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증권은 예산실에서 보면 가장 골치아픈 존재였다. 적자가 누적되도 보전은 커녕 계속 부족한 부분을 밑빠진 독에 물붓기하듯이 예산을 쏟아부어야 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재무부 사무관으로서 양곡증권을 담당하던 80년대 시중 금리는 연 10%를 상회하던 시절이지만 재정형편상 양곡증권은 시중금리보다 항상 낮은 쿠폰 금리로 발행해야 했다. 인기 없는 양곡증권의 판매는 만만한(?) 금융회사들에게 소위 꺽기를 통해 강제 인수시키는 방법으로 해결하기도 했다. 전국 농촌에서 치열한 수매활동이 일어난 이면에는 그에 필요한 수매자금 조달을 위해 양곡증권의 강제 판매활동이 치열하게 일어난 셈이다. 세월이 흘러 그렇게 속을 썩이던 양곡증권은 2005년 추곡수매제도의 폐지와 함께 단일 국채인 국고채로 통합되
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원활한 국채관리를 위한 대표적인 개혁이었다.
예를 들어 선진 재정에서는 당연한 것이지만 정부의 수입과 지출은 단일계정에서 관리돼야 한다. 이러한 재정수입과 지출의 차를 관리하는 단일한 국가채무관리 계정의 운영이 국채를 관리하는 출발점이다. 하지만 개도국의 경우 보통 조세수입이 빈약해 외국차관과 같이 비조세 수입에 의존하게 마련이다. 이럴 경우 각종 정부사업이 부처별로 흩어져 집행되기 때문에 통일적인 국채관리는 어려워진다. 양곡증권이 대규모로 발행되던 90년대까지의 국채관리가 이런 식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채종류의 통합과 단일 발행제도를 골간으로 국채제도를 대대적으로 정비하면서 시장원리에 의한 국채관리의 초석이 다져졌다. 회사채와 같은 민간 채권시장 발전을 위해선 시장성 지표국채의 만기가 1년에서 3년 그리고 5년과 10년으로 늘어나야 하는 법인데 연금이 활성화되고 금융회사들의 자산운용이 장기화되며 외국투자자의 진입으로 거뜬히 해결할 수 있었다. 국채 현물시장의 유동성 증대를 위해 채권 선물시장의 거래를 활성화하고 국채 발행과 유통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국채딜러 제도를 정착시키는 일들도 큰 문제없이 진행됐다. .
코로나 위기를 지나고 있는 우리 국채시장은 지금 적자재정의 구조화현상과 급속히 증가하는 정부부채의 관리라는 새로운 도전과제를 맞이하고 있다. 이를 위해 재정관리의 선진화는 물론 자본시장을 한층 업그레이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 국채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문제는 단기적인 환율안정 차원을 넘어 종합적인 시각에서 접근돼야 한다. 국채 이자소득에 대한 외국인 면세 등을 통해 국채시장 제도의 국제 정합성도 더욱 높여야 할 것이다. 여기에 단기 국고채와 중앙은행 통화안정증권의 역할 조정문제 등 헤묵은 과제들도 정비해서 명실상부 선진 국채시장으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