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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태호의 그림&스토리]<1>소가 백신 낳았듯…인내하라, 봄은 오리니
- 조선중기 문인화가 퇴촌 김식이 17세기 초·중엽에 그린 수묵채색화 ‘고목우도’(枯木牛圖). 조선시대 ‘소 그림의 일인자’로 불리던 그의 대표작이다. 산수를 잘 그렸으나 독특한 소를 표현한 그림으로 유명했다. 달무리진 듯 선량한 눈매, ‘X’자형 코, 스타킹을 신은 듯한 발목 등 평범치 않은 묘사가 보인다. 90.3×51.8㎝,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혹독한 세상살이에 그림이 무슨 대수냐고 했습니다. 쫓기는 일상에 미술이 무슨 소용이냐고 했습니다. 옛 그림이고 한국미술이라면 더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는 일을 돌아보면 말입니다. 치열하지 않은 순간이 어디 있었고, 위태롭지 않은 시대가 어디 있었습니까. 한국미술은 그 척박한 세월을 함께 견뎌온 지혜였고 부단히 곧추세운 용기였습니다. 옛 그림으로 세태를 읽고 나를 세우는 법을 일러주는 손태호 미술평론가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장면,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조선부터 근현대까지 시공을 넘나들며, 시대와 호흡한 삶, 역사와 소통한 현장에서 풀어낼 ‘한국미술로 엿보는 세상이야기’ ‘한국미술로 비추는 사람이야기’입니다. 때론 따뜻한 위로로 때론 따가운 죽비로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아트인문학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편집자주> [손태호 미술평론가] 세계를 덮친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새해를 맞았습니다. 설 명절을 쇠면 온전히 새해가 다시 열리는 겁니다. 새해가 되면 그해 띠를 상징하는 동물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올해는 신축년(辛丑年), 소띠 해입니다. 소는 농경생활을 위주로 살아온 우리 민족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농사에서는 필수적인 노동력이고 일상에서는 귀중한 운송수단이었습니다. 시골에서는 농토를 제외하면 자산1호였기에 이집 저집에서 “소를 팔아 대학을 보낸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왔습니다. 소에서 인간이 얻은 혜택은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살아서는 노동력과 우유를 제공했고, 죽어서는 고기와 가죽을 제공했습니다. 남은 뼈는 공예품으로 사용했습니다. 소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가족의 일원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소를 한집에 사는 식구란 뜻으로 생구(生口)라 부르기도 했고 정월대보름에는 사람과 똑같이 오곡밥을 먹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소는 우리 생활과 매우 가까웠기에 그림으로 그려진 경우가 많습니다. 고구려 고분벽화와 고려불화, 조선의 회화, 한국 근현대의 조각·회화작품에 이르기까지 꾸준하게 등장합니다. 그중 퇴촌 김식(1579∼1662)의 대표작 ‘고목우도’(枯木牛圖)를 살펴보는 건 꽤 의미있는 일입니다. 김식은 조선중기 문인화가로 ‘조선시대 소 그림’의 일인자로 불렸습니다. △늙은 나무와 젊은 소, 대비가 의미하는 것은…화면 왼쪽에 고목이 한 그루 서있습니다. 비쩍 마른 고목에 잎과 줄기는 다 없어졌고 가지만 세 개가 남았습니다. 그 나무 아래 가족으로 보이는 소 세 마리가 있습니다. 엄마 소는 뒤태를 보이며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튼실한 엉덩이가 돋보입니다. 살찐 엉덩이 아래서 송아지가 그 어미의 젖을 빨고 있습니다. 크기로 보아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송아지 같습니다. 그 옆에서 젖을 빨고 있는 송아지를 내려다보고 있는 소는 아빠 소처럼 보입니다. 젖을 잘 빨고 있는지 걱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들 소 가족 뒤로는 아스라이 키 큰 나무 세 그루가 보이고 저 멀리 산 능선이 펼쳐져 있습니다. 엄마·아빠 소는 뿔 모양으로 볼 때 한창 나이의 젊은 소입니다. 코뚜레와 멍에도 없어 아주 자유롭고 편안해 보입니다. 그저 바라만 봐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목가적인 풍경입니다. 종이에 엷게 색을 올린 그림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목은 먹의 농담에 강약을 줘 밋밋하지 않고 옹이와 아래쪽에 노출된 뿌리까지 표현해 사실감을 높였습니다. 그 아래 소들을 배치한 이유는 소와 나무를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늙은 나무와 젊은 소, 살집이 튼실한 소와 비쩍 마른 나무. 이런 대비는 작가의 의도적인 표현입니다. 나무를 표현할 때 가지 끝이 갈라지는 모습은 조선중기에 유행했습니다. ‘절파화풍’의 특징입니다. 다만 소의 뿔은 한국 소의 생김새와는 다른 중국 물소의 뿔 모양입니다. 조선중기까지 그려진 회화에는 이렇듯 중국 화풍의 영향이 남아있는 작품이 많습니다. 이런 중국풍은 조선후기로 갈수록 점차 조선의 고유한 표현으로 대체됩니다. 만약 여기서 끝난다면 평범한 소 그림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현대에서까지 눈여겨보게 하는 하이라이트는 김식이 양념처럼 얹은 독특한 표현입니다. 소 눈동자 주위에 만든 흰 여백, ‘X’자로 표현한 코, 진한 스타킹을 신은 듯한 발목 등은 김식만의 소 그림이 가진 특징입니다. 이런 특징은 그의 할아버지로부터 이어진 것입니다. 김식의 조부는 그림 실력으로 유명했던 양송당 김시(1524∼1593)입니다. 퇴촌 김식의 ‘고목우도’ 부분. 400여년 전 그림을 현대에서까지 눈여겨보게 하는 대목은 김식이 소의 묘사에 양념처럼 얹은 독특한 표현이다. 