축가, 땅 장사가 아닌 도시 공학자, 몬드리안 같은 화가를 닮은 그런 건축가가 한국에도 있어야 할 것이다. <광화문 부기우기>를 위해서. 서울 시장이 몬드리안의 그림을 유심히 봤으면 싶다. 여행·문화·예술 포탈 레 바캉스(www.lesvacances.co.kr) 대표 정장진
2008.10.14 I 정장진 기자
(정장진의 Tour & Culture)IT 강국 한국,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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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데일리 정장진 칼럼니스트] 유럽에서 한국 TV 업체들의 시장점유율 40% 최근 한 뉴스에 따르면, “삼성과 LG가 유럽 TV시장에서 40%가 넘는 점유율을 보이며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기분 좋은 뉴스가 아닐 수 없다. 또 미국 최고 권위의 소비자 리뷰사이트 ’Cnet’이 발표한 베스트 HDTV 14종 중 7종이 한국제품이라고 한다. 그런데, 삼성이나 LG를 한국 기업이 아닌 다른 나라 기업으로 알고 있는 외국 소비자들이 아직도 있다고 한다. 노키아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일본 회사인줄 착각을 하는 사람이 있듯이 말이다.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는 LG의 TV들이 생중계 화면용으로 제공되었다고 하나, 그 상품이 한국제라는 것을 모르면 남 좋은 일 시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노출빈도가 많아 국가 브랜드의 역할도 하는 메이드 인 코리아 IT 기기들이 자칫 메이드 인 재팬이나 더 불행한 경우는 메이드 인 차이나로 인식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기억에 남는 이미지를 주어야 파리 샹젤리제나 뉴욕 5번가, 베를린의 카이저 빌헬름 성당과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 등은 무언가 그곳을 찾는 이들의 기억에 남아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미지들을 선사한다. 이 이미지는 계절마다 다른데, 파리 상젤리제는 겨울의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고, 뉴욕 5번가는 가을이 그리고 베를린의 카이저 빌헬름 성당과 트라팔가 광장은 사계절 모두 기억에 남는 풍경이다. ▲ 홍콩 심포니오브라이프그런가 하면 동남아시아의 홍콩은 밤이 되면 낮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심포니 오브 라이트, 즉 빛의 교향악이라는 이름으로 네온과 레이저를 쏘는 현란한 빛의 축제가 벌어지는데, 홍콩섬의 수십 층짜리 건물들이 일제히 빛을 내뿜는 이 쇼는 크게 볼 것이 없는 홍콩의 밤을 오랫동안 기억나게 한다. 이 쇼는 지휘자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오케스트라처럼 미리 정해진 기획안에 따라 일사 분란한 움직임을 보인다.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이렇게 밤을 장식하는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보다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이다. ▲ 파리 상젤리제 거리 루미나리아겨울이 되면 파리 상젤리제 거리의 양쪽에 루미나리아라는 이름의 노엘 장식, 즉 성탄 트리가 들어선다. 거의 두 달 가까이 지속되는 이 루미나리아가 시작되면 ‘마롱퀴’라 불리는 군밤 장수도 나오고 싸늘해진 날씨에 거리를 찾은 이들은 잠시 바쁜 일상을 잊고 동심의 세계로 빠져든다. 이 빛의 터널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그 끝에 우뚝 서있는 조명 밝힌 개선문으로 인해 더욱 빛난다. &nbsp;개선문은 보는 사람에 따라 호감 비호감이 비교적 분명하게 구별되는 기념물인데, 밤에 조명 밝힌 개선문 앞에서는 누구나 호감으로 마음을 바꾸게 된다. 부드러운 조명으로 인해 딱딱하고 웅장한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의 이름도, 일차대전의 무명용사를 기리는 추념의 불꽃도 그리고 중앙집권체제를 상징하는 12개의 방사선 도로도 잊은 채 부드러운 야경의 하나로 들어온 전혀 다른 개선문을 만나는 것이다. ▲ 뉴욕 센트럴 파크뉴욕 5번가의 가을은 센트럴 파크의 진한 낙엽 냄새로 시작된다. 비에 젖은 낙엽이 나뒹굴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옷깃을 올리는 계절이 되면 어디선가 옛날에 본 <러브 스토리>의 음악이 들리는 것도 같다. 유명 브랜드 샵들도 가을의 색으로 장식을 바꾼다. 센트럴 파크로 들어가 커피라도 한 잔 하면, 남의 나라이지만 고향에 온 것 같기만 하다. 은은한 가을 향기와 늦은 오후의 5번가를 물들이는 조명은 뉴요커의 삶이 마천루에 가려진 팍팍한 삶만은 아니라는 것을 일러준다. ▲ 베를린 카이저 빌헬름 성당베를린 카이저 빌헬름 성당은 2차 대전 당시 파괴된 모습을 지금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기념물이다. 19세기 말에 세워진 성당인데, 그만 폭격으로 파괴되었고 복원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으나 현재처럼 그대로 보존을 하고 그 옆에 별도의 현대식 성당을 짓기로 했다. 일본인들이 꼭 한번 가봐야 할 성당인지도 모른다. 폐허 바로 옆에 유리로 된 육각형과 팔각형 두 개의 건물을 지었는데, 유리 벽을 투과해 들어온 빛이 자아내는 황홀함은 고딕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가져온 것이다. 실내에 있는 십자가는 성당이 파괴되었을 때 나온 못들을 수거해 주조한 것이라고 한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무모한 전쟁을 잊지 말자는 뜻이 들어있는 것이다. ▲ 런던 트라팔가 광장런던 트라팔가 광장은 무엇보다 떼지어 몰려다니는 비둘기로 기억에 남는 곳이다. 19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비둘기 똥은 거름으로 사용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지만, 이제는 골치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엽사를 고용하고, 모이에 독극물도 넣어보고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비둘기를 퇴치할 방법이 없어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그러나 청동 사자상들이 보호하고 있는 넬슨 기념탑 위로 날아오르는 비둘기떼는 관광객들에게는 이곳만의 특별한 이미지이다. 빛을 뿜어내라 위에서 예로 든 몇몇 기념물들은 트라팔가 광장을 제외하면, 모두 빛과 관계가 있다. 현대 도시에서 빛은 가로등처럼 결코 단순한 조명의 역할만 하는 기능적 요소가 아니다. 빛은 이제 그 자체가 마치 예술가의 붓에서 나온 터치들처럼 도시 전체의 모습을 바꾸어 놓는 역할을 한다. ▲ 백남준의 다다익선서울 근교 과천 현대미술관에 가면 백남준의 <다다익선>이라는 비디오 설치 작품이 있다. 1,003대의 모니터를 쌓아 올린 거대한 탑모양의 작품인데,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과 나선형 계단을 돌아 올라가면서 보는 모니터들의 변화무쌍한 화면은 잠시 황홀한 경험을 하게 한다. &nbsp;나는 이 <다다익선>을 처음 보는 순간, 다보탑이 떠올랐고 중앙박물관 홀에 우뚝 서있는 경천사지 10층 석탑이 떠올랐다. 과천 현대 미술관의 램프 코어를 타고 나선형으로 돌아 올라갈 때는 탑돌이 생각이 나기도 했다. 그랬다. 백남준의 설치 미술 <다다익선>은 불탑이었고,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단순한 영상이 아니라 예술의 빛을 넘어선 종교적 의미의 빛이었던 것이다. &nbsp;<다다익선>의 그 빛과 힘이 천년 전 신라와 고려인들이 탑을 세우며 표현했던 종교적인 궁극적 관심의 상태에서 온 것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목탁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향 내음도 맡을 수 없었지만, 1003대의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하늘을 향한 인간의 염원과 간구가 실린 메시지였다. 신라의 석공들이 화강암을 다듬었고 고려의 석공들이 대리석을 다듬었다면, 백남준은 모니터를 다듬은 것이다. 소재는 아무런 중요성도 없다. 어느 탑이나 모두 빛을 내고 있었다. 이 빛을 보는 눈은 그러므로 수천 년의 시간을 건너 뛰어 신라의 선승과 만나고 고려의 스님과 만나는 것이다. 백남준은 우리 시대가 허락하는 재료를 썼을 뿐이다. 그에게 모니터는 돌이었을 뿐이다. IT 강국 한국, 산업을 넘어 예술로 나아가야 아르마니 TV, 프라다 폰…… 무언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아닐까? 그 정도 가지고서는 삼성이나 LG 모두 겨우 일본 업체들을 견제하는 수준에 머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이상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디자인을 넘어서는 예술이 필요한 것이다. 프라다 폰과 아르마니는 너무나 속이 보이지 않는가. 게다가 나온 제품들도 보니 별로다. 제품 주기가 얼마나 빠른데, 신기술이 얼마나 빨리 도입되는데, 아르마니, 프라다라는 이름에 기대를 걸 것인가? 아니다. 21세기는 산업과 예술이 외형적으로 융합되는 시대가 아니라 그 본질에 있어 서로 섞이는 시대다. 이 트렌드를 읽어야 하며, 읽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삶과 사회와 산업 속에 받아 들여야 한다. 백남준의 <다다익선>은 다보탑이며 경천사지 10층 석탑이다. 이 돌로 쌓은 석탑과 모니터를 쌓아 올린 TV탑을 연결시키는 상상력을 유럽 점유율 40%에 이르는 한국의 디지털 TV로 구현해 보면 어떨까. 청계천에 있어야 할 조형물은 올덴버그의 스프링이 아니라 바로 <다다익선>이었던 것이다. 빛의 분수가 터져 나오고, 명멸하는 평판 모니터와 굽이치는 LED의 선들이 단청처럼 혹은 다보탑처럼 하늘의 빛을 상징하지 않을까. 과거와 현재가 만나고, 돌과 모니터가 만난다. 종교적 궁극의 세계와 예술적 충동의 접점이 놓이게 될 것이다. IT 강국이 되려면 아르마니, 프라다 등 네임밸류에 편승도 해야겠지만, ‘상상력’이 필요하다. 평범한 상상력이 아니라 진짜 상상력, 즉 예술과 종교가 만나는 상상력. 청계천에 물만 흘러서는 안 된다. 이 상상력이 흘러야 한다. 여행·문화·예술 포탈 레 바캉스(www.lesvacances.co.kr) 대표 정장진
