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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잡설] 3월 9일 그날 이후
-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네거티브의, 네거티브에 의한, 네거티브를 위한 대선이다.” 이상한 대선이다. 아무도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3월 9일 대선 이후를 걱정하는 이들이 넘쳐난다. 20대 대선이 D-16일 앞으로 다가왔다. 백척간두에 선 대한민국의 업그레이드에 대한 고민은 없다. 정책·비전 경쟁은 실종된 지 오래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의 파급효과다. “뽑을 사람이 없다. 허경영에게 한표를” 유권자들의 냉소는 이미 선을 넘었다. 여야 유력후보 모두 ‘오십보백보’다. 포용과 통합보다는 적대적 대결을 부추긴다. “공짜 점심은 없다”드러난 네거티브보다 더 큰 문제는 ‘묻지마 공약’이다. 안되면 말고 식이다. 재정 여건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퍼주기다. 대한민국은 달러를 무한정 찍어낼 수 있는 기축통화국이 아니다. 여야가 따로 없다. 한마디로 ‘내로남불’이다. 내가 하면 정책이고 남이 하면 포퓰리즘이다. 공약수준도 문제다. 시대정신을 담아낼 국가적 비전은 아예 없다. 여야 모두 ‘소확행·심쿵’ 공약에 지나치게 심취했다. 대선이 아닌 구청장 선거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전과 4범, 무속주술, 히틀러, 패륜, 배신자, 폭탄주 중독자, 기생충, ….”선거라는 합법적 전쟁이지만 20대 대선은 금도를 넘어섰다. 인물 대결도 비전 경쟁도 사라졌다. 사생결단식의 진영대결이다. “전과 4범을 어떻게 뽑나” vs “무속에 휘둘리는 배신자를 어떻게 뽑나” 난장판이 따로 없다. 증오와 분노의 언어가 난무한다.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 대한 승복이라는데. 이대로 가면 대선 이후는 ‘안봐도 비디오’ 수준이다. 승자를 향한 축하와 패자를 향한 위로를 발붙일 곳이 없다. 누가 당선증을 받아도 후폭풍은 불가피하다.“대선불복의 역사와 부정선거 프레임”편파판정이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듯 난장판 대선은 대선 이후의 후폭풍을 잉태한다. 2002년·2012년 대선에서 나타난 대선불복 역사가 되풀이될 수 있다. 국민통합은 난망이다. 사회경제적 갈등과 비용은 계산조차 힘들다. 박빙 승부일수록 철지난 부정선거 프레임이 고개를 들 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선관위조차 ‘공범’이라는 의심에 시달린다. 최악의 경우 승자는 정치보복의 칼을 휘두르고, 패자는 감옥에 가야 할 수도 있다. “식물대통령의 시대”새 정부 출범 이후도 문제다. 100일간의 허니문은 없다. 대선 이후 곧바로 지방선거가 이어진다. 대선 승자는 ‘상처뿐인 영광’이다. 패자의 발목잡기는 예정된 수순이다. 더구나 제1야당이 승리하면 극단적인 여소야대를 피할 수 없다. 인사청문회도 분수령이다. 조국청문회 수준의 사생결단이면 낙마자가 속출한다. 참여정부 시절 장관 인사청문회 도입 이후 이명박·박근혜·문재인정부 모두 조각 과정에서 적잖은 낙마자가 발생했다. 늦으면 여름이 지나서야 새 정부의 완전체 내각이 만들어질 수 있다. 국민의 절반을 적으로 돌리는 선거운동은 식물대통령의 지름길이다.