눈동자 주위에 달무리진 듯 선량한 눈매, ‘X’자형 코, 스타킹을 신은 듯한 발목 등이 평범치 않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우역과 천연두를 함께 극복하다큰 몸집과는 달리 소는 의외로 전염병에 취약한 가축입니다.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우역(牛疫)이란 바이러스로 인해 세계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지금도 구제역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6세기부터 우역이 발생해 매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 피해상황은 당시의 실록이 전하고 있습니다. “평안도의 소들이 거의 대부분 병으로 죽었고 황해도 역시 마찬가지다” “봄·가을에 퍼진 소의 전염병으로 수천 마리가 병들어 죽었기 때문에…”(‘중종실록’ 중종36년 1541년 기사), “평안도에 우역이 크게 번져 살아남은 소가 한 마리도 없었다”(‘인조실록’ 인조14년 1636년 기사), “1637년, 1638년 우역으로 죽은 농우가 3분의 2에 달한다”(‘광해군일기’ 인조20년 1642년 기사). 이처럼 ‘조선왕조실록’에만 우역에 대해 96번이나 언급할 만큼 소의 전염병은 국가적 큰 문제였습니다. 특히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먼저 나타나는 점으로 봐, 또 북에서 남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퍼지는 경로로 봐, 당시 우역은 중국 쪽에서 전파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특히 인조 때 우역은 그 전파경로가 정묘호란·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사들의 이동경로와 일치하는 점에서 중국발 전염병이 거의 확실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역이 창궐하자 죽기 전에 차라리 고기로 먹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해 멀쩡한 소까지 죽이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농사를 지어야 하는 소가 터무니없이 줄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습니다. 결국 조정에서는 소를 외국에서 사 오기로 결정하고 1638년 무관인 낭청 성익을 앞세워 몽고로 파견합니다. ‘승정원일기’는 이때 과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몽고산 소 181마리를 사오는 데 성공해 농가에 나눠줬다고 했습니다. 사신을 외국에 파견해 소를 사온 일은 소가 조선사회에 얼마나 중요한 가축인지 잘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입니다. 우역은 조선을 통해 일본까지 전파됐는데 마침내 20세기 초 백신의 보급으로 완전히 사라집니다. △소의 안녕은 곧 국가의 안녕 세계사를 통틀어 볼 때 소와 전염병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두창(痘瘡·천연두)이라 불리는 전염병일 것입니다. 오래전 이집트 미라에서도 발견된, 인류에게 가장 무서운 질병 중 하나인 두창은 우리나라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역사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힌 질병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왕실과 양반, 노비 등 신분에 상관없이 걸리면 30%가 죽음에 이르렀고 낫더라도 피부에 수많은 흉터(곰보자국)를 남기는 무서운 질병이었습니다. 이 두창은 ‘우두법’(牛痘法)을 발견하며 극복하기 시작했는데, 바로 소에서 찾아낸 방법이었습니다. 영국의사 에드워드 제너(1749∼1823)는 소젖을 짜는 처녀들은 두창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우두에 걸린 소의 젖을 짜는 소녀의 농포에서 고름을 빼 일부 소년에게 접종했습니다. 이때 실험 대상에는 제너의 아들도 포함됐습니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우두법은 점차 발전하고 인류는 두창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루이 파스퇴르가 사용한 ‘백신’(vaccine)이란 말이 ‘암소’를 뜻하는 라틴어 ‘바카’(Vacca)에서 유래했듯, 소와 인간은 전염병과의 전쟁을 함께 이겨내온 오래된 전우이자 동지인 것입니다. ‘십이지신도(축신 벌절라대장).’ 얼굴은 동물, 몸은 사람인 반인반수로, 십이지의 두 번째 동물인 소를 신격화한 그림이다. 빨간색 관복에 검은색 목화를 신고 오른손엔 도끼를 쥔 모양이 영락없이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다. 축신도는 시대와 작가에 따라 다양한 버전으로 그려졌다. 작가미상의 이 작품은 1950년대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70×136㎝, 국립민속박물관 소장.김식이 ‘고목우도’를 그린 때는 조선에서 우역이 가장 심했던 17세기 초입니다. 소들이 맥없이 다 죽어나가는 마당에 건강하고 튼튼한 소가 새로 태어난 송아지를 잘 건사하는 그림을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소의 안녕이 농가·국가의 안녕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이같은 바람은 소를 십이지신의 하나로 당당히 서게 합니다. 소의 타고난 기운과 성정으로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로 말이지요. 이는 또 다른 회화작품 ‘십이지신도(축신 벌절라대장)’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새해에 들어서도 코로나 위력은 여전합니다. 백신이니 치료제니 하는 뉴스는 연일 들리지만 갈 길은 아직 멀기만 합니다. 