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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딸 죽였는데 징역 살고 나와도 20대...제2, 제3의 효정이 없어야"
- [이데일리 박지혜 기자] 이른바 ‘거제 교제폭력 사건’ 피해자 고(故) 이효정 씨의 유가족은 “제2, 제3의 효정이가 더는 있어선 안 된다”며 교제폭력에 대한 처벌 강화를 촉구했다.지난 14일 ‘효정이 엄마’라고 밝힌 누리꾼은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교제폭력 관련 제도 개선 요청에 관한 청원’이란 제목의 글을 올렸다.청원인은 “행복한 일상이 4월 1일 아침 9시 스토킹 폭행을 당했다는 딸 아이의 전화 한 통으로 무너졌다”며 “20대의 건장한 가해자는 술을 먹고 딸 아이의 방으로 뛰어와 동의도 없이 문을 열고 무방비 상태로 자고 있던 딸 아이 위에 올라타 잔혹하게 폭행을 가했다”고 밝혔다.이어 “응급실을 간 사이 가해자는 피해자 집에서 태평하게 잠을 자는가 하면, 10일 딸 사망 후 11일 긴급체포에서 풀려나 13일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다니며 ‘여자친구랑 헤어졌다. 공부해서 더 좋은 대학 가서 더 좋은 여자친구를 만나겠다’는 등 전혀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고 덧붙였다.심지어 “사흘간 장례가 치러지는 동안에도 조문도, 용서를 구하는 통화도 없었다”고 했다.‘거제 전 여자친구 폭행 남성’이라며 온라인에 퍼진 사진청원인은 “이제 21살밖에 안된 앳된 딸이 폭행에 의한 다발성 장기 부전 및 패혈증으로 4월 10일에 거제 백병원에서 사망 선고를 받았다. 청천벽력과 같은 현실에 부모와 가족들은 극심한 슬픔과 충격에 빠져 있다”며 “딸을 잃고 나서야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앞으로 어떻게 남은 자녀들을 키워나갈 것인지 몹시도 불안하고 겁이 난다. 사춘기 막내는 누나의 방을 보면 누나 생각이 나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 가해자가 저희 집 주소도 알고 있고 가족들의 심신도 피폐해져 결국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그는 “제2, 제3의 효정이가 더는 있어선 안 된다. 우리 가족과 같은 고통을 받으면 안 된다”고 호소했다.청원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효정이는 가해자에게 폭행당해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도 가해자는 상해치사, 주거침입, 스토킹으로만 기소되었다. 사람을 죽여놓고도 형량이 3년 이상의 징역밖에 안 돼 형을 살고 나와도 가해자는 20대다. 치사는 실수로 죽인 것이지만 가해자는 명백히 효정이를 죽이기 위해 목을 조르고 반항할 수 없도록 결박한 채로 폭행했다”고 강조했다.그러면서 “가해자를 11번이나 멀쩡히 풀어준 거제 경찰의 책임을 명명백백히 밝히고, 교제폭력에 대한 수사매뉴얼을 전면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그는 “효정이는 가해자를 11번이나 신고했지만 경찰에서 번번이 쌍방폭행으로 처리해 풀어줬고, (가해자) 김 씨는 더 의기양양해져서 제 딸에게 ‘이제는 주먹으로 맞는다’, ‘너 죽어도 내 잘못 아니래’라고 했다”며 “심지어 경찰은 가해자가 구속될 때 ‘가해자 인생도 생각해달라’라고 훈계하는데 억장이 무너졌다. 정작 효정이가 살려달라고 11번이나 신고했을 때에 경찰은 가해자에게 ‘효정 씨 인생도 생각해달라’라는 말 한마디, 권고 조치 한번 해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또 “경찰은 김 씨의 범죄를 스토킹 범죄로 처리해서 피해자 보호조치를 취할 수 있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서 “수사기관에서 교제폭력을 단순 쌍방폭행으로 종결시키지 못하도록, 신고 단계에서 신변보호조치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수사 매뉴얼을 전면적으로 개선할 것을 요구한다”고 했다.전 남자친구에게 폭행을 당해 입원 치료를 받다 숨진 여성의 멍든 눈 (사진=JTBC 뉴스룸 방송 캡처)청원인은 “폭행·상해치사 가족·연인 간 양형 가중 및 스토킹 면식범 양형 가중”도 요구했다.그는 “가해자 김 씨는 폭행·상해치사죄로 기소됐고, 폭행·상해치사죄는 살인의 고의가 없는 범죄인만큼 살인죄보다 죄질과 형량이 훨씬 더 가볍다”며 “교제폭력처럼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살인 사건은 가해자가 오랜 기간 악질적으로, 상습적으로 피해자를 때리다가 죽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살인 사건은 폭행·상해치사죄로 취급되어 감형받는 면죄부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청원인은 “잘못된 사법 관행을 철폐하고, 김 씨가 합당한 처벌을 받도록 가족·연인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행·상해치사 범죄의 경우 살인죄와 비슷한 형량으로 가중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비슷한 취지에서 스토킹 범죄에서 가해자가 면식범인 경우 양형을 가중할 것을 요구한다”고 했다.