- 안철수 "더 기다려? 모욕적"…국민의힘 비판[전문]
-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20일 오후 1시30분 국회 소통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단일화 제안을 철회했다. 안 후보는 자신의 길을 굳건히 가겠다고 밝혔다. 안 후보는 지난 13일 대국민 지지율 조사에 따른 국민경선 방식의 단일화를 윤석율 국민의힘 대선 후보에 제안했다. 그는 “더 이상 답변을 기다리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더 기다린다는 것은 저 자신은 물론 저를 아껴주는 당원 동지들과 전국 지지자들에 모욕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사진=국민의당 제공)다음은 안 후보의 기자회견 전문이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지난 일주일, 기다리고 지켜보았습니다. 더 이상의 무의미한 과정과 시간, 정리하겠습니다. 저는 지난 13일 대통령 후보 등록을 하면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누가 더 좋은 정권교체의 적임자인지를 가려보자는 야권 후보 단일화를 제안한 바 있습니다. 제가 단일화를 제안한 배경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완주 의사를 여러 차례 분명하게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단일화 꼬리표를 붙이고 어떻게 해서든 단일화 프레임에 가두려는 정치 환경과 구도를 극복해보려는 고육지책이었음을 솔직하게 말씀드립니다. 출마 선언 이후 단일화와 관련하여 누군가가 가짜 뉴스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냈고, 여기에 일부 언론이 편승하여 확산시키는 일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저의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과 진심은 기득권 정치세력 위주의 미디어 환경과 정치 구도 때문에 국민께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저는 고심 끝에 그들이 억지로 붙이려는 단일화 꼬리표를 떼는 방법은 정면 돌파, 즉 단일화 경선을 통한 정면 승부라고 생각했습니다.누가 더 좋은 정권교체의 적임자인지를 국민의 평가에 맡기고 제 비전과 진심을 말씀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둘째, 정권교체를 위해 힘을 합쳐 달라는 여론의 뜻을 받들고자 했습니다. 단일화 프레임에 저를 가두려는 제1야당이나 일부 언론의 편향적 태도와 달리 정권교체를 위해 두 사람이 힘을 합치는 것이 좋겠다는 순수한 여론이 있음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수용할 것인지가 제게는 가장 큰 해결 과제였습니다. 대한민국이 통합하고 미래로 가기 위해서는 낡은 정치, 기득권, 반칙과 특권 등을 청산하는 구체제의 종식이 필수적이고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정치개혁, 공공개혁, 연금개혁, 노동개혁, 교육개혁 등 제대로 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개혁들을 추진할 수 있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교체의 여론은 너무나도 컸습니다. 진영 간 대립과 상대방의 실수에 기댄 반사 이익에 의한 ‘묻지마 정권교체’는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계속 실패의 역사를 반복하면서도 나라를 가라앉히고 있지만 이러한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계속되고 있습니다.그동안 여러 차례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대통령과 행정부는 없었습니다.정권 교체만 이루어지고 그 이후에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미래의 비전과 뼈를 깎는 개혁으로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성찰과 지적은 ‘묻지마 정권교체’에 계속 묻혀버리고 말았고 정권교체 후 예외 없이 실패한 정부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구체제 종식이라는 시대적 요구 그리고 정권교체를 바라는 민심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 결론 또한 단일화 경선을 통한 정면 돌파였습니다. 