힘겨운 이 시절, 어떻게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무거운 짐을 견디고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소의 기운처럼 어려움을 견디고 주위를 배려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 협력하다 보면 결국 끝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김식의 ‘고목우도’는 늙고 메마름이 끝나면 기운이 생동하는 봄이 온다는 교훈을 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손태호 미술평론가는… 30대 중반 도망치고 싶던 때가 있었다. 세상살이가 버겁고 고달파서. 막막하던 그 시절, 늘 그렇듯 삶의 퍼즐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풀렸다. 그즈음 눈에 띈 옛 그림이 우연이었고 그 흔적을 좇아 미술관·고서화점 등을 누비고 다닌 게 필연이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찍힌 인장 ‘장무상망’(長毋相忘·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을 보고 어째서 ‘그림이 삶, 삶이 그림’이라 하는지 깨달았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과학도의 길은 그날로 접혔다. 동국대 대학원 미술학과로 진학해 석·박사학위를 받은 뒤 한국미술 전문가가 됐다. 조선회화·불교미술에 기둥을 세우고 그 안에 스민 상징 같은 ‘옛 그림’은 거울로 곁에 뒀다. 지금은 한국문화예술조형연구소 학술이사로 있으면서 이론·현장을 연결한 연구, 인물·지리·역사를 융합한 글과 강연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 ‘조선불상의 탄생’(한국학술정보·2020), ‘다시 활시위를 당기다’(아트북스·2017), ‘나를 세우는 옛 그림’ (아트북스·2012) 등이 있다.
- [신간]팬데믹 세상을 이겨나가는 꿈과 희망을 읽는다!
- [이데일리 이순용 기자]“돌아가자니 너무 많이 걸어왔고/ 계속 가자니 끝이 보이지 않아 너무 막막했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삶을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절망감이 밀려올 때가 있다. 저자 역시 한때 이런 불안감과 함께 “헛살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무얼 해도 재미가 없었다. 주변에 이런 고민을 털어놓아도 오히려 시간이 많아 잡념이 생긴 거라는 핀잔이다.그때 다른 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문화선임기자로 ‘나의 삶 나의 길’이란 인터뷰를 진행하며 대학 총장, 병원장, CEO, 화가, 의사, 사회단체 대표, 연예인 등 많은 인사를 만났다. 누가 봐도 ‘성공한’ 이들이지만 그들 역시 “좌절과 분노, 열등감, 회한에 몸서리를 치는 순간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란 찰리 채플린의 말을 실감케 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노력과 절제와 인내로 자신 앞에 닥친 크고 작은 고비를 넘겨왔고, 그리고 봉사로, 예술로, 양보와 나눔으로 인생을 풍요롭게 꾸미고,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이들이 있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 따뜻하고, 맑고 희망적이다. ◇문화선임기자가 만난 22인의 생생한 라이프 스토리이 책은 2018년 4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거의 3년간 문화선임기자인 저자가 인터뷰이로 만난 22명의 걸어온 길과 삶을 담고 있다(각자의 글 시작 페이지에 인터뷰 당시의 소속과 직책, 신문에 실린 날짜를 표기해놓았다). 저자가 처음 인터뷰한 방귀희 한국장애예술인협회 회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휠체어 장애인 대학생, 최초의 휠체어 방송인이다. 지체장애 1급인 그는 한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와 왼팔을 못 쓴다. 그나마 온전한 오른손 기능도 40%밖에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늘 웃는다. 어릴 적 어머니가 “너 같은 장애아를 보면 사람들이 불쌍해하며 불편해한다. 그런 사람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웃어야 한다’고 웃는 연습을 시켰다”는데, 본능이나 다름없는 미소는 그의 심벌마크가 됐다. 그는 우리 사회의 편견과 차별 없는 법과 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그리고 장애인 누구라도 노력하면 주류사회 일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날을 위해 동분서주한다.박영관 세종병원 회장은 도전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40대 초반, 잘 나가던 의과대학 교수직을 내던지고 ‘돈이 안 되는’ 심장병원을, 그것도 서울이 아닌 경기도 부천에서 열어 30여 년간 ‘심장’이란 한 우물만 파서 대표적인 심장전문병원으로 키웠다. 그는 단순한 병원 경영자에 머물지 않고, 국내외를 합쳐 2만5천여 명의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를 무료 치료하며 인술(仁術)을 실천해왔다. “남북 관계가 개선돼 북한 심장병 어린이를 치료해주겠다”며 건강관리에 남다른 신경을 쓰는 의료계 존경받는 원로다.‘흙수저 신화’로 불리는 류수노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총장은 방송대 출신 최초의 모교 총장이 된 인물로 졸업생 67만 명, 재학생 11만 명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농사일을 천직으로 알다, 뒤늦게 주경야독으로 공부해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방송대에 진학한 자수성가의 전형이다. 