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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헌의 혁신@미술]<20> 돈에 눈뜬 미술…'비즈니스 코치 시대' 열다
- 데이미언 허스트의 ‘찬가’(Hymn·1999). 높이 6m, 무게 6t에 달하는 이 거대한 조각작품은, 허스트가 아들이 가지고 놀던 15파운드(약 2만 2000원)짜리 ‘어린이 해부학 장난감’을 크기만 키워 만든 것이다. 영국 런던 사치갤러리가 100만파운드(약 15억원)에 이 작품을 사들여 2000년 연 전시에서 처음 공개했다. 허스트는 ‘찬가’를 총 4점 제작했는데, 그 중 한 점을 한국 아라리오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다. 사진 속 작품은 충남 천안 아라리오조각공원에 설치돼 있다(사진=ⓒ아라리오컬렉션&아티스트·아라리오갤러리 제공).미술은 사람을 움직였습니다. 밥으로만 채울 수 없는 풍요와 평화를 안겨줬으니까요. 그림의 힘이고 조각의 에너지입니다. 하지만 미술의 역할이 이뿐이라 한다면 미술을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문명을 이끌고, 의식을 뒤집고, 결정적으로 돈의 흐름을 주도했던, 그것을 못 본 겁니다. 미술의 사조와 양식이 탄생할 때마다 세계경제에는 ‘변화의 그림’이 걸렸습니다. 바로 ‘혁신’을 주도했던 겁니다.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 이주헌 미술평론가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장면,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미술로 이룬 혁신’의 현장입니다.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아트인문학의 세상으로 안내합니다. <편집자주> [이주헌 미술평론가]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작품들로 1990∼2000년대 세계 미술계를 휩쓴 YBAs(Young British Artists). 그 선두주자인 데이미언 허스트(55)는 새롭고 선구적인 ‘비즈니스 전략’으로 남다른 성공을 거뒀다. 자신은 창작에만 전념하고 자신과 관련한 비즈니스를 도맡아 처리해줄 ‘재무·경영전문가’를 ‘영입’한 것이다. 매니지먼트산업이 발달한 연예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비즈니스 체제이지만, 이런 체제는 사실 최근까지도 미술인 사이에서는 지극히 생소한 것이었다. 하지만 바로 이 같은 비즈니스 전략을 택함으로써 허스트는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맛볼 수 있었고, 미술인으로 하여금 미술을 보다 산업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들었다. 자연히 그 이후 뛰어난 활약을 보인 젊은 미술가들 가운데서는 허스트의 ‘혁신’을 좇아 비슷한 종류의 매니지먼트 계약을 하는 사례가 부쩍 늘어났다. 허스트가 속한 YBAs는 ‘대처의 아이들’이라고 불린다. 원래 대처의 아이들은 영국 마거릿 대처의 집권기(1979∼1990)에 교육을 받은 세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대처리즘은 인플레이션을 극복하고 경기를 회복시켜 이른바 ‘영국병’을 치유하는 효과를 가져왔지만, 복지와 교육·문화 분야의 예산과 지원을 크게 줄여 특히 젊은 예술가들에게 큰 타격을 줬다. 그렇게 ‘문화의 낙후화’를 경험한 세대가 YBAs고, 그래서 그들 또한 대처의 아이들로 불리게 됐다. 그러나 이렇게 열악해진 문화적 환경이 허스트를 비롯한 YBAs에게는 오히려 큰 기회가 됐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더 이상 공적 제도와 기관에 의지할 수 없게 된 젊은 예술가들은 어떻게 해서든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감을 가졌고, 이를 위해 전통적인 예술가상을 떨쳐버리고 이른바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하게 됐다. 그 선두에 바로 허스트가 서 있었다. △전통적 예술가상 떨치고 ‘기업가정신’ 무장해 성공허스트는 아직 미대생이던 1988년, 동료 미술학도들을 추동해 ‘프리즈’(Freeze)라는 전시를 조직했다. 이들은 전시장소였던 런던 항만공사 건물 섭외에서부터 작품 설치, 홍보, 마케팅, 판매에 이르기까지 어떤 갤러리나 기관의 도움도 받지 않고 ‘DIY’로 일관해 큰 성공을 거뒀다. 이 전시를 학생들의 아마추어 전시쯤으로 생각한 사람들은 현장에 가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작품의 완성도도 매우 높았지만, 완벽한 디스플레이에 고급스러운 도록, 거기에 저명한 평론가의 서문까지 모든 것을 ‘최고 수준’으로 선보였던 것이다. 홍보 또한 완벽하게 해서 당대 최고 컬렉터인 찰스 사치(73·사치갤러리 설립)와 최고의 큐레이터인 니컬러스 세로타(74·전 테이트미술관장)도 이 전시를 보러 갔다. 젊은 미술학도들의 ‘자생력’에 강한 인상을 받은 사치는 한동안 허스트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가 돼 이후 그의 성공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바로 이 도약의 시기에 허스트는 죽음 같은 섬뜩한 주제 아래 상어를 포르말린 상자에 넣어 내놓거나 반으로 가른 어미 소와 송아지를 포르말린 상자에 넣어 내놓는 등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작품들로 승승장구했다. 그 결과 허스트는 1995년 영국 최고의 미술상인 ‘터너 상’을 거머쥐었다. 자연히 수입도 급격히 늘어났다. 그런데 바로 이 성공으로 허스트에게 골치 아픈 문제가 생겼다. 바로 세금 정산이었다. 갑자기 돈을 많이 벌게 된 허스트는 세무문제에는 젬병이어서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허둥지둥하는 사이 체납액이 발생하는 등 내야 할 세금은 산더미처럼 불어났다. 허스트는 돈을 버는 게 재앙 속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데이미언 허스트가 2012년 미국 뉴욕 가고시안갤러리가 연 ‘데이미언 허스트: 1986∼2011 스폿 페인팅의 모든 것’ 전에서 포즈를 취했다. 당시 전속화랑이던 가고시안갤러리와 손잡고 일명 ‘땡땡이그림’만으로 뉴욕·런던·파리·홍콩 등 8개 도시의 11개 가고시안갤러리에서 글로벌 세일에 돌입한 자리였다.△돈을 두려워했던 허스트에게 던피 “돈은 즐기는 것” 이때 허스트 앞에 혜성처럼 등장한 사람이 회계사였던 프랭크 던피(1937∼2020)다. 던피는 배우 이멜다 스턴튼, 레이 윈스턴 등 주로 연예인이나 공연업계 종사자들의 재무와 비즈니스를 관리해주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가 우연히 런던의 한 클럽에서 허스트의 어머니를 만나 대화를 나눈 것을 계기로 1995년부터 허스트의 매니지먼트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다. 훗날 그에게 붙은 별명이 ‘허스트 제국의 건설자’이니 결과적으로 둘의 결합은 매우 성공적인 것이었다. 물론 이는 비즈니스와 관련한 자신의 단점을 직시하고 화가에게도 매니저 혹은 비즈니스 코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자각한 허스트의 선구적인 깨우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그 자체가 하나의 혁신이었다. 던피는 허스트의 일을 맡아 보면서 그가 실은 비즈니스 감각이 매우 뛰어난 예술가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문제는 돈에 대한 허스트의 부정적인 관념이었다. 세무문제로 곤경을 겪은 데서 알 수 있듯 허스트 역시 전통적인 예술가들처럼 돈에 대해 ‘무지’했다. 그래서 그 부정적인 돈 관념만 바꿔준다면 시장에서 그의 가치를 훨씬 크게 제고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던피는 허스트에게 “돈은 관리하는 것일 뿐 아니라 즐기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경제교육을 하듯 핵심적인 조언을 계속하자 허스트도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훗날 허스트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돈에 대해 개의치 않았다. 아니 그런 척했는지 모른다. 돈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하지만 프랭크가 돈에 대한 나의 관념을 바로잡아줬다.” 작품 ‘찬가’(1999)가 100만파운드(약 15억원)에 팔렸을 때 아직 30대의 젊은 작가로서 허스트는 ‘내 작품이 과연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가’ 하는 의구심과 당혹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작가 스스로 자신의 예술이 지닌 시장 가치를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때도 던피는 이렇게 충고했다. “가치에 대해 네가 걱정할 필요는 없어. 미술작품의 값어치는 (네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다음 사람이 얼마를 지불하느냐에 달려있을 뿐이야.” 던피는 철저하게 시장 논리와 평가에 기초해 허스트의 작품을 세일즈했고, 그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다. 허스트의 다이아몬드 해골 작품 ‘신의 사랑을 위하여’(2007)가 5000만파운드(약 734억원)에 시장에 나왔을 당시 그 가격을 납득하기 어려웠던 한 기자가 “가격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묻자, 던피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너무 싸게 내놨다”고 응수할 정도였다.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씌운 해골 ‘신의 사랑을 위하여’(2007). 데이미언 허스트가 실제 18세기에 살았던 사람의 두개골에 백금을 입히고 다이아몬드를 촘촘히 박아 제작했다.△갤러리와 수익 배분비율 조정 등 합리적 ‘사업’ 허스트의 미술 비즈니스를 관리하면서 던피가 허스트에게 안긴 가장 큰 사업적 이득은 그와 갤러리의 수익 배분비율을 5대 5에서 7대 3, 8대 2로 조정한 것이었다. 심지어는 9대 1인 경우도 있었다. 미술가와 갤러리의 배분비율은 일반적으로 5대 5가 국제적인 관례다. 미술가는 시장에서 인기가 올라도 갤러리와 이를 재조정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협상력에 한계가 있는 데다가 “미술가가 돈만 밝힌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분야의 전문가를 대리인으로 두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회계사로서 던피는 철저하게 데이터에 기초해 합리적인 분석으로 이 같은 비율을 관철해냈다. 던피의 합류로 생긴 시너지 효과가 가장 잘 드러난 사례 가운데 하나는 2008년 9월 15일 런던 소더비에서 진행한 허스트 단독경매다. 작가와 경매사, 이 둘 사이를 섬세하게 조율한 던피는 무려 2억 75만달러(약 2356억원)의 낙찰총액으로 화가 단독경매로는 깨지지 않을 최고기록을 이끌어냈다. 물론 이차시장인 경매에는 한 번 이상 팔렸던 작품이 올라오는 게 관례인데, 이런 관례를 깨뜨리고 신작들을 대거 내놓았으니 일차시장을 구성하는 갤러리 쪽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이해가 충돌하고 정교한 마케팅 전략이 필요한 이런 프로젝트는 화가 혼자서 풀어가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던피 같은 유능한 매니저가 없었다면 경매사와 세세한 조건을 조율하고 전속 갤러리들의 불만을 잠재우며 매끄럽게 홍보를 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미술도 이제 연예산업처럼 에이전트나 기획사가 따라붙는 산업화의 시대가 왔음을 이렇듯 허스트와 던피가 선구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 ‘YBAs’(Young British Artists) 1980년대 말부터 활약한 영국의 젊은 미술가들을 통칭한다. 