누가 더 좋은 정권교체의 적임자인지를 국민의 선택에 맡기고 도전하는 것이 제게 주어진 숙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경선 과정에서 제 진심, 저 안철수의 꿈, 대한민국이 가야 할 국민 통합과 미래 비전을 국민께 진솔하게 말씀드려서 기득권을 깨는 대변혁의 계기를 만들겠다는 자신감과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심 끝에 또 철수하려 하느냐는 비판과 조롱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일주일 전에 더 좋은 정권교체를 위한 야권 후보 단일화 제안에 승부수를 던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 제안을 받은 윤석열 후보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가타부타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기자회견으로 제 생각을 공개적으로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윤 후보의 뜻이라며 제1야당의 이런저런 사람들이 뛰어들어 제 단일화 제안의 진정성을 평화하고 왜곡시켰습니다.가짜 뉴스는 더욱 기승을 부렸고 일부 언론들은 더 적극적으로 편승했습니다. 심지어는 저희 당이 겪은 불행을 틈타 상 중에 후보 사퇴설과 경기지사 대가설을 퍼뜨리는 등 정치 모리배 짓을 서슴지 않았습니다.국민의 열망을 담아내고자 한 제 진심은 상대에 의해 무참하게 무너지고 짓밟혀졌습니다. 제가 정치를 하면서 반드시 바꾸고 개혁해야 한다고 다짐했던 구태가 고스란히 재연됐습니다. 정치 도의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경우가 없어도 너무나 경우가 없는 짓입니다.제가 생각하는 정치 상례는 후보인 제가 제안을 했으면 마땅히 윤 후보가 직접 대답하는 것입니다. 제 제안은 그렇게 오래 판단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 방식이 아니라 지금까지 국민의힘에서 해오던 방식대로 경선을 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윤 후보의 책임 있는 답변은 오지 않았습니다. 지난 일주일간 무대응과 일련의 가짜뉴스 퍼뜨리기를 통해 제1야당은 단일화 의지도 진정성도 없다는 점을 충분하고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오히려 시간을 질질 끌면서 궁지로 몰아넣겠다는 뻔한 수법을 또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상을 마친 어젯밤, 더 이상 답변을 기다리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더 기다린다는 것은 저 자신은 물론 저를 아껴주는 당원 동지들과 전국의 지지자분들 모두에게 모욕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저와 동지들은 이제껏 편가르기 진영 정치의 기득권과 힘들게 싸워왔지만 실력과 비전, 도덕성과 절제, 명예와 자긍심은 어떤 후보 어떤 정당보다 높다고 생각하며 이렇게 힘든 길을 지켜왔습니다. 이분들이 상처받고 모욕 받는 일은 제가 중단시켜야만 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이제부터 저의 길을 가겠습니다. 저의 단일화 제안으로 혼란을 느끼셨던 국민들게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양해의 말씀 드립니다. 저는 윤석열 후보께 본선거 3주의 기간 중 일주일이라는 충분한 시간을 드렸습니다. 단일화가 성사되지 못한 책임은 제1야당과 윤석열 후보에게 있음을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물론 저에 대한 비판의 소지도 있을 것입니다. 겸허하게 수용하겠습니다. 이제 불필요한 그리고 소모적인 단일화 논쟁은 접고, 대한민국의 위기 극복과 생존 전략 그리고 경쟁력 있는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논의에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서는 누가 더 도덕적이고, 누가 더 비전이 있고, 누가 더 전문성이 있는 후보인지, 누가 더 차기 대통령의 적임자인지를 선택해 주십시오. 당당하게 경쟁합시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정권교체가 무엇인지, 누가 정권교체와 함께 정권 교체 이후에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는 비전과 실력을 갖춘 적임자인지를 가려봅시다.국민 여러분 비록 험하고 어렵더라도 저는 제 길을 굳건하게 가겠습니다. 아무리 큰 신리가 보장되고 따뜻한 길일지라도 옳지 않으면 가지 않겠습니다. 기득권을 깨고 대한민국의 변화와 개혁 미래로 가는 길이라면 그 길을 가겠습니다. 그러나 한쪽 편의 기득권에 안주하고 아무런 노력 없이 상대편 실수에 의한 반사 이익에 편승하는 짓은 결코 하지 않겠습니다. 저 안철수 비록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우리 대한민국이 분열과 갈등을 끝내고 통합과 미래로 갈 수만 있다면, 구체제를 종식시키며 과학과 실용의 시대를 열 수만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손해를 보더라도 바른 길을 가겠습니다.국민 여러분께서 대한민국의 정직과 희망의 정치 지켜주십시오. 고맙습니다.
