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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대그룹 인사해부]부사장급 이상 절반 'SKY' 및 이공계 출신
- 자료=각사[이데일리 경계영 기자] 삼성과 LG, SK그룹에서 임원 승진에선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대학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SKY 대학 출신이 부사장 이상 임원 승진자 절반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데일리가 10일 ‘2018 정기임원인사’를 마친 삼성 전자계열 6개사와 LG그룹, SK그룹의 부사장급 이상(회장, 부회장, 사장, 부사장) 승진자 81명의 프로필을 전수조사한 결과, 43명이 SKY 대학을 나왔다. 이 가운데 서울대 출신이 23명(전체 28.4%)으로 가장 많았고 연세대(14명·17.2%), 고려대(6명·7.4%) 순이었다. SKY 출신은 비(非)SKY 출신을 압도했다. 특히 SK그룹의 경우 SKY 출신이 8명으로 비SKY 출신(2명)에 비해 절대 다수를 차지했다. 삼성 전자 계열사에서 SKY 출신은 23명, 비SKY 출신은 21명으로, LG그룹 역시 SKY 출신이 12명, 비SKY출신이 11명으로 각각 집계됐다. 개별 학교별로는 한양대 출신이 8명(9.9%)로 고려대보다 더 많았다. 성균관대·부산대(각 4명), 서강대·한국외국어대(각 3명), 경북대·인하대·홍익대(각 2명)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해외 대학 출신은 각각 삼성(3명), SK(1명)였고 LG그룹의 경우 해외 대학 출신이 없었다. 전공별로는 공대 출신이 과반을 차지했다. 조사 대상이 삼성 전자 계열사와 전자 부문 중심의 LG그룹, 석유화학·IT(전기전자) 부문을 주축으로 하는 SK그룹인 영향이 컸다. 이공계열이 각 그룹 승진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LG그룹(15명·65.2%)으로 가장 컸고 삼성(26명·55.3%), SK(6명·54.5%) 순이었다. 이공계열 가운데서도 전기공학 혹은 전자공학 전공자가 가장 많았다. LG그룹은 인사를 발표하며 “전체 승진 인사 가운데 65%가 이공계로 기술인력을 더욱 중용했다”고 설명할 정도로 우선순위에 엔지니어가 있었음을 강조했다. 삼성전자(005930)의 경우 실적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는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의 세 축인 메모리·시스템LSI·파운드리사업부장(사장)에 진교영·강인엽·정은승 사장(이상 서울대)을 각각 앉히며 엔지니어 출신 중용 기조를 이어갔다. CE(소비자가전)부문에서 승진한 한종희 VD(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사장)도 인하대 전자공학을 졸업한 엔지니어다.
- 사립대 입학금 단계적 폐지…2022년부터 입학금부담 ‘0원’
- 지난 24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준비위원회가 대학 입학금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이데일리 신하영 기자] 대학 신입생들의 학비부담 중 하나인 사립대 입학금이 최장 5년에 걸쳐 폐지된다. 교육부는 내년부터 사립대 입학금을 단계적으로 감축, 2022년에는 전면 폐지하기로 했다. 내년부터 대학에 입학하는 신입생은 입학금 인하 혜택을 보게 되며 5년 뒤에는 입학금 제도 자체가 사라진다. ◇ 대학별 입학금 수준 따라 4~5년간 단계적 폐지교육부와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사총협)은 ‘대학·학생·정부 간 입학금 제도개선 협의체’를 통해 사립대 입학금의 단계적 폐지에 합의했다고 28일 발표했다. 합의안에 따르면 사립대 입학금은 최장 5년에 걸쳐 폐지된다. 4년제 사립대 입학금 총수입(2015년 결산기준)은 2431억원으로 등록금 수입(11조4326억원)대비 3.4%를 차지한다. 교육부는 내년부터 매년 16%씩 입학금을 감축, 2022년에는 입학금제도 자체를 없애기로 했다. 학생·학부모 입장에선 2018년 914억원을 시작으로 △2019년 1342억 △2020년 1769억 △2021년 2197억 △2022년 2431억원의 학비부담을 덜게 된다. 전국 4년제 사립대학 입학금 실부담액 추이(단위: 억원, 자료: 교육부)다만 대학마다 입학금 수준이 다른 점을 감안하기로 했다. 입학금 수준이 사립대 평균(77만3500원)보다 높은 대학(61개교)은 5년에 걸쳐, 평균보다 낮은 대학(95개교)은 4년에 걸쳐 입학금을 폐지한다. 