화가·조각가·아티스트 등 장르를 망라한 예술가집단으로 데이미언 허스트를 앞세워 트레이시 에민, 마크 퀸, 게리 흄, 채프먼 형제, 사라 루카스, 더글러스 고든, 제니 사빌 등 현대미술을 이끌어온 대다수가 여기에 포함된다. 뚜렷한 개성과 독립적이고 자유분방한 미디어로, 전통적 회화·조각은 빼버린 파격적이고 스펙터클한 개념미술을 세상에 알렸다. 대다수는 런던 골드스미스대 출신이다. 1988년 졸업을 앞둔 허스트가 동료들과 기획한 전시 ‘프리즈’(Freeze)를 통해 처음 존재를 알렸다. 풋내기 작가들이 런던 도클랜드의 빈 창고건물을 무료로 빌려 준비한 ‘프리즈’ 전이 YBAs의 기원이 된 셈이다. 바로 그때부터였다. 영국의 주요 컬렉터이자 딜러인 찰스 사치가 이들 젊은 작가군단의 작품을 대거 사들이기 시작했고, 1992년 자신의 사치갤러리에서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란 타이틀로 전시를 열며 이들을 향한 열풍에 부채질을 했던 것. 실제 YBAs란 명칭은 이 전시를 통해 고유명사가 됐다. 이후 YBAs가 세계미술계에 ‘뜨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1997년 로열아카데미서 연 ‘센세이션’(Sensation) 전이 결정적이었다. 사치가 소장한 YBAs의 작품들을 한꺼번에 내놓은 전시는 관람객 30만명을 불러 모았다. 고풍스러운 로열아카데미에서 전위적·실험적인 설치미술이 등장한 자체가 이미 ‘센세이션’ 했던 전시는, 비단 ‘젊은 스타작가 탄생’에 머물지 않고, 영국 현대미술의 부흥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1997년 영국 런던 로열아카데미에서 연 ‘센세이션’ 전 포스터.△이주헌 미술평론가는… 미술로 삶을 보고 세상을 읽는다. 좀 더 많은 이들이 미술을 통해 일상의 풍요를 누리도록 글 쓰고 강연하는 일이다. 소명으로 여긴다고 했다. 발단이 있다. 홍익대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돌연 일간지 기자가 되면서다. 그림에 관심을 잃어서가 아니라 그림을 막은 생계 때문이었다. 낮에 일하고 밤에 그리자 했다. 하지만 ‘투잡’은 쉽지 않았다. 미술담당 기자생활에서 얻은 필력과 생각을 가지고 현장으로 나왔다. 미술을 대중과 제대로 연결하는 미술평론가의 ‘진정한’ 역할, 그것을 해보자 했다. 그렇게 가나아트 편집장을 하고, 학고재 관장을 오래 한 뒤 서울미술관 초대관장까지 지냈다. 지금은 양현재단 이사로 있으면서 온전히 글과 강연에만 집중하고 있다. 지은 책이 수십 권이다. 굳이 대표작을 꼽자면 ‘신화의 미술관’(2020), ‘리더의 명화수업’(2018), ‘역사의 미술관’(2011), ‘지식의 미술관’(2009), ‘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 1·2’(2005) 등이 있다.
- [이주헌의 혁신@미술]<19> "내가 곧 셀럽이다"…예술보다 빛난 '흥행'
- 마흔 살의 야심만만한 ‘상업미술가’ 앤디 워홀. 1968년 2월 스웨덴 스톡홀름 현대미술관에서 연 회고전 개막에 앞서 자신의 작품 ‘브릴로 상자’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브릴로 상자’ 역시 태생은 슈퍼마켓이다. 쓰고 버린 상품상자를 가져다가 목수에게 같은 크기로 수백 개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하고, 실크스크린으로 상표를 제작해 상자의 겉면에 붙여 ‘대량생산’했다.미술은 사람을 움직였습니다. 밥으로만 채울 수 없는 풍요와 평화를 안겨줬으니까요. 그림의 힘이고 조각의 에너지입니다. 하지만 미술의 역할이 이뿐이라 한다면 미술을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문명을 이끌고, 의식을 뒤집고, 결정적으로 돈의 흐름을 주도했던, 그것을 못 본 겁니다. 미술의 사조와 양식이 탄생할 때마다 세계경제에는 ‘변화의 그림’이 걸렸습니다. 바로 ‘혁신’을 주도했던 겁니다.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 이주헌 미술평론가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장면,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미술로 이룬 혁신’의 현장입니다.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아트인문학의 세상으로 안내합니다. <편집자주> [이주헌 미술평론가]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1928∼1987)은, 순수미술 쪽에서 ‘극혐’으로 치던 상업주의를 순수미술의 중심에 뿌리내린 예술가다. 현대미술이 온갖 경계를 타파하며 그 영역을 확장해왔지만, 작가 스스로 상업주의와의 경계를 허물고 그것을 새로운 예술이라고 부르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워홀은 전례가 없는 파괴자이자 혁신가였다. 전통적으로 사람들은 미술가들이 돈에는 큰 관심이 없는, ‘꿈을 먹고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미술가들 자신도 예술을 하며 돈을 앞세우는 것을 수치스러워했다. 하지만 워홀은 달랐다. 그는 앞장서서 돈을 추구했고, 돈이 예술에 의미를 더해준다고 믿었다. 돈과 관련해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난 평생 싸구려 스와치 시계를 차고 다녔지만 돈으로 다 해결할 수 있을 때 가장 행복했다. 돈은 내게 순간을 결정하는 기회일 뿐 아니라 감정의 원천이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게 뭘까’라는 질문이 돈을 그리게 했다. 예술도 근본적으로 돈을 통해 아름다움을 획득한다.”그런 그였기에 워홀은 자신을 뼛속까지 ‘상업미술가’라고 생각했다. 오로지 순수만을 부르짖는 예술가들은 그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반대로 그에게 적대적인 예술가들은 그를 예술을 이용해 오로지 돈과 잇속, 인기만 챙기는 ‘사악한 인간’으로 여겼다. 예술의 이름으로 미술을 타락시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워홀이 1968년 6월 3일 밸러리 솔라나스라는 여성의 총에 맞아 죽을 뻔했을 때 동시대의 거장 프랭크 스텔라조차 “로버트 케네디는 죽고 워홀이 살아나다니!”라고 한탄할 정도였다(로버트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워홀 사건 이틀 뒤인 6월 5일 저격당해 다음 날 사망했다). △워홀, 자신을 뼛속까지 ‘상업미술가’라 여겨지금도 워홀의 예술을 비판적으로 보는 미술인이 없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적극적으로 돈을 추구한 이답게 그의 작품은 갈수록 고가에 팔리고 있으며, 그가 간판 역할을 한 팝아트는 현대미술의 주류 가운데 하나로 확고히 뿌리를 내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행한 ‘성공방정식’을 따라 철저히 상업주의적인 방식으로 화단에서 성공한 미술가들 또한 급격히 늘어났다. 워홀은 1928년 8월 6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21세에 뉴욕으로 가 일러스트레이터로 성공한 그는 1950년대 ‘소비자혁명’의 힘을 보면서 자신과 같이 상업미술을 전공한 사람도 얼마든지 순수미술 쪽에서 큰 활약을 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얻었다. 상업의 영역에서 순수의 영역으로 넘어온 사람답게 그는 자신의 작품을 마케팅하고 홍보하는 것뿐 아니라 창작활동까지도 철저히 비즈니스적으로 접근했다. 워홀의 발상이 놀라운 것은, 기본적으로 비즈니스 자체가 예술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는 “비즈니스를 잘하는 것이 최상의 예술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실크스크린과 채색을 병행해 완성한 앤디 워홀의 ‘자화상’(1986)이다. 워홀의 다른 ‘자화상’들과 달리 마치 네거필름처럼 제작한 것이 특징이다. 30.4×25.5㎝ 규모의 작품은 2018년 국내 한 미술품 경매에서 10억원에 팔렸다(사진=이데일리DB).워홀은 자신의 ‘미술 비즈니스’를 일종의 연예산업, 곧 흥행업처럼 생각했다. 제아무리 상업적 센스가 있다 하더라도 미술을 흥행업이라고 생각한 미술가는 이제껏 없었다. 흥행업은 무엇보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비즈니스다. 반면 미술품 거래는 소수의 부유한 엘리트를 상대로 하는 비즈니스다. 전통적으로 비평가, 큐레이터, 아트딜러 등으로 이뤄진 폐쇄적인 이너서클에서 그 명성과 가치가 결정된다. 그러나 워홀은 자신의 작품을 ‘엘리트시장’이 아니라 ‘대중시장’을 겨냥한 상품처럼 만들었고, 그 마케팅 방식을 활용해 시장가치를 높이고, 나아가서는 그렇게 해서 얻은 상징자본으로 이너서클에도 영향을 줘 궁극적으로 미술사적 가치마저 높게 평가되도록 만들었다. 총체적인 흥행의 성공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그는 흥행의 귀재였다. “박스 오피스가 엄청나다는 건 ‘대흥행’을 의미한다. 당신은 1마일 떨어진 곳에서도 그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그 단어를 더 많이 소리 내어 말하면 냄새는 더 짙어지고, 냄새가 짙어질수록 더 크게 흥행한다.”△“앤디 워홀의 가장 위대한 작품은 앤디 워홀 자신”흥행사로서 그는 자신의 작품 소재를 최대한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거나 대중적인 소재로 한정했다. 마릴린 먼로나 엘리자베스 테일러 같은 ‘셀럽’, 코카콜라나 캠벨수프 같은 인기 소비상품, 미디어에 오르내린 각종 사건이나 사고의 이미지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복잡하고 관념적인 것, 고급문화와 관련한 것은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물론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심판’ 같은 순수미술의 걸작을 활용한 작품도 있지만, 사실 이들 걸작도 워낙 유명해 이미 대중들에게는 ‘셀럽’ 같은 것이었다. 작품 수용의 측면에서는 미술관이나 갤러리 같은 전시장 못지않게 매스미디어를 통한 소통을 중시했다. 미디어가 자신의 작품을 자주, 크게 다루도록 하기 위해 그는 스스로가 셀럽이 돼야 한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깨달았다. 그러니까 작품만 부각하고 예술가는 조명 뒤로 숨는 게 낫다는 전통적인 사고를 버리고, 작품 자체보다 자기를 알리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썼다. 그래서 젊은 날부터 ‘앤디 슈트’라고 불리는 튀는 옷을 입고 가발까지 써서 누구라도 한 번 보면 결코 잊지 못할 독특한 페르소나를 창조했다. 자연히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미디어의 주목을 받은 그는 결국 “앤디 워홀의 가장 위대한 작품은 앤디 워홀 자신”이라는 말까지 듣게 된다. 종내는 그 스스로가 그의 예술의 표본이자 척도가 돼버렸다. 국내 한 갤러리가 연 ‘팝아트’ 전에 걸린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 연작. 워홀이 캠벨수프·코카콜라 등 인기 소비상품과 함께 제작한 ‘셀럽’ 시리즈 중 하나다. 먼로를 비롯해 엘리자베스 테일러, 엘비스 프레슬리, 마오쩌둥 등은 워홀이 즐겨찾은 ‘단골 유명인’이었다(사진=이데일리DB).