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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우 교수, 미술관 옆 호르몬 진료실 '뭉크 씨, 도파민 과잉입니다' 출간
  • 안철우 교수, 미술관 옆 호르몬 진료실 '뭉크 씨, 도파민 과잉입니다' 출간
  • [이데일리 이순용 기자] 다양한 방송과 강연을 통해 호르몬 건강 상식을 알려온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당뇨병센터 소장 안철우 교수의 유일무이 예술·건강서 《뭉크 씨, 도파민 과잉입니다》(김영사 刊)가 출간됐다. 저자는 ‘호르몬 도슨트’가 되어 미술관 옆에 진료실을 열고 미술작품을 통해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을 관장하는 호르몬을 진단하고 처방한다. 초상화를 보고 호르몬 문제를 발견하고, 풍경화가 불러일으키는 느낌을 호르몬의 특징과 관련지어 이야기한다. 그리고 건강과 균형을 되찾아주는 식습관, 생활 습관 등 호르몬 처방전을 덧붙인다. 사랑과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엔도르핀, 행복 호르몬으로 알려진 세로토닌, 온몸의 세포를 활성화하는 마이오카인까지 우리 몸의 신진대사를 지배하는 14가지 중요 호르몬을 소개하며 명화에 생기를 불어넣고 의학 지식은 알기 쉽게 전달해준다.신기하게도 호르몬과 미술이 절묘하게 포개어지는 이 조합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화가든 오브제든 감상자든 모두 호르몬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유려하게 풀어낸 명화 속 호르몬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명화작품뿐만 아니라 인생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다. ◇ 엔도르핀부터 마이오카인까지… 명화를 보면 호르몬이 보인다!14가지 호르몬을 50점이 넘는 미술작품으로 풀어낸 이 책은 모두 4관으로 구성돼 있다. 제1관 기쁨(喜)부터 제2관 분노(怒), 제3관 슬픔(哀), 제4관 즐거움(樂)까지 각각의 감정을 고양하고 때로는 달래주는 희로애락 미술관이다. 호르몬 도슨트가 큐레이션한 독특한 미술작품들이 각각 테마를 이루어 독자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미술관을 떠날 때쯤이면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처럼 광대하고 경이로운” 호르몬 세계가 한눈에 들어올 것이다. ◇ ‘모나리자’의 민짜 눈썹에 ‘웃픈’ 사연이 있다고?모나리자의 특징은 부인의 눈썹이 없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 이유가 16세기 유럽의 패션 유행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저자는 그녀가 갑상선호르몬 분비가 적은 ‘갑상선기능저하증’을 앓았을지도 모른다고 진단한다. 갑상선기능저하증은 중년 여성에게 흔히 발병한다. 머리카락이 가늘어지고 눈썹은 심하게 빠지며 눈두덩이 붓고 우울감이 생기는 증상이 나타난다. 놀랍게도 <모나리자>에서 찾아볼 수 있는 증상들이다. <모나리자>처럼 갑상선호르몬 부족 문제를 겪는다면 요오드가 많이 함유된 해조류를 섭취하거나 티로신이 많은 견과류를 먹어주면 좋다.◇ 고흐의 ‘해바라기’ 속 노란색이 무려 열여덟 가지로 나뉜다고?해바라기는 노란색 일색인데도 단조로워 보이지 않는다. 노란색이 미묘하게 세분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흐는 평생 노란색에 집착했다. 이를 위해 독주 압생트를 마셨다는 설이 있을 정도다. 고흐의 집착은 아름다운 그림으로 승화되었지만, 호르몬의 관점에선 도파민 과잉이 의심된다. 도파민은 극적인 사랑에 빠지거나 격한 감동을 느끼게 해주는 호르몬이다. 