그에게선 폐목강심(閉目降心),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내공이 묻어난다. ‘국민 MC’ 송해 선생은 구순이 넘은 나이에도 어디를 가나 항상 나이를 내려놓는다. ‘전국노래자랑’ 30년을 하면서 연출가 300여 명을 겪었지만, 그들에게 맞추고 양보해왔다 한다. “90년이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가 버렸다. 하루하루가 금쪽같아요. 다들 양보하고 웃으며 사세요. 싸울 일이 있어도 피하세요.” 그가 말하는 영원한 현역의 비결이다. 기생충학자 채종일 한국건강관리협회장은 “세상은 넓고 연구할 기생충은 많다”를 모토로 왕성한 활동을 자랑한다. 세계기생충학자연맹(WFP) 회장이기도 한 그는 50년간 기생충 연구와 교육, 국제교류에 헌신한 인물이다. “‘평생을 갑갑하게 산 것 같다’고 생각하는 이도 많으나 지금도 기생충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더 파헤치고 싶은 열망이 가득하다”고 말한다. 그에게선 ‘한 우물’ 인생의 경건함이 묻어난다. 과학계의 유리천장을 깬 이로 유명한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은 고희를 넘긴 나이임에도 <산업혁명으로 세계사를 읽다>, <팬데믹과 문명> 등 역저를 내며 왕성한 집필활동을 자랑한다. 나이를 잊은 집중력이 놀랍다. 팬데믹에 관한 그의 진단은 명쾌하다. “치료제와 백신이 나오면 사회적으로 안정이 될 것이나 또 다른 팬데믹이 오는 것은 시간문제다. 대비해야 한다. 위기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지속 가능한 발전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한다.지루한 업(業)을 예술로 만든 이도 있다. 김한겸 고려대 병리과 교수는 온종일 현미경만 들여다봐야 하는 병리의사란 직업이 갑갑하고 힘들었지만 오히려 역발상으로 그 일을 재미로 만들게 한 기막힌 아이템을 찾아냈으니, 인체의 병든 조직에서 예술 작품을 발견하는 일에 매료돼 현미경 사진작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또한 국내 최초의 엑스레이 아티스트로 명성을 얻은 정태섭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직업을 밥벌이로써 방어적으로 수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남다른 발상으로 예술과 융합해 새 예술 장르를 개척한 이들이다. 배고프던 어린 시절 단돈 7만원을 들고 상경, 의수족 기술을 배워 보장구업체 사장이 된 선동윤 서울의지 대표는 20여 년간 장애인의 손과 발이 되고 있다. 탈북장애인 의족 지원, 절단장애인 히말라야 백두산 원정 지원, 동남아 절단장애인 지원 등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다. 그간 6만여 장애인에게 의수족을 만들어준 그는 ‘장애인이 행복한 나라가 선진국’이라고 말한다. 백롱민 분당서울대병원장은 전문직업인의 봉사정신을 실천하는 글로벌 명사다. 안면윤곽 수술 최고 권위자인 그는 1996년부터 매년 베트남을 찾아 태어날 때부터 구순(입술이 갈라지는 병)이나 구개열(입천장이 갈라지는 병) 등의 얼굴 기형으로 웃음을 잃은 어린이들에게 24년째 무료수술을 해주고 있다. 베트남 의료계에선 박항서 축구 감독보다 유명하다. 저자는 이들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많은 분들을 만나, 그들이 살아온 인생에서 우리가 삶의 지표로 삼을 값진 인생의 지혜를 들었다. 인터뷰이로 만난 한 분 한 분이 모두 혼탁한 세상을 맑고 따뜻하게 하는 이들이다. 모두에게 감사하며, 바라는 바 각자의 영역에서 스스로 향기를 뿜으며 주변에 위안과 희망 주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작은 용기와 지혜를 얻었으면 한다.
- 강원래·홍석천→오정연 연예인도 줄줄이 폐업…"애정으로 버텼지만" [종합]
- (사진=오정연 인스타그램)[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해를 넘겨서도 계속되는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에 연예인들이 운영하는 가게마저 줄줄이 폐업 중이다. 강원래, 홍석천에 이어 방송인 오정연까지 약 2년 만에 자신이 운영하던 카페를 정리했다. 오정연은 3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제가 운영해온 카페 체리블리의 폐업 소식을 전한다”며 “코로나로 닥친 어려움을 감수하며 애정으로 버텨오다 임대 재계약 시점에 닥친 예상치못한 변수가 변곡점이 되어 폐업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알렸다. 또 “작은 집기 하나도 발품 팔아 들여놓으며 한 땀 한 땀 채워나갔던 지난 날들이 떠올라 요며칠 마음이 많이 쓰라렸다”며 “하지만 21개월간 함께하며 깊이 정든 직원들과 서로서로 아쉬움을 달래니 위안이 되더라”며 직원들과 함께찍은 사진, 카페 간판을 내리는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다. 카페를 찾아와준 손님들에 대한 감사함과 그리움도 전했다. 오정연은 “그동안 저희 가게를 찾아주시고, 좋아해주셨던 우리 손님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카페가 페업해도 그 안에서 생긴 수많은 인연과 이야기들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소회를 전했다.또 “집기 정리할 땐 애써 웃어봤지만 간판 내릴 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는 해시태그로 울컥한 심정을 덧붙여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를 본 동료 연예인들의 위로와 응원도 이어지고 있다. 개그맨 김민경은 해당 포스팅에 “고생했다~ 그놈의 코로나”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노홍철은 “아이고~ ”라는 짧은 글로 위로했다. 또 배우 하재숙은 “더 좋은 일이 있을거라는 그 말도 미안해진다. 넘 고생했고 애썼다”고 적었다.