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배신의 시대…'문화'는 죄가 없다

  • 등록 2016-11-07 오전 6:04:00

    수정 2016-11-07 오전 6:04:00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부장] 차마 셀 수도 없는 이들이 한꺼번에 바보가 됐다. 과하다 싶었다. 하루가 다르게 커지는 예산규모도 그랬지만 거창한 명칭이 아무나 접근해선 안 되는 일이라고 선을 긋는 듯했다. 뒤늦게 이런 소리가 얼마나 우스운지 잘 안다. 한 줄 변명이 허락된다면, 다리 놓고 도로 닦는 국가기간산업쯤으로 문화를 여기게 했으니 토 달 여지가 별로 없었다. 문화융성이라 쓰고 문화재건사업으로 읽으라는 데야.

그 일에 팔을 걷어붙였던 문화체육관광부가 이제 앞장서 팔다리를 잘라내기로 했다. 지난 4일 국회 교문위에 제출한 ‘문제사업 예산조정안’은 최순실·차은택 관련 의혹이 있는 사업을 알아서 자진삭제하겠다는 것이았다. 42개 항목의 3570억원이 의심스러운데 이중 당장 19개 항목 731억(20.5%)을 삭감하겠다는 것. 가장 큰 덩어리는 차은택이 초대 본부장을 맡은 문체부 산하 문화창조융합본부에서 진두지휘한 ‘문화창조융합벨트’다.

도대체 문화창조융합벨트가 뭔가. 지난해 2월 출범한 문화창조융합벨트는 크게 6개 거점사업으로 돼 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조성한 ‘문화창조융합센터’, 중구 청계천로에 들어선 ‘문화창조벤처단지’와 ‘문화창조아카데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체조경기장을 리모델링하는 K-팝아레나’, 경복궁 옆 대한항공 부지에 세울 ‘K-익스피어런스’, 경기 고양시 대화동의 ‘K-컬처밸리’. 이들이 둥글게 띠를 이어 ‘선순환생태계’를 이룬다는 거대계획이었다. 한마디로 현 정부가 국정기조로 밀고 있는 문화융성의 밑그림인 셈이다.

하나만도 버거운 사업이 6개나 줄줄이 진행 혹은 대기 중이었다. 비용은 또 어떤가. 지난해 말 문화창조융합벨트에 책정한 올해 예산은 2800억원. 이중 정부예산이 1325억원, 복합콘텐츠펀드가 1385억원이었다. 이것이 올해로 넘어오면서 3000억원이 넘는 돈보따리로 부풀었다.

솔직히 이대로만 됐다면. 무엇보다 젊은 창작인과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요지였으니. 문화콘텐츠와 관련한 기획(융합센터)-제작(벤처단지)-인재육성(아카데미)-구현·소비(컬처밸리·아레나·익스피리언스)를 한 덩어리로 관리·지원한다는 거였으니. 가령 문화창조벤처단지에는 출범 당시 13대 1의 경쟁률을 뚫은 평균 36세의 창작인이 모였다. 박칼린 킥뮤지컬아카데미 예술감독,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 등을 교수진으로 띄운 문화창조아카데미는 40명 모집에 158명이 지원할 만했다.

그런데 이 모두가 하룻밤 새 지독한 악몽이 됐다. 예산삭감은 사전포석일 뿐 해체수순을 밟을 거란 전망이 대세다. 이제야 ‘빛 좋은 개살구’였다는 비난도 쏟아진다. 93개 입주사로 야심차게 발을 뗀 문화창조벤처단지가 알고 보니 절반은 비었다는 둥, 호텔 대신 한국문화체험공간으로 꾸리겠다던 K-익스피리언스는 발표 이후 착공은커녕 투자계획도 못 세웠다는 둥.

지난해 전업예술인 10명 중 7명은 한 달 소득 100만원을 넘기지 못했다. 그중 4명은 50만원 미만이고. 200만원 이상을 버는 고소득(?)층은 10명 중 1명꼴이었다. 어느 특정 부문만도 아니다. 미술·연극·음악·영화·문학 등이 고르게 힘들었다. ‘기운차게 일어나거나 대단히 번성한다’는 뜻의 융성. 그렇게 융성할 문화가 따로 있었던 건가. 무협지의 한 장면도 아니고 ‘비선실세’의 칼을 맞고 맥없이 부러질 융성이었다니. 풀뿌리 문화예술인 앞에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렇다고 문화융성을 기어이 버리고 갈 건가. 옥석 가리기는 지금부터다. 문화창조융합벨트가 문화융성의 전부가 아니니까. 설령 그 안에 속한 사업이라도 문화계의 뜨거운 동력이 될 수 있다면 과감히 품고 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문화’는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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