2008.09.26 I 정장진 기자
한옥마을만으로 전주를 다 즐겼다 말하는 당신에게
  • 한옥마을만으로 전주를 다 즐겼다 말하는 당신에게
  • [조선일보 제공] 팝콘 냄새가 진동하며 북적대는 전주 고사동 영화 거리 옆엔 친구가 그리워지는 막걸리 골목이 있다. 도시면서도 남도의 맛과 멋이 가득해 풍류가 흐르는 전주에 떠났다. ▲ 전동성당 / 조선영상미디어 조영회 기자 remnant@chosun.com12:00 전주비빔밥으로 점심식사 아침에 서울을 떠나 전주에 도착할 때쯤이면 점심 때가 다 되어 있을 것이다. 서울에 '전주 비빔밥' 식당이 더 많다고는 하지만 전주에 와서 비빔밥도 안 먹고 돌아서긴 아쉽다. 워낙 여러 집이 있기에 고르기 쉽지 않다. 경기전 담장 옆 종로회관(063-288-4578) 2층은 경기전을 내려 보며 느긋하게 한끼 식사를 즐기기 좋다. 13:00 전주한옥마을 경기전(慶基殿·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곳) 앞을 지나는 길은 태조로다. 태조로를 중심으로 교동과 풍남동에 대략 650여 채의 한옥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전주한옥마을(063-282-1330, http://hanok.jeonju.go.kr)이다. 전주전통술박물관(063-287-6305·www.urisul.net)에선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전통주들을 만날 수 있고 전주전통한지원(063-232-6591)에선 닥나무로 한지를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다. 15:30 전동성당에서 숨 고르기 한옥마을만으론 고즈넉한 전주의 분위기를 전부 즐겼다고 하기 어렵다. 경기전 맞은 편의 전동성당(사적 제 288호인)은 비잔틴 및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된 우아한 자태를 자랑, 출사객들이 사랑하는 장소. 안으로 들어가면 둥근 천정과 스테인드글라스의 빛깔이 고혹적이다. 성당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으면 시간이 유난히 느리게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 전주한옥마을 / 조선영상미디어 조영회 기자17:00 막걸리 골목에서 여행 마무리 전주에는 막걸리 골목이 여럿 있는데 삼천동과 효자동 쪽은 막걸리 한 주전자에 화려한 '기본 안주'가 따라 나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 주전자 가격은 1만~1만2000원 정도. 찌그러진 주전자 앞에 피조개, 홍합, 데친 문어, 양념게장과 생굴, 조개 완자, 냉이된장국, 편육 등 15가지가 넘는 안주가 함께 놓인다. 한 주전자를 더 시키면 다시 새로운 안주가 펼쳐지고 삼차 안주는 또 다르다. 영업시간은 해질녘부터 오전 2~4시까지. 삼천동에선 소설가 이병천씨 등이 즐기던 마이산청정막걸리(063-223-0890)가, 효자동에선 안도현 시인 자주 찼던 홍도주막(063-224-3894)이 유명하다. ☞전주 비빔밥-경기전-전주한옥마을-전동 성당-막걸리 골목
이동건, 동생 추모식 참석 '침통'...고인 시드니 교외서 화장
  • 이동건, 동생 추모식 참석 '침통'...고인 시드니 교외서 화장
  • [이데일리 SPN 양승준기자] 배우 이동건이 호주 시드니 대학에서 열린 동생의 추모식에 참석해 먼저 간 동생의 명복을 빌었다. 호주 시드니대학 한인학생회는 같은 대학에 재학 중이던 한국 학생이 불의의 사고로 피살됐다는 소식을 접하고&nbsp;26일 교내에 있는 가톨릭 성당에서 추모 행사를 열었다. 지난 20일 오후 동생의 피살이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듣고 21일 오전 호주 시드니에 도착한 이동건 가족은&nbsp;추모식이 있던 날&nbsp;오전 10시부터 11시경까지 약 한 시간 가량 진행된 추모식에 참석해 100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고인을 추모했다. 추모식에 참석한 이동건 측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추모 행사는 신부님의 진행 아래 미사 형식으로 치러졌으며, 시드니대의 한인학생회 대표가 추모사를 낭송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이동건은 물론 이날 고인의 추모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nbsp;침통해 했다”고 당시 추모장 분위기를 전한 뒤 “추모 행사를 마치고 이동건 동생의 시신은 시드니 교외에서 화장을 치르게 된다”고 말했다.한편, 이동건은 먼저 세상을 떠난 동생의 유해를 들고 오는 28일 한국으로 귀국해 서울 강남 삼성병원에서 장례를 치른 후 31일 한 성당에서 장례 미사로 발인을 대신한다. ▶ 관련기사 ◀☞이동건 측 "호주서 시신 확인, 가족 모두 큰 충격"...다음 주 귀국 예정☞이동건 친동생 호주서 피살 '충격'...20일 비보 듣고 급거 출국☞한지혜, 이동건과 '결별'에 침묵으로 일관...담담히 촬영 강행☞'스타커플' 이동건 한지혜 결별...지난해 12월 각자의 길로☞'지금사랑' 엄정화-이동건, 박용우-한채영 키스신 공개(VOD)
2008.03.26 I 양승준 기자
김일중 아나 "결혼식 축가는 홍경민, 사회는 없어"
  • 김일중 아나 "결혼식 축가는 홍경민, 사회는 없어"
  • ▲ 김일중 아나운서(사진=김용운 기자)[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 가수 홍경민이 김일중 SBS 아나운서와 윤재희 YTN 앵커의 결혼식 축가를 맡는다.오는 4월19일 윤재희 앵커와 서울 역삼동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김일중 아나운서는&nbsp;“축가는 홍경민이&nbsp;불러주기로&nbsp;했다”고 25일 밝혔다. 홍경민은 김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SBS 라디오 (107.7MHz) '김지영 김일중의 좋아좋아'에 게스트로 출연하며 김 아나운서와 친분을 쌓았고 축가 부탁도 흔쾌히 수락했다.김 아나운서는 “성당에서 결혼하기 때문에 딱히 사회자가 필요 없다”며 “양가 집안이 천주교 신자라서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김 아나운서는 또 “'일요일이 좋다-기승史'에 출연 중인 유재석과 신정환 등이 하객으로 참석하겠다고 말했지만 일정이 바빠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김 아나운서는 4월19일 서울 역삼동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5박6일간 몰디브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화곡동에 신혼살림을 차릴 예정이다. ▶ 관련기사 ◀☞김일중 아나 “윤재희 앵커에게 애교를 가르쳤다”☞김일중 아나 "장인어른이 남자답다며 결혼 허락"☞김일중 아나-윤재희 앵커, 4월19일 결혼
2008.03.25 I 김용운 기자
'물병자리' 두자릿수 시청률로 안정적 출발
  • '물병자리' 두자릿수 시청률로 안정적 출발
  • ▲ SBS 아침드라마 '물병자리' 여주인공 임정은과 하주희(사진=SBS)[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 SBS 새 아침드라마 ‘물병자리’(극본 김두삼/이주희, 연출 김수룡)가 두 자리 시청률로 출발했다. TNS미디어코리아에 따르면 4일 오전 첫 방영된 ‘물병자리’는 11.6%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전작인 ‘미워도 좋아’가 지난 2월29일 종영하며 올린 15.5%의 시청률보다는 낮은 성적이지만 첫 방송인 점을 감안하면 무난한 수치다. ‘물병자리’는 같은 성당에 버려져 자매처럼 자란 명은서(임정은 분)와 명은영(하주희 분)이 엇갈린 운명을 살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태양의 남쪽’, ‘그린로즈’, ‘푸른 물고기’를 만든 김수룡 PD가 연출을 맡았다. MBC 아침드라마 ‘그래도 좋아’는 22.4%의 시청률을 올리며 아침드라마 부동의 시청률 1위를 이어갔으며 KBS 2TV '착한여자 백일홍’의 시청률은&nbsp;13.1%로 조사됐다. ▶ 관련기사 ◀☞임정은 "첫 일일극 주연 떨리고 긴장돼"☞아침드라마 주연 임정은 “아줌마들의 성원 기대돼요”☞임정은, TV 드라마 첫 주인공...SBS '물병자리' 캐스팅☞임정은 “12살 나이차? 사랑하면 극복 못할 이유 없죠”☞[포토]블루 드레스 임정은, '뒷태가 더 예뻐요~'
2008.03.04 I 김용운 기자
  • 신앙이 깊은 나라는 가난하다?