그러나 과다 분비되면 집착, 충동, 중독, 심지어 갑질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도파민을 아예 차단할 경우 또 다른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 도파민 관리는 규칙적인 운동과 수면을 통해 자기 통제감을 키워나가는 게 핵심이다.◇ 몸을 담그기만 해도 젊어진다는 크라나흐의 ‘젊음의 샘’에 숨겨진 비밀?루카스 크라나흐의 <젊음의 샘>은 몸을 담그면 젊어지는 마법의 샘물을 그려낸 작품이다. 성장호르몬만 잘 관리한다면 이 꿈같은 일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성장호르몬은 지방 분해, 근 성장, 심혈관계 강화, 골밀도 강화 등 무수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성장호르몬은 40살만 되어도 20살에 비해 절반밖에 분비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도 젊음을 유지하고 싶다면 성장호르몬 관리가 필수적이다. 양질의 단백질을 섭취하기, 콜레스테롤과 트랜스지방이 많은 음식 줄이기, 20분 이상 햇빛 쬐기 등 소소한 습관들부터 시작해보자. ◇ 마그리트의 마술사에서 발견되는 호르몬의 불균형?르네 마그리트의 마술사는 끼니를 먹자마자 디저트와 음료를 찾는 현대인의 무한한 식탐을 재치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안 교수는 “만약 마술사에서 자신의 모습이 연상된다면 식욕 호르몬 그렐린과 식욕 억제 호르몬 렙틴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신호다. 애써 굶어가며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그렐린과 렙틴의 균형을 되찾아보길 바란다. 자연스레 식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뭘 먹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 소중한 일상을 지켜주는 친절한 호르몬 처방전이 책은 각 장의 부록에서 호르몬 균형을 되찾아주는 식습관과 생활 습관을 소개한다. 실제 진료 사례와 연구 결과에 근거해 세심하게 정리한 호르몬 처방전이다. 명화를 살펴보며 몸 상태를 스스로 진단한 뒤 자신에게 꼭 필요한 관리법을 안내받을 수 있다. 일상에 기쁨을 더하고 싶다면 엔도르핀 처방전에서, 스트레스 없는 나날을 꿈꾼다면 코르티솔 처방전에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책에는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한 끝에 내분비내과에서 해답을 얻은 환자들의 사례가 등장한다. 약을 아무리 늘려도 나아지지 않던 고혈압 환자는 혈압 호르몬의 처방을 받아 고혈압을 치료했다. 잠이 많아 걱정이던 고등학생 환자는 멜라토닌 문제를 해결해서 잠의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호르몬과 생로병사의 연결고리를 이해한다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새로운 시각으로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지금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호르몬을 아름다운 명화로 드러내어 함께 감상했습니다. 앞으로는 우리 몸속에서 뛰어다니는 호르몬을 선명하게 그려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호르몬이 여러분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호르몬을 향해 손을 내밀 차례입니다.” _에필로그에서
2022.02.15 I 이순용 기자
막다른 골목에도 꽃은 핀다<23>
  • 막다른 골목에도 꽃은 핀다[이윤희의 아트in스페이스]<23>
