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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가면 더 재밌는 ‘청와대’, 역대 대통령 기념식수와 위치는?
  • 알고 가면 더 재밌는 ‘청와대’, 역대 대통령 기념식수와 위치는?
  • 박근혜 대통령이 수궁터에 심은 ‘정2품송 후계목’(사진=강경록 기자)[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청와대가 74년 만에 개방되면서 국민 대표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다. 청와대 관람 사전신청 인원만 230만명을 훌쩍 넘겼다. 오죽하면 무료인 관람권을 웃돈까지 주며 거래할 정도다. 개방과 동시에 청와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여행지가 된 것이다. 청와대에는 대통령이 묶었던 관저와 함께 영빈관 등 여러 건물과 문화재가 수두룩하다. 대통령의 산책로와 정원, 그리고 문화재도 이번에 개방되면서 그동안 접근을 제한했던 청와대를 국민들이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됐다. 그중 청와대를 관람하는 방법의 하나는 역대 대통령들이 심은 기념식수들을 찾아보는 것이다.역대 대통령들은 식목일(4월 5일)을 맞아 청와대에 기념식수를 심었다. 특히 청와대 녹지원 등에는 역대 대통령들이 심은 나무와 표석들이 남아 있다. 이들 식수는 시대에 따라 부여된 의미는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이들 기념식수가 어디에 심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안내판이나 지도에는 나와 있지 않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역대 대통령들이 심은 기념식수의 위치와 그 의미를 알고 가면 청와대 관람이 더 풍부해진다.먼저,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 4월 5일에 여민1관 뜰에 기념식수를 심었다. 당시 청와대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민족의 늘푸른 기상을 담은 소나무를 심었고, 기념 표석을 제막했다”면서 “기념식수 장소를 여민1관 뜰로 잡은 것은 국민들이 관람하고 비서진들이 같이 근무하는 장소로서 개방과 소통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소개했다.문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인 올해 4월 5일에도 청와대 녹지원에서 기념 식수했다. 청와대는 “기념식수목은 제19대 대통령의 숫자와 같이 19년이 된 모감주나무”라면서 “기념식수 장소인 녹지원은 청와대의 주요 행사공간이자,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여민1관과 접한 소통공간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기념식수 중 문 대통령은 “모감주나무는 열매가 단단해 약재로 쓰이고 염주를 만들기도 해 ‘염주나무’라고도 불리며, 꽃이 피는 게 늦어 6~7월에 황금색 꽃이 피고, 열매는 가을에 복주머니 모양으로 열리는데 풍요와 부를 상징한다”고 설명했다.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2015년 4월 5일 청와대 경내에서 기념식수를 했었다. 70주년 광복절을 기념해 무궁화를 기념식수로 선택했다. 당시 청와대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이라며 “나라사랑의 마음을 되새기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2014년에는 청와대 수궁터에 3m 높이의 소나무인 ‘정2품 후계목’을 심은 바 있다.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9년 4월 5일 청와대 녹지원 입구에 20년생 반송(盤松) 한 그루를 심었다. 당일은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날이었다. 청와대는 이에 “북한은 로켓을 쏘지만 우리는 나무를 심는다”며 “정부는 북한의 도발에 대해 단호하고 의연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었다.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심은 기념식수도 이번에 개방된 새 등산로에서 발견할 수 있다. 청와대 동쪽 춘추관과 서쪽 칠궁에서 시작되는 새 등산로는 백악정에서 합쳐진다. 백악정 앞에서는 김대중 대통령 부부가 2001년 기념 식수한 느티나무와 ‘대한민국의 중심을 지키는 심장부’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 그 옆으로는 2004년 5월 16일 노무현 대통령이 심은 서어나무가 있다.이번에 개방된 청와대 등산로에 있는 백악정. 이 정자 양옆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념식수가 식재되어 있다.(사진=강경록 기자)
2022.05.17 I 강경록 기자
  • '국회의장 출마' 우상호 "의회구조 존중…식물국회 벗어나야"[전문]
  • [이데일리 이유림 기자] 86 그룹 중진인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4선·서울 서대문갑)이 17일 하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공식화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연합뉴스)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저는 21대 국회 하반기 국회의장에 출마하고자 한다”며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의회, 시대의 과제를 실현하는 의회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 저의 오랜 꿈”이라고 밝혔다. 그는 “합의라는 미명하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식물국회를 벗어나야 한다”며 “충분히 논의하되 합의가 안 될 때는 국민의 선택을 통해 만든 의회 구조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야 합의가 안 될 경우 다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이 표결을 통해 법안 등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또 2016년 국정농단 당시 여야 의원들을 설득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경험을 언급하며 “그 때와 같은 조정력을 발휘해 국회가 항상 국민이 원하는 선택을 하도록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새로운 의회상을 정립하겠다”며 △국회 국민동의청원 적극 활용 △의원외교 활성화 뒷받침 △법안 발의 후 토론 및 상정 제도화 등을 약속했다. 다음은 출마 회견문 전문. 세상을 바꾼 우상호, 이제 국회를 혁신하겠습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사랑하는 동료의원 여러분. 오늘 저는 21대 국회 하반기 국회의장에 출마하고자 합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의회입니다.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의회, 시대의 과제를 실현하는 의회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 저의 오랜 꿈입니다. 이제 국회 혁신으로 저의 오랜 꿈을 실현하고자 합니다. 저는 의회주의자입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갈등을 국회를 통해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국회의 명예는 심각히 손상되어 있습니다. 