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렬
  • 영역
  • 기간
  • 기자명
  • 단어포함
  • 단어제외

뉴스 검색결과 5,922건

LG와 마해영의 동상이몽
  • [정철우의 4언절구]LG와 마해영의 동상이몽
  • ▲ 마해영[뉴시스][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LG 트윈스와 마해영이 갈등을 겪고 있다. 마해영은 "2군 경기에도 뛰지 못하고 있다. 다시 뛸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은 너무하다"며 구단에 방출을 요구한 상태다. 그러나 LG는 마해영의 요구를 받아 줄 생각이 없다. "지금까지 기회는 충분히 줬다. 2군에서라도 나아지는 모습을 우선 보여야 한다"며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마해영은 2군에 내려가기 전 11경기에 나서 32번의 타석에서 28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타율이 1할에도 미치지 못하는 7푼1리다. 2군 성적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35타수 3안타로 8푼6리에 불과하다. '기회'의 의미를 바라 보는 시각의 차이가 문제의 핵심이다. 마해영은 '11경기 32번의 타석'이 자신을 보여주기엔 턱없이 부족하다고 여기고 있다. 반면 구단과 코칭스태프는 그 정도면 판단의 근거로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마해영은 1군 엔트리서 제외되기 전 "그 어느해보다 많은 훈련을 했고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 걱정은 팀이 나를 오래 기다려주지 못할 것 같다는 점이다. 조금 더 '기회'를 준다면 잘 할 자신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구단의 입장은 다르다. 아니 대다수 관계자나 팬들의 생각도 LG 구단의 생각과 엇비슷한 것이 현실이다. LG는 당초 마해영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2005시즌 뒤 핵심 불펜 요원 장문석을 내주고 영입할 때만 해도 양측은 매우 뜨거운(?) 사이였다. LG는 마해영이 우승 청부사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었고 마해영은 2006시즌 전 "여러 팀을 다니며 쌓인 노하우가 있다. 올해 LG는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자신은 물론 팀 성적까지 자신했다. 그러나 마해영은 지난해 80경기에 나서 타율 2할7푼 28타점을 기록하는데 그쳤고 팀도 꼴찌로 추락했다. 마해영은 세대교체의 바람에 밀려 후반기엔 경기에도 나서지 못했다. 2006시즌 뒤 한차례 갈등을 빚기도 했다. LG는 마해영을 쓸 마음이 사라졌다면서 시장에 내놓았다. '방출 예고'로 알려졌지만 사실상 공개 트레이드를 추진했던 것이다. 그러나 신임 김재박 감독이 "마해영은 필요한 선수"라고 규정지으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마땅한 1루수 요원이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 결정의 주된 이유였다. 밀월의 또 다른 시작이었지만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마해영의 타격감은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고 최동수의 상승세와 엇갈리며 결국 다시 파국을 맞았다. 선수들은 언제나 '기회'에 목마르다. "여유있게 뛸 수 있는 시간만 주어진다면...'은 주전 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선수들의 바람이다. 반면 구단은 물론 코칭스태프의 '기회'에 대한 기준은 언제나 선수들의 희망보다 적기 마련이다. 그러나 2군에서의 기회라면 얘기가 좀 달라질 수 있다. 마해영은 "2군에서도 제대로 뛰지 못하고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2군에서 뛸 기회마저 주지 않는 것은 너무 냉정한 결정일 수 있다. LG와 마해영이 상생의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미움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다시 한번 생각해주길 바라는 건 지나친 감상주의일까. 동상이몽(同床異夢) 옛중국의   동상이란 같은침대   쓴다는말 한침대에   누웠으면 피보다도   진한사이 손맞잡은   우승언약 불과1년    지난후에 서로에게   칼겨누며 딴꿈만을   꾸고있네 혈육끼리   갈라서면 남남만도   못한대도 지난애정   돌이키면 씁쓸한맘   남게되네 너잘났다   나잘났다 옳고그름   따지기전 처음만나   순수했던 초심다시   새겨보길 주(註) : 동상(同床)이 중국의 원 뜻으로는 '같은 잠자리'를 의미하는데서 착안한 것입니다.
2007.06.06 I 정철우 기자
팝핀현준 전학생 이효리에 반했었다.
  • 팝핀현준 전학생 이효리에 반했었다.
  • [이데일리 SPN 최은영기자]  가수 팝핀현준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 '원&온리'(부제 : 나는 팝핀현준이다)를 1일 발간했다. '질주와 폭주' '행복한 덧셈' '브레이크 댄서의 순정' '톡 현준', '비상 독수리의 날개를 펴라' 등 총 5부로 구성된 팝핀현준의 책 '원 앤 온리'에는 스물여덟 팝핀현준의 짧지만 굴곡 많은 인생사가 솔직하게 담겼다. 팝핀현준의 이번 자서전에는 초등학생 시절 춤을 추게 된 계기부터, 어려웠던 시절 손을 내밀어준 정신적 지주이자 스승인 이주노와의 인연, 그리고 춤에 대한 열정 등이 여과없이 실렸다.  특히 고교시절 팝핀현준의 눈을 사로잡은 아름다운 전학생 이효리에 얽힌 사연이 눈길을 끈다.최근 데뷔앨범 '원 앤 온리'를 발간한 팝핀현준은 "힘들었던 시절 춤이 나를 지탱해줬고 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며 "이 책을 통해 자신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팝핀현준은 오는 9일 광화문 교보문고를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화려한 댄스 퍼포먼스 무대를 겸한 출판기념 팬사인회를 가질 예정으로 있다.▲ 팝핀현준의 자서전에는 어린시절 사진과 팝핀현준이 직접 그린 그래피티 등도 담겼다. 책표지에 팝핀현준이 직접 그린 자화상도 눈길을 끈다.
2007.06.01 I 최은영 기자
  • 의사들 "우리가 제일 무서워 하는건 '삼촌들'"
  • [조선일보 제공] 의사들은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어찌 이럴 수 있나”라는 질타와 원망을 듣다가도 돌아서면 “내 아들, 딸도 제발 의대만 갔으면…”하는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 그들 앞에 따라 붙는 수식어도 천차만별이다.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 신(神)의 손, 타인의 아픔을 헤아릴 줄 모르는 냉혈한, 돈만 아는 기술자, 자신의 전문 분야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똑똑한 바보…. 환자들을 대하는 데 있어서 의사의 잘못도 있지만, 정부 규제가 의사와 환자 간의 불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조선일보는 ‘의사들이 쓰는 병원이야기’ 연재에 앞서, 지난 26일 토요일 오후 종합병원 의사 5명을 ‘솔직 토크’에 초대했다.―제가 봐도 ‘이러니 의사가 욕을 먹지’ 싶을 때가 있어요. 환자한테 인사는커녕 눈길 한번 제대로 안 주는 의사도 있지요. 어깨가 아프다는 할머니께 “나이 들면 다 그래”라고 반말로 툭 내뱉고는 약 처방만 주는 경우도 봤습니다. 여기저기 아프다고 호소하는 중년 부인에겐 “남편이 바람 피우시나 보죠”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의사 잘못도 있지만 건강보험의 과도한 규제가 환자·의사 불신 불러 ―이마가 찢어진 세 살짜리 아이가 병원 응급실로 왔습니다. 얼굴에 난 상처라 성형외과 의사를 불렀더니 3시간이 지나서 내려온 성형외과 레지던트(전공의)가 “뭐 이 정도 가지고…. 근데 제가 아직 전문의가 아니거든요. 이거 대충 꿰매도 되나…”라고 하더군요. 아이 엄마 보기가 어찌나 민망하던지 결국 제가 그 레지던트를 불러서 야단을 쳤습니다. 나중에 어떤 의사가 될지 걱정스럽더군요.―제가 직접 환자가 돼보니 알겠더라고요. 의사들이 얼마나 설명을 안 해주는지. 환자 상태가 어떻다는 건지 한 마디도 없이 이것저것 검사만 하라고 ‘명령’했어요. 뭘 좀 물어보려고 했더니 의사는 벌써 휑하니 사라지고 없었죠. 일반 환자들이 얼마나 답답해 할지 이해가 갔어요.―의사들은 사회성이 부족하단 얘기를 많이 듣지요. 일단 의사라는 길이 한 번 정해지면 곁눈질할 여유나 이유가 별로 없는 탓이기도 합니다. 대학 때는 한 교실에서 의대생들끼리 같은 공부만 하고, 의사가 되고 나면 병원에서만 살지요. 이후에도 어울리는 사람은 대부분 의사들이고요. 그러다 보면 병원 밖 세상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사라지죠.―의과대학 시절 “상위 5%나 하위 5%에만 들지 않으면 된다”는 말이 있었어요. 다수를 따라가기만 하면 크게 문제될 것 없다는 뜻입니다. 안정적인 삶을 추구한다는 말이지요. 강의 듣고 시험만 잘 보면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고, 또 유급 당하지 않기 위해서 공부에 매달리다 보면 자기 일 외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 환자나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기술이 부족해지는 것 같아요.―환자들도 좀 바뀌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습니다. 밖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환자가 의사를 때리는 일이 많아요. 최근 우리 병원 여자 레지던트 두 명이 환자 보호자에게 맞아 입원하기도 했습니다. 막무가내로 난동을 부리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일은 삼갔으면 해요, ―응급실에선 의사들이 멱살 잡히는 일은 부지기수죠. 경찰이 와도 “의사 선생님이 좀 참으시죠”라고만 합니다. ‘환자는 약자’라는 인식 때문에 환자들이 폭력을 휘둘러도 경찰이 관대하게 대하는 것 같아요. 레지던트 시절엔 술 마시고 행패 부리는 환자들 때문에 가운이 찢어져 5벌이나 버린 적도 있습니다. 넥타이를 잡히면 도저히 당할 수가 없어 그때부터 넥타이를 안 매는 버릇이 생겼죠. 환자가 의사 때려도 ‘환자=약자’ 인식 때문에 경찰도 “선생님이 참으시죠” ―의사들끼리는 ‘삼촌’이 제일 무섭다고 합니다. 환자의 상태를 계속 지켜봤던 직계 가족들은 불만이 없는데 뒤늦게 나타난 ‘삼촌’들이 다짜고짜 화를 내며 난동을 부리는 일이 많거든요. 일찍 찾아보지 못한 환자에 대한 미안한 마음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그렇다고 의사에게 무작정 화 내고 소리를 지른다고 상황이 나아지나요?―의사와 환자 간에 불신이 생기는 것은 정부와 건강보험의 과도한 규제 탓도 있습니다. 의사들이 ‘양심 진료’를 못하게 만들죠. 예를 들어 불가피한 개복(開服) 수술을 할 때 낡은 인공 심장박동기도 새 것으로 바꿔 끼려고 해도 불가능한 경우가 있습니다. 인공 심장박동기의 배터리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건강보험 혜택을 못 받기 때문이죠. 그러면 환자는 얼마 후 또 다시 배를 째고 인공 심장박동기를 교체하는 수술을 받아야만 합니다. 환자가 내 돈을 내고서라도 하겠다는 경우도 있지만, 만일 이들이 아직 폐기할 상태가 아닌 심장박동기를 갈아치웠다고 나중에 문제를 제기하면 병원측은 손해를 봅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환자들은 의사들이 돈을 벌려고 꼼수를 쓰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지요. ―‘명의’(名醫)라는 말은 없어져야 합니다. 현대의학에 명팀(team)은 있을지 몰라도 명의는 없어요. 어려운 수술일수록 의사 혼자선 안 되죠. 어떤 수술이든 집도의 외에도 마취과 의사, 간호사가 있어야 하고 검사에는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의 수고가 필요합니까. 명의 한 사람이 ‘씻은 듯’ 낫게 해줄 수 있다는 기대는 버려야 해요. 명의만 찾다가 치료 적기를 놓치면 그만큼 치명적인 손해도 없습니다.―아주 큰 수술도 아닌데 대학병원에 오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심장수술 같은 대수술이라도 성공률이 대학병원보다 우수한 전문병원도 있지요. 대학병원에서는 교육을 위해 인턴·레지던트도 수술에 참가하니까 실제 성공률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소 종합병원에선 훈련을 모두 마친 전문의들이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수술하니까 오히려 나은 결과를 낼 수도 있죠. ―대학병원에 몰리니까 환자들도 서로 피해를 봅니다. 사소한 수술까지 대학병원으로 몰리면 정작 급할 때, 위암 수술 같은 중한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들은 몇 달씩 기다려야 하니까요. ―종합병원 의사들도 샐러리맨의 심정을 알 것 같은 때가 있어요. 병원 경영진의 ‘인센티브’제 때문이죠. 환자 많이 보는 의사가 유능한 의사가 되고, 추가 수당까지 더 받게 됩니다. 그러면 어렵고 위험 부담이 높은 환자를 진료하기보다는 쉬운 환자를 많이 보면 더 인정 받는 ‘의료 왜곡현상’이 벌어지게 됩니다. 중환자실 평가를 환자의 사망률로만 평가하면 의사들은 사망률 높은 위험한 환자를 오히려 피하게 돼요. 의료란 것이 단순히 숫자로만 평가할 일이 아닌데 안타깝습니다. 환자 많아야 유능한 의사? 그러면 쉬운 환자만 고르지 누가 위험한 수술하겠나 ―외국계 병원이 국내에 진출하면 그곳으로 가고 싶다는 의사도 꽤 있어요. 의대 교수처럼 직위가 보장되는 것도 아닌데 왜냐고 물으면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의사 노릇 해보고 싶어서’라고 합니다. 한 환자에게 30분씩 시간을 내서 충분히 설명도 해 주고, 눈물 짓는 환자 보호자의 하소연도 끝까지 들어주는 ‘진짜 의사’가 돼 보고 싶다는 거죠. 모든 의사들의 꿈일 겁니다.―한국의 의료제도나 수준이 그래도 훌륭한 편이란 걸 국민들이 좀 알아주었으면 해서요. 물론 불편한 점은 많지만, 비용에 비해 의료의 질은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굳이 선진국 병원을 찾아갈 필요가 없죠. 또 누구든 필요할 때 병원에 갈 수 있다는 점에선 되려 선진국도 부러워할 수준입니다. ―의사가 곧 병원이고 의료제도 자체인 것은 아닙니다. 의사도 제도와 사회의 일부이고 저희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지요. 모든 의사를 ‘허준’의 잣대로만 재지 말아줬으면 합니다. 이번 조선일보의 의사가 쓰는 병원이야기 연재를 계기로 의사들이 국민들과 함께 진솔한 고민을 나누고, 함께 머리 맞대고 보다 나은 의료를 고민했으면 합니다.