  •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뚜쟁이’(1656). 햇빛 드는 고요한 실내 정경을 깊은 색채와 정밀한 구도로 그린, 단 35점으로 세계적 화가가 된 페르메이르의 초기작이다. 이후 작품들에 비해 크고 소란스러운 거의 유일한 그림이다. 작은 캔버스에 적은 수의 인물이 든 중산층 가정을 즐겨 그렸던 페르메이르는 17세기 중엽 다른 화가들과는 확연히 구별됐다. 덕분에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등을 먼저 떠올리는 이들에게 대단히 독특한 작품으로 여겨져 왔다. 화면의 왼쪽 인물을 화가 자신일 거라고 추측하기도 하나 확실치는 않다. 캔버스에 유채, 143×130㎝, 독일 드레스텐 알테 마이스터 미술관 소장.200여년 전 소설 ‘오만과 편견’이 탄생한 곳은 낡은 책상이었답니다. 종이 몇 장과 잉크병, 깃대펜이 전부인 그곳이 바로 영국작가 제인 오스틴의 작업실이었던 셈입니다. 장서가 그림처럼 꽂힌 책장, 큼직한 책상이 근사한 ‘서재’란 공간은 남성 작가만 차지할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서재뿐인가요. 화가의 공간이던 ‘아뜰리에’도 그랬고,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카페’와 ‘술집’ ‘광장’도, 한 가정집의 ‘부엌’과 ‘식당’ ‘침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속해 있던 공간이지만, 그곳이 모든 이들에게 늘 공평했던 것은 아니었던 겁니다. 오랜 시간 미술관을 일터로 삼아온 이윤희 큐레이터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장면,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때론 객관적 기록으로, 때론 상징을 담아, 때론 비틀린 풍자를 숨겨낸 ‘그림으로 읽는 공간이야기’ ‘그림으로 읽는 사람이야기’입니다. 주말 독자 여러분을 아트인문학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편집자주> [이윤희 큐레이터·미술평론가] 역사적으로 사창가는 인구가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성행했다. 파리·런던·베를린 같은 대도시는 물론이고, 무역이 활발했던 암스테르담 같은 곳에서는 법적으론 금지했으나 못 본 척 눈감아주기도 했다. 사창가에서 일하고 거주하는 여성들은 법망을 벗어난 사회의 최약체로, 상시 성병의 위험에 노출돼 있을 뿐만 아니라 온갖 생명의 위협까지 안고 살아야 했다. 도시의 후미진 곳에서 호객을 하고 웃음을 파는 여성과 남성 손님들을 그린 사창가의 장면은 특히 17세기 네덜란드의 풍속화에서 크게 유행했는데, 이는 그런 모습이 그저 흥겹고 보기 좋아서만은 아니었다. 햇살이 들어오는 실내의 고요한 정적을 밀도 있게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1632∼1675)도 초기에 사창가를 주제로 한 그림을 남겼다. ‘뚜쟁이’(1656)는 페르메이르가 24세가 되던 해에 그린 것이다. 사건은 동양풍의 러그와 모피코트가 걸쳐 있는 난간의 안쪽에서 일어나고 있다. 노란 상의를 입은 젊은 여성이 손을 펴 한 남성으로부터 동전 한 닢을 받고 있다. 깃털 모자를 삐딱하게 눌러 쓴 이 남성은 한 손을 여성의 가슴에 올린 채 다른 한 손으로 반짝이는 동전을 여성의 손에 쥐여주려 한다. 거래가 성사되기 직전인 것이다. ◇돈을 지불하는 남자와 비열한 웃음 머금은 노파 이들의 뒤쪽에 앉은 인물은 검은 천을 머리끝까지 덮어쓴 노파인데, 이 인물의 존재가 그림에 전형성을 부여한다. 17세기에 그려진 이러한 장면, 그러니까 성을 사고팔 때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이러한 유형의 노파인 것이다. 이 노파야말로 그림의 주인공인 ‘뚜쟁이’다. 여성이 받고 있는 돈 역시 이 노파가 관리할 것이다. 다른 화가들의 그림에는 노파의 손에 직접 돈을 주는 장면이 그려지기도 했다. 이 시기 그림 속 ‘뚜쟁이 직군’의 노파들은 하나같이 수전노의 얼굴에 비열한 웃음을 머금고 있다. 노파의 등장은 이 매매춘이 시스템에 의해 굴러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그림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인물은 화면의 왼쪽에 있는 남성이다. 이 남성은 깃털 모자의 남성보다 더 잘 갖춰 입었고, 난간의 모피코트도 그의 것으로 보인다. 