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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그룹, ''문화재 지킴이''로 나섰다.
- [이데일리 김종수기자] 현대·기아차그룹이 519년의 유구한 조선 왕조 문화유산이 숨쉬고 있는 역사의 숲, 조선왕릉에서 봉사활동을 전개하는 등 '문화재 지킴이'로 본격 나섰다. 26일 현대·기아차그룹에 따르면 지난 25일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에서 '2008 해피무브 가족봉사단' 발대식을 갖고, 봉사단 활동의 일환인 ‘1가족 1문화재 지킴이’ 활동 실시를 알렸다. 문화재 지킴이 봉사활동은 현대·기아차그룹이 올해 처음으로 실시하는 것이다. ‘해피무브’ 가족봉사단은 지난해 5월 출범한 가족봉사단의 발전된 형태로, 이번 행사를 시작으로 오는 8월까지 515가족 2000여명이 지역 문화 유산 지킴이와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이날 행사에서 가족봉사단 10가족, 40여명은 태조 이성계의 능이 있어 조선왕릉의 기원이 되는 동구릉에서 재실 먼지 털이, 문풍지 바르기, 능 주변의 잡초 뽑기 등 봉사활동을 펼쳤다. 현대차(005380)ㆍ기아차(000270)그룹 관계자는 "지난해 1기 가족봉사단이 가족 모두가 의미 있는 경험을 공유하고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하는 일 자체가 자녀의 교육에도 좋았다는 의견을 많이 내주었다"며 "올해에도 해피무브 가족 봉사단의 성공적인 나눔 봉사활동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편, 현대·기아차그룹은 '함께 움직이는 세상'이라는 슬로건 아래 ▲임직원 자원봉사 활성화 ▲교통 안전문화 확산 ▲장애인 이동편의 증진 ▲환경보호의 네 가지 중점 과제를 중심으로 그룹 전체가 활발한 사회 봉사 활동을 연중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특히 올해 중국 초지 조성 사업을 펼치며 글로벌 기업으로서 전 인류를 위한 사회공헌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관련기사 ◀☞자동차, 원화약세로 추가 랠리 기대-골드만삭스☞정몽구 현대차 회장, MB 방중 수행단서 빠질 듯☞(이슈돋보기)`고유가` 현대·기아차엔 기회
- 마음 비우고 떠난 그곳, 배움 채워 돌아오지요
- [노컷뉴스 제공]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 세종대왕. 최근 KBS 1TV에서 방영되는 '대왕세종'의 인기몰이로 다시 한 번 세종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한글창제는 집현전 학자들과의 공동작업이 아닌 세종의 단독 작품임이 지난 90년대 후반 밝혀지면서 그는 천재언어학자로 재조명되고 있다. 이에 맞물려 세종의 묘가 있는 경기도 여주 역시 관심지역으로 떠오르며 관광객들의 발길이 한창이다.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에 위치한 '세종대왕릉(영릉)'은 부인인 소헌왕후와의 합장릉이다. 영릉은 본래 대모산(서울 개포동)에 있었으나, 예종 1년인 1469년 현재 위치한 여주군으로 옮겨졌다. 여주 세종대왕릉의 지세는 법도에 어긋나지 않고 층층이 해와 달의 모습을 띠면서 봉황이 날개를 펴고 내려오는 형국이다. 또 정남향이어서 풍수지리상 가장 좋은 자리로 알려져 있다. 세종대왕릉은 조선이 망한 후 거의 관리가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1977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릉성역화 사업' 지시로 인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췄다. 영릉 매표소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왼쪽에는 세종의 어진(御眞), 기록화, 천문기기, 악기, 인쇄기구 등의 유물이 전시된 세종전이 있다. 오른쪽에는 재실(齋室)과 세종대왕상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주변의 잔디밭에는 실물을 모방해 만든 앙부일구(해시계), 관천대, 측우기 등이 야외 전시돼 있어 참배객들의 눈길을 끈다. 이어 훈민문을 지나면 왼편에 큰 연못이 있고 정면으로 홍살문이 보이는데 그 안쪽으로 영릉이 자리한다. 영조 48년인 1772년에 개수한 정자각에는 지금도 관광객들의 분향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자각의 왼쪽에는 제물을 준비하던 수라간이, 오른쪽에는 방부개석 양식의 영릉표(총높이 약 345㎝)를 보관하는 비각(碑閣)이 서 있다. 영릉표는 세종의 묘를 이장한 이후에도 한동안 세워지지 않았다. 그러다 현종 14년인 1673년 송시열이 영릉표 입석을 건의했다. 하지만 이를 차일피일 미루다 영조 21년인 1745년에서야 건립됐다. 국사 5000년 동안 가장 뛰어난 임금, 세계적으로도 다시는 나오기 힘든 천재언어학자 세종의 영릉 방문은 위대한 성군의 발자취를 다시 돌아봄은 물론, 아이들에게는 좋은 역사의 교육이 될 것이다. 여주에는 세종대왕릉 외 명성왕후 생가, 해여림 식물원, 세계도자기관이 등이 자리하고 있으니 함께 들러보는 것도 좋겠다. 사진제공 ㅣ 여주군청 ▶ 관련기사 ◀☞새로운 주모 맞은 마지막 주막…경북 예천 ''삼강주막''☞60년대 거리 걷다 허기지면 막창순대 한 접시☞시골 장터 구경 가자
- 고도(古都)에서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다
- ▲ 계룡산도예촌 풍경 <사진제공:여행작가 한은희>[조선일보 제공] ::: 위 치 - 충남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 555-2 계룡산도예촌 - 충남 공주시 산성동 65-3 공산성 - 충남 공주시 웅진동 57 송산리고분군 - 충남 공주시 의당면 청룡리 357 공주민속극박물관 - 충남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511-1 계룡산자연사박물관 고려청자에서 조선백자로 이어지는 우리 도자역사에서 잊혀진 것이 있다. 청자에 분을 발랐다하여 분청이라 불렸던 분청사기이다. 그중에서도 갑사, 동학사, 신원사, 구룡사 등 4대사찰을 품은 계룡산의 흙으로 구워낸 분청사기는 산화철을 사용해 붉은 색 그림을 그려 넣은 철화분청으로 계룡산 분청이라는 별칭을 가질 만큼 활발하게 작업되었다. 그런 분청사기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은 임진왜란 이후이다. 당시 분청을 빚던 많은 도공들이 왜국으로 끌려가 분청도방들이 해체되었고, 순백의 빛을 가진 백자가 조선선비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유로운 정신을 그릇에 담아내던 분청의 맥이 서서히 끊어진 것. 그 맥을 다시 잇기 시작한 것은 계룡산 4대 사찰 중 하나였던 구룡사 터에 계룡산도예촌이 만들어진 1993년 5월이다. 계룡산도예촌의 작가는 15명으로 15년 전 도예촌을 만들며 입주했던 작가 중 2명이 바뀌었을 뿐 모두 그대로 작업하고 있다. 이들은 도예촌을 만들기 위해 자신이 구입한 땅의 50%를 공유면적으로 내놓았다. 그 땅은 도예촌 안의 길과 공동전시장, 장작가마와 운동장이 되어 도예촌사람들의 쉼터는 물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쉼터가 되었다. 도예촌을 산책하며 계룡산을 한눈에 바라보고 가슴 가득 자연을 담아가기를 바라는 도예촌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것. 그렇다 해서 도예촌이 단순히 사람들의 쉼터만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도예를 전공하고 대학교와 문화센터 등에서 강의하는 전문작가들인 이들이 30대 초반의 젊은 시절, 이곳에 모여 작업을 하게 된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우리문화의 영향 없이 자신들 스스로 문화를 창조하고 발전시켜 온 것처럼 국제사회에 인식시키고 있는 것을 막고자 한 것. 창의성 가득한 분청작품을 세계에 알림으로써 일본 문화가 우리문화에서 파생되었음을 자연스레 알리고 국가자긍심을 찾고자 한 문화운동인 것이다. 계룡산도예촌의 작가들은 그 정신을 잃지 않고 지켜가고 있다. 분청작품을 만들어 꾸준히 국제교류를 해오고 있는 것. 그중 하나가 ‘계룡산분청사기축제’이다. 외국작가를 초청해 함께 작업하며 이 땅의 자연을 닮은 분청사기를 설명함으로써 그들에게 우리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이 축제는 매년 4월 중순경에 열리며 올해로 5회째이다. ▲ 유약 입히는 과정 <사진제공:여행작가 한은희>작가들은 국제교류 뿐 아니라 국민들에게 분청사기를 알리는 작업도 꾸준히 해오고 있다. 계룡산도예촌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언제든지 작업실을 방문할 수 있도록 작가 개개인의 작업실을 개방하고 체험공방도 운영하는 것. 