심사도 못한 법안들이 수백 건씩 쌓여 있으며, 급변하는 세상에 대응하는 시대적 과제들도 정쟁의 대상이 되어 한없이 지체되고 있습니다.이제 국회도 바뀌어야 합니다. 합의라는 미명하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식물국회를 벗어나야 합니다. 충분히 논의하되 합의가 안 될 때는 국민의 선택을 통해 만든 의회 구조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국민의 선택이 존중받도록 국회를 혁신하겠습니다. 첫째, 국민의 뜻을 받드는 국회의장이 되겠습니다. 2016년 국정농단으로 헌정질서가 위기에 처했을 때 저는 야당의 원내대표로서 당시 여당 의원들을 적극적으로 만나고 조정하여 234명의 탄핵 찬성표를 이끌어냈습니다. 국회가 국민의 명령을 받들어 피흘리지 않고 모두가 승리한 위대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때와 같은 조정력을 발휘해 국회가 항상 국민이 원하는 선택을 하도록 만들겠습니다. 둘째, 입법부의 위상강화로 대통령과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하겠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시작부터 많은 우려와 의구심을 낳고 있습니다. 국민의 신뢰는 역대 최저이고 사회 불안은 고조되고 있습니다. 지금 같은 시기야말로 삼권분립의 한 축인 국회가 적극 나서서 대한민국의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합니다. 입법부의 수장으로서 대통령이 국민의 뜻에 반하는 길로 가지 않도록 국회의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셋째,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 앞에 망설이지 않는 국회의장이 되겠습니다.토론과 조정은 정치의 본령입니다. 그러나 시급한 민생과 국가적 과제 처리가 불필요한 정쟁으로 인해 가로막혀서는 안 됩니다. 법률이 보장하는 국회의장의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필요한 순간에 망설이지 않고 과감히 결단하겠습니다. 넷째, 국회의원 한 명 한 명을 빛나게 하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일하는 국회의원들이 많습니다. 좋은 법안을 만드는 국회의원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제도와 운영의 혁신을 통해 국회의원 한명 한명의 위상을 높이겠습니다. 국회의원들이 좋은 의정활동으로 경쟁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국민들께서 국회에 대한 신뢰를 쌓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새로운 의회상을 정립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국민들의 민생해결 창구로 넓히겠습니다. 문재인정부에서 시행된 청와대 국민청원은 국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윤석열정부에서 이 제도가 계승될지 의문입니다. 이제는 국회가 국민 소통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시행중인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더 크게 열어 청와대 국민청원의 역할을 이어가고 국가와 국민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요한 창구가 되도록 만들겠습니다. 의원외교가 적극 활성화되도록 국회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뒷받침하겠습니다. 대통령과 외교관의 시야와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외교 영역의 사각지대를 메꾸는 국회의원의 활동이 결코 작지 않습니다. 이를 제도적으로 확립해 국회의원들이 더 적극적으로 국제외교의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효율적으로 국회가 운영되도록 제도를 과감히 손보겠습니다. 모든 법안은 발의된 후 일정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토론하고 상정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국회의원들의 피땀어린 노력이 시간의 늪에 매몰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대안 없이 말의 성찬만 이뤄지는 등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대정부질문을 유의미한 정부 견제의 장으로 탈바꿈시키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사랑하는 동료의원 여러분. 그리고 친애하는 당원동지 여러분.87년 6월의 뜨거운 광장부터 탄핵의 촛불, 올해의 대선까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한 가운데는 늘 제가 있었습니다. 격동의 현장에서 저는 한 번도 좌고우면하지 않았습니다. 원칙있는 승리를 일구기 위해 앞장서서 대화하고, 때로는 격렬히 싸웠습니다. 저는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바 있습니다.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서울시장 선거에도 불출마했습니다. 책임이야말로 제 정치의 가장 큰 화두였습니다. 이제는 국회의장이 되어 의회의 권위를 세우고,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으로 제 정치인생의 책임을 다하고자합니다. 민주주의가 백척간두에 서 있습니다. 저에게 국회의장이라는 소임을 맡겨주신다면 대한민국에 국회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의회라고 국민들께서 생각하시도록 만들겠습니다. 우상호는 지금까지 해냈습니다. 믿고 맡겨주십시오. 2022년 5월 17일더불어민주당 21대 국회의원 우상호
2022.05.17 I 이유림 기자
"평일에도 줄서서 관람"…'핫플'된 청와대 들여다보기
  • "평일에도 줄서서 관람"…'핫플'된 청와대 들여다보기
  • 16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에서 관람객들이 줄을 서서 관저를 구경하고 있다(사진=이윤정 기자).[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청와대에 왔는데 본관 앞에서 사진은 찍어야죠.”16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본관 앞.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안은 관람하는 인파로 북적였다. 관저 입구인 인수문 앞에서 인증샷을 찍는 사람들과 줄을 서서 관저를 관람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오른쪽은 관람하는 줄이고, 왼쪽은 퇴장하는 줄입니다.” 혼선이 빚어지지 않도록 안내하는 안내원의 목소리가 들렸다.가장 인기가 있었던 건 역시 본관이었다. 본관 앞에는 기념사진을 찍기 위한 줄이 길게 이어져있었다. 땡볕 아래 20분 가량을 기다려야 사진을 찍을 수 있었지만 줄이 계속 늘어났다. 미취학 자녀 두 명과 함께 왔다는 김우경(38)씨는 “평일에 와야 그나마 사람이 적을 것 같아서 신청했는데 평일에도 사람이 많다”며 “그래도 아이들에게 직접 대통령이 생활했던 청와대를 보여줄 수 있어 뿌듯하다”고 했다.청와대가 대한민국 건국 이래 74년 만에 전면 개방되면서 연일 수만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는 ‘핫플’로 떠오르고 있다. 관람 신청을 해서 ‘당첨’이 된 인원을 대상으로 매일 3만9000명이 관람을 할 수 있는데 오는 22일까지 관람 예약은 이미 마감됐다. 지난달 27일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관람신청 접수는 231만 2740명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가 뜨거웠다. 