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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살 소녀의 거침없는 성공기,윤하 "난 내 음악을 해요"
- [이데일리 최은영기자] 2007 메가톤급 신인 윤하의 행보가 거침이 없다. 윤하는 3일 '비밀번호486'으로 SBS '인기가요' 1위에 해당하는 뮤티즌송을 수상했다. 5월 20일 수상에 이은 두 번째 정상. 이제 막 정규앨범을 발표한 신인이 이룬 쾌거라 하기엔 대단한 성장 속도다. 윤하는 "10년 뒤에나 가능한 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빨리 1위 트로트를 받게 돼 감격스럽고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무릇 스타에겐 나름의 성공 비결이 있게 마련이다. 직접 만나본 윤하에게선 3색 매력이 전해졌다. 상큼한 외모, 풍부한 가창력과 능숙한 무대 매너, 그리고 나이를 능가하는 음악에의 열정이 바로 그것이다. ◇ 중3 때부터 오디션 도전, 대형 기획사에서 20번 넘게 낙방 "요즘 인기를 실감하느냐" 묻자 윤하는 "인기보다는 노래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많아져 기분이 좋다"며 순간의 인기에 일희일비 하지 않는 진중함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데뷔 당시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는 천상 10대 소녀다. 윤하는 "데뷔 당시엔 사실 가수보다 스타로 비춰지고 싶은 욕심이 컸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윤하가 가수의 꿈을 안고 기획사를 찾아다니기 시작한 건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대 부분의 사람들은 그녀가 운이 좋아, 혹은 천부적인 자질 탓에 고생 없이 스타덤에 올라선 샛별로만 기억한다. 하지만 여느 사람들에 비해 출발이 빨랐을 뿐, 윤하에게도 가수, 그리고 스타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스무번 넘게 오디션을 봤을 거예요. SM, YG, JYP 등 줄줄이 낙방했죠. 지금의 소속사 스탐과 계약을 맺는 일도 쉽지만은 않았어요. 떨어져도 좋으니 오디션만 보게 해달라고 몇 번을 찾아간 끝에 기회를 잡았죠. 운도 따랐네요. 그날 마침 비가 왔거든요. 우두커니 비를 맞으며 밖에 서 있는 제가 불쌍해보였는지 일단 좀 들어와서 기다리라 하셔서 오디션 보게 됐죠. 그후로도 오디션은 다섯번이나 더 봤어요. 합격 소식을 접했을 때 뛸 듯이 기뻐 날아갈 것 같았죠." 가수의 꿈을 키우게 된 건 SBS '세기의 대결'에 출연하면서부터다. '세기의 대결'은 강타와 문희준이 진행하는 서바이벌 형식의 연예인 발굴 프로그램이었다. 순전히 재미 삼아 도전해본 무대였다. 하지만 예상 밖의 결과는 그를 가수로 키웠다. 수만명의 응시자가 지원한 가운데 최종 20명에 드는 결과를 받아든 윤하는 "비록 결선에서는 떨어졌지만 가수로의 자질을 깨닫게 해준 소중한 기회가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 '피아노 록'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음악으로 사랑받는 윤하(사진=스탐)◇ 日 데뷔 초기 고생 잊지 못해, 2명의 청중 앞에서도 노래해 윤하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일본에서 먼저 데뷔해 한국으로 역진출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윤하는 "거기서 데뷔만 하면 '고생 끝 행복 시작'으로 알았는데 진짜 고생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고 일본 데뷔의 고생담을 되뇌였다. "2004년 8월이었어요. 전 가수가 되면 누구나 전광판에 커다랗게 이름과 얼굴이 새겨지며 화려하게 데뷔하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기대했던 화려한 데뷔식은 간데 없고 공연을 한다고 가보면 관객이 딸랑 두 명 뿐이질 않나... 