분청을 기본으로 저마다 다른 주제의 작품을 하고 있는 도예촌작가들의 작품을 한 곳에 모아 전시하는 공동전시장을 만들고 한쪽에 조그만 쉼터도 마련해 놓았다. 작가들이 만든 다기에 우리차를 담아 마시며 창밖으로 보이는 도예촌의 평안한 오후를 맞이하는 것도 색다른 체험이 될 것이다. 계룡산도예촌의 도예체험은 각 도방별로 이루어진다. 15개의 도방 중 10개의 도방이 체험을 운영하고 있으니 천천히 마을을 돌아보다 마음에 드는 곳에서 체험신청을 하면 된다. 단체로 도예체험을 신청하면 토기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우리나라의 도자기를 보여주는 슬라이드 수업이 이루어진다. 슬라이드를 보며 매병과 주병의 곡선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왜 철화분청은 계룡산에서만 만들게 되었는지 등을 주제로 수업하는 것. 단체수업은 예약필수이다. ▲ 저마다의 특성의 살려 만든 공방 <사진제공:여행작가 한은희>체험시간은 도방별로 다르나 대략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 물레체험과 접시·화병 만들기 등을 할 수 있으며, 체험료는 어른 1만5000원, 학생 1만원 선이다. 공동전시장은 평일 오후 1시부터 오후 6시, 주말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고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공주시는 한성시대를 접은 백제가 새롭게 선택한 수도였다. 475년 웅진으로 천도한 문주왕에서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을 거쳐 백제 26대 왕인 성왕이 협소한 웅진을 벗어나 너른 들을 가진 사비로 도읍을 옮겨가는 538년까지 64년간 백제의 수도역할을 한 것. 짧은 기간이었으나 공주에는 웅진백제시대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대표적인 공간은 공산성과 무령왕릉이 있는 송산리고분군이다. 공산성은 웅진성, 쌍수산성 등으로도 불리었다. 강이 깊고 산비탈이 가팔라 적이 침범하기 힘들었던 이 산성의 성곽길이는 2,660m. 성 안이 넓고 누각이 많은 것으로 보아 임금이 머물던 왕궁성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쌍수정 앞 왕궁터 추정지가 그것을 뒷받침한다. 공산성 서문인 금서루에서는 백제역사체험이 이루어진다. 매년 4월부터 10월까지 토요일과 일요일에 이루어지는 수문병교대식이 끝나면 왕과 왕비, 공주와 왕자, 군졸의 옷을 입어볼 수 있는 백제의상체험과 활쏘기, 투호놀이 등의 체험프로그램이 이어지는 것. 문화유산해설사와 함께 성을 돌아보는 공산성 문화 해설 체험도 운영된다. ▲ 송산리 고분군 <사진제공:여행작가 한은희>웅진시대 왕과 왕족의 무덤이 모여 있는 송산리고분군은 겉으로 보이는 7기와 안으로 숨어있는 7기를 합해 14기의 고분으로 이루어졌다. 일제치하에 철저하게 도굴되어 남아있는 유물이 없다 여겨지던 이곳이 다시 조명받기 시작한 것은 1971년 7월 5일 6호분의 배수로공사를 진행하다 발견된 무령왕릉 때문이다. 외부의 손을 타지 않아 고스란히 남아있던 무령왕릉에서는 왕관을 장식하던 관장식,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의 장신구와 지석, 석수 등을 비롯해 108종 2,906점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그중 국보로 지정된 것만도 12종 17점이나 된다. 송산리고분군의 구조와 만드는 방법 등을 알 수 있는 고분군모형관에서는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고분제작과정, 5호분·6호분·무령왕릉을 1:1 크기로 재현해 놓은 고분내부모습, 고분에서 출토된 다양한 장신구들과 묘지석에 기록된 글자 등을 상세히 살펴볼 수 있다. 송산리고분군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이며 설날과 추석 당일은 휴관한다. 입장료는 어른 15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700원이다. ▲ 공산성 금서루 <사진제공:여행작가 한은희>1996년에 문을 연 공주민속극박물관은 민속연극에 쓰이는 다양한 탈과 인형, 악기, 전통 놀이도구 등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다양한 전시물들이 있는 이곳의 관람은 학예사와 함께 이루어진다. 학예사가 안내하며 전시된 많은 탈들과 놀이기구에 얽힌 이야기를 전해주고, 직접 만지거나 써볼 수 있게 해 주는 전시관람체험이 이루어진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이곳에만 있는 짚으로 만든 열두 띠 탈을 직접 써보는 것. 그 옆에는 종이로 만든 열두띠 탈이 나란히 전시되어있다. 자신의 띠를 그림자인형으로 만들어 간단한 이야기를 만든 뒤 즉석에서 공연하는 가족그림자극 공연체험도 인기이다. 이곳에는 인근 마을주민들이 기증한 농기구를 전시한 농기구전시장도 있다. 그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농사지을 때 사용하던 농기구는 물론 새를 쫓던 ‘따리’같은 도구도 관찰할 수 있다. 이기동 할아버지가 만들어 놓으신 가마니틀과 멍석틀로 직접 가마니를 짜보거나 멍석짜기를 해볼 수도 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루어지는 전시관람체험은 예약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므로 1일전까지 방문예약 해야 한다. 관람료는 어른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이다. 체험료는 종류에 따라 다르나 1인당 5000원~1만원 선. 관람 및 체험 예약필수. ▲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공룡화석 청운이 <사진제공:여행작가 한은희> 계룡산자연사박물관은 몸 전체길이 25m, 높이 16m인 초식공룡화석 청운이가 전시되어있는 곳이다. 전 세계에 3개밖에 없는 화석으로 그중에서도 보존율 85%의 우수한 화석이다. 살아있을 당시 이 공룡의 몸무게는 80톤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밖에도 이곳엔 전 세계적으로 희귀한 화석들이 많이 전시되어있다. 박물관 2층에 전시된 동굴사자의 골격과 동굴곰의 골격, 시베리아에서 발굴된 메머드의 골격들이 그것이다. 박물관 3층 특별전시실에서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미라를 볼 수 있다. 박물관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이고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관람료는 어른 9000원, 군경 7000원, 초중고생 6000원, 24개월 이상의 유아 4000원이다. ::: 여행정보 ○ 관련 웹사이트 주소 - 공주시사적관리소 : www.gongju.go.kr/historical - 공주민속극박물관 : http://blog.naver.com/folkdrama - 계룡산자연사박물관 : www.krnamu.or.kr ○ 문의전화 - 계룡산도예촌 : 041)857-2005 - 송산리고분군과 공산성 : 공주시사적관리소 041)856-0331 - 계룡산자연사박물관 : 042)824-4055 - 공주민속극박물관 : 041)855-4933 ○ 대중교통 [고속버스] - 서울(고속버스터미널)-공주 : 06시~21시까지 20~30분 간격으로 운행, 1시간 30분 소요. - 서울(남부터미널)-공주 : 06시40분~19시40분까지 20분 간격으로 운행, 1시간 30분 소요. [시외버스] - 대전동부터미널-공주 : 07시~21시까지 1일 22회 운행, 1시간 10분 소요. - 대전서부터미널-공주 : 06시29분~22시30분까지 5분 간격으로 운행, 1시간 소요. ○ 자가운전 정보 [서울-공주] 경부고속도로-천안논산고속도로-정안IC-23번국도-시청방면 진입-금강교-공주시내 [부산-공주] 경부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유성IC-32번국도-금강교-공주시내 [광주-공주] 호남고속도로-천안논산고속도로-남공주IC-40번국도-공주시내 ○ 숙박정보 - 금강관광호텔 : 공주시 신관동 595-8, 041)852-1071 - 르네상스 모텔 : 공주시 신관동 607-23, 041)852-0901 - 동학산장여관 :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735-2, 042)825-4301 ○ 식당정보 - 고마나루쌈밥 :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 앞, 041)857-9999 - 연문대가 :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 앞, 041)856-0757 - 이학식당 : 공주시 중동 산성시장 입구, 041)855-2455 - 고향손칼국수 : 공주시 금흥동 장기농공단지 삼거리, 041)853-9566 - 촌동네식당 :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042)825-4110 ○ 축제 및 행사정보 - 계룡산분청사기축제 : 2008년 4월 중순 예정 - 웅진성 수문병 근무교대식 : 매년 4월~10월 매주 토·일요일(7~8월은 제외) - 백제문화제 : 매년 10월 초 - 공주알밤축제 : 매년 가을 첫 밤이 수확되는 시기 ○ 주변볼거리 - 국립공주박물관, 석장리박물관, 박동진판소리전수관, 웅진초등교육박물관, 임립미술관, 산성시장, 마곡사, 동학사, 갑사, 신원사 ▶ 관련기사 ◀☞1년에 단 두 번, ''한반도 최고 명품'' 日出을 보는 곳