끝으로 “국회에서 지금 당장 교제폭력 가해자들이 제대로 처벌받고, 피해자들은 보호받을 수 있는 교제폭력처벌법을 마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썼다.청원인은 “교제폭력은 형법상 협박, 폭행죄로 취급되어 반의사불벌조항이 적용돼서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가해자가 피해자의 신상을 잘 알고 있어서 손쉽게 보복할 수 있는 상황에서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처벌을 정말 원하느냐고 묻는 건 가해자에게는 피해자만 잘 위협하고 을러대면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거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그러면서 “국회의원들이 ‘교제 관계를 정의하기 어렵다’라며 탁상공론을 하며 법제 개선을 외면하는 동안에도 수많은 교제폭력 피해자들이 살해당하고 있다”며 “국회에서 지금 당장 반의사불벌 폐지, 피해자보호조치를 포함해 제대로 된 법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한다”고 했다.이 청원은 17일 오전 7시 현재 2만6500명의 동의를 얻었다. 청원 공개 이후 30일 이내 청원 성립 요건인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국회 소관위원회에 넘겨져 관련 법 개정 논의가 이뤄지게 된다.전 남자친구에게 폭행당해 숨진 20대 피해자의 부모가 20일 오후 경남 통영시 창원지법 통영지원에서 예정된 20대 피의자 김모 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앞서 재판부에 김 씨의 구속을 요구하며 흐느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김 씨는 전 여자친구를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상해치사 등)로 지난 22일 구속 송치됐다.그는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난달 1일 오전 8시께 경남 거제시의 이 씨가 사는 원룸에서 이 씨를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이 씨는 외상성 경막하출혈 등으로 전치 6주 진단을 받고 거제 한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패혈증에 의한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지난달 10일 숨졌다.당시 경찰은 김 씨를 긴급 체포했으나 검찰이 ‘긴급 체포 요건인 긴급성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체포를 불승인하면서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했다. 당초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 씨 사망 원인이 폭행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구두 소견을 냈다.이후 경찰은 국과수에 조직 검사 등 정밀 검사를 의뢰했고, 국과수는 최근 “이 씨가 머리 손상에 의한 합병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경찰에 전달했다.경찰은 이 같은 결과 등을 토대로 지난 20일 김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은 같은 날 도주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김 씨는 구속심사에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고 법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김 씨 측은 개인신상이 이미 노출되는 등 심리적 압박을 많이 받아 법원에 출석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 개미들 피눈물…상법 개정 ‘불씨’ 던진 이복현[최훈길의뒷담화]
-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 상법 제382조의3 이사의 충실 의무 조항입니다. 여기서 ‘회사를 위하여’라는 표현을 ‘회사와 주주를 위하여’ 등의 표현으로 바꾸는 게 이번 상법 개정 이슈의 핵심 쟁점이자, 오늘 뒷담화 주제입니다. 사실 이 쟁점은 사실 해묵은 내용이기도 합니다. ‘상법을 바꿔 거수기 이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예전부터 거론됐던 내용이거든요. 올해 1월 밸류업 논의를 시작할 때,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현상) 해소를 위해서는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탄력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게 이번에 이슈가 되는 건 이복현 금감원장이 상법 개정 필요성을 언급한 발언 때문입니다. 이복현 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이잖아요. 