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검색결과 5,211건
- “일할 사람 없어서”…日, 상반기 기업 도산 11년 만에 최다
-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올해 상반기(1~6월) 일본 내 기업 도산 건수가 5000건에 육박하며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10곳 중 9곳이 직원 10명 미만의 영세 기업이었다. 또한 인력난에 따른 도산 건수가 사상 최대 규모로, 영세·중소기업의 경영 압박이 심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사진=AFP)8일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일본에서 부채 1000만엔(약 9360만원) 이상 기업들의 도산 건수는 4990건으로 전년 동기대비 1% 증가했다. 이는 2014년(5073건) 이후 11년 만에 최고치로, 3년 연속 4000건대를 유지했다. 도산 기업들의 총 부채액은 6902억엔(약 6조 4640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4% 감소했다. 주목할만한 점은 전체 도산 기업 가운데 77%가 부채 1억엔(약 9억 3600만원) 미만의 소규모 업체였다는 점이다. 특히 종업원 10명 미만인 기업이 전체 도산의 90%를 차지했다. 소규모·영세 기업의 경영 취약성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진단이다.도산 사유로는 인력난이 172건으로 상반기 기준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2014년엔 인력난으로 인한 도산이 26건(0.5%)에 불과했으나, 지난해부터 100건을 넘어섰다. 인력 유출은 생산 기회 상실로 이어져 도산 증가에도 직접적으로 작용했다. 닛케이는 “일본 내 대기업이 높은 임금 인상률을 유지하는 반면, 중소기업은 방어적 임금 인상조차 버거운 상황”이라며 “인력 유출과 인건비 부담이 중소기업 경영을 압박하고 있다”고 짚었다. 인력난은 운송업·인력파견 등 노동집약형 산업을 집중 타격했다. 도쿄에 본사를 둔 인력파견업체 오피이씨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건설현장 작업이 크게 위축된 이후 인력난이 지속되며 경영이 악화, 지난 5월 재생절차에 들어갔다. 라멘 체인 마루이와산업(아이치현)은 식자재·인건비 상승분을 가격에 반영하지 못해 1억 6200만엔의 부채를 안고 올해 4월 파산 절차를 개시했다. 특히 디지털 투자 흐름과 맞물려 영세·중소기업 피해를 더욱 키웠다. 제국데이터뱅크에 따르면 올해 디지털 투자 계획이 있는 중소기업 비율은 29%로, 대기업(48%)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중소기업은 투자 여력이 작은 만큼 더 많은 인재를 확보해야 하지만, 대기업에 비해 임금을 올려줄 여유가 없어 도산 리스크가 높아졌다는 분석이다.소매·서비스업도 물가 상승 장기화 및 이에 따른 절약형 소비 분위기 확산 등으로 경영난이 심화하고 있다. 무이자·무담보 융자를 받은 뒤 도산한 사례는 210건으로 3년 만에 300건 아래로 떨어졌다. 하지만 ‘코로나 차환 보증’을 이용한 기업 가운데 80%가 2년 내 상환 유예가 종료된다. 즉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는 상환 만기 도래 기업이 급증하기 때문에 도산 건수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도쿄상공리서치의 사카타 요시히로 과장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시행됐던) 각종 금융지원이 종료되면서 도산 건수도 정상 수준으로 복귀(증가)하고 있다”며 “연간 도산 건수가 1만건을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닛케이는 “대기업 중심의 임금 인상, 고물가, 디지털 투자 격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구조적 위기가 가속화하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최근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 등 무역환경 변화가 변수로 떠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8월 1일부터 일본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했다. 노무라증권은 25% 관세가 적용될 경우 일본 기업들의 수익이 3~4% 추가 하락할 것으로 추산했다. 일본 정부는 오는 20일 참의원 선거 이후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새로운 합의점을 모색하겠다는 방침이다. 