- 나폴레옹의 교훈 '미래, 모르는 게 약'[이윤희의 아트in스페이스]<24>
- 조르주 드 라 투르가 그린 ‘점쟁이’(1630s). 라 투르는 거짓과 속임이 난무한 세상의 일면을 꿰뚫고 있는 풍속화, 경건한 신앙 속 고요한 명상을 이끄는 종교화 등으로 생전에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사후 오랫동안 잊혔다가 20세기 초 재조명됐다. ‘점쟁이’ 역시 뒤늦게 발견돼 진위논란을 불러일으킨 끝에 대표작으로 인정받은 작품. 멋지게 차려입고 거만한 자세로 서 있는 젊은이는 점쟁이의 말에 정신이 팔려 주머니가 털리는지도 모르고 있다. 라 투르는 이 작품과 유사한, 주로 카드놀이를 하면서 속고 있는 젊은 남자를 많이 그려 세태를 경계하는 교훈을 담아냈다. 캔버스에 유채, 101.9×123.5㎝,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200여년 전 소설 ‘오만과 편견’이 탄생한 곳은 낡은 책상이었답니다. 종이 몇 장과 잉크병, 깃대펜이 전부인 그곳이 바로 영국작가 제인 오스틴의 작업실이었던 셈입니다. 장서가 그림처럼 꽂힌 책장, 큼직한 책상이 근사한 ‘서재’란 공간은 남성 작가만 차지할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서재뿐인가요. 화가의 공간이던 ‘아뜰리에’도 그랬고,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카페’와 ‘술집’ ‘광장’도, 한 가정집의 ‘부엌’과 ‘식당’ ‘침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속해 있던 공간이지만, 그곳이 모든 이들에게 늘 공평했던 것은 아니었던 겁니다. 오랜 시간 미술관을 일터로 삼아온 이윤희 큐레이터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장면,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때론 객관적 기록으로, 때론 상징을 담아, 때론 비틀린 풍자를 숨겨낸 ‘그림으로 읽는 공간이야기’ ‘그림으로 읽는 사람이야기’입니다. 주말 독자 여러분을 아트인문학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편집자주> [이윤희 큐레이터·미술평론가]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던 중 뜻하지 않은 행운을 만나거나 예상치 못한 함정에 빠진다. 믿었던 사람에게서 뒤통수를 얻어맞는가 하면 무심히 지나가던 타인이 결정적인 도움을 줄 때, 인생은 계획이고 뭐고 운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오늘의 결정이 내일 어떤 얼굴로 드러날지 알 수 없기에 막연한 불안을 안고 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내일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점쟁이들은 이러저런 형태로 불안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연애운이 어떤지, 재물운이 어떤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는지, 수정구슬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손금도 보고, 카드를 뽑아 뒤집기도 하고, 접신을 하기도 하고, 태어난 날짜와 시간으로 규칙을 만들기도 하면서 말이다. 17세기 프랑스의 화가 조르주 드 라 투르(1593∼1652)는 ‘점쟁이’(1630s)에서 매우 정밀한 필치로 점쟁이가 점을 보는 상황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냈다. 라 투르의 ‘점쟁이’는 두 점이 있는데,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있는 이 작품 외에도 다른 한 점은 루브르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두 점 모두에서 라 투르는 기본적으로 점을 본다는 것은 속고 속이는 과정이라고 봤다. 메트로폴리탄의 ‘점쟁이’는 20세기 중반 뒤늦게 발견돼 진위논란이 있었지만, 미술사학자와 큐레이터, 감정가들이 10여년간 지상논쟁을 거쳐 1980년대에는 진품으로 인정받았다. 