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리포트)외환시장엔 신사가 없나

  • 등록 2004-02-24 오후 4:38:35

    수정 2004-02-24 오후 4:38:35

[edaily 최현석기자] 정부가 드디어 역외세력의 환투기에 대해 본격적인 규제에 나섰습니다. 외환시장 사람들은 규제가 처음 발표됐던 수준보다 완화되자 다행으로 여기면서도 규제 자체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까지 숨기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외환시장을 담당하는 최현석기자는 시장도 반성해야 한다고 합니다. 자정 능력을 키우지 못해 규제를 불러온 점이 안타깝다고 합니다. 지금의 규제를 가능한 빨리 철폐시키기 위해서는 시장 참가자들간 `행동규범(Code of Conduct)` 준수가 필수적이라는군요. 지난 주말부터 역외선물환(NDF) 시장에 대한 규제가 시행됐습니다. 한달간의 유예기간을 거친데다 완화 방안까지 내놓은 덕분에 별다른 부작용은 포착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규제가 시행되기 전까지 한달동안 외환시장은 상당한 진통을 겪었습니다. 정부가 은행들의 역외선물환 매수와 함께 매도까지 규제한 것이 발단이 됐지요. 기존에 역외세력에게 선물환을 매도초과(순매도)한 은행들은 순매도 규모를 일정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했지요. 은행들은 그렇게 되면 역외세력에게 손해를 보고라도 계속 매도를 해야 한다며 크게 반발했습니다. "투기세력을 잡는다더니 먼저 국내 은행들을 잡겠다는 거냐"며 비아냥 댔지요. 은행권 의견이 받아들여져 매도에 대한 규제는 상당히 완화됐지만 섣부른 규제가 시장을 얼마나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지는 잘 확인됐습니다. 비록 유예기간을 둬 피해를 줄이기는 했지만 정부 당국자의 시장 메카니즘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점은 개선해야겠습니다. 향후 파생상품을 이용한 투기세력의 공격이 더욱 교묘해질 것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말이죠. 하지만 시장도 정부당국을 비판하기에 앞서 "왜 당국이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었나"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저는 시장과 당국간 신사협정이 제대로 준수되지 않았던 것이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봅니다. 지난해 12월말 1200원 수준이던 환율은 1월들어 6거래일간 한차례 조정도 없이 하락, 12일 1176원까지 급락했습니다. 특히 12일 하루동안 역외세력의 달러 매도자금이 10억달러 이상 유입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우리 외환시장의 하루 거래규모가 30억달러 정도입니다. 10억달러면 시장을 흔들고도 남지요. 역외 선물환시장은 차액결제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1000만달러만 있으면 50배에 달하는 5억달러의 매도주문을 낼 수 있습니다. 일종의 지렛대(레버리지)효과가 있는 것인데요. 환율이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던 은행의 딜러들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없는 베팅의 찬스가 됐겠지요. 결국 당국은 직접 시장에 개입하는 것으로는 급격한 환율 하락 압력을 막아내기 어려워지자 `규제`라는 근원적인 처방을 내놓기에 이른 겁니다. 역외 투기세력을 잡으려고 던진 정부의 그물에 국내 은행들이 걸려든 셈입니다. 정부의 의지를 무시하고 역외세력에게 부화뇌동하다가 부메랑을 맞았다고 봅니다. 최근에는 외환거래의 신사협정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행동규범(The Seoul Code of Conduct)도 유명무실해지는 느낌입니다. 당국과 시장 모두 1170원대 유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지난 4일 어이없는 주문실수로 환율이 급락한 적 있습니다. 개장시점에 주문실수로 `1159`원에 거래가 체결되며 급격한 매도세를 촉발했으나, 정작 이 거래는 매수와 매도 쌍방의 합의로 취소됐습니다. 주식시장이나 채권시장에서는 체결후 취소가 있을 수 없는 일이나, 외환시장운영협의회에 소속된 은행이 채 20개도 안될 정도로 작은 시장이다보니 가능한 일이었죠. 자기 손실을 줄이기 위한 주문체결 취소는 양측간 합의로 가능하다 하더라도 개장시점에서 신중치 못한 행동으로 시장을 혼란스럽게 만든 점에는 책임이 뒤따라야 할 겁니다. 이날 주문실수한 은행들은 이튿날 개장시점에는 `1195`원이라는 터무니없는 가격에 거래한 뒤 다시 체결을 취소했습니다. 우연의 일치라는 해당 은행측 해명에도 불구, 석연찮은 뒷맛이 남습니다. 한가지 더 예를 들까요. 역외시장 규제 완화와 관련해 당국과 은행간 논의가 한창이던 지지난주말 일부에서 확정되지도 않은 규제완화 대책을 공개해 협상 자체가 결렬될 위기로 몰리기도 했습니다. 비록 전혀 다른 방법을 통해 규제를 완화할 수 있었지만 당시 유출된 대책에는 외평기금 등 정부의 외환정책과 관련된 민감한 부분이 포함돼 있어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죠. 당시 당국은 물론 상당수 은행들조차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로 한 신사협정을 위반하며 합의도 되지 않은 내용을 흘린 은행을 찾아내 제재해야 한다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외환시장은 자율적으로 규제를 가해 본 경험이 없어 또 유야무야 넘어갔습니다. 철저한 자율 규제를 통해 미꾸라지 한마리가 전체 강물을 흐리는 것을 방지하는 선진국과 비교해서는 상당히 관대한(?) 모습이죠. 이제부터라도 시장과 당국은 신사협정을 지켜야합니다. 지난 2000년 8월 발생한 일명 "중국집 사건"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죠. 은행의 외환딜러들이 `일제히 손을 놓는` 사상 초유의 사보타지에 나서고 정부는 강제진압에 나섰던 이 부끄러운 사건은 현재 이헌재 부총리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8개월여간의 재경부장관직을 마무리하던 때였습니다. 아울러 정부의 규제는 하루빨리 철폐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 할 것이고 언론들 역시 정부와 시장의 싸움붙이기식 보도를 자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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