이에 대통령실에서는 오는 6월 11일까지 관람일을 연장키로 했다.16일 서울 청와대 본관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해 관람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사진=이윤정 기자).◇관저·침류각이 눈 앞에청와대 문이 활짝 열리긴 했지만 내부까지 공개된 건 아니다. 영빈관을 비롯해 본관, 관저, 녹지원, 상춘재, 침류각, 칠궁 등의 외부 시설만 관람할 수 있다. 청와대는 1948년 이승만 전 대통령이 ‘경무대(景武臺)’란 이름으로 지금의 청와대 건물을 집무실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경무대는 이름을 바꿨는데 미국 백악관(White House) 의미를 염두해 푸른색 기와 지붕이란 의미에서 ‘청와대(靑瓦臺)’로 결정했다.초기 이승만 대통령을 시작으로 역대 대통령 12명이 청와대를 거쳐갔다. 대통령이 거처해 온 관저는 본채·별채·사랑채·대문채·회랑으로 구성됐다. 대통령 가족이 생활하던 곳인 만큼 그동안 가장 공개가 안 된 공간이다. 항상 봄이 있다는 의미의 ‘상춘재’는 해외 귀빈에게 우리 가옥의 멋을 알리는 공간으로 쓰였다. 외빈 접견이나 비공식 회의 장소로 이용됐던 곳이다. 지난 3월 당선인 신분이던 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의 회동도 이곳에서 이뤄졌다.매년 어린이날이면 어린이들이 뛰어놀 수 있도록 한 녹지원은 우거진 수목 덕에 청와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불린다. 박근혜 대통령 식수 등 역대 대통령의 기념식수가 있고, 녹지원에 있는 나무 종만 120여 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라시대 불상인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과 청와대 경내 산책로에 있는 ‘오운정’, 후궁 7명의 신위를 모신 사당인 ‘칠궁’ 등 문화재도 볼 수 있다. 일명 ‘김신조 사건’ 이후 입산이 막혔던 북악산 등산로도 52년 만에 개방됐다.청와대 경내 산책로에 있는 문화재인 ‘오운정’◇소박한 가구로 꾸며진 내부그렇다면 청와대 내부는 어떻게 꾸며져있을까. 최근 출간된 ‘사진과 사료로 보는 청와대의 모든 것’(아라크네)을 통해 본관 내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책은 수년간 청와대를 출입한 사진부 선임 기자가 청와대를 출입하면서 기록한 사진과 글을 담고 있다.청와대 본관 홀(사진=아라크네).가장 먼저 본관 홀의 탁 트인 넓은 공간이 눈길을 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정면에는 김식 화백의 ‘금수강산’이 내방객을 맞이한다. 2층으로 올라가면 국내외 귀빈들이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대화를 나눴던 ‘접견실’이 있다. 대통령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던 곳인 ‘집무실’에는 책상과 함께 바닥에는 원형 ‘십장생도’가 그려져있다. 벽에는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 대형 무궁화가 양각으로 붙어있어 눈길을 끈다. 주칠 나전장과 사슴·학이 새겨진 문갑 등 청와대에 비치된 가구들은 다소 소박하다고 책은 소개하고 있다. 1층 로비에는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세계 최초 금속활자 인쇄술인 직지의 모형도 있단다.현재 청와대에서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은 700여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관 2층 접견실에 걸린 정조의 효행이 담긴 ‘능행도’를 비롯해 손장섭 화백의 ‘효자송’, 김병종의 ‘생명의 노래’ 연작 등이 포함돼 있다.본관 2층 접견실 ‘능행도’ 전경(사진=아라크네).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사진=아라크네).
2022.05.16 I 이윤정 기자
박보균 문체부 장관 “온 국민 공정하고 차별 없이 문화 누려야”
  • [전문]박보균 문체부 장관 “온 국민 공정하고 차별 없이 문화 누려야”
  •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윤석열 정부 초대 문화수장인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6일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를 이루기 위해 문화의 공정한 접근 기회를 보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국민에 개방한 청와대 관련해선 “그 의미와 상징성이 거대하고 탁월하다”면서 국민 품속으로 들어간 청와대 개방 장면들은 “윤석열 대통령 시대 개막의 기운을 분출하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박보균 장관은 이날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한 문화의 공정한 접근 기회 보장을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박보균 신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6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다음은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취임사 전문이다.장관 박보균입니다. 반갑습니다. 인사드립니다.존경하는 가족 여러분, 청와대가 국민 품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시각적 충격은 압도적입니다. 청와대 개방의 의미는 거대하고, 그 상징성은 탁월합니다. 용산 집무실은 국민에게 강렬하게 다가섭니다. 그 장면들은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 윤석열 대통령 시대 개막의 기운을 분출하고 있습니다. 그 풍광들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자극과 상상력을 주고 있습니다. 저는 제 시각과 방식으로 우리 부처의 업무 자세와 방향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33년 전인 1989년, 기자 박보균은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었습니다. 그때는 소련 시절이었고 도시 이름은 레닌그라드였습니다. 그곳 예르미타시(에르미타주)미술관의 수많은 작품은 숨 막히는 체험이었습니다. 파리·런던·뉴욕·마드리드·이스탄불·베이징·암스테르담의 박물관·미술관·기념관도 찾아다녔습니다. 그곳에서 저의 관심사인 문화와 정치, 문명과 역사, 언어와 리더십을 추적하고 해부했습니다. 그곳에는 일류국가의 자격과 조건들이 암시하듯 담겨 있고, 때로는 직설로 선언하는 듯했습니다. 그것은 “부국강병, 즉 경제력과 군사력으로만 일류국가는 완성되지 않는다. 경제와 군사에다 문화가 번영해야만 일류국가로 우뚝 설 수 있다”는 겁니다.한국의 민주화와 산업화는 세계사에 경이로운 성취로 기록됐습니다. 이제 세계 시민들은 우리의 문화예술 콘텐츠에 갈채를 보냅니다. K컬처는 국제사회 속에 대한민국의 브랜드가 됐습니다. ‘문화 매력 국가, 문화강국’으로 가는 토대가 단단히 마련됐습니다. 그 성과의 상당 부분은 우리 가족들이 앞장서서 만들었습니다. 이런 시점에 제가 장관이 된 것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우리 가족들은 전체 공직사회에서 가장 우수하고 헌신과 소명감 또한 뚜렷합니다. 그런 자랑스러운 평가를 받는 여러분과 함께 일을 할 수 있어 영광스럽고 기쁩니다. 문화체육관광부 가족 여러분, 문화예술 작품은 작가의 창의력과 기량, 숙고와 열정의 산물입니다. 그 속에는 구도자적 예술혼이 펼치는 ‘장엄한 순간’도 있습니다. 저는 그 세계를 배우고 알려고 했습니다. 