- [주말걷기] 나무향 가득한 길에서 나의 한해를 돌아본다
- [조선일보 제공] 서오릉은 서쪽에 왕릉이 다섯 개가 있다고 붙여진 이름입니다. 조선왕조의 왕과 왕후들의 생몰연대를 확인해보면 새삼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요, 능 뒤편으로 이어진 산책길을 걸으며 차분히 한 해를 돌아보는 건 어떨까요. ①버스 정류장~매표소~명릉~매표소(1.5㎞/20분) ‘서오릉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서오릉’ 푯말을 따라 오른쪽 길로 들어가면 매표소가 나온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서 뒤쪽에 있는 명릉부터 들른다. 출입구에서 숲길을 조금 걸으면 명릉이 보인다. 명릉은 숙종과 숙종의 제1계비 인현왕후 민씨, 제2계비인 인원왕후 김씨의 무덤이다. 이번에 새로 단장을 한 정자각이 파란 겨울 하늘 아래 더욱 선명하고, 능은 전체를 돌아볼 수 있도록 개방해 놓았다. 매표소에서 구입한 관람권은 잘 챙기자. 나중에 익릉, 창릉을 들를 때 필요하다. ※서오릉 입장 시간 동절기(11~2월) 6:30~16:30 / 하절기(3~10월) 6:00~17:30 매주 월요일 정기휴무 / 문의 (02)359-0090 관람요금 대인(19~64세) 1000원, 소인(7~18세) 500원, 6세 이하와 65세 이상은 무료. ▲ 창릉 근처의 숲길. 오르막과 내리막길이 계속 이어진다. /조선영상미디어 김승완 기자 wanfoto@chosun.com②매표소-수경원-익릉(0.5㎞/10분) 명릉을 다 보고 난 후, 다시 매표소로 돌아와 출입구로 들어간다. 출입구 앞 작은 다리를 건너면 나오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수경원, 익릉 방향으로 간다. 걷다 보면 수경원과 익릉이 차례로 나온다. 수경원은 영조의 후궁이며 우리가 흔히 사도세자로 알고 있는 장헌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의 무덤이고, 익릉은 숙종의 정비 인경왕후 김씨의 무덤이다. ③익릉-숲 산책로-창릉(3.0㎞/60분) 익릉을 보고 나와, 홍살문 오른쪽으로 나있는 길로 접어든다. 잠시 후 나오는 갈림길 앞 산책길 안내판에서 오른쪽 숲길로 들어간다. 소나무길이다. 15분 정도 걸으면 소나무길과 서어나무길로 나뉘는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 서어나무길로 간다. 야트막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이어지며 겨울 숲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호젓하고 한가한 나무 사이를 걸으며 찬 공기 속에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향긋한 나무 향을 맡아보자. 느린 걸음으로 40분 남짓한 거리를 걷는 동안 몇 군데 갈림길이 나오는데 정식 산책로만 따라가자. 안내판이 곳곳에 있어 길을 헤맬 염려는 없다.④창릉-홍릉-대빈묘-경릉-순창원-매표소-버스정류장(1.5㎞/30분) 숲길이 끝나면서 오른쪽에 창릉(예종과 계비 안순왕후 한씨의 무덤)이 보이고, 왼쪽에는 간이화장실이 있다. 창릉부터 매표소까지는 단풍나무길이다. 단단하게 겨울을 견디고 있는 단풍나무의 겨우살이를 엿볼 수 있다. 곧 왼쪽에 홍릉(영조의 정비 정성왕후 서씨의 무덤)이 나온다. 홍릉을 지나 조그만 언덕을 넘어가면 유명한 숙종의 후궁 희빈 장씨의 묘소 대빈묘가 오른쪽에 나온다. 살았던 시절의 파란만장함에 견주면 초라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묘소가 길가에 비껴 자리하고 있다. 경릉(추존왕 덕종과 소혜왕후 한씨의 무덤)과 순창원(순회세자와 공회빈 윤씨의 무덤)을 지나면 다시 정문 매표소에 도착하게 된다. ● 총 걷는 거리: 6.5㎞ ● 총 걷는 시간: 2시간 ● 찾아가는 길: ‘서오릉 입구’ 버스정류장(3호선 녹번역 4번 출입구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702번 버스 승차, ‘서오릉 입구’를 확인하고 탈 것. 독립문역, 무악재역, 홍제역에서도 탈 수 있다. 배차간격 약 7분) ● 돌아오는 길: 702번 버스(녹번역, 홍제역, 무악재역, 독립문역, 서대문, 광화문 등으로 이동할 수 있다.) ● 떠나기 전에: 매표소 근처와 창릉 근처에 화장실이 있다. 동절기에는 매점 문을 열지 않으니 따뜻한 물을 챙겨 가면 좋다. 서오릉 입구에 식당이 많다. ▶ 관련기사 ◀☞[주말걷기] 12월에도 푸른 숲이 그리운 그대에게
- 높은 하늘, 푸른 물, 노란 해바라기… 안양천을 따라 가을이 흐른다
- [조선일보 제공] 조용히 한강으로 흐르는 안양천(安養川)을 따라 걷다보면 물내음과 풀내음, 흙내음에 코가 즐거워진다. 물가에서 노는 왜가리의 춤추듯 우아한 몸짓에는 가을의 여유가 뭍어난다. ① 석수역에서 기아대교까지(0.5㎞/5분) 석수역 2번 출입구 계단을 내려와 바로 앞의 횡단보도 건너편 ‘훼미리마트’ 편의점이 있는 오른쪽 길로 200m 정도 간다. 연두색 철제 울타리가 있는 ‘연현빗물펌프장’ 앞에서 길이 자연스럽게 왼쪽으로 꺾인다. 안양천이 내려다보이는 둑길이 금방 나온다. 천변으로 내려가지 말고 오른쪽 둑길로 계속 간다. 첫번째 만나는 다리가 ‘기아대교’다. ② 기아대교에서 독산교까지(2㎞/30분) 기아대교 밑을 지나면 산책로안내판이 나온다. 가던 길로 계속 간다. 오른쪽으로는 기찻길을, 왼쪽 아래로는 안양천을 두고 25분쯤 더 가면 두 번째 다리인 ‘시흥대교’가 나온다. 시흥대교 밑을 지나 400m 정도 더 가면 세 번째 다리인 ‘독산교’가 있다. 보행자 전용 다리인 독산교를 건넌다. 독산교 중간 지점에서 양쪽으로 안양천을 바라보자. 서울시가 올해 뽑은 우수조망명소 43곳 중 하나로 선정된 곳이다. ③ 독산교에서 금천교까지(1.5㎞/20분) 독산교를 건너 오른쪽 나무 샛길로 간다. 150m쯤 가다 작은 갈림길에서 11시 방향으로 다리(차도) 밑을 지난다. 여기서부터 양쪽으로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흙길이다. 네 번째 다리인 ‘금천교’는 가로질러 건너지 못하므로 오른쪽 안양천변으로 내려서는 계단을 내려가, 금천교 밑을 지나 왼쪽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온 다음, 흙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계속 가야 한다. ④ 금천교에서 안양교까지(4㎞/50분) 다섯 번째 다리인 ‘철산교’와 여섯 번째 다리인 ‘광명대교’도 금천교와 같은 방법으로 지난다. 즉 오른쪽 안양천변으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내려가, 다리 밑을 지나 왼쪽에 있는 계단을 올라온 다음, 흙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계속 걷는다. ⑤ 안양교에서 구일역까지(1㎞/15분) 일곱 번째 다리인 ‘안양교’를 지나는 방법은 좀 다르다. 안양교에서 천변으로 내려가지 말고, 안양교 왼쪽 난간을 따라 시계 반대방향(왼쪽)으로 원을 그리면 다리 밑으로 내려가다 다시 올라오게 된다. 그렇게 올라오면 왼쪽으로 ‘리버빌아파트’ 상가 건물이 보이고, 정면(12시 방향)에 연두색 철제 울타리가 쳐있는 길이 있다. 이 길로 250m쯤 가면 지붕이 있는 보행자 전용 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를 오른쪽으로 건너면 다리가 끝나는 지점 왼쪽이 ‘구일역’이다. ●알고가면 더 좋아요 총 걷는 거리: 9㎞ 총 걸리는 시간: 2시간(쉬는 시간 포함되지 않음) 찾아가는 길: 1호선 석수역 돌아오는 길: 1호선 구일역 떠나기 전에: 매점은 석수역과 구일역에 있다. 화장실과 벤치, 정자가 안양천을 따라 많다. 다양한 운동기구도 곳곳에 설치돼 있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안양천(安養川): 삼성산(三聖山)에서 발원하는 하천과, 백운산(白雲山)에서 흘러나온 학의천(鶴儀川) 및 군포시를 흐르는 산본천(山本川) 등의 지류가 안양시 석수동에서 합류하여 북쪽으로 흐른다. 삼성산의 안양사에서 발원하였다 하여 안양천(安養川)이라 부른다. 조선시대에는 대천(大川)·기탄(岐灘)이라고도 했다. ●10월 걷기 스케줄 셋째 주: 인천대공원~해양생태공원~소래포구 넷째 주: 충남 공주 공산성~무녕왕릉 ▶ 관련기사 ◀☞가을 색으로 물드는 남산… 내 마음도 물드네(VOD)