앞서 오정연은 방송을 통해서도 폐업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은 바 있다. 그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서강대학교 앞에서 20평대 초반의 카페를 운영하고 있으며, 코로나 타격으로 존폐를 진지하게 고민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가 운영하던 카페 ‘체리블리’는 수개월 간 코로나19 여파로 매일 임시 휴업 중이었다. 한편 코로나19 여파로 가게를 폐업한 연예인들은 오정연 뿐만이 아니다. 앞서 그룹 클론 출신 강원래가 지난해 11월 이태원에서 운영 중이던 펍 스타일 바 문나이트 운영 포기를 선언한 바 있다. 특히 문나이트는 과거 클론 강원래 구준엽을 비롯해 박남정 현진영 이주노 양현석 이현도 김성재 박진영 이상민 등 대한민국 댄스 가수 1세대로 불리는 춤꾼들이 집결하던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폐업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나, 2018년 강원래가 이태원에 다시 문을 열며 화제를 모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불경기가 이어지자 운영을 포기하게 됐다. 이에 강원래는 최근 SNS를 통해 자영업자의 고충을 하소연하며 지난달 코로나19 방역대책에 대해 ‘꼴등’이라 표현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는 “이태원 모임에서 홍대, 강남역, 종로 등 여러분과 함께 자영업자들의 고충을 이야기하다 보니 감정이 격해서 제가 ‘방역 정책이 꼴등’이란 표현을 쓴 것 같다”며 “다시 한번 사과드리며 앞으로 좀 더 보상이 있는 방역 정책에 대해서 기대하도록 하겠다”고 사과하기도 했다. 이태원에서 7개 식당을 운영하며 ‘이태원의 황제’로 불렸던 방송인 홍석천도 코로나19 및 이태원 클럽발 집단감염 여파로 지난해 여름 이태원에서 운영하던 마지막 식당을 폐업했다. 홍석천은 최근 SBS 라디오 ‘두시탈출 컬투쇼’에 출연해 “한때는 이태원의 황태자, 지금은 이태원에서 쫓겨난 황태자 홍석천”이라며 “작년에 입었던 손해를 열심히 메우고 있다. 3억 5000만 원에서 4억 정도 손해를 봤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올해 계획이 이태원에 다시 복귀하는 것이다. 우리 자영업자들이 함께 이태원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 걸 짜고 있다. 복귀 시에는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콘셉트로 (식당을) 만들어보고 싶다”며 이태원 복귀 소망을 밝혀 응원을 얻기도 했다. 이밖에도 방송인 노홍철은 지난해 여름 베이커리 카페 ‘홍철책빵’ 휴업을 선언했다. 당시 노홍철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A-YO! 1000만 시민 멈춤 주간에 발맞춰 당분간 ‘홍철책빵’도 간판불을 끄고 상황을 지켜보겠다. 귀한 여러분이 저희 집에 놀러 오실 상황이 되면 바로 OPEN 공지 안내 올리겠다”고 적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세가 계속되면서, 이마저도 다시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아래는 오정연 인스타그램 글 전문. 제가 운영해온 카페 체리블리의 폐업 소식을 전합니다. 코로나로 닥친 어려움을 감수하며 애정으로 버텨오다 임대 재계약 시점에 닥친 예상치 못한 변수가 변곡점이 되어 폐업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작은 집기 하나도 발품 팔아 들여놓으며 한 땀 한 땀 채워나갔던 지난 날들이 떠올라 요며칠 마음이 많이 쓰라렸어요. 하지만 21개월간 함께 하며 깊이 정든 직원들과 서로서로 아쉬움을 달래니 위안이 되더군요.. 그동안 저희 가게를 찾아주시고, 좋아해주셨던 우리 손님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체리블리라는 공간은 이제 존재하지 않지만, 그 안에서 생긴 수많은 인연과 이야기들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부디 안녕히... #집기 정리할 땐_애써 웃어봤지만 #간판 내릴 땐_눈물이 왈칵 쏟아져 #언젠가_간판을 쓸 날이 다시 올까 #보관하련다 #정말 사랑했다
- [전문]금태섭 “디지털부시장제 도입…자영업자·청년 지원”
- [이데일리 박태진 기자] 금태섭 전 의원은 3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교동 소재 홍대 프리즘홀에서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출마선언식을 갖고 “낡고 오래된 정치의 벽에 균열을 내고, 참신한 정치의 출발을 보여드리겠다. 함께 행복하고, 더 살기 좋은 포용과 통합의 공동체를 가꾸겠다”고 말했다. 그는 대표 공약으로 △디지털부시장제 도입 △자영업자 지원 △청년 긴급지원 재개 △공공재개발 확대 △서울인권조례 제정 △자치경찰제 구축 △서울시청 정치화 차단을 내걸었다.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이 31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 한 카페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했다.금 전 의원은 이날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를 향해 1대1 경선을 제안했다. (사진=국회사진취재단)다음은 금 전 의원의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출마선언문.존경하는 서울시민 여러분!금태섭입니다. 저는 오늘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합니다.이번 선거는 서울시민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선거입니다.우리의 미래를 위한 변화의 새 판을 열어야 하는 선거입니다.그러나 정치권은 전혀 달라지지 않고 오래된 싸움만을 하고 있습니다.