흰 레이스칼라에 벨벳모자를 쓴 그는 악기와 술잔을 들고 화면 앞쪽을 바라보고 있다. 심지어 이를 드러내며 싱긋 웃고 있는 듯하다. 이 웃음은 노파의 음흉한 미소와는 어쩐지 좀 달라 보인다. 페르메이르의 자화상은 한 점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마치 거울을 쳐다보며 포즈를 취하는 것 같은 이 남성의 모습에 화가의 자화상이 담겼을 거라 추정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페르메이르 자신이든, 아니면 모델이 돼 준 친구일지라도, 이 남성은 우리를 쳐다보며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하다. ‘이것이 지금의 세상이다, 달리 무엇을 말하겠는가’라며 마치 이 장면의 진실을 똑똑히 보라고 하는 것만 같다. 건배를 위해 든 잔을 그림 바깥쪽 우리와 부딪치고 싶은 것 같기도 하다. 돈으로 성을 사는 이런 장면은 종종 성경 신약에 등장하는 ‘돌아온 탕자’로 해석하기도 한다. 아버지에게서 받은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모진 고생 끝에 다시 돌아와 따스한 환대를 받는 아들 이야기 말이다. 그렇게 보자면 그림의 깃털 모자 남성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탕자일 것이다. 결국 뼈저리게 후회하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는 과정에서, 허랑방탕하게 벌인 일의 대명사가 성을 사는 일이라는 것, 또 그저 뚜쟁이 노파의 배를 불려주는 일이란 것은, 그림 속 인물들의 포즈만으로도 금세 알 수 있다.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이 살아갈 뿐…담담한 시선 교훈을 깔아두더라도, 이 주제는 화가들의 흥을 돋우기 충분했다. 고요한 화면의 대가인 페르메이르가 이 정도인데, 시끌벅적한 장면을 선호했던 다른 화가들은 얼마나 흥청망청 그려댔겠는가. 옷이 벗겨지고 침대로 뛰어가고 가격을 흥정하는 장면이 넘쳐났다. 어쩌면 하나의 거대한 장르가 된 이 시기의 떠들썩한 그림들과는 달리, 매춘업소에 머물며 관찰했던 19세기 프랑스 화가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1864∼1901)의 화면에서 여인들은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이 살아가는 실제적인 모습으로 그려졌다.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의 ‘물랭 가의 살롱’(1894). 19세기 후반 파리의 환락가던 몽마르트르에 아틀리에를 차리고 13년간 물랭루주를 비롯해 술집·매음굴·뮤직홀 등의 정경을 소재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때의 작품이다. 당시 그린 회화는 50여점, 드로잉은 100여점에 달한다. 툴루즈-로트레크는 날카롭고 박력있는 소묘가 특히 유명한데, 그 소묘의 힘에 바탕을 둔 유화작품들은 어둡지만 강렬한, 부드럽지만 각이 잡힌 특유의 화풍을 입고 있다. 카드보드지에 유채, 111.5×132.5㎝, 프랑스 알비 툴루즈-로트레크 미술관 소장.‘물랭 가의 살롱’(1894)에서는 화려한 기둥과 거울로 둘러싸인 붉은 소파에 앉아 쉬고 있는 여인들이 보인다. 화가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검은 스타킹에 속옷 차림으로 등받이에 기대 쉬고 있는 여인의 모습에서는 피곤함이 느껴진다. 장소에 어울리지 않게 목까지 감싼 옷을 입은 여인도 늙고 지쳐 보인다. 어떤 여인은 사실적으로, 어떤 여인은 코믹하게 과장돼 있지만 그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생각에 빠져 있다. 화면의 오른쪽에 반만 그려진 여인은 속옷 치마를 걷어 올리고, 정기적인 의료점검, 그러니까 매독이나 임질에 대한 검사를 위해 준비하는 중이다. 툴루즈-로트레크는 프랑스의 귀족 가문 출신이지만, 어린시절 다리가 부러져 하반신 성장이 멈춘 채 평생 지팡이를 짚고 살았다. 