- 교복입던 그 시절에는 느낄 수 없었던 ‘밤의 古都’
- [조선일보 제공] ‘이름 없는 고분들은 공룡만큼 거대했고 첨성대는 하늘에 닿을 듯 솟아있었지. 아무렴, 왕의 무덤이고 별을 보던 곳인데….’ ▲ 조명을 밝힌 고분들 곁을 지나는 밤의 산책은 경주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묘미다. 첨성대 앞 고분들. 수학여행의 기억을 품고 일이십 년 만에 경주를 다시 찾는다면 약간은 낯설고 조용하단 생각이 들지 모른다. ‘앞으로 나란히’로 줄 맞춰 구경 다니다 기념사진을 찍는다며 불국사 계단에 무질서하게 모여 앉거나 문화재보다는 오랜만의 수다에 열을 올리는 ‘교복쟁이’들이 없는, 고적한 밤은 특히나 그렇다. 전형적인 경주에서 한발 물러나 고도(古都)의 낯설고 새로운 모습을 찾고 싶다면 밤 산책이 제격이다. 고맙게도 경주시는 첨성대를 중심으로 한 황남동 일대에 세련된 야간 조명을 2003년부터 4년에 걸쳐 설치했다. 임해전지에서 반월성과 첨성대를 지나 황남동의 고분들까지 이어지는 달밤의 산책로를 걷다 보면 나지막한 도시의 은은한 야경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임해전지 _ 첫걸음은 ‘임해전지(臨海殿址)’라고도 불리는 ‘안압지’에서 떼는 것이 좋다. 경순왕이 태조 왕건에게 화려한 잔치를 베풀었다는 ‘임해전’을 비롯해 26개의 건물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1970년대 복원한 건물 세 개만이 남아있다. 폐허가 된 곳에 기러기와 오리만 노닌다며 조선시대 ‘안압지(雁鴨池)’라는 초라한 이름을 얻게 됐다. 원래 못 이름은 ‘월지(月池)’. 반면 건물과 배롱나무가 깔끔한 조명을 차려 입고 연못에 거꾸로 반사되는 야경은 색다르고 현대적이다. 밤바다의 파도소리를 연상케 하는 대숲 소리도 한결 진하게 다가온다. 반월성 _ 안압지를 천천히 한 바퀴 돌고 정문으로 나오면 길 건너 수로에 비친 나무가 또 다른 밤 풍경을 뽐내고 있다. 나무가 심어진 언덕 위가 반월성(半月城)이다. 안압지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나가 횡단보도를 건넌 후 파출소 옆 나무 계단으로 올라가면 바로 연결된다. 신라시대 궁궐이 있던 곳이라는데, 반달 모양의 터를 제외하고는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첨성대로 이어지는 반월성 산책로는 걷는 데 15~20분 정도 걸린다. 왼쪽으로는 궁터와 거대한 버드나무, 오른쪽으로는 솔숲이다. 흙 길을 따라가다 네 갈래 길을 만났을 때 오른쪽 내리막으로 가면 김(金)씨 시조 김알지의 탄생 신화가 어린 계림(鷄林)으로 이어진다. 첨성대가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모습은 반월성 끝 무렵부터 보인다. 안압지―반월성―계림―첨성대로 길이 이어져 반갑긴 한데, 반월성 조명이 어둑해 캄캄한 밤 혼자 걷기는 약간 으스스하다. 안압지 정문에서 큰길을 따라가도 첨성대로 이어지니 반월성은 낮 구경을 위해 남겨둬도 되겠다. ▲ 새까만 밤하늘을 배경으로 빛나는 밤의 첨성대는 우주를 향한 인간의 염원을 드러내는 듯 한다.첨성대 _ 계림, 첨성대, 고분공원과 천마총이 있는 대릉원은 가까이들 모여 있다. 계림은 드문드문 가로등 말고는 조명이 없다. 살짝 둘러본 후 걸어서 3분 거리의 첨성대로 발길을 옮기자. ‘신라시대 천문대’라는 요약형 설명을 듣고 기념사진 찍은 후 아무 생각 없이 천마총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학창 시절. 그러나 첨성대만큼 미스터리에 쌓여있어 ‘참뜻’을 알기 어려운 유물도 드물다. 다시 찾은 첨성대. 밤에도 빛나는 미지의 조형물은 흰 조명으로 치장한 주변의 나무들과 어우러져 마냥 어여쁘기만 하다. 시야를 가리는 높은 건물 없이 그저 넓게 펼쳐진 검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탓인지, 첨성대는 햇빛 속 모습보다 아담해 보인다. 대릉원 _ 첨성대 바로 맞은편에는 고분 6개가 여러 개의 달이 뜨는 어느 행성의 풍경처럼 빛나고 있다. 여기서부터 노동·노서리(路東·路西里) 고분까지 33개의 고분이 길 따라 누웠다. 천마총과 미추왕릉 등 23개의 고분이 위치한 ‘대릉원’은 밤에도 문을 열어둔다. 단 천마총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 고분공원같은 본격적인 조명은 없고 가로등만 켜 있다. 달 그림자를 푸근하게 드리운 크고 작은 고분 사이사이로 천천히 산책하는 묘미는 경주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호사다. 노동·노서리 고분군 _ 대릉원 정문에서 왼쪽으로 나와 큰 길서 다시 왼쪽으로 가다 보면 경주의 유명 먹거리 ‘황남빵’ 간판이 보인다. 길을 건너 왼쪽으로 가다가 법장사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네 개의 무덤이 모여 있는 노동·노서리 고분군이 나온다. 걸어서 15~20분 정도 걸린다. 봉황대 고분이라고도 불리는 노동리 고분은 밑둘레 250m로 봉이 두 개인 경주 ‘황남대총’을 빼고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 300살 넘게 먹은 느티나무를 비롯해 12 그루의 나무가 고분 위에서 땅을 내려다보고 있다. 하늘로 땅으로 핏줄같이 뻗어있는 나무와 거대한 무덤은 조명을 받는다기보다는 마치 빛을 발산하는 것 같다. 돌무지 속에 누워있을 무덤의 주인, 커다란 고분 위에서 지금도 느릿느릿 자라고 있는 나무들, 그리고 경주의 달밤을 거니는 속세의 인간들이 어우러진 모양새가 경주 그 자체다. 가는길 | 승용차로 갈 경우 경부고속도로 경주IC.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간다면 동대구역에서 새마을호나 무궁화호로 갈아탄다. 서울~동대구는 1시간40분, 동대구~경주는 1시간(새마을호), 1시간 20분(무궁화호)쯤 걸린다. 동대구에서 열차는 10~15분 간격으로 자주 있다. 시내 버스 노선은 ‘경주 문화예술관광’ 홈페이지(http://culture.gyeongju.go.kr) 참조. 맛집 | 고분 맞은편에는 이탈리아 식당 일바질리코(054-742-6447), 카페 테라스(054-773-8084), 우동 전문점 기소야(054-746-6020)가 있다. 통유리(‘일바질리코’), 2층 테라스(‘테라스’), 1층 노천 식탁(‘기소야’)이 있어 고분의 야경을 감상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숙소 | 대형 호텔과 숙박업소는 보문관광단지에 모여 있다. 경주조선온천호텔(054―740―9600) 경주힐튼호텔(054―745―7788) 코모도호텔(054―745―7701) 콩코드호텔(054―745―7000) 현대호텔(054―748―2233) 등. 시내에는 관광호텔 벨루스(054―741―3335), 경주파크관광호텔(054―777―7744) 등이 있다. 여행상품 | 답사단체인 ‘신라문화원’은 4월 28일부터 야간 기행을 포함하는 ‘달빛 신라 역사 기행’을 시작한다. 매달 보름과 가장 가까운 토요일마다 열리며 낮에는 전문 해설사와 함께 유적 답사를, 해가 지면 탑돌이나 국악공연 같은 전통 행사와 함께 야경을 감상한다. 입장료 포함 어른 1만7000원, 신라문화원 회원·청소년 1만5000원. (054)774―1950, www.silla.or.kr
- (CEO 칼럼)"프로가 필요한 세상, 프로가 되자"
- [지오텔 이종민 대표] 기업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CEO가 말하는 것처럼 필자도 ‘인재(人材)’라고 꼽겠다. 현대사회에서 최고 경영자는 단지 인재를 데려오고, 관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이 인재인지, 옥석을 가리는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기업 문화와 CEO의 경영 철학(때로는 인생경험)에 따라서 달라지는 듯하다. 필자가 추구하는 프로페셔널한 인재는 자신의 지식을 수치로 정확하게 표현, 즉 정량화 해 낼 수 있는 사람이다. 영국의 학자 캘빈 경은 지식이란 측정할 수 있고, 수치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기준에 의하면 측량할 수 없고, 수치로 표현하지 못할 때 그 지식은 빈약하고, 불만족스러운 부류에 속한다는 것이다. 캘빈경이 말한 지식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사례 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쉽게 찾을 수 있다. 필자는 고대 우리 민족의 빛나는 역사를 전해주는 '광개토대왕비문'을 보고 그 정밀함에 놀란 적이 있다. 정치가 혼란한 시대 많은 왕릉들의 비문은 화려한 미사여구와 고매한 표현으로 선왕을 기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대왕의 비문은 등극 이후 당시의 국제 정세, 정벌과 치세의 기록을 연도별로 각 지명과 부족명, 군사의 수 등을 바탕으로 총 44행 1755문자에 걸쳐 생생히 기록하고 있다. “8년 무술, 편사를 파견하여 백신토곡을 정찰하고, 막사라성과 가태라곡을 정복하고 남녀 800명을 잡았다. ~(중략) 이때 태왕의 은덕에 감격하여 따라온 자가 있는데, 매구루압로, 숙사사압로 등 이다. 