  • [조선일보 제공] "신(God)과 마몬(Mammon·신약성경에 나오는 부의 신)이 싸우면, 대체로 마몬이 이긴다."미국의 시사 월간지 '어틀랜틱 먼슬리'는 최신호(3월호)에서 세계 44개국의 국민소득과 종교적 신앙심의 관계를 조사한 퓨 리서치 센터 보고서를 인용해, "종교의 힘이 강한 나라일수록 가난하고, 1인당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종교의 영향력이 줄어든다"고 보도했다. 잡지는 또 "9·11 테러 이후 종교의 영향력이 다시 부활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나라에서 소득 증가와 함께 세속화 경향이 뚜렷하다"고 분석했다.국민 소득이 높은 서부 유럽에서 종교의 영향력은 대체로 약하다. 최근 영국과 프랑스 등에서 이슬람과 기독교의 갈등이 사회 문제로 대두했지만, 서유럽에서 가장 종교적 국가였던 스페인과 아일랜드에서조차 현재 세속화 경향이 뚜렷하다.가톨릭 교회가 지배했던 스페인에서는 최근 동성 결혼과 동성 커플의 자녀 입양을 합법화했다. 아일랜드의 성당들도 교인 수가 크게 감소해 애를 먹는다. 동유럽의 폴란드는 공산 독재에 맞섰던 자유노조가 가톨릭 신앙을 기초로 결성됐을 정도로 신앙심이 강했다. 그러나 경제 성장과 함께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작년에는 가톨릭의 지지를 받는 총리가 총선에서 처음으로 패했다.그러나 가난한 대륙 아프리카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나이지리아의 북부 12개 주는 최근 이슬람 율법(샤리아)을 채택하고, 이를 강제할 특별 종교 경찰을 창설했다고 어틀랜틱 먼슬리는 전했다. 이에 따라 기독교인들과의 갈등도 커졌다.퓨 리서치에 따르면, 이집트인의 99%와 요르단인의 97%는 "도덕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을 믿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터키·쿠웨이트·사우디아라비아 등 상대적으로 부유한 중동 국가의 국민들은 다수가 이슬람 근본주의보다 근대화를 선호한다. 중동의 부국(富國) 아랍에미리트연합의 두바이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자본을 유치하려고 애쓴다.아시아 국가들도 대체로 국민소득과 종교적 신앙심이 반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슬람 색채가 강한 인도네시아는 국민소득이 낮지만, 종교 색이 옅은 대만·싱가포르·중국 등은 소득이 높거나 경제성장 속도가 빠르다. 인도에서도 2004년 힌두교 정당이 연정에서 밀려났다.예외인 나라가 미국. 미국인의 신앙심이 남미 국가와 거의 같은 수준이지만, 국민소득은 훨씬 높다. 이에 대한 어틀랜틱 먼슬리의 설명은 이렇다. "미국인 중에서 실제로 종교적 논쟁이나 역사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신앙인의 수가 많은 것에 비해서, 실제 이들의 지닌 신앙의 깊이는 얕다."
  • 상조 서비스 피해 주의보
  • [이데일리 김세형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상조 서비스 소비자 피해 주의보를 내렸다. 최근 몇년새 급신장한 상조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피해가 늘고 있는 데 따른 것. 공정위는 가급적 표준약관을 사용하는 상조 업체를 이용할 것을 권고했다. 공정위는 28일 소비자 역시 상조 서비스 피해 예방을 위해 스스로 주의를 기울여 줄 것을 강조하고 그동안 상조 시장에 나타난 소비자피해 상담사례 유형과 계약체결 과정 등에서 소비자가 유의해야 할 사항을 발표했다. 주요 상담사례 유형과 주의 사항은 다음과 같다. ◇제때 돌려주지도 않으면서 위약금이 왜 이리 많아 소비자가 상조회원으로 가입한 뒤 일정한 납입금을 불입한 상황에서 회원가입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 일부 상조회사는 납입금 환급을 거절 혹은 지연하거나 과다한 위약금을 요구하고 있다. A씨는 이모가 돌아가실 경우를 대비, 상조 회원에 가입하고 총 120만원을 납입했다. 이모가 천주교 신자여서 성당측이 이모의 장례를 치러줬고 A씨는 상조서비스를 이용치 않았다. A씨는 상조회사에 대하여 계약을 해지하고 납입금 환급을 요구했지만 상조회사는 납입금 환급을 거부했다. B씨는 매월 4만원씩 60개월간 총 240만원을 납부해야 하는 상조상품에 가입했고 100만원의 납입금을 불입했다. B씨가 경제사정이 어려워 계약을 해지하려 했지만 상조회사는 위약금 76만6000원을 물리면서 23만4000원만 환급해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 그동안 납입한 금액중 환급되는 금액과 환급시기 및 위약금 액수에 대해 계약 체결시 꼼꼼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돈 다 냈는데 회사가 망했다? 일부 상조회사가 중도에 도산 혹은 폐업, 소비자들이 상조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는 경우도&nbsp;잦다. &nbsp;C씨는 2001년 6월 월 3만원씩 60개월간 총 180만원을 납입해야 하는 상조상품에 가입하고 납입을 마쳤다. 최근 상조 서비스를 이용하려고 했지만 업체와 연락이 되지 않았고 나중에서야 상조업체가 폐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부 업체는 회사가 망하더라도 상조 서비스 이행이 보장된다고 광고하지만 이행이 보장되는 서비스는 극히 일부일뿐이다. 또 업체들의 주장하는 납입금의 원금보존 역시 아무런 근거가 없다. ◇왜 서울에서는 서비스를 안해 주는 거야? 상조회사가 상조회원이 서비스를 제공받고자 하는 지역이 자신이 서비스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지역이 아니라고 하면서 발뺌하는 경우가 있다. D씨는 지난 96년 60개월간 총 120만원을 납입해야 하는 상조상품에 가입한 이후 납입을 완료했다. 2005년 부친이 사망했지만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 대신 서울에서 하는 자신의 결혼식에 상조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상조업체에 서비스 제공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업체는 부산지역에만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상조 서비스는 특정 지역으로만 서비스 지역을 한정하는 사례가 많다. 역시 계약시 제공되는 대상지역이 어디인지를 따져 봐야 한다. ◇운구 차량 서비스를 못해 준다?일부 상조회사는 상조서비스 이행과정에서 도우미서비스, 운구차량서비스 등 특정서비스의 경우 상조회원이 별도의 요금을 지급해야만 제공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추가적인 비용부담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E씨는 지난 2006년 회원으로 가입하고 240만원을 납부했다. 지난해 4월 부친이 사망했고 서비스를 요청했지만 회사측은 도우미, 운구차량·버스운행 서비스는 제공할 수 없다며 58만원을 추가로 낼 것을 요구했다. 상조서비스 가입시 별도의 요금을 내도록 하는 계약 조항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가입하면서 모든 것을 다 해 줄 것이라고 믿지 말고 계약서 내용을 재차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다.&nbsp;&nbsp;공정위는 이와 함께 "상조상품이 마치 저축상품인 것처럼 속여 회원을 모집하는 경우도 있다"며 "회사가 도산이나 폐업할 수 있으므로 회사가 튼튼한 지 여부를 따져보고 나중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가급적 표준약관을 사용하는 업체를 이용해 줄 것"을 당부했다.