워홀은 ‘비즈니스맨’답게 작품제작 과정 또한 매우 효율적으로 관리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였다. 그는 전통적인 회화 제작 방식을 버렸다. 주로 실크스크린 판화에 기초한 형식으로 작품을 제작함으로써 기계적인 방식이 주가 되게 했다. 이렇게 하니 작품을 빠른 시간에 다량으로 생산할 수 있었고, (많은 부분을 자신이 직접 하지 않고 조수들에게 맡겼어도) 작품의 질 또한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자신의 작업실을 워홀은 ‘팩토리’, 곧 공장이라고 불렀다. △1960년대 비틀스와 함께 팝문화 이끈 쌍두마차 평가이처럼 미술하고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철저히 상업적인 마인드로 미술에 접근한 워홀은 바로 그 전략으로 철옹성 같던 순수예술의 높은 벽을 허물어뜨렸고, 결과적으로 대중이 미술에 보다 쉽고 편하게 접근하게 함으로써 ‘미술의 영토’를 확장하는 공을 세웠다. 경직돼 있던 미술에 대한 관념이 그로 인해 ‘경천동지’할 정도로 바뀌어서 사람들은 이전에 비해 훨씬 개방적이고 유연하며 자유로운 시각으로 예술을 즐길 수 있게 됐다. 미술을 대중의 품에 안긴 그의 이런 성취를 기려 ‘라이프’지 1969년 송년호는 커버스토리 ‘1960년대-격동과 변화의 10년’에서 워홀을 비틀스와 함께 당대의 팝문화를 이끈 쌍두마차로 평가했다. 순수예술계(?)에 속한 인물이 당시 세계 최고 팝스타와 동급의 스타로 인정받은 것이다. 비록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지금도 강하게 살아 있어, 대중을 대상으로 그가 만든 이미지에 대한 인지도 조사를 해 보면 헬로키티 이미지와 거의 동급으로 나온다. 워홀이 제작한 이미지를 담은 의상, 팬시상품, 가구 등이 지금도 계속 출시되는 이유다. 물론 고가의 작품을 거래하는 미술시장에서도 그는 여전히 환영을 받는다. 현재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는 작품은 2008년 거래된 ‘여덟 명의 엘비스’로, 인플레이션율을 감안해 계산하더라도 2019년 미국 달러화 기준으로 1억 1870만달러(약 1394억원)에 이른다. ※ 캠벨수프 통조림(Campbell’s Soup Cans) 1962년 7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페러스갤러리에 낯선 장면이 펼쳐졌다. 뜬금없이 통조림 32개가 등장한 것이다. 동네 슈퍼마켓에 진열한 상품과 다를 게 없었다. 각기 다른 32가지 맛이 담긴 수프 통조림 세트. 물론 슈퍼마켓의 그것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실물이 아니라 인쇄물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식료품 진열대를 만들고 진짜 수프 통조림인 양 하나하나 선반 위에 올려 전시했다. 이것이 바로 이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통조림이 된, 앤디 워홀의 ‘캠벨수프 통조림’이다. 워홀의 새로운 시도가 늘 그랬듯, 세간의 조롱을 있는 대로 다 받으며 한 개당 100달러씩 판매했던 그 ‘작품’(당시 진짜 캠벨수프 통조림은 캔당 29센트였다)은 전시에서 32개 중 6개가 예약판매가 됐다. 하지만 작품의 진가를 알아보는 이는 늘 따로 있는 법. 갤러리 디렉터이던 어빙 블럼이 6개에 대한 예약판매를 일일이 취소시키고 32개 모두를 1000달러(약 113만원)에 사들인다. 그 뒷이야기는 알려진 그대로다. 33년 뒤인 1995년 ‘캠벨수프 통조림’은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1450만달러(약 164억 4000만원)로 몸값을 높여 다시 팔렸다. 워홀을 더 유명하게 만들고, 워홀에 의해 더 유명해진 캠벨수프는 이후 ‘캠벨수프 통조림’ 100개 연작, 찢어진 라벨과 찌그러진 통조림 등으로 변주를 이어가며 워홀이 주도한 미국 팝아트의 핵이 됐다.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전시 중인 앤디 워홀의 ‘캠벨수프 통조림’. 워홀의 대표작이자 대중의 소비문화를 현대미술 영역으로 끌어들인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뉴욕현대미술관은 1962년 32점 연작으로 제작한 작품을 1995년부터 소장해왔다.△이주헌 미술평론가는… 미술로 삶을 보고 세상을 읽는다. 좀 더 많은 이들이 미술을 통해 일상의 풍요를 누리도록 글 쓰고 강연하는 일이다. 소명으로 여긴다고 했다. 발단이 있다. 홍익대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돌연 일간지 기자가 되면서다. 그림에 관심을 잃어서가 아니라 그림을 막은 생계 때문이었다. 낮에 일하고 밤에 그리자 했다. 하지만 ‘투잡’은 쉽지 않았다. 미술담당 기자생활에서 얻은 필력과 생각을 가지고 현장으로 나왔다. 미술을 대중과 제대로 연결하는 미술평론가의 ‘진정한’ 역할, 그것을 해보자 했다. 그렇게 가나아트 편집장을 하고, 학고재 관장을 오래 한 뒤 서울미술관 초대관장까지 지냈다. 지금은 양현재단 이사로 있으면서 온전히 글과 강연에만 집중하고 있다. 지은 책이 수십 권이다. 굳이 대표작을 꼽자면 ‘신화의 미술관’(2020), ‘리더의 명화수업’(2018), ‘역사의 미술관’(2011), ‘지식의 미술관’(2009), ‘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 1·2’(2005) 등이 있다.
- [마켓인]코로나 영향에…국내 벤처투자, 200억원 미만 중소형에 몰렸다
- [이데일리 이광수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올해 상반기 국내 벤처·스타트업 투자는 대형 투자가 감소하고 200억원 미만 규모의 중소형 투자가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삼정KPMG가 22일 발간한 보고서 ‘2020년 상반기 벤처·스타트업 투자를 통해 본 유망 산업 및 기업 분석’에 따르면, 국내 벤처·스타트업의 투자 규모가 밝혀진 사례를 집계한 결과 200억원 미만의 투자가 총 145건(90.1%)으로 코로나 영향으로 중소형 투자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다.200억~1000억원 사이의 중대형 투자는 15건(9.3%)이었고, 1000억원 이상의 대형 투자는 1건(0.6%)으로, 신선 식품 이커머스 쇼핑몰인 마켓컬리를 운영하는 컬리에 투자됐다.2020년 상반기 국내 벤처 기업에 대한 신규 투자액의 경우, 중소벤처기업부 발표에 따르면 전년 동기 대비 17% 감소한 1조 6495억 원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산업 분야별로는 유통·커머스가 4323억원으로 가장 많은 투자금을 유치했고, 헬스케어·바이오(2550억원)와 소프트웨어·솔루션(1745억원), 모빌리티(1432억원), 게임·미디어·콘텐츠(1260억원)가 뒤를 이었다.건당 평균 투자액이 가장 높은 산업 역시 유통·커머스(197억원)였으나, 컬리를 제외하면 111억원으로 줄어들며 이와 함께 모빌리티(159억원), ICT 제조업(118억원) 등이 100억원 이상의 건당 평균 투자액을 기록했다.2020년 상반기 글로벌 VC 투자액은 1200억 달러 이상으로 전년 동기 대비 소폭 감소했으나, 투자 건수는 1만여 건으로 코로나 이전에 비해 약 3분의 1 가량 감소했다. 특히 엔젤과 시드 단계의 초기 투자가 급격히 줄고 후기 단계 투자를 선호하는 현상이 심화됐다.글로벌 벤처·스타트업이 엑시트할 수 있는 M&A와 IPO 시장도 크게 위축됐다. 국경 간 봉쇄로 기업 실사가 어려워지면서 크로스보더 M&A 거래는 감소했으며, 벤처·스타트업들은 IPO를 미루고 기업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VC나 PE 추가 투자 라운드를 통해 확보해 나가고 있다. 코로나로 상당수의 VC 투자사는 신규 펀드 조성이나 신규 투자를 위한 딜 소싱보다는 기존 투자 포트폴리오 재정비에 집중하는 것으로 분석됐다.삼정KPMG가 올해 상반기 3억 달러 이상 VC 투자를 받은 해외 기업 중 52 개사를 분석한 결과, 모빌리티 분야 기업이 10개로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헬스케어·바이오(8개), 금융·핀테크(8개) 분야가 뒤따랐다. 투자 유치 규모가 가장 큰 기업은 구글(알파벳)의 자율주행 기술 개발사 웨이모(Waymo)와 인도네시아 승차공유 기업 고젝(Gojek)이었다.보고서는 주목할 만한 글로벌 VC 투자 트렌드로 △중국·신흥국에 몰리는 에듀테크 △코로나19로 탄력 받은 음식·신선식품 배달 플랫폼 △유전자 치료 및 마이크로바이옴 △승차 공유 서비스와 모빌리티 기술 △핀테크 유니콘 △클라우드 기반 SaaS(Software as a Service) △미국, 중국 중심 프롭테크 △숏폼(Short-form) 동영상 스트리밍 등을 제시했다.김이동 삼정KPMG 스타트업지원센터장은 “예기치 않은 코로나 사태로 벤처·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위축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사업 전망이 유망한 이른바 ‘알짜 매물’이 늘어날 수 있는 가능성도 높다”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응해 새로운 성장모델을 찾고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내 기업들의 전략적인 벤처·스타트업 투자 참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 [이주헌의 혁신@미술]<17> "막장 연극에 초대합니다"…대중 열광시킨 블루오션
- 호가스의 유화 연작 ‘유행에 따른 결혼’ 중 ‘결혼계약’(1743년경). 당시 영국 상류사회에 팽배해 있던 부도덕한 결혼 세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 연작은 부와 명예의 맞교환을 전제로 맺은 정략결혼이 희비극적 결말로 가는 단계를 하나씩 꺼내 보여준다. 총 여섯 점의 연작 중 첫 번째인 ‘결혼계약’은 공허한 사치와 방종으로 치닫던 부부관계가 결국 파국을 맞는 막장연극의 서막에 해당한다.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 소장.미술은 사람을 움직였습니다. 밥으로만 채울 수 없는 풍요와 평화를 안겨줬으니까요. 그림의 힘이고 조각의 에너지입니다. 하지만 미술의 역할이 이뿐이라 한다면 미술을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문명을 이끌고, 의식을 뒤집고, 결정적으로 돈의 흐름을 주도했던, 그것을 못 본 겁니다. 미술의 사조와 양식이 탄생할 때마다 세계경제에는 ‘변화의 그림’이 걸렸습니다. 바로 ‘혁신’을 주도했던 겁니다.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 이주헌 미술평론가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장면,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미술로 이룬 혁신’의 현장입니다.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아트인문학의 세상으로 안내합니다. <편집자주> [이주헌 미술평론가] 코로나19로 인류의 생명과 건강이 크게 위협받고 경제도 많이 위축되고 있지만 이 어려운 환경도 하기에 따라서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바로 그런 자신감, 그런 희망이 요구되는 시대다. 그런 측면에서 18세기 영국 화가 윌리엄 호가스(1697∼1764)는 되새겨볼 만한 가치가 있는 예술가다. 호가스는 당시 영국 화단의 구조적 모순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도저히 성취할 수 없자 그 구조에 매달리기보다 틀 밖으로 뛰쳐나가 성공한 화가다. 그럼으로써 제약과 한계를 기회로 바꿨다. 그렇게 영국미술사에서 혁신의 아이콘이 됐다. 호가스가 살던 당시 영국의 귀족과 미술애호가들은 자국 출신의 미술가들을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네덜란드 등 전통적인 ‘미술 강국’의 거장들에게 더 관심이 많았다. 