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순의 생활 속의 펀드)펀드는 뜨거운 상품이다?

  • 등록 2005-11-23 오후 12:23:00

    수정 2005-11-23 오후 12:23:00

[이데일리 이재순 컬럼니스트] 당신은 열정적으로 사랑하십니까?

누군가 이렇게 물어온다면, 잠시 뜨악한 표정을 지으면서 열정에 물음표, 사랑에 물음표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장 난감한 조합은 ‘열정적인 사랑!’이 아닐까?

보고픔에 복받쳐 한달음에 서울서 강릉까지 달려가는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와 같은 열정도, 젊은 베르테르의 로테에 대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무모함도, 이젠 한 낱 추억의 영상 속에서만 미소 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참 많이도 변했다.

당시에는, 사실 그리 대단할 것 없는 일에도 20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휑한 벤치 한 귀퉁이에서 소주잔이 넘칠 듯 개똥철학으로 채웠건만. 숱한 언어의 유희로 긁적이던 가슴앓이가 평생 꺼지지 않을 불처럼 뜨거움이 있을 것으로 믿었건만.

그러나 막상 돌이켜 보면 그 때에도 마음 한 켠에는 한순간 타오르는 불꽃보다 오래도록 지속되는 따뜻한 온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사랑의 유효기간은 1년6개월이라는 다소 냉소적인 과학적인 잣대를 굳이 들이대지 않는 다 하더라도, 인생은 사랑보다 더 끈끈한 정(情)으로 사는 것임을 간파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펀드 업계에 발을 담가놓다 보니, 요즘 가장 많이 받는 인사치레 하나가 ‘펀드 열기가 뜨거워서 무척 바쁘겠네요?’다.

그럴 때면 조금 두려워진다. 그리고 이게 아닌데 하는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불꽃처럼 타오르다 스러져가는 사랑의 유효기간이 떠오르고, 그러면서 정말 뜨거웠던 99년도 펀드에 대한 편린들이 스멀스멀 되살아나곤 한다. 그 당시엔 어떠했는가?

자산운용협회 기준으로 98년말까지 펀드 전체 수탁고는 194조원이었다. 이 중 주식형(당시에는 주식형과 혼합형을 구별하지 않았음)은 8조6000억원으로 전체 수탁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4.4%에 불과했다. 그러나 채권형은 172조8000억원으로 88.7%, MMF는 13조4천억원으로 6.9%였다.

그러던 것이 불과 7개월만인 99년7월말에는  전체 수탁고는 260조원으로 무려 70조원이 늘었으며, 이중 주식형은 39조나 증가해 비중도 18.4%에 이르렀다.

그리고 2000년 6월말에는 비록 대우채 사태가 있기 했지만 주식형 펀드의 비중은 51%까지 확대됐다.

초라했던 주식형펀드의 비중이 1년 반 새에 시장의 절반을 차지한 것이다.

과연 어떠한 힘이 이렇듯 펀드시장을 이끌었고, 또 그 힘의 당사자들은 펀드에 대해 어떠한 기대를 갖고 있었던 것일까?

과유불급이라 했거늘, 밝은 불빛만을 쫓는 나방과 같은 대박의 꿈만 남아있던 것은 아닐는지. 직접투자에 대한 단순한 대체재, 고수익을 주는 특별한 상품, 단기간 시장에 편승하기 위한 상품 따위로 펀드를 인식한 것은 아닌지.

펀드를 통해 얼마나 벌었고, 얼마나 잃었다는 탄성이 난무하고, 펀드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과 극단적인 불신이 휩쓸고 간 펀드 잔치는, 결과적으로 온갖 쓰레기와 퇴물만이 대우사태와 2000년 주가하락의 잔재로만 남았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펀드는 단순한 상품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우선 펀드가 투자할 수 있는 대상에 제한이 없다. 가장 대표적인 주식과 채권을 비롯해, 부동산, 장외파생상품, 또 다른 펀드, 드라마나 영화, 금, 원유 등... 사실상 상품성만 있다면, 속칭 돈만 된다면 모든 것에 투자할 수 있다.

펀드가 모든 것에 투자할 수 있다면, 그것을 단순한 특정 상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펀드에 대해  ‘펀드는 좋다 나쁘다’는 식의 이분법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보면 펀드투자는 단순한 상품이기 전에 전체 자산배분 차원의 접근이 필요한 대상이다. 투자자는 개인성향이나 경험, 자금의 성격, 투자기간, 소득과 지출계획 등을 토대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질적인 위험과 기대수익을 갖는 자산에 최적의 배분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산은 주식이나 채권, 부동산이나 금과 같은 실물자산 등이라 할 수 있다.

다만 투자자는 펀드를 통해 주식에 투자하고, 펀드를 통해 채권에 투자하고, 펀드를 통해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이다. 즉, 직접 주식에도 투자할 수 있고, 직접 채권에도 투자할 수 있지만, 이를 전문가의 머리와 손을 빌어 간접으로 투자하는 것이다.

결국 펀드는 장기적인 자산배분차원에서 평생을 가져가야할 투자방법이라는 것이다. 마치 주가가 오르기 때문에, 옆 사람이 하기 때문에, 잠깐 유행을 타기 때문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자산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함에 있어 그 투자방법을 간접으로 하는, 즉 펀드로 투자하는 것이다. 이래야만 뜬소문이나 분위기에 휩쓸려 아무런 목표 의식 없이 부화뇌동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물론 펀드이기 때문에 고려해야할 특별한 사항들이 있을 수 있다. 분산투자에 따른 위험관리, 운용사나 매니저의 능력, 펀드의 스타일, 펀드의 규모 등등...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펀드가 투자하는 자산에 대한 본질적인 특징에 대한 이해와 접근이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은 특정한 상품에 대한 접근이 아니라 자산배분이라는 전체 그림에 대한 접근이다.

물론 20대적 열정적인 사랑이 필요할 때가 있고, 좋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 열정이 마치 기름 부은 것처럼 일순 타오르다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따스한 온기로 평생을 품고 같이 가야할 펀드에는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펀드는 뜨거운 상품이 아니라 따스한 투자방법이기 때문이다.

(이재순 제로인 조사분석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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