헤밍웨이의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 현장인 슬로베니아의 알프스 계곡,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스페인 내전의 흔적을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 노벨상 작가 헤밍웨이의 문학적 승부수를 파악하려고 했습니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엔 나치 히틀러의 만행을 묘사한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걸려 있습니다. 20세기 최고 대작을 본 다음 저는 작은 도시 게르니카로 떠났습니다. 피카소의 천재성, 예술의 독보적인 정치·역사적 영향력을 실감하기 위해서입니다. 중국 룽징시에 있는 시인 윤동주의 옛집은 그곳의 문화공정 속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윤동주가 다녔던 일본 도시샤 대학에서 그의 시비(詩碑)와 마주했습니다. 윤동주의 고뇌와 저항, 신선한 언어들이 얽혀 뿜어내는 예술의 절정을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경험들은 저를 단련시켰습니다. 문화예술 세계에 들어갈수록 문화예술인들을 향한 저의 시선은 정중하고 겸손해졌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문화예술 정책의 설계는 그 세계와 거기에 속한 분들을 알고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민간의 자율성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합니다. 낮은 자세의 소통과 공감에서 나오는 정책은 살아 숨 쉽니다. 규제 개혁도 같은 맥락에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문화예술 세계에 익숙할수록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다짐이 제대로 실천된다고 저는 믿습니다.스포츠의 쾌거는 산업화와 민주화 이전부터 존재했습니다. 예전 동대문에 야구장과 종합경기장이 있었습니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가 생기면서 없어진 스포츠 단지입니다. 지금도 그곳을 지날 때면 고교야구와 축구 경기장의 응원 함성이 제 귓전을 울리는 듯합니다. 스포츠 영웅들의 감동적인 드라마에 정책담당자들은 친숙해야 합니다. 스포츠의 지평은 끊임없이 넓어지고 국민의 관심 영역은 커지고 있습니다. 스포츠 관련 정책은 정교하게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우리 가족들은 역사·문화 콘텐츠를 다양한 방식으로 생산·전시·유통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한 일류 문화 국가들의 원칙과 전통, 성찰을 저는 기억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역사적 진실과 상식에 충실히 복무하라, 또한 주관적인 관점을 투입하거나 독단적인 색깔을 입히려는 유혹에 빠져선 안 된다는 겁니다. 그것은 편향과 변조, 왜곡을 경계하고 차단하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전통문화 유산 분야는 의미 있고 유쾌한 실행 과제입니다. 미국 워싱턴DC에 19세기 말 대한제국 공사관이 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대사관 격인 미려한 외모의 3층 건물입니다. 그 외교공관은 을사늑약과 망국으로 일본에 빼앗기고 해방, 6·25 한국전쟁 그 후 격동기 속에 한 세기 이상 우리 현대사 목록에서 사라졌습니다. 제가 공사관 건물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재매입 운동에 나선 것은 문화유산에 대한 저의 열망과 신념의 격렬한 반영이었습니다. 국내외에 남아 있는 문화유산 가치의 발견과 상승, 확장에 치열하고 세련된 열정을 쏟아부어 봅시다. 그런 작업은 K컬처의 경쟁력을 한껏 높여 줍니다. 관광산업은 K콘텐츠, 한류 연관 산업, 전통문화와 함께 어울리면서 활기를 띠게 됩니다. 관광명소의 흥행에는 스토리텔링 마케팅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선 언어의 선택과 배치에 능숙해야 합니다.자랑스러운 가족 여러분,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저는 그 대목에서 위대한 항일 투사 윤봉길을 떠올렸습니다. 서울 양재 시민공원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 가면 윤봉길 조각상이 있습니다. 거기에 나이 19세의 윤봉길이 쓴 깨달음의 놀라운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인생은 자유의 세상을 찾는다. 사람에게는 천부의 자유가 있다.” 자유는 윤봉길의 결의와 집념을 생산했습니다. 자유는 예술적 진취와 도전 정신을 주입합니다. 자유 정신은 문화예술의 빼어난 독창성과 대담한 파격, 미적 감수성과 재능을 선사합니다. 자유 정신이 깔린 정책 의제도 그와 비슷한 이치로 작동할 겁니다.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 그것의 정책적 과제는 선명합니다. 온 국민이 공정하고 차별 없이 문화를 나누고 누려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한 ‘문화의 공정한 접근 기회가 보장’돼야 합니다. 보편적인 문화 복지는 문화 공영으로 강화됩니다. 장애인들의 문화예술·체육·관광의 환경이 좋아지면 모든 사람의 그 분야 환경도 좋아진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장기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관련 업종의 지원책은 계속 면밀하게 마련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국민 속으로 들어갑시다. 문화예술·체육·관광 현장에 있어야 합니다. 격식에 기대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듣고 어울려야 합니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는 우리가 맡은 분야에서 선제적으로 짜임새 있게 이뤄나가야 합니다. 제가 앞장서서 그런 자세로 장관직을 수행하겠습니다. 오늘 여기에 본부뿐 아니라 소속 기관의 가족까지 오셨습니다. 바쁘신 가운데 참석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분의 경험과 비전, 안목과 지혜는 특별하고 소중한 자산입니다. 이 자리는 그것을 공유하고 나누고자 마련했습니다. 저도 동참할 수 있어 뿌듯합니다. 감사합니다. 2022년 5월16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박보균
2022.05.16 I 김미경 기자
尹정부 초대 문화수장 박보균 “청와대 개방 의미 거대, 문화공정 보장”
  • 尹정부 초대 문화수장 박보균 “청와대 개방 의미 거대, 문화공정 보장”