이런 배경에는 오래전부터 영국 왕실에서 홀바인(1465?∼1524)이나 반 다이크(1599∼1641)처럼 대륙의 실력 있는 화가들을 궁정화가로 초빙해온 역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런 답답한 현실 앞에서 호가스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함으로써 답을 찾았다. 귀족과 애호가들의 눈에 들기가 쉽지 않다면, 아예 이 ‘레드오션’으로부터 벗어나자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러고는 고급 예술과는 거리가 먼 서민들을 향해 나아갔다. 이른바 ‘블루오션’을 찾은 것이다. 다른 많은 화가들이 어떻게 해서든 제도 안에서 성공하려고 눈물겨운 투쟁을 벌일 때 그는 그렇게 과감하게 제도에서 벗어났다. △대중, 조형적 성취보다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에 더 관심호가스는 꼼꼼하게 대중을 관찰했다. 귀족이나 미술애호가들과 달리 대중은 조형적 성취나 세련된 스타일 같은 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미술은 시각예술이지만, 대중은 미술작품 앞에서 늘 이야기부터 찾았다. 얼마나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지닌 작품인지 그것에 더 관심이 많았다. 이를 깨달은 호가스는 스스로 ‘시각예술가’이기 이전에 ‘스토리텔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미술작품의 승부를 조형이 아니라 스토리에서 찾은 것이다. 호가스는 그렇게 콘텐츠의 중요성에 눈을 떴다. 당시 영국에서는 오페라 형식을 빌린 서민적인 음악극 ‘발라드 오페라’가 인기를 끌고 있었다. 또 영웅이 아니라 시민을 주인공으로 한 가정비극이 연극무대를 장악하고 있었다. 늘 억압과 모순에 치여 사는 대중은 그렇게 권력자나 기득권자, 속물들을 비판하고 인간의 어리석은 행위를 풍자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에 착안한 호가스는 자신의 콘텐츠도 그와 궤를 같이하는 방향으로 잡았다. 그렇게 해서 ‘근대의 도덕 주제’라는 타이틀 아래 마치 하나의 도덕 드라마를 보는 듯한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스토리를 중시한 호가스는 자신의 그림이 일종의 연극이란 생각을 갖게 됐다. 그래서 그 스스로 ‘극작가’와 ‘연출가’가 돼 스토리를 전개하고 이미지를 구성했다. 아무래도 단품으로는 스토리를 다 담기가 어려워 연작을 많이 제작했다. 당시로써는 매우 혁신적인 그의 그림은 대중을 열광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는 당대 최고의 예술가 자리에 올랐다. 이렇게 스토리로 승부를 봐 정상에 오른 까닭에 그는 화가이면서도 “셰익스피어 다음가는 희극작가”란 찬사를 듣게 됐다. △극작가·연출가 자처한 호가스…‘유행에 따른 결혼’ 등 연극 같은 연작 제작여기서 그의 대표작 ‘유행에 따른 결혼’ 시리즈를 살펴보자. 이 작품은 모두 여섯 점으로 이뤄진 연작이다. 첫 번째 그림 ‘결혼계약’(1743년경)은 정략결혼을 위한 흥정이 주제다. 무대는 어느 백작의 저택이다. 저택 안에서 백작과 상인이 자식들의 결혼 조건을 꼼꼼히 따지고 있다. 맨 오른쪽에 그린 백작은 지금 발을 다쳤음에도 애써 우아한 포즈를 취하며 자신의 가계가 얼마나 대단한지 상인에게 설명하고 있다. 가계는 대단한지 몰라도 그는 지금 돈이 매우 아쉽다. 허영에 들떠 살다 보니 씀씀이가 헤퍼졌다. 그림 맨 왼쪽에 그린 백작의 아들도 허영에 들떠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값비싼 프랑스식 패션으로 잔뜩 멋을 부렸고 거울을 보느라 다른 데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이렇듯 형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낭비하며 사는 영국 귀족들, 그로 인해 오늘 돈에 ‘아들(가문)까지 파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백작의 아들과 나란히 앉은 처녀는 상인의 딸이다. 그녀는 신랑이 될 사람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곁에 있는 변호사와 시시덕거린다. 바로 이 장면에서 우리는 이 정략결혼이 가져올 미래의 비극을 예견할 수 있다. 호가스가 그린 나머지 다섯 점의 그림은 이후의 상황을 특유의 드라마식 전개로 보여준다. 신부의 지참금으로 방탕한 삶을 살던 신랑은 바람을 피우다가 성병에 걸리고, 무료해진 신부는 앞선 그림에서 시시덕거리던 변호사와 연애에 빠진다. 이를 알고 두 사람을 덮친 신랑은 결국 변호사의 칼에 찔려 죽고, 변호사는 체포돼 교수형에 처해진다. 남편도 잃고 애인도 잃은 신부는 그 막막한 현실로부터 출구를 찾지 못하고 끝내 자살하고 만다. 당시 영국의 귀족이나 부유층은 이렇듯 정략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화가는 이 그림을 통해 그들의 ‘일그러진 욕망’을 호되게 비판함으로써 대중으로 하여금 쾌감을 맛보게 했다. 호가스의 유화 연작 ‘유행에 따른 결혼’ 연작’ 중 ‘러브호텔’(1745). 호가스의 회화작품이 인기를 끌자 대중적 보급을 위해 제작한 판화작품이다. 신부의 불륜 현장을 급습한 신랑이 칼에 찔려 죽어가고 있고, 살인자가 된 변호사는 오른쪽 창으로 달아나고 있다. 회화작품에서는 인물들의 동선이 반대 방향으로 진행한다.대중의 관심을 사고 크게 인기를 끌었다 해도 그림이 팔리지 않으면 화가로서는 생존하기가 쉽지 않다. 어차피 영국의 귀족과 미술애호가들은 그에게 큰 관심이 없었고 당시 가난한 서민들은 값비싼 유화를 사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명성과 인기를 얻었다 해도 살아가기는 여전히 팍팍하지 않았을까. 아니었다. 호가스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가능한 판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호가스는 인기를 끈 자신의 그림을 판화로 다시 제작해 팔았다. 사실 그는 회화에 입문하기 전, 판화공방에서 먼저 일을 했다. 아버지가 빚으로 5년 동안 옥살이를 할 만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정규 교육 코스를 밟을 수 없었다. 그래서 기술자에 가까운 판화공의 길로 먼저 들어섰고, 그 경험이 그로 하여금 일찍부터 판화가 갖는 대중예술로서의 장점과 잠재적인 가능성을 두루 이해하게 했다. 그러니까 ‘대중화’란 블루오션으로 나아간 이상 호가스는 그 스토리부터 표현 형식, 나아가 미디어까지 일관되게 대중과 코드가 맞아야 한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이를 실행할 능력 또한 두루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일반 대중이 유화를 사기는 어려워도 판화는 얼마든지 살 수 있다. 판화야 수요만 있다면 같은 그림을 수없이 찍어낼 수 있으므로 유화에 비해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장점이 있다. 예상대로 그의 회화가 관심을 받고 인기를 얻을수록 그의 판화 또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얼마나 잘 팔렸는지 그 인기에 편승해 그의 판화를 그대로 베껴 파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올 정도였다.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하는 것을 묵과할 수 없던 호가스는 의회에 청원을 해 판화 원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저작권법을 제정하게 했다(1734년 호가스법). 법의 보호까지 받게 된 그의 작품은 유럽 여러 나라에 널리 팔려나갔고, 이후 그의 작품과 유사한 스타일의 시사풍자화는 죄다 ‘호가시안’(a Hogarthian scene)이라고 불리게 됐다.호가스가 동시대의 다른 예술가들처럼 기존의 제도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전긍긍했다면 결과가 어땠을까. 오늘날 미술사가 평가하는 그런 대가의 반열에는 결코 오를 수 없었을 것이다. 호가스는 애초에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지는 못했지만, 결국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얻었다. 이 모든 게 그의 앞에 놓인 제약과 한계 덕이었다. 그게 새옹지마가 됐다. 그런 점에서 때로 한계는, 한계로 위장한 기회다. 혁신은 빈번히 한계 혹은 위기와 함께 찾아온다. ※ “셰익스피어 다음가는 희극작가”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윌리엄 호가스(1697∼1764)는 어린 나이에 판각가의 도제가 돼 판화·삽화기술을 익혔다. 비록 하는 일은 소소했지만 야망은 컸다. 명예와 부를 거머쥘 수 있는 역사화가가 되는 것. 이를 목표로 거의 독학으로 그림공부를 하던 중 우연찮은 기회를 잡는다. 영국 왕 조지 1세의 궁정화가인 제임스 손힐 경의 집에 들어가 소묘수업을 받게 된 것이다. 5년쯤 뒤인 1729년에는 손힐 경의 딸과 결혼도 했다. 호가스의 결혼생활이 어땠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도덕적 교훈을 주제로 화면을 마치 연극무대처럼 꾸민 회화 연작은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매춘부의 편력’(1731∼1732), ‘난봉꾼의 편력’(1732∼1735), ‘유행에 따른 결혼’(1743∼1745), ‘새우 파는 소녀’(1740∼1745) 등이 연달아 나왔다. 호가스 스스로 ‘그림으로 쓴 희극’이라 했던 시리즈다. 실제인물을 모델로 세상의 병폐를 날 세워 풍자한 통찰력은 미술계뿐만 아니라 문학계에까지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는데, 근엄하게 꾸짖기보다 ‘그렇게 살다간 저 꼴 나기 십상’이라는, 마치 셰익스피어의 위트 넘치는 희극에 색을 입힌 듯한 느낌을 줬던 것이다. 덕분에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기세에 눌려 자국의 예술에 열등감을 갖고 있던 영국문화의 환경 전반을 극복하는 데도 적잖은 역할을 했다. 그 공적 덕인지 1757년부터 조지 2세에 이어 조지 3세의 궁정화가로도 활약할 수 있었다. 비록 역사화가는 못 됐지만 역사는 제대로 쓴 인물로 남았다. 호가스가 그린 자화상 ‘화가와 그의 퍼그’(1745). 호가스는 18세기 영국 화가들이 처한 ‘레드오션’에서 벗어나 아예 고급 예술과는 거리가 먼 서민을 향해 나아가는 것으로 ‘블루오션’을 찾았다. 시각예술가이기 이전에 ‘스토리텔러’가 되기로 작정하고 작품의 승부를 조형이 아니라 스토리에 걸었다. 영국 런던 테이트갤러리 소장.△이주헌 미술평론가는… 미술로 삶을 보고 세상을 읽는다. 좀 더 많은 이들이 미술을 통해 일상의 풍요를 누리도록 글 쓰고 강연하는 일이다. 소명으로 여긴다고 했다. 발단이 있다. 홍익대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돌연 일간지 기자가 되면서다. 그림에 관심을 잃어서가 아니라 그림을 막은 생계 때문이었다. 낮에 일하고 밤에 그리자 했다. 하지만 ‘투잡’은 쉽지 않았다. 미술담당 기자생활에서 얻은 필력과 생각을 가지고 현장으로 나왔다. 미술을 대중과 제대로 연결하는 미술평론가의 ‘진정한’ 역할, 그것을 해보자 했다. 그렇게 가나아트 편집장을 하고, 학고재 관장을 오래 한 뒤 서울미술관 초대관장까지 지냈다. 지금은 양현재단 이사로 있으면서 온전히 글과 강연에만 집중하고 있다. 지은 책이 수십 권이다. 굳이 대표작을 꼽자면 ‘신화의 미술관’(2020), ‘리더의 명화수업’(2018), ‘역사의 미술관’(2011), ‘지식의 미술관’(2009), ‘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 1·2’(2005) 등이 있다.