그림 속 인물들이 입은 옷의 직조패턴부터 남성의 머리길이까지, 온갖 사료가 동원된 이 논쟁은 미술사 전문지에 다달이 논박을 주고받았던 재미있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라 투르 “점은 속고 속이는 과정”그림 속 잘 차려입은 젊은 남성이 손바닥을 보여주며 점을 보고 있다. 이 남성을 둘러싼 이들이 유랑하는 집시의 차림을 하고 있기에 이 장소는 거리일 것이다. 네 명이나 되는 집시여성을 집안에까지 들여 손금을 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그림에서 단박에 시선을 끄는 것은 인물들의 눈초리다. 특히 남성 바로 곁에 있는 얼굴이 희고 스카프를 쓴 여인의 눈초리는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한 손을 허리에 걸치고 다른 손을 보여주는 남성이 노파를 향해 보내는 눈빛도 반신반의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작정하고 남성의 동태를 옆눈으로 살피는 스카프 여인만큼 차갑지는 않다. 점을 다 보고 나면 이 남성은 가진 것을 모두 이 점쟁이 일행에게 도둑맞을 예정이다. 동전 한 닢을 받아들고 노파는 남성의 눈을 쳐다보며 강한 어조로 말을 건네고 있다. 인생의 경험이 많지 않은 20대 젊은 남성은 품위를 잃지 않으려는 자세로 이야기를 듣고 있지만, 그를 둘러싼 주변 인들은 남성에게서 무엇을 어떻게 털 것인지 판단이 끝났다. 매서운 눈의 스카프 여인은 남성이 어깨에 걸치고 다니는 금으로 만든 메달을 가위로 자르고 있고 곧이어 이 메달은 검은 머리 여성의 손에 넘어갈 것이다. 화면 가장 왼쪽에 있는 여인은 남성의 바지춤에서 지갑을 꺼내고 있지만 노파의 말에 집중하는 남성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안타까울 수가. 남성은 자기 인생에 대한 어떤 뜻있는 조언도 얻지 못한 채, 시간과 돈을 빼앗기는 어리석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유명한 점쟁이는 고관대작의 집에 불려다니기도 했지만, 길에서 호객하는 일이 더 잦았다. 베네치아의 카니발 장면을 수많은 그림으로 남긴 이탈리아 화가 피에트로 롱기(1701∼1785)는 축제시즌에 늘 등장하는 점쟁이의 모습을 여러 번 담았다. 18세기가 황금기였던 베네치아의 가면축제는 당시에도 매우 유명해서 베네치아 사람뿐 아니라 외국인도 몰렸고, 귀족과 평민 할 것 없이 거리를 쏘다녔다. 산 마르코 광장과 아케이드에는 이발사들이 이발을 하고, 마술사는 진기명기 기량을 펼치고, 점쟁이들은 부스를 차렸다. 이런 일을 즐기려면 돈이 필요하므로 급전을 빌려주는 사람들도 이동식 대출창구를 차려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가장 인기가 있던 것은 역시 점을 보는 일이었다. 피에트로 롱기의 ‘베네치아의 점쟁이’(1756). 평생을 고향 베네치아에 머물며 온화한 시선과 은근한 풍자, 깊이 있는 통찰로 삶의 단면을 묘사한 롱기는, 특히 18세기 베네치아 귀족 가문의 일상을 거울처럼 비춰내는 장기가 있었다. 그렇게 그려진 한 점인 작품은 일상을 다루면서도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그들의 감정과 분위기를 잘 포착해낸 작품으로 꼽힌다. 가볍고 경쾌하지만 도덕적인 교훈보다는 귀족들의 취향에 맞춘 것으로 보인다. 캔버스에 유채, 59.1×48.6㎝,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 소장.‘베네치아의 점쟁이’(1756)에 등장하는 검은 망토에 모자를 쓴 남녀는 귀족이다. 점쟁이는 테이블 위 의자에 앉아 호객을 하다가 손님이 오면 긴 튜브형 막대기를 귀에 대고 손님이 궁금해 하는 일이나 걱정거리를 들은 뒤 손금을 보고 운세를 말해줬다. 때로는 의자를 내려 테이블에 카드를 펼치고 질문에 답하기도 했다. 흰 드레스에 검은 망토를 둘러쓴, 여인의 뒤에 있는 남성은 흰 가면에 장갑까지 끼고 있어 누구인지 전혀 식별할 수가 없다. 