  •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윤석열 정부 초대 문화수장인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6일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를 이루기 위해 문화의 공정한 접근 기회를 보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국민에 개방한 청와대 관련해선 “그 의미와 상징성이 거대하고 탁월하다”면서 국민 품속으로 들어간 청와대 개방 장면들은 “윤석열 대통령 시대 개막의 기운을 분출하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박보균 장관은 이날 오전 윤석열 대통령 국회 시정연설에 참석한 후 세종정부청사 15동 대강당에서 취임식을 열고 이같이 말했다. 박보균 신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6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박 장관은 취임사에서 “일류국가의 자격과 조건은 부국강병의 경제력, 군사력만으로는 안되고 문화가 번영해야 한다. 한국은 이제 문화강국으로 가는 토대를 마련했다”며 기자 시절 해외 여러 나라를 취재한 경험담을 꺼내놓기도 했다.그는 이어 “K컬처는 국제사회 속 대한민국의 브랜드가 됐다. 이런 시점에 장관이 된 것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도 했다. 과거 박근혜정부 당시 벌어진 ‘블랙리스트 사태’ 재발에 대한 문화예술계 우려를 의식한 듯 ‘민간의 자율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박 장관은 “문화 정책의 설계는 거기에 속한 분들을 알고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면서 “낮은 자세의 소통과 공감에서 나오는 정책은 살아 숨쉰다. 문화예술 세계에 익숙할수록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다짐이 제대로 실천된다고 믿는다”고도 했다. 직원들을 향해서는 “역사 문화 콘텐츠를 생산, 전시, 유통할 때 역사적 진실과 상식에 충실해야 한다. 주관적인 관점을 투입하거나 독단적인 색깔을 입히려는 유혹에 빠져선 안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 국민 속으로 들어가자. 문화예술, 체육, 관광 현장에 있어야 한다”면서 “격식에 기대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듣고 어울려야 한다. 앞장서서 그런 자세로 장관직을 수행하겠다”고 밝혔다.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강조한 ‘자유의 가치 재발견’에 대해 “자유는 문화예술의 빼어난 독창성과 대담한 파격, 미적 감수성과 재능을 선사하며 마찬가지로 정책 의제도 자유정신이 깔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윤정부의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의 정책적 과제는 선명하다”면서 “보편적 문화 복지는 문화 공영으로 강화된다”고 거듭 강조했다.박 장관은 곧바로 실·국장들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문체부 현안 파악에 나선다. 윤정부 초대 문체부 장관으로서 문화·체육 관련 국정과제 이행을 위한 청사진을 그려나가겠다는 방침이다. 17일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해 국립묘지를 참배할 예정이며, 이후 각계각층의 현장 인사들과 소통하며 업무에 매진할 계획이다.한편 40년 가까이 언론인으로 활동해온 박보균 장관은 지난달 10일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박 장관은 서울 출생으로, 경동고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1981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정치부장과 편집국장, 편집인을 거쳐 중앙일보 부사장을 지냈다. 중앙일보 대기자 겸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1990년과 1995년에 한국기자상, 1991년 관훈언론상을 수상했다. 2011년부터 2년간 18대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장을 지냈다.미국 워싱턴 DC 인근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의 외교적 의미를 발굴, 2012년 우리 정부가 건물을 매입할 수 있도록 산파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 공로로 2013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박보균 신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6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2022.05.16 I 김미경 기자
다시 만나는 노무현의 사자후…정세균 “말에 혼담은 대통령”
  • 다시 만나는 노무현의 사자후…정세균 “말에 혼담은 대통령”
  •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제16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연설은 매우 많다. 그의 임기 5년 외에도 초선 국회의원 시절부터 퇴임 이후까지. 그가 남긴 연설이 13주기가 되는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까닭은 그의 말 속에는 철학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3주기를 앞두고 그의 연설문을 모은 책이 나왔다.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이하 노무현재단)은 오는 23일 노 전 대통령 서거 13주기를 맞아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노무현입니다’(돌베개)라는 제목의 연설문집을 16일 출간했다고 밝혔다.노무현재단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3주기를 맞아 그의 연설문을 모은 연설문집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노무현입니다’(돌베개)를 펴냈다.정치신인 시절부터 대통령 임기 5년을 거쳐 퇴임한 이후까지 고인이 남긴 연설 중 26편을 뽑아 짧은 해설을 추가해 선집으로 펴냈다. 총 26편의 연설에서는 사람 사는 세상,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 통합과 공존의 민주주의에 대한 고인의 철학을 읽을 수 있다.유시민 전 이사장에 이어 올 3월부터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은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추천사에서 “말속에 자신의 혼을 담아냈던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그가 남긴 말을 음미하다 보면 위대한 사상가의 철학을 만나게 된다”고 썼다. ‘노무현의 필사’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노무현재단 이사)은 오디오북 서문 및 해설 낭독에 참여했다.노무현재단은 책에서 “그가 했던 말 한마디는 한 컷의 사진, 한 편의 영상보다 더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며 “그가 숱한 역정을 거치는 동안 남겨 놓은 말을 음미하다 보면, 한 시대를 바꾸려 했던 큰 정치인을 만나게 된다. 통찰과 혜안으로 미래를 준비했던 탁월한 사상가를 마주하게 된다”고 말했다.또 “그는 말하는 정치인이었다. 소통하고 대화하는 대통령이었다. 남녀노소 누구를 만나도 언제나 일관되게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냈다”며 “자신의 철학과 노선을 분명하게 전달하면서 청중을 설득했다. 때로는 촌철살인도 구사했고 때로는 시의적절한 비유를 활용했다”고 덧붙였다.책은 크게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다,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 민주주의와 국민 통합, 역사 바로 세우기, 새로운 길 등 5부로 구성됐다. 연설문은 1988년 7월 국회 임시회 13대 국회의원 시절 첫 대정부질문부터 퇴임 후인 2008년 10월 10·4 남북정상선언 1주년 기념식 강연까지 시간순으로 배치됐다.재단 측은 “중요한 계기에 큰 의미를 담은 연설도, 위기 상황에서 기막힌 반전을 가져온 연설도, 유머와 풍자로 가득 찬 연설도 있었다”며 “인터넷 공간에, 노무현 사료관에, 대통령기록관에 흩어져 있는 연설을 엮었다”고 설명했다.
2022.05.16 I 김미경 기자
74년간 청와대에 숨어 있던 국보급 문화재는?
  • 74년간 청와대에 숨어 있던 국보급 문화재는?
