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만 55번 언급한 이창용…"'말'만 세졌다"

이창용 "근원물가 더디게 하락…3% 전망서 상향 필요"
3개월물 통안채·CD, 기준금리 하회…"금리 인하 기대 과도해"
'금리 3.75%까지 높이자'면서 실제는 만장일치 금리 동결
기준금리 인하 기대 차단 노력했으나 '언행불일치'
  • 등록 2023-04-11 오후 10:00:00

    수정 2023-04-12 오전 7:40:49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출처: 한국은행)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물가 수준을 연말에도 3% 초반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금리 인하 논의는 안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물가 안정을) 확인하기 전까지 금리 인하에 관해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1일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3.5%로 만장일치 동결한 후 이 같이 밝혔다. 이 총재는 이날 1시간여의 기자회견에서 ‘물가’만 55번 언급하며 물가 안정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한은은 2월부터 두 차례 연속 금리를 동결했는데 마치 금리 인상기를 방불케 할 만큼 ‘매파(긴축 선호)’적 표현이 많았다.

이는 “물가안정과 금융안정 목표의 상충 관계가 더 심화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발언에서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경제성장 악화, 금융불안에 금리는 더 못 올리는데 근원물가는 안 떨어지고 있으니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를 차단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말은 ‘물가안정’에 행동은 ‘금융안정’에

금통위가 두 차례 연속 금리를 동결했으나 속내는 훨씬 더 복잡해졌다. 성장세는 악화됐고 금융불안은 커진 반면 물가는 생각만큼 빠르게 떨어지지 않고 있다.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이 2월 전망인 1.6%보다 낮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등 금융불안이 미국, 유럽의 경기를 약화시킬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판단이다. 중국이 경제 활동을 재개했지만 내수 위주로 회복할 뿐 수출 부진은 계속되고 있다. 이에 국제통화기금(IMF)도 우리나라 성장률을 1.7%에서 1.5%로 낮췄다.

금융불안도 가중됐다. 이 총재는 “SVB 파산 사태 등 전 세계에 있었던 여러 일들이 새로운 불확실성을 더 많이 제기하고 있다”며 “그 사태 이후 물가안정과 금융안정 목표의 상충관계가 더 심화될 가능성이 커졌고 금융불안으로 전 세계 성장률이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밝혔다.

물가상승률 전망은 2월과 같은 3.5%를 유지했다. 2분기부터는 월별 물가상승률이 3%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식료품 및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연간 전망치가 3.0%에서 다소 높아질 것이라고 봤다. 전기·가스 요금의 2차 파급 효과와 함께 마스크 전면 해제 등으로 소비가 약간의 회복세를 보이면서 수요를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하반기 물가가 어떤 흐름을 보일지 확신하지 못했다. 이 총재는 “상반기까지 물가 전망은 굉장히 신뢰가 높지만 하반기에는 불확실성이 크다”며 “석유수출국기구(OPEC)플러스 감산 효과로 유가가 더 올라갈 것이라는 의견, 감산에도 경제성장률 하향 조정으로 유가가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상존하는데, 하반기 유가가 어떻게 움직일지에 따라 가공식품 등 가격 변화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전기·가스요금 인상이 미뤄진 것도 물가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이 총재가 “한은의 첫 번째 목표는 물가안정이고 물가안정을 달성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의심없게 하겠다”고 밝히며 ‘매파적’ 발언을 강화했지만, 실제 추가 금리 인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없었다.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이 총재는 “첫 번째 맨데이트(목적)가 물가안정이고 두 번째는 금융안정”이라면서도 “경기가 나빠지면서 금융안정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가 지금 현재 가장 큰 관심사”라고 말했다. 결국 물가를 55번 외쳤지만 금리 동결의 배경은 ‘금융 안정’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금통위원 6명 중 5명이 ‘물가 불확실성,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 방향’을 고려해 금리를 한 번 더 인상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입장이라지만 실제로 이들 5명 중 그 누구도 금리를 인상하자는 의견을 내지는 않았다. 근원물가 전망을 상향 조정한다면서도 한은의 물가 기준치인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그대로 뒀다. 통화정책방향 문구에선 물가 흐름과 관련 ‘높은 오름세’가 ‘오름세’로 바뀌는 등 ‘높은’ 이라는 단어가 삭제되기도 했다.

말은 ‘물가안정’에, 행동은 ‘금융안정’에 초점이 맞춰지는 셈이다. 문홍철 DB금융투자 연구위원은 “중앙은행이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할지에 대해 말을 참고하되 과거의 행동과 패턴을 참고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언급했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 말과 행동이 다를 때 ‘행동’을 보라


전문가들은 연내 금리 인하 기대감을 낮추지 않고 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위원은 “이 총재의 기자회견은 다분히 조기 금리 인하 기대를 차단하는 데 노력한 것으로 보이지만 성장 전망을 하향 조정하고 부동산 연착륙이 중요하다고 밝힌 점, 우리나라가 (빅스텝을 한) 뉴질랜드보다 (금리를 동결한) 호주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밝힌 점 등은 매파 효과를 제한한다”며 “당분간 25bp 인하 기대가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90일물 통화안정증권,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등이 기준금리를 하회한 점 등을 근거로 금통위원들이 금리 인하 기대가 과도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역시 초단기물에 국한되기 때문에 향후 3개월내 금리 인하 기대를 차단한 것이지, 하반기 인하 기대를 차단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5월, 7월 금리는 동결이 예상되나 8월, 10월부턴 인하에 대한 고민이 시작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금리 인하 기대를 차단하려고 겁만 주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90일물 통안채 등 단기 금리가 떨어지는 것을 반영해 언제 금리 인하가 일어날 것으로 시장이 기대하는지를 시산하면 그 정도는 아닌데 어떤 면에서 시장이 과도하게 반응한다”며 “경기, 물가 흐름에 대해 누가 더 맞는지는 사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내 금리 동결과 인하 전망이 갈린다. JP모건은 높은 물가 흐름에 연말까지 금리 동결을, 씨티는 6월 2%대 물가상승률을 전제로 8월부터 인하를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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