자본시장 감독을 진두지휘하고 있고요. 그러다 보니 이 발언의 무게가 작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난 12일 이복현 원장이 참석한 상법 세미나가 이슈가 됐던 거고요. 지난주 월요일(10일)에 공매도 3차 토론회가 끝났고 공매도 제도개선안이 지난 13일 발표되기 때문에 공매도는 가닥이 잡혔습니다. 이제부터 상법 개정 논의 ‘불씨’가 이제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지난 12일 세미나가 사실상 상법 개정 1차 세미나이고요, 이번 달 26일 상법 개정 2차 세미나가 열립니다. 22대 국회가 개원해 상법 개정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예정인데요. 오늘 뒷담화에서는 관련 내용을 종합 정리해봤습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달 1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투자설명회(‘INVEST K-FINANCE : NEWYORK IR 2024’)에서 “상법상 주주이익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는 무조건 도입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진 왼쪽부터 부산국제금융진흥원 이명호 원장, 삼성생명 홍원학 사장, 미래에셋증권 김미섭 대표이사, 칼라일그룹 하비 슈와츠(Harvey M. Schwartz) 대표이사, KB금융지주 양종희 회장, 주한뉴욕총영사관 김의환 총영사, 금감원 이복현 원장, 한국거래소 정은보 이사장, 서울특별시 강철원 정무부시장, 신한금융지주 진옥동 회장, 모건스탠리 다니엘 심코위츠(Daniel Simkowitz) 공동대표, 한국투자증권 김성환 대표이사, 현대해상 조용일 대표이사, JP모간 김기준 한국대표. (사진=금융감독원)-우선 이번 상법 개정 논의를 촉발한 이복현 원장 발언부터 전해주시죠.△왜 이렇게 상법 개정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려면 이복현 원장 발언을 주목해서 봐야 하는데요. 첫 발언이 어디서 나왔는지 보니 지난달 16일 뉴욕 IR이었습니다. 이 원장은 뉴욕 IR에서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밸류업 프로그램의 정책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금융당국의 중장기 계획은 무엇입니까’. 이에 대해 이 원장은 “상법상 주주이익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는 무조건 도입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하반기 국회가 정식 출범되기 전 지배구조 개선정책 방향을 잡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관련 발언을 계속해오고 있는데요. 특히 이 원장이 “쪼개기나 중복 상장 문제, 소수 주식 가치 보호에 실패한 부분이 있다면 이사의 충실 의무 등 법 개정 등을 통해 개선할 수 있을지 다양하게 검토 중”이라고 말했는데, 쪼개기 상장은 개인 투자자들이 상법 개정을 원하는 핵심 이유입니다. -그동안 쪼개기 상장 논란이 많았죠. △사실 쪼개기 상장이 투자자들 피눈물 흘리게 했잖아요. 모기업이 가지고 있던 돈 되는 핵심 사업부를 별도 회사로 만드는 ‘물적분할’, 그 자회사를 증시에 새로 상장하는 ‘쪼개기 상장’ 문제입니다. LG화학(051910)이 2차전지 사업을 하는 LG에너지솔루션(373220)을, 카카오(035720)가 카카오게임즈(293490)와 카카오페이(377300) 등을 물적분할 후 쪼개기 상장시켰습니다. 이후 LG화학은 LG에너지솔루션 쪼개기 상장 후 3개월간 주가가 20% 넘게, 카카오 주가는 카카오페이 상장 후 30% 넘게 하락했습니다. 오너 일가는 물적분할로 기업 지배력을 높이고 손쉽게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수 있지만, 개인투자자들은 기존 회사의 주가 하락으로 피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이번 상법 논의 과정에서 보면 재계에선 ‘소액주주 보호장치는 이미 충분하기 때문에 주주 충실의무 명문화는 불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과거 LG화학이나 카카오 물적분할에 피눈물 난 투자자들은 이 얘기가 맞다고 생각할까요. 오히려 물적분할 과정에서 이사들이 회사의 이익만이 아닌 주주의 이익을 함께 고려했다면 이런 판단을 할 수 있었을까요. 상법 개정 이슈가 불거지는 건 그동안 상장사 이사회가 일반 주주 이익을 외면하고 갔던 게 이제는 더이상 용납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주권익을 보호하는 게 중요한 시대가 됐다, 기업도 변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21대 국회 당시 이용우·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상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지만 지난달 폐기됐다. 정준호 민주당 의원은 주주 충실 의무를 담은 상법 개정안을 지난 5일 대표발의했다. 