불완전한 신체에 평생을 알코올중독으로 살았지만 그래도 화구만 주어지면 그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알아보는 시선이 있었다. 그 덕에 파리에서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매춘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쉬는 공간을 드나들 수 있도록 허락받고, 그들의 이면을 그릴 수 있었다. 툴루즈-로트레크의 그림 속에서 여성들은 화려하지도 않고 웃지도 않으며 유혹적이지도 않다. 어쩌다가 그곳까지 흘러들게 된 인생의 여정에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모습으로만 그려졌을 뿐이다. 하지만 화가는 모델이 된 여성들에 대한 감정적 공감보다는 화면의 남다른 구성, 과감한 색채와 면 분할, 크고 작은 요소들의 배열이란 조형적 의지를 두드러지게 내보인다. ◇자신보다 더 불행해 보이는 매춘부 향한 연민반면 비슷한 시기에 정말로 한 매춘 여성을 향한 연민과 사랑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던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그림에서는 깊은 슬픔이 느껴진다. 반 고흐와 한 시기를 같이 살았던 거리의 매춘부 시엔은 임신을 한 상태로 그를 만났다. 임신으로 거리에 더 나갈 수도 없었던 시엔에게 반 고흐는 모델을 제안했고, 그것은 물론 생계를 해결해주기 위한 고안이었다. 그 자신도 늘 가난에 허덕였지만 반 고흐는 시엔에게 보금자리를 만들어주고 싶었고, 곧 태어난 아기에게도 사랑을 쏟았다. 하지만 반 고흐가 네덜란드에서 잘 알려진 목사의 아들이며, 화상이던 동생 테오로부터 금전적인 도움을 받고 있었던 것은 이 관계를 더 지속하지 못하게 한 요인이 됐다. 그들은 2년간 함께한 후 헤어졌고, 시엔은 선원이던 남성과 결혼을 한 차례 했지만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담배를 들고 있는 시엔’(1882). 임신부로 길거리를 헤매던 매춘부 시엔(크리스틴 클라지나 마리아 후르닉)에게 강렬한 인상을 받은 반 고흐는 자신의 빵을 나눠주고 집세를 보태주고 모델로 삼아 그림을 그렸다. 작품은 시엔을 그린 60여점 중 한 점이다. 동생 태오에게 쓴 편지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그녀도, 나도 불행한 사람이지. 그래서 함께 지내면서 서로의 짐을 나눠지고 있어. 그게 바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꿔주고,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을 만하게 해주는 힘이 아닐까.” 종이에 연필과 목탄, 45.5×47㎝, 네덜란드 오테를로 크뢸러-뮐러 미술관 소장.반 고흐는 시엔을 모델로 많은 드로잉을 남겼다. 그의 그림들 속에서 의자에 앉아 책을 읽거나 아기를 돌보는 등 전형적인 부인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시엔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특별히 포즈를 취하지 않은 듯한 ‘담배를 들고 있는 시엔’(1882)에서는 험하게 살아왔던 과거가 지워지지 않은 듯 슬픔에 빠져 있는 모습이다. 마르고 굽은 등으로 의자가 아닌 바닥에 앉아 담배를 든 채 난로를 쬐고 있다. 시엔은 자신이 성실하지 못해 매춘부가 됐다고 자책했지만, 사실 그녀를 부추긴 것은 부모와 남동생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불운은 한꺼번에 몰려와 그녀를 가까이 했던 모든 남자들이 그녀를 버렸고 아버지가 다른 자식들을 낳았으며, 반 고흐와의 사랑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시엔의 그림을 바라보는 우리는 알 것만 같다. 반 고흐는 이 여인을 그저 조형적 완성을 위한 모델로 생각했던 것이 아니라 깊이 아끼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윤희 큐레이터는… 1970년생. 