모두 64성과 1400개의 촌락을 공파하였다” 이렇듯 병력의 수, 노획장비의 수, 침공하여 멸한 성의 수와 장비들 등 대왕의 치적에 대하여 매우 상세히 정량화 하여 기술해 놓고 있다. 광개토대왕릉비문에서 보듯이 우리에게도 사실적이요 실용적이며 계량화된 시대정신이 지배했던 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비문에 새겨져 철저하게 정량화된 기록이 광개토대왕의 위대함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아닐까? 또한 추상적이고, 모호한 표현이 아닌, 정밀한 실사구시의 정신이 고대 우리 민족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또한 다산 정약용 선생의 거중기와 수원성 축조에서 실용적인 탐구와 노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거중기는 역사적으로 강국이었음을 증명하는 장비이다. 8개의 도르래를 사용하여 적은 힘으로 무거운 물건을 쉽게 들어올리는가 하면 커다랗고 무거운 돌을 적당한 높이까지 들어올려 더욱 큰 힘을 쓰게 했던 것이다. 이는 공기(工期)의 단축이라는 과학성도 중요하지만 작업자의 안전도에서도 뛰어난 평가를 받고 있다. 인생의 황금기 15년을 흑산도에서 유배생활 중 남긴 정약전 선생의 '자산어보' 는 무엇으로 그 탁월함을 인정받는가? 이 책은 총 226개의 표제 항목으로 분류한 각종 수산 동식물들의 명칭, 분포, 형태, 습성 및 이용법 등에 대한 매우 방대하고도 엄밀한 사실적 기록을 담고 있다. 중국의 문헌을 정리하고 고증하는 종래의 저술 방식을 극복, 해양 생물들을 현장에서 직접 보고 만지고, 심지어 해부까지 해서 얻은 놀라운 성과물이다. 이를테면 50개가 넘는 청어의 척추 뼈를 일일이 세어 맞춘 그의 집요한 과학에는 현대 생물학자들조차 경악을 금치 못한다고 한다. 민중을 사랑했던 선비의 마음, 학문에 대한 열정, 지식인의 양심 그리고 살아 움직이는 바다가 담겨 있다고 전해진다. 현대사회, 특히 IT산업에서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고, 변화의 폭은 훨씬 커지고 있다. 첨단 기술과 선도 제품의 라이프사이클도 2~3년을 넘지 못한다.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남들 보다 반박자라도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정량적 사고와 실사구시적 행동 양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밀하게 수치화된 목표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세밀하고 꼼꼼하게 계측하고 정량화하는데 무척 게으르다. 소프트웨어 개발도 마찬가지다. 소프트웨어 개발도 결과 중심의 사고로는 소프트웨어 방법론이 나올 수 없다, 그래서 모든 소프트웨어 방법론이 모두 서구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소프트웨어 선진국 직원과 함께 일을 해 보면 짜증날 정도의 세밀한 스케줄링과 계량화의 능력을 지켜봤을 것이다. 끝으로, 인재의 조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점이 바로 조직에 대한 태도이다.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인성과 능력만을 놓고 볼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능력과 개인적인 자질은 탁월하지만, 조직을 위해서는 자기 능력의 10%도 발휘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에 비해 개인적 능력은 전자에 비해 다소 떨어지지만, 조직을 위해서 자신의 능력의 90%, 그리고 100%를 발휘하는 사람도 있다. 필자는 인재는 별개의 개인이 아닌 조직 속에서 존재로 평가 받고 판단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필자가 선호하고 함께 가고자 하는 사람은 바로 조직 속에서 자기 잠재 능력의 90%이상을 끌어내는 사람이다. 물론, 이 말은 조직을 위해서 개인이 희생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제 자신 뿐만 아니라 조직에 눈을 돌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조직을 통해서 협업하여 극복해나가는 자세, 그리고 자신의 꿈을 회사라는 조직 속에서 함께 일구어가는 자세, 그렇게 개인이 회사라는 조직 속에서 행복해지고자 하는 그런 자세가 중요하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회사가 여기까지 올 수 있는 비결도 바로 이러한 프로정신에 충만한 인재들이 회사의 기둥이 되어왔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프로는 운동선수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지식산업사회의 프로는 계량화된 지식으로 실용적인 탐구와 노력을 투자한다. 그들만의 고유한 기법이 반드시 존재하며 항시 정량화된 그리고 계량화하는 지식을 가꾸는 방법을 안다. 엊그제 지오텔은 필기시험을 통해 신입사원 공채를 시작했다. 새롭게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이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 이들을 멋진 프로로 키워내는 것 또한 지오텔과 필자의 몫이다. 이종민 대표 <약력>서울시립대학교 및 동대학원 GIS전공 졸업 쌍용정보통신㈜ 근무인천국제공항공사 근무㈜지오텔 대표이사 (현재)㈜지오텔 2000년 1월 주식회사 지오텔 설립 2003년 6월 MSN모바일서비스 세계 최초 상용화 성공 2003년 10월 한국 표준무선인터넷 플랫폼(WIPI) 상용화 성공2005년 8월 메시징허브플랫폼 `쿨샷` 상용화 성공, 벤 처기업상 수상2006년 8월 코스닥 상장 10월 벤처기업대상 국무총리상 수상, 11월 모바일기술대상 정통부장관상 수상
- 기나긴 한가위, 볼 것도 할 것도 많아라~♪
- [노컷뉴스 제공]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을 맞아 연휴기간 동안 전국 곳곳에서 전통문화 공연 및 체험행사 등 풍성하고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펼쳐진다.오랜만에 만난 가족,친지들과 함께 가까운 고궁과 박물관, 미술관 등에서 진행되는 문화행사를 즐기며 깊어가는 가을을 함께하는 것도 뜻깊은 추석이 될 듯하다.서울지역의 경우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국악원, 민속박물관과 고궁, 능원, 유적관리소에서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06 추석맞이 문화행사’, ‘휘영청 달 밝은 밤에’, ‘전통민속공연’ 등 각종 문화행사가 열린다.경복궁에서는 조선시대 과거제 재현, KBS 열린음악회, 훈민정음 반포재현, 궁성문 개폐 및 수문장 교대의식 등이 펼쳐지고, 창경궁에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49호인 송파산대놀이, 궁중정재인 무고, 향발무, 포구락, 처용무와 궁중음악인 수제천, 여민락 등이 공연된다. 또한, 덕수궁에서는 중요무형문화재 평택농악놀이, 생활다례 체험, 전통 탈모형 목걸이 만들기 등을 통해 우리 민속의 멋과 흥을 즐길 수 있다.이 밖에도 중구 필동 소재 ‘한국의집’에서는 부채춤, 남도민요, 농악 등을 연휴기간 중 공연하며, 전통세시 음식전시 및 시식행사, 세시풍속 비나리 굿 등 공연 등을 마련한다.또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충북, 경북 등 전국의 지자체들이 마련한 문화행사도 풍성하다.차례상, 송편·전통주 빗기 등의 체험과 구슬치기, 망줍기 등 민속놀이도 즐길 수 있으며, 흥겨운 국악공연과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노래자랑 등 지역 특색에 맞는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거리 등을 통해 우리 민속의 멋과 흥을 즐길 수 있다.특히 추석 연휴기간 중 한복을 입고 박물관 및 미술관, 고궁, 왕릉을 찾는 관람객들은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다. 그 어느해보다 다채롭게 마련된 올 추석연휴 문화행사는 특히 연휴기간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전통문화를 소개하고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장이 될 전망이다.2006년 한가위맞이 전통문화행사에 대한 자세한 일정과 내용은 문화관광부 홈페이지(http://www.mct.go.kr) 알림마당 보도자료 코너에서 찾아볼 수 있다.