소설가 꿈꾼 PD, ''하얀 거탑''의 안판석
  • [김은구의 PD열전]소설가 꿈꾼 PD, ''하얀 거탑''의 안판석
  • ▲ 소설가를 지망하는 문학소년이었던 안판석 PD(사진=김정욱 기자)[이데일리 김은구기자] 그는 1시간 남짓 인터뷰를 하는 동안 잠시도 담배를 입에서 떼지 않았다. 애연가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드는 요즘 좀처럼 보기 힘든 줄담배였다. 바로 MBC 드라마 ‘하얀거탑’의 연출자 안판석(46) PD였다. "원래 담배를 그렇게 많이 피우느냐"고 묻자, 그는 “드라마 연출을 하면서 특히 많이 늘었다. 촬영 현장에서 자신감 없는 모습, 초조함을 들키기 싫어 담배를 꺼내 문다”고 말했다. ‘하얀거탑’에서 김명민, 김창완, 이정길, 변희봉 등 강한 존재감이 있는 연기자들을 이끌던 연출자여서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연상했는데, 의외로 여린 속내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좀 무른 편이에요. 연기자나 다른 스태프가 나와 의견이 다르다면 협의를 하지, 소란스럽게 충돌하는 건 좋아하지 않아요. 우리에게는 촬영장이 직장인데 그곳에서 모두 행복할 수 있어야죠.” 여린 듯하면서 모나지안게 사람들과 어우러지며 조화를 이루는 것이 치열한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를 통솔하는 안판석 PD만의 노하우다. ◇ 20년 연출 인생 “갈수록 두려워진다” “고교 때까지 꿈은 소설가였어요. 따지고 보면 드라마 연출자, 영화 감독도 스토리 텔러라는, 소설가와 같은 맥락의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안판석 PD는 자신의 꿈을 좇아 1987년 드라마 연출자로 MBC에 입사했다. 결국 드라마, 영화도 소설처럼 문학의 한 장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안 PD는 “문학에는 소설, 시, 희곡 등만 있는 게 아니라 영화, 연극, 드라마도 모두 포함된 것이라고 생각해요”고 말했다. 안판석 PD는 특이하게도 사춘기를 고교 1학년부터 대학 3학년까지 6년간 겪었다고 했다. 당시 인생에 대한 고민을 했다는데, 그는 “내가 어디서 뭘 했는지 자세한 기억은 없고 그 기간이 하나로 뭉뚱그려져 기억에 남아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선택한 직장이 방송사였고, 마음을 둔 직업이 드라마 연출자다. 내심 ‘사회생활을 하려면 어디를 가든 사람들끼리 벌어지는 인간관계의 정치 싸움을 피할 수 없는데, 드라마, 영화를 제작할 때는 그런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직업 선택에 한 몫 했다. '그렇다면 드라마 연출자는 그런 정치싸움이 없이 편할까?' 안판석 PD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매 번 공포로 시작해요. 결과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나이가 들고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 늘수록 캐스팅 때문에 전화를 거는 것조차도 어려워져요. ‘전화를 안받으면 어쩌나’라는 생각에 두렵기도 하고, 마주 앉아 캐스팅 제의를 할 때 배우 얼굴의 미묘한 떨림을 보고 있는 것도 가슴 조이는 일이죠.” &nbsp;▲ 안판석 PD의 새로운 대표작이 된 MBC 드라마 '하얀 거탑'◇ ‘하얀거탑’ 연출 제의, 피가 무서워 처음엔 거절 안판석 PD는 3월 종영된 ‘하얀거탑’으로 새롭게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물론 그는 그동안 적잖은 드라마를 연출한 베테랑 연출자다. 최진실 주연의 ‘장미와 콩나물’, 안재욱, 김혜수 등이 나온 ‘짝’ 등은 인기도 높았다. 하지만 최고 시청률이 23.2%에 불과했던 ‘하얀거탑’이 지금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하얀거탑’이 의사들의 삶, 병원 내에서 성공을 향한 치열한 암투를 담아내며 메디컬 드라마, 전문직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극본을 맡은 이기원 작가가 같이 해보자고 제안을 했는데 처음에는 거절했어요. 환자들이 오가는 병원에서 촬영을 해야 하는 것도 미안했고 겁이 많아 피도 무서워하거든요.” 하지만 안판석 PD는 ‘하얀거탑’의 원작을 읽은 뒤 푹 빠져 결국 연출을 맡았다. 감동도 있었고 드라마틱한 부분도 충분하다는 판단에서 용기를 냈다.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등장인물의 로맨스를 배제한 구성이 간단치 않았다. ‘하얀거탑’은 메디컬 드라마인 만큼 격투, 카 스턴트 등 이른바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볼거리도 적어 로맨스를 배제하는 것이 일종의 모험이었다. 그러나 안판석 PD는 의사들의 이야기에 사랑까지 덧붙인다면 두 가지 재미를 모두 잃어버릴 수 있다는 판단을 했고 결과적으로 모험은 성공을 거뒀다. “등장인물들의 심리싸움을 어떻게 보여주고 이끌어갈지 집중했어요. 그것만으로 20부까지 끌고 가는 것도 어려웠지만 운이 따라준 것 같아요.” &nbsp;▲ 안판석 PD(사진=김정욱 기자)◇ “‘하얀거탑’ 덕분에 딸이 아빠 직업 알게 됐죠” ‘하얀거탑’은 안판석 PD의 가정 생활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올 해 초등학교 6학년이 된 딸이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계기가 된 게 ‘하얀거탑’이다. 안판석 PD는 1990년 결혼, 슬하에 고교 1학년인 아들과 딸이 있다. “딸이 어느 날 우쭐해져서 돌아왔더라고요. 주위에서 ‘하얀거탑’ 얘기를 하면서 ‘네 아빠가 만드는 드라마’라고 했대요. 그런데 그 일로 아빠가 드라마 연출을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지 뭐예요.” 안판석 PD는 “아빠가 만날 회사에 간다며 출근을 하니까 회사원인 줄로만 알고 있었던 모양”이라며 웃었다. 하지만 드라마 연출자로서 촬영이 시작되면 집, 가정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은 안판석 PD도 피해가지 못했다. 안판석 PD는 “가정에서 나는 없는 존재, 즉 ‘부재자’나 마찬가지죠. 그래도 그게 가족 모두가 같이 살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하얀거탑’의 기획과 연출을 하느라 거의 1년간 경기도 고양시 일산 집에서 불과 500미터 거리 밖에 안되는 부모님 집도 1번 밖에 찾아가지 못했다며 인터뷰 도중 "정말 어른들께 죄송하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끝으로 안 PD에게 앞으로 가장 하고 싶은 작품을 물었다. 그는 “영화든 드라마든 관계없어요. ‘왕대박’이 터지고 작품성도 인정받는, 결코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죠”라고 말했다. &nbsp;< 관련기사 >☞[김은구의 PD열전] 안판석 PD "스크린 첫 도전 실패가 약 "&nbsp; ☞[김은구의 PD열전] 김창완, 기태영이 본 안 PD "너무 진지"<!--기사 미리보기 끝-->
2007.05.28 I 김은구 기자
소설가 꿈꾼 PD, '하얀거탑' 안판석
  • [김은구의 PD열전]소설가 꿈꾼 PD, '하얀거탑' 안판석
  • ▲ 안판석 PD(사진=김정욱 기자)[이데일리 SPN 김은구기자]그는 1시간 남짓 인터뷰를 하는 동안 잠시도 담배를 입에서 떼지 않았다.&nbsp;애연가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드는 요즘 좀처럼 보기 힘든 줄담배였다. &nbsp;바로&nbsp;MBC 드라마 ‘하얀거탑’의 연출자 안판석(46) PD였다. "원래 담배를 그렇게 많이 피우느냐"고&nbsp;묻자, &nbsp;그는 “드라마 연출을 하면서 특히 많이 늘었다. 촬영 현장에서 자신감 없는 모습, 초조함을 들키기 싫어 담배를 꺼내 문다”고 말했다. &nbsp;‘하얀거탑’에서 김명민, 김창완, 이정길, 변희봉 등&nbsp;강한 존재감이 있는 연기자들을 이끌던 연출자여서&nbsp;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연상했는데, 의외로 여린 속내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좀 무른 편이에요. 연기자나 다른 스태프가 나와 의견이 다르다면 협의를 하지, 소란스럽게 충돌하는 건 좋아하지 않아요. 우리에게는 촬영장이 직장인데 그곳에서 모두 행복할 수 있어야죠.” 여린 듯하면서&nbsp;모나지안게 사람들과 어우러지며 조화를 이루는 것이 치열한&nbsp;촬영 현장에서&nbsp;스태프를 통솔하는 안판석 PD만의 노하우다. ◇ 20년&nbsp;연출 인생 “갈수록 두려워진다” “고교 때까지 꿈은 소설가였어요. 따지고 보면 드라마 연출자, 영화 감독도 스토리 텔러라는, 소설가와 같은 맥락의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안판석 PD는 자신의 꿈을 좇아 1987년 드라마 연출자로 MBC에 입사했다. 결국 드라마, 영화도 소설처럼 문학의 한 장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nbsp; 안 PD는&nbsp;“문학에는 소설, 시, 희곡 등만 있는 게 아니라 영화, 연극, 드라마도 모두 포함된 것이라고 생각해요”고 말했다. 안판석 PD는 특이하게도 사춘기를 고교 1학년부터 대학 3학년까지 6년간 겪었다고 했다. 당시 인생에 대한 고민을 했다는데, 그는 “내가 어디서 뭘 했는지 자세한 기억은 없고 그 기간이 하나로 뭉뚱그려져 기억에 남아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nbsp;그러고 나서 선택한 직장이 방송사였고,&nbsp;마음을 둔 직업이&nbsp;드라마 연출자다. 내심 ‘사회생활을 하려면 어디를 가든 사람들끼리 벌어지는&nbsp;인간관계의 정치 싸움을 피할 수 없는데, 드라마, 영화를 제작할 때는 그런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직업 선택에 한 몫 했다. '그렇다면&nbsp;드라마 연출자는 그런 정치싸움이 없이&nbsp;편할까?' 안판석 PD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매 번 공포로 시작해요. 결과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나이가 들고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 늘수록 캐스팅 때문에 전화를 거는 것조차도 어려워져요. ‘전화를 안받으면 어쩌나’라는 생각에 두렵기도 하고, 마주 앉아 캐스팅 제의를 할 때 배우 얼굴의 미묘한 떨림을 보고 있는 것도 가슴 조이는 일이죠.” ▲ MBC 드라마 '하얀거탑'◇ ‘하얀거탑’ 연출 제의, 피가 무서워&nbsp;처음엔 거절 안판석 PD는 3월 종영된 ‘하얀거탑’으로 새롭게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물론 그는 그동안 적잖은 드라마를 연출한 베테랑 연출자다.&nbsp;최진실 주연의 ‘장미와 콩나물’, 안재욱, 김혜수 등이 나온&nbsp;‘짝’ 등은 인기도 높았다.&nbsp;하지만&nbsp;최고 시청률이 23.2%에 불과했던&nbsp;‘하얀거탑’이 지금은&nbsp;그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nbsp;‘하얀거탑’이 의사들의 삶, 병원 내에서 성공을 향한 치열한 암투를 담아내며 메디컬 드라마, 전문직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nbsp;“극본을 맡은 이기원 작가가 같이 해보자고 제안을 했는데 처음에는 거절했어요. 환자들이 오가는 병원에서 촬영을 해야 하는 것도 미안했고 겁이 많아 피도 무서워하거든요.” 하지만 안판석 PD는 ‘하얀거탑’의 원작을 읽은 뒤 푹 빠져 결국 연출을 맡았다. 감동도 있었고 드라마틱한 부분도 충분하다는 판단에서 용기를 냈다.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nbsp;무엇보다 등장인물의 로맨스를&nbsp;배제한 구성이 간단치 않았다.&nbsp;‘하얀거탑’은 메디컬 드라마인 만큼 격투, 카 스턴트 등 이른바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볼거리도 적어&nbsp;로맨스를 배제하는 것이&nbsp;일종의 모험이었다. 그러나 안판석 PD는 의사들의 이야기에 사랑까지 덧붙인다면 두 가지 재미를 모두 잃어버릴 수 있다는 판단을 했고 결과적으로 모험은 성공을 거뒀다. “등장인물들의 심리싸움을 어떻게 보여주고 이끌어갈지 집중했어요. 그것만으로 20부까지 끌고 가는 것도 어려웠지만 운이 따라준 것 같아요.” &nbsp; ▲ 안판석 PD(사진=김정욱 기자)◇ “‘하얀거탑’ 덕분에 딸이 아빠 직업 알게 됐죠” ‘하얀거탑’은 안판석 PD의 가정 생활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올 해 초등학교 6학년이 된 딸이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계기가 된 게&nbsp;‘하얀거탑’이다. 안판석 PD는 1990년 결혼,&nbsp;슬하에 고교 1학년인 아들과 딸이 있다. “딸이 어느 날 우쭐해져서 돌아왔더라고요. 주위에서 ‘하얀거탑’ 얘기를 하면서 ‘네 아빠가 만드는 드라마’라고 했대요. 그런데 그 일로 아빠가 드라마 연출을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지 뭐예요.” 안판석 PD는 “아빠가 만날 회사에 간다며 출근을 하니까 회사원인 줄로만 알고 있었던 모양”이라며 웃었다. 하지만 드라마 연출자로서 촬영이 시작되면 집, 가정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은 안판석 PD도 피해가지 못했다. &nbsp;안판석 PD는 “가정에서 나는 없는 존재, 즉 ‘부재자’나 마찬가지죠. 그래도 그게 가족 모두가 같이 살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하얀거탑’의 기획과 연출을 하느라 거의 1년간 경기도 고양시 일산 집에서 불과 500미터 거리&nbsp;밖에 안되는&nbsp;부모님 집도 1번 밖에 찾아가지 못했다며 인터뷰 도중 "정말 어른들께 죄송하다"는 말도&nbsp;빼놓지 않았다.&nbsp;&nbsp;끝으로 안 PD에게 앞으로 가장 하고 싶은 작품을 물었다. 그는 “영화든 드라마든 관계없어요. ‘왕대박’이 터지고 작품성도 인정받는, 결코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죠”라고 말했다.&nbsp;< 관련기사 >☞[김은구의 PD열전] 안판석 PD "스크린 첫 도전 실패가 약 "&nbsp; ☞[김은구의 PD열전] 김창완, 기태영이 본 안 PD "너무 진지"
2007.05.28 I 김은구 기자
  • [김호의 축구보기] 축구 선수와 병역...방법이 없을까
