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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의 IT세상]AI가 바둑 시장에 남긴 교훈

김지현 IT칼럼니스트·‘인공지능과 인간의 대화’ 저자
  • 등록 2020-06-18 오전 5:00:00

    수정 2020-06-18 오전 8:19:24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을 꺾고 바둑고수들을 연이어 무릎 꿇렸으며 이 과정에서 4번의 업그레이드 작업이 진행됐다. 알파고 이후에 알파고 판, 알파고 리, 알파고 마스터 그리고 알파고 제로까지 업그레이드한 후 2017년 은퇴했다. 이후의 바둑 시장은 어떻게 되었을까. 중국(텐센트)의 ‘절예’(絶藝), 일본(도쿄대)
의 ‘딥젠고’(DeepZenGo), 한국(NHN)의 ‘한돌’, 미국(페이스북)의 ‘엘프고’(ELF OpenGo) 등의 탄생으로 이어지며 과학적 측면의 바둑은 발전했다.

그렇다면 사람이 두는 바둑 시장은 어떻게 되었을까. 인공지능(AI) 기사의 등장은 프로 기사들에게는 당연히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바둑을 더 잘 두려는 교육생들의 입장에서는 훌륭한 선생님이 등장한 셈이다. AI 기사 이전의 바둑은 포석이 정형화되어 있어서 몇 가지의 수와 대응 방안이 매뉴얼처럼 존재했다. 하지만 AI의 독특하고 과감한 수는 다양한 포석에 대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바둑을 배우기 위해 기원에 가거나 프로 기사들의 기보를 보는 것보다 혼자서 AI 선생님을 두고 독학을 하는 공부 방법이 대세가 되었다. 심지어 프로 기사도 AI로 훈련을 할 정도다. 중국의 커제 9단은 한 인터뷰에서 “AI로 포석을 두는데 도움을 받고 복기할 때도 유용하다”고 밝혔다.

이렇다 보니 프로 기사들의 바둑 실력이 상향평준화 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아무래도 비슷한 수준의 다른 기사들의 기보를 분석해서 배우는 것보다 월등히 실력 높은 AI를 통해 학습을 하다 보니 실력이 도약하게 된 것이다. 절대 강자가 군림하던 프로 기사의 랭킹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상향평준화한 프로 기사들의 실력으로 인해 이전처럼 절대 1위 자리를 고수하기가 어려워졌다. 아마추어 기사들도 비용과 정보 제약의 한계에서 벗어나 언제든 AI를 통해 학습을 할 수 있어 배움의 기회가 확대되었다. 그만큼 바둑 시장에서 인간의 실력은 진일보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AI 덕분에 바둑 해설도 훨씬 정교하고 정확한 정보 전달이 가능해졌다. 해설자가 AI 승률을 보면서 판도를 설명하고 보다 객관적인 분석을 해줄 수 있게 된 것이다. TV 등을 통한 해설 시에도 실시간으로 AI 기반의 다채로운 분석 그래프와 승률 예측을 제시할 수 있어 시청자에게 입체적인 정보를 줄 수 있게 되었다. AI 기사의 등장이 바둑의 즐거움을 빼앗고 프로 기사의 존재를 사라지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즐거움과 학습의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이세돌 9단은 알파고와의 대국으로 바둑계를 비롯해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9단은 은퇴 대국 상대로 한국판 알파고인 ‘한돌’을 지목해 경기를 치렀다.(사진=뉴시스)
하지만 바둑 시장에 AI가 긍정적 효과를 준 것만은 아니다. 바둑을 두는 과정에 AI가 승률을 퍼센트로 표시하기 때문에 모험을 하며 새로운 경험으로 터득할 수 있는 배움의 기회를 저버리고 AI가 제시하는 길만이 정답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그간 인간이 두어온 바둑이 정형화된 것처럼 이제 다시 AI가 가르치는 바둑이 정형화되고 있다. AI로 인해 바둑 실력은 향상되었지만, 바둑의 포석이 AI가 제시한 것으로 정형화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인간이 두는 바둑은 확신에 찬 승률을 계산하며 두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도전 속에서 자신만의 바둑을 두는 형세가 만들어져 개성이 있었다. 제비 조훈현, 신산 이창호, 독사 최철한, 쎈돌 이세돌, 지하철 바둑 고바야시 고이치, 우주류 다케미아 마사키라 불리며 프로 기사마다 기풍이 있었다. 하지만 AI로 배운 바둑은 그런 개성을 사라지게 하고 있다. 포석을 둘 때마다 승률이 계산되어 정답이 제시되다 보니 AI의 기계적인 기풍이 인간의 개성을 지배하고 있다.

결국 AI가 바둑 시장에 주는 교훈은 인간의 개성과 모험적인 도전정신, 창의력을 사라지게 했다는 것이다. 물론 AI가 초기 바둑 시장에 새로운 포석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실력의 상향평준화를 제공한 것은 좋았으나, 그것이 또 다른 획일화를 만들고 있다. AI의 제안은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고 상상조차 못했던 가능성을 제공하는 또 하나의 기회일 뿐이다. 그것을 정답으로 알고 생각의 진화를 멈춰서는 안 된다. 계산기를 이용하면 덧셈, 뺄셈, 곱셈 더 나아가 복잡한 연산을 쉽게 처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칙연산과 수학을 배우는 이유는 계산의 원리를 이해하고 간단한 수식을 기반으로 더 복잡한 연산을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지를 사고하기 위함이다. 기초적인 동작 원리를 이해한 이후에는 계산기를 이용해 빠르게 처리하고 더 복잡한 문제를 근원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된다. 즉 단순 반복 업무는 계산기에 맡기고 사람은 더 고차원적인 수학 문제 해결 방안을 찾는 것이 계산기의 효율적 사용 방법이다. AI 역시 그런 도구로서 활용해야 한다. 우리는 AI가 제시하는 답을 정답으로 생각하고 더 이상의 사고를 하지 않은 채 길들여 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기업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으로서 AI를 적용하다 보면 점차 보다 많은 영역에서 AI가 사람을 대체해갈 것이 느껴진다. 남은 사람들도 AI에 더욱 의존하게 될 것이다. 또한 AI가 추천해주는 대안과 선택을 의심하지 않은 채 추종하다 보면 의사결정권을 AI에 넘기게 될 것이다. 은행에서 대출 심사를 하거나 증권사에서 투자 심의를 하고 병원에서 환자의 질병을 진단할 때 AI에 맡기다 보면 점차 의심 없이 AI의 선택을 수용하게 될 것이다. 인간이 기계와 다른 점은 사람마다 다양한 자유 사고와 취향, 성향으로 다양한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정반대의 생각이 논쟁 끝에 타협과 합의 과정을 거쳐 더 나은 결정을 만들어내며 인류는 발전해왔다. 그것이 인간다움을 만들어주고, 그로 인해 인류 문명은 진화를 거듭해왔다. 그런데 AI의 판단을 아무런 의심도, 논쟁도 하지 않은 채 무조건 따르다 보면 인간의 문명이 그간 발전해오던 매커니즘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기업에서 AI를 도입하고 활용하는 과정에 있어서 AI의 판단을 어떻게 의심하고 견제해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또한 최종 의사결정의 권한은 AI의 판단을 참고로 인간이 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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