민주당은 자신의 책임으로 인한 보궐선거에 당헌을 고쳐가며 후보를 내는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국민의힘에서는 서울시장직을 스스로 걷어찬 후보, 총선 대참패에 책임이 있는 정치인들이 후보로 나서고 있습니다.변화의 서막은커녕 과거와 똑같은 사람, 똑같은 장면의 반복에 시민들은 기대를 접고 오히려 불안과 걱정에 빠져들고 있습니다.지금부터 향후 4-5년은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침체에 빠진 서울이 새롭게 도약하기 위한 혁신적 변화가 절실합니다.위기에도 대응해야 합니다.코로나로 인한 당장의 고통도 힘들지만, 환경과 기후문제, 더욱 극심해지는 양극화, 4차 산업의 도래로 사라져가는 일자리 등 상상하기 힘든 어려움이 또 찾아올 것입니다.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장애물을 극복할 태세를 갖추어야 합니다.이 엄중한 시기를 오래되고 낡은 정치에 맡길 수는 없습니다.원칙을 지키고,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리더가 필요합니다.시민들과 소통하면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미래를 고민하는 논의의 장을 만들 수 있는 시장이 필요합니다.소신의 정치인, 저 금태섭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를 통하여 서울의 새로운 변화를 열어가겠습니다.낡고 오래된 정치의 벽에 균열을 내고, 참신한 정치의 출발을 보여드리겠습니다.함께 행복하고, 더 살기 좋은 포용과 통합의 공동체를 가꾸겠습니다.서울에서부터, 저 금태섭이 해내겠습니다.사랑하는 서울시민 여러분! 재난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닥치지 않습니다. 재난은 사회적, 경제적 약자를 먼저 공격합니다. 벼랑 끝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의 한숨소리가 들립니다. 제가 출마선언을 하고 있는 이곳 프리즘홀은 서울의 자영업,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는 문화예술계의 어려움을 상징하는 곳입니다. 안정된 직장은커녕 알바 자리마저 막혀버린 청년들의 절규가 들립니다.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과 아이들의 간절한 호소가 들립니다. 택배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은 또 어떻습니까? 저는 코로나19 재난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고, 민생을 회복하는데 저의 온힘을 다 바치겠습니다.오늘부터 66일 후, 저 금태섭이 서울시장이 되면 당장 많은 것들이 바뀌게 될 것입니다. 첫 번째로, 디지털 부시장 제도를 신설하겠습니다. 우리에게 닥칠 위기는 이번이 마지막이 아닙니다.주기적인 감염병의 유행, 기후위기로 인한 자연재해 등 예상하기 힘든 사태가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습니다.자원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위험을 조기에 차단해야 합니다.빅데이터를 이용한 신속하고 유연한 대응이 필요합니다.뉴욕시에도 CTO가 있고 런던시에도 CDO가 있지만 서울시 디지털 부시장은 대만의 오드리 탕 디지털 장관을 벤치마킹할 것입니다.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디지털 부시장에게 관련 인사, 조직, 시스템에 전권을 부여하겠습니다.비단 재난 대비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평상시에도 교통, 복지, 교육,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 시민들이 자유롭고 편리하게 공공 빅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디지털 부시장과 스마트 서울을 위한 인프라 구축,그것이 1년 남짓한 이번 시장 임기 동안 제가 반드시 해낼 첫 번째 약속입니다.둘째, 자영업자들이 쓰러지지 않고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버틸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매출감소폭을 기준으로 차등 지급되겠지만, 기본적으로 월 임대료의 80%에 해당하는 200만원 상당을 6개월 동안 지원하겠습니다.기존의 시혜적인 일시 지급이 아니라 계획을 짜고 재기를 기약할 수 있도록 정기적인 지원을 하겠습니다. 셋째, 작년 봄 이후 사라진 청년 긴급지원을 재개하겠습니다.코로나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사람들은 첫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2030 세대입니다. 노동시장 진입의 어려움이 매우 오래 지속될 수 있습니다. 청년 구직활동 지원금을 월 50만원씩 6개월 동안 지급하겠습니다. 넷째, ‘서울형 공공재개발’을 추진하겠습니다. 주택정책은 재건축, 재개발을 중심으로 추진되어야 합니다. 서울은 가용 토지가 부족해서 고밀도 복합이용도시로 개발해야 합니다.기존의 재개발 지정 해제지역 393개소를 포함하여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공공재개발을 과감하게 확대하겠습니다. 또한, 서울시민의 생애 첫 주택 마련, 서울시민의 생애 첫 전세 마련을 지원하겠습니다.다섯째, 인권의 글로벌 스탠다드를 반영한 ‘서울인권조례’를 다시 만들겠습니다. 서울이 더욱 발전하려면 이제 세계 도시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다양한 시민들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 다원적 민주주의는 저의 오래된 소신입니다.사회적 약자와 성소수자, 장애인을 비롯해 서울시민은 그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인간으로서 동등한 존엄과 평등의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여섯째, 7월 1일부터 시작되는 자치경찰제가 잘 뿌리내리도록 하겠습니다.