대학을 다니던 20대 어느 겨울, 해외여행 자유화 덕분에 유럽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 인생에 미술을 들인 결정적 계기가 됐다. 누구나 들렀던 어느 미술관에서 뜻밖에 렘브란트의 ‘어머니 초상’이란 작품이 발을 붙들었다. 뭔가 꿈틀거리는 게 올라왔다. 세상을 감동시킨 그 수많은 작품을 설명하는 언어를 가지고 싶다는 열망도 함께였다. 이화여대에서 독문학과를 졸업한 뒤론 동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미술의 역사, 미술의 말을 공부했다. 이후 ‘공간’ 지 미술기자를 시작으로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학예실장, 청주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 등을 거치며 오래전 그 렘브란트의 감동을 현장으로 옮겼다. 번역서로 ‘그림자의 짧은 역사’(2006), ‘포토몽타주’(2003), ‘바디스케이프’(1999)가 있으며 저서로 ‘여성의 눈으로 보는 미술 키워드’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2022.02.12 I 오현주 기자
파는 여인, 팔리는 여인<22>
  • 파는 여인, 팔리는 여인[이윤희의 아트in스페이스]<22>
  • 피터르 아에르천이 1569년에 그린 ‘시장’. 종교·신화적 작품이 주를 이뤘던 16세기, 생기 넘치는 정물들의 ‘시장풍속화’로 이름을 날린 아에르천은 상인·농부의 삶과 일상 역시 많이 남겼다. 그 시장풍속화 중 한 점인 작품은, 지금으로 치면 청과물상 풍경쯤 된다. 한순간 멈춰 세운 ‘사진기법’인 양 선명하고 또렷한 묘사가 특징이다. 매대에 늘어놓은 다채로운 채소·과일 외에도, 부부 상인과 뒤쪽에서 내다보는 손님 등 인물을 탐색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무패널에 유채, 86×169㎝, 스웨덴 스톡홀름 할빌박물관 소장.200여년 전 소설 ‘오만과 편견’이 탄생한 곳은 낡은 책상이었답니다. 종이 몇 장과 잉크병, 깃대펜이 전부인 그곳이 바로 영국작가 제인 오스틴의 작업실이었던 셈입니다. 장서가 그림처럼 꽂힌 책장, 큼직한 책상이 근사한 ‘서재’란 공간은 남성 작가만 차지할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서재뿐인가요. 화가의 공간이던 ‘아뜰리에’도 그랬고,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카페’와 ‘술집’ ‘광장’도, 한 가정집의 ‘부엌’과 ‘식당’ ‘침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속해 있던 공간이지만, 그곳이 모든 이들에게 늘 공평했던 것은 아니었던 겁니다. 오랜 시간 미술관을 일터로 삼아온 이윤희 큐레이터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장면,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때론 객관적 기록으로, 때론 상징을 담아, 때론 비틀린 풍자를 숨겨낸 ‘그림으로 읽는 공간이야기’ ‘그림으로 읽는 사람이야기’입니다. 주말 독자 여러분을 아트인문학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편집자주> [이윤희 큐레이터·미술평론가] 시장에는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 점포를 가지고 가지런히 물건을 내놓은 상인들도 있지만, 가판대에 소쿠리를 얹어 빼곡하게 농수산물을 늘어놓고 즉석에서 손질해가며 손님을 불러모으는 상인들은 하루치를 떨고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더욱 바쁘다. 한 줌을 팔고 기분이 내키면 한 줌을 더 얹어주기도 하고, 애매하게 매대를 기웃거리는 사람들에게는 이걸 저렇게 해서 먹으면 된다고 요리법을 조언해 주기도 한다. 이러저런 유통과정을 거쳐 예쁘게 포장해 판매히는 것보다 모양은 울퉁불퉁하지만 어쩐지 시장에서 산 것들은 더 맛있게 느껴진다. 세계 어디에서나, 또 과거나 현재나 시장의 모습은 비슷하다. 