- [이주헌의 혁신@미술]<13> 느리게 보아야 아름답다…창조도 그렇다
- 독일 함부르크의 쿤스트할레가 진행한 ‘2017년 슬로우아트데이’에 참여한 관람객들이 스위스 화가 아르놀트 뵈클린(1827∼1901)의 회화 ‘신성한 숲’을 감상하고 있다. 이 해의 슬로우아트데이에 쿤스트할레에서는 뵈클린 외에도 바로크시대 프랑스 화가인 클로드 로랭(1600∼1682), 러시아 태생 프랑스 화가 마르크 샤갈(1887∼1985) 등의 작품을 선정, 관람객들이 함께 감상하고 서로의 의견을 교환했다. 아래 거북이는 ‘슬로우아트데이’의 공식 마스코트다(사진=슬로우아트데이 홈페이지).미술은 사람을 움직였습니다. 밥으로만 채울 수 없는 풍요와 평화를 안겨줬으니까요. 그림의 힘이고 조각의 에너지입니다. 하지만 미술의 역할이 이뿐이라 한다면 미술을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문명을 이끌고, 의식을 뒤집고, 결정적으로 돈의 흐름을 주도했던, 그것을 못 본 겁니다. 미술의 사조와 양식이 탄생할 때마다 세계경제에는 ‘변화의 그림’이 걸렸습니다. 바로 ‘혁신’을 주도했던 겁니다.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 이주헌 미술평론가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장면,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미술로 이룬 혁신’의 현장입니다.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아트인문학의 세상으로 안내합니다. <편집자주> [이주헌 미술평론가] “예술작품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무슨 씨앗을 뿌리게 될 것인가 하는 사실이다. 예술가는 죽고 한 장의 그림은 사라질 수 있다. 남는 것은 오직 그것이 뿌린 씨앗이다.” 스페인 출신의 화가 호안 미로(1893∼1983)가 한 말이다. 예술가의 창조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감상자의 수용이란 것이다. 제아무리 훌륭한 예술작품도 감상자의 마음 밭에 뿌려져 풍요로운 결실을 맺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런 점에서 창조의 과정에서 창작자 못지않게 중요한 존재가 감상자다. 창조의 가치를 결정하는 궁극적인 존재가 감상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미술의 선구자 마르셀 뒤샹(1887∼1968)은 이런 말을 했다. “예술가만이 유일하게 창조 행위를 완성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을 외부세계와 연결시켜주는 것은 관람객이기 때문이다. 관람객은 작품이 지닌 심오한 특성을 해독하고 해석함으로써 창조적 프로세스에 고유한 공헌을 한다.” 이렇게 중요한 존재가 감상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예술적 창조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감상자는 매우 주변적이고 수동적인 존재로 취급받았다. 이는 명백한 잘못이다. 소비자가 없는 상품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감상자가 없는 예술은 아무 의미가 없다.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졌을 때 그 가치가 가치 있다고 판별하는 존재는 기업이나 예술가가 아니라 소비자와 감상자다. 그런 점에서 근래 들어 세계적으로 감상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제고되고 있는 것은 지극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감상자 없는 예술은 의미 없어…‘감상의 가치’ 새롭게 인식 그 흐름의 하나가 ‘슬로우아트운동’(Slow Art Movement)이다. 슬로우아트운동은 미국의 컨설팅회사 ‘크리에이티브 굿’(Creative Good)의 CEO 필 테리가 2008년 고안한 미술감상운동이다. 테리는 뉴욕의 유태인박물관에서 한스 호프만(1880∼1966)과 잭슨 폴록(1912∼1956)의 추상화 두 점을 몇 시간 동안 넋이 빠진 듯 보다가 이 운동을 생각해내게 됐다. 대부분의 미술관 관람객은 작품을 진득하게 보지 않는다. 2001년 부부 교육학자인 제프리 스미스와 리사 스미스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6점의 걸작을 대상으로 한 ‘관람객 감상실태’ 조사에 따르면, 관람객이 작품 한 점당 쏟은 감상시간은 평균 17초였다. ‘소셜미디어’의 시대에는 17초도 긴 시간이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데 불과 17초만 쓴다는 것은 관람객 대부분이 제대로 된 감상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테리는 미술감상이 지닌 무한한 가치를 사람들이 충분히 얻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2009년 뜻을 같이하는 16곳의 미술관과 함께 ‘슬로우아트데이’(Slow Art Day)를 공식적으로 출범시켰다. 매년 하루를 정해 진행하는 슬로우아트데이 행사에서는 행사에 동의한 관람객들이 자원봉사자의 인솔 아래 다섯 점의 작품을 하나당 10분 이상씩 모두 한 시간가량 감상하게 된다. 감상을 마친 관람객들은 삼삼오오 모여 점심을 함께하며 자신의 감상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노먼록웰박물관이 진행한 ‘2019년 슬로아트데이’ 포스터. 미국의 일상생활을 대중적으로 표현해 미국인에게서 많은 사랑을 받은 화가이자 삽화가인 노먼 록웰(1894∼1978)의 1955년 작 ‘아트비평’(Art Critic)을 슬로우아트데이와 연결한 재치가 엿보인다(사진=노먼록웰박물관 홈페이지).이 감상에서 중요한 것은 미술관 쪽에서 사전에 작품에 대한 배경 지식이나 정보를 전혀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람객은 오로지 작품과 일대일로 마주해 자신의 감관으로만 작품을 느끼고 그 안에 몰입해 명상에 가까운 감상을 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시각과 관점에 기초해 주체적으로 감상을 하는 것이다. 창의적인 해석과 연상이 이어지고, 다른 관람객들과 토론까지 하다 보면 갖가지 신선한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2019년까지 세계에서 모두 1500가지 이상의 이벤트가 이 운동의 일환으로 열렸다. 아쉬운 것은, 우리나라의 미술관이 이 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야기를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기업, 소비자의 미적 욕구 못 채우면 도태될 수밖에”일본의 미술관 가운데서는 이 슬로우아트 개념을 비즈니스맨을 위한 감상프로그램에 특화해 적용한 사례도 있다.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의 ‘미술관에서의 대화’(Dialog in the Museum)라는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신청자를 다섯 명씩 여섯 개 그룹으로 나눠 한 시간 동안 미술관의 소장품 세 점을 감상하게 했다. 각 그룹에는 스태프를 한 사람씩 배치하는데, 이들은 대화를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이 프로그램이 슬로우아트데이 프로그램과 다른 점은, 슬로우아트데이에서는 먼저 감상을 하고 나중에 모여 토론을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서는 한 시간 동안 감상과 대화가 함께 이뤄진다는 것이다. 물론 이 프로그램도 사전에 작품에 대한 정보를 주지는 않는다. “미술에는 정답이 없다”가 이 프로그램의 ‘그랜드 룰’이다. 스태프는 주로 질문을 던져 참가자의 의문이나 깨달음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며, 자율적인 반응을 충분히 이끌어냈다고 판단하면 준비한 작품 정보를 건네준다. 이렇게 감상을 마친 뒤에는 ‘미술감상이 왜 비즈니스에 필요한지’에 대해 일본 최고의 전략 컨설턴트로 꼽히는 야마구치 슈의 강의를 듣는다.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의 주임연구원인 이치조 아키코는 이 프로그램의 초점이 “평론가나 미술사학자가 작품에 부여하는 가치의 맥락이 아니라, 참여자로서 나에게 그 작품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있다”고 말한다. 이런 주체적인 감상을 통해 자신만의 미의식을 단련함으로써 비즈니스 활동에 도움이 되는 직관력과 직감력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이 프로그램의 공동개발자이기도 한 야마구치는 일본 내에서 ‘미의식의 제고를 통한 비즈니스 역량의 확대’를 주창해온 선구자로 유명하다. 그의 저서 ‘세계의 리더들은 왜 직감을 단련하는가’(2017)는 우리말 번역본으로도 나와 있다(우리말로는 ‘직감’이라고 했지만, 책의 일본어 원제는 ‘미의식’이다).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미술관이 ‘2018년 슬로우아트데이’ 감상작품으로 선정한,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뷔야르(1868∼1940)의 ‘집안의 헤셀 부인’(Madame Hessel at Home·1908). 휴스턴미술관 소장.야마구치는 비즈니스 종사자들이 미의식을 키워야 하는 이유가 “논리·분석·이성에 발판을 둔 경영, 이른바 ‘과학 중시의 의사결정’으로는 요즘처럼 복잡하고 불안정한 세계에서 비즈니스를 리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짚는다. 이와 관련해 세계의 수많은 기업과 사람을 인터뷰한 야마구치는, 오늘날 대부분의 기업이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정보처리 능력을 갖춰 오히려 차별화가 소실된 현실, 그리고 세계시장이 자기실현적 소비의 장이 된 까닭에 기업이 소비자의 상상력과 미의식에 기초한 미적 욕구를 채우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세계의 엘리트들로 하여금 미의식을 단련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영국 명문 미술대, MBA 코스 개설…디자인적 사고로 경영 능력 키우게 그래서 포드, 비자, 글락소스미스클라인, 후지츠 등 세계 굴지의 기업들은 자사의 경영 후보들을 세계 대학 순위에서 미술·디자인 분야 1위인 영국 왕립미술대학원에 보내 트레이닝을 받게 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는 ‘디자인사고 프로그램’을 개설해 리더들로 하여금 리더십과 창조성을 연계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도록 돕고 있다. 