  • [이데일리 김호 칼럼니스트] 최근 기억에 남는 기사들이 있었다. FC 서울 세뇰 귀네슈 감독의 통역을 맡고 있는 시난씨가 소개한 터키의 병역 제도 관련 기사가 하나였고, 축구선수가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병역 비리 관련 소식이 또 다른 하나였다. 시난씨는 터키도 의무 복무기간 12개월의 징병제를 택하고 있는데 해외에서 직업을 구해 3년 이상 활동하면 3주간의 기본 군사훈련으로 병역을 마친다고 했다. 축구 선수들도 외국 구단에서 뛰게 되면 이 제도의 혜택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이런 방법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편법으로 축구 선수들을 채용한 병역특례업체의 병역 비리 이야기는 ‘또 이런 일이 일어났구나’하는 안타까움을 가지고 유심히 봤다. 불법적인 방법으로 병역 혜택을 보려한 선수들도 비난을 면할 순 없는 일이다. 그러나 마음이 불편했다. 축구를 비롯 운동 선수들의 병역 비리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현역 지도자 생활을 할 때 이런 문제에 연루돼 운동을 그만 두는 후배들도 봤고 병역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방황하다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극단적으로는 병역 면제를 위해 안해도 될 수술을 하는 선수도 있는 것으로 들었다. 이는 불법이다. 요행으로 법에 걸리지 않더라도 이들 대부분 선수로서 크게 빛을 보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불필요한 수술로 몸이 망가진 탓이다. 불미스러운 일이 이어지는게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면서 축구 선수들이 병역 관련 범죄자가 되기 쉬운 것으로 사회에 비춰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생긴다. 방법이 없을까. 병역문제는 전 국민이 민감하게 여기는 사안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면도 있다. 하지만 한 평생 축구만 한 사람으로서 젊은 선수들이 한순간에 범죄자가 되거나 활짝 꽃을 피우지 못하고 스러지는 현실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축구 선수를 비롯 운동선수들의 특수성부터 이해하는데서 시작할 수 있다. 선수들은 길어야 35세 정도가 되면 은퇴한다. 지도자로 제2의 인생을 열수도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그것도 쉽지 않다. 요즘 현실이야 그렇지 않지만 대개 55세까지 정년제를 시행하는 직장에서 근무하는 일반인들과의 근본적인 차이다. 선수들은 20대 초반부터 10여년 동안 집약해서 평생을 살 수 있는 경제적인 바탕을 마련해야 한다. 그동안 군에서 보내는 2년의 의미는 일반인들과 또 다를 수 밖에 없다. 축구를 떠나 2년을 보내고 난 뒤 선수 생활을 재개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광주 상무, 경찰청 등에서 축구팀을 운영, 숨통을 터주고 있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 우리 때만 해도 방첩대, 해병대, 공군, 헌병대 등 각 군에 축구팀이 있어 많은 선수들이 경기력을 유지하는 게 가능했다. 한국 축구가 발전하고 세계의 중심에 서기 위해선 더욱 해결책이 시급하다고 본다. 한창 배우고 익힐 시기에 군대를 가야한다면, 그리고 해외에 진출하려 해도 병역문제가 발목을 잡는다면 전체적인 축구의 질을 높이기 힘들다. 또 국가대표로 뽑힌 이들은 국가를 위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기 몸을 던진다. 국가대표 경기에서 부상을 당해도 이에 대한 변변한 보상을 받을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해외에서 활약하는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처럼 어린이들에게 꿈을 주고, 국민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선수들에게 면제 혜택을 주자는 것은 아니다.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이야기다. 가령 시기를 선택해 군 복무를 하도록 할 수도 있고, 초, 중, 고교 팀에서 의무적으로 몇 년간 봉사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축구협회를 넘어, 대한체육회, 그리고 정부에서 진지하게 연구해 주기를 바란다. 앞날이 촉망되는 젊은 후배들이 불법의 덫에 빠지는 것을 지켜 보는 일은 선배로서 가슴 아프다. / 전 수원 삼성 감독
2007.05.25 I 김삼우 기자
  • (edaily리포트)고액권에 이런 모델 어때요?
  • [이데일리 최한나기자] 작년 사정없이 풀린 돈으로 부동산 광풍을 겪은 뒤 우리 사회의 돈벌기 열풍은 한층 심해졌습니다. 자고 나면 뛰어있는 집값 앞에, 성실히 벌어 차곡차곡 모으자는 논리는 무색해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더 쉽게, 더 많이 벌 수 있는지에 관심이 뜨거웠고, 올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시장부 최한나 기자가 고액권에 실릴 인물 초상 후보를 추천한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화폐 앞면에 돈을 잘 쓴 인물을 넣어 `가치있게 돈 쓰는 방법`에 대한 인식을 높이자는 것입니다. 요즘 금융권의 가장 큰 이슈는 단연 `넘쳐나는 돈` 입니다. 막상 내 호주머니 속엔 찬바람만 가득한데 여기저기서 돈, 돈, 돈, 말들이 많습니다. 시중 유동성을 잡기위해 한국은행이 9개월동안 올린 금리만 1.25%포인트에 달합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들에 막혀 금리인상의 효과는 발휘되지 않았고, 부풀어가는 유동성에 대한 우려는 해를 넘기며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작년 한해 내내 대한민국을 흔들었던 `부동산 광풍`도 바로 이 유동성 팽창과 연결돼 있습니다. 대출로 풀린 돈들이 집으로, 땅으로 흘러갔습니다. 부동산 시세표는 자고 나면 새로 고쳐져 있었고, 몇억쯤은 우습게 회자됐던 해였습니다. 새로 문을 여는 모델하우스에 와글와글 모인 사람들과 밤을 새워가며 청약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 지역과 평수로 나뉘어 내 몫에 아귀다툼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익숙해져갔습니다. 옆집 누구네, 친척 누구네 돈벼락 소식에 자기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 버리는 사람들도 흔했구요. 절대적인 비극보다 상대적인 박탈감이 더 참담한 법이지요. 차곡차곡 저축해서 몇년안에 내집 마련하겠다는 소박한 꿈들은 끝도없이 공허해졌습니다. 정직하게 월급받아 알뜰살뜰 살아가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바보같은 일로 전락했습니다. 아이들 사이엔 집 평수와 차 종류가 내편네편을 가르는 기준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해가 바뀌고 부동산가격 오름세가 예전보다 둔해졌지만, 돈벌기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겁습니다. 최근엔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돌파하며 치솟아 `한탕`의 신화는 끊이지 않고 들려옵니다. 서점에는 돈 버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나선 책들이 즐비합니다. 각종 부동산과 주식 투자방법들이 고수익을 보장하며 명함을 내밉니다. `일단 많이 벌고 보자`는 풍토야 유사 이래 계속 있어왔겠지만, 갈수록 일반화되고 정당화되고 있다고 개탄하는 사람은 저 뿐일까요. 문제는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지에만 관심있을 뿐, 정작 어떻게 써야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왜 돈을 벌어야 하고, 어떻게 벌어야 하며, 어떻게 써야하는지에 대한 철학 없이 무조건 많이 벌기에만 관심이 집중돼있다는 것이죠. 지금 시중에 풀리고 있는 돈들이 어느 곳에서 어떤 현상으로 결말을 맞을지 궁금합니다. 걱정도 되고요. 다행히 실물경제 쪽으로 흘러가 우리 경제가 한단계 도약하는데 쓰인다면 좋겠지만, 작년과 같은 현상이 또다시 반복된다면 사회내 반목과 갈등, 시기와 다툼들이 한층 업그레이드돼서 나타날지도 모를 일입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죠. 이런 와중에 한국은행이 고액권 발행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오는 2009년 상반기중 5만원권과 10만원권을 새로 발행하겠다고 합니다.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화폐의 앞면을 누가 장식하느냐 입니다. 여성계와 과학계를 비롯한 각계 각층에서 저마다 이유있는 인물들을 내세워 앞면을 선점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초등학생도 알만한 유명한 인물들부터, 역사속에 묻혀 그동안 알지 못했던 낯선 인물들도 꽤 나왔더군요. 장군도 좋고 과학자도 좋지만, 이번 기회에 돈을 버는 것 못지 않게 번 돈을 어떻게 쓰는지도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시켜보는 건 어떨까요. 고액권 앞면에다 `돈에 관한한 가장 존경할 만한` 분을 넣는거죠. 누구보다도 돈을 잘 번 인물이면서도, 허투루 쓰지 않고 아름답게, 가치있게 사용한 인물 말입니다. `박수 받으며 돈 쓰는 방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2007.05.25 I 최한나 기자
 축구 선수와 병역...방법이 없을까
  • [김호의 축구보기] 축구 선수와 병역...방법이 없을까
  • ▲ (자료사진) 박광태 광주광역시장이 상무 축구단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뉴시스][이데일리 SPN 김호 칼럼니스트] 최근 기억에 남는 기사들이 있었다. FC 서울 세뇰 귀네슈 감독의 통역을 맡고 있는 시난씨가 소개한 터키의 병역 제도 관련 기사가 하나였고, 축구선수가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병역 비리 관련 소식이 또 다른 하나였다. 시난씨는 터키도 의무 복무기간 12개월의 징병제를 택하고 있는데 해외에서 직업을 구해 3년 이상 활동하면 3주간의 기본 군사훈련으로 병역을 마친다고 했다. 축구 선수들도 외국 구단에서 뛰게 되면 이 제도의 혜택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이런 방법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편법으로 축구 선수들을 채용한 병역특례업체의 병역 비리 이야기는 ‘또 이런 일이 일어났구나’하는 안타까움을 가지고 유심히 봤다. 불법적인 방법으로 병역 혜택을 보려한 선수들도 비난을 면할 순 없는 일이다. 그러나 마음이 불편했다. 축구를 비롯 운동 선수들의 병역 비리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현역 지도자 생활을 할 때 이런 문제에 연루돼 운동을 그만 두는 후배들도 봤고 병역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방황하다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극단적으로는 병역 면제를 위해 안해도 될 수술을 하는 선수도 있는 것으로 들었다. 이는 불법이다. 요행으로 법에 걸리지 않더라도 이들 대부분 선수로서 크게 빛을 보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불필요한 수술로 몸이 망가진 탓이다. 불미스러운 일이 이어지는게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면서 축구 선수들이 병역 관련 범죄자가 되기 쉬운 것으로 사회에 비춰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생긴다. 방법이 없을까. 병역문제는 전 국민이 민감하게 여기는 사안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면도 있다. 하지만 한 평생 축구만 한 사람으로서 젊은 선수들이 한순간에 범죄자가 되거나 활짝 꽃을 피우지 못하고 스러지는 현실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축구 선수를 비롯 운동선수들의 특수성부터 이해하는데서 시작할 수 있다. 선수들은 길어야 35세 정도가 되면 은퇴한다. 지도자로 제2의 인생을 열수도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그것도 쉽지 않다. 요즘 현실이야 그렇지 않지만 대개 55세까지 정년제를 시행하는 직장에서 근무하는 일반인들과의 근본적인 차이다. 선수들은 20대 초반부터 10여년 동안 집약해서 평생을 살 수 있는 경제적인 바탕을 마련해야 한다. 그동안 군에서 보내는 2년의 의미는 일반인들과 또 다를 수 밖에 없다. 축구를 떠나 2년을 보내고 난 뒤 선수 생활을 재개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광주 상무, 경찰청 등에서 축구팀을 운영, 숨통을 터주고 있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 우리 때만 해도 방첩대, 해병대, 공군, 헌병대 등 각 군에 축구팀이 있어 많은 선수들이 경기력을 유지하는 게 가능했다. 한국 축구가 발전하고 세계의 중심에 서기 위해선 더욱 해결책이 시급하다고 본다. 한창 배우고 익힐 시기에 군대를 가야한다면, 그리고 해외에 진출하려 해도 병역문제가 발목을 잡는다면 전체적인 축구의 질을 높이기 힘들다. 또 국가대표로 뽑힌 이들은 국가를 위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기 몸을 던진다. 국가대표 경기에서 부상을 당해도 이에 대한 변변한 보상을 받을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해외에서 활약하는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처럼 어린이들에게 꿈을 주고, 국민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선수들에게 면제 혜택을 주자는 것은 아니다.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이야기다. 가령 시기를 선택해 군 복무를 하도록 할 수도 있고, 초, 중, 고교 팀에서 의무적으로 몇 년간 봉사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축구협회를 넘어, 대한체육회, 그리고 정부에서 진지하게 연구해 주기를 바란다. 앞날이 촉망되는 젊은 후배들이 불법의 덫에 빠지는 것을 지켜 보는 일은 선배로서 가슴 아프다.
