깁슨 기타는 B.B. 킹, 지미 페이지, 앵거스 영, 슬래쉬 등 수많은 기타 히어로들이 사용해 온 전설적인 악기다. 에릭 클랩튼은 비틀스의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기타 솔로를 녹음하면서 깁슨 레스폴을 사용했고, 2017년 사망한 ‘로큰롤의 아버지’ 척 베리는 그가 사랑했던 깁슨 ES-335와 함께 땅에 묻혔다.
레드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과 건스앤로지스의 “November Rain”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기타 솔로는 물론, 블랙사바스의 “Paranoid”나 AC/DC의 “Thunderstruck”에 나오는 헤비한 기타 리프에도 깁슨 기타가 사용됐다.
깁슨은 1902년 미국 미시간 칼라마주에 설립된 깁슨 만돌린-기타 매뉴팩처링 컴퍼니로 시작했다. 초기에는 만돌린을 주로 만들었지만, 1930년대에는 바이올린을 본뜬 어쿠스틱 기타를 만든 데 이어 1952년에는 기타리스트 레스 폴과 협업해 솔리드바디 일렉트릭 기타 ‘레스폴’을 출시했다. 레스폴은 지금까지도 록 뮤지션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타 중 하나로 꼽힌다. 이밖에도 ‘플라잉 V’, ‘SG’ 등이 뮤지션들로부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화려한 역사를 자랑하는 깁슨은 그러나 최대 5억달러의 부채를 갚지 못해 결국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깁슨이 이 지경까지 온 것은 2014년 필립스로부터 인수한 홈 엔터테인먼트 사업부문의 실적이 부진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이유다.
시장조사업체 아이비스월드에 따르면 현재 5억4200만달러 규모인 미국 일렉트릭 기타 시장은 오는 2022년까지 연간 0.1% 성장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그나마 고객은 어른들이 대다수고, 일렉트릭보다 어쿠스틱 기타가 더 많이 팔리는 게 현실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록은 대중음악의 주류였다. 록 뮤지션들은 빌보드 차트와 MTV를 점령하다시피 했다. 수많은 록 키드들이 유명한 기타리스트가 되는 날을 꿈꾸며 기타를 구입하고 밴드를 결성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힙합과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이 대세가 된 지금은 그런 아이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댄스 그룹 멤버가 되고 싶은 청소년들에게 기타리스트는 그냥 좀 멋있는 아저씨일 뿐 따라하고 싶은 존재는 아니다.
기타의 몰락은 음원 순위에서도 확인된다.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오른 곡의 절반 가량에는 기타 솔로 자체가 없다.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랩 피처링이다. 1950년대 이후 대중음악의 중요한 악기였던 일렉트릭 기타가 사상 처음으로 설 자리를 잃은 것이다.
대중음악 전문지 디지털뮤직뉴스는 “한 때 기타 시장 성장을 주도한 젊은 소비자들이 지금은 EDM, 랩, 기타가 덜 등장하는 인디 음악으로 옮겨갔다”고 진단했다.
록 음악이 다시 융성하지 않는 한 일렉트릭 기타 업계의 어려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쉬빌의 유명한 기타 딜러인 조지 그룬은 2017년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46년 전 기타 가게를 처음 열었을 때는 에릭 클랩튼, 제프 벡, 지미 헨드릭스, 카를로스 산타나, 지미 페이지 등의 영향으로 모든 사람들이 기타의 신이 되고 싶어했다”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타 히어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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