- 휴가에도 워밍업이 필요해
- [조선일보 제공] 본격 여름 휴가철에 앞서 황금 연휴가 기다리고 있다. 7월 15일부터 제헌절인 17일까지 이어지는 3일 연휴에 떠나볼 만한 국내여행 상품을 모았다. 홍도·흑산도 목포항에서 쾌속선 타고 출발. 홍도<사진> 관광의 진수는 33가지 비경. 흑산도에는 천연기념물 초령목, 반월성 등 문화유적도 많다. ▶우리테마투어: 7월 15일부터 매일(2박 3일). KTX왕복, 목포, 쾌속선, 홍도, 흑산도 유람선. 25만원. (02)733-0882 경주 문화유산 답사와 부산 해운대 불국사, 석굴암, 천마총…. 경주 문화유산을 찬찬히 둘러보러 떠나자. 이어 활기 넘치는 부산으로 이동. ▶하나강산: 7월 15~8월 14일까지 20회(1박 2일). 경주 불국사, 석굴암, 부산 태종대, 해운대해수욕장, 자갈치시장. 12만원. (02)2127-1606 해금강·외도와 남해안일주 전남의 보성차밭은 마치 녹색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하다. 보성다원에서 최고의 투어 포인트는 대한다업. 넓은 차 밭에 키 큰 메타세콰이어 길이 이어진다. ▶하나KTC: 7월 15~8월 19일까지 총 20회(1박 2일). 거제 해금강, 외도해상공원, 보성차밭, 담양대숲, 담양온천. 12만9000원. (02)733-7789 외도 해금강·소매물도 경남 거제도에는 동화나라 섬이 있다. 온갖 열대식물과 조각품이 들어찬 외도. 마치 지중해의 어느 섬에 온 듯하다. 해금강 바위에는 이슬만 먹는다는 풍란과 용설란이 자란다. ▶투어리스트: 8월 14일까지 매주 금, 토(무박). 통영 소매물도, 등대섬, 거제 저구항, 해금강, 외도. 7만9000원. (02)779-4423. 고흥 소록도 아름다운 섬 소록도 자유공원과 나로도부터 보성차밭, 순천 낙안읍성, 선암사까지 돌아보는 남도 여행. ▶고인돌답사회: 15, 16일(1박). 9만5000원. (02)745-2626 진주·창녕 이번에는 진주와 창녕으로 떠나는 문화·역사 답사. 진주성, 촉성루에서부터 진주박물관, 김해 김수로왕릉, 김해박물관,술정리삼층석탑까지 보고 온다. ▶뿌리와샘: 16일(1박). 12만5000원. (02)3675-0625
- 북, 대북지원단체 평양 초청
- [오마이뉴스 제공] 북이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겨레하나) 등을 비롯해 그간 대북지원사업을 꾸준히 해온 대북지원단체들을 초청,수만명의 남측사람들이 평양의 문화유적지 참관과 아리랑 공연을 보게 됐다. 오는 9월26일(월)부터 1박2일 일정으로 매일 300여 명의 참관단이 10월15일까지 평양을 방문해 만경대생가, 동명왕릉, 대동강유람선, 만수대창작사, 인민대학습당, 주체사상탑, 개선문, 옥류관 등 평양의 유명한 주요 유적과 시설들을 참관하게 되며,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인 <아리랑>도 관람할 예정이다. <아리랑>은 지난 2002년 북에서 10만 명이 참가해 선보인 바 있는 예술공연으로 올해 당 창건 60돌을 맞아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지난 8월15일부터 평양에서 공연하고 있다. 참관단은 그동안 대북지원사업을 해왔던 대북지원단체 회원이 중심을 이룬다. 겨레하나의 전은주 정책팀장은 "9월13일에 있은 대북 항생제 공장 지원사업과 관련 실무협의에서 북이 대북지원사업 단체들을 초청"했다고 밝히고 "그동안 지원사업을 해온 단체들에 대한 답례차원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의 행사중심이었던 남북 민간교류 사업과는 달리 순수 참관 목적일 뿐만 아니라 인원에 있어서도 연인원 수 만 명에 달하는 참관규모로 특별한 의의를 가지는 이번 참관사업에 대해 전은주 정책팀장은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대북지원사업을 하는 단체에게는 북을 올바로 이해하고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특히 북의 사회체제와 주민들의 삶을 문화적으로 형상한 아리랑 공연을 관람함으로써 올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평양답사를 통해 북의 긍정적인 면과 함께 어려운 면도 있는 그대로 보고 와 대북지원사업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이번 북한의 초청은 대북지원사업을 하는 단체를 초청한 것으로 일반인보다는 대북지원사업에 참가한 회원들 중심으로 참관단이 꾸려지는데 이에 대해 전 정책팀장은 "이미 10월15일까지의 참관단 규모가 거의 다 짜여진 상태"라면서 "일반인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고 가능성을 신중히 검토해보고 있다"고 전했다. 겨레하나의 경우, 하루 비행인원 300명 정도로 서울은 이미 참가인원이 확정되었으며 지역의 경우는 70-80%가 완료된 상태로 이번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할 인원은 6천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다른 대북지원사업 단체까지 합치면 그 인원은 수 만 명으로 추산된다. 비용도 저렴하다. 1박2일 경비로 참관비, 공연관림비, 항공체류비 등을 포함해 100만원 규모이다. 전은주 팀장은 "이번 사업이 남북교류와 화해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판단하고 "대북지원사업이 한층 활기를 띠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4년 '국민참여형 통일운동'을 표방하고 설립된 겨레하나는 지금까지 백두산지구 참관도로 개보수용 피치 지원사업, 북녘어린이 영양빵 공장 건립 및 지원사업, 북녘 못자리용 비닐지원 사업, 북의 교육시설 현대화 지원사업, 콩우유 제작기구 및 콩 보급사업, 대동강 라면공장 건설지원 및 원자재 보급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는 대북지원사업 단체이다.