가면 아래 눈빛으로 아주 젊지는 않구나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여성을 에스코트해 나왔지만 신분 밝히기를 극도로 꺼리는 이 남성은 젊은 부인, 혹은 애인의 운명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해 손을 내민 여성보다 더 몰두해 점쟁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롱기는 인물들을 특정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성을 부여하진 않았지만 주변 정황을 묘사해 이 장면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암시하고 있다. 인물들이 배치된 아케이드의 기둥에는 베네치아의 총독 선출에 관한 내용이, 뒤쪽 벽에는 교회의 고위급 사제 선출에 대한 글이 보일 듯 안 보일 듯 숨어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 검은 망토의 인물들은 정치적 승부수를 어디에 던져야 할지, 누구에게 잘 보여야 할지, 그래서 얼마나 잘살 수 있을 것인지 점쳐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권력 풍자화를 즐겨 그린 단하우저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들도 자신의 미래가 궁금한 것은 마찬가지였는지, 나폴레옹과 조세핀 역시 마리 르노르망이란 유명한 점쟁이에게 정기적으로 미래를 물어봤다. 나폴레옹은 프랑스혁명 이후 다시 황제로 등극했고 조세핀은 황후가 됐지만 이들의 미래는 곧 다가올 배신과 이혼, 군사적 패배와 정치적 몰락으로 이어졌고, 각자 쓸쓸하게 죽음을 맞았다. 오스트리아 화가 요제프 단하우저(1805∼1845)가 그린 ‘점쟁이와 함께 있는 나폴레옹과 조세핀’(1841)은 나폴레옹과 조세핀이 결국 이혼하게 될 것이란 예언에 다들 기절초풍한 모습을 그린 것이다. 요제프 단하우저의 ‘점쟁이와 함께 있는 나폴레옹과 조세핀’(1841). ‘피아노를 치는 리스트’(1840)로 현대 미술계보단 음악계에서 더 유명한 단하우저는 음악가들의 초상을 그린 경력으로 도드라진다. 임종 직후의 베토벤을 스케치한 그림이 있을 정도. 작품은 사실 그가 즐겨 그린, 종교·정치를 가리지 않고 권력의 이면에 붓을 들이댔던 풍자화 중 하나다. 나무패널에 유채, 61×76.2㎝, 개인 소장.단하우저는 권력에 대한 풍자화를 즐겨 그렸다. 그의 풍자는 종교와 정치를 가리지 않고 이른바 높은 지위를 가진 이들의 이면을 낱낱이 드러냈다. 그런 그에게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가 나락으로 떨어진 나폴레옹이 점쟁이에게 의지했다는 사실은 아주 좋은 소재거리였을 것이다. 그의 그림 속에서 나폴레옹은 나쁜 예언을 듣고 가슴을 졸이는 키 작은 남자일 뿐이다. 그 유명한 자크 루이 다비드의 ‘알프스를 가로지르는 나폴레옹’에서 말을 타고 산꼭대기를 가리키며 힘차게 달려나가는 모습에 익숙한 관람자는 단하우저의 그림 속 인물이 같은 나폴레옹이란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나폴레옹의 저택에 불려온 점쟁이 르노르망도 이 점괘는 놀랄 만한 일이었는지 테이블에 깔아놨던 카드를 수습할 정신도 없어 보이고, 조세핀은 아예 가슴을 부여잡고 정신을 잃었다. 단하우저는 이 광경이 황제와 황후로 불리던 이들의 진짜 모습이란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 셋 중 주인공도 되지 못할 만큼 조그맣게 나폴레옹을 그려놓은 것 역시 그런 의도를 뒷받침한다. 이런 미래를 듣고 싶은 이가 있을까. 미리 안다고 한들 자신을 둘러싼 모든 정황에 대한 불안으로 매시간 더 초조해지지 않았을까. 상대에 대한 의심으로 서로의 사랑이 더 메마르지 않았을까. 세계를 호령하던 지도자까지 점쟁이의 말에 일희일비해서야 되겠는가. 단하우저는 많은 생각을 쏟아내는 듯하다. △이윤희 큐레이터는… 1970년생. 대학을 다니던 20대 어느 겨울, 해외여행 자유화 덕분에 유럽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 인생에 미술을 들인 결정적 계기가 됐다. 누구나 들렀던 어느 미술관에서 뜻밖에 렘브란트의 ‘어머니 초상’이란 작품이 발을 붙들었다. 뭔가 꿈틀거리는 게 올라왔다. 세상을 감동시킨 그 수많은 작품을 설명하는 언어를 가지고 싶다는 열망도 함께였다. 