그때 실망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몰라요. 그래서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아요. 끝도 없는 시련이 절 단단하게 단련시킨 셈이죠." 윤하는 일본 후지TV에서 방영된 '도쿄만경' OST에 '유비키리(약속)'과 '이프(IF)' 두 곡을 수록하며 일본서 먼저 데뷔식을 치뤘다. 하지만 오리콘 차트에 이름을 올리며 제대로 두곽을 나타내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8개월쯤 후 싱글 '호우키보시(혜성)'를 발매하면서부터다. 윤하는 일본에서 애니메이션 주제가 '호우키보시'로 인기를 얻을 당시 '오리콘 혜성'으로 불리며 '제2의 보아'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윤하는 일본서 활동 당시 선배 가수 보아와 만난 날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활동하며 보아 선배를 두 번 정도 만났어요. 저보다 한참 선배시잖아요. 그래서 잔뜩 긴장해 있는데 선배가 먼저 반갑다며 친근하게 말을 걸어 주시더군요. '난 피아노 치는 여자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다'며 노래 잘 하더라 칭찬도 해주시고 말이죠.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피아노 록'이라는 독특한 장르로 침체된 가요계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고 있는 열아홉 소녀 가수 윤하. 윤하는 올 한해 더욱 바쁜 행보를 이어갈 예정으로 있다. 한국에서의 정규앨범 활동이 끝나는대로 일본으로 건나가 싱글 앨범을 연내 추가로 발표한다. 지금은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하는 윤하로 기억되지만 언젠가는 연기를 하며 노래하는 만능엔터테이너 윤하를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윤하는 "자신이 추구하는 삶은 표현자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라면서 지금 보다 한차원 높은 비상을 기대하게 했다. ▶ 주요기사 ◀☞가수 방실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늘 내일이 고비☞'태왕사신기' 잇단 연기에 MBC 노조 강경 비난 성명☞이창동과 마틴 스콜세지, 하정우 주목☞조영구 열애 신재은, "나이 차요? 오빠 젊어보이잖아요."
- 장윤정 "연예인으로 사는 것, 유리 집에 있는 느낌"
- [이데일리 SPN 최은영기자] 장윤정(27)은 경계가 없는 가수다. 댄스가수로 음악을 시작해 지금은 트로트퀸으로 불리고, 노래를 업으로 삼고 있지만, 연기에 MC까지 주어진 일을 장르불문, 무엇이든 해낸다. 성인가요 무대에선 원로가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다가, 오락프로그램 등에선 또 10대 스타들과 제대로 섞여 통통 튀는 매력을 발산한다. 때문에 장윤정의 팬층은 폭이 넓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꼬맹이들도 장윤정의 노래는 동요처럼 따라 부르니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장윤정은 얼마전 20대 가수로는 유일하게 어버이날 디너쇼도 성황리에 마쳐보였다. 장윤정의 디너쇼는 이번에도 매진사례를 기록하며 그녀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저로서는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죠. 디너쇼를 하는 가수들 대부분이 30-40년 경력의 대선배님들 뿐인데 히트곡도 몇 안 되는 제 무대를 찾아주시니 말예요. 디너쇼 무대에서는 제가 20대 젊은 트로트 가수로 히트곡이 많지 않다는 게 오히려 경쟁력이 있는 것 같아요. 