보다 본격적으로는 2017년 영국 런던예술대 산하의 센트럴세인트마틴스칼리지가 명문 미술대로는 처음으로 MBA 코스를 개설해 디자인적 사고에 기초한 경영 능력의 증진을 체계적으로 꾀하고 있다. “핵심적인 비즈니스 스킬과 미술·디자인대학의 창의성과 실험정신을 결합한 것”이 이 코스의 요체라고 담당교수 제러미 틸은 설명한다. 런던대의 브릭벡칼리지가 이 진취적인 코스의 협업대학으로 함께하고 있다. 이 모든 현상은 이제 관람객의 입장에서 미술을 수용하고 소비하는 것이 더 이상 단순한 수동적 감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우 광범위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활동임을 말해준다. 진취적이고 주체적인 해석을 통한 창조성의 발현, 나아가 비즈니스 현장에서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혁신적으로 시장을 개척하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능력의 배양까지 말이다. 미술과 디자인은 이제 더 이상 ‘알면 좋은 세계’가 아니다. ‘꼭 알고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세계’다. ※ 슬로우아트(Slow Art) ‘느림의 미학’ 또는 ‘느림의 예술’을 뜻한다. 예술가보다는 감상자에게 권하는 개념이다. 예술작품을 대할 때 그저 ‘공무처리’하듯 경직된 시선으로 흘려보내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감상해보자는 취지를 반영한다. 실제 이를 미술감상에 적용한 것이 ‘슬로우아트운동’이고, 그 운동 안에서 구체적인 실천안을 마련한 것이 ‘슬로우아트데이’다. 미술관에 따라 또 작품·작가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관람객이 한 작품 앞에서 머무는 평균시간이 채 30초가 되지 않는다는 각성이 바탕이 됐다. 매해 하루(주로 4·5월에 열어왔다) 사전신청한 관람객이 행사에 참여하는 각 지역 미술관·갤러리를 방문해 5점의 미술작품을 최소 10분 동안 감상하게 하자는 게 기본 줄기다. 2009년 ‘슬로우아트데이’를 출범할 당시에는 미국·캐나다·유럽 등 16곳의 미술관·갤러리가 참여했으나 10주년을 넘기면서 세계 각국 166곳의 미술관·갤러리가 함께하고 있다. 미국 시카고의 현대미술관,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벨기에 브뤼셀의 왕립미술관, 독일 함부르크의 쿤스트할레 등 유수의 미술관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 참여하고 있는 곳이 없다. △이주헌 미술평론가는… 미술로 삶을 보고 세상을 읽는다. 좀 더 많은 이들이 미술을 통해 일상의 풍요를 누리도록 글 쓰고 강연하는 일이다. 소명으로 여긴다고 했다. 발단이 있다. 홍익대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돌연 일간지 기자가 되면서다. 그림에 관심을 잃어서가 아니라 그림을 막은 생계 때문이었다. 낮에 일하고 밤에 그리자 했다. 하지만 ‘투잡’은 쉽지 않았다. 미술담당 기자생활에서 얻은 필력과 생각을 가지고 현장으로 나왔다. 미술을 대중과 제대로 연결하는 미술평론가의 ‘진정한’ 역할, 그것을 해보자 했다. 그렇게 가나아트 편집장을 하고, 학고재 관장을 오래 한 뒤 서울미술관 초대관장까지 지냈다. 지금은 양현재단 이사로 있으면서 온전히 글과 강연에만 집중하고 있다. 지은 책이 수십 권이다. 굳이 대표작을 꼽자면 ‘신화의 미술관’(2020), ‘리더의 명화수업’(2018), ‘역사의 미술관’(2011), ‘지식의 미술관’(2009), ‘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 1·2’(2005) 등이 있다.
- LGU+, 국제 XR 연합 선도…"전 세계에 색다른 경험 선사"(종합)
- XR 얼라이언스 출범을 기념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좌측부터 VR콘텐츠팀 신중경 팀장, 5G서비스그룹장 김준형 상무, FC부문장 이상민 부사장, AR/VR서비스담당 최윤호 상무. (사진=LG유플러스)[이데일리 유태환 기자] 대한민국이 전 세계 주요 국가의 5G 콘텐츠 시장 선도를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다. 6개국 7개 사업체가 확장현실(XR) 산업 육성을 위해 모인 연합체 결성을 주도하면서다.LG유플러스(부회장 하현회)는 1일 미국 반도체 업체 퀄컴(Qualcomm Technologies, Inc.), 중국·일본·캐나다 이동통신사인 차이나텔레콤(China Telecom)·KDDI·벨 캐나다(Bell Canada)와 이같은 ‘글로벌 XR 콘텐츠 텔코 알라이언스’(Global XR Content Telco Alliance)를 창립했다. 다국적기업이 참여하는 5G 콘텐츠 연합체 출범은 세계 최초로 LG유플러스는 첫 번째 의장사격인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를 맡는다. XR은 5G 시대의 핵심 콘텐츠로 불리는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 등 미래에 등장할 신기술까지 포괄하는 확장현실(eXtended Reality)을 의미한다.LG유플러스는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각 회원사들과 화상회의를 통해 XR 얼라이언스의 공식 출범식을 알렸다. ◇“5G 잠재력 실현, 콘텐츠 생태계 촉진 기대”XR 얼라이언스에는 창립멤버인 4개국 이동통신사(Telco)와 ‘Ecosystem member’ 퀄컴 외에도 세계 최고 수준의 5G 콘텐츠 제작업체(Studio)들이 파트너사로 참여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 본사를 두고 있는 실감 콘텐츠 제작사 ‘펠릭스 앤 폴 스튜디오(Felix & Paul Studios)’와 글로벌 콘텐츠 제작업체 ‘아틀라스 V(Atlas V)’가 그들이다.XR 얼라이언스는 세계적 5G 콘텐츠 제작사들과 회원사들이 함께 고품질 5G 콘텐츠에 들어가는 막대한 투자금을 분산시켜 비용 효율을 높이고 기술의 완성도를 더한다는 방침이다. 궁극적으로는 실감 미디어 제작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양질의 콘텐츠로 수익성을 개선하는 선순환 환경으로 이어지길 기대했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퀄컴이 연합체에 들어오면서 기술부터 콘텐츠 배급까지 이어지는 수직구조가 완성돼 협의체의 완성도가 높아졌다”고 평가했다.출범식 행사는 서울 용산 LG유플러스 본사와 미국의 ‘퀄컴’, 중국의 ‘차이나텔레콤’, 일본의 ‘KDDI’, 캐나다의 ‘벨 캐나다’와 ‘펠릭스 앤 폴 스튜디오’를 잇는 비디오 컨퍼런스콜로 진행됐다. ‘아틀라스 V’는 사전에 서면을 통해 협의를 마무리 지었다. 이상민 LG유플러스 FC부문장(부사장)은 “4G 시대의 킬러 서비스인 ‘동영상’은 단일 사업자만으로도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었지만, 다양한 기술과 막대한 자금·창의적 표현이 필요한 5G 콘텐츠는 사업자 간 협업이 필수적”이라며 “글로벌 기업들과 지속적인 협력을 확대해 전 세계 XR 이용자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화상회의에 참석한 브라이언 보겔상 퀄컴 테크놀로지 제품 관리 시니어 디렉터도 “5G 시대에 들어서며 세계의 연결 및 소통 방법에 혁신이 일어나고, 그 속도는 가속하고 있다”며 “XR 얼라이언스 창립 멤버로서 세계적 수준의 사업자 및 콘텐츠 회원사와 협업을 통해 5G의 잠재력을 최대한 실현하고, 5G XR 기기가 선보일 몰입도 높은 프리미엄 기능을 통해 콘텐츠 생태계를 촉진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칸 영화제에서 타진한 뒤 의기투합 잘 됐다”XR 얼라이언스는 첫 번째 프로젝트는 국제 우주 정거장 ‘ISS’에서 촬영하는 콘텐츠다. 정식 명칭은 ‘Space Explorers: The ISS Experience’이며 3D VR 최초로 실제 우주에서 촬영한 ‘우주 유영(Spacewalk)’의 모습을 담아낼 예정이다.ISS Experience는 오는 11월, 약 25분으로 구성된 4개의 에피소드로 순차 공개된다. XR 얼라이언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연, 스포츠 스타의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분야로 실감형 콘텐츠의 영역을 넓혀갈 계획이다.XR 얼라이언스는 향후 지속적으로 다양한 국가의 이동통신사들을 회원사로, 제작사들은 파트너사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이를 기반으로 세계 최초에 이은 세계 최대 5G 콘텐츠 동맹체로 성장하겠다는 포부다.김준형 LG유플러스 5G서비스그룹장은 “XR 특성상 보고 싶어도 못 보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사람을 가게 해주는 글로벌 협력을 생각했다”며 “칸 영화제에서 VR 관련 시상을 하는데 칸에 왔던 파트너사 몇 군 데에 의견을 타진했다. 의기투합이 아주 잘 됐다”고 XR얼라이언스 결성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물밑으로 다른 이름만 대면 알만한 통신사들과도 얘기가 오가고 있다”며 “5G에 투자를 하고 그런 킬러콘텐츠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XR에 관심 있는 많은 통신사가 뜻을 같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최윤호 LG유플러스 AR/VR서비스담당 상무는 “이미 많은 수의 스타트업 업체와 협업하고 있었다”며 “예를 들면 벤타VR, 비전VR 등이 이미 저희랑 제휴하고 있고 앞으로 업체 수는 더 늘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그는 “XR 얼라이언스 핵심은 공동 펀딩에 있다”며 “좋은 콘텐츠를 발굴해서 투자하고 좋은 콘텐츠가 나오는 시스템 확장이 목적이기도 하다”고 했다.XR 얼라이언스 멤버들은 첫 프로젝트인 ISS 콘텐츠에 18억원(150만달러, 1달러당 1200원 환율 기준)을 공동으로 투자하기로 했다. 다만 전반적인 투자 규모나 각 사별 비율은 매월 생산하는 콘텐츠마다 유동적이라 정확한 수치를 공개하기는 어렵다고 LG유플러스 측은 설명했다.
