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봄볕에 반짝이는 푸른 봄…동백숲따라 문향에 빠지다

정남진 장흥으로 떠나는 문학기행
마을 액운 막는 '묵촌마을 동백숲'
국내 최대 동백나무 군락지 '천관산 동백숲'
한승원 영감의 원천 '넓바우포구'
이청준 소설 속 '선학동 마을'도
  • 등록 2019-03-29 오전 4:00:00

    수정 2019-03-29 오전 4:00:00

전남 장흥 용산면에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인 동백나무 자생지인 천관산 동백숲. 봄 볕에 활짝 핀 동백꽃과 동백기름을 바른 듯 반짝이는 동백숲이 초록기운을 내뿜고 있다.


[장흥=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장흥은 문학의 고장이다. 전국에서 처음 문학관광기행특구로 지정될 만큼 문학인의 발자취가 진하다. ‘장흥에서 글 자랑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등단한 작가만 100명이 넘는다. 그만큼 빼어난 문장가가 많이 나오는 고장이 장흥이다. 이 가운데 장흥을 대표하는 문인으로 소설가 이청준과 한승원을 꼽는다. 이청준은 영화 ‘서편제’, ‘밀양’ ‘천년학’을, 한승원은 영화 ‘아제 아제 바라아제’를 썼다. 두 작가의 발자취를 따라가면 장흥 남부 지역을 가로질러 여행할 수 있다. 가장 남쪽에 위치한 회진면은 두 사람의 발자취가 깊은 곳이다. 한적한 고갯길과 오붓한 숲길, 시원한 바닷길이 펼쳐지는 곳이다. 두 작가의 작품 속 배경이 고스란히 녹아든 길을 찾아간다.

전남 장흥 용산면 묵촌마을의 동백림은 지금 절정에 달해 가지도 바닥도 온통 붉은 물결이다. 이 동백림은 마을의 액운을 막고자 조성한 인공림으로 수령 250~300년 이상된 140여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전국 최대 동백 군락지 ‘천관산동백숲’

장흥읍에서 23번 국도를 따라 회진면으로 가는 길. 차로 30여 분 내려가면 용산면 묵촌마을이 있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동백 숲 때문. 마을의 액운을 막고자 조성한 인공림으로 수령 250~300년 된 동백나무 140여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이 동백숲은 지금 절정에 달해 가지도 바닥도 온통 붉은 물결이다. 여기에 주변은 온통 보리밭이어서 붉은 꽃잎이 한층 돋보인다. 이 마을은 동학농민운동을 주도한 이방언(1838~1895)의 고향이자, 송기숙의 대하소설 ‘녹두장군’의 무대로 알려져 있다.

전남 장흥 용산면 묵촌마을의 동백림은 지금 절정에 달해 가지도 바닥도 온통 붉은 물결이다. 이 동백림은 마을의 액운을 막고자 조성한 인공림으로 수령 250~300년 이상된 140여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관산읍에서 천관산자연휴양림으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오르면 골짜기를 뒤덮은 짙푸른 동백 숲도 만날 수 있다. 이곳이 국내 최대 동백 숲인 ‘천관산 동백숲’이다. 얼핏 보면 초록빛 호수에 들어온 듯하다. 지난 2007년, 열명의 인원이 열 달 동안 매달려 3만그루까지 세다 ‘그만하면 됐다’는 통보를 받고서야 작업을 그쳤다고 할 정도로 동백나무가 빼곡해서다. 과거에는 이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대대로 동백나무로 숯을 만들었다. 지금도 드넓은 동백 숲에는 7개의 숯가마 터가 남아있을 정도다. 마을 주민들이 땅에 발을 딛지 않고 무협영화처럼 동백나무 가지를 밟고 걸어 다녔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다. 지금 남아있는 동백나무의 수령은 대부분 60~80년에 불과하다고 하니 당시 얼마나 많은 동백나무가 잘려나갔을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국내 최대 규모인 동백나무 자생지인 천관산 동백나무 숲이 봄 햇살에 동백오일을 바른듯 반짝이고 있다.


천관산동백숲에 편의시설이라곤 2개의 전망대와 일부 구간에 목재 산책로를 설치해 놓은 것이 전부다. 산책로라고 하지만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아 원시의 산을 걷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다.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둑한 숲으로 들어가면 아직 떨어진 꽃도 매달린 꽃도 많지 않다. 4월은 돼야 더 풍성해질 것으로 보인다. 대신 3만 그루 동백 숲이 내뿜는 초록 기운은 이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 햇살에 반짝이는 동백 잎이 기름을 발라 놓은 것처럼 눈이 부시다.

한승원 문학 헌정비


◇소설 속 배경이 된 마을 포구

한승원의 흔적과 가장 처음 마주하는 곳은 넓바우포구. 한 작가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원래 덕도라는 섬이 있던 자리로, 40여년 전 관덕방조제가 생기면서 육지가 됐다. 이곳에서의 삶은 그에게 문학적 영감의 원천이 됐다. 단편소설 ‘목선’의 배경도 넓바우포구다. 마을 주민이 세운 ‘해산한승원문학현장비’가 득량만을 바라보고 서 있다.

한승원 생가로 가는 길에 ‘앞메잔등’을 만난다. 마을 앞산 고개를 뜻한다. ‘앞산’을 의미하는 앞메와 ‘고개’를 뜻하는 잔등이 더해진 말이다. 중편 ‘폐촌’에서 겨울에 김을 가득 담은 구럭을 짊어진 사람들이 헐떡거리며 넘은 고개로 나온다. 고개를 넘어 신상 버스 정류장 건너편 신상마을로 들어서면 곧 한승원 생가가 나온다. 어느 시골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고, 한승원 생가도 전형적인 농가다. 그런데도 특별해 보이는 것은 남해 특유의 구성진 언어가 살아 있는 그의 소설이 이곳에서 태동해서다.