약 열흘 남짓 협상 기간 동안 무역협정을 체결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美관세 25% 인상시, 日실질GDP 0.4% 하락할 것"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8일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미국의 관세 인상과 관련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지지프레스)[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통보한 25% 관세가 실제 적용될 경우, 물가변동을 고려한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4%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항공기 부품과 건설기계 산업이 큰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8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0% 상호관세와 자동차 등 품목별 관세가 부과될 경우 실질 GDP가 0.2% 하락할 것이라는 미즈호리서치앤테크놀로지의 분석을 토대로 이같이 보도했다. 이는 자동차 등 주요 수출 품목의 대미 수출 감소를 반영한 수치다.재무성 무역통계에 따르면, 2024년 일본의 전체 수출액은 107조엔 규모로 이 중 약 20%인 21조엔 이상이 미국으로 향했다. 항공기 부품은 76.5%, 건설기계는 50% 이상이 미국 수출로 구성돼 있어, 해당 업종은 타격이 불가피하다.관세는 수입자인 미국 기업이 부담하지만, 이 부담이 일본 측에 보전 요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각 기업들은 이미 이 상황을 상정하고 대응책을 마련 중이다. 항공기 부품을 생산하는 IHI는 미국 GE 및 프랫앤드휘트니(P&W)와 협업하고 있으며, 공급망 재검토와 가격 전가 여부를 두고 파트너사와 협의하고 있다. 건설기계 업체인 고마쓰는 북미 매출 비중이 30%에 달하며, 관세 부담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공작기계 업체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일본공작기계공업회에 따르면, 전체 수주 중 미국 비중은 약 20%에 달하며, DMG모리세이키 등은 관세를 추가요금 등의 형태로 고객에 전가할 계획이다.경제계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니나미 다케시 일본경제동우회 대표간사는 “15%의 추가 관세는 기업이 자체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쓰쓰이 요시노부 게이단렌 회장은 “이번 조치가 일본 기업의 투자 전략과 수익성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제국데이터뱅크는 관세 인상에 따른 기업 도산 증가도 우려했다. 2025년 도산 예상 건수는 전년 대비 1.6% 증가한 1만235건으로 추정되며, 관세가 25%까지 오르면 도산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상호관세와 별도로 자동차, 철강·알루미늄 등에 적용돼 왔던 관세 여파 역시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미국 시장에서 한동안 가격을 동결해왔지만, 토요타자동차 등은 결국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닛케이는 “현재 관세로 인한 비용 증가는 기업의 자체 노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밝혔다.
- 골프장 아닌 성수에서…말본, '일상'으로 들어온다[르포]
- [이데일리 한전진 기자] “골프를 잘 치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누구와 어떤 경험을 공유하느냐가 말본이 생각하는 골프의 본질입니다. 이 철학을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녹이고자 합니다.” (스티븐 말본 말본 공동 창립자)말본 곮프 창립자인 말본 부부, 오른쪽부터 스티븐 말본, 에리카 말본 (사진=한전진 기자)미국 LA에서 출발한 감성 골프웨어 브랜드 ‘말본골프’가 브랜드 외연 확장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4일 서울 성수동 세종빌딩 1층에 문을 연 ‘말본 성수’는 말본의 국내 첫 ‘골프+라이프스타일’ 콘셉트 매장이다. 단순 제품 판매를 넘어 아트, 음악, 패션 등 브랜드 취향과 철학을 반영한 공간으로 구성됐다. 팬데믹 이후 성장세가 둔화된 골프웨어 시장에서 일상복 수요를 흡수하며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이날 오전 현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공동 창립자인 스티븐 말본과 에리카 말본은 브랜드 철학과 공간 기획 의도를 직접 설명했다. 스티븐 말본은 “기존 골프 브랜드는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진지한 이미지가 강했다”며 “도심 속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브랜드를 지향하고 있다”고 말했다.말본은 2021년 하이라이트브랜즈를 통해 한국에 진출했다. 현재 전국에 73개 오프라인 매장과 공식 온라인몰을 운영 중이다. 2022년 도산대로에 첫 플래그십 스토어 ‘말본 6451’을 열었다. 이번 성수점은 브랜드 최초로 라이프스타일 콘셉트를 전면에 내세운 오프라인 매장이다.매장은 기존 골프웨어 매장의 중후한 분위기와는 결을 달리한다. 성수역 3번 출구 인근에 있고 연핑크색 아치형 기둥, 골프공 마스코트 캐릭터 ‘버킷(BUCKETS)’ 등이 배치돼 브랜드 감성이 직관적으로 드러난다. 실내는 약 164㎡(약 50평) 규모로, 곡선형 선반과 낮은 진열대, 자연광이 들어오는 여백 중심의 구조가 특징이다. 