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면의 사람이야기]'52시간'에 갇힌 기업경쟁력과 삶의 질

  • 등록 2019-08-01 오전 5:00:00

    수정 2019-08-01 오전 9:23:21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강원대 초빙교수]한일문제가 어렵다. 일본의 경제침략이라는 표현이 준전시상황을 연상케 한다. 이런 시국에 관련 부서는 52시간만 근무 할 수 있나? 또 이 사태로 존망(存亡)이 걸린 기업들 또한 52시간만 근무 할 수 있을까? 막 창업한 스타트업이 52시간을 지킨다면?

작년 7월부터 시작된 주52시간 근무제가 2021년 7월에는 5~49인 사업장까지 확대된다. 세계 12대 경제규모, 1인당 국민총소득 3만 달러 시대에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최고 수준의 긴 노동시간과 이에 따른 근로자들의 낮은(?) 삶의 질은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밤낮 없이 달려 이룩한 눈부신 성취이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밤낮 없이 달렸기에 지금의 경제 성적표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삶의 질 개선이란 선한 의도는 상품의 경쟁력과 소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일각의 우려처럼 일하는 시간이 줄고 소득이 감소해 생활수준이 떨어진다면, 이 균형점을 찾는 것은 또 다른 선택의 문제이다. 52시간 예외제도 또는 개인근로 선택제도를 통한 근로결정권이 필요할 지도 모를 일이다.

‘공부시간 제한제’를 도입한다면 합리적일까? 부족한 성적을 만회하려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것은 어떤 이치일까? 공부 잘하는 학생을 따라가려는 학생이 힘들지 않도록 공부시간 제한제를 도입하여 쉬는 시간을 보장하면 공정할까? 공평할까? 좋은 취지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근로시간에 대한 논의는 있지만 OECD 하위권인 생산성에 대한 논의는 없고, 선진국의 근로시간 단축은 이야기하지만 제도의 유연성이나 예외조항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는다. 이를 먼저 도입한 미국, 유럽, 일본 등은 고소득, 정보통신기술(IT), 전문직 등 창의적·질적 퍼포먼스가 중요한 일자리에는 근로시간 적용 제외를 두거나 노사협정에 따라 초과 근무가 가능하도록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 국가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통해 유연성까지 보장하고 있다. 1970년대 노동기준에 맞춰 거의 모든 직종에 획일적으로 52시간제를 강제한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르다.

우리는 노동력과 근면성이 유일한 자원이던 시대에 그것을 경쟁력으로 성장했다. 그 탓에 제도는 모방과 스피드에 치중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의 경쟁력은 시간단위의 생산라인이 아닌 창의적인 연구개발(R&D), 기술, 제품력이다. 여기에 획일적인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국익도 아니요, 사회의 기여도 아니요, 개인의 이익도 모두 잃어버리는 길이다. 최저임금도 조금 더 세심하게 인상 했다면 이것의 취지와 뜻, 방향성을 살림과 동시에 부작용이나 반발, 국가적 낭비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전철을 되풀이할 필요는 없다. 제발 빨리 다듬자.

먼저 살펴야 할 것이 있다.

첫째, 세계적 기준은 무엇일까? 세계를 상대로 하는 우리 기업의 R&D와 제조 품질, 가격경쟁력은 어찌될까? 한국이 이룩한 지금까지의 놀라운 경제성적표는 철저히 수출에 의존해 달성한 것인 만큼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이다.

경직된 제도의 적용이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가격을 상승시켜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일자리가 감소한다면 이로 인한 부담은 국민 전체가 떠안아야 한다. 문제가 현실화 된 후에 정책을 수정하려면 너무 늦다.

둘째, 획일적인 제도 적용이 근로자 개인의 실질소득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많은 생산직 근로자들이 잔업과 특근을 통해 소득의 상당부분을 충당했다. 이들이 부족해진 소득을 부업을 통해 충당하게 된다면 당초의 취지가 무색해 질 것이다. ‘저녁이 있는 삶’을 표방해 도입한 제도가 연장근로 수당을 앗아가고 퇴근 후 대리운전에 뛰어드는 웃지 못 할 상황도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중소기업은 더 낮아진 급여로 인해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기존 직원들은 투잡을 뛰어야 하는, 모두가 패배하는 게임이다. 개인의 근로선택권은 존중 받아야 한다.

셋째, 세계는 지금 경쟁력과 미래를 향한 전쟁 중이다.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인 ICBM(사물인터넷(IoT)·클라우드·빅데이터·모바일)과 이 기술들의 집합체인 인공지능(AI) 기술력 확보에 쉬어갈 시간이 있는가? 아님 국가와 국민이 벤처 정신으로 무장해야 할까? 올바른 좌표설정과 발 빠른 속도경쟁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이 제도가 글로벌 수준에서 다국적 거대기업들과 초단위로 경쟁하는 우리 기업들의 발목을 잡지 않기 위해서는 직종별, 기업 규모별로 매우 섬세한 조정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탄력 적용을 요청하는 기업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바둑도 수순에 따라 삶과 죽음이 엇갈린다.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도 순서가 있다. 먼저 제품의 품질을 높이고 수출시장에서 더 나은 경쟁력 유지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근무시간 조정이 이루어져야지 이 순서가 반대가 되면 질 좋은 일자리가 사라져 일과 삶의 밸런스를 맞추기는 커녕 배고픈 저녁을 마주하게 될 지 모른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부작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실을 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험하듯 제도를 강행했을 때 발생하는 어려움은 대기업보단 중소기업에 더 큰 파급력을 미치게 될 것이고 가난한 사람들을 더 심한 가난으로 밀어 넣게 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저녁 할 시간을 갖지 못하고 오히려 더 장시간 저임금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한국경제가 처한 현실을 감안하여 섬세하게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국가경쟁력을 끌어 올리고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일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성공적인 주52시간 근무제를 기대해 본다.

하면서 고친다지만 세계의 경쟁자는 그 동안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실기(失期)한다면 그 간격을 영원히 좁히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이제 잠자는 토끼는 아무 곳에도 없다. 이것이 세계 속의 대한민국이 처해있는 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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