암스테르담과 안트베르펜에서 활동했던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아에르천(1508∼1575)은 시장의 다양한 먹을거리와 상인 모습에 매료돼 여러 점의 시장 그림을 남겼다. 1569년에 그린 ‘시장’에선 한 건물 앞에서 가판대를 만들어 각종 청과를 판매하는 부부 상인의 모습이 보인다. 당근을 비롯한 뿌리채소와 오이·호박·양배추·포도에 이르기까지 뒤엉킨 채소와 과일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비슷한 종류끼리 모아뒀지만 아직 완전히 정리가 된 것 같지는 않고, 막 도착해서 좌판을 펼쳐 정리하는 과정처럼도 보인다. 화면의 오른쪽에 여인이 한창 칼을 들고 양배추를 손질하는 중이다. ◇창을 든 무사를 연상케 하는 시장의 여인들그림의 놀라운 점은 스냅사진을 방불케 하는 순간성을 담아냈다는 점이다. 이러한 느낌은 과일이나 채소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기보다는 허리를 굽혀 채소를 손질하는 여인의 눈빛 때문이다. 손이 바쁜 중에도 자신을 쳐다보는 화가의 눈길을 맞받아치는 여인의 눈빛은 어딘지 매섭고 단단하다. 힘을 쏟느라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지만 턱선과 눈 주위 광대뼈가 툭 튀어나와 강인한 인상이다. 뒤쪽에 당근을 든 사내가 산만해 보이는 것에 반해, 여인은 칼을 든 손의 팔꿈치를 낮은 담장에 걸치고 꽤 안정적으로 작업을 해나가는 모습이다. 사진의 발명이야 수백 년 뒤라 화가는 시장에서 본 여인의 순간적인 표정을 기억에 담았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들을 쳐다보는 화가의 눈길이 거추장스럽다는 표현이 아니었을까. 여인의 눈빛은 그림에 확실한 생동감을 부여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장의 장면을 바라보는 미술사가와 비평가의 ‘깊이 있는’ 해석은 종종 결을 달리하는 것 같다. 일종의 프로이트적 해석이라고 해야 할까. 남근을 연상케 하는 당근을 남성이 들고 있는 점, 둥근 양배추를 여성이 손질하고 있다는 점, 여성의 상의 앞섶이 잘 여며져 있지 않고 허리를 굽혀 가슴이 두드러져 보인다는 점 등으로 미뤄볼 때 그림에 에로틱한 비밀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과일이나 둥근 기물을 여성 신체의 유비로 사용했던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기에 이런 해석에도 일리가 있겠으나, 그러기에는 이 장면이 너무 분주하지 않은가. 일하러 집 밖에 나선 여성에게 수작을 거는 장면은 이 시기 장르화에서 많이 그리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칼을 들고 매몰찬 눈빛을 보내는 이 여인에게 지분거리다가는 혼쭐이 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에르천은 특이하게도 일하는 여성들, 흔히 말해 낮은 계급의 여성을 만만해 보이게 그리지 않았다. 그가 그린 ‘요리사’(1559)에는 일하는 여인, 아마도 어느 집의 하녀일 것으로 추정하는 여인이 쇠꼬챙이에 닭과 염소 고기를 꿰어 들고 등장한다. 피터르 아에르천의 ‘요리사’(1559). 시장풍속화로 이름을 날린 아에르천이 활동한, 당시 북유럽에서 가장 부유했던 안트베르펜에는 농축산물은 물론 사치품, 상인들이 몰렸고, 그는 시대적 흐름과 풍경을 잘 잡아냈다. 작품은 쇠꼬챙이에 꽂힌 고깃덩어리와 대비되는 위풍당당한 시장여인을 등장시켜 시선을 끈다. 나무패널에 유채, 171×85㎝, 이탈리아 제노바 팔라초 비앙코 소장.이 장면은 얼핏 보면 창을 들고 있는 무사의 자세를 연상케 한다. 여인의 모습에서 수줍어하거나 조아리며 굽실거리는 면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소매를 위쪽으로 바싹 걷어붙이고 쇠꼬챙이를 든 자세는 오히려 숙련된 자신감을 보여준다. 이 젊은 여인의 얼굴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귀족처럼 당당한 품격이 느껴질 정도다. 