- (전문)①한은 총재 "변화엔 고통 따른다"
- [edaily 이학선기자] 한국은행이 600여개 학교, 13만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경제교육 대장정에 돌입했다. 금요강좌 등을 통해 일반인과 접촉을 넓혀온 한은은 박승 총재의 경복고등학교 강연을 시작으로 청소년 경제교육의 첨병으로 나섰다.
박 총재는 24일 서울 종로구 경복고에서 120여명의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90분 동안 우리 경제의 실상과 과제 등을 중심으로 열띤 강연을 펼쳤다.
고등학생 시절 얘기로 운을 뗀 박 총재는 실생활의 예를 들며 쉽고 자세하게 강의를 풀어갔다. 불과 45년만에 국민소득 80달러에서 1만7000달러에 이르게된 과정과 저성장, 고실업, 양극화 문제 등 우리경제의 당면 과제를 조목조목 짚은 뒤 경제와 사회, 정신측면에서의 개혁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음은 박 총재 강의내용이다.
1952년, 고등학생 전북 이리 기계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나 자신의 장래와 나라에 대한 고뇌를 했다. 당시 경제학을 전공해서 대학교수가 되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은 우리나라가 어떻게 성장했고 어떤 형편에 있고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중심으로 강의하겠다. 충남 공주 백제 무녕왕릉이 있다. 1500년전 임금이다. 30~40년 전 무덤이 발견돼서 생활상을 나타내는 유물들이 발굴됐다. 그 유물이 공주에 있는 박물관에 소장돼있다.
박물관 유물보고 깜짝 놀랐다. 1500년전 임금이 쓰던 물건이 내가 고2때 쓰던 물건과 똑같다. 다리미가 발견됐다. 인두, 들기름 등잔 등. 1500년동안 무엇이 변했나. 지금은 10년전에 와본 사람도 서울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바뀐다. 그런데 과거에는 1500년동안 똑같이 살아온 게 아닌가.
매년 경제성장률이 5%, 6%, 7% 과거 역사처럼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한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의 공통된 법칙은 변화, 발전이 없는 것이다. 곧 성장률이 제로라는 얘기다. 그 학자는 오늘날의 문명과 경제발전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1960년부터 경제발전 이뤄졌다. 1인당 국민소득 80달러였다. 80달러 만드는 데 최소한 4300년전 단군 이전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단군 때부터 하더라도 80달러 만드는데 4300년 걸리는 게 대한민국 역사다.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살아왔다.
올해 1인당 국민소득이 1만7000달러다. 80달러에서 1만7000달러 늘어나는데 불과 50년도 안 걸렸다.
◇"세상, 이렇게 변했다"
어렸을 때 목화를 심었다. 베를 짜서 김제시에 가서 검정물 들여 만든 옷을 입고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여러분들의 환경과 내 중고등학교 때 환경을 비교하면 세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전세계를 본다면 성장이라는 개념이 시작된 것은 240년전 영국 산업혁명부터 시작됐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다운 성장이 시작된 것은 1960년대부터다.
경제발전이란 농업사회를 산업사회로 전환시키는 일이다. 1960년대 전인구의 60%가 농민이었다. GDP의 34%가 농업에서 나왔다. 현재는 전체 인구 가운데 농민의 비중은 6%에 불과하다. 농업생산은 국내총생산에 3%에 불과하다. 이를 비교하면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농업사회에서 바뀌기 위해선 노동력 자본 기술이 필요하다. 당시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것은 노동력밖에 없었다. 자본과 기술은 외국에서 빚을 얻거나 도입했다. 이를 우리나라 노동력과 결합해 수출해서 경제발전의 시동을 걸었다.
◇"위기 겪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경제발전은 가난과의 싸움이었다. 가난의 고통을 참고 땀흘려 일한 부모와 할아버지 세대 노력의 결과로 경제발전이 시작됐다. 지금도 전세계 인구의 3분의 1, 약 23억의 인구, 190개국 중 약 60개 국가는 1인당 소득이 약 400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쉽게 말해 하루 1000원으로 살아야하는 가난에 처해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일인당 하루 5만원으로 살고 있다. 북한은 지금도 2000원으로 살고 있다. 이는 여공들의 가난과 고통에서 눈물로 만들어낸 성장이다. 여러분의 선배가 땀과 눈물로 만든 유산인가를 깨우쳐야한다. 아껴쓰고 깨끗이 쓰는 국민적 의무감을 가져야 한다.
우리경제는 위기를 겪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외채위기, 기업도산 위기, 석유파동, IMF 파동 등 위기가 있었지만 오히려 우리 경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경제발전을 이뤘다.
지난 40년동안 평균 8%의 경제성장을 이뤘다. 40년간의 고도성장은 세계경제발전 사상 대한민국이 최초다. 1인당 국민소득 80달러를 45년만에 1만7000달러로 올리는 데 성공했다.
선진국에서 150~200년 걸린 일을 한국은 지난 40여년만에 해냈다. 이를 압축성장이라고 한다. 우리나라가 1995년에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를 달성했다.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올라선 것이다.
◇"고임금, 성장에 저해"
이렇게 성장하다보니까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발전을 가로막는 생존환경 변화 2가지만 설명하겠다.
첫째는 임금이 많이 올랐다. 그런 와중에 저임금 중국이 부상했다. 월급은 많을 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월급이 많을 수록 생활이 여유있게 갈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월급은 생산비용이다. 임금이 높으면 높을수록 생산비용이 오르고, 경쟁력을 잃게 된다.
월급을 매달받는 소득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단순한 생각이다. 월급이란 그 경제활동, 생산활동이 존재할 가치가 있느냐를 판단해주는 역할을 해준다.
예를 하나 들겠다. 중고등학교 때 하루 일당은 3000원이었다. 쌀 한되 반이다. 하루 3000원 번다는 것은 오늘 하루 3000원 만큼은 일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전에 이삭줍기가 있었는데, 일당 3000원 줬다.
그러나 월급이 오르면서 할 가치가 없어졌다. 현재 우리나라의 하루 임금이 10만원이라는 것은 하루 돈벌이가 10만원이 되지 않는 일자리는 할 가치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루 일당 10만원이 안되는 일자리는 퇴출될 수밖에 없다.
지금 옷부터 냉장고 등 중국이 세계를 석권하고 있다. 이렇게 싼값으로 들어오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퇴출될 상황에 처해있다.
◇"무한경쟁 시대, 경쟁력 없으면 퇴출"
두번째 변화는 개방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개방시대는 정치적 국경은 있지만 경제적 국경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고등학교 농구 축구 시합에서 고등학생만 대상으로 한다면 그것은 보호주의적 시합이다. 그러나 개방시대가 되면 세계 모든 선수들이 다 오는 것이다. 월드컵이다.
이게 바로 개방이냐 보호주의냐의 차이다. 바둑에서 못두는 사람이 몇 수 두는 것은 보호주의, 아마추어의 게임이다. 개방시대는 프로게임이다. 세계에서 제일 잘 두는 사람만이 우승한다. 개방시대가 보호주의 시대와 다른 점은 경쟁상대가 전세계라는 점이다.
이는 경쟁력이 없으면 퇴출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 같은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면 고통의 과정을 겪는다. 현재 우리는 그 과정에 있고 앞으로도 그 과정에 있을 것이다.
◇"경제는 냉혹..기업 외국으로 뜬다"
환경변화는 우리에게 어떤 위기를 가져다주고 있는가. 첫째 기업들이 경쟁력을 상실해서 도산하고 농촌의 황폐화 현상이 생겼다. 특히 저임금에 의존하고 사람많이 쓰고 기술이 낮은 기업은 예외없이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 여기서 나오는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이 시간에도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위기에 몰려있다.
둘째는 투자가 우리나라에 되지 못하고 외국으로 유출되고 있다는 데 있다. 자동차 공장이 잘 되고 있는데, 미국에 가서 짓고 중국에서 짓고 인도에서 짓고 슬로바키아에 짓는 등 외국에서 짓는다. 조선, 강철 등도 그렇다. 외국으로 상당부분이 흘러가고 있다. 이 때문에 고용도 안되고 일자리도 줄어든다.
애국심이 부족해서인가. 경제법칙은 애국심과 관계없다. 경제법칙은 냉혹한 이치로 결정된다. 월급 오르고 땅값 오르니깐 기업들이 외국으로 간다.