- LGU+, 국제 XR 연합 결성…"전 세계에 색다른 경험 선사"
- [이데일리 유태환 기자] 대한민국이 전 세계 주요 국가의 5G(5세대 이동통신) 콘텐츠 시장 선도를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다. 6개국 7개 사업체가 확장현실(XR) 산업 육성을 위해 모인 연합체 결성을 주도하면서다.LG유플러스(부회장 하현회)는 1일 미국 반도체 업체 퀄컴 테크놀로지 Inc. (Qualcomm Technologies, Inc.), 중국·일본·캐나다 이동통신사인 차이나텔레콤(China Telecom)·KDDI·벨 캐나다(Bell Canada)와 이같은 ‘글로벌 XR 콘텐츠 텔코 알라이언스’(Global XR Content Telco Alliance)를 창립했다. 다국적기업이 참여하는 5G 콘텐츠 연합체 출범은 세계 최초로 LG유플러스는 첫 번째 의장사격인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를 맡는다.LG유플러스는 이날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각 회원사들과 화상회의를 통해 XR 얼라이언스의 공식 출범식을 알렸다. XR은 5G 시대의 핵심 콘텐츠로 불리는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 등 미래에 등장할 신기술까지 포괄하는 확장현실(eXtended Reality)을 의미한다.◇“5G 잠재력 실현, 콘텐츠 생태계 촉진 기대”XR 얼라이언스에는 창립멤버인 4개국 이동통신사(Telco)와 ‘Ecosystem member’ 퀄컴 외에도 세계 최고 수준의 5G 콘텐츠 제작업체(Studio)들이 파트너사로 참여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 본사를 두고 있는 실감 콘텐츠 제작사 ‘펠릭스 앤 폴 스튜디오(Felix & Paul Studios)’와 글로벌 콘텐츠 제작업체 ‘아틀라스 V(Atlas V)’가 그들이다.XR 얼라이언스는 세계적 5G 콘텐츠 제작사들과 회원사들이 함께 고품질 5G 콘텐츠에 들어가는 막대한 투자금을 분산시켜 비용 효율을 높이고 기술의 완성도를 더한다는 방침이다. 궁극적으로는 실감 미디어 제작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양질의 콘텐츠로 수익성을 개선하는 선순환 환경으로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다.이날 출범식 행사는 서울 용산 LG유플러스 본사와 미국의 ‘퀄컴’, 중국의 ‘차이나텔레콤’, 일본의 ‘KDDI’, 캐나다의 ‘벨 캐나다’와 ‘펠릭스 앤 폴 스튜디오’를 잇는 비디오 컨퍼런스콜로 진행됐다. ‘아틀라스 V’는 사전에 서면을 통해 협의를 마무리 지었다.화상회의에 참석한 브라이언 보겔상 퀄컴 테크놀로지 제품 관리 시니어 디렉터는 “5G 시대에 들어서며 세계의 연결 및 소통 방법에 혁신이 일어나고, 그 속도는 가속하고 있다”며 “XR 얼라이언스 창립 멤버로서 세계적 수준의 사업자 및 콘텐츠 회원사와 협업을 통해 5G의 잠재력을 최대한 실현하고, 5G XR 기기가 선보일 몰입도 높은 프리미엄 기능을 통해 콘텐츠 생태계를 촉진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단순 제휴 넘어 콘텐츠 속도감 있게 제공”XR 얼라이언스는 첫 번째 프로젝트는 국제 우주 정거장 ‘ISS’에서 촬영하는 콘텐츠다. 정식 명칭은 ‘Space Explorers: The ISS Experience’이며 3D VR 최초로 실제 우주에서 촬영한 ‘우주 유영(Spacewalk)’의 모습을 담아낼 예정이다.ISS Experience는 오는 11월, 약 25분으로 구성된 4개의 에피소드로 순차 공개된다. XR 얼라이언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연, 스포츠 스타의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분야로 실감형 콘텐츠의 영역을 넓혀갈 계획이다.XR 얼라이언스는 향후 지속적으로 다양한 국가의 이동통신사들을 회원사로, 제작사들은 파트너사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이를 기반으로 세계 최초에 이은 세계 최대 5G 콘텐츠 동맹체로 성장하겠다는 포부다.이상민 LG유플러스 FC부문장(부사장)은 “4G 시대의 킬러 서비스인 ‘동영상’은 단일 사업자만으로도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었지만, 다양한 기술과 막대한 자금·창의적 표현이 필요한 5G 콘텐츠는 사업자 간 협업이 필수적”이라며 “글로벌 기업들과 지속적인 협력을 확대해 전 세계 XR 이용자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고품질의 XR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선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데, XR 얼라이언스 연계를 통해 이러한 비용적 효율을 높이고 기술적 완성도도 더할 수 있다”며 “단순 제휴나 협력사 개념을 넘어서 실제 콘텐츠 제작, 제공을 속도감 있게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 [컴백 SOON] 김재환·김요한·현아·허각… 특급솔로 러시
- [이데일리 스타in 윤기백 기자] 가수 김재환부터 김요한, 현아, 허각까지 특급 솔로 가수들이 연이어 컴백한다.8월 5주차 가요계에는 워너원 출신 김재환, 엑스원 출신 김요한을 비롯해 전지윤, 현아, 허각 등 다채로운 음악색의 솔로 가수들이 연이어 복귀한다.이와 함께 그룹 크래비티, 온리원오브 등 보이그룹과 팝스타 셀레나 고메즈와 컬래버레이션을 펼치는 블랙핑크도 주목해야 할 컴백 주자다.김재환(사진=스윙엔터테인먼트)◇김재환표 ‘안녕 시리즈’ 신곡가수 김재환이 ‘안녕 시리즈’ 신곡 ‘안녕 못 해’를 23일 공개한다. ‘안녕 못 해’는 지난 2월 발표한 ‘안녕’ 이후 김재환이 약 6개월 만에 선보이는 신곡이다. ‘안녕 못 해’는 솔로 데뷔곡 ‘안녕하세요’와 음원차트 1위를 휩쓴 ‘안녕’을 잇는 김재환표 ‘안녕 시리즈’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전지윤(사진=아츠로이엔티)◇전지윤, 한층 성숙해진 음악성포미닛 출신 전지윤이 24일 새 싱글 ‘배드’(BAD)로 돌아온다. 이번 신곡은 이별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받은 사랑에 대한 정신적 충격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곡이다. 솔로 아티스트로 전향 후 한 번도 선보인 적 없는 새로운 모습과 한층 더 성숙해지는 음악성 그리고 노련한 댄스 퍼포먼스로 가요계에 큰 영향력을 전파하겠다는 각오다.크래비티(사진=스타쉽엔터테인먼트)◇크래비티, 1개월 만 ‘초고속 컴백’그룹 크래비티(CRAVITY)가 24일 미니 2집 ‘크래비티 시즌 2. 하이드아웃 : 더 뉴 데이 위 스텝 인투’를 발매하고 컴백한다. 후속곡 활동 종료 이후 약 1개월 만의 컴백이다. 타이틀곡 ‘플레임’은 정해진 룰을 깨부수고 세상에 나온 크래비티가 전보다 훨씬 자유로움을 느끼고 마침내 자신들의 한계마저 깨뜨리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아냈다. 트렌디한 스타일의 음악으로 주목받는 히트메이커들이 대거 참여, 크래비티와의 시너지가 기대된다.준익(사진=제이지스타)◇준익, 현실적 이별 3부작 마무리가수 준익(JUNIK)이 현실적 이별 3단계 프로젝트를 마무리한다. 준익은 24일 새 싱글 ‘미안해’를 공개한다. ‘미안해’는 ‘짙은 너란 향기조차 못 느끼게’와 ‘척’을 잇는 현실적 이별 3단계 프로젝트의 마지막 곡으로, 한층 더 깊어진 준익의 보컬과 사실적인 가사가 듣는 이들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특히 준익은 이번에도 작사와 작곡에 참여해 이별, 후회 등 복잡 미묘한 감정을 오롯이 멜로디, 가사로 표현하며 공감까지 안길 계획이다.김요한(사진=위엔터테인먼트)◇김요한, 솔로 데뷔 카운트다운엑스원 출신 김요한이 25일 첫 디지털 싱글 ‘노 모어’(No More)를 발매하고 솔로로 데뷔한다. 엑스원 활동 이후 1년 만에 선보이는 첫 솔로곡이다. 이번 앨범은 실력파 가수 자이언티가 프로듀싱을 맡아 더욱 기대가 모인다. 김요한이 자이언티만의 트렌디한 음악 감성을 어떻게 소화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현아(사진=피네이션)◇현아, 9개월 만에 활동 나들이가수 현아가 26일 새 싱글 ‘굿 걸’을 발매한다. 지난해 발매한 ‘플라워 샤워’ 이후 9개월 만의 신곡이다. ‘굿 걸’은 현아가 생각하는 좋은 여자에 대한 해석을 가감없이 담아낸 곡으로, 올해 하반기 발매를 목표로 준비 중인 첫 정규앨범에 앞서 발표하는 선공개 싱글이란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KARD(사진=DSP미디어)◇새로운 감각 품고 돌아온 KARD혼성그룹 KARD가 새로운 감각을 품고 돌아온다. KARD는 26일 첫 싱글 ‘웨이 위드 워즈’(Way With Words)를 발매한다. 멤버 BM이 전곡의 작사·작곡·편곡에 이름을 올리며 물오른 음악적 역량을 발휘했으며, 제이셉 역시 전곡의 작사에 참여해 진정성을 더했다. 타이틀곡은 ‘건 샷’(GUN SHOT)으로, KARD의 새로운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곡으로 주목받고 있다.허각(사진=플레이엠)◇허각, 데뷔 10주년 맞아 신곡 발매가수 허각이 27일 신곡을 발매한다. 이번 신곡 발표는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허각이 올해 처음 선보이는 신곡으로 더욱 뜻깊다. 대국민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뜨거운 관심 속 2010년 디지털 싱글 ‘언제나’로 데뷔한 허각은 ‘Hello’ ‘죽고 싶단 말 밖에’ ‘혼자, 한잔’ ‘바보야’ 등 히트곡을 남기며 대표 ‘명품 발라더’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신곡을 통해 명품 발라더의 위력을 보여줄지 기대된다.온리원오브(사진=에잇디크리에이티브·RSVP)◇온리원오브, 정상급 뮤지션과 호흡온리원오브(OnlyOneOf)가 27일 새 앨범 ‘Produced by [ ] Part 2’를 발매하고 컴백한다. 이번 앨범은 정상급 뮤지션들과 협업으로 완성됐다. 그루비룸과 함께 감각적인 아티스트 서사무엘, 배진렬이 온리원오브와 합을 맞췄다. 타이틀곡은 ‘얼음과 불의 노래’다. 전 세계적인 블록버스터 ‘왕좌의 게임’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곡으로 더욱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블랙핑크(사진=YG엔터테인먼트)◇블랙핑크X셀레나 고메즈 역대급 컬래버블랙핑크(BLACKPINK)가 28일 셀레나 고메즈와 입을 맞춘 신곡으로 돌아온다. 블랙핑크의 신곡 제목은 아직 베일에 싸여있다. 세계적인 팝스타 셀레나 고메즈가 피처링 아티스트로 참여한다는 소식 외에는 철저한 보안 하에 진행되고 있다. YG 측은 “블랙핑크의 이번 곡은 무더운 한여름에 잘 어울리는 매우 시원한 음악”이라고 귀띔했다. 앞서 발표한 ‘킬 디스 러브’(Kill This Love)나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That)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곡으로 예상된다.