  • 청와대 춘추관의 청와대 안내문[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지난 10일 청와대가 74년 만에 문을 활짝 열었다. 청와대 관람 사전신청 인원만 230만명을 훌쩍 넘겼다. 오죽하면 무료인 관람권을 웃돈까지 주며 거래할 정도다. 개방과 동시에 청와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여행지가 된 것. 마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듯 우리 국민들의 관심도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단순히 ‘권력자의 삶’이 아닌, 대한민국의 상징이자 중심이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했기 때문일 터. 이제 관심은 청와대 관람 방법에 쏠려 있다. 청와대에는 대통령이 묶었던 관저와 함께 영빈관 등 여러 건물들과 문화재가 수두룩하다. 여기에 대통령의 산책로와 정원도 개방되면서 그동안 접근을 제한했던 청와대를 국민들이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됐다. 특히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문화재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들 문화재는 그동안 청와대 관람 코스에 포함되지 않아 일반 국민들이 볼 수 없었던 것들이다.청와대 경내 산책로에 있는 ‘침류각’청와대 소정원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 시민들◇언제 지었는지 알려지지 않은 ‘침류각’문화재들은 청와대 관저 뒤편 산책로에 산재해 있다. 먼저 침류각은 소정원 또는 헬기장 옆 산책로를 따라 가면 만날 수 있다. 20세기 초반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989년 관저를 신축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왔다. 침류각은 그리 크지 않은 건물이다. 몸체는 정면 4간, 측면 2칸이다. 주춧돌과 기둥은 사각으로, 장대석으로 쌓은 3단 기단 위에 건물을 올렸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지붕마용마루는로 마감한 모습, 처마는 겹처마로 경포는 없다. 단청을 칠하지도, 현판이 달려있지도 않다. 다만 문살은 화려하다. 세살무세살무늬와무늬, ‘亞’자 형 무늬가 섞여 있다. 창에 창호지를 발랐지만, 일부분은 유리를 끼운 것도 있다.사실 침류각은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지만, 그 건축 연대는 정확하지는 않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대부분 자료에서는 침류각이 1900년대에 지어졌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당시 여기에 의문이 존재한다. 당시 고종은 경운궁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임금들은 한 궁에 머물지 않고 여러 궁을 필요에 따라 활용했다. 그래서 왕이 경운궁에 있더라도 경복궁에 건물을 지을 수 있다. 하지만 고종이 경복궁을 떠난 것은 명성황후시해사건(을미사변)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껴고 있을 때였다. 이때 아관파천을 단행하고 경운궁에 머물면서부터는 아예 경복궁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후에는 경복궁을 제대로 관리조차 하지 않았다. 이에 궐내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사람들이 지나가기도 힘들정도였다고. 그렇게 방치한 곳에, 그것도 후원 깊숙한 곳에 번듯한 건물을 굳이 새로 짓는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일각에서는 건물 양식 등을 증거로 1920년대에 지었다는 설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때는 일제강점기였고, 당시 일제는 경복궁 후원들을 철거하던 시기였다.그래서 일본식 건물도 아닌, 한옥 건물을 경복궁 후원에도 굳이 지을 개연성 역시 떨어진다. 청와대 경내 산책로에 있는 문화재인 ‘오운정’◇명성황후 비운 서린 오운정원래 이름은 ‘오운각’(五雲閣)이었다. 오운은 지역하면 다섯 구름이란 뜻. 오색구름이 드리운 풍광이 마치 신선이 노는 것과 같다는 의미다. 청와대 대통령 관저 부근이다. 방·대청·누마루 등으로 구성된 정면 5칸, 측면 2칸의 오운각과 정면·측면 각 1칸씩인 정자 옥련정(玉蓮亭), 부엌·방·창고 등으로 구성된 9칸 규모의 벽화실(碧華室) 그리고 샘물인 천하제일복지천이 오운각 권역을 이루고 있었다.이 오운각은 고종 2년에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고종이 후원을 산책하거나 군대 사열 등을 할 때 활용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가 경복궁 후원의 건물들을 헐면서 대부분 건물이 사라졌으나 오운각만은 살아남았다. 1930년대에 일제가 경복궁 후원 터에 조선 총독 관저를 지었고 광복 후에는 대한민국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현재 청와대)가 입주하면서 오운각 역시 경무대 권역에 속하게 되었다. 현재의 ‘오운정(五雲亭)’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분분하다. 오운각이 오운정으로 이름만 바뀌었다는 설도 있고, 경무대가 들어선 이후에 오운정 건물을 새로 지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 뒤로도 오운정은 별일 없이 남아있었다가, 1989년에 오운정 자리에 지금의 청와대 본관을 지으면서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청와대 경내 산책로에 있는 문화재인 보물 제1977호인 미남불(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경주 석굴암 본존불과 양식 비슷한 ‘미남불’조선 왕궁과는 어울리지 않는 경주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은 근현대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유물이다. 높이 108㎝, 어깨너비 54.5㎝, 무릎너비 86㎝의 통일 신라(9세기) 불상이다. 경주 석굴암 본존불과 양식이 유사하며 ‘미남불’로도 불린다. 1913년 경주금융조합 이사 오히라 료조가 경주에 있던 불상을 데라우치 마사타케 조선총독에게 바치면서 남산의 총독 관저로 옮겨진 것으로 전해진다. 1939년 총독관저가 현재 청와대 경무관으로 이전할 때 같이 옮겨 왔고, 1989년 대통령 관저를 신축하면서 현재의 위치에 자리했다.미남불의 전체적인 외형은 세월이 흐르며 약간 풍화된 것을 제외하면 큰 손상이 없이 거의 온전한 편이다. 고대 석불 가운데 파손 없이 이렇게 완전한 사례는 상당히 드물다. 특히 신라 불교조각의 정수인 경주 석굴암 본존불의 양식을 그대로 따랐다. 당당하고 균형 잡힌 신체비례와 풍부한 양감이 돋보이는 표현, 섬세한 부채꼴 옷주름 등에서 석굴암 본존상을 계승한 통일신라 불상조각의 높은 수준을 엿보게 하는 작품이다. 지난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관저 뒤편을 산책하다 불상의 가치를 재평가해 보라고 당부하면서 서울시 유형문화재에서 보물로 격상됐다.왕의 어머니들을 기리는 칠궁(사진=인수위사진기자단)◇왕을 낳아지만 왕비가 되지 못한 후궁을 모신 ‘칠궁’청와대 권역 서쪽에는 경종(1688 ~1724)을 낳은 희빈 장씨, 영조(1694 ~1776)를 낳은 숙빈 최씨, 순조(1790 ~1834)를 낳은 수빈 박씨 등 후궁 7명의 신위를 모신 칠궁이 있다.조선의 왕들을 낳은 친어머니지만. 왕비가 되지 못한 후궁 7명의 신위를 모신 장소다. 법적 어머니인 왕비에게 바치는 효와는 별개로, 생모에게 바치는 사적인 효를 위해 세운 곳이라는 의미다.원래는 이 후궁들의 신위는 서울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영조가 자신의 어머니 숙빈 최씨의 신주를 모신 사당 ‘육상궁’을 건립한 이후 융희 2년(1908) 연호궁, 저경궁, 대빈궁, 선희궁, 경우궁이 옮겨왔고 1929년 덕안궁이 들어온다. 그 결과 모두 7개의 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서 칠궁(七宮)이라고 이름 지어졌다. 유명한 장희빈의 위패도 여기에 있다. 지난 2001년 11월 24일 일반에게 개방되었지만, 청와대 관람코스에 들어 있기 때문에 하지만 따로 요청해야 갈 수 있었다. 아무 때나 가기는 힘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청와대 개방 이후에는 조금 더 접근이 편해졌다.