히트곡이 많지 않으니 제 나이에 맞는 댄스나 발라드를 많이 곁들여 선보이게 되거든요. 그런데 그게 또 어르신들한테 반응이 괜찮더라구요." ◇ 사랑받는 기쁨, 하지만 공허함도 커 1집 '어머나'부터 시작해 최근 3집 ‘이따이따요’ ‘어부바’까지, 발표하는 노래마다 연속 히트, 불패신화를 이어가고 있는 그녀다. 한결같은 인기의 비결을 묻자 "'어머나'에 대한 기대감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듯 하다"는 겸손한 대답이 이어졌다. 발표하는 노래마다 연속 히트를 기록,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입장이니 하루 하루 신바람이 절로 날 듯 싶다. 하지만 장윤정은 스타가 된 소감을 묻자 "최근 들어 이따금씩 우울해질 때가 있다"고 뜻밖의 대답을 했다. "전 성격적으로 우울과는 거리가 먼 스타일이에요. 그런데 요즘 웬일인지 가끔씩 우울해져요. 특별히 안좋은 일도 없는데 말이죠. 너무 제 생활이 없어 그런가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향해 달리는 느낌이 들 때 더 공허해져요. 누군가는 그러데요. 연예인으로 산다는 건 유리로 지어진 집에서 사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TV에서 만나는 장윤정은 털털함 그 자체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그녀에게는 안티가 없다. 오히려 연예인스럽지 않고, 너무 격이 없어 탈이라는 지적도 받는다. ▲ "이따이따요"에 이어 후속곡 "어부바"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가수 장윤정"사람들은 제가 마냥 편한가봐요. 분명 좋다는 표현인데 때론 적잖이 당황스러울 때가 종종 있어요. 아버지, 어머니 같은 분들이 엉덩이를 툭 건드리면서 '윤정아 살 좀 쩌라' 하기도 하구요, 한번은 시간이 없어 급하게 뛰어가는데 한 남성 팬이 목걸이를 확 당기는 바람에 살짝 다쳐 피가 나기도 했어요. 친근하게 여기고 좋아하는 건 감사한데, 다소 과격한 표현만큼은 사양할래요. 저 이래봬도 스물일곱살의 부끄럼 많이 타는 아가씨거든요.” 나이 얘기가 나온 김에 결혼은 차치하더라도 연애는 안하냐고 물었다. "노래하는 재미에 푹 빠져 살다보니 그간 한 눈 팔 새가 좀처럼 없었다"는 장윤정은 "평범하면서도 듬직한 남자가 좋다"며 이상형까지 말했다. 그런데 상대로 연예인은 절대 사절이란다. "연예인은 아픈데 안 아픈 척, 싫은데 좋은 척 늘 웃어야 하는 사람들인데 척 하는 사랑에 넘어가면 곤란하지 않느냐"라는 게 그 이유였다. ◇ 오랜 시련이 지금의 장윤정을 만든 힘! 뚝배기 같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파 장윤정은 지난 99년 강변가요제에서 라틴 댄스풍의 '내안의 넌'으로 대상을 수상하며 가요계와 연을 맺었다. 하지만 처음엔 불러주는 기획사가 없었다. 어렵사리 찾아온 기회는 기획사의 경영 악화로 음반 기획이 좌초, 4년이라는 시간만을 앗아갔을 뿐이다. 현 소속사에서 트로트곡 '어머나'를 불러보지 않겠느냐며 제의를 해왔을 때 '이제 별 제안을 다 받는구나'라는 생각에 서러워 펑펑 울었다는 일화는 이미 너무 유명하다. 하지만 그 길고 긴 좌절의 시간이 그녀에겐 오히려 피가 되고 살이 됐다. 그녀는 당시의 시련이 없었다면 지금의 트로트퀸 장윤정도 없었을지 모른다고 힘주어 말했다. 장윤정은 색깔로 말하자면 '흰색', 사물로는 '뚝배기' 같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했다. "흰색에는 어떤 색깔을 입혀도 발색이 잘 되잖아요. 이 세상 그 어떤 색과도 조화롭게 잘 어울리구요. 그리고 전 항상 뚝배기 같은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한번 달아오르면 그 열기가 식기까지 시간이 오래 가고, 잘 깨지지도 않지만 조금 깨진다고 해도 별 문제없이 그 자체로 멋스러워 보일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가요계에 남고 싶어요." (관련기사) ☞ 톡톡 튀는 그녀, 장윤정!