장흥 회진면 한재공원에 핀 할미꽃. 한재공원 정상 주변은 할미꽃 군락지로, 전국 최대 규모다.


생가에서 나와 한재공원으로 가려면 한재를 올라야 한다. 한재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큰재산과 한재산 사이에 놓인 고개다. 산 동쪽의 신상리·신덕리·대리 사람들이 회진으로 장 보러 가고, 산 서쪽의 덕산리 아이들이 대리에 있는 학교(현 명덕초등학교)에 다닐 때 이 고개를 넘었다. 단편 ‘앞산도 첩첩하고’, 장편 ‘동학제’, ‘그 바다 끓며 넘치며’에 한재를 넘는 애달픈 사연이 나온다. 길은 완만하게 이어지다가 한 굽이 크게 돌면 한재 정상이다. 신상마을과 앞메잔등, 그 너머로 득량만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재공원은 한재 정상 주변 10만㎡에 이르는 할미꽃 군락지다. 단일 규모로 전국 최대다. 해마다 3월 중순부터 4월 말까지 자줏빛 꽃망울을 틔운다.

득량만 끄트머리에서 바닷물이 천관산 자락으로 파고드는 작은 포구인 회령포에 있는 회령진성


한재공원에서 덕산마을 입구까지는 내리막이다. 이 마을을 지나 덕산삼거리에서 다리를 건너면 회진읍내가 지척이다. 읍내를 지나면 한승원문학길 종점인 회령포다. 회령포는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이 병선 12척을 인수해 출정한 곳이자, 명량해전 출정지다. 회령진성(전남문화재자료 144호)은 회진리 마을 뒷산에 있다. 조선 성종 때 축조한 수군진으로, 이순신 장군이 병선 12척을 이곳에서 수리했다고 한다. 현재 남은 성벽은 616m로, 동벽은 벼랑 위에 쌓았다고 하나 모두 없어지고 동문 터만 남았다. 회령진성 정상에서 너른 들판과 그 너머 천관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람결에 실려오는 바다 내음에서 이순신 장군의 굳은 결심이 묻어나는 듯하다.

천년학 촬영장


◇이청준의 소설 속 길을 따라가다

이청준의 흔적은 회령포에서 회진면 진목리까지 이어진다. 한적하고 평탄한 도로가 나그네와 함께한다. 길은 점점 바다와 가까워지면서 푸른 바다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노력도와 다도해가 보이는 아름다운 길이다. 바다 풍경에 취해 걷다 보면 선학동 마을이다. 임권택 감독이 100번째 영화 ‘천년학’ 촬영지로 유명하다. ‘천년학’의 원작은 이청준의 단편 ‘선학동 나그네’로, 소리꾼 유봉 밑에서 자란 동호와 송화의 아픈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선학동은 소설의 실제 무대로 원래 이름은 산저마을인데, 영화 ‘천년학’ 이후 선학동으로 바뀌었다.

선학동을 부르는 이름 가운데 하나가 유채마을이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마을 주변에 유채가 많다. 영화로 유명세를 탄 뒤 마을 사람들이 유채와 메밀을 심었다고 한다. 그래서 봄이면 노란 물결이 넘실대고, 가을에는 하얀 메밀꽃이 흐드러진다.

전형적인 시골 농가 풍경의 마을에 있는 이청준 생가.


이청준 생가가 있는 진목마을 입구는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고갯마루다. 마을은 전형적인 시골의 농가 풍경. 생가 내부는 단편 ‘여름의 추상’, ‘잃어버린 절’ 등의 작품 일부와 신문에 기고한 칼럼, 영화 ‘천년학’의 주연배우와 임권택 감독, 이청준의 사진이 있다.

작가의 묘소가 자리한 이청준문학자리에서 여정은 끝난다. 진목마을에서 나와 내리막길로 가면 반듯반듯한 논이 이어진다. 그 너머로 바다와 섬이 보이는 곳, 바로 갯나들이다. 1970년대 간척 사업 전만 해도 이곳은 갯내 물씬 풍기는 바다였다. 바다를 메워 거대한 논이 된 지금, 황량한 농로를 따라 이청준문학자리로 이어진다. 작가는 세상을 떠난 뒤 갯나들에 잠들었고, 사람들은 그의 묘소 앞에 이청준문학자리를 만들었다. 묘소 앞으로 넓은 바닥 돌에 작품 속 배경을 직접 그린 문학지도와 작가의 초상, 그리고 ‘해변 아리랑’의 한 대목이 새겨진 직사각형 돌기둥, 작가의 호 ‘미백(未白)’을 새긴 바위가 있다.

이청준 묘지와 그의 부인 가묘


◇여행메모

△가는길=남해고속도로 장흥IC에서 나와 장흥IC교차로 장흥 방면으로 좌회전하면 장흥대로다. 여기서 2km 직진해 장흥교를 건너 칠거리에서 11시 방향으로 800m 더 들어간다. 신람리외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관산 방면 국도 23호선으로 들어서 장흥대로를 따라가다 정남진 방면으로 좌회전해 직전한다.

△먹거리= 장흥 삼합은 장흥 9미 중 으뜸으로 꼽는 장흥 별미다. 장흥에서 키운 한우와 표고버섯, 득량만에서 채취한 키조개를 구워 함께 먹는다. 장흥 으뜸 요리로 정남진토요시장에 한우거리를 조성했다.

장흥 정남진 만나 숯불갈비의 장흥삼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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