2022.05.16 I 강경록 기자
尹대통령실 "청와대 권의주의 사라져…`프리토킹` 대통령"
  • 尹대통령실 "청와대 권의주의 사라져…`프리토킹` 대통령"
  • [이데일리 권오석 기자] 새로운 윤석열 정부와 이전 문재인 정부 간 달라진 점에 대해 대통령실 측은 “청와대의 권위주의가 사라졌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기존의 A4 대통령이 아니라 `프리토킹`(free talking) 대통령이라는 점이 가장 크게 달라진 차이점”이라고 설명했다.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내 브리핑 공간인 오픈라운지에서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15일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새 정부 출범 1주일이 됐다. 많은 사람들이 1주일 동안 새 정부와 과거 문재인 정부 간의 달라진 점 3가지만 말해달라고 요구한다”며 이같이 말했다.먼저 그는 “첫째, 대한민국 대통령은 지금 심산유곡(深山幽谷)의 구중궁궐과 같은 권위주의식 폐쇄적 공간인 청와대에서 근무하지 않고, 미국의 백악관처럼 수석비서관들과 같은 층에서 격의 없이 토론하고 미팅할 수 있는 상호밀착형 집무공간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해당 관계자는 “지금까지 일반시민들에게 대통령의 출퇴근하는 모습이 이처럼 투명하게 공개된 적이 있었던가. 청와대 아방궁에 있으면 대통령의 출퇴근하는 모습을 알 길은 없다”고 지적했다.이어 “둘째, 언론과 소통하는 대통령의 노력이 기존의 대통령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점”이라며 “윤 대통령은 기자실을 출퇴근 시간에 마주칠 수 있는 길목에 배치토록 해 대통령이 수시로 언론과 합리적, 이성적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아울러 그는 “셋째, 주말 시간을 주로 가족과 보내며 일반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행보를 자유롭게 하는 점”이라며 “과거 문 정권에서는 쇼업(show up)전담 행정관, 연출전문 행정관이 공개적으로 대통령의 말과 행동을 지시하는 ‘쇼통’시대가 있었다. 제 아무리 멋있고 좋은 연출을 해도 대통령은 쇼를 위한 꼭두각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고 꼬집었다.앞서 전날 윤 대통령 내외는 자택 근처의 백화점을 비롯해 광장시장 등을 `깜짝` 방문하기도 했다. 해당 관계자는 “이 모든 것이 격식 없고 꾸밈없이 자유자재로 이뤄진다”며 “윤 대통령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덧붙였다.
2022.05.15 I 권오석 기자
새 정권의 시작…도심 풍경이 달라졌다
  • [사사건건]새 정권의 시작…도심 풍경이 달라졌다
  • [이데일리 김미영 기자] 이번주 새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용산시대’ 개막에 도심 풍경도 달라졌습니다.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겨가면서 대통령은 유례없는 출퇴근을 시작해, 도심 일부가 하루 두 번 이상 교통 통제됩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떠난 청와대는 지난 10일 시민에 개방됐습니다.마약에 취한 중국 국적의 40대 남성은 이른 아침 행인에 ‘묻지마 폭행’을 가해 숨지게 했습니다. 머리에 피를 많이 흘린 채 쓰러져 있던 이 60대 남성을 수십 명의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쳤습니다. 인면수심 범죄자에 대한 엄벌과 함께, 우리 사회엔 더 많은 ‘착한 사마리아인’이 필요합니다.◇尹 출퇴근, 교통체증 크지 않았다…열린 靑, 관람객 몰려 윤석열 대통령 차량(왼쪽 위)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중앙로를 지나 용산 대통령 집무실로 향하는 가운데 앞 차량 행렬이 정체를 빚고 있다.(사진=연합뉴스)윤석열정부가 출범한 10일. 이날 오전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과 청와대 개방 행사 등이 맞물리면서 서울시내 교통정체가 빚어졌습니다. 새 대통령 취임식은 5년에 한 번 있는 국가적 행사이니 교통체증이 벌어져도 불가피하지요. 하지만 이날 교통정체를 겪은 일부 시민은 ‘대통령 출퇴근 땐 차가 얼마나 막힐까’란 우려와 걱정을 했습니다.‘출퇴근길 교통지옥’ 사태까진 벌어지지 않았다는 평가입니다.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용산 집무실까지 7㎞, 윤 대통령의 출근엔 10여분이 소요됐습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오전 8시 21분쯤 자택에서 출발, 반포대교를 건너 오전 8시 31분쯤 용산 미군기지 13번 게이트에 도착했습니다. 경찰의 교통 통제로 반포대교 진입이 잠시 막혔지만 심각한 수준의 교통 체증은 없었습니다.퇴근시간대 상황도 비슷합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6시 45분께 퇴근했는데, 미군기지 13번 출구에서 자택까지 9분이 소요됐습니다. 큰 혼잡은 없었지만 통제 구간에선 차량 흐름이 일부 지연됐습니다. 경찰은 앞서 “세 차례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시민에게 과도한 불편을 초래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다만 주민들 사이에선 불만 목소리가 나옵니다. 특히 출근 시간은 시민들 이동이 가장 많고 1분1초가 급한 때여서입니다.윤 대통령은 앞으로 한달가량, 관저로 쓸 용산구 한남동 외교부 장관 공관의 리모델링 공사가 끝날 때까지 출퇴근을 이어갑니다. 청와대 국민 개방 당일인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정문에서 시민들이 입장하고 있다.