이화여대에서 독문학과를 졸업한 뒤론 동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미술의 역사, 미술의 말을 공부했다. 이후 ‘공간’ 지 미술기자를 시작으로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학예실장, 청주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 등을 거치며 오래전 그 렘브란트의 감동을 현장으로 옮겼다. 번역서로 ‘그림자의 짧은 역사’(2006), ‘포토몽타주’(2003), ‘바디스케이프’(1999)가 있으며 저서로 ‘여성의 눈으로 보는 미술 키워드’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 '서울역사아카이브' 1년새 이용 50% 증가…연구 목적이 절반 이상
-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서울역사박물관은 지난해 박물관 홈페이지를 통한 ‘서울역사아카이브’ 다운로드 건수가 3만6416건으로 2020년의 2만4275건에 비해 50.0% 증가했다고 18일 밝혔다. 서울역사아카이브 홈페이지 화면(사진=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역사아카이브는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근현대서울사진, 서울시정사진, 서울미래유산기록, 서울발굴기록, 서울지도 등 총 6개 주제로 구성됐다. 근현대 서울 관련 자료를 중심으로 2만4000여 건의 자료가 공개돼 있다.주사용자의 약 93%가 개인으로 나타났다. 활용 목적은 연구가 절반을 차지하며, 교육이 18%로 뒤를 잇고 있다. 최근 들어 방송, 출판 등 미디어 분야의 활용도 증가하고 있다.서울역사박물관 아카이브는 박물관이 조사한 서울학자료를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특히 서울역사박물관이 역점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서울미래유산, 발굴조사 등의 연구 성과를 신속하게 반영하여 해마다 2000건 이상의 새로운 자료가 공개되고 있다. 구하기 쉽지 않은 근현대사진, 서울지도, 서울시정사진이 포함되어 있어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은 실정이다. 각 주제별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는 2007년 보광동을 시작으로 2020년 신문로2가와 장위동에 이르기까지 15개구 36개 지역에 대해 도시화로 급변하는 서울의 공간과 역사, 생활자산을 기록한 결과이다. 올해는 2021년 조사된 성북구 돈암 일대와 동작구 노량진의 조사성과가 새로 공개될 예정이다.서울시정사진은 1957년부터 1995년까지 역대시장의 연도별 활동과 시정 현장을 촬영한 사진기록으로 2006년 서울시 언론담당관으로부터 이관받은 시정사진 원본필름 58만 건을 스캔, 선정하고 해제와 함께 제공되고 있다. 서울지도는 서울의 장소와 역사와 기억을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기록물로서 고지도, 근현대지도, 지적도 3분야로 나뉘어 공개되고 있다. 근현대서울사진은 개항기부터 1950년대까지 서울의 모습을 담은 사진, 엽서, 사진첩, 서적 등에 수록된 시각자료를 정리한 것으로 정치·외교, 산업경제, 교통통신, 건설개발, 보건의료, 교육, 문화예술 등 세부 주제별 또는 수록도서별로 검색이 가능하다. 서울발굴기록은 일반인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한양도성, 의정부지 등 2005년부터 서울에서 시행된 발굴 현장사진, 유물사진, 도면 등을 소개하고 있다. 2022년에는 종묘제기발굴되는 등 상징성이 큰 종묘광장 발굴성과(2013)를 공개할 예정이다. 서울미래유산기록은 2013년부터 서울시가 선정하고 있는 서울미래유산 중 사라지고 있는 노포와 전통산업 기록사업으로 2020년 낙원떡집이 공개됐다. 2021년에 조사된 서울의 대장간이 곧 소개될 예정이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시민 누구나 무료로 서울역사박물관 아카이브를 이용할 수 있다”며 “다만 자료를 쓸 때 서울역사박물관이라는 출처는 밝혀야 하는 만큼 이용자들께서도 ‘출처 표기’ 의무를 지켜주시길 당부드린다”고 밝혔다.