2008.01.28 I 김세형 기자
들리는 건 바람 소리뿐
  • 들리는 건 바람 소리뿐
  • ▲ 은 겨울로 저물어갈수록 더욱 깊은 색을 띤다. 서늘한 강바람에 몸을 맡겨 본다. 마음이 탁 트인다. 갈대가 손짓한다. 혼자도 괜찮다. 걷는다, 계속.&nbsp;[조선일보 제공]&nbsp;가을도 이제 뒷모습을 보이며 겨울을 준비합니다. 삭막한 아파트 뒤에 숨은 예쁜 오솔길을 따라서 가을의 끝자락을 좇아갑니다. ① 잠원역~반포대교(2㎞/30분) 잠원역 3번 출입구로 나와 정면으로 쭉 가면 은행나무 길을 따라 킴스클럽 사거리까지 간다. 고개를 돌려보면 ‘한강시민공원 800m’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사거리에서 건널목을 건너 오른쪽으로 조금 가면 T자형 삼거리가 나오는데 왼쪽으로 오페라 하우스가 보이고 오른쪽으로 한신상가가 보인다. 여기서 정면으로 길을 건너면 바로 한신아파트로 들어가는 쪽문이 있다. 113동과 114동 사이다. 쪽문을 통해 아파트단지 안으로 끝까지 걸어 들어가면 끝자락에 흙길이 나오는데 왼쪽 길을 따라간다. 걷다가 오른쪽에 ‘반포 나들목(서초1육갑문)’이 나오면 그냥 지나쳐서 조금 더 간다. (단, 짧은 코스로 걷고 싶거나, 한강 공원 잠원지구 초입에 붙어있는 잠수교의 찻길이 싫으면 이 통로로 들어가 한강 공원에 진입해도 된다.) 아파트 101동 있는 데까지 쭉 가면 왼쪽으로 길이 꺾어지면서 오른쪽에 방음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나가서 오른쪽으로 가면 한강시민공원 진입계단이 보인다. 이 계단을 내려가 오른쪽 첫 번째 계단으로 다시 내려가서 잠수교 옆 길이 보이고 오른쪽 길을 따라가면 넓은 자전거길이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왼쪽 강변길로 들어서서 걷는다. ② 반포대교~한남대교(2.5㎞/40분) 강변길을 계속 걷다보면 송전탑이 보이면서 길이 갈라지는데 어디로 가든 상관없다. 좀 더 강바람을 맞고 싶으면 강변과 가까운 길을 택한다. 강변을 계속 걸으면 선착장이 보인다. 오른쪽에 농구장이 보이고 조금 더 가면 수영장과 자연학습장이 나온다. 자연학습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한남대교까지 걷는다. ③ 한남대교~동호대교(1.2㎞/20분) 한남대교를 지나 동호대교 쪽으로 가다가 ‘ON수상레저클럽’ 앞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나오는 통로(일명 ‘토끼굴’)로 빠져 나간다. 그러면 바로 왼쪽으로 ‘신사동 강변 오솔길’이 시작된다. 나무들이 줄지어 선 기분 좋은 흙길이다. 중간 중간에 정원처럼 조성해놓은 소나무 무리도 볼수 있어 반갑다. 조금 걷다보면 길이 갈라지는데 윗길을 선택하면 좀 더 울창한 숲에 들어선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동호대교 부근에 이르러 흙길이 끝나면 계단을 내려와 건널목을 건넌다. 위쪽 길은 소나무는 많지만 다소 어두운 편이다. 이어서 왼쪽 길로 조금 걸어가면 동호대교가 보이고 오른쪽으로 한강공원 진입계단이 있다. 이 계단을 올라 한강 쪽으로 걸어가면 왼쪽으로 한강진입계단이 나타난다. ④ 동호대교~영동대교(3㎞/45분) 계단을 내려와 오른쪽 성수대교 방향으로 강변을 따라 걷는다. 성수대교와 영동대교의 중간쯤 되는 지점에 ‘한강 1문’이라고 표시된 통로가 나타난다. ‘피코 수상스키장’도 눈에 띈다. 이곳을 빠져나가면 바로 ‘갈매기공원’ 숲길 중간쯤에 들어서게 된다. 영동대교 부근 ‘청숫골 나루터’(갈매기 공원 1㎞, 청숫골 나루터 1㎞라고 적혀 있음)라는 표지판이 있는 곳까지 흙길과 지압길이 만들어져 있다. 이 부근에서 걷기 딱 좋게 만들어져 있다. 마음 편히 쉬기에 딱이다. 중간에 쉼터도 예쁘게 꾸며져 있어 지루하지 않게 걸을 수 있다. ⑤ 영동대교~청담역(1.5㎞/25분) 영동대교 부근에서 흙길이 끝나면 건널목을 건너 현대아파트와 건영아파트 사이 ‘건영길’로 들어선다. 건영길을 따라 쭉 걸어가다 큰길이 나오면 건널목을 건너 정면에 있는 ‘성당길’이라고 쓰여있는 팻말이 있는 곳으로 올라간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조금 가면 ‘세븐일레븐’ 편의점이 보이고,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솔모퉁이 4길’ ‘솔모퉁이 5길’을 지나 ‘솔모퉁이 6길’이 나온다. 6길 오른쪽으로 올라가 ‘청담스포피아’ 건물 주차장 표지판이 보이는 ‘청담공원 1길’로 내려간다. 경사가 다소 심한 편이다. 조금 내려가면 오른쪽에 청담공원이 있는데 나지막한 산에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쉼터와 산책로를 예쁘게 꾸며 놓았다.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나와 다시 청담공원 1길로 더 내려가면 T자형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왼쪽으로 간다. ‘새천년 웨딩홀’이라는 예식장이 보이면 오른쪽으로 조금 간 다음 다시 왼쪽으로 간다. 그러면 큰 길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청담역 13번 출입구가 보인다. &nbsp;알고 가면 더 좋아요 ● 총 걷는 거리: 10.2㎞ ● 총 걷는 시간: 2시간 40분(청담공원 산책시간과 쉬는 시간은 포함하지 않음) ● 찾아가는 길: 지하철 3호선 잠원역 3번 출구 ● 돌아가는 길: 지하철 7호선 청담역 ● 떠나기 전에: 화장실은 한강 시민공원 곳곳에 있다. 날씨가 쌀쌀하니 따뜻한 물과 방한복을 준비하자. 11월 걷기 일정 ● 다섯째 주 | 탕춘대성~홍지문~홍제천 ▶ 관련기사 ◀☞''스마일 워킹'' 몸과 마음에 굿~☞가을의 끝을 잡고 창계천을 따라 걸어봅니다
  • 김인국 신부 "김 변호사 용기, 언론·시민단체가 외면"
  • [조선일보 제공] “지금까지 제기한 (삼성그룹) 의혹과 관련해 구체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제가 잠도 잘 못 자고 심장이 벌렁벌렁합니다. 하지만 그 증거의 세부 내용은 5일 기자회견에서 밝히겠습니다.”지난달 29일 삼성비자금 폭로와 관련해 삼성 전 법무팀장 김용철 변호사를 대신했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하 사제단) 소속 김인국 신부는 2일 오후 8시쯤 충북 청주의 한 성당에서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5일 기자회견장에서 보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라는 말을 수 차례 반복했다.김 신부는 사제단이 삼성비자금 사건에 관여하게 된 이유에 대해 “김 변호사가 몇몇 언론사나 시민단체를 방문했지만 삼성과 관련된 일이라고 관여하기를 꺼려했다고 말했다. 최후로 찾은 단체가 우리였다”고 말했다. 그는 “(김 변호사가) 우리한테 찾아와서 고통을 호소했고, 사제는 듣고 말해야 하는 직분이 있다. 이는 개인의 고통이면서 우리 사회 전체의 슬픔이기 때문에 우리가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5일 기자회견장에 김 변호사가 함께 나왔으면 하는 것이 사제단의 바람이지만 여건상 안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모든 증거를 다 제시하긴 어려울 수도 있다. 순차적으로 밝힐 것이며 삼성과 검찰이 하는 것을 보고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다음은 김 신부와 일문일답.-사제단에서는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관련 재판부 로비 및 증인조작 의혹, 삼성 불법 비자금 조성 의혹, 비자금 검찰 상납 의혹(‘떡값’ 검사 리스트 존재 여부), 이건희 회장이 로비 직접 지시 의혹, 삼성 측의 김 변호사 거액 회유 의혹 등을 제기했다. 구체적인 증거 내용에 대해 말해달라.“구체적인 증거는 있다. 하지만 5일 기자회견에서 밝히겠다. 이제부터 증거와 관련된 인터뷰는 언론과 하지 않기로 했다. 