쇼룸과 갤러리를 넘나드는 듯한 진열 동선으로 시각적 몰입도도 높다..말본골프 ‘말본 성수’ 매장 내부의 모습 (사진=한전진 기자)입구에는 브랜드 주요 협업 컬렉션이 전시돼 있고, 의류 외에도 모자·미니백·파우치 등 라이프스타일 아이템이 비중 있게 배치됐다. 성수 거리에서 영감을 받은 익스클루시브(독점) 티셔츠 라인도 출시됐다. 유리창엔 한국 전통 문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패턴이 적용됐고 내부 인테리어는 지역성과 브랜드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가 조화롭게 반영됐다.매장 기획을 맡은 에리카 말본은 “이곳은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니라 말본의 세계관을 직관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설계된 공간”이라며 “방문자들이 브랜드의 철학과 감각을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디테일까지 신경 썼다”고 말했다.말본이 성수를 첫 라이프스타일 콘셉트 스토어 거점으로 선택한 데에는 입지에 대한 전략적 판단도 작용했다. 제조업 중심지였던 성수는 최근 F&B(식음료), 예술, 패션 브랜드가 집중되며 창작 기반 라이프스타일 상권으로 급격히 재편됐다. 에리카 말본은 “성수는 유행지 이상의 창조적 에너지가 살아 있는 곳”이라며 “말본이 추구하는 브랜드 정체성과 잘 맞는 입지”라고 설명했다.이번 매장은 말본의 글로벌 확장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마이애미, 뉴욕 소호, 도쿄에 이어 서울 성수까지, 문화와 창작 소비가 활발한 도시에 브랜드 공간을 확대해온 말본은 서울을 그 연장선으로 삼았다. 특히 한국은 MZ세대 골퍼 비중이 높고 콘텐츠 수용 속도가 빠른 시장으로, 브랜드 실험에 적합한 조건을 갖췄다는 평가다. 한국은 현재 말본의 미국 외 국가 중 가장 큰 시장이다.최근 국내에서도 골프웨어의 라이프스타일 전환은 주요 전략 키워드로 떠올랐다. 팬데믹 시기 급증했던 2030세대의 골프 입문 수요가 둔화되면서 업계 전반은 필드 위 중심의 제품군에서 벗어나 일상 활용도를 강화하는 흐름으로 전환하고 있다. 기능성과 퍼포먼스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일상복으로 활용 가능한 디자인·아이템 확장이 두드러지는 추세다.말본 관계자는 “말본 성수는 브랜드 철학을 시각적·공간적으로 구현한 출발점”이라며 “앞으로도 골퍼에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소비자와의 접점을 늘려갈 것”이라고 말했다.말본 성수에서만 판매하는 말본 성수 익스클루시브 라인의 모습 (사진=한전진 기자)
-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 소수서원 원장 취임…“여성 최초”
- [이데일리 신하영 기자] 이배용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이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의 원장으로 취임했다. 이 원장은 소수서원 당회 의결에 따라 원장으로 추대돼 지난 3일 망기(望記: 임명장)를 전달받고 직을 수락했다고 4일 밝혔다. 한국 서원 역사 600여 년 동안 여성으로서 서원 원장에 추대된 사례는 이 원장이 처음이다. 이배용 국가교육위원 위원장(사진 제공=국가교육위원회)이배용 위원장은 이화여대 총장과 국가브랜드위원장,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을 역임하고 2022년 9월부터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오는 9월 26일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이 위원장은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부터 한국의 산사(산지승람)와 한국의 서원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데에 주도적 역할을 해왔다. 현재는 한지(韓紙)를 인류 무형유산으로 등재하는 데에 앞장서고 있다. 이 위원장은 “금녀의 영역이었던 서원을 세계유산에 등재했을 뿐만이 아니라 2020년 도산서원 추계향사에서는 최초의 여성 초헌관을 지낸 후 현재까지 세계유산에 등재된 8개 서원(도산, 옥산, 병산, 남계, 도동, 필암, 무성, 돈암)의 초헌관으로 참여했다”며 “이제 마지막 소수서원 초헌관만을 남겨놓고, 오는 10월 소수서원 추계향사부터 헌관으로 참여하면서 원장을 맡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조선시대 최초의 사립대학 격인 소수서원은 그간 이한동·정세균 전 국무총리와 정범진 전 성균관대 총장 등이 원장을 역임했다. 여성 원장 취임은 이 위원장이 사상 최초다. 이 원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 원장소임을 맡아 영광이다. 학교로서의 본래 기능회복과 인성교육 실천을 중시할 것”이라며 “후손들을 위한 미래가치 창출에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류준희 소수서원 도감은 “이 위원장의 경륜으로 전통과 현대를 잇는 교육·문화 공간으로서 거듭나기를 바라는 서원의 간절한 만장일치 추대가 있었다”고 전했다.
