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만 공무원 재산등록 논란…“투기근절” Vs “여론몰이 마녀사냥”

정부, 28년 만에 공직자윤리법 전면개정 검토
전체 재산신고하면 150만명, 현재보다 7배 ↑
시스템 구축 가능하지만 관건은 정책 실효성
고지거부·차명거래 못잡아, 하위직 반발 거세
  • 등록 2021-03-22 오전 12:00:00

    수정 2021-03-22 오전 12:00:00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후속대책으로 나온 전체 공직자 재산신고 방안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임원이나 관리자급을 넘어 전체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직원까지 재산신고를 하는 게 적절한지가 쟁점이다.

정부는 부동산 정책 불신이 큰 만큼 공직자부터 투명하게 재산을 신고하고 투기를 근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차명거래를 포착하지 못하는 등 실효성이 떨어지는데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성난 여론을 달래기 위해 공무원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는 반발도 거세다.

정세균 국무총리,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지난 19일 국회에서 부동산 투기 근절 대책 등을 위한 고위 당정청협의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정 총리, 김 직무대행, 김 정책실장, 박범계 법무부 장관,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최재성 정무수석.[사진=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정부, 28년 만에 공직자윤리법 재산신고 강화 검토

21일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정부는 고위당정청 협의 결과에 따른 재산신고 관련 후속대책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재산신고 시스템 및 관련 인력·예산을 어떻게 정비하고 공직자윤리법을 개정할지 등을 검토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에 전수 재산신고가 도입되면 김영삼정부 때인 1993년 이후 28년 만에 신고대상이 대폭 확대되는 것이다.

앞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1993년에 공직자윤리법을 전면 개정했다. 이에 따라 4급(서기관) 이상으로 재산등록 대상이 확대됐고 1급 이상 고위공무원 재산이 공개됐다. 당시 재산등록 대상을 중앙부처 과장급 이상으로 설정한 것은 관리자의 공직윤리 책임을 강화하고 내부정보를 통한 민관유착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이후 현재까지 해당 기준이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LH 사태가 터지면서 제도개편 필요성이 제기됐다. 민변·참여연대 기자회견, 정부합동조사단 1~2차 조사에 따르면 고위직이 아닌 지자체 하위직, 공공기관 저연차 직원까지 ‘쪼개기 지분 매입’ 등 투기 정황이 드러났다. 이에 정세균 총리는 지난 19일 고위당정청협의에서 “직급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재산을 등록하도록 재산등록제 확대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재산신고 대상이 150만명 이상으로 늘어난다. 전체 국가직·지방직 공무원은 107만9516명(2019년 12월31일 기준), 전체 공공기관 임직원은 42만2455명(2020년 4분기 기준)이다. 여기에 입법부·사법부·헌법재판소·선거관리위원회, 올해 현원까지 고려하면 현재 재산신고 인원(23만명)보다 7배 이상 폭증할 전망이다. 여기에 자녀, 배우자까지 포함하면 4인가구 기준으로 최대 600만명(현재 150만명×4) 가량으로 늘어난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하위직까지 재산공개? 선거 앞둔 마녀사냥”

가장 큰 걸림돌은 정책 실효성이다. IT 기술 발달로 재산신고 시스템을 당장 구축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지만, 이렇게 예산을 들여 구축하더라도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 곳곳에 허점이 많기 때문이다. 전수 재산신고를 하더라도 따로 살면서 독립생계를 유지 중인 성인 자녀나 부모 재산은 고지를 거부할 수 있다. 친인척이나 지인 등을 통한 부동산 차명거래는 적발하기 힘들다. 전수 재산신고를 할 경우 차명거래나 고지거부를 막을 수단이 없으면, 구멍 뚫린 대책이 될 수 있다.

이렇게 공직자윤리법이 강화돼도 소급적용해 부당이득을 환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를 통과한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일명 LH 투기 방지법)도 ‘부당이득 몰수’ 소급적용은 제외됐다.

이 때문에 공직사회 내부에서는 “정년을 앞뒀거나 이미 퇴직한 선배들, 일부 기관의 투기 때문에 투기와 전혀 상관 없는 기관의 하위직까지 재산신고 책임을 떠안아야 하나”, “공무원이 봉이냐”라는 불만이 크다.

형평성 논란도 거세다. 공공기관 직원은 민간인 신분인데 공무원과 똑같이 재산신고를 하는 게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현재도 공무원은 4급 이상, 공공기관은 임원 이상으로 재산신고 대상이 다르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공공기관은 공무원연금 대상이 아니다”며 “혜택은 턱없이 적은데 규제는 똑같게 받아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해외에서도 전체 공무원 재산을 모두 등록하는 건 극히 드문 일이다. 한국인사행정학회에 따르면 OECD 국가 대부분은 주로 고위공무원에 한정해 재산등록을 하고 있다. 개인의 재산권을 존중하는 취지에서다. 반면 1970년대에 부정부패가 많았던 홍콩은 전체 공무원에 재산을 등록하고 있다. 홍콩은 이해관계 충돌 조사를 위해 퇴직 후 5년간 관련 내역을 보관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150만명 이상에게 영향을 끼치는 중요 정책인 만큼 면밀하게 제도를 설계할 것을 주문했다. 조성한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는 “투기를 저지른 사람들을 제대로 수사하지도 못하면서 선거를 앞두고 마녀사냥 하듯이 애꿎은 하위직 재산까지 공개하는 게 맞는 지 의문”이라며 “투기에 대한 처벌을 신속히 강화하고 전수 재산신고는 시기, 대상, 반발 등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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