예컨대 1인당 입학금이 87만5000원인 대학의 신입생 1인당 실질 부담액은 △2018년 56만원 △2019년 42만원 △2020년 28만원 △2021년 14만원으로 낮아지며 2022년에는 ‘0원’이 된다. 2018년부터 전체 사립대가 연간 16%(17만5000원)씩 입학금을 인하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여기에 입학관련 실비로 인정한 20%(17만5000원)를 국가장학금 예산으로 지원한다. ◇ 서울대 등 국립대 41곳 내년부터 입학금 폐지대학 입학금은 징수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서 폐지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현행 ‘대학 등록금에 관한 규칙(4조4항)’에 따르면 ‘입학금은 학생 입학 시 전액을 징수한다’는 조항만 있지 산정근거를 밝혀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이 때문에 입학식이나 학적부 등록 등에 필요한 비용이라며 고액의 입학금을 징수하는 대학이 있는 반면 이런 비용을 등록금 내에서 해결하는 대학도 있다. 대학별 신입생 1인당 입학금이 가장 비싼 곳은 동국대로 102만4000원이다. 이어 한국외국어대(99만8000원), 고려대(99만6600원), 홍익대(99만6000원), 인하대(99만2000원) 순이다. 전체 222곳의 4년제 대학(사이버대 포함) 중 학생 1인당 입학금이 90만원을 넘는 곳은 28개 대학이며 모두 사립대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지난 7월 ‘대학 입학금의 단계적 폐지’를 국정과제에 포함시켰다. 지난 8월17일에는 서울대 등 전국 41개 국립대가 이에 호응해 내년부터 입학금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교육부는 사립대 입학금도 폐지키로 하고 지난 9월4일 ‘사립대 입학금 제도 개선 협의회’를 구성, 사립대 측과 협상을 벌여왔다. 하지만 사립대 측이 입학금 폐지에 따른 손실분 보상을 요구하면서 협상은 난항을 거듭했다. 교육부는 지난달에는 실태조사를 통해 사실상 사립대 입학금의 ‘원가’를 공개했다. 그 결과 입학금의 80% 이상이 오리엔테이션 등 신입생 입학과는 무관하게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기준 사립대의 신입생 1인당 평균 입학금은 77만3500원이다. 교육부 실태조사 결과 이 가운데 61만원 이상이 입학 관련 비용과 무관하게 쓰인 것이다. 대학 입학금 현황(자료: 교육부) ※1인당 입학금은 2017년 기준, 입학금 총수입 및 등록금 총수입은 2015년 기준.◇ 입학금 실비 인정액, 국가장학금으로 지원 교육부는 현재 사립대가 신입생들에게 징수하는 입학금 중 20%만 입학 관련 실비로 인정한다는 입장을 세웠다. 대학 측에 입학금의 80%를 감축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사총협은 최근 회장단 회의를 열고 이런 교육부 요구를 수용하기로 했다.교육부는 대신 실비로 인정한 입학금의 20%를 국가장학금으로 지원한다. 이에 소요되는 예산은 약 700억원으로 교육부는 국가장학금 2유형 예산(4800억원은) 내에서 이를 마련할 방침이다. 국가장학금 2유형은 정부가 학생들에게 직접 지원하는 1유형과 달리 대학별 자체노력(등록금 인하·장학금 확충)에 따라 차등 배정하고 이를 학생들에게 지원토록 하고 있다. 교육부는 ‘입학금을 폐지하는 대신 일반재정지원 예산 1000억 원 이상을 대학에 지원해 달라’는 사립대 측 요구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박성수 교육부 학술장학지원관은 “대학의 일반 경상비까지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일반재정지원 방식을 도입하고 교육부 진단평가에서 일정 수준 이상인 대학에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내년도 기준 대학 재정지원사업 주요 예산은 약 1조5000억원이다. 교육부는 대학특성화·산학협력·연구목적 지원을 제외한 5000억 이상을 2019년부터 일반 재정지원 예산으로 편성한다. 대학에 대한 특수목적형 지원은 교육부 사업에 선정된 대학만 지원하지만, 일반재정지원은 교육부 평가에서 일정수준 이상의 성적만 거두면 지원받을 수 있다. 교육부는 내년부터 대학 기본역량진단 평가를 통해 전체 대학을 크게 3등급(자율개선대학·역량강화대학·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분류하고 상위 60% 이상은 ‘자율개선대학’으로 분류, 일반 재정지원을 나눠 줄 방침이다. 2017년 기준 입학금 수준 사립대 평균보다 높은 대학 61개교 현황(단위: 천원, 자료: 교육부)
- [욜로아재 전성시대]②'난 아직 오빠'…망설임 없이 지갑여는 영포티
