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쉼터는 그림의 떡, 얼음물이라도"…폭염이 두려운 쪽방촌

서울 사흘째 폭염경보…낮기온 최고 38도까지
창문 하나없는 쪽방…못견뎌 길가에서 여름 나
너무 멀고 남자만 가득…`그림의 떡` 무더위쉼터
전문가 "쉼터 활용도 높이고 맞춤형 대책 내놔야"
  • 등록 2019-08-11 오전 11:44:05

    수정 2019-08-11 오전 11:46:26

9일 오후 찾은 영등포구 쪽방촌 내 이씨의 방. 이씨는 창문 하나 없는 방에서 무더운 여름을 나고 있다. (사진=손의연기자)


[이데일리 손의연 기자] “방안에 있을 수가 없으니 밖에 나와 있죠. 방에는 창문도 없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지난 9일 오후 3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의 쪽방촌에서 만난 주민 이모(69)씨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그는 위암 수술을 받은 지 얼마 안 됐지만 집 안이 너무 더워 두 시간째 그저 길가에 나와 앉아 있다고 했다.

연일 폭염경보가 내려지면서 쪽방촌 주민들이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각 지자체가 쪽방촌 내 무더위 쉼터를 운영하고 생수를 지원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주민들이 무더위를 이겨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쪽방촌 주민들은 대부분 60세 이상의 기초생활수급자들로 온열질환에 더욱 취약한 계층이다.

방에선 더위 견딜 수 없어…쪽방촌 주민 “무더위 쉼터는 부담”

이씨가 거주하고 있는 방은 두 평 남짓. 이씨는 창문 하나 없는 방 한 칸은 혹독한 여름과 겨울을 나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고 하소연했다. 더욱이 좁은 방 안에서 식사를 위해 불을 사용해야 하니 여름은 더 혹독한 계절이라고 토로했다.

이씨는 “위암 수술을 받은 지 두 달 됐는데 몸도 안 좋고 날이 더우니 공용 화장실이나 공용 샤워실을 찾기도 힘들다”라며 “구청에서 쪽방촌에 에어컨을 설치하면 전기세를 싸게 해준다 했는데 집주인들이 반대해 설치하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쪽방촌 2층에 사는 60대 여성 강모씨 역시 폭염 속 쪽방을 참지 못하고 길거리의 그늘을 찾아 나선 이들 중 하나였다. 연신 부채질을 하던 강씨는 “소방서에서 한 두 차례 물을 뿌리는데 그 습기가 2층으로 올라와 더 더워져 방에 머물 수가 없다”라며 “그래도 생수를 하루에 두 병씩 주는 게 도움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더위를 피할 공간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쪽방촌 주민들은 무더위 쉼터는 부담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이씨는 “쪽방촌 내 무더위 쉼터가 한 곳 있고 영등포구청역 인근에도 한 곳 있는 걸로 알지만 거리가 멀어 오가며 어차피 땀에 젖는다”고 말했다. 강씨도 “쉼터엔 에어컨이 있어 시원하긴 한데, 공간이 좁고 주로 남자들이 있기 때문에 여자들이 편하게 있기엔 좀 불편하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찾은 영등포구 쪽방촌 내 무더위 쉼터에는 주민 두 명만이 더위를 피해 쉬고 있었다. 무더위 쉼터엔 방이 두 칸이었지만 한 칸은 아예 불을 꺼놓고 이용하고 있지 않았다.

“폭염은 재난”…더위 피할 수 있는 적절한 공간 여전히 필요

채여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선임연구위원이 지난달 23일 서울인권포럼에서 발표한 사회경제환경 여건에 따른 폭염영향에 따르면 고령화, 소득 수준 양극화에 따라 향후 폭염의 영향도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르면 지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64세 이하의 온열질환 발병률은 1만 명 중 2.9건 수준이었지만 65~69세는 5.4건, 70~79세는 7.8건, 80세 이상에선 8.2건으로 고령일수록 온열질환 발병 건수가 많았다. 또 같은 기간 소득 분위별 온열질환 발병 건수는 1분위부터 5분위까지 1만명 당 3~4건에 불과했지만, 소득 0분위(저소득층)의 발병 건수는 10.4건으로 두 배 이상 많았다.

이렇다보니 전문가들은 폭염을 재난으로 인식하고 이에 맞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무엇보다 폭염에 취약한 계층이 모인 쪽방촌에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무더위 쉼터가 대안이긴 하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채 선임연구위원은 “쪽방촌 등 취약계층은 얼음물이나 공간 등 기초 단위의 지원을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며 “무더위 쉼터에 대한 주민들의 심리적, 물리적 접근성이 좋지 않은데 이동거리와 수단, 취약계층 분포, 열대야 기간 심야 운영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쪽방촌 주민들이 무더위 쉼터를 찾는 것에 부담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현재 쉼터 외 제 3의 장소에 작더라도 좀 더 여러 개의 쉼터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며 “누구나 찾아갈 수 있는 공공장소 형식의 무더위 쉼터를 운영하면 주민들이 더위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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