- [책]장기 불황에도 명동·홍대·성수에 사람들 몰리는 이유는
-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애플은 Z세대가 선호하는 브랜드다. 그러나 Z세대가 즐겨 찾는 성수에는 애플 스토어가 없다. 반면 명품 브랜드의 대명사인 디올은 백화점을 떠나 성수에 팝업을 열었다.애플과 디올의 서로 다른 선택은 랜드마크와 브랜드, 상권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리테일 부동산 디렉터’로 부동산 서비스 회사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의 부대표인 저자가 ‘서울의 하이스트리트’를 통해 내세우는 주장이다. 저자는 거리의 랜드마크가 되는 브랜드가 무엇 때문에 특정 상권을 선택하고, 상권이 가진 매력이 어떻게 브랜드의 가치를 끌어올리는지를 살펴보면 리테일 시장을 이해하기 쉬워진다고 이야기한다.‘하이스트리트’(high street)는 넓게는 상권의 중심지를, 좁게는 카페, 레스토랑, 뷰티·패션·테크 브랜드가 밀집된 길을 뜻한다. 대형 오피스타운과 고소득층의 주거 지역을 아우르는 번화가를 의미하기도 한다. 저자는 장기 불황 속에도 계속 발전 중인 서울의 6대 ‘하이스트리트’ △명동 △홍대 △강남 △성수 △한남 △도산을 통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브랜드와 건물이 가진 비결이 무엇인지 살펴본다.저자는 리테일의 최정점에 있는 △명동 △홍대 △강남을 ‘메가 하이스트리트’, 2030의 사랑을 받는 신흥 상권 △성수 △한남 △도산을 ‘네오 하이스트리트’로 구분한다. 같은 하이스트리트라도 강남과 명동의 빌딩이 높고 대규모 면적을 지닌 반면, 성수나 도산은 특색 있는 외관을 자랑한다는 점에서 각 상권이 각기 다른 대조를 이룬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명동과 강남 일대의 부유한 소비층과 성수를 방문하는 청년층의 소비 패턴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저자는 “상권의 경쟁력은 사회문화적인 자본인 레이어에서 비롯된다”고 이야기한다.저자는 ‘하이스트리트’가 “크고 작은 빌딩들, 눈길을 사로잡은 파사드, 길거리 음식, 버스킹”으로 이뤄져 있지만, 그 이면엔 “투자사와 운용사, 디벨로퍼” 등이 일으키는 변화의 바람이 있다고 말한다. 이 모든 요소가 연결되면서 ‘하이스트리트’가 끊임없는 변신 속에 상권을 유지해왔다는 것이다. 급격히 변화하는 리테일 시장으로 혼란을 겪는 이들에게 부동산의 진화, 소비자 경험의 변화, 브랜드의 공간 전략, 경기 침체 속에서의 생존법 등이 궁금하다면 도움이 될 이야기들이 책 속에 담겨 있다.