21대 국회에서 발의했던 박주민 민주당 의원도 재발의 예정이다. (자료=국회)-그런데 1차 상법 개정 세미나를 봐도 뜨거운 토론이었는데.△상법 이슈는 법 관련 이슈라 내용이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번 논란은 찬반 양론이 팽팽하고요. 그래서 이슈를 살펴볼 때 한쪽 얘기만 들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오늘 뒷담화는 최대한 팩트체크 형식으로 해서 쟁점을 정리해봤습니다. 우선 ‘상법 개정은 어떤 나라도 도입 안 한 기업 옥죄기’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다른 나라 전례가 없나요? 전례 있습니다. 금감원이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 및 모범회사법의 경우 이사의 충실의무 및 그 위반에 따른 법적책임 대상에 회사와 주주를 함께 명시하고 있습니다. 즉 이사가 충실의무를 위반하면 주주가 직접 제소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모범회사법 제8.30조를 보면 ‘회사의 이익’에 대해 ‘‘회사라는 용어는 기업을 대신할 뿐만 아니라 주주 단체를 포괄하는 참조 프레임’이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회사가 최선의 이익을 결정할 때 ‘다양한 주주들의 이익’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역시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그래픽=김정훈 기자)-실제 적용된 해외 사례도 있나요?△있습니다. 앞서 지난 1월30일(현지시각) 미국 델라웨어주 법원은 테슬라 소액주주가 회사 이사회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소액주주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테슬라 이사회가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에게 당시 560억달러(77조원) 규모의 스톡옵션 보상 지급안을 승인하자 회사 주식 9주를 보유한 소액주주가 과도한 보상을 취소하라며 제기한 소송입니다. 법원은 해당 소액주주의 주장을 받아들여 머스크의 보상안에 대해 무효 판결을 내렸습니다. 당시 법원은 “이사회 결의 과정에서 심각한 결함이 있었고, 이에 따라 이사회의 투명성과 독립성이 우려된다”며 소액 주주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머스크에 대한 보상 패키지가 주총에서 통과되느냐, 부결되느냐가 지난 13일(현지시간) 테슬라 주주총회에서 결정됐습니다. 머스크에 대한 보상 패키지가 승인됐습니다. 소액주주의 주장이 주총에서는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미국 법원 판결 이후 일련의 과정을 보면 미국에서는 9주를 가진 소액주주의 목소리도 우리나라보다 존중받고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이사회의 투명성과 독립성도 보다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고 있고요. -상법 개정되면 M&A가 올스톱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오는데. △기업들의 그런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국내 상장기업 153개사(코스피 75개사·코스닥 78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가 확대되면 M&A계획을 재검토하거나 철회하겠다는 응답이 32.9%로 집계됐다고 12일 밝혔습니다. 응답기업의 66.1%가 상법 개정 시 해당 기업은 물론 국내기업 전체의 M&A 모멘텀을 저해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주주 중에는 지배주주도 포함되고 비지배주주 간에도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는데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정리할지 의문”이라며 “면밀한 검토 없이 도입하면 M&A나 신규투자는 위축시키고 경영의 불확실성만 가중하는 결과가 우려된다”고 밝혔습니다. M&A 우려는 사실이지만, 상법 개정으로 M&A가 위축되는 것과 상법 개정을 안 해서 한국 증시나 기업이 위축되는 것 사이의 경중을 따져봤으면 합니다. 상법 개정을 안 하고 이대로 계속 개인 투자자들이 외면받을 경우, 장기적으로 득보다 실이 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법 개정 없이 이 상태로 계속 가면 거버넌스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계속 가는 거잖아요. 그러면 국내에 투자해도 성과를 돌려주지 않는데 이런 상태에서 기업 투자나 자본시장 활성화가 될 수 있을까요.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 자본시장이 제대로 크기 힘들고, 투자가 제대로 안 되면 장기적으로 기업도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상장기업 153개사 설문조사 결과. (자료=대한상의)-상법 개정을 하면 소송만 남발될 것이란 우려도 있지요?