이해해 달라.”-삼성 쪽에서 김 변호사를 회유했다는 문자메시지를 김 신부가 직접 봤나.“나는 못 보고 다른 형제(사제단 신부)가 본 것으로 안다.”-증거가 확실히 있기는 한가.“지금까지 제기한 (삼성그룹) 의혹과 관련해 구체적인 증거가 있다. 그것 때문에 내가 잠도 잘 못 자고 심장이 벌렁벌렁한다. 하지만 그 증거의 세부 내용은 5일 기자 회견장에서 밝히겠다. 지금은 말할 수 없다.”-5일 모든 증거를 다 제시하나.“다 하긴 어려울 수도 있다. 순차적으로 할 것이다. 삼성과 검찰이 하는 것을 보고 달라질 수 있다.”-5일 기자회견장에 김 변호사가 나오는 게 확실한가.“기자회견장에 김 변호사가 함께 나왔으면 하는 것이 사제단의 바람이지만 여건상 안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지난달 29일 삼성비자금 폭로 기자회견 이후 삼성 측과 사제단의 접촉이 있었나.“없었던 것으로 안다.”-지금까지 나온 것 이외에 또 다른 의혹도 있나.“없는 것으로 안다. 지금까지 나온 것만 해도 어마어마하지 않나.”-함께 기자회견 하는 시민단체는 정해졌나.“아직 확정은 안 됐지만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시민단체와 서울에 있는 사제단 형제들이 계속 접촉 중인 것으로 안다.”-삼성비자금과 관련해 사제단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함께 하는 이유는.“김 변호사가 우리한테 찾아와서 고통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사제는 듣고 말해야 하는 직분이 있다. 이번 사건은 한 개인의 고통이면서 사회 전체의 슬픔이다. 김용철 변호사가 이 건과 관련해 다른 언론사나 시민단체를 찾아갔는데 다 못하겠다고 하더라. 신음소리를 세상이 무서워서 못낸다니…. 김 변호사가 최후에 찾은 곳이 사제단이다. 고통, 신음소리를 용기 있게 내 줄 곳이 우리 사회에 없다는 것에 슬펐다. 사제단 마저 외면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삼성은 자신들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때 당국은 ‘탁 치니까 억하고 죽더라’라고 말했다. 이 말로 죽음의 진실이 묻힐 줄 그들은 알았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가지 않았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후에 사제단이 경제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서 호소를 하고 있는 것인데 삼성은 ‘전혀 무관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삼성의 이 말이 20년 전에 했던 되지 않는 변명처럼 들린다. ‘탁 치니까 억하고 죽더라’….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다.”-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이번 일에 사제단이 참여하는데 많은 고민이 있었다. 사제단의 본분은 죄와 허물이 있더라도 끌어안아 주는 것이 본분인데 이번 일은 성격이 다르다. 그래서 (기자회견은 하더라도)삼성을 고소·고발 하지 않는 것인데 검찰에서는 고소·고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사를 할 수 없다고 한다. 이건 정말 말이 안 된다. 검찰은 검찰대로 본분을 다하고, 삼성은 스스로 국민들 앞에서 고백을 하면 국민들이 큰 박수를 보내지 않겠는가.”
붉은산이 활활, 붉은비가 뚝뚝… 단풍수채화에 넋잃다
  • 붉은산이 활활, 붉은비가 뚝뚝… 단풍수채화에 넋잃다
  • ▲ 붉게 물든 단풍잎에서 가을이 깊어졌음을 느낄 수 있다. 지난해 끔찍한 수해를 입었던 남설악 주전골에도 어김없이 단풍이 물들어 찬란한 가을을 노래하고 있다(위). 오대산 두로령 드라이브길에 만난 가을비. 차창의 빗물에 번져가는 단풍이 가을 나들이객을 우수에 젖게 한다.[한국일보 제공] 손톱에 밴 핏물처럼 아리도록 짙붉은 단풍. 단풍잎은 색색의 셀로판 필름처럼,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빛을 색으로 투영한다. 붉은 기운 가득한 공간, 단풍의 그늘 아래 서면 적외선 불빛을 쬐듯 피부를 뚫고 들어온 그 단풍의 빛에 몸 속 깊은 곳에 숨겨놓은 마음이 한껏 달궈진다. 강원의 산자락 단풍이 이제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산 아래로 내려온 단풍 덕분에 힘든 산행을 하지 않고도 쉬운 발걸음으로 단풍이 부리는 색의 조화에 빠져들 수 있다. 쉽게 떠날 수 있는 설악과 오대산의 단풍 코스를 소개한다. 한 곳은 지난해 끔찍한 수해를 입고서도 울긋불긋 단풍꽃을 피워낸 남설악의 주전골이고, 다른 한 곳은 오대산 월정사를 지나 상원사에서 홍천 내면으로 넘어가는 두로령 드라이브 코스다. ■ 수마를 딛고 피워낸 주전골의 핏빛 단풍 한계령 아래 남설악 주전골은 지난해 여름 물폭탄을 맞고 폐허가 됐던 곳이다. 1년이 지난 지금도 그 상처가 아물지 않아 곳곳에서 아픈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인제, 원통을 지나 양양으로 넘어가는 국도44번의 한계령 길. 여기저기서 아직도 공사가 이뤄지고 있는 누더기길이다. 고갯마루 한계령에 올라서면 빨갛고 누렇게 익어가는 설악의 단풍이 내려다 보인다. 멀리서 바라본 설악의 단풍에선 그 지독했다던 수해의 상처가 느껴지지 않는다.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단풍은 여전히 곱고 찬란했다. 주전골 단풍은 계곡 전체를 붉은색과 노란색 그리고 가지가지 색으로 화사하게 물들이고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와 바위가 어우러져 매력적인 풍광을 선사한다. 설악산 단풍객들중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도로에 인접해 힘들이지 않고 단풍 터널 속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계령에서 조금 내려와 설악산국립공원 용소폭포탐방지원센터 주차장에 차를 대고 숲길로 접어들었다. 계곡 초입, 높은 나뭇가지에 걸터앉은 까마귀떼가 마치 사찰 입구의 사천왕처럼 단풍객을 맞는다. 급하지 않게 흐르는 계곡물은 양 옆의 산과 나무 그림자를 비춘다. 그 계곡물을 셀카 삼아 남설악의 단풍은 스스로에게 환호한다. 처음 접하는 주전골 명소는 용소폭포. 10m 높이에서 굵은 물줄기가 짙푸른 소 위로 떨어진다. 기암과 어우러진 단풍터널을 뚫고 내려오다 보니 어른 키 두 배 만한 바위 가운데 사람이 겨우 드나들 수 있는 좁은 공간이 있다. 금강문이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이 좁은 틈새를 통과하지 못한다고 한다. 선녀탕에선 작년 수해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선녀탕 안내판을 보면 맑은 물 가득 담은 소 위에 넓은 너럭바위가 있었는데, 지금은 계곡 위에서 떠내려온 집채만한 큰 바위가 그 곳에 우뚝 서있다. 수마가 실어 온 바위덩어리다. 성국사로 가기 전 주전동굴을 가리키는 안내판이 시선을 끈다. 탐방로 건너편 기암 절벽 밑에 뚫린 동굴을 가리키고 있다. 이 골은 하도 깊어 예전엔 찾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이곳에 승려로 위장하고 엽전을 만들었다는 도적떼들이 숨어살았다고 해서 주전골이란 이름이 유래됐다. 양양군과 오색리 주민들은 이 동굴이 작년의 거센 물살 덕분에 동굴의 입구를 막고있던 나무와 바위가 휩쓸려가서 그 모습이 드러난 주전동굴이라고 주장한다. 조선 때 ‘오색석사’였던 작은 절 성국사를 지나 내려오면 오색약수터다. 다 말라붙었던 약수가 수해 이후 다시 콸콸 쏟아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수마도 양심이 있었는지 몇 가지 혜택은 남기고 갔다. ■ 빗속에 떠나는 단풍 드라이브 오대산 두로령 오대산은 육산(肉山)이다. 