- [이데일리 이서윤 기자][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X세대는 거침없었다. 이들은 20대였던 1990년대 초 헐렁한 면바지에 이스트팩 가방을 메고 닥터마틴 신발 차림으로 강남을 누볐다. 특히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는 오렌지족으로 대표되는 왕성한 소비족들로 가득했다. 기성세대의 사고방식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방식을 만들어갔던 세대다. 그때만 해도 신세대라는 의미였던 X세대가 이제는 아재로 돌아왔다. 40세 불혹의 나이로 중년임에는 분명하지만, 스스로는 아직도 ‘오빠’라고 생각한다. 신세대 중년으로 사는 셈이다. 이들은 소비에 있어서 기존 중년의 이미지도 바꿔놨다. 자기관리나 취미를 위해 적극적으로 지갑을 여는 ‘아재 슈머’와 패션과 미용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중년 그루밍족’이 부상하고 있다. 젊은 층의 ‘전유공간’으로 여겨졌던 편의점이나 인터넷쇼핑몰에서도 점차 영역을 확장하는 추세다. 오만상을 찌푸리며 아내 따라 마지못해 백화점을 찾았던 남편들도 이제는 자발적으로 방문해 남성관을 찾는 모습으로 변화 중이다.◇누가 뭐래도 슬림핏·BB크림 고수이들 영포티(나이에 비해 젊게 사는 40대 남성)의 주요 특징은 ‘나는 나’다. 남들 눈치보기 보다 자신의 취향대로 소비하고 삶을 꾸려나간다. 김 모(44)씨는 복숭아뼈 위로 올라오는 9부 슬림핏 바지와 몸에 딱 붙는 와이셔츠를 즐겨입는다. 그는 “아버지 옷장엔 어머니가 사준 흰색 와이셔츠와 튀지 않는 정장 일색이었는데 교복 같아 보였다”며 “요새 캐주얼데이를 운영하는 회사도 많고 무엇보다 패션은 나를 표현하는 하나의 도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옷에 대한 투자는 아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직장생활 10년차인 이 모(40)씨는 30대 중반부터 남성 전용 BB크림을 사용했다. 피부 트러블 때문에 자신감이 없었는데 주변 권유로 한번 BB크림을 써본 이후 필수품이 됐다. 이제 브랜드별로 어떤 제품이 좋은지 회사 여직원에게 추천해줄 정도다. 취업포탈 잡코리아가 지난 10월31일부터 11월3일까지 직장인 66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40대 이상 직장인 중에서 23.6%가 그루밍족 생활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단순히 옷을 잘 입고 화장품을 사용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부관리나 마사지, 경락성형, 눈썹문신 등 그동안 여성의 전유물이었던 분야로까지 진출하고 있다. 특히 40대가 직장에서 허리역할을 하는 세대인 만큼 안정적인 경제력을 바탕으로 과감하게 투자한다. 신한트렌드연구소가 작년 10~12월 상권별로 뷰티업종(경락·지압, 네일케어, 눈썹문신, 와익, 피부관리, 바디케어)에서 신한카드 사용액을 분석해보니 직장인이 많은 여의도에서는 남성 고객 비중이 31%로 많았지만 대학가인 홍익대와 역세권인 강남역에서는 각각 15%, 9%로 낮았다. ◇머릿수 제일 많은 40대 남성…소비비중 클 수밖에여행이나 취미생활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캠핑 마니아인 허 모(40)씨는 캠핑 장비에 쓴 돈만 해도 중형차 한대는 뽑고도 남았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캠핑 다녀오면 좀 더 기능이 좋고 편리한 장비를 찾아 온라인쇼핑몰을 뒤져 구매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장난감을 좋아하는 어른’을 의미하는 키덜트족이 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 향수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녀와 함꼐 놀면서 장난감 사다 보니 자연스럽게 키덜트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국내 키덜트 시장 규모가 2014년 5000억원대에서 이미 1조원대를 넘어선 것으로 추산했다. 40대 이상 남성들이 소비주체로 부상하는 것은 인구통계학상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40대 남성 인구는 425만명(8.51%)으로 가장 많다. 50대가 407만명(8.2%)로 뒤를 이었다. 일각에서는 지금 40대는 중년이라기보다 청년에 가깝다고 본다. 실제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인구의 중 정중앙에 있는 중위연령은 41.8세다. 1970년대는 20세 전후였고 1995년에는 30세 정도였던 것과 비교하면 지금의 40대는 중년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젊다는 것이다. 여전히 트렌드에 민감하며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은 얼리어댑터이기도 하다. 42세 회사원인 김 모씨는 “거리를 걷다가 누가 아저씨라고 부르면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된다”며 “나이로는 중년이라고 하지만 생활패턴이나 소비성향을 보면 아저씨가 됐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 [식품박물관]①오뚜기 함태호의 고집 "한국인에게 수입산 못 먹인다"