2007.05.25 I 김호 기자
"1년 12억은 보장", 과욕으로 낭패 본 '슈퍼걸'
  • [차이나 Now!]"1년 12억은 보장", 과욕으로 낭패 본 '슈퍼걸'
  • ▲ 중국 인기 프로 '차오지뉘셩'의&nbsp;2006년 '슈퍼걸'로 뽑힌&nbsp;샹원지에[칭다오(중국)=이데일리 SPN 정유미 통신원]"1년에 12억원의 수입을 보장해라." 스타들의 몸값이나 수입이100억대에 오른 한국의 이야기도, 또 화려한 석세스 스토리를 가진&nbsp;할리우드 스타의 이야기가 아니다. &nbsp;바로&nbsp;지난 해 ‘차오지뉘셩(슈퍼걸)’으로 뽑히며 중국 최고의 신데렐라로 등극한 샹원지에가&nbsp;신인으로 소속사에 요구한 조건이다. &nbsp;요즘 중국은 샹원지에가 음반기획사에 요구한 '미니멈 개런티'의 조건이 알려지면서 그녀의 대단한 욕심에 떠들썩하다. ◇ 음반 데뷔 앞둔 새내기,&nbsp;중국&nbsp;근로자 평균 임금 5000배 수입&nbsp;요구&nbsp;'창오지뉘셩'은 2004년 시작한 후난성 위성TV의 최고 인기 프로그램이다. 일종의 아마추어 여자 가수 콘테스트인데, '중국 여성들의 꿈'이라고 불릴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특히 2005년에 1위로 선발된 리위춘은 중국 연예인 최초로 우표에 얼굴이 실릴 만큼 단숨에 톱스타로 올라섰다. &nbsp;그리고 2006년에는 리위춘에 이어 외국계 회사의 평범한 직원이던 샹원지에가 '슈퍼걸'이 됐다. &nbsp;샹원지에는&nbsp;'슈퍼걸'이 된 후 4월 말 중국 최대 음반 기획사 중 하나인 '티엔러 기획사'(이하 티엔러)와 전속 계약을 맺었고,&nbsp;곧 단독 앨범을 발표할 예정이었다.&nbsp;&nbsp;▲ 무리한 수입 보장 요구로 논란을 일으킨 샹원지에가 수입의 기준으로 잡은 중국 톱스타 리위춘그런데&nbsp;음반 기획사와의&nbsp;계약이 불공정하다며 돌연&nbsp;계약을 파기를 선언했다. 샹원지에 측은 연예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도 전이었던&nbsp;2006년 말, 기획사가 소속 가수의 관리를 제3자에 이행할 수 있도록 하는 조약을 명시해 엄연한 불공정 계약이라는 주장이다.&nbsp;그러자 티엔러 측도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샹원지에가 매 년 최소 1000만 위안(약 12억원)의 수입을 보장할 것을 회사 측에 요구했다고 언론에 폭로한 것이다. &nbsp;이는 지금 중국 톱스타로 꼽히는 리위춘의 수입과 맞먹는 액수로 중국 근로자들의 평균 임금인 2000위안(약 24만원)에 5000배에 달하는 액수이다. &nbsp;◇ 소속사와의 법적 분쟁으로 순수하고 소박한 이미지 타격아직 음반도 발표하지&nbsp;않은 신인 샹원지에가 현재 중국&nbsp;톱스타에 반열에 오른 리위춘과 같은&nbsp;수입을 보장해 달라고 했다는 사실은 그녀의&nbsp;순수하고 소박한 이미지에 타격을 입히기에 충분했다. &nbsp;중국 네티즌들은 온라인을 통해 "'차오지뉘셩'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되어 버렸다"며 샹원지에의 탐욕에 대해 성토하기 시작했다. 티엔러측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샹원지에가 평소 말도 없이 연락을 끊어버리고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했다고 비난했다. 티엔러는 구체적인 사례로 홍콩 영화 배우이자 가수인 막문위의 녹음을 맡았던 프로듀서가 샹원지에의 데뷔 앨범 때문에 대만에서 베이징까지 달려왔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돌연 녹음을 취소해 버린 일을 밝혔다.이에 따라 티엔러는 샹원지에가 1년에 100만 위안(약 1억 2000만원), 8년 동안 800만 위안(약 9억 6000만원)에 이르는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고, 샹원지에 역시 변호사를 선임하고 맞대응에 들어갔다. 중국은 일반 근로자 평균 임금은 아직 낮지만&nbsp;최근 엔터테인먼트&nbsp;산업이 급상승하면서&nbsp;일부 톱스타들의 수입은&nbsp;한국보다도 훨씬 높다.&nbsp;&nbsp;그동안 스타 갑부들의 이야기를 마치 다른 세상 이야기로 치부해버렸던 중국 팬들이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자신과 비슷한&nbsp;신분이었던 샹원지에의 욕심을&nbsp;바라보는 시선은 그다지 곱지 않다.&nbsp;(관련기사) ☞ [차이나 Now!]"집이 최고", 중국 연예계도 투기 광풍(?)
2007.05.20 I 정유미 기자
(CEO칼럼)윤성태 대표, "처음으로 사인(Sign)을 해주다"
  • (CEO칼럼)윤성태 대표, "처음으로 사인(Sign)을 해주다"
  • [윤성태 휴온스&nbsp;대표] 며칠 전 모경제지 기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인터뷰를&nbsp;할 기회가 있었다. 모임의 취지는 아직 코스닥 새내기인 휴온스에 대해 정확한 정보가 부족한 기자들에게 회사를 소개하는 자리였다.왜 상장을 결심하게 되었는가, FTA가 제약회사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휴온스의 비전은 무엇인가 등 여러 가지 현안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들이 나왔다. 어떤 질문은 곤혹스러웠고 어떤 질문은 과거의 고생스러웠던 시절을 기억나게 했다. 사실 필자는 잘 다니던 다국적 회사인 IBM을 그만두고 지난 1992년 휴온스에 입사하여 약 8년간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다. 경영이 잘 됐던 회사가 어려움에 처한 것은 공장 건축에 대한 과도한 투자가 원인이었다. 그 당시 나는 인생의 최대 시련을 겪어야 했으며 1998년에 완성된 플라스틱 주사제를 국내 최초로 개발해 회사가 다시금 기사회생 할 수 있었다. 회사가 기사회생하면서 신제품 개발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경험하였고 향후 회사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함을 절감해 시작한 신제품 개발 노력이 바로 웰빙의약품 개발이었다.2000년대 들어서 비만치료제, 태반주사제, 비타민주사제를 차례차례 개발하면서 회사가 급격한 성장을 하였고 드디어 코스닥 상장이라는 업적을 이루게 되었다.&nbsp;&nbsp;여러 현안들에 대해 이야기했고 특히 최근 당사가 개발하여 출시한 생약 성분의 비만치료제인 `살사라진`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었다. 살사라진 개발 동기, 이름을 누가 지었는지, 매출은 어떠한지 실제 효과는 있는지에 대해 기자들은 흥미롭게 질문했고 필자는 있는 사실을 모두 숨김없이 이야기했다.살사라진이란 이름을 지은 직원에게 5월2일 월례조회에서 포상과 함께 표창장을 주었다는 이야기, 효과가 슬슬 나타나면서 홈페이지에 경험담이 올라오기 시작한다는 이야기, 향후 제2의 살사라진을 개발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nbsp;그런데 식사가 끝나갈 즈음 서빙하는 아주머니께서 작은 케이스에 담긴 약을 들고 갑자기 방으로 들어오시더니, 광고를 보고 약국에서 구입해 본인이 지금 살사라진을 복용하고 있다면서 이 회사 사장을 직접 만나게&nbsp;돼 영광이라며 내 손을 꼭 잡는게 아닌가?나 역시 처음 방문한 광화문의 한 일식집에서 서빙하는 아주머니께서 살사라진을 복용하고 있을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는데 살사라진 휴대용 약통을 보여주면서 자랑하는 아주머니를 만나니 너무 기쁘기 그지없었다.&nbsp;그런데 이 아주머니께서 식사가 끝나고 나가려고 하는데 나에게 오늘 만난 인연으로 사인을 하나 해 달라고 부탁해서 태어나고 처음으로 모르는 분에게 사인을 해 주게 되었다.&nbsp;&nbsp;개인적으로 너무 기뻤으며 앞으로도 사명감을 가지고 사업을 하여야겠다고 다짐하였으며 이 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유명 연예인이 된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nbsp;윤성태 대표<약력>한양대학교 산업공학과 졸업한양대 공학대학원 프로젝트관리학과 재학中한국IBM 근무이노비즈협회 부회장 (현재)(주)휴온스 대표이사 (현재)(주)휴온스1965년 07월 광명약품공업사 설립2003년 06월 (주)휴온스로 상호변경2004년 11월 오백만불 수출의 탑 수상(대통령상)2005년 09월 벤처기업 인증 취득2006년 10월 국가생산성대상 리더쉽부문 국무총리상 수상2006년 12월 19일 코스닥 상장
2007.05.18 I 임종윤 기자
(Zoom-in 증권가)박성호 에스아이피오 사장
  • (Zoom-in 증권가)박성호 에스아이피오 사장
  • [이데일리 조진형기자] "포스트 기업공개(IPO) 컨설팅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상장 컨설팅도 중요하지만 상장 후 기업가치를 높이는 컨설팅이 더 중요합니다." ▲ 박성호 사장에스아이피오의 박성호 사장은 "장외기업들이 상장 문턱을 넘어선 이후 기업가치가 훼손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면서 이 같이 말한다. 최근 에스아이피오는 IPO 컨설팅과 함께 포스트 IPO 컨설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일회계법인 회계사 출신으로 동서증권 기업금융팀과 현대투신증권 자산운용팀을 거친 박 사장은 지난 2000년 IPO컨설팅업체인 에스아이피오(www.s-ipo.com)를 설립했다.&nbsp;에스아이피오는 설립 이후&nbsp;매년 5곳 내외의 기업들을 꾸준히 상장시켜오면서 지난 7년간 IPO 컨설팅 분야에서&nbsp;상당한&nbsp;신뢰를 쌓아왔다. &nbsp;그동안 상장시킨 기업들이 에스아이피오의 높은 성과를 증명한다. 시총 1조원 클럽에 가입한 메가스터디를 비롯해 엠텍비젼, 이상네트웍스, 팅크웨어, 지어소프트 등이 에스아이피오의 컨설팅을 받았다. 이 기업들의 공통점은 상장 이후에도 성장세를 늦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에스아이피오의 자부심도 단순한 '상장 도우미'가 아니라 '상장 후 레벨업 도우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적지 않은 신규 상장기업들이 상장이란 꿈을 달성하고 나서 주저앉고 있다. 업황과 실적이 최고치를 기록했을 때 상장했다가, 점차 퇴보하면서 시장의 외면을 받는 곳이 많다. 박 사장은 "고객사가 IPO를 일궈낸 이후에도 IR, 재무전략 등을 중심으로 하는 컨설팅에 힘을 쏟고 있다"면서 "특히 M&A를 통해 사업을 확대 또는 매각하도록 도움을 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메가스터디와 같이 지속 성장 여지가 있는 회사는 M&A 하도록 도와주는 반면에 시장 경쟁이 치열해져 높은 리스크에 직면한 회사는 M&A 매각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여준다는 것이다. 현재 IPO 컨설팅을 통해 상장시킨 30여개사 가운데 5개사에 대해 M&A 자문을 실시했다. 에스아이피오는 이렇게 IPO 컨설팅부터 M&A, 재무전략, 자금조달, 신규사업 발굴 등의 포스트 IPO 컨설팅까지 원스톱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조직도 IPO, IR, M&A의 3개 본부를 갖췄다. 그가 꼽는 에스아이피오의 강점은 누구보다도 해당 기업의 장단점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IPO컨설팅은 적게는 1~2년, 많게는 4년까지 걸린다. 오랜 기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실무진간 호흡도 잘 맞아 컨설팅에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고 한다. 박 사장은 "벤처기업 중에는 사업적인 기반은 갖추고 있으나, 파이낸스 분야에서는 초보인 기업이 많다"면서 "이 분야에서 선진국 시장과는 달리 국내 증권사가 해줄 수 있는데 한계가 있는만큼 건실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경영진을 위한 컨설팅을 더욱 체계화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에스아이피오는 지난해 창투사인 SV창업투자를 설립해 종합 파이낸스 컨설팅 기업으로의 면모를 갖췄다. 이미 SV창투는 130억원 규모의 투자조합을 결성, 투자 대상을 본격적으로 물색하고 있다. 박 사장은 "IPO 컨설팅 분야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신뢰를 받아왔다"면서 "M&A 컨설팅에 있어도 최근 문제가 되는 테마를 붙여서 하는 머니게임은 철저하게 지양하고, 견실한 중소기업만을 대상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2007.05.15 I 조진형 기자
''트로트 신동'' 양지원, "장윤정 누나 보며 가수 꿈 키웠죠"
  • ''트로트 신동'' 양지원, "장윤정 누나 보며 가수 꿈 키웠죠"
  • ▲ 나이에 비해 훨씬 어른스러운 양지원[이데일리 SPN 최은영기자] "올 해 열세살이에요. 남자 트로트 가수&nbsp;중 최연소라고 하더군요." 트로트가 젊어지다 못해 어려지고 있다.&nbsp; '트로트 신동' 양지원 얘기다. 하지만 어리다고 얕잡아 봤다가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구슬픈 음성에 감칠 맛 제대로 살려낸 꺾기까지 노래 실력이 웬만한 성인 트로트 가수 저리 가라다. 목소리만 성숙한 줄 알았더니 음악에 대한 생각이나 행동 하나 하나까지 그야말로 애어른이 따로 없다. '트로트 신동'이라며 추켜세웠더니 "신동 아닌 그냥 트로트 가수라 불리고 싶다"며 야무진 포부를 밝혀 보인다. &nbsp;게다가 카메라 앞에서는 또 얼마나 자유자재로 포즈를 취해 보이는지 그 넘치는 끼에 혀를 다 내두를 정도가 됐다. 지원군은 현재 양산 개운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다. 어리디 어린 나이에 어떻게 음반을 다 취입했을까 신기하겠지만, 지원군의 실력과 이력을 알고 나면 이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 네 살 때부터 트로트 즐겨&nbsp;“양산선 이미 스타로 통해요” 그는 남인수 가요제에 출전했다가 작곡가 정의송의 눈에 띄었고, 이후&nbsp;장윤정의 소속사인 인우프로덕션과 계약을 맺고 프로로 데뷔했다. 하지만 지원군이 트로트와 처음으로 연을 맺은 건 그보다도 훨씬 이전인 네 살 때. "할아버지가 트로트를 즐겨 들으셨어요. 할아버지를 따라 트로트를 즐기다 보니 자연스레 트로트에 빠져들게 되었어요. '봉선화 연정' '큰소리 뻥뻥' '99.9' 등이 당시 제가 즐겨 불렀던 레퍼토리예요. 친구들이 좋아하는 동요는 왠지 시시하게 느껴졌어요." 실력이 받쳐주니 스타가 되는 건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동네 ‘읍민의 날’ 행사가 열리는 날이면 단골 게스트로 무대에 올라 '양산의 스타'로 이름을 날렸고, 7살 때는 트로트에 댄스풍의 가요까지 거침없이 소화해내며 지역방송 무대를 휘어잡았다. 남인수 가요제에 출전해 최우수상에 청소년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고향 양산에서 불이 붙기 시작한 '트로트 신동'에 대한 입소문은 이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양지원이 SBS TV '진실게임' '김승현 정은아의 좋은 아침' KBS 1TV '아침마당' 등에 초대 받아 얼굴을 알릴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런 연유에서다. ▲ 양지원은 9일 데뷔앨범 '지원스 퍼스트 스토리'를 발표했다.◇ 장윤정 누나는 우상이자 꿈! “나의 아리랑 한번 들어볼래요?” 하지만 당시만&nbsp;해도 트로트를 전공으로 파고들겠다는 생각까지는 없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라디오에서 우연히 접한 장윤정의 '짠짜라'는 트로트 신동 양지원의 마음을 심하게 흔들어 놓았다. "'짠짜라'를 처음 딱 듣는 순간 온몸에 찌릿찌릿 전율이 다 일더라구요. 장윤정 누나의 노래를 듣고 내가 길은 '바로 이거다' 했죠. 트로트를 집중적으로 파고들기 시작한 건 바로 그 때부터였어요. 그런데 게다가 우연히&nbsp;연결된 기획사가 마침 제 우상이던 장윤정 누나가 속한 곳이었던 거 있죠? 얼마나 기뻤겠어요." 양지원의 데뷔 앨범 타이틀은 '지원스 퍼스트 스토리'다. 그의 첫 번째 음악이야기는 '나의 아리랑'으로 시작된다. 타이틀곡 '나의 아리랑'은 최근 유행인 퓨전 트로트와는&nbsp;다른 정통 트로트다. 13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통의 흥겨운 가락과 맛을 제대로 살려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양지원의 데뷔앨범 '지원스 퍼스트 스토리'에는 타이틀곡 '나의 아리랑' 외에 틴에이저 트로트를 대변할만한 노래들이 가득 차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노래로는 '나의 아리랑'과 더불어&nbsp;타이틀곡 후보였던&nbsp;'꼼짝마'를 들 수 있을 듯 하다. 우리나라 전통 민요가락이 섞여 있어 친근감을 더하는 퓨전 댄스 트로트곡으로 타이틀곡 '나의 아리랑'과는 정반대인 양지원의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9일 데뷔앨범을 발표하고 성인가요 시장에 첫 발을 내딛은 양지원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장윤정 누나만큼만 됐음 좋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장윤정 누나는 타고난 재능에 아픈 몸을 이끌고 링거 주사를&nbsp;맞으면서도&nbsp;무대에 오르는 열정을 지닌 가수"라는 게 그 이유였다. 양지원은 입만 열었다 하면 아이답지 않은 성숙함으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 묘한 재주를 지닌 꼬마였다. &nbsp;양지원은 "트로트는 여느 음악과 달리 두 배의 감동, 두 배의 흡입력을 지닌 음악"이라며 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당부하기도 했다.
