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김태현 막을 수 있나…'스토킹 처벌법' 빗겨간 세 모녀 살해 사건

경찰 9일 "명백한 스토킹에 의한 범죄" 밝혀도
지난달 국회 통과한 '스토킹 처벌법' 적용 못해
9월부터 시행…처벌 강화했지만, 보호에 한계
스토킹, 개인 애정 문제라는 시선…보완책 필요
  • 등록 2021-04-10 오후 1:39:35

    수정 2021-04-10 오후 3:21:34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경찰은 ‘노원 세 모녀 살해 사건’을 “명백한 스토킹에 의한 범죄”라고 규정했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 9일 검찰 송치 직후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피해자가 김태현의 연락을 받지 않기 위해 연락처를 변경하거나 명시적으로 연락하지 말라는 의사를 표현한 이후에도 그런 정황을 보여 스토킹 범죄로 파악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은 김태현에게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 처벌법)’ 위반 혐의는 적용하지 못했다. 지난달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오는 9월부터 시행되기 때문이다. 대신 경찰은 현행 경범죄처벌법상 지속적 괴롭힘 혐의를 적용했다.

스토킹 문제는 개인 간 애정 문제로 여기고 넘길 수 있어 해결에 어려움을 겪는다. 오는 9월부터 적용되는 스토킹 처벌법은 처벌은 강화했지만, 피해자가 처벌의사를 밝혀야하는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고, 피해자 보호도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다른 김태현이 나와도 막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노원구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태현이 9일 오전 서울 도봉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기 앞서 무릎을 꿇고 있다.(사진=이영훈 기자)
연락 거부하자 “배신감 느껴”…계획적으로 범행

지난달 23일 김태현은 노원구 한 아파트에서 작은딸, 어머니, 큰딸 등 여성 일가족 세 명을 차례로 살해했다.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3일간 현장에 머물렀다. 김태현 진술에 의하면 본인도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결심으로 자해를 두 번 했지만, 실패했다. 그는 의식이 돌아와 시신 옆에서 맥주와 주스도 마셨다.

김태현은 지난해 11월 온라인 게임에서 피해자(큰딸)를 알게 되면서 팀으로 게임을 했는데 마음이 잘 맞아 여자친구로 발전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태현이 범행 전 피해자를 직접 만난 것은 세 차례다. 1월 초·중순께 피해자와 단둘이 2번 만나 게임을 했고, 1월 23일에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지인 2명과 함께 총 4명이서 저녁 식사를 했다.

피해자는 연락을 거부하는 의사 표현을 분명하게 했다. 지인과 저녁 식사 자리에서 김태현과 말다툼 후 연락을 하지 말아 달라는 이야기를 했고, 그의 번호도 차단했다. 김태현이 공중전화를 통해 연락하고, 지인을 통해 문자를 보내자 피해자는 전화번호도 변경했다.

사건 발생 일주일 전쯤 김태현은 피해자를 살해하기로 한다. 피해자가 자신과의 만남을 거부하고 연락도 받지 않자 화가 나고 배신감을 느꼈다는 이유에서다. 피해자를 살해하는 데 필요하다면 가족들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범행에 임했다고 한다.

범행은 계획적이었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다른 아이디를 활용해 닉네임을 변경하고 피해자에게 다시 접근했다. 모르는 사람인 척 대화를 통해 피해자가 근무하는 일정(3월 23일)을 파악했다. 피해자 거주지 인근 마트에 들러 흉기를 훔쳤다. 퀵서비스 기사를 가장해 집 안으로 침입해 작은딸을 먼저 살해하고, 5시간 뒤 귀가한 어머니와 큰딸도 살해했다. 피해자의 집을 미리 알아낸 김태현이 망설임 없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모습이 CCTV 영상에 찍혔다.

노원구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태현이 9일 오전 서울 도봉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기 앞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사진=이영훈 기자)
반의사불벌죄라 처벌 결심 쉽지 않아…강력범죄 이어질 가능성↑

김태현은 상대방에 대한 호감이 일방적인 집착으로, 스토킹으로 이어져 결국 살인까지 이르렀다.

스토킹 전조 단계에서는 개인 간 애정 문제로 여기고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해 처벌 수위가 약하다. 그간 스토킹은 경범죄로 분류되면서 1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그쳤다.

이런 허점을 이용해 스토킹으로 시작된 강력범죄가 끊이지 않자 지난달 스토킹 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상대방이 거부하는데도 계속 접근해 불안감·공포심을 일으키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흉기 등을 소지하면 5년 이하 징역·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형량이 늘어난다.

또 경찰이 피해자나 피해자 주거지 100m 이내 접근금지, 전화 등 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등의 조처를 내릴 수 있게 됐다. 가해자가 이를 따르지 않으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린다.

다만 스토킹 처벌법이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 마련에 힘써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접근금지 조치는 경찰이 검찰에 신청하고 법원의 최종 결정이 내려져야만 할 수 있다. 지속 기간도 최장 6개월에 그친다. 피해자들은 대부분의 스토킹 범죄가 수년에서 수십년까지 장기간에 걸쳐 일어나는 점을 고려하면 6개월은 너무 짧다고 호소한다.

스토킹이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는 점도 문제다. 보복이 두려운 피해자가 처벌 의사가 없으면 경찰도 어쩔 수 없다는 얘기다. 스토킹 범죄는 대개 가깝게 지내던 사이에서 비롯되는 만큼 피해자가 처벌을 결심하는 게 쉽지 않다.

또 2차 가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피해자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가해자가 가족이나 민감한 개인정보를 빌미로 협박할 여지가 있다.

제2의, 또 다른 김태현은 나타날 수 있다. 그동안 개인 사이 문제, 혹은 애정 문제라는 시선까지 있었던 스토킹 범죄가 사적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라고 여기는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스토킹 범죄가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을 차단할 보완책을 더욱 꼼꼼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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