-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미국의 언론인 콜린 데일러 센이 2011년 저술한 ‘커리의 지구사’는 한국에서 ‘카레’라고 불리는 커리(curry)가 인도를 벗어나 세계인의 음식이 되기까지 여정을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한국의 카레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커리는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 가정식이다.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시판용 커리가루를 사용해 일본식 커리를 만들어 먹는다.”◇인도 커리에서 유래, 영국과 일본 거쳐 카레는 인도와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에서 먹던 전통 음식이다. 멀리 남부 아시아 대륙에서 즐겨 먹던 커리가 카레로 이름이 바뀌어 한국에 들어온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일본과 영국을 거쳐야 한다. 카레는 강황을 주재료로 커리 잎, 호로파, 고추, 후추 등 여러 향신료로 구성한 커리 가루와 소스가 들어간 스튜를 비롯해 볶음밥과 튀김 등을 통칭한다. 특히 남부 인도에서는 고기와 채소를 강황 등과 함께 기름에 볶은 요리를 즐겨 먹었다. 이를 현지에서는 카릴(karil) 혹은 카리(kari)라 불렀고 17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인도를 식민지배 하던 영국인들이 이것을 커리(curry)라 부르면서 카레가 유래했다. 인도에서 벗어나 영국으로 건너간 카레는 ‘동양에서 만들어진 희귀한 스튜’라는 이미지로 영국인들 뿐만 아니라 유럽인들을 사로잡기 시작한다. 특히 한 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영국은 자국의 해군의 보급식량으로 카레를 선택한다. 세계 각지를 누비던 영국 함대가 도착한 곳 중에 한 곳이 바로 일본이었다. 19세기 중반 혼슈 가나가와현의 요코스카항에 정박한 영국 함대의 해군들이 커리를 먹는 것을 본 일본 해군 장성들은 커리를 영국군의 체력 비결로 보았다. 결국 일본 해군도 영국 해군처럼 커리를 보급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커리는 카레로 이름이 바뀐다. 그리고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게 된 조선에서도 20세기 초반 일본의 영향으로 카레가 식탁에 오르기 시작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 한국에서 만든다오뚜기 홈페이지 내 회사 연혁에 게재한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주요 자료 사진. 단체사진을 찍는 직원들의 모습과 안양 공장 건설 및 함태호 회장의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들로 구성했다.한국에서 카레가 강황을 주재료로 하는 노란 향신료 가루에 감자와 당근, 양파 등의채소와 소고기와 닭고기를 볶아 끓인 물에 넣어 걸쭉하게 죽처럼 만든 요리로 굳어진 데에는 배경에는 오뚜기의 ‘오뚜기 카레’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함태호(1930~2016) 오뚜기 초대 회장은 1969년 오뚜기의 모태인 풍림상사를 창업하며 1호 제품으로 분말형태의 ‘오뚜기 즉석카레’를 선보였다. 함경남도 원산 출신의 함 회장은 비평준화 시절 명문고로 꼽힌 경기고를 나와 홍익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함 회장은 친형인 함승호 조흥화학공업 창업주가 기초화학물과 식품첨가물 제조에 뛰어든 것을 보고 서구 조미식품을 비롯해 소스의 한국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자신만의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던 함 회장은 회사를 차리면서 ‘카레’를 국산화 하기로 결심한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을 통해 들어왔던 카레는 한국인들에게 낯설지 않았던 외국 음식이었다. 