◇"사오정·오륙도, 변화엔 고통 따라"
셋째가 실업문제다. 흔히 말하는 고용없는 성장이다. 사오정, 오륙도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대학나올 때쯤 여러분들은 그 걱정이 없을 것이다. 졸업할 때쯤이면 조정이 끝나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조정 과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살고자하니까 사람을 줄이게 된다.
예를 하나 들겠다. 예전엔 은행업무의 100%를 사람이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은행업무의 80%가 기계가 한다. 인터넷 뱅킹, ATM, CD기 등등. 그러다보니 은행쪽 발전이 빠르다. 작년 은행 순이익은 재작년에 비해 3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런데 사람은 자꾸 자른다. 임금이 높으니까 사람 대신 기계를 쓴다. 그러다 보니 은행은 발전해도 사람은 잘라낸다. 은행보고 사람 잘라내지 말라고 할 수 없다. 은행 발전 못하는 것 아닌가.
이마트 등 할인점이 있다. 그러나 할인점이 생긴 이후 주변에 있는 구멍가게, 재래시장 심지어 음식점까지 어렵게 됐다. 불가피하고 꼭 필요한 과정이지만 그 과정은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다. 회사 하나 잘되기 위해 수천명이 고통을 받는다. 기업도산 문제, 투자유출문제, 실업문제 등이 얽혀서 지금 우리가 불경기에 시달리고 있다.
- 롯데건설, 부산·김해서 잔여가구 파격분양
- [edaily 이진철기자] 롯데건설은 부산 용호동과 김해 동상동에서 ´롯데낙천대´ 잔여가구를 분양하고 있다고 3일 밝혔다.
부산시 남구 용호동 ´오륙도 롯데낙천대´는 지상 13~ 26층 8개동 규모의 25평~34평형 430가구로 구성돼 있다.
롯데건설은 단지부근에 장산봉, 이기대 공원, 오륙도가 인접해 쾌적하며 운산초교, 용호중교, 부경대 등이 인접해 있다고 설명했다.
분양가는 평당 570만~640만원선이며, 2007년1월 입주예정이다. 분양문의: 051)627-1162
김해 동상동에서 잔여가구를 분양중인 ´캐슬가야´는 32평~55평형 696가구 규모이다. 입지여건은 분성산, 임호산, 연지공원, 수로왕릉 등이 인근에 위치하며 동광초교, 김해중, 김해여고, 인제대, 장신대, 가야대도 가깝다.
또 남해고속국도, 경부고속도로 등의 진입도 수월하다고 롯데건설측은 덧붙였다. 분양가는 평당 540만~590만원선이며 2005년 12월 입주예정이다. 문의: 055)339-0061
롯데건설은 이들 잔여가구를 올해 12월까지 계약하는 소비자에 한해 분양가의 5% 계약금 납부와 전체 분양가의 50%를 입주후 2년까지 납부유예하는 혜택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 (edaily 리포트)단종애사
- [edaily 지영한기자] 현대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법정싸움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더욱이 조카며느리와 시숙간 다툼이라 세간의 관심도 큽니다. 그러나 주변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정치권과 부안 사태등이 대립과 갈등이 예사롭지 않는데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둘러싼 극한 대립은 국민들에게 걱정과 짜증만 안겨줄 뿐입니다. 산업부 지영한 기자가 현대그룹 경영권 분쟁을 짚어봤습니다.
조선시대 왕릉중 혹시 광릉(光陵)과 장릉(莊陵)이란 곳을 아시는지요. 광릉은 경기도 남양주에 자리잡고 있는데, 광릉수목원하면 금방 떠 올리실 겁니다.
그런데 장릉하면 잘 모르시는 분들이 있을 것도 같은데요, 아마 동강(東江)을 끼고 있는 강원도 영월에 있는 왕릉이라고 하면 `아하! 거기` 하실 것도 같습니다.
제천을 지나 자동차로 3~40분 가량 달리다 보면 영월 초입에 있는 소나기재를 넘게 되는데요, 고개를 넘자마자 울창한 소나무 숲이 펼쳐지고 그 사이에 봉긋하게 자리잡고 있는 곳이 바로 장릉입니다.
그렇다면 광릉과 장릉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물리적인 면에서 본다면 광릉은 조선시대 왕릉이 그랬듯이 서울과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하지만 장릉은 왕릉치고는 서울과 너무 멀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두 능에는 이런 차이도 있습니다. 광릉의 경우엔 무덤의 주인이 빼어난 주변경치에 반해 살아 생전 자기가 직접 묘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반면 장릉의 주인은 자기가 그 곳에 묻히게 될지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습니다.
이 정도의 소개라면 광릉과 장릉이 누구의 묘인지, 왜 두 무덤의 연관성을 찾으려하는지 대충은 감을 잡으셨을 겁니다. 잘 알려진대로 광릉은 조선시대 7번째 임금인 세조가 묻여있는 곳입니다.
세조는 성군인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이라선지 임금 재위기간 동안 군제를 정비하고 국방을 강화하고 토지제도와 관제를 개혁하고, 활발한 서적편찬을 도모하는 등 많은 치적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임금자리에 오르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어린 조카인 단종을 내쫓고 왕이 됐고, 후환을 없앤다며 귀향보낸 단종을 끝내 죽이기까지 했으니까요.
장릉은 다름 아닌 단종이 잠들어 있는 곳입니다. 아버지인 문종이 죽자 12살의 어린 나이로 임금에 올랐지만, 삼촌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내놓고 영월로 유배와 17살에 죽음을 당했죠. `단종애사`의 줄거리죠.
사실 필자의 고향이 영월입니다. 때문에 남들보다는 `단종애사`에 조금은 더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죠. 어려서부터 경험한 단종제(단종을 넋을 기릴 목적으로 한식무렵 3일간 진행하는 제사)는 이러한 관심을 부추키기에도 충분했죠.
요즘도 어쩌다 단종이 머물렀던 영월 인근의 청령포(남쪽이 절벽이고 동북서는 물로 막혀있음)에 가보곤 하는데, 늘 그렇듯 발길을 돌릴 때는 측은한 마음이 꽉 차있죠.
저를 포함한 영월 주민들은 세조라는 말을 잘 쓰지 않습니다. 조카를 죽이고 왕권을 찬탈했으니 왕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거죠. 그래서 세조보다는 수양대군이란 호칭이 몸에 배어있고, 반대로 단종은 꼭 `단종대왕`이라고 합니다.
요즘 현대그룹의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현정은 현대엘리베이터 회장을 단종으로, 현 회장의 시숙인 정상영 KCC 회장은 수양대군으로 묘사되면서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문종이 죽자 정사를 잘 모르던 단종으로부터 수양대군이 왕위을 빼앗았던 500년전 상황이 재연되려하고 있다는 얘기죠.
과연 그럴까요. 정상영 회장은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빼앗아 자기 자식들에게 넘겨주고, 내친 김에 현정은 회장과 그 가신들은 물론이고 불씨를 남겨놓지 않겠다는 식으로 증조카들까지 모두 내치는 수순을 밟게 될까요.
현정은 회장을 옹호하는 쪽에선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주장할 겁니다. 반대편에 서 있는 KCC측에선 억지이자 논리비약에 불과하다며 일축하겠죠. 어느 편도 아니고 냉소적인 사람이라면 돈 앞에 인정사정이 어디있고 삼촌 조카가 무슨 소용이냐고 할지도 모릅니다.
어떻든 현대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오래도록 질질끌까봐 걱정스럽습니다. 한동안은 언론지면을 통해 싸우더니만 지금은 법정으로 자리를 옮겨 치고받을 모양새입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고, 한치의 양보도 없다보니 소위 `치킨게임`과 다름없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그러나 시숙과 조카며느리간의 싸움이라는 흔치 않은 소재로 인해 극적인 재미를 준 것도 사실이지만 하루하루 세상 살기가 벅찬 보통 국민들에겐 차츰 남의 집 `밥그릇 싸움`이 유쾌하지만은 않아보입니다.
특히 현실은 어떻습니까. 정치권의 극한 대립으로 나라 꼴이 말이 아니잖습니까. 사사건건 갈등과 대립에 휩싸일 뿐입니다.
때문에 현정은 회장과 정상영 KCC회장은 국민들의 불편한 심기를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경영권 분쟁을 원만히, 그것도 빨리 마무리지어야 합니다. 이러한 민심을 짓밟고 경영권을 차지한다면 양측 누구나 수양대군이 될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