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2006년 7월 독일 월드컵이 끝난 뒤 일본의 축구 영웅은 훌쩍 그라운드를 떠났다. 나카타 히데토시(中田英壽·31)는 좁은 축구장에서 벗어나 넓은 세계를 보길 원했다. 그동안 번 돈으로 2년 동안 60개국 160여 개 도시를 돌았지만 아직 그의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세계를 돌며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사람들에게 뭘 해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것이었죠."
제5회 서울환경영화제(22~28일·환경재단 주최)에 초청을 받아 한국에 온 나카타는 23일 서울 마포구 월드컵경기장 내 CGV에서 인도 갠지스 강의 오염 문제를 다룬 '검은 갠지스'를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그는 먼저 자신을 '환경운동가'라 부르지 말아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운동'이나 '활동' 등의 단어는 저와 어울리지 않아요. 전 그냥 제가 느낀 대로 할 뿐입니다."
캄보디아의 지뢰 철거 현장에서 팔다리를 잃은 아이들을 만났고, 베트남의 고아원에선 입양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나카타는 세계 곳곳에서 만난 어려운 이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 "뭘 해준다는 생각으로 다가가는 건 의미가 없다고 봤어요. 그냥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세상 사람들과 나누기 위한 방법으로 나카타는 가장 자신이 있는 축구를 선택했다. "전 세계인이 축구를 좋아하니까, 사람들이 축구를 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무엇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나카타는 1995년 일본 대표팀에 처음 뽑힌 이후 10여 년간 일본의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이탈리아 프로축구팀 페루자, AS로마와 잉글랜드 볼턴에서 뛰며 아시아 축구의 아이콘으로 군림했다. 화려한 축구 이력을 서른도 되기 전인 29세에 접었지만 나카타는 미련이 없어 보였다. "현역 시절은 별로 그립지 않아요. 난 축구를 그만둔 게 아니니까요. 축구를 통해 끊임없이 뭔가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할 수 있는 지금이 전 가장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