- 현대엔지니어링 '힐스테이트 지금 디포레' 9월 분양
-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현대엔지니어링은 오는 9월 경기 남양주시 다산신도시 지금지구 일대에 주거복합단지 ‘힐스테이트 지금 디포레’를 분양할 예정이라고 18일 밝혔다. 힐스테이트 지금 디포레는 경기 남양주시 다산동 지금지구 일원에 지하4층~지상10층, 전용면적 47~58㎡ 총 840실 규모의 오피스텔(지상 4층~10층)과 단지 내 상업시설 ‘힐스 에비뉴 지금 디포레’(지하1층~지상3층)로 구성된 대형복합시설이다. 오피스텔은 전용면적별로 △55~58㎡A 98실 △47~53㎡B 728실 △55㎡C 14실로 구성될 예정이다.‘힐스테이트 지금 디포레’ 투시도(사진=현대엔지니어링)단지가 중심상업지구에 위치한 만큼 다양한 상가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고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남양주점(2020년 11월 오픈예정), 롯데백화점(구리점), 이마트(다산점), 구리농수산물도매시장 등 대형편의시설과도 가깝다. 이 외에도 양정초, 도농중, 동화중, 동화고, 남양주체육문화센터 등도 도보권에 위치해 있다.여기에 시청·법원·경찰서 등 다수의 공공기관들이 단지를 둘러싸는 형태로 들어서고 있다. 현재 남양주시청 제2청사, 의정부지방법원(남양주시법원), 남양주교육지원청 등이 위치해 있으며 추가로 의정부지방검찰청(남양주지청), 의정부지방법원(남양주지원) 등도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도보 8분 거리에 경의중앙선 도농역이 위치한 역세권으로 청량리까지 20분, 잠실·강남까지는 30분 대로 도달 가능해 강·남북 모두 접근이 용이하다. 공덕, 디지털미디어시티 등 주요 업무지구로도 환승 없이 도달할 수 있다. 경춘로, 북부간선도로 및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를 통해 서울과 경기도 전역으로도 이동이 수월하다.추가적인 교통호재도 잇따르고 있다. 우선 GTX-B노선(2022년 착공예정) 개통 시 도농역에서 서울역까지 30분 내 진입이 가능해지며 8호선 연장사업인 별내선과 경의중앙선역 신설(왕숙2지구)도 예정돼있다. 출·퇴근시간 교통 체증을 완화해줄 왕숙천변로, 수석대교 등 도로교통망도 확충된다.현대엔지니어링은 단지 내부에 지역 내 희소성 높은 투룸 평면과 다락 및 테라스 설계(일부호실 적용)로 공간활용도를 극대화했다. 최근 다산에 공급된 오피스텔은 대부분 1~1.5룸 설계인 데다가 다산진건지구에 공급이 집중돼 있어, 지금지구에서 넉넉한 면적의 투룸 오피스텔을 찾던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을 전망이다.또한 오피스텔과 상가로 구성된 만큼 청약통장이나 자금조달 계획서가 필요하지 않으며 대출규제도 받지 않는다. 분양 관계자는 “현재 다산신도시는 기존의 배후수요와 더불어 시청, 법원, 경찰서 등까지 속속 들어서고 있어 타 지역과 비교해봐도 밀리지 않는 미래 가치가 뛰어난 곳” 이라며 “힐스테이트 지금 디포레는 단지 내외부 상권이 뛰어나고 기본 인프라도 훌륭하게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 말했다.힐스테이트 지금 디포레의 모델하우스는 서울시 중랑구 망우로에 마련됐다.
- 악역 흥행 타율 높은 이정재, '다만 악'서 무자비한 킬러 변신
- [이데일리 스타in 박미애 기자] “레이(이정재 분)가 오고 있다.” 누군가의 이 한 마디에 화면이 일순간 멈칫한다. 악명 높은 레이의 존재감을 암시하는 대목. 이정재는 무자비한 추격자로 그의 ‘필모(그래피)’ 사상 가장 악랄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5일 개봉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감독 홍원찬)에서다.‘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신세계 부라더’ 황정민과 이정재가 7년 만에 다시 의기투합한 영화로 관심을 모은다. 이정재는 “‘신세계’ 때에는 자성의 내적인 갈들을 많이 보여줬다면, ‘다만 악’에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하는 와일드하고 거침없는 캐릭터여서 연기하는 쾌감이 있었다”고 말했다.(사진=CJ엔터테인먼트)◇지금까지 이런 이정재는 없었다이정재가 또 하나의 ‘인생캐’를 얻었다. 레이는 형을 죽인 인남(황정민 분)을 집요하게 쫓는 인물, 피아 식별 없이 살육을 일삼는 인물이다. 이정재는 전에 본 적 없는 ‘독특함’에 이끌려 레이를 선택했다.“사실 레이는 ‘이렇다’는 확신을 주지 않는 캐릭터였어요. 어디까지 표현해야 할지 가늠하기 힘들었죠. 그런 레이의 한계를 알 수 없는 묘한 느낌을 잘 구현하면 새로운 게(캐릭터) 나오지 않을까란 기대를 했던 것 같아요.”레이는 이정재에게 만들어가는 즐거움을 준 캐릭터였다. 평소 작품의 의상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그는 이번 캐릭터만큼은 자신의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연구하고 고민하며 캐릭터를 완성시켰다. 목 전체를 휘감은 타투와 런웨이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화려한 의상과 액세서리의 투머치 스타일링은 레이의 끝 모르는 잔혹함을 드러내는 하나의 표현이다. “레이의 맹목적인 추격을 시각적으로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첫 의상 미팅 때 제가 생각했던 이미지들을 갖고 가서 보여줬더니 꽤 많이 파격적이었는지 스태프들이 혼란스러워하더라고요.”(웃음)이정재에게 악역이 처음은 아니다. ‘도둑들’(2012)에서 다이아몬드를 독차지하기 위해 일당의 뒤통수를 친 배신자(뽀빠이)였고, ‘관상’(2013)에서 왕위 찬탈에 천륜을 저버린 반역자(수양대군)였으며, ‘암살’(2015)에서는 나라와 동지를 팔아넘긴 변절자(염석진)였다. 이정재는 각 배역에 각각 다른 사연과 의미로 설득력을 부여하며 악역인데도 사랑받았다. ‘관상’에서의 수양대군 등장 신은 지금까지 회자될 정도다. 게다가 ‘도둑들’ 1298만명, ‘관상’ 913만명, ‘암살’ 1270만명으로 악역을 맡는 작품마다 큰 흥행을 거둬선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정재가 악역하면 흥행한다’는 언급에 그는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며 싱긋 웃었다.‘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스틸‘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스틸◇TV·OTT에 감독 도전까지…임달화에 감화이정재의 행보가 흥미롭다. 2009년 ‘트리플’ 이후 스크린 외에 얼굴을 보기 힘들었던 그는 지난해 JTBC 드라마 ‘보좌관-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 1,2로 10년 만에 안방극장에 출현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도가니’ ‘수상한 그녀’ ‘남한산성’ 등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의 넷플릭스 드라마 연출작인 ‘오징어 게임’으로 OTT로 활동 반경을 넓힌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유연해진 것일까.“레이도 그렇지만 지금까지 작품을 선택하는 가장 첫 번째 기준은 캐릭터예요. 제가 해보지 않은 캐릭터를 만났을 때 느끼는 흥분감이 있어요. 캐릭터에 끌린다면 영화든 드라마든 TV든 OTT든 크게 상관없어요. ‘오징어 게임’은 황동혁 감독님에 대한 호기심이 컸어요. ‘마이 파더’부터 ‘남한산성’까지 모두 한 사람에게서 나온 작품이라는 게 놀라워서 꼭 한 번 작업해보고 싶었어요.”이정재는 최근 ‘헌트’(가제)라는 작품으로 영화감독 데뷔도 알렸다. 스크린에서 TV로 또 OTT로 플랫폼을 넘나들며 연출까지 넘보는 이정재의 행보가 업계에 신선하게 다가가고 있다.“연출에 대한 생각은 8, 9년 정도 된 것 같아요. ‘도둑들’을 촬영하면서 임달화 선배가 연기를 하지 않을 때에는 연출을 하거나 시나리오를 쓰기도 하고 프로듀싱도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사람은 정말 영화인이구나, 이렇게 자유롭게 작업을 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되게 부러웠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 받은 자극이 이렇게 결실을 맺는 것 같습니다.”‘헌트’는 첩보 액션물로 배우 출신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 중 역대급 규모의 영화로 알려진다. 제작비 얘기에 이정재는, ‘그러니 영화 나오면 많이 도와 달라’며 눙쳤다.영화 개봉 앞두고 MBC 예능 ‘전지적 참견 시점’에 출연한 이정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