자치경찰제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정치적 중립성 훼손, 지역 토착세력과의 유착, 무사안일이 기승을 부릴 위험성이 있습니다.정인이 사건, 이용구 차관 사건이 되풀이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가장 공정하고 중립적인 인사들로 자치경찰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장을 임명해야 합니다.이 문제에 있어서 모든 후보 중에서 제가 가장 적임자라고 자부합니다. 마지막으로, 서울시정의 정치화를 차단하겠습니다. 시청 6층이 선거캠프 노릇을 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별정직 공무원들과 산하기관이 여의도 정치의 교두보가 되지 않게 만들 것입니다.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겠습니다.시장의 개인 취향을 구현하는 시정도 끝내겠습니다. 낡은 집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고 도시재생이라고 부르는 일,미래문화유산이라고 포장하면서 재건축 아파트 한 동을 남기라고 강요하는 일,전임 시장의 손때가 묻었다는 이유로 한강다리 공사를 10년 이상 질질 끄는 일은 사라질 것입니다. 여의도와 용산 도심 재개발 같은 큰 사업을 공개해놓고 청와대 눈 부라림 한 번에 주워 담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빛은 언제나 존재합니다.우리가 그 빛을 바라볼 용기가 있다면.우리가 그 빛이 될 용기가 있다면.”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을 빛낸 청년 계관시인 어맨다 고먼의 시‘우리가 오르는 언덕’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어맨다 고먼의 시는 트럼프 시대가 초래한 분열과 후퇴를 극복하기 위해 통합을 실현하기 위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통합을 향한 저의 평소 소신을 밝히고자 합니다. 출마선언을 준비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려고 했습니다.지적하고 비판할 거리가 너무나 많습니다.그러나 좀 더 깊이 고민하면서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과거보다는 미래를, 남 탓보다는 통합을 얘기하고 싶습니다.우리가 진영논리, 편 가르기를 극복하고,상식과 원칙이 바로 선 정치의 새판을 열기 위해서는두렵지만, 누군가는 용기를 갖고 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저는 검사로, 또 정치인으로 일하는 동안일관되게 원칙과 소신을 지키며 살아왔습니다.제가 한 말과 쓴 글에 책임을 져 왔습니다.항상, 목소리를 내기 힘든 분들,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핍박받는 사람들의 옆에 용기를 내서 함께 서 있었습니다.쉬운 길은 아니었습니다.그러나, 그 과정에서 저에게 생겨난 것은 반격하자는 마음, 갚아주겠다는 마음이 아니었습니다.이런 지겨운 판을 바꾸자!내 편만 챙기고 상대방을 쳐부수어야 할 적으로 보는 편 가르기를 끝내자!그래야 민생이 산다.그게 진짜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이런 굳은 각오를 다지게 되었습니다.거대도시 서울이 부딪히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자유롭게 토론하고 협력하면서 해답을 찾아나가야 합니다.그 누구도,정답을 항상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재난 극복을 위해서, 민생을 위해서,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통합과 협치의 기반이 먼저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합리적인 정치, 상식에 맞는 정치가 되살아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소신을 가지고 일관되게 원칙을 지켜온 저, 금태섭이 그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적임자라고 감히 자부합니다.제가 바꾸겠습니다.그런 취지에서 이 자리를 빌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에게 제안 드립니다.지금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각기 경선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에게 각 당의 경선 진행 기간 동안 ‘단일후보 선출을 위한 제3지대 경선’(금태섭-안철수 단일화 경선)을 제안합니다. 진짜 민생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오래된 정치를 어떻게 바꿀지, 진지하게 토론합시다.경선 룰을 둘러싼 볼썽사나운 샅바 싸움은 치우고 서울시민을 위한 진짜 문제를 놓고 각자의 입장을 솔직히 얘기합시다. 그러면 이번 선거를 확실한 변화의 계기로 만들 수 있습니다.3월초까지 매주 한 번씩만 주제를 정해서 토론을 해도 네 다섯 번은 할 수 있습니다.시민들로부터 궁금한 점에 대한 질문도 제한 없이 받고 답을 드리도록 합시다.그 후 시민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드립시다.서울시민들은 그런 토론을 지켜보고 후보를 고를 자격과 권리가 있습니다. 저는 단일화 논의를 위해 언제든, 어디서든 안철수 후보를 만날 용의가 있습니다. 존경하는 서울 시민 여러분!우리는 재난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 합니다.우리가 사는 도시를 더 살기 좋고 행복하고 안심할 수 있는 공동체로 만들어야 합니다.우리 모두가 내일을 위해서 힘을 모아야 합니다.서울의 대변화를 이끌겠습니다. 모두가 함께 행복한, 더욱 자유롭고 공정한 서울을 위해 힘차게 전진하겠습니다.소신의 금태섭, 서울을 바꾸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단순 유행 넘어선 'MBTI'…"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 한때 유행에 그칠 줄 알았던 'MBTI' 열풍이 이어지면서 MBTI 관련 콘텐츠 역시 다양화하고 있다. 