- 비와 서태지, 두 빅스타가 온다
- ▲ 서태지와 비[이데일리 SPN 윤경철기자] 비와 서태지가 가요계의 지존을 놓고 선의의 대결을 벌인다면 누가 최후의 미소를 지을까. 90년대 최고의 스타와 2000년대 최고의 스타가 올 해 말 또는 내 년 초 음반을 내고 선의의 경쟁을 벌인다. 행보마다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여러 모로 비교되는 점이 많은 두 스타의 컴백은 좀처럼 예전의 활기를 되찾지 못하는 가요계에 새로운 활력소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과거 보여준 막강한 판매력, 다시 보여줄까. 음악산업적 측면에서 서태지와 비, 두 사람은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서태지는 가요계 입성에서 은퇴까지 발표한 4장의 앨범이 모두 밀리언 셀러 반열에 올랐다. 음반업계 뿐 아니라 한국 역대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평가됐다. 서태지는 90년대 발라드와 트로트가 주도하는 음반시장에 댄스 장르를 도입하여 음반구매층을 20대에서 10대로 낮추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컴백해서는 1인 기업으로서의 면모도 갖췄다. 컴백과 함께 100만장의 판매고를 올린 서태지는 그 해 음반과 CF 공연 등으로 1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비 역시 한 해 200억(JYP 자체 발표)이상의 수익을 발생시키며 2000년대 이후 최고의 문화상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음반불황으로 서태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음반 수익은 낮지만 대신 공연과 CF 등으로 한해 엄청난 매출을 올리고 있다. ◇ 은둔과 노출의 전략과 전술 서태지는 그동안 조금씩 정보를 공개하면서 궁금증을 유발하는 일종의 티저마케팅으로 일관했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앨범 발표시마다 변신을 거듭하여 10대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기대 심리를 높였다. 통일문제나 교육문제를 다루는 가사, 공륜의 사전검열에 대해 ‘가사삭제’로 대응 등은 10대에게 저항과 자유에 대한 대리만족 기회를 제공한 점도 이채롭다. 비는 음악시장을 단순히 국내에 한정시키지 않고 아시아로 넓혔고, 연기를 병행하면서 잦은 노출로 인한 식상함을 상쇄시켰다. 두사람의 공통점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점이다.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기성세대에 저항하며 자유롭기를 원하는 10대의 니즈를 잘 파악했다. ◇ 앨범, 콘서트 등에 아낌없이 투자, 명품 컨텐츠 지향비가 CF 계약금,각종 콘서트 기록등을 깨뜨려 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태지도 10년전에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서태지는 앨범 하나에 10여곡을 담는 양 위주의 발상을 버리고 러닝 타임 30분대에 알찬 곡만 모으는 '명반 전략'을 펼쳐 3배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음반 외에 뮤직비디오, 캐릭터에도 신경을 써 상품의 가치를 더욱 상승시켰다. 비는 고급화 전략을 콘서트에 집중했다. 수백억원의 콘서트 장비를 아낌없이 투입해 최고의 볼거리를 선사함으로써 자신의 부가가치를 높였다. ◇ 멀티 플레이어 vs 철저한 분업화서태지는 프로듀싱, 마케팅, 홍보 등 핵심성공요인을 혼자 관장하면서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을 작동시켰다. 반면, 비는 철저하게 분업화된 체제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있다. 프로듀서 박진영과 홍보 JYP라는 분업화된 우산 아래에서 자신을 키웠고 이것이 주효했다. ◇ 향후 행보 서태지는 90년대 말 컴백해 조성모 god 등 당시 인기 스타들과 경쟁하면서 음반시장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이번에는 비와의 대결을 통해 또 한번 바람몰이를 할 태세다. 일부에서는 과거와 다른 음악환경에 서태지가 고전할 것이라고 예상하기지만 늘 반 보 앞서가는 모습으로 시장을 주도했던 그가 이번에 비와의 경쟁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증을 낳고 있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