- 일본의 쌀 부심…트럼프 압박에도 꿋꿋이 버티는 이유
-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일본이 쌀값 고공 행진, 쌀 부족 등에 시달리면서도 시장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지부진한 무역협상 및 이에 따른 상호관세 부과를 앞세워 일본에 쌀 시장을 개방하라고 압박하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을 통해 “다른 나라들이 미국에 대해 얼마나 부당하게 하는지 보여주려 한다. 나는 일본을 매우 존중한다. 하지만 그들은 대량의 쌀 부족을 겪고 있는데도, 우리의 쌀을 수입하지 않으려 한다”며 “그들(일본)에게 서한을 보낼 것”이라고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한의 구체적 내용은 거론하지 않았다. 상호관세율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기 위한 서한으로 추정되지만, 쌀 시장 개방을 요구하는 서한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사진=AFP)◇日, 고관세·MA로 쌀 시장 봉쇄…“농가 표심 직결” 최근 일본 내 쌀값은 1년 새 두 배 가까이 치솟았다. 소비자와 외식업계의 부담이 커지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여전히 농가 보호와 식량안보, 전통 식문화 유지라는 명분 아래 고율 관세와 각종 규제로 쌀 시장을 사실상 봉쇄하고 있다.일본은 1995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이후 ‘최소시장접근’(MA, Minimum Access) 제도를 도입해 매년 77만톤(t)의 쌀을 무관세로 수입하고 있으며, 이 물량을 초과하는 수입 쌀에는 1킬로그램(kg)당 341엔, 최대 778%에 달하는 고율 관세를 부과한다. 이에 따라 실제로 일본에 수입되는 쌀은 대부분 가공용이나 사료용에 머물고 있다. 이는 쌀 농가 보호와 식량안보, 농촌 공동체 유지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 정책 기조 때문이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쌀이 주식인 만큼 시장 개방과 관련해 시장 논리보다는 정서적인 저항이 강하다. 쌀 농가는 일본 내각제 정치에서 중요한 표밭이다. 중의원·참의원 지역구는 인구 비례가 낮아 1표의 가치가 도시의 2~3배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쌀 농가가 밀집한 도호쿠·홋카이도 지역은 매 총선 때마다 캐스팅보트가 된다. 대다수 농가가 적자 경영이 심각하지만, 농협(JA) 등 농업 관련 조직은 500만 조합원을 기반으로 선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에 자민당 등 보수 정권은 쌀값 방어와 농가 보호를 정치적 생존의 핵심으로 삼아왔다. 소비자들 역시 일본소비자청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쌀은 국산이어야 한다”는 응답자가 72%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자민당은 올 가을 총선을 앞두고 농가 지원 예산을 3000억엔 증액하는 대신, 쌀 관세·MA 유지 방침을 재확인했다. 자민당의 한 관계자는 “표밭을 잃고 관세를 얻을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니혼게이자이·아사히신문은 한목소리로 “JA와 자민당이 쌀 관세를 ‘성역’으로 지켜 왔다”고 평가했다.(사진=AFP)◇“농촌 붕괴 막으려는 선택”…“섬나라, 식량안보 중요”농민 생계와 농촌 공동체의 붕괴를 막기 위한 정치적·사회적 선택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본 농업은 고령화·인구감소·영세농 위주라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농업 종사자 평균 연령이 68세로, 농촌 인구 유출로 공동체 붕괴 위험이 커지고 있다. 이에 일본 정부가 쌀 생산 기반을 유지·강화하기 위해 농가 소득 보장, 쌀값 안정, 농지의 타 작물 전환이나 방치(휴경)를 막기 위한 감산 정책, 각종 보조금 등 보호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쌀 생산량이 남아돌던 시기에도 농가를 대상으로 감산(생산조정) 정책을 강력 추진하며, 쌀값을 인위적으로 높게 유지해왔다. 일본 농업의 대규모화·효율화가 지지부진한 이유다. 실제 일본의 영세농가 비중은 여전히 50%를 넘는다.섬나라여서 식량의 수입 의존도가 높다는 일본만의 특징도 있다. 이 때문에 일본에선 국제 식량 공급망 불안정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일본 정부가 식량의 안정적 공급과 안보 확보를 농정의 핵심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배경이다. 예를 들어 일본 정부는 칼로리 기준 식량 자급률(2023년 약 38%)을 높이는 것을 국가적 과제로 삼고 있는데, 쌀은 핵심 품목이다. 쌀 수입 확대는 자급률 하락과 직결된다. 또한 일본 농림수산성의 ‘식료·농업·농촌 기본법’은 “세계 식량 수급이 불안정한 만큼 평시엔 국산 확대를 기본으로 수입과 비축을 보조적으로 활용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를 근거로 “주식인 쌀 자급은 최소 95% 이상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종합하면 역사적·사회적 맥락과 국가 안보, 정치적 이해관계가 쌀 시장 보호 기조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결론이다. 일본 언론들은 정부가 쌀 시장 개방에 소극적인 이유에 대해 “국제 공급망 불안과 식량위기 대비, 농촌 고령화·공동체 붕괴 방지, 자급률 유지, 정치적 표심, 사회적 안정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라며 “쌀 시장을 개방하면 일본 내 농가의 대량 도산, 농촌 붕괴, 식문화 훼손 등 사회적 충격이 클 것으로 우려된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