- 안철수 "어떤 풍파에도 굳건하게 가겠다"…자진사퇴론 일축
- [이데일리 황효원 기자]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18일 고(故) 손평오 지역 선대위원장의 영결식에서 “저 안철수, 어떤 풍파에도 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함으로써 손 동지의 뜻을 받들겠다. 결코 굽히지 않겠다”고 말했다.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17일 유세 버스 LED(발광다이오드) 전광판 전원 발전기 사고로 숨진 버스 기사 A씨의 빈소가 마련된 경남 김해시 지내동 김해전문장례식장을 방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안 후보는 이날 오전 천안 단국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열린 고(故) 손평오 지역 선대위원장의 영결식에서 조사(弔辭)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안 후보는 “손 동지와 우리 모두가 추구했던 그 길을 향해 저 안철수는 강철같이 단단하고 동아줄처럼 굳건하게 그 길을 가겠다”면서 “반드시 이겨서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 기득권 없는 공정한 세상, 정직한 사람들이 존중받고 땀 흘린 만큼 인정받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말했다.이어 “저 안철수, 손 동지의 뜻을 이어 손 동지를 떠나보내려는 당원동지들의 아쉬움과 결연함을 담아 더욱더 단단해지겠다. 더 강하게, 더 단단하게,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변화와 혁신의 길, 과거가 아닌 미래로 가는 길, 분열이 아닌 통합의 길을 가겠다”고 강조했다.또 “반드시 승리해 이념과 진영의 시대가 아닌 과학과 실용의 시대를 열어 대한민국의 역사에 남을 새 시대를 열겠다. 손 동지와 저, 그리고 동지들이 지향했던 올바름, 손 동지와 저 그리고 동지들이 이루고자 했던 구체제의 종식과 새 시대의 개막을 위해 굳건하게 가겠다”고 덧붙였다.안 후보는 당원들에게 “이제 손 동지를 잃은 고통과 슬픔을 이겨내고 동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다 함께 더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자. 손 동지가 못다 이룬 꿈, 우리가 반드시 이룹시다”며 “우리의 손으로 ‘더 좋은 정권교체’의 봄을 만들어 손 동지가 가는 길, 따뜻하게 보듬어 주십다”라고 했다.고인을 향해 “동지와 함께 꿈꾸었던 ‘더 좋은 정권교체’, 즉 정권교체를 하는 이유가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우리의 신념을 저와 남은 동지들이 꼭 이루겠다. 우리의 꿈이 성취되는 날, 가장 먼저 손 동지를 찾아 그 감격을 함께 나누겠다”며 “손 동지를 위해 차분한 유세를 펼쳐주시고 위로의 말씀을 해주신 다른 당의 대선 후보님들께도 감사드린다”고 말했다.안 후보는 이날 오후 강원도 원주로 이동해 또다른 유세 버스 사고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운전기사가 입원 중인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을 방문한다. 19일 오전에는 경남 김해로 가 유세버스 사고로 사망한 운전기사의 영결식에 참석한다.안 후보는 사망자의 발인이 모두 끝난 19일 오후부터 선거 운동을 재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