2007.05.15 I 최은영 기자
“나는 페미니스트 그러나 정치판에서는 여성도 경쟁상대”
  • “나는 페미니스트 그러나 정치판에서는 여성도 경쟁상대”
  • [조선일보 제공] “나는 말이지, 손주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가정적으로 부드러운 쪽으로 인터뷰하는 줄 알았지. 그렇게 들었는데.” 약속 시간에서 30분쯤 늦게 나타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부드러운’ 인터뷰를 요구했다. ―부드럽게 비춰지길 원합니까? “아니, 아니. 지금 정치적인 이야기들을 너무 많이 하잖아요. 그러니까 다른 측면에서 손주들과 찍은 사진도 내주면서 하면 재미 있다는 거지요.”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있는 그의 대선 캠프 사무실은 ‘사람 장터’였다. 그는 참모들과 회의를 하느라 바빴고, 또 찾아오는 손님들을 만나느라 바빴다. 이날 몇 시간 전 그는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하지만 ‘경선룰’을 둘러싸고 박근혜 전 대표와의 갈등이 더 부각된 시점이었다. 그의 참모들은 미리 “정치 현안을 질문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나는 “정치인에게 정치를 묻지 않으면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라고 대꾸했다. 그래서 이들이 또 대책회의를 한 뒤에야 인터뷰가 시작됐던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무슨 생각을 합니까? “ 무슨 생각? …. 요즘은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대응하지 말고 참아야 하겠다, 이런 생각을 해요. 정치가 그냥 건전한 경쟁이 아니고, 항상 상대가 있고, 상대가 이렇게 또 이야기를 하고, 여러 가지를 불편하게 만드는 거니까. 정치는 대응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합니까? “그런 질문에는 답변 안 하겠습니다. 그런 질문을 여기서 하면 어떻게 해요?” 그는 여전히 ‘부드러운’ 것에 집착하고 있었다. “지난 10년처럼 경제는 말로 되는 게 아냐” ―대통령은 본인이 아니면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다고 보는 겁니까?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누구나 경쟁해서 국민이 선택하는 거지요. 내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국민이 이 시대에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느냐고 판단하는 거지요.” ―이 전 시장이 만약 대통령이 되면, 우선 어떤 점에서 우리 삶이 달라질까요? “삶이 행복해지겠죠. 지금은 일자리가 없어 불행하고 노후가 불안하고 아이들 키우기도 불안합니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경제를 살려서 일자리도 만들 수 있고, 앞으로 아이들을 키우기도 좋고, 공부시키기도 조금 편한 교육제도를 만들 것입니다. 아이들 공부시키고 난 다음에 일자리도 구할 수 있고, 나이 든 사람들은 일찍 은퇴하지 않고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하는 거지요. 이제 90세까지 사는데 일찍 일자리가 없으면 안되잖아요. 경제는 말로 되는 게 아니니까. 사람들은 10년 동안 말로 하는 것만을 보아왔지만, 나는 그걸 실제 이뤄낼 것으로 보는 거죠. 나에 대해 그런 신뢰가 있는 거죠.” ―그걸 본인 아니면 다른 후보들은 못한다고 봅니까? 나는 맨 처음 질문으로 돌아왔다. “그건 아니고. 국민이 선택하는 거지요. 국민이 ‘저 사람은 저 것이 있구나’라고 보는 거지요. 그래서 여론조사가 있지요. 무엇 때문에 이 사람을 지지하는지 과학적 분석을 하는 겁니다. 그런 객관적 판단이 중요한 거지요.” ―언제 대통령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까? “어릴 때는 그런 생각은 안 했고요. 기업에 있을 때 세계를 다니면서 지도자나 기업 CEO(최고경영자)들을 만났어요. 그러면서 한국의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지도자가 바뀌지 않으면, 우리는 더 이상 행복해질 수 없다는 생각을 한 거죠. 저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접해본 거죠. 국회의원도 해보고 시장도 해보고 그렇게 하면서 결심을 해나간 거죠. 처음부터 어렸을 때부터 내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요.” ―현대건설에 재직하면서 이미 정치에 대한 꿈을 갖고 있었군요. “그런 건 없었고. 현대를 떠나면서 그렇게 생각했지요. 현대에 있을 때는 내가 하는 일이 제일 좋았고 거기서 최선을 다했으니까.” “사람 쓸 때 긍정적 사고 가졌나를 중시” ―결정적으로 어느 시점에서 대통령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판단을 했습니까? “가능하다기 보다는, 도전, 도전이죠. 시대가 필요로 하는 리더가 있잖아요. 여론이 그렇지 않은데 그걸 무시하고 자기 혼자서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없지요.” ―본인이 예상한대로 본인의 삶이 흘러온 겁니까? 아니면 전혀 예상치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까?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삶을 예상한 사람이 있습니까? 어떤 현실에 부딪힐 때, 도전하면서 새로운 길이 열린 거죠. 가령 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못 가게 됐을 때 학교를 가야겠다는 도전, 정 안 되면 야간학교라도 가야겠다는 도전, 이를 통해 삶이 자꾸 바뀌어 가는 거죠.” ―가끔은 지금 이 순간이 기적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까?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아요. 난 노력의 대가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노력한 만큼 대가가 옵니다. 물론 노력한 만큼 대가가 안 오는 경우도 있을 거예요. 그런 세상은 좋지 않은 것이죠. 열심히 사는 사람이 잘 살 수 있게 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대우를 받게 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생각했어요.” ―본인은 어떤 스타일의 리더라고 생각합니까? “일반적으로 보여지는 것과 실제와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상당히 밀어붙이는 방식의 리더십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죠. 저는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한번도 없어요. 나는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이 되는 과정에 놓였던 회사의 CEO를 지냈어요. CEO는 철저한 사전 준비를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준비 단계에서 확정하기까지의 과정은 상당히 민주적이어야 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많은 정보를 수집합니다. 사람들에게는 그런 숨은 과정이 보이지 않죠. 그 뒤 확정해서 추진하는 과정만 보이니까. 내가 청계천 복원을 할 때, 모르는 사람들은 선입견을 갖고 ‘아, 밀어붙였겠다’고 했는데, 야당 시장이 어떻게 그것을 밀어붙이겠습니까? 국회에서 협조 받은 것도 아니고 검찰에 협조 받은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 것 없이 많은 당사자들을 설득시키는 과정이 있었지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설득이에요. 민주주의의 기본이죠. 백 번 만나서 안되면 천 번, 그래도 안되면 사천 번 만나는 거죠. 그런 인내의 과정을 거쳐서 합의가 되었단 말이에요. 청계천 주위의 상인들이나 노점상들은 그 다음부터 전적으로 협조자가 되었던 거죠.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불도저 식으로 밀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어느 날 청계천 복원 공사가 마무리 되고 있는데, 이탈리아 베니스의 건축 비엔날레에서 대상으로 선정됐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는 신청도 안 했는데. 나중에 심사위원장이라는 분을 만났더니, 많은 이해당사자들을 설득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자신을 PR(홍보)하는 것이 원래 성격입니까? 아니면 정치에 뛰어든 뒤 바뀐 것입니까? “사실대로 설명을 하는 거예요. 인터뷰를 하는 거니까 내 얘기를 하는 거지. 남의 얘기를 할까요?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 하면, 그런 내면적인 과정을 보지 않고 자꾸 밀어붙인다는 식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고(故) 정주영 회장의 리더십 스타일과는 다르다는 말씀이지요? “서로 같았으면 오래 못 있었겠죠. 한 사람이 급할 때는 한 사람은 신중해야 하고, 의견 충돌로 서로 말을 안 할 때도 있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결과적으로 보완적이 됐고, 협력이 됐다고 보는 거죠.” ―사람을 쓸 때 무엇을 중시합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긍정적 사고를 가졌느냐는 거죠. 삶을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을 중시하지요. 정직해야 하고 성실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이기 때문에, 나는 관점을 긍정적 사고에 두는 거죠.” ―어떤 지시를 했는데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부하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답답한 부하들을 어떻게 합니까? “말을 알아듣게 하면 되지요. 못 알아 듣게 지시했다면 지시한 사람도 잘못입니다. 사람은 다 다르기 때문에, 이 사람은 이렇게 알아듣고 저 사람은 저렇게 알아듣죠. 거기에 맞춰서 지시해야겠지요. 사람마다 한가지 장점은 가지고 있단 말입니다. 사람을 쓸 때 어떤 면을 쓰느냐가 문제겠죠. 이럴 때는 이런 분야의 사람을 쓰고, 저럴 때는 또 저런 분야의 사람을 쓰면 됩니다. 능력·무능력을 가지고 딱 잘라서 사람을 쓴다는 것은, 아주 단순한 시대의 사고죠. 지금처럼 복잡 다양한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사람의 장점을 찾아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는 사람은 날 좋아해, 솔직하니까” ―말씀은 그렇게 하는데, 일각에서는 이 전 시장이 ‘사람을 도구로만 쓴다’, ‘잘 이용해 놓고 버린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언론에 나오더라고요. 내가 볼 때는 정치적인 사람들이 그렇게 말을 하는 겁니다. 내가 기업에서 열심히 일할 때는 그렇게 말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정치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그럴 겁니다. 정치에 들어오니까 사람을 ‘도구’로 쓴다니 뭐 어쩌니 그러는데, 나는 정치 경력이 짧아서 도구로 쓸 시간도 없었어요.” ―인간 관계에서는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까? “마음이 맞으면 좋죠. 서로 통하는 것이 있으면 좋죠.” ―무엇을 하면 통합니까? “이야기 해보면 척 알죠. 그걸 아시잖아요? 나는 내 격에 맞는 사람들보다, 나와 격이 안 맞는 사람들 중에 더 친한 사람이 많거든요. 만나면 서로 마음이 편안한 사람이 있잖아요?” ―성격이 느긋한 편입니까? 빠른 편입니까? “약간 빠른 편일 것입니다. 기업 CEO를 하면서 좀 빠른 쪽으로 변한 것 같아요.” ―정치판에는 잘 적응됩니까? “지금부터 시작하는 거지요. 기존 정치에 적응하려는 노력은 별로 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정치를 해보려고 정치를 하는 거죠. 내가 기존 정치 스타일로 한다면 지금쯤 아마 모양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국민들이 기대하는 것도 그 쪽은 아닐 것입니다.” ―지금 재산이 약 290억 원으로 추정됩니다. 정당한 재산 축적을 했다고 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빈곤층으로서는 이를 보고 박탈감을 느끼지 않겠습니까? “대한민국도 부자가 존중 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반드시 돈 없는 사람이 존중 받고 돈 많은 사람이 비난 받는 시대보다는, 정당하게 돈을 벌었느냐 아니냐의 기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정당한 수단으로 부(富)를 이룬 것은 존중 받아야 합니다. 적게 가졌어도 정당한 부가 아닐 때는 지탄 받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거든요. 가난한 사람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교육의 기회를 줘서, 그들도 부자가 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줘야 한다는 겁니다. 부정적 생각은 맞지 않다고 봅니다.” ―이 전 시장의 언행에 대해 핵심을 잘 짚는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 반면, 경박하고 실수가 잦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는데. “그렇게 보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비교적 솔직해요. 솔직한 표현을 하는 거죠. 미사여구를 써서 가식적으로 하지 않아요. 하지만 내 언행에 대한 그런 지적은 신중하게 받아들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하고 싶은 욕구가 많죠? “답답한 사람에게는 설명을 많이 해 주려고 애를 쓰지요.” 그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해 있었다. ―제가 답답합니까? “아니 그런 게 아니고. 답답한 사람들에게는 설명을 많이 해 주려고 애를 쓴다는 겁니다. 나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설명을 길게 하지요. 나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굳이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고 다 통하니까, 말을 잘 안 하지요.” ―노무현 대통령의 언행에 대해서는 어떻게 봅니까? “세상이 다 아니까 새삼스럽게 표현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 분 캐릭터인데. 다만 대통령으로서 상대당 후보를 비난하는 것은, 대통령이 해야 할 말은 아니지요. 정동영·김근태씨는 자기 당(黨) 사람들이니까 그렇게 해도 될 지 모르나, 상대당 후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거지요. 그런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盧대통령과 비교, 신경 안써요” ―자신의 언행이 굉장히 솔직한 편이라고 했는데, 그런 면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닮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죠. 