단순히 자신의 MBTI 유형을 알아보는 것을 넘어 같은 유형의 사람들과 공감하고 다른 유형의 특성을 이해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진 것.최근 온라인상에서는 MBTI 특성을 자세하게 분석한 콘텐츠들이 인기를 끈다.특히 일상 속 특정 상황을 가정한 후 MBTI 유형에 따라 어떻게 대처하는지 분석한 게시글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콘텐츠만 전문으로 다루는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도 늘어나고 있다. 상황별로 세분화한 MBTI 유형별 특징(사진=인스타그램 @mbti_lab 캡처) 구체적 상황 제시.... 2차 가공 영상물도 인기MBTI 유형별 분석을 위해 가정된 상황은 소소하면서도 구체적이다.'화장실에 휴지가 없을 때', '(SNS에서) 좋아요를 받았을 때' 등 매우 현실적인 상황을 전제로 한다.임모(24세, 남)씨는 "MBTI별로 상황 대처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호기심에 (게시물을) 하나둘 눌러보았다"며 "나와 내 주변 친구들을 대입해서 보니 정말 비슷했다"고 말했다. 이어 "신기해서 해당 SNS 계정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둘러봤다"며 "이래서 'MBTI는 사이언스(과학)'라는 말이 있구나 싶었다"고 덧붙였다. 유튜브에서 유행 중인 'MBTI 유형별 특성 댓글 모음집' 영상 (사진=유튜브 김햇 동영상 목록 캡처)이같은 게시물의 반응을 모아 만든 2차 가공 영상물도 인기다.'유튜브 댓글 모음집'은 트위터나 유튜브, 커뮤니티 등 인터넷에 만연하던 기존 MBTI 콘텐츠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짜깁기해 동영상으로 만든 것이다.예를 들어 'INFP 인프피 짤, 댓글 모음'에는 'INFP가 사랑에 빠지면', 'INFP와 친해지려면' 등을 설명한 사진이나 댓글 캡처본이 포함된다.이 동영상을 본 INFP 유형들은 특히 더 공감 가는 내용을 댓글로 적는다. 이 댓글은 다시 새로운 공감대를 형성하며 'INFP 유형의 특성'으로 굳어지는 것.김모(23세, 여)씨는 "가볍기 보기 좋은 내용인데 나랑 같은 유형의 사람들과 공감대도 형성되니 재밌어서 자꾸 보게 된다"며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내가 이상한가?'라는 생각을 덜 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말 진지하게 묻는 거예요"…커뮤니티 내 Q&A 형식의 게시글도 등장해 약 5800개의 댓글이 달린 ISFP 유형에게 궁금한 점을 질문하고 답하는 게시글 (사진=다음카페 캡처)한 커뮤니티에서는 특정 MBTI 유형에 궁금한 것을 묻고 답하는 게시글을 자주 볼 수 있다.글쓴이가 'ISFP에게 궁금한 것을 묻고 답해보자'는 글을 올리면 댓글 창에는 수많은 질문 댓글이 달린다. 이 질문에 실제 ISFP 유형들이 답을 해주는 것.특정 유형을 정하지 않더라도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댓글 창을 통해 각 MBTI 유형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한다. MBTI와 관련해 서로에게 궁금한 점을 질문하고 답하는 게시글 (사진=다음카페 캡처)이런 식의 글이 하루에도 여러 번 올라오지만 '댓글 화력'은 매번 새로운 게시글인 듯 거세다.실제 해당 커뮤니티에서 활동 중인 박모(24세, 여)씨는 "보통 (인터넷)커뮤니티는 실생활 속에서 지인들에게 터놓기 어려운 궁금증들을 해소해준다"면서 "MBTI 역시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지인들과 같은 MBTI 유형인 커뮤니티 이용자들의 얘기를 들으면 실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MBTI를 통해 타인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다는 의견도 있었다.정모(24세, 여)씨는 "새로 누군가를 만날 때면 상대방의 MBTI를 넌지시 추측해본다"며 "상대방의 실제 MBTI와 내 예상이 맞았을 때 정말 짜릿하다"고 말했다.이어 "(MBTI를 알기)이전에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을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치부해 피하기 바빴다" 하지만 "MBTI가 대중화하자 그들을 어느 정도 포용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심리학계, "'MBTI 과몰입' 현상, 코로나 상황 속 유대감 형성하려는 시도"학계는 MBTI에 대한 '과몰입' 현상이 지속하는 것을 두고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으로 유대감을 형성하려는 시도의 일환'이라 해석했다.서수연 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코로나 상황이 지속하면서 실생활에서 사회적 상호작용을 할 기회가 현저히 줄었다"며 "(MBTI 관련 콘텐츠를 통해)온라인에서라도 심리적 유대감을 느껴보려는 시도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MBTI는 접근이 쉬운 주제라 여러 사람이 의견을 내고 공통점을 찾기에 쉽다"고 덧붙였다.하지만 여전히 MBTI는 '단순 재미'로 보는게 좋다는 게 전문가의 입장,서 교수는 "MBTI의 인기가 예상보다 오래 지속하고 있지만 (MBTI에 대한) 학계의 시선이 바뀐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이어 "MBTI 검사를 개발한 본사 역시 MBTI로 성격을 '분석'하는 것은 지양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며 "검사가 인간의 행동 양식에 대한 예측력이나 설명력을 갖지는 못한다. 특히 현재 유행 중인 MBTI 분석의 신뢰도는 흔히 아는 '혈액형별 성격' 정도로 보면 된다"고 강조했다. /스냅타임 김세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