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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궁 덕 칼럼]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들
- [남궁 덕 콘텐츠전략실장]서지현 검사에서 시작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 그 피해자가 대개 여성이고, 얼굴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아서다. 그러나 이윤택 김기덕 조민기 윤호진 배병우 박재동 조재현 등이 성추행 또는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폭로가 잇따랐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가면이 벗겨지면서 ‘미투’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안 전 지사의 수행 비서였던 김지은 씨는 지난 5일 한 방송에 출연 해 “지난 해 6월 말부터 8개월간 네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 당시 저는 늘 지사님 표정 하나하나에 맞춰야 하는 수행 비서였고 거절할 수 없는 위치였다. 제가 원해서 했던 관계가 아니다”고 밝혔다. 안 전 지사는 지난 19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후보경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이어 2위를 한 데다 폭로직전까지 차기 대선 유력후보였다. 그는 파문이 커지자 이튿날 새벽 페이스북에 성폭행을 인정하고 일체의 정치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8일 예고한 자청 기자회견도 취소했다. 한방에 훅 갔다. 용기 있는 ‘미투’로 살아있는 권력을 떨어뜨린 것이다. 그의 낙마와 낙마의 원인이 된 도덕불감증과 이중성이 6월 지방선거의 판세를 바꾸고, 권력 지형도를 바꿀 변수로 떠올랐다. 정봉주 전 의원도 지난 7일 예정된 서울시장 후보 출마 기자회견을 미뤘다. 그도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다. 최근 몇 주 사이에 소설 몇 권을 읽은 느낌이다. ‘미투’로 드러난 일들이 소설 속의 허상이었으면 한다.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다시 꺼내들었다. 주인공 한병태는 공무원인 아버지의 좌천으로 열두 살에 서울에서 읍으로 이사 가면서 볼품없는 시골 학교로 전학 간다. 시골학교엔 민주주의가 없고, 급장 엄석대의 전횡만 있을 뿐이다. 병태는 엄석대에게 반기를 들며 외로운 싸움을 시작하지만 결국 굴복하고, 그의 밑에서 ‘평화’를 찾는다. 석대의 편애로 학급 내에서의 대우도 달라진다. 6학년이 되면서 새로 맞은 담임은 석대의 전횡을 바로 잡는다. 석대가 담임의 회초리에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본 아이들은 석대의 만행을 하나씩 실토하기 시작한다. 분노하며 뛰쳐나간 석대는 하교하는 아이들을 기다려 응징하지만 “다섯 명이 한 놈한테 하루 종일 끌려 다녀? 병신 같은 자식들”이라는 담임의 말에 고무된 아이들이 단결함으로써 ‘석대 시대’는 종언을 고한다.‘완장’ 찬 권력은 법과 예산 인사권 등 통제 시스템을 통해 힘을 발휘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미투’에서 드러난 성폭행이나 성추행처럼 약자의 빈틈을 가차 없이 파고드는 속성이 있다. ‘미투’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는 단순한 성폭력이 아니다. 우월한 지위와 권력을 무기로 성(性)마저 갑질의 도구로 삼는 특권의식이 낳은 범죄다. 이보다 더한 적폐는 없다. 미투 운동이 확산되는 건 우리 사회가 ◇비밀이 없고 ◇공짜 점심이 없고 ◇용서도 없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는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권력형 성폭행이 우리 사회의 오피니언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문화예술계와 법조계, 교육계, 종교계에서 터진 데다 권력을 위임받은 정치인으로 불똥이 튀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는 게 이를 잘 말해준다.이제는 저급한 권력형 성폭력을 뿌리 뽑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양성평등을 실현할 법적·제도적 방안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전통적인 위계질서의 재편도 필요하다. 특권과 반칙의 ‘완장문화’를 걷어내고 소통과 공감, 평등이라는 새 시대 가치관을 반영하는 시스템 업그레이드에 나서야 한다. 요즘 직장 내에서 ‘미투’ 역풍으로 여직원과 가급적 대화하지 않고, 카톡으로 지시하는 등 과도하게 여성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과도한 경계를 ‘펜스 룰(Pence Rule)’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분위기가 감지된다는 얘기다. 펜스 룰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2002년 미국 의회 전문지 ‘더 힐’ 인터뷰에서 “아내 이외 여자와는 절대로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고 말해 유래했다.괴물이 된 권력을 고발하는 게 ‘미투’다. 가증스런 두 얼굴의 영웅들이 문제지, 여성이 문제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