(사진=이영훈 기자)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으로 청와대는 시민에 열렸습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74년 만입니다. 지난 10일 오전 매화 꽃다발을 든 지역주민과 소외계층 등 국민대표 74명에 이어 수천 명의 사람들이 열린 청와대 정문으로 입장했습니다. 청와대 사랑채 맞은편에 있는 영빈관문으로도 입장한 관람객들은 영빈관을 지나 본관, 관저, 춘추관까지 약 50~60분 걸리는 산책 경로를 즐겼습니다. 청와대 관람은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6차례에 걸쳐 회차별 6500명씩 최대 3만 9000명 가능합니다. 오는 22일까지는 다채로운 행사도 이어집니다. 한편 청와대에서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역시 54년 만에 전면 개방됐습니다. ◇이유없이 행인 죽이고…영장실질심사서 ‘히죽’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졌습니다.서울 구로경찰서는 지난 11일 중국 국적의 40대 남성 A씨를 살인과 폭행 혐의로 체포했습니다. A씨는 이날 오전 5시 58분쯤 구로구의 한 공원 앞 노상에서 발과 주먹으로 60대 남성 피해자 B씨의 안면부를 수차례 폭행했습니다. A씨는 쓰러진 피해자의 겉옷 주머니를 뒤져 소지품을 자신의 주머니에 넣은 뒤 주변에 있던 깨진 연석(도로 경계석)으로 피해자 안면부를 다시 내려치곤 유유히 현장을 떠났습니다.이후 그는 인근에서 리어카를 끌던 노인 C씨를 다시 폭행, C씨가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두 사건을 접수한 경찰은 피의자를 특정한 뒤 동일인으로 판단하고 A씨를 붙잡았습니다.무차별 폭행을 당한 B씨 곁으로 50명 넘는 사람들이 지나쳤지만 별다른 조치는 없었습니다. B씨는 10여분간 방치됐고 경찰이 왔을 때는 이미 숨졌습니다.13일 서울남부지법에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으러 나온 A씨는 히죽히죽 웃을 뿐 취재진의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았습니다. 폭행한 B, C씨와는 모르는 사이로 ‘묻지마 폭행’을 한 걸로 보입니다.A씨는 경찰의 마약류 간이시약 검사에서 필로폰 양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정밀 검사를 의뢰했고 아직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 마약 관련 혐의는 적용하지 않았습니다.길거리에서 지나가던 노인을 때려 숨지게 한 40대 남성 A씨가 서울남부지법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김형환 기자)
2022.05.14 I 김미영 기자
 대통령이라서…별장도, 세트장도 인기몰이
  • [여행+] 대통령이라서…별장도, 세트장도 인기몰이
  • 충북 청주의 청남대 대통령기념관[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존재는 늘 국민적 관심사였다. 국민은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물론 사소한 숨소리와 표정에도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대통령이라는 이름표를 다는 순간부터 때로는 모순적인 요구도 받고, 또 쉽게 공격에도 노출된다.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가진 사람의 책임감이 얼마나 무거울지 알면서도 국민은 꿋꿋하게 있어 주기를 바란다.합천영상테마파크 뒤편에는 실제와 거의 비슷하게 지은 청와대 모형이 들어서 있다.대통령에 관한 관심은 대통령의 평범한 일상으로도 넓혀진다. 그들은 어떤 삶을 살고, 또 어디서 사는지, 그리고 어떻게 쉬는지 등이다.그래서인지 ‘청와대’라는 간판은 진짜가 아니라도 매력적인 관광지가 됐다. 청와대 세트장이 있는 경남 합천의 영상테마파크가 그 주인공이다. 매년 50만명이 이 테마파크를 방문하는데 이곳에서 가장 인기있는 장소가 바로 청와대 세트장이다. 영상테마파트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이 세트장은 1992년 발간한 ‘청와대건설지’를 바탕으로 조성했다. 실제 청와대의 68% 크기로 지었다. 대통령의 집무실과 접견실 등을 사실적으로 재현했다. 사람들은 실제가 아닌 단지 드라마 촬영장일지라도 대통령의 일상을 엿보고 싶어한다는 게 드러난다.합천영상테마파크 1930년대 거리풍경대통령의 별장이었던 충북 청주의 청남대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2년 개방 후 누적 관람객만 1300만명을 넘어섰을 정도다.청남대는 ‘남쪽의 청와대’라는 뜻. 1980년 전두환 대통령을 시작으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약 20년 동안 최고 권력자의 별장으로 사용된 곳이다. 청남대 대통령기념관역대 대통령들이 매년 4~5회, 많게는 7~8회씩 이용했다고 한다. 20여간 총 89회 472일을 이곳에서 휴가를 보냈다. 당시에 보안상 이유로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했지만, 지난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청남대 관리권을 충청북도로 이양하면서 일반에게 개방됐다. 이후 청남대는 국민을 위한 숲과 정원이 됐다.청남대는 대통령이 머물렀던 거실과 침실, 손님방 등이 있는 본관, 그리고 산책로인 숲길로 이어진다. ‘대통령의 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여러 길은 가벼운 운동화 차림으로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아름다운 숲길이다.
2022.05.13 I 강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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