설악엔 기묘한 바위가 빚어내는 아름다움이 있다면 오대산에는 넉넉한 품의 여유가 있다. 매표소를 지나 전나무숲, 월정사를 스쳐 오르는 길. 계곡이 깊어질수록 단풍의 빛도 함께 짙어진다. 계곡의 물길을 따라 홍단풍의 붉은 빛이 계속 이어진다. 상원사를 지나 두로령을 넘어 홍천군 내면 명개리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비포장 길이지만 명색이 지방도 446번이다. 이 도로가 일반인들의 차량 통행을 허락하는 기간은 일년 중 7~10월, 넉 달뿐이다. 세조와 문수보살의 전설이 깃든 상원사를 지나 두로령으로 오르는 길은 호젓하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상원사가 최종 목적지이기 때문이다. 비포장 길이지만 승용차로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고개가 높아지면서 단풍은 발 아래로 내려간다. 둥글게 감싼 산세가 연꽃 모양이라는 오대산의 넉넉한 경치가 한 눈에 들어온다. 스님들 공부방인 북대 미륵암을 지나 두로령 고갯마루에 오르니 이곳엔 이미 가을이 깊었다. 잎들이 많이 떨어져 앙상해진 가지 위로 서늘한 기운이 맴돈다. 고개 넘어 명개리쪽은 길이 좁아지면서 가을의 운치를 더한다. 주위를 둘러싼 오대산의 연봉들의 뭉실뭉실한 단풍을 완상하고 있는데 밀려든 먹구름에서 떨어진 빗방울이 차창을 두들겨대기 시작했다. 우중(雨中)의 단풍 구경이라. 색다른 운치다. 수채화로 번져가는 단풍. 차창에 맺힌 빗방울은 붉은 빛을 담아 주르륵 흘러내리고, 노란빛을 또 담아 또로로록 굴러 내린다. 너무 흐려진 차창, 와이퍼로 단풍의 눈물을 닦아내면 선명한 두로령 단풍이 다시 나타났다가 차츰 뭉개져간다. 차창에 맺히는 비의 양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그림에 취해, 뒤에 다른 차가 오는 줄도 모르고 마냥 서있었다. 한 땀 한 땀 발걸음에 가을을 새기려는 단풍 순례객이라면 이 길을 걸어 넘는 것도 방법이다. 상원사 초입부터 홍천 내면 매표소까지 두로령 코스는 18km. 도보로 5,6시간 걸린다. 여행수첩 ■ 주전골 산행은 용소폭포탐방지원센터 옆 주차장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 주차료 5,000원. 1시간~1시간30분이면 오색약수터까지 이른다. 주전골 바로 위 여심폭포와 등선대 등이 있는 흘림골 구간이 2005년 20년 만에 일반에 개방됐지만, 작년의 폭우에 등산로가 크게 훼손돼 아직도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설악산 국립공원 (033)636-7700 ■ 오대산 두로령 출입은 오전9시~오후5시까지로 제한돼 있다. 차량 출입은 이 달 말까지만 허용되니 서둘러야 한다. 고개를 넘어가려면 오후 3시 이전에 상원사 통제소나 내면 매표소를 지나야 한다. 월정사 문화재 관람료 2,500원. 주차료 5,000원. 오대산 국립공원 (033)332-6417 ■ 오대산과 가까운 평창 진부에 고급 펜션 '명지밸리(www. mjvalley.com)'가 최근 문을 열었다. 단독형 6개 동으로 이뤄진 이 펜션은 10명 이상이 함께 머물기에 알맞다. 2층짜리 1개 동에 3개의 침실을 갖추고 있다. 수영장, 찜질방, 노래방, 바비큐장 등도 있다. 비수기 주중 25만원, 주말 30만원, 성수기(여름, 겨울) 주중 30만원, 주말 35만원. 회원제로 분양도 한다. 1구좌당 3,000만원이다. (033)332-0701
브라질 ''상파울루''… 어딜가도 "쌈바''의 열정이 있다
  • 브라질 ''상파울루''… 어딜가도 "쌈바''의 열정이 있다
  • [조선일보 제공] 한국과 정확히 12시간 차이가 나는 지구 반대편 도시 상파울루(Sao Paulo)는 회색 콘크리트 숲과 싱그러운 망고 향기가 어우러진 낙천의 도시다. 미술관의 제복 입은 관리인은 “사진은 찍으면 안 됩니다”라고 제지하는 순간 조차 크게 웃으며 윙크를 날리고 엄지 손가락을 들어 ‘따봉! 따봉!(좋아! 좋아!)’을 외친다. 와글와글한 벼룩시장에서 말 안 통하는 할머니에게서 골동품 목걸이를 사고 과일 주스를 들고 세련된 ‘자르징스’ 지역을 느릿느릿 걸으면서 상파울루에 꽉 찬, 즐거운 에너지에 푹 빠져보자. &nbsp;▲ 리베르다지 벼룩시장에서 노래를 부르며 주말을 즐기는 ‘파울리스타’(상파울루 사람)들.▲ 상파울루 거리에서 맛깔진 공연을 펼치고 있는 어린이들. &nbsp;상파울루 탐험 1 _ 벼룩시장 사이를 누비는 즐거움&nbsp;상파울루 미술관(MASP·Museu de Arte de Sao Paulo) 1층은 일요일마다 ‘MASP 골동품 벼룩시장(Feira de Antiguidades do MASP)’ 덕분에 활기를 띈다. 꽃 모양 자개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약 80R$·1Real=약 500원), 초록·붉은 색을 입힌 크리스털 와인 잔(약 60R$), 나무에 손때가 묻은 작은 의자(약 55R$)에서부터 망가진 전화기, 다 찢어진 엽서 등 고물에 가까운 ‘가격 책정 불가’ 상품까지 온갖 골동품들이 가판에 펼쳐져 있다. 시장에는 그저 구경 나온 사람들도 많은 듯 매대 앞에 아예 주저 앉아 오래된 엽서와 LP와 책들을 들춰보는 사람들이 꽤 눈에 띈다. 시장의 상인들은 영어를 거의 못한다. 대신 웬만큼 쓸만한 물건에는 대부분 가격이 붙어있으니 매대 사이를 누비며 필담과 ‘보디 랭귀지’를 통해 골동품을 쇼핑하면 된다. 가격이 붙어있는 상품에 대해서는 브라질 사람들도 대부분 흥정하지 않고 사는 분위기다. MASP에서는 브라질 사람들의 모습을 색 깊게 그려낸 브라질 대표 화가 칸디도 포르티나리(Portinari)의 작품을 비롯해 파블로 피카소,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앙리 마티스 등 유명 화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15R$(월요일 휴무, 오전 11시~오후 6시). Av. Paulista, 1578·메트로 ‘Trianon MASP’ 역·http://masp. uol.com.br 길 건너 ‘트리아농 공원(Parque Trianon)’은 울창한 정글 분위기로 지친 다리를 잠시 쉬어가기 좋다. ‘리베르다지(Liberdade) 벼룩시장’은 일본인 타운과 가까워 아시아 분위기가 물씬 난다. 판매 제품들은 기모노를 입은 인형, 한자로 쓰인 부적 등 한국 시장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이다. 이들이 뭐 그렇게 신기하고 재미있는지 브라질 사람들이 매대 사이사이 꽉꽉 들어차 있어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먹거리가 있는 곳은 특히 북적거린다. 볶음국수(야키소바·작은 접시 7R$·큰 접시 8R$)나 초밥(6조각 7R$), 다코야키(4개 4R$) 등 일본 음식이 대세인데 야키소바 앞 줄이 가장 길다. ‘치킨’과 ‘비프’ 두 종류인데 ‘믹스’라고 하면 적당히 섞어 준다. 약간 짠 편이지만 싱싱한 향이 살아있는 양배추가 듬뿍 들어서 씹는 맛이 있다. 싱싱한 과일을 즉석에서 갈아주는 생과일 주스는 3R$. 메트로 ‘Liberdade’ 역. 상파울루 대성당(Catedral Metropolitana) 등 브라질의 역사적 건물들과 가까운 메트로 ‘Republica’ 역 앞에서 매주 일요일 오전 8시~오후 2시 열리는 ‘헤푸블리카 벼룩시장(Feira da Republica)’에는 손으로 짠 니트나 가죽 구두처럼 수공예품이 많다. &nbsp;상파울루 탐험 2 _ 멋쟁이들의 아지트 ‘자르징스(Jardins)’ ▲ 음악이 흐르는 레스토랑 ‘Salva Jorge’의 하우스 샐러드.북적이는 벼룩시장이 상파울루의 ‘캐주얼 복장’이라면 한껏 차려 입은 아가씨들이 가득한 ‘자르징스’ 지역은 이 도시의 ‘정장 차림’을 연상케 한다. ‘자르징스’는 ‘정원’이라는 뜻으로 캐나다 콜롬비아 맥시코 아르헨티나 쿠바 등 나라 이름을 딴 재미있는 도로명이 많은, ‘스타일 거리’다. 칼 자르듯 정의된 구역은 없지만 대략 메트로 ‘Consolacao’ 역에서 ‘하더키 로보 길(Rua Haddok Lobo)’을 따라 ‘브라질 길(Av. Brasil)’에 이르는 지역을 어우른다. 