그렇게 나를 폄하하고 싶어하는 사람이지요. 그렇게 하고 싶어서 이야기를 하는 거죠. 정치적으로는 그렇게 말할 수가 있죠.” ―그렇게 비교되니 자존심이 상합니까? “대통령과 비교하는데 나쁠 것이야 없죠. 대통령이 된 사람이니까. 아무튼 그 이야기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경력 중에 현대건설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건설 현장은 남성의 세계이지요. 어떤 여성관(觀)을 갖고 있습니까? “나는 뭐, 우리 집엔 여자가 많습니다. 딸 셋에 우리 와이프, 또 우리 집안의 운전사도 여자니. 나는 페미니스트에 속하죠. 구분하자면 그 쪽에 속하죠.” ―‘페미니스트’라는 게 무슨 뜻입니까? “여성을 이해하고, 여성의 우위를 상당히 인정하는 쪽이지요.” ―양보도 하시고? “그럼요. 철저하지요.” ―현재 라이벌이 박근혜 전 대표인데, 여성과의 대결을 통해 당초 여성관이 조금 바뀌지 않았습니까? “그건 정치이고. 정치라는 것이 여성·남성 구분할 것이 없죠. 정치는 정치이니까. 상대방이 여성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능력 있는 지도자로 나는 평가를 하지요. 지금은 여자와 남자의 구분이 없는 경쟁시대가 왔죠.” 이후의 대목에서 약간의 언쟁이 있었다. 내가 “지금 경선룰로 계속 다투고 있다”고 말문을 꺼내는데, 그가 “그런 질문은 아예 꺼내지도 말라”고 중간에서 막았다. 내가 다시 “질문을 더 들어보고 판단하시라”고 했고, 그는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나왔다. 경선룰을 둘러싸고 그는 예민한 상태였다. 내가 “정말 그럴 작정이냐”고 물었고, 그는 “그러니 다른 것을 질문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생각하는 본인의 매력은?”이라는 질문으로 돌렸다. “솔직한 겁니다. 둘러서 이야기 하지 않고 바로 이야기 하지요. 그래서 나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나를 굉장히 좋아하죠. 내가 영화배우처럼 잘 생긴 것도 아닌데, 솔직하니까. 어떤 사람들은 정치를 하면서 너무 솔직한 게 단점이 될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솔직한 것이 장점이 된다고 생각해요.” ―대선 후보로서 자신의 약점을 뭐라고 생각합니까? “정치를 오래 안 해 본 것이 약점이지요. 정치라는 것이 참 험하고, 선의의 경쟁보다는 반대의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조금 실망스럽죠. 정치를 오래 안 해봤으니까 불리한 적도 많죠. 요즘 나를 놓고 여야의 모든 사람들이 공격을 많이 해와도, 그렇게 맞대응을 못 하죠. 불리한 점이 많죠.” ―본인이 약점이 많아서 그런 것 아닙니까? “강점이 많으니까 공격하겠지요. 약점이 많으면 나한테 달려들 이유가 뭐 있겠어요. 강점이 많으니까 나를 무너뜨려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겠어요? 정동영씨가 이야기 잘했던데, ‘경제 관련 외에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공격했지요.” ―유럽에서는 동성애가 합법입니다. 이 전 시장은 개신교 장로인데 어떤 견해입니까? “나는 기본적으로 반대죠. 내가 기독교 장로이기 이전에, 인간은 남녀가 결합해서 서로 사는 것이 정상이죠. 그래서 동성애는 반대입장이지요.” ―낙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기본적으로는 반대인데, 불가피한 경우가 있단 말이에요. 가령 아이가 세상에 불구로서 태어난다든지, 이런 불가피한 낙태는 용납이 될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낙태도 반대 입장이에요. 보수적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운하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었는데, 만약 다수 국민들이 반대해도 이를 밀고 나갈 건가요? “정책이란 반대가 없으면 그냥 가고, 반대가 있으면 설득을 시켜야 해요. 청계천 복원도 다수의 반대가 있었죠. 잘 몰라서 반대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국민들에게 설득을 시키고 정보를 제공하면 충분히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지요.” ―언론의 비판을 받을 때 기분이 어떻습니까? “기본적으로는 언론은 비판 기능을 가져야 하고, 이것이 없으면 언론이 될 수가 없지요. 기분 나쁜 것은 잠시이고, 사회발전 과정의 하나의 큰 축으로 봅니다.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거죠.” ―앞으로 대선과정에서 최대의 경쟁자는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전혀 모르겠어요. 현재로서는 예측이 힘들고 당분간 자기와의 싸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 자신이 국민들을 향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국민들이 시대에 필요로 하는 것을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론조사를 보면 지지율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데,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자신을 충분히 알리지 못해서 그런 겁니까? “지지율은 떨어질 수도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여론이 몇% 올라갔다 해서 중요한 게 아니라 중요한 것은 전체 흐름(트렌드)입니다. 여론조사가 과학적으로 되어있으니까, 국민이 나한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말씀을 잘 하시는데 언제 그렇게 형성된 것이지요? “내가 말을 잘한다고 생각해요? 나는 말 못한다고 사람들에게 만날 구박 받는데.” ―노래실력은 어떻습니까? “노래 실력은 보통이에요. 노래방을 가본 지 오래되었습니다. 노래방 스타일도 아니에요. 탁 트인 데서 노래하는 것을 좋아해요.” 참모들이 예정된 시간이 다 됐다고 알려왔다. “사진 좀 잘 찍어주시오” ―피곤하시죠? “나는 어려서부터 잠을 적게 잤어요. 습관일 거예요. 지금은 보통 자정 넘어서 잠이 들고 5시 전에 일어나요. 그 대신 깊이 자요. 그런데 내가 이 일을 남이 강요해서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죠. 내가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니까,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피곤을 덜 느끼죠. 나는 피로를 덜 느끼는데 나를 따라 다니는 사람들이 더 피곤을 느껴요. 나는 많은 사람들한테 자기가 하는 분야를 즐기라고 말하죠. 나는 직장생활을 힘들고 어렵게 했지만, 굉장히 즐기는 편이었어요. 항상 부하들에게 자기가 하는 일을 즐기라고 해왔습니다.” 인터뷰가 끝나자 사진기자의 주문에 맞춰 포즈를 취했다. “독자들이 기사는 잘 안 읽지만 사진은 보잖아요. 사진을 잘 찍어주시오”라면서.
  • (edaily리포트)삼성전자를 다시 생각한다
  • [이데일리 배장호기자] 코스피지수가 1600포인트를 넘었습니다. 증시 과열 경고 목소리가 여기 저기서 나오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지수는 계속 "Go! Go!"를 외칩니다. 그런데 시가총액 비중이 한때 20%를 넘었던 한국의 대표기업 삼성전자 주가는 영 시원치 않습니다. 삼성전자 주가가 저런데도 주가가 계속 오르는 게 신기할 지경이지만, 한편으론 시장이 혼돈 속으로 빠져드는게 아닌가 하는 공포감도 느끼게 됩니다. 시장부 배장호 기자의 얘기를 들어보시죠. "누가 한국 주식시장의 미래를 묻거든 눈을 들어 삼성전자(005930)를 보게 하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구절이지만 사실 이런 구절은 `빗댄` 표현에 불과하지 실제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최근 10여년간 한국 주식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해온 비중을 감안하면 차용된 이 문구를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nbsp;그런데 요즘 한국 주식시장에선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1~2년간 삼성전자의 주가 흐름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도저히 한국 주식시장의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선 오히려 `암울한 미래가 현실화될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오히려 심란해질 지경입니다. 그런데도 요즘 국내 주식시장은 너무 잘 나갑니다. 꿈처럼 느껴지던 주가 1600포인트가 현실이 됐고, 올 연말까지 2000포인트를 돌파할 것이란 벅찬 전망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습니다. 한때 삼성전자가 오르면 전체 코스피 지수가 오르고, 삼성전자가 내리면 지수도 따라 내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 오래된 얘기도 아닙니다. 적어도 최근 10년간은 그래 왔으니까요. 당시 삼성전자란 존재는 한국 주식시장과 동의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삼성전자는 한국 주식시장에서 과연 어떤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을까요? 결코 가볍게 접근할 질문이 아닙니다. 향후 한국 주식시장의 미래를 점칠 수 있는 중요한 의미가 담긴 `화두`가 바로 이 질문이라고 기자는 생각합니다. 며칠 전 기자는 1조원이 넘는 국내 주식형펀드를 운용하는 한 자산운용사의 임원(CIO)으로부터 삼성전자에 관한 심각한 고민을 들었습니다. "요즘처럼 펀드 운용하기 어려운 때는 없었다. 옛날엔 삼성전자 주식을 기본으로 깔고 난 후 추가 수익을 위해 다른 괜찮은 종목을 발굴하면 됐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기 힘들다." 어떤 펀드매니저는 이런 말도 하더군요. "만약 최근 2~3년 중 삼성전자를 쳐다보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펀드 성과를 냈을텐데, 삼성전자가 원망스럽다". 한국 주식시장의 간판 주식 삼성전자의 위상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입니다. 도대체 삼성전자는 어쩌다가 펀드매니저들로부터 이런 홀대를 받는 처지가 됐을까요. 한달여 전 삼성그룹의 총수인 이건희 회장이 `5년내 위기론`을 언급하자 온 나라가 시끌시끌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이 회장이 말한 위기론의 주체는 한국 경제가 아닌 삼성전자를 가리킨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삼성전자가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여전히 절대적이란 점을 상기하면 `삼성전자 위기=한국경제 위기`로 봐도 틀린 말은 아니겠죠. 이 위기의 실체는 `기술기업의 성장 모멘텀 한계`에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삼성전자의 메모리 확장 기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큼 대단합니다. 반도체 메모리 용량이 매년 두배씩 증가한다는 `황의 법칙`은 이러한 삼성전자의 기술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란데 있습니다. 애니콜 신화를 흔들었던 노키아와 모토롤라의&nbsp;공세가 주는 교훈은 "기술 진보가 언제나 수익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최근 몇년새 메모리 반도체 집적 능력은 수십 수백배 확장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메모리 칩 가격이 수십 수백배 오르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나은 제품이 나올수록 이전 제품의 가격 하락 속도는 더 빨랐습니다. 심지어 최근 방문한 중국에서 기자가 접한 소비자들도 이렇게 말하더군요. "핸드폰 그거 뭐 최신이라고 해봐야 별 소용 없더라. 지금 새 제품이라고 해봐야 그 다음 제품 나오면 이내 가격이 절반으로 떨어지더라. 핸드폰 카메라 화소가 100만 화소면 어떻고 200만 화소면 또 어떠냐. 그냥 통화만 잘 되면 되지.." 한때 우리나라에도 첨단제품만을 쫓아다니며 소비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IT 후발 소비국인 중국의 소비자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빨리 이런게 부질없단(?)&nbsp;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니 `첨단` 전략을 멈출 수 없는 삼성전자같은 IT기업들은 점점 더 벌어먹을 일이 막막해지는&nbsp;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투자의 관점에서는 좀 다르게 접근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그래도 현재의 삼성전자 주가는 싸다"라는 식의 논리죠. 이 논리대로라면 지금 삼성전자를 사는 것이 맞을 겁니다. 하지만 속성상 성장성 프리미엄으로 평가받는 삼성전자 같은 IT기업이 성장 모멘텀에 한계를 느끼는 상황에서 가격 논리로 접근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지금 펀드매니저들이 삼성전자에 대해 고민하는 것도 바로 이런 겁니다. 옛날같진 않지만 삼성전자는 여전히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고, 수익 창출력 대비 주가도 싼 편이지만 이것만으로 주식을 사기는 어렵다는 것이죠. 앞서 지적한 `기술기업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보다 근원적인 방법으로 기자는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의 구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과거 DOS에서 윈도로 컴퓨터 운영체제를 바꿔 새 버전을 출시할 때마다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확보해 온 `마이크로소프트`나, 미래 에너지 문제를 미리 예견하고 양산차보다는 하이브리드차나 수소차 개발에 박차를 가해 온 `도요타`와 같은 기업이야말로 스스로 성장 패러다임을 창출할 수 있는 진정한 글로벌 기업이 아니겠습니까. 과연 지금의 삼성전자가 이들 기업처럼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기업인지 삼성전자 스스로가 고민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점점 한계산업으로 바뀌고 있는 IT산업 환경 하에서 삼성전자가 글로벌 기업으로 여전히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금 삼성전자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반도체 메모리 용량을 1기가 더 확장하고, LCD판넬 크기를 1센티미터 더 늘리는게 과연 해답이 될 수 있을까요. 이미 투자자들은 삼성전자를 "한국 증시의 대표주식으로 봐야 할지, 그저 시가총액이 큰 주식의 하나에 불과하다고 봐야 하는지" 냉정히 따지고 있지 않습니까.