20세기 초 개항 이후 일본인들이 조선에 진출하면서 카레를 가져왔고 이른바 해외 최신 메뉴로 퍼지기 시작한다. 1930년대 국내 일간지에서는 카레에 대한 기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1935년 5월 동아일보는 “우리 조선에서도 시골궁촌이 아니면 어지간이 보급되였다”고 카레를 소개했다. 1937년 12월 조선일보 기사에서도 “흔히 너절한 식당 가튼 데를 가면 주문한 지 오분도 안되어서 내어놋는 라이스카레가 잇습니다”는 내용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카레에 대한 맛 표현은 비슷했다. 인도음식이라고 카레를 소개하면서 “이것은 먹고 잇슬 때는 입안이 확근확근하고 몸에 털이 오르는 것 가트며 더옵기도하다‘고 평했다. 함 회장이 식품회사를 차리면서 첫 제품으로 카레를 내놓은 배경에는 카레가 한국인이 좋아하는 식품으로 자리를 잡았음에도 수입에 의존하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영국 해군을 통해 커리를 도입한 일본은 이후 자체적으로 기술을 개발하며 강황 가루와 밀가루 등을 배합해 인도식 커리와는 다른 카레를 만든다. 밥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도 일본의 카레를 거부감없이 받아들였지만 정작 카레 가루는 국내에서 대규모로 제조하지 못하고 수입에 의존했다.◇수입산 밀어내고 반세기 ‘부동의 1위’ 출시 초반 ‘오뚜기 카레’는 수입산에 밀려 낮은 인지도로 매출이 좋지 않았다. 이미 일본의 ‘S&B’와 ‘하우스인도카레’ 등 수입산 제품이 굳건하던 시장에서 ‘오뚜기 카레’는 설자리가 좁았다. 게다가 1970년 초 정부가 카레에서 카레 속 불연성의 광물질인 ‘회분(ash)’이 제한 수치(7%)를 초과한 14.6%로 과다 검출됐다고 발표하며 궁지에 몰린다. 하지만 품질에 있어만큼은 자신이 있었던 함 회장은 신문광고 등을 통해 이를 반박하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친다. 먼저 1973년 사명을 오뚜기 식품공업주식회사로 바꾼 이후 ‘오뚜기 카레’ 홍보를 강화한다. 또한 평일 오후 5시와 6시 어린이 방송 시간대와 가족들이 함께 TV를 보는 일요일에 TV광고를 집중했다. 이때 나온 것이 ‘일요일은 오뚜기 카레’라는 CM송이었다. 여기에 회사 영업용 차량에 오뚜기의 심벌마크를 부착하고 오뚜기에서 나오는 다른 제품의 포장박스에도 ‘오뚜기 카레’ 문구를 써넣었다. 이 외에도 기존 도매상 위주의 유통 거래에서 제품을 직접 점포에 납품하는 루트 세일(Route Sale)을 식품회사 최초로 펼쳤다. 오뚜기 직원이 직접 점포에 ‘오뚜기 카레’를 배송하고 진열과 함께 판촉행사까지 같이하면서 ‘오뚜기 카레’의 인지도를 높여나가기 시작한다. 결국 ‘오뚜기 카레’는 수입산 제품을 밀어내고 한국에서 카레의 대명사로 군림하기에 이른다. ◇엄격한 품질관리 안방 시장을 사수하다올해로 출시 48주년을 지난 ‘오뚜기 카레’는 국내 분말 카레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며 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다른 식품회사들은 틈새시장을 노릴 뿐 분말 카레 시장 진출 자체를 꺼려할 정도다. 오뚜기가 연매출 2조원에 가까운 식품회사로 성장하는 밑바탕에는 ‘오뚜기 카레’의 굳건한 품질이 밑바탕이 됐다. 오뚜기는 카레의 주제료인 강황을 비롯한 향신료를 직접 직원들이 현지에 가서 육안으로 확인 한 뒤 수입하고 국내 공장에서 분쇄한다. 또한 국제공인시험기관 KOLAS의 인정기관인 오뚜기 식품안전센터는 국내 식약처 기준 외에도 미국의 FDA, EU의 RASFF, 일본 후생성 등 세계 각국의 식품안전기관과 소비자단체들이 내세우는 기준 및 정보까지 수집해 제품에 적용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이 외에도 국내 최고 수준의 유화기, 균질화기, 레토르트 살균기 등의 설비와 각종 분석기기들을 갖춘 중앙연구소를 운영하며 품질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품질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은 오뚜기가 카레 외에도 케찹과 마요네즈, 후추 등 30여가지 품목에서 외국계 회사의 공세 속에서도 안방 시장을 내주지 않는 원동력이 됐다. 함 회장은 2011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식품산업 발전과 사회 공헌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함 회장은 평소 자신의 식품철학에 대해 “보다 좋은 품질, 보다 높은 영양, 보다 앞선 식품으로 국민식생활 향상에 이바지 한다”고 밝혀왔다. 이러한 함 회장의 유지는 오뚜기가 최근 국민들로부터 소위 ‘갓뚜기’라 불리며 찬사를 받는 밑거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