문도 없이 앞이 뻥 뚫린 가게들과 제멋대로의 낙서가 많은 상파울루의 다른 지역들과 달리 이 지역의 가게들은 작은 매장에도 덩치 좋은 경호원들을 배치하고 두꺼운 보안 문을 설치해 놓았다. 몇몇 가게는 문이 아예 잠겨 있어 안에서 열어야 들어갈 수 있다. 처음에는 ‘뭐 이렇게 유난스러워’ 싶지만, 매장에 살짝 접근하기만 하면 경호원들이 웃으며 문을 열어줘 마음이 풀린다. 상파울루의 치안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안전하단 느낌마저 든다. 자딩스 지역의 중심 도로는 ‘하더키 로보 길(Rua Haddock Lobo)’과 ‘오스카 프레이레 길(Rua Oscar Freire)’이다. ‘하더키 로보 길’에는 카르티에, 불가리, 티파니, 살바토레 페라가모, 루이뷔통 등 명품 브랜드가 즐비하다. ‘오스카 프레이레 길’은 작고 아기자기한 현지 브랜드가 많아 걸으며 구경하는 재미가 더하다. 번쩍이는 입구에 커다란 다이아몬드 모양 조각이 공중에 걸린 ‘갤러리아 멜리사(Galleria Mellisa·Rua Oscar Freira, 827· www.melissa.com.br/galleriaonline)’는 위압적 외관과 달리 저렴한 브라질 디자이너들의 제품을 많이 갖춰놓고 있다. 미술관처럼 꾸민 내부 인테리어도 구경거리다. 브라질 대표 디자이너 알렉샨드리 헤르코비치(Herchcovitch)의 연두색 ‘뾰족 하이힐’은 79R$, 플라스틱 샌들은 40R$. ‘페이퍼 하우스(Paper House· Oscar Freire, 281·www.paperhouse.com.br)’에는 알록달록하고 신기한 문구류가 가득하다. 이밖에 ‘닥터 멜로 아우비스 길(Rua Dr. Melo Alves)’에는 인테리어 숍들이 많은데 노랑 주황이 어우러진 그래피티 풍 만화로 입구를 장식한 ‘플라스틱(Plastik·Rua Dr.Melo Alves, 459·www.plastiksp.com.br)은 정교한 장난감과 2층의 팝 아트 미니 갤러리가 웃음을 자아내는 곳이다. 상파울루 탐험 3 _ 맛집 누비기 ▲ 상파울루의 최고 스타일리시한 거리 ‘자르징스’에 있는 인테리어숍 ‘플라스틱’.DOM|뉴욕서 명성을 떨치던 요리사 알렉스 아탈라(Atala)가 몇 년 전 고향 상파울루로 돌아와 자르징스 지역에 문을 연 레스토랑. 튀긴 망고를 올린 코코넛 스캘롭 등 창의적인 요리가 많다. 치킨·생선 요리 중 하나와 참치 무스, 샐러드가 포함된 ‘비즈니스 런치 세트(월~금요일)’ 38R$, 코코넛 스캘롭 50R$, 메인 요리는 60~90R$ 정도. Rua Brao de Capanema, 549·http://domrestaurante.com.br Gero|상파울루 레스토랑의 수준을 올려놓았다고 평가 받는 ‘파사노 호텔’ 그룹이 내놓은 레스토랑. 오리고기를 넣은 파스타 ‘파르파델리(Parpadelle)’ 46R$. Rua Haddock Lobo, 1629· www.fasano.com.br Salve Jorge|평일엔 넥타이를 맨 ‘금융맨’들로 북적거리다 주말이면 거리 공연장으로 바뀌는 ‘15 지 노벰브로(15 de Novembro)’ 거리 부근에 있는 식당. 흥겨운 보사노바 공연이 열린다. 하우스 샐러드 18.80R$, 브라마 엑스트라(Brahma Extra) 맥주 한 병 4.50R$. Rua Boa Vista, 192 http://barsalvejorge.com.br Cafe do Pateo|포르투갈인이 브라질에 초기 정착할 때 만든 역사적 교회 ‘파치오 도 꼴레지오(Patio do Colegio)’ 안에 위치한 노천 식당. 바로 앞의 사각 정원이 예쁘다. 에스프레소 2.50R$, 상파울루 451 샌드위치 16.90R$, 로얄라(Loyala) 샐러드 12.10R$. 메트로 ‘Sao Bento’ 역이나 ‘Anhangabau' 역과 가깝다. Numero 2-Centro·www.pateodocollegio.com.br
''이탈리아노''처럼 여유있게 살아보기
  • ''이탈리아노''처럼 여유있게 살아보기
  • [조선일보 제공]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어른 알프레도를 울렸던 그 필름을 돌리던 작은 극장은 어디 있을까. 정답은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도시 ‘팔레르모(Palermo)’ 근교. 이 곳은 영화 ‘대부’와 ‘말레나’의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다. 버스·지하철을 이용하기도 좋고, 대자연과 도시의 매력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는 팔레르모. 이 곳에서 현지인처럼 살기 위한 필수 조건은 이렇다. 첫째, 집을 구할 것. 둘째, 자동차보다는 스쿠터를 탈 것. 셋째, 시칠리아인 특유의 느긋함에 익숙해지고, 사람들과 흥정하는 법을 배울 것. 이 세 가지를 갖추면 일단 반은 성공이다. 팔레르모 대학에서 사진과 비주얼 아트를 강의한다는 산토(Santo Eduardo Dimiceli)는 “현지인처럼 살려면 잠을 많이 자고, 느리게 먹고, 도둑을 피해 다니는 조심성과 바가지를 씌우는 상인들을 구워 삶는 노련한 자세가 필수”라고 충고해줬다. ▲ 팔레르모 근처 몬델로 해안가에 위치한 주택가의 모습. 첫날 근처 시장과 시내의 극장들을 둘러보았다면, 둘째 날부터는 인근 교외의 휴양지와 작은 서점, 카페들을 둘러보면서 시칠리아 사람 특유의 느긋함에 적응해보자.‘느리게 살라’는 팔레르모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이자 철학이다. 굳이 시간을 쪼개서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된다. 약속에 좀 늦는다 해도 사람들은 그다지 화내지 않는다. 어차피 작은 도시 팔레르모 안을 돌아다니다 보면 친구를 다 마주치게 될 테니까. 다른 섬으로 떠나는 배가 하루 쉰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오후 8시를 넘어야 저물기 시작하는 긴 태양은 점심을 느긋하게 먹고 지인과 커피를 마시며 오래 수다 떨어도, 일을 마친 후 집까지 걸어간다 해도, 아직 하루가 꽤 많이 남았다는 생각마저 갖게 해준다. 팔레르모 사람들은 이방인들에게도 관대하고 친절하다. 사람들의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약간의 귀찮음을 감수할 수만 있다면, 어딜 가도 곧 친구를 사귈 수 있다. 시장통에서, 카페에서, 시청 앞에서 당신이 낯선 나라의 지리와 관습을 몰라 쩔쩔매고 있다면,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자. 당신과 눈을 맞추고 “도와줄까?”라고 묻는 선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 단 하나 조심할 점, 도둑도 그만큼 많으니 지갑과 여권은 언제나 소중히 간직할 것. ▲ 팔레르모에서 현지인처럼 지내고 싶은 이에게 스쿠터나 오토바이는 필수 아이템. 남녀노수 할 것 없이 누구나 ""씽씽족""의 자유로움을 즐긴다.아파트 빌리기 & 스쿠터 마련하기팔레르모의 집은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대부분이 1주일~한 달 기준으로 방을 빌려주는데, 100~1000유로(1유로=약 1300원)까지 다양하다. 시장 근처의 집들은 싸지만 위험하다. 해변가를 중심으로 늘어선 집들은 인터넷으로 예약이 가능하다. 미디어베케이션렌털닷컴(www.media vacationrentals.com)에서 소개하는 테라스가 있는 방에 침대와 주방을 갖춘 곳은 1주일에 최소 330유로, 홈어웨이닷컴(www.homeaway.com)에서 소개하는 침실 세 개, 욕실 1개가 있는 집은 일주일에 500유로다. 방 하나만 원할 경우, 200~300유로에 빌릴 수 있다. 테라스에 앉아 눈부신 바다와 파란 하늘을 감상할 수 있고, 몇 발짝만 걸어나오면 매일 아침 열리는 벼룩시장에서 사람들과 섞여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를 만들 수도 있다. 팔레르모에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동차보다 스쿠터를 더 많이 탄다. ‘베스파’ 같은 예쁘고 인기 있는 스쿠터를 빌리려면 하루에 40~50유로 안팎(일주일에는 200~250유로 안팎)을 줘야 한다. 