△기업들이 상법 개정에 반발하는 진짜 속내는 ‘소송 남발’ 우려 때문인데요.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이사가 회사에 손해를 끼쳐도 민사소송을 통해 잘못을 가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민사소송은 물론 형사처벌까지 가능합니다. 배임죄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CEO들이 배임죄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데요. 형량이 셉니다. 배임 액수가 50억원이 넘으면 형법이 아니라 특가법(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이 적용돼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징역형’에 처해집니다. 살인죄(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와 비슷한 수준의 처벌입니다. 그리고 검찰이 배임죄로 걸면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점도 있는데요. 배임죄는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당연히 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해 회사에 손실을 끼치는 것’인데요, ‘기대되는 행위’에 대한 판단기준이 모호합니다. 그러다 보니 포괄적으로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큽니다. 과거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소송 당시, 검찰은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과 임원들이 이사의 충실의무 위반 배임죄로 기소하기도 했고요. 이 때문에 금감원도 소송 남발로 인한 기업의 배임죄 우려에 공감하면서도 상법을 개정하되 면책 조항을 함께 넣어 우려를 해소하자고 제언했습니다. 이복현 원장은 지난 12일 세미나에서 배임죄에 대한 재계 우려와 관련해 “합리적으로 경영판단을 한 경우 민형사적으로 면책받을 수 있도록 경영판단원칙을 명시적으로 제도화한다면 기업경영에 큰 제약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 원장은 지난 14일에도 금감원에서 상법 개정 관련 브리핑을 따로 열기도 했습니다. 금감원장의 금요일 브리핑이 이례적인데 그만큼 이 원장이 상법 개정에 공을 쏟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원장은 브리핑에서 “이사회 충실의무 대상이 주주로까지 확대돼야 한다”며 “삼라만상을 다 처벌 대상으로 삼는 배임죄는 현행 유지보다는 폐지가 낫다”고 말했습니다. 기업들이 우려하는 배임죄를 없애면서 개인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상법 개정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상법 개정 등 이슈와 관련해 브리핑 하고 있다. 이 원장은 “이사회 충실의무 대상이 주주로까지 확대돼야 한다”며 “삼라만상을 다 처벌 대상으로 삼는 배임죄는 현행 유지보다는 폐지가 낫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이런 우려와 쟁점이 있는데, 상법 개정이 정말 될 수 있을까요?△순탄치는 않겠지만 정부 측 의지가 큰 만큼 하반기에 어떻게든 논의가 진전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이복현 금감원장 의지가 크다고 풀이되는데요. 삼성물산(028260)과 제일모직의 합병 사건 당시 수사팀장은 윤 대통령, 공소장을 쓴 검사는 이 원장이었습니다. 당시 공소장을 보면 검찰은 “삼성물산과 삼성물산 주주의 이익 보호를 위해 합병의 사업적 타당성을 충분히 검토해야 하는 의무를 위배했다”고 썼습니다. 특히 국민의힘이 오는 7월23일 여는 전당대회에서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 당선이 유력한 상황이잖아요. 그런데 한동훈 전 위원장, 이복현 원장은 검사 시절에 기업 범죄를 많이 수사해봤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사가 주주에 충실해야 한다’는 상법 개정의 필요성을 가장 많이 느끼고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그리고 22대 민주당 총선 공약에 “이사의 충실의무 조항 내 ‘주주의 비례적 이익’ 추가를 포함하는 상법 개정 검토” 내용으로 포함돼 있어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22대 국회에서 상법 개정 논의에 힘을 실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준호 민주당 의원은 주주 충실 의무를 담은 상법 개정안을 지난 5일 대표발의했고요, 21대 국회에서 발의했던 박주민 민주당 의원도 재발의 예정이라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될 전망입니다. ※이슈나 정책 논의 과정의 뒷이야기를 추적해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