2007.05.11 I 배장호 기자
(SPN)가수 비 당분간 어떤회사와도 계약맺지 않는다
  • (SPN)가수 비 당분간 어떤회사와도 계약맺지 않는다
  • [이데일리 SPN 윤경철기자] “당분간 어떤 회사와도 계약을 맺지 않겠다.” 10일 현 소속사인 JYP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이 만료되는 가수 비가 재계약을 하거나 새로운 소속사를 찾지 않고 당분간 홀로 지낸다. (5월1일자 이데일리SPN&nbsp;기사&nbsp;참조) 또한 요즘&nbsp;증권가를 뜨겁게 달고 있는 코스닥 회사와의 계약도 6월말까지는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비의 한 측근은 9일 “비의 계약을 놓고 코스닥 시장이 들썩이고 있지만 계약에 관해 구체화 된 곳은 한 곳도 없다”면서 “10일 계약이 만료된후 월드투어가 끝나는 6월까지는 다른 회사와 계약없이 활동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비는 이런 뜻을 담은 보도자료를 계약만료일에 맞춰 내보낼 예정이다. 비가 계약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던 비가 갑작스럽게 이런&nbsp;입장을 밝히는 것은 최근 자신을 둘러싼 증권가의 소문이 과열현상을 보이기&nbsp;때문이다.&nbsp;&nbsp;현재 증시에서는&nbsp;비의 영입을 공식화했거나 아니면 비의 영입설이 나돈 회사의 주가가 다음날&nbsp;어김없이 가격 폭등이라는 기현상을 보였다. 비의 측근은 “비는 자신의 거취를&nbsp;둘러쌓고 발생하는&nbsp;이런 모습에 대해 부담스러워하고 있다”면서 “그는 돈보다 자신의 꿈을 보다 편하게 이룰수 있는 곳에서 음악활동을 계속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월드투어중인 비는 6월15일 애틀랜타 필립 아레나, 23일 뉴욕 매디슨 스퀘어가든, 27일 샌프란시스코 카우 팰리스, 30일 L.A 스테이플 센터를 돌며 미국 지역 투어 일정을 소화한다.
2007.05.09 I 윤경철 기자
  • 노무현-김근태·정동영, 완전 결별로 치닫는다
  • [이데일리 문주용기자] 노무현 대통령과 김근태·정동영 열린우리당 전의장이 결별이라는 `돌아올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있다. 노 대통령 측은 `구태 정치`, `살모사 정치`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써가며 두사람을 비난했다. 김·정 전의장도 `분열정치`, `편가르기 정치`라며 사생결단에 나섰다. 한때 참여정부를 탄생시키고, 한 대통령 아래 장관까지 지냈던 정치적 동지들이 5년만에 서로에게 분노하며 결별 수순을 밟고 있다. 김근태 "노무현 지지자 피눈물을 봐라" 전날 `정치인 노무현의 좌절`이라는 글을 통해 `수모`을 겪은 김, 정 두 전직의장은 8일 기자회견과 반박글 게재를 통해 노 대통령을 거칠게 비판했다. 김근태 전의장은 "노 대통령은 외부선장론을 거론해 당내 예비후보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했고, 고건·정운찬씨를 품평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낙마시켰는데 이것이야 말로 구태정치"라고 비판했다. 또 "당 해체를 주장하려면 나가라고 하는데, 누가 누구보고 나가라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며 "당적이 없는 대통령이 자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의장은 "새로운 당을 만들려는 것을 지역주의라 비판하지만 나는 단 한번도 지역주의와 인연을 맺어본 적이 없다"며 "오히려 노 대통령이야말로 일관되게 특정 지역에 매달려온 분 아니냐"고 노 대통령을 흔들었다. 또 "노 대통령은 편지를 통해 정치인의 꿈을 생각하기에 앞서 노무현을 찍은 수많은 가슴의 피눈물부터 보고 중산층과 서민 가슴의 대못을 생각하길 바란다"고도 했다. 이어 "2002년 대한민국의 수 많은 이들을 열광케 했던 노무현 정치는 빛을 바랬고 분파주의, 분열주의의 껍데기만 남았다"고도 말했다. 정동영 "자기만이 옳다는 생각 버려라"정동영 전의장은 홈페이지에 `편가르기 정치와는 결별해야 합니다`는 제목의 글로 반박했다. 정 전의장은 "무엇이 양심의 명령인가. 이념이 다른 정당과의 대연정을 모색하는 것이, 통합을 가로막는 편가르기의 정치가 양심의 명령인가. 지지 그룹의 목소리에,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막는 것이 양심의 명령에 따른 것인가. 정의는 독점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통합의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기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배제의 정치, 편가르기의 정치를 넘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정 전의장은 "열린우리당이 더이상 원칙을 달성할 수 없는 정당임을 국민이 심판한 이상, 되풀이해 `원칙`만을 강조하는 것은 `그들만`의 원칙이며, `그들만의` 개혁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반발이 증폭되는 가운데 노 대통령 측은 일단 차분해졌다. 노 대통령의 편지정치가 언론에 의해 다소 잘못 전달되고 있다며, 노 대통령 의중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촉구했다. "통합 반대가 아니라 질서있는 통합이 옳다"청와대는 `통합반대가 아니라 질서있는 통합`이라는 청와대브리핑을 통해 "대통령은 통합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무책임하고 무원칙하게 당으로부터 해체하자는 주장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발언을 회수하진 않았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심각하게 우려하는 것은 무원칙하고 무책임한 당의 해체나 탈당"이라며 "당 지도부와 다수 의원들이 사력을 다해 질서있는 통합을 추진하는 마당에, 무작정 당부터 해체하거나 탈당하겠다는 것은 개인의 야심을 위해 당을 흔든다는 것이라고 판단한다"고 지적했다. 김, 정 前의장의 행동을 `개인 야심`으로 규정했다. 노대통령과 정동영 전의장은 지난 2002년 대통령선거 때부터 밀월관계를 맺은 사이다. 정 전의장이 `노무현 대통령후보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집권 1등공신이 됐다. 2004년 정 전의장은 통일부 장관에 발탁되면서 미래 대통령 후보로서 행정 경험을 쌓도록 노대통령이 배려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과 김근태 전의장도 애증이 교차한 관계다. 한때 "평소에 연모해왔다"(노 대통령이 김 전 의장에게), "우리 시대의 정치적 희망"(김 전 의장이 노 대통령에게)이라며 서로를 치켜세우던 관계는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개혁후보 단일화 방안을 둘러싸고 갈등관계로 바뀌었다. 노 대통령이 대선후보로 확정된 뒤에도 김 전 의장은 노 대통령을 지원하지 않아 불편한 관계가 본격화됐다. 2004년 김 전 의장이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됐지만, 그 해 노 대통령이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에 반대하자 김 전 의장은 "계급장 떼고 치열하게 논쟁해보자"고 말해 서로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최근엔 한·미FTA 추진을 놓고 김 전 의장이 "FTA를 하려거든 김근태를 밟고 가라"고 했다. 한때 정치적 동지로서 후원하고, 경쟁하고, 갈등하던 이들 세 사람. 차기 정권 창출이라는 새로운 목표앞에서는 더이상 관계를 이어갈 구심력이 없다. 이번에는 상대의 기를 확실히 꺾지 않으면, 자신도 살 수 없음을 인지했다.
2007.05.08 I 문주용 기자
  • ''범여권 제3후보'' 문국현, 독자세력화 나서나
  • [노컷뉴스 제공] 범여권에서 포스트 정운찬 카드로 급부상하고 있는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이 시민사회단체 등과 함께 독자세력화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현재로서는 범여권과는 함께하지 않겠다며, 기존 정치권과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문 사장을 '대선주자 연석회의'에 참여할 주요 외부 인사로 꼽고 있는 여권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국현 사장을 정치적으로 돕고 있는 최열 환경재단 대표는 CBS와의 통화에서 "지금 상황에서 문 사장이 정치권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고 일축했다. 최열 대표는 다만 "민주화운동을 한 인사들과 CEO, 학자, 변호사 등 전문가 그룹이 신당창당을 추진하고, 그 과정에서 (문 사장이 대선에 나서는 방안을) 동시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국현 사장을 지원하고 있는 다른 인사도 "문 사장은 지금 새 정치세력을 만드는데 역할을 하려 한다"면서 "구체적인 방식은 신당창당이 될 것이고, 구성원들에게서 당신이 나가 뛰라는 요구가 있으면 'No'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 인사는 또 "문 사장이 오히려 기존 정치권에 편입되면 非정치인으로 정치권에서 검증 받은 적이 없다는 약점이 보완되기보다 중심을 잃게 될 것"이라며 잇따른 정치권의 러브콜을 일축했다. ◇범여권, '통합' 동력상실 우려 범여권의 제3후보로 거론되는 문 사장이 기존 정치권에 참여하지 않고 독자세력을 추진하면 정운찬 전 총장의 대안으로 문 사장을 거론해 온 범여권은 김이 빠지게 된다. 현재 범여권이 추진하는 '대선주자 연석회의'에 손학규 전 지사와 문국현 사장 등 외부인사가 빠지고 기존 정치인들만 참여하면 연석회의는 추진 동력을 상당 부분 상실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범여권에서는 문 사장의 결단을 촉구하는 주장이 계속 나오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전략통 이목희 의원은 "문제는 문국현 사장의 낮은 인지도"라며 "문 사장이 시민단체 세력과 함께 하다고 해서 인지도와 지지도가 오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 의원은 이어 "정운찬 전 총장도 (범여권으로부터) 훨씬 높은 지지를 받았지만 인지도와 지지율이 오르지 않았다"며 "인지도가 오르지 않으면 독자신당 창당은 한 여름 밤의 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생정치 모임의 정성호 의원도 "밖에서 시만사회단체 세력과 함께 한다고 해도 정치는 결국 정치인들이 돕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CBS정치부 장윤미 기자 jym@cbs.co.kr
  • 디지털 CEO `30년 전쟁`..스티브 잡스 VS 빌게이츠
  • [조선일보 제공] 현재 세계 최고의 경영자로 추앙받는 사람은 단연 스티브 잡스(Jobs·52) 미국 애플 회장 겸 CEO(최고경영자)다. 지난 1976년 애플을 창업한 그는 PC 시대를 열어젖혔고, 이제는 컴퓨터·음악·영화 업계를 아우르는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다. 창조적 아이디어로 끊임 없이 혁신을 추구하는 잡스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갈수록 빛을 발하고 있다.하지만 그런 잡스 회장이 반드시 넘어서고자 하는 필생의 라이벌이 있다. 30여년간 경쟁해온 동갑내기 빌 게이츠(Gates·52)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이다. 잡스 회장의 주변 인물들은 “잡스가 항상 콤플렉스를 느끼는 인물이 바로 빌 게이츠”라며 “잡스가 게이츠를 이기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방법도 가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두 사람의 불꽃 튀는 대결은 올해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시작됐다. 빌 게이츠는 연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전시회에서 가정용 홈서버 운영시스템을 발표했다. PC와 MS의 고성능 게임기 엑스박스360을 이용해 TV·오디오·비디오 등을 온라인으로 제어하는 시스템이다. 빌 게이츠 MS 회장은 “앞으로 가정 내 모든 디지털 미디어에 담긴 콘텐트와 정보가 홈서버 시스템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로부터 이틀 뒤. 스티브 잡스 애플 회장은 ‘애플TV’란 가정용 멀티미디어 셋톱박스를 소개하며 MS와 정면승부를 선언했다. 애플TV는 PC에 저장된 영화나 동영상 프로그램을 무선으로 전송받아 TV화면에서 볼 수 있게 해주는 장치다. 대용량 하드디스크를 내장해 50시간 분량의 동영상을 저장할 수 있다. 애플은 리모컨으로 음악·DVD영화·사진·TV프로그램 등을 재생하고 저장할 수 있는 PC도 출시했다.잡스 회장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그는 “첨단 기술을 평범한 사람도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만들려면 소프트웨어가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의 소프트웨어 왕국인 MS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실제로 애플은 파워포인트·워드 같은 MS의 대표적인 사무용 프로그램에 대항할 소프트웨어를 차례로 내놓고 있다.빌 게이츠도 애플의 시장을 빼앗기 위해 대대적인 물량 공세를 취하고 있다. 애플의 잡스 회장이 개척한 디지털 음악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MS는 애플의 세계적인 히트작 아이팟(iPod)에 대항하기 위해 작년 말 MP3플레이어 준(Zune)를 내놓았다. 올 6월까지 준의 판매량은 100만대로 예상된다. 이미 1억대가 팔린 아이팟에 비하면 아직은 미미한 실적이다.하지만 MS는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메이저 음반업체와 제휴를 확대하고 있다. 애플의 아이튠스 뮤직스토어와 비슷한 디지털 음악판매 사이트도 개설했다. 잡스 회장은 “준은 우리의 걱정거리가 못 된다”고 혹평했다. 하지만 그는 충분히 의식하고 있다. MS에게는 애플이 갖지 못한 고성능 게임기 ‘엑스박스 360’이 있다. 이 제품은 2005년 11월 출시 이후 1200만대가 팔렸다. MS는 엑스박스를 단순한 게임기가 아니라 가정용 TV·비디오·오디오 등을 통합 조정하는 홈서버 시스템의 핵심 기기로 발전시킬 계획이다.애플의 잡스 회장은 게임기 대신 휴대폰 시장에 뛰어들었다. 잡스는 오는 6월 애플의 첫 휴대폰 ‘아이폰’을 내놓는다. 그는 2008년에 아이폰 1000만대를 팔겠다고 공언, 노키아·모토로라·삼성·LG 등 기존 휴대폰 업체를 긴장시키고 있다.