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용익의 록코노믹스]기타 명가 깁슨의 몰락

  • 등록 2018-05-05 오전 5:05:05

    수정 2018-05-05 오전 9:04:42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록의 역사와 함께한 일렉트릭 기타의 명가(名家) 깁슨이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델라웨어 법원에 파산보호신청(챕터11)을 했다는 소식은 록 음악 팬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줬다.

깁슨 기타는 B.B. 킹, 지미 페이지, 앵거스 영, 슬래쉬 등 수많은 기타 히어로들이 사용해 온 전설적인 악기다. 에릭 클랩튼은 비틀스의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기타 솔로를 녹음하면서 깁슨 레스폴을 사용했고, 2017년 사망한 ‘로큰롤의 아버지’ 척 베리는 그가 사랑했던 깁슨 ES-335와 함께 땅에 묻혔다.

레드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과 건스앤로지스의 “November Rain”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기타 솔로는 물론, 블랙사바스의 “Paranoid”나 AC/DC의 “Thunderstruck”에 나오는 헤비한 기타 리프에도 깁슨 기타가 사용됐다.

깁슨은 1902년 미국 미시간 칼라마주에 설립된 깁슨 만돌린-기타 매뉴팩처링 컴퍼니로 시작했다. 초기에는 만돌린을 주로 만들었지만, 1930년대에는 바이올린을 본뜬 어쿠스틱 기타를 만든 데 이어 1952년에는 기타리스트 레스 폴과 협업해 솔리드바디 일렉트릭 기타 ‘레스폴’을 출시했다. 레스폴은 지금까지도 록 뮤지션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타 중 하나로 꼽힌다. 이밖에도 ‘플라잉 V’, ‘SG’ 등이 뮤지션들로부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화려한 역사를 자랑하는 깁슨은 그러나 최대 5억달러의 부채를 갚지 못해 결국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깁슨이 이 지경까지 온 것은 2014년 필립스로부터 인수한 홈 엔터테인먼트 사업부문의 실적이 부진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이유다.

근본적인 이유는 록 음악의 몰락에 있다. 애초에 깁슨이 홈 엔터테인먼트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뮤직 라이프스타일 회사’를 표방한 것도 기타 판매 만으로는 성장이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아이비스월드에 따르면 현재 5억4200만달러 규모인 미국 일렉트릭 기타 시장은 오는 2022년까지 연간 0.1% 성장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그나마 고객은 어른들이 대다수고, 일렉트릭보다 어쿠스틱 기타가 더 많이 팔리는 게 현실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록은 대중음악의 주류였다. 록 뮤지션들은 빌보드 차트와 MTV를 점령하다시피 했다. 수많은 록 키드들이 유명한 기타리스트가 되는 날을 꿈꾸며 기타를 구입하고 밴드를 결성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힙합과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이 대세가 된 지금은 그런 아이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댄스 그룹 멤버가 되고 싶은 청소년들에게 기타리스트는 그냥 좀 멋있는 아저씨일 뿐 따라하고 싶은 존재는 아니다.

기타의 몰락은 음원 순위에서도 확인된다.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오른 곡의 절반 가량에는 기타 솔로 자체가 없다.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랩 피처링이다. 1950년대 이후 대중음악의 중요한 악기였던 일렉트릭 기타가 사상 처음으로 설 자리를 잃은 것이다.

대중음악 전문지 디지털뮤직뉴스는 “한 때 기타 시장 성장을 주도한 젊은 소비자들이 지금은 EDM, 랩, 기타가 덜 등장하는 인디 음악으로 옮겨갔다”고 진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타 업계 2위인 깁슨뿐만 아니라 1위 업체인 펜더 역시 실적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2년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다 실패한 펜더의 매출액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으며, 1억달러 가량의 부채까지 안고 있다. 미국 최대 기타 유통업체인 기타센터의 부채는 16억달러에 달한다.

록 음악이 다시 융성하지 않는 한 일렉트릭 기타 업계의 어려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쉬빌의 유명한 기타 딜러인 조지 그룬은 2017년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46년 전 기타 가게를 처음 열었을 때는 에릭 클랩튼, 제프 벡, 지미 헨드릭스, 카를로스 산타나, 지미 페이지 등의 영향으로 모든 사람들이 기타의 신이 되고 싶어했다”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타 히어로”라고 말했다.

건스앤로지스의 기타리스트 슬래쉬가 “November Rain” 뮤직비디오에서 깁슨 레스폴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뮤직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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