빌리는 기간이 늘어나면 싸진다. 인터넷보단 직접 빌리는 게 싸다. 비아지 에 투리스모(Viaggi e Turismo·091-662-2372)는 팔레르모 시내 큰 길 ‘비아 로마(Via Roma)’ 한복판에 있어서 찾기 쉽다. 중고 스쿠터는 한 대에 500~1000유로 안팎. &nbsp;레스토랑 대신 시장에서 장보기 시칠리아의 시장은 남대문 시장 같다. 없는 것이 없고, 구성진 노랫가락이 곳곳에서 울려 퍼진다. 음식을 살짝 맛본 후, 사지 않아도 크게 노하는 사람도 없다. 시장통 주인 아저씨에게 “목이 마르다”고 말을 걸면, 기꺼이 물 한 컵을 내주기도 한다. 팔레르모에선 부치리아 시장과 델 카포 시장, 발라로 시장, 이 세 곳이 가장 유명하다. 이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것이 부치리아 시장(Vucciria)이다. 각종 해산물과 과일, 시칠리아의 길거리 음식은 물론, 권총 모양의 라이터와 아이 다리 크기만한 호박, 영화 ‘대부’에서 알파치노가 썼던 것과 비슷한 ‘시칠리안 모자’까지 없는 게 없다. 식재료 용으로 내다 파는 달팽이와 호박꽃, 사람 다리만한 가지도 볼 수 있다. 델 카포(Del Capo) 시장은 사람 구경을 하기 좋은 곳이다. 시장 구석구석에 잼과 파스타 소스를 파는 작은 가게들이 있어 골목골목 심심하지 않다. 시장 안에 작은 성당들도 볼거리. 이 곳 사람들은 시내 대성당보다 이렇게 시장 어귀 안에 있는 작은 성당에서 잠깐씩 예배를 보고 간다. 파로치아 디스 이폴리토(Parrocchia Dis Ippolito)가 대표적이다. 시장은 새벽 4시에 잠을 깬다. 어부들은 전날 밤 티레니아 해에서 잡아 건진 생선들을 시장으로 옮기기 시작하고, 상인들은 물건을 늘어놓는다. 새벽 6시만 되면 시칠리아 사람들의 물결이 시작된다. 이른 아침부터 여기저기서 고함을 들려온다. “토마토 1㎏에 단돈 3유로!” 포도(uva) 0.5㎏를 2.5유로에 샀다. 껍질을 벗겨 먹는 달콤한 시칠리아의 선인장 열매는 보통 1㎏에 약 4유로에 판다. 이 곳 사람들은 농담처럼 “부치리아 시장 바닥이 마른다면” 이란 말을 주고 받는다. ‘절대 그럴 일이 없다’는 뜻이다. 수많은 현지인들의 축축한 땀 냄새로 가득 찬 팔레르모의 붐비는 시장통을 연상하면 이해가 될 법도 한 말이다. 쉽게 만드는 '이탈리아 가정식' 산토는 “시칠리아 음식은 대단히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팔레르모가 해안을 끼고 있는 만큼, 주 재료는 역시 해물. 특히 오징어(calamari)가 싱싱하다. 이 곳 사람들은 아침은 보통 바에서 커피와 브리오슈(빵 종류)를 서서 먹는 것으로 때운다. 대신 점심은 오전 11시30분부터 늦게는 오후 3시까지 그야말로 ‘길게’ 먹는다. 제일 먼저 파스타 전에 나오는 음식인 ‘안티파스타(Antipasta)’를 먹고, 그 다음엔 파스타와 리조또를 먹은 후, 메인요리로 스테이크나 생선 요리를 먹고, 디저트와 커피로 마무리하는 식이다. 늦게까지 점심을 먹었으니 저녁도 늦게 먹을 수밖에. 시칠리아 레스토랑들은 대부분 오후 9시~10시에 저녁 영업을 시작한다. 서서 먹는 저녁밥을 파는 바(bar)도 많다. 집에서 만들어 먹는 가장 일반적인 ‘안티파스타’는 ‘해물 샐러드’(insalate frutti di mare). 보통 문어를 끓는 물에 삶아 먹기 좋게 자른 후, 절인 올리브와 양파와 각종 야채를 넣고 버무려 먹는다. 오징어 튀김(calamari fritti)도 어느 곳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 싱싱한 오징어를 잘 손질해 녹말가루를 묻혀서 올리브 기름에 튀겨낸 후, 레몬이나 라임을 잘라 튀김 위에 뿌려주면 된다. 쌀과 고기를 둥글게 빚어 튀긴 ‘아란치(Arancie)’도 인기 있는 현지 음식이다. 먼저 소스 팬에 오일과 버터를 넣고, 양파와 샐러리, 당근을 다져 함께 볶아준다. 소금과 후추, 허브를 넣고 양념한 다진 돼지고기를 넣고 함께 볶다가 스파클링 와인을 한 숟갈 넣어준다. 따뜻한 물을 한 컵과 쌀 한 줌을 더 넣고, 충분히 익혀준다. 달걀 노른자와 파마산 치즈를 섞어서 둥글게 손으로 빚은 후, 밀가루에 묻혀 올리브 오일에 노릇노릇하게 튀겨주면 된다. ▲ 오페라 극장 앞은 만남의 장소다. 오후만 되면 친구를 기다리는 젊은이들로 붐빈다.카페에서는 시칠리아의 커피는 대부분 브라질에서 수입해 온 것. 커피를 주문할 때 ‘운 카페(un caff?)’라고 하면 에스프레소를 준다. 이보다 조금 연한 커피는 ‘카페 룽고(caff? lungo)’. 같은 에스프레소 잔에 좀 더 묽은 커피를 담아준다. 이보다 더 연하고 양이 많은 커피를 먹고 싶다면 ‘카페 도르조(caff? dorzo)’를 주문할 것. 조금 더 큰 컵에 설탕 없이도 마실 수 있는 연한 커피를 내준다.&nbsp;▲ 점심을 오래 먹는 대신 저녁은 오후 9시쯤 바에 서서 간단히 때우는 게 이 곳 사람들의 특징이다.현지인들이 가는 여행지 팔레르모 사람들이 주말에 가장 많이 가는 근교 여행지는 몬델로(Mondello)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스투르초(Sturzo) 광장에서 1유로를 내고 806번 버스를 타면 된다. 30분 정도 달려가면, 코발트 빛으로 빛나는 바다가 눈부신 해변가 마을 몬델로에 도착한다. 작은 서점과 레코드 가게, 카페들이 늘어서 있어 토요일 오후 한낮을 여유롭게 보내기엔 제격이다. ▲ 펠레그리노 산 속 도로를 달리는 바이크 족. 이 곳에 서면 팔레르모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시칠리아의 깎아지른 절벽과 산을 구경하고 싶다면 역시 스투르초 광장에서 826번 버스를 타고 탄산수 산 펠레그리노(San Pellegrino)가 나오는 곳으로 유명한 몽테 펠레그리노(Monte Pellegrino)로 갈 것. 30분이면 갈 수 있다. 버스가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준다. 산 아래에서 팔레르모 시내를 한 눈에 굽어볼 수 있다.&nbsp;&nbsp;▲ 시내 한복판을 점령한 ""훈남""들. 선글라스를 머리에 얹고 몸에 붙는 티셔츠를 입어주는 게 이 곳 멋쟁이들의 법칙.스키니 진과 원색 티셔츠는 기본 ‘비아 로마’ 길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팔레르모 시내는 우리나라 서울의 명동과 분위기 비슷하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멋쟁이 청소년들이 커플로 손을 잡고 다니는 ‘훈훈한’ 광경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 곳에 있는 오페라 극장은 특히 젊은이들에겐 ‘만남의 장소’로 통한다. 오후 7시를 넘기면 친구를 기다리는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쇼핑도 충분히 즐길 만하다. ‘자라(Zara)’, ‘H&M’, ‘시슬리(Sisley)’, ‘페르지(Fergi)’ 같은 중저가 브랜드들이 많아, 한국에서부터 몇 주치의 옷가지를 굳이 싸올 필요를 못 느낀다. 이 곳에서 멋쟁이가 되려면 일단 스키니 진과 원색의 티셔츠를 소화할 몸매부터 갖춰야 한다. 검정색 스키니 진에 플랫슈즈를 신고, 몸에 달라붙는 원색의 티셔츠를 입을 것. 고글 선글라스나 테두리가 화려한 안경도 이 곳에서 인기다. ●항공권 정보 여행사 투어익스프레스에 따르면, 11월에 인천공항에서 로마로 떠나는 항공권은 에어프랑스는 75만2000원, 루프트한자는 75만2000원, 영국항공은 64만6000원, 일본항공은 66만5000원, 케세이퍼시픽항공은 68만4000원. 인천에서 로마를 경유해 팔레르모에 도착하는 왕복 할인 항공권도 있다. 알이탈리아항공을 이용하면 성인 2명이 함께 예약할 경우 1명의 요금이 109만3500원, 성인 3명이 함께 예약할 경우 1명의 요금이 99만7500원이라고. 모두 세금은 뺀 가격이다. ▶ 관련기사 ◀☞현지인처럼 살기… 그들의 삶을 여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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