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는 둘 다 대학을 중퇴하고 20대 초반에 벤처 회사를 창업해 억만장자가 됐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인생역정이나 경영 스타일은 판이하게 다르다.잡스는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친부모를 알지 못한 채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가정에 입양됐다. 어렵게 학비를 모아 대학에 진학했지만, 동양철학에 심취해 한 학기만에 학교를 때려치운다. 맨발 차림에 과일 다이어트를 종교처럼 신봉하고, 샤워를 거부해 항상 몸에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괴짜였다. 70년대 말과 80년대 초반 개인용 컴퓨터로 세상을 지배했지만, 곧 MS와 IBM이 공동 개발한 PC에 밀려 선두자리를 내준다. 독선적인 행동을 일삼다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다 가까스로 복귀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성 체제에 얽매이지 않고, 이루고자 하는 꿈에 매달리는 잡스의 집중력과 추진력은 기업 경영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아이팟과 아이맥 등은 단순한 디자인과 혁신적인 기능으로 열렬한 추종자를 만들어냈다. 그는 ‘경제에 디자인과 창의성을 도입한 인물’(비즈니스위크)로 추앙받고 있다. 그는 단순히 제품을 만들어 파는 사업가가 아니다. 세계인의 라이프스타일(생활양식)과 문화 자체를 바꾼 디지털 혁명가인 것이다.이에 비해 빌 게이츠는 부유한 변호사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움을 모르고 자라났다. 하버드대에 진학한 그는 PC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간파, 1975년 학교를 그만 두고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했다. 잡스가 소비자 편의성과 재미를 추구한다면 빌 게이츠는 실용성을 앞세웠다. PC 운영체제 도스(DOS)·윈도와 워드·엑셀 등 오피스 프로그램은 전세계 사무실의 필수품이 됐다.창조에 승부를 건 스티브 잡스와 달리 빌 게이츠는 장사가 된다면 모방도 서슴지 않았다. 마우스를 눌러서 프로그램을 실행시키는 그래픽 형태의 PC 운영체제 윈도는 사실상 애플 제품을 그대로 베낀 것이었다. 이때문에 각종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빌 게이츠는 명석한 두뇌만큼이나 뛰어난 사업수완을 발휘해 게임·콘텐트 등 다양한 분야로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그는 스티브 발머에게 CEO 자리를 물려주고 나서도 여전히 MS의 핵심이자 세계 경제계의 거물로 활동하고 있다. 올 1분기에 MS와 애플은 모두 전문가의 예상을 웃도는 막대한 실적을 거뒀다. 잡스 회장과 애플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는 중이다. 올 1분기에 애플은 7억7000만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88%가 증가한 것이다. 매출도 21% 늘어난 52억6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애플 주가는 사상 최초로 100달러를 넘어섰다. 애플은 최근 1년 사이에 주가가 40% 이상 상승했다.애플의 최대 효자상품은 역시 MP3플레이어 아이팟. 애플은 1분기에 아이팟을 총 1050만대 판매했다. 지난 해 같은 기간 판매량보다 24% 증가했다. 전세계 누적 판매량은 1억대를 넘어섰다.2003년 개설한 디지털 뮤직스토어 ‘아이튠스’도 지금까지 총 25억곡의 노래를 팔았다. 애플의 음악관련 사업은 회사 전체 매출의 44%에 달한다. 덩달아 아이맥 등 컴퓨터 판매도 늘어나고 있다. 애플의 CFO(최고재무책임자) 피터 오펜하이머는 “애플 역사상 가장 수익성이 좋은 시기”라고 말했다.잡스는 최근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의 부자’ 순위에서 57억달러의 재산으로 132위를 차지했다. 애플 주가가 계속 상승하고 있어 그의 재산도 급속히 불어나고 있다. ‘토이스토리’ ‘니모를 찾아서’를 만든, 잡스의 애니메이션 회사 픽사가 전통의 디즈니와 합병하면서 그는 디즈니의 최대 주주이자 이사회 멤버가 됐다.MS도 여전히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회사라는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연초에 출시된 PC 운영체제(OS) 윈도비스타의 판매호조로 MS의 올 1분기 순이익은 49억3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순이익이 65% 증가한 것이다.매출도 32% 증가한 144억달러를 기록했다. 매출 대비 순이익률은 34.2%로, 1000원을 팔면 342원의 이익을 올린다는 뜻이다. 애플보다 매출은 약 2.7배, 순이익은 6.4배 가량 많은 수치다.덕택에 빌 게이츠는 세계 최고의 부자 자리를 13년째 유지하고 있다. 그의 재산은 작년 한해 12% 증가해 560억달러에 달했다. 잡스보다 약 10배가 많은 액수다.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과연 빌 게이츠의 MS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남부 하버드` 명성 옛말..듀크대 이미지 `나락`
  • `남부 하버드` 명성 옛말..듀크대 이미지 `나락`
  • [이데일리 김윤경기자] `남부의 하버드`로 지칭되곤 했던 듀크대의 위상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 듀크대 캠퍼스노스캐롤라이나주 더램(Durham)에 위치한 듀크대는 지원자 수가 줄면서 올해 학부 1학년이 1.1% 감소했다. 8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US 뉴스 & 월드 리포트 선정 10위권 대학 내에서 순위가 연속해서 밀리고 있으며, 프린스턴 리뷰가 조사하는 학생들과 부모가 선호하는 `꿈의 대학(dream schools)` 순위에선 아예 10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수모를 겪고 있다. 최근엔 경영학 석사(MBA) 과정에 재학중인 34명의 학생들이 이른바&nbsp;`컨닝`(cheating)을 해 징계를 받은 사실도 드러났고, 지난 해엔 세 명의 라크로스 선수가&nbsp;성폭행 혐의로 기소돼 학교 이름에 먹칠을 했다. ◇과거 명성은 뒤로..지원자 줄고 각종 스캔들 악재 존 F. 버니스 듀크대 수석 부사장은 "듀크대는 세계적인 대학으로서 꾸준히 자리매김하고 있다"면서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하고 재능을 키우도록 지원하며 헌신적인 교수진과 새롭고 혁신적인 프로그램들을 전개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 마케팅업체 심슨스카보로 최고경영자(CEO)인 크리스토퍼 심슨은 "듀크대의 높았던 명성의 빛이 바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듀크대 학생들의 `무절제한 문화`가 문제점으로 떠오르고 음주 문화가 성행하면서 학생들이 본연의 자세인 학업에 등한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노스캐롤라이나주 법은 21세가 될 때까지 음주를 금하고 있으나 지난해 듀크대 학생 가운데 37명은 음주와 관련된 병으로 치료받았다고 통신은 전했다. 리차드 H. 브로드헤드&nbsp;듀크대 총장은&nbsp;캠퍼스 문화 개선을 위한 위원회를 발족했다. 위원회가 조사해 본 결과 듀크대 재학생들의 20%가 &nbsp;한주 최소 20시간 공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는 같은 수준의 학교&nbsp;학생들이 공부하는&nbsp;평균 시간 29시간에 크게&nbsp;못미쳤다. MBA 과정인 후쿠아(Fuqua) 스쿨 학생들의 컨닝 사태로 15명은 1년간 학업 정지 처분을 받아 망신살이 뻗쳤다.&nbsp;&nbsp;남학생 보딩스쿨인 몽고메리 벨 아카데미의 디렉터인 테리 그리핀은 "듀크대의 이미지는&nbsp;일부 학생들의 의해 망쳐지고 있다"고 지적했다.&nbsp;&nbsp;◇졸업생들까지 이미지 개선 나서&nbsp;&nbsp;▲ 브로드헤드 듀크대 총장급기야 졸업생들이&nbsp;학교 이미지&nbsp;개선과 지원자 모집에&nbsp;더욱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nbsp;존 J. 맥 모간스탠리 최고경영자(CEO)와 릭&nbsp;왜고너 제너럴모터스(GM) CEO,&nbsp;마이크로소프트(MS)&nbsp;빌 게이츠의 부인인 멜린다 프렌치 게이츠 등이 팔걷고 나섰다. &nbsp;애틀랜타주 변호사인 존 C.&nbsp;예이츠는 올해 법학대학원에 장학금을 평소보다 더 많이 전달했다. &nbsp;학교 위원회는 문화 개선을 위해 특히 기숙사내 남학생들의 개인 사교클럽(fraternity)을 금지하는 안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nbsp;&nbsp;&nbsp;자신이 가고싶은 대학 명단에서 듀크대를 지웠다는 한 학생은 "듀크대는 `파티 대학`으로 알려져 있고, 나는 파티를 즐기는 타입은 아니다"라며 "많은 부모와 학생들이 듀크대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에모리대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7.05.03 I 김윤경 기자
(윤경철의 스타성공수첩) 보아
  • (윤경철의 스타성공수첩) 보아
  • ▲ 보아[이데일리 윤경철기자] 대부분 사람들은 스타의 성공은 우연하게 찾아든 행운으로 여긴다. 하지만 성공한 스타들에게는 꿈을&nbsp;이루기 위한 자신만의&nbsp;원칙과 전략이 있고,&nbsp;이를&nbsp;실천에 옮기는 의지와 용기가 있다.'스타성공수첩'에서는&nbsp;정상의 위치에 올라선 스타들이&nbsp;가진 성공의 원칙과 전략, 의지와 용기를 알아본다◇ 3만(자만, 교만, 오만)을 버려라연예계에는&nbsp;한순간 인기를 누렸다가 이내&nbsp;사라지는 이른바 '반짝스타'&nbsp;들이 있다.&nbsp;한 때는 오랜 세월 연예계를 호령할 것 같던 인기를 누렸지만, 지금은 한참 생각해 본 후에야 '아 그런 사람도 있었지'라고&nbsp;얼굴을 떠올리는 그런 흘러간 인물들 말이다.&nbsp;스타로 단명한 데는 저마다 이유가 있겠지만 연예 관계자들은 공통적인 문제점으로&nbsp;‘잘난척’ 을 꼽는다.&nbsp;‘잘난척’이 연예계에서 독약과 같은 이유는 간단한다. 흔히 연예계에서 살아남는 것은 폭풍 부는 바다에 구명대 하나 들고 떠 있는 것과 같다고 한다. 그만큼 '레드 오션 중의 레드 오션'이다. &nbsp;&nbsp;장래성이 조금만&nbsp;보여도&nbsp;온갖 소문과 근거없는&nbsp;비난에 시달리기 일쑤 인데 평소 ‘잘난척’을 한 연예인들의 경우 이런 비난과 비방이 설득력을 갖기 때문이다. 10대 초반에 데뷔한&nbsp;보아가 지금까지 변함없는 인기를 누리는&nbsp;것도 음악적 재능과 함께 실력외적인 요인도 좌우했다는&nbsp;말은 그래서&nbsp;설득력을 갖는다. 보아에게는 무엇보다&nbsp;3만이 없다. 연예계에서 3만은 '자만 교만 오만'을 말한다.&nbsp;일부 연예인들은 조금만 뜨면 교만해진다. 자신이 인기가 있는 것 같으면 비슷한 또는 자기보다 더 인기 높은 다른&nbsp;연예인과 비교해&nbsp;소속사에 '타고 다니는 차를 더 크고 좋은 것으로&nbsp;바꿔 달라'. '숙소를&nbsp;좋은 데로 옮겨&nbsp;달라' 등 다양한 요구를 한다. &nbsp;한 끼 밥을 먹을 때도 수준을 높여달라고 하고 다른 사람과 다른 스타일을 요구하기가 일수다.&nbsp;하지만 그런 면에서 &nbsp;보아는 참 무덤덤하다. &nbsp;월드 스타란 호칭이 따라다닌 오래됐지만&nbsp;지금도&nbsp;그녀는&nbsp;햄버거나 떡볶이&nbsp;하나를 먹을때도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뭐, 한 두번 그러면 '남의 눈 의식한 가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녀를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들은 행동 하나하나가 얼마나 진심어린 지를 알 수 있다. 사실 스타가 교만해지는 것은 본인의 의지 보다는 주위의 영향이 더 크다. 데뷔 전 "겸손하자"를&nbsp;외치던 사람들도&nbsp;인기를 얻은 뒤&nbsp;주위로부터 "너가 최고다"라고 떠받들여지다 보면&nbsp;자연스럽게&nbsp;목에 힘이 들어간다.&nbsp;보아를 잘 아는 스태프들은 “사실 그녀가&nbsp;교만하다면&nbsp;주변 사람들이 무척 힘들어 할텐데 실제 만나보면 배워야 할 점이 무척 많은 친구”라면서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사려가 무척 깊다”고 전했다. 보아의 또다른 강점은 주위에 감사할 줄 안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것을&nbsp;다른 사람에게 너무 잘 줘서&nbsp;일명 ‘퍼순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nbsp;&nbsp;대개 자신이 필요없는 것을 생색내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주는데 반해 그녀는 정말 필요한 것조차도 주위사람에게 줘 뒤늦게 필요한 것을 깨닫고 다시 살 정도다. 사은품으로 들어온 비싼 화장품을 코디네이터나 주위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부러운 시선으로 쳐다보면 아낌없이 준다. 그것도 “나 예전에 받아서 다 쓰지 못한다”는 완곡한 표현을 써가면서 말이다. 그녀와&nbsp;고생을 같이&nbsp;한 매니저도&nbsp;데뷔 초부터&nbsp;열쇠고리, 옷, 명품 등을&nbsp;종종 선물받았았다.&nbsp;그는&nbsp;이런 보아의 마음 씀씀이에 대해&nbsp;“얼마 전 차를 사려고 했을때 보아가 수백만원을&nbsp;도와주겠다고 나서 깜짝 놀랐다”면서 “회사 방침이 안주고 안받는 것이라 정중히 거절했지만 같은 식구처러 챙겨주는 보아의 마음만큼은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보아가 돈을 많이 벌어서 일까. 한해 수십억원을 버는 보아지만 그녀의 소비는 데뷔 때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돈을 많이 벌어서라기 보다는 그녀 특유의 베풀기를 즐기는 마음가짐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듯 싶다. &nbsp;톱스타인 A씨의 경우 역시 한해 수십억원을 벌지만 주위에 베풀기는 커녕 수익배분 때 10-20원을 따질 정도로 속이 좁아 종종 연예 관계자들 입방아에 오르곤 한다. 보아를 발굴하고 길러낸 SM의 이수만 프로듀서는 "스타를 만드는&nbsp;진짜 주역들은&nbsp;주위에 있는 스태프들"이라고 강조하며 스태프들에게 남다른 관심과 사랑을 기울여 줄 것을 데뷔 시절부터 그녀에게&nbsp;여러 번&nbsp;강조했다고 한다. &nbsp;어쩌면 보아는&nbsp;스타를 꿈꾸던 어린 시절부터 늘 들어온 가르침을 지금 실천으로 옮기고 있는 것이다. 보아가 남다르다는 것, 그녀의 성공이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점을 두고 하는 말이다.
2007.05.02 I 윤경철 기자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