비록 앞치마와 손에는 고기냄새가 배어 있을지라도 말이다. 노동을 통해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는 여성들의 이러한 뚝심 있는 모습에 아에르천은 경외감을 표하고 싶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성이 시장의 주체로 일을 하는 모습과는 정반대로, 상품이 돼 팔려나가는 시장을 그린 화가들도 있었다. 19세기 영국 화가 에드윈 롱(1829∼1891)은 역사책에 등장하는 과거 먼 나라 바빌로니아에서의 여성 매매 시장을 상상으로 그렸다.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행해졌다는 매매혼의 풍습을 전해 들은 뒤 헤로도토스의 역사기록에 영감을 받았다는 ‘바빌로니아의 결혼시장’(1875)이다. 이 장면에 박진감을 더하기 위해 롱은 대영박물관의 고대 유물을 정성 들여 관찰해 그림 속 배경으로 삼았다. 롱은 영리하게도 사려는 자와 팔리는 자, 모두를 잘 보여주기 위해 경매대의 뒤편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 여성들을 화면의 전면에 내세웠다. 아마도 그중 한 명이었을 한 여성은 경매대에 서 있다. 머리에 드리운 반투명한 천을 걷어 얼굴을 보이는 중에 상인은 ‘상품’을 더 잘 설명하기 위해 치마 위에 둘러싼 천을 벗겨내고 있다. 연단에 있는 경매사의 자세는 매우 열정적으로 보인다. 손을 내밀어 상품이 된 여성을 가리키며 특징을 설명하고 있고, 다른 손에는 작은 종을 쥐고 경매의 시작과 끝을 알리고 있다. 에드윈 롱의 ‘바빌로니아 결혼시장’(1875). 롱은 19세기 빅토리아시대에 성공한 화가로 꼽힌다. 스페인과 이집트, 시리아 등 중동국가를 여행하며 서민의 일상을 그린 장르화, 동양적 분위기의 역사화나 종교화가 런던 미술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작품은 고대 바빌론·아시리아지역에서 경매로 여성을 사 결혼하던 풍습을 그린 역사화. 그리스 역사가인 헤레도토스의 기록 등에서 찾아낸 세부요소를 넣어 공감의 여지를 높였다. 캔버스에 유채, 172.6×304.5㎝, 영국 런던 로열홀로웨이 런던대 소장.◇두려움·체념·분노…팔려가는 여인들의 각양각색 표정남성들은 호기심에 찬 얼굴로 신중하게 여성을 훑어보고 있으며, 자신이 가져온 귀한 물건과 바꿀 가치가 있는지 탐색 중이다. 화면 왼쪽 검은 수염의 남성은 눈길을 여성에게 둔 채 자신의 보석함을 열어 목걸이를 감정사에게 내밀고 있다. 과연 이미 거래를 시작한 이 남성이 여성을 차지할지, 중앙에서 두 손을 모으고 홀린 듯한 제스처를 취한 남성이 최종 낙찰자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사실 그림의 하이라이트는 사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팔리기 위해 매대 뒤쪽에 줄지어 앉은 여성들이다. 여성들의 표정과 제스처는 제각각이다. 바로 다음 순서에 오르게 될 여성은 반쯤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고, 다음 여성은 거울을 보며 얼굴을 점검하고 있다. 어떤 남성이 자신을 사갈지 짐작도 할 수 없게 뒤돌아 앉은 상태로 기다리는 여성들은 운명을 받아들이고 서로 대화를 나누기도 하지만, 두려움과 암담함과 분노가 뒤섞인 얼굴을 한 이들도 있으며, 맨 끝 여성은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여성들이 처한 상황이야 참담하지만 제3자가 보기엔 그저 진기한 풍경일 뿐이다. 재산으로 여성을 살 수 있던, 축첩도 허용한 고대 먼 나라의 풍습이라니. 게다가 그림을 바라보는 이들은 경매에 참여한 남성들보다 자유롭게 무대 뒤 여성들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으니 훔쳐보는 재미까지 더하지 않겠나. 하지만 동시대의 모든 도덕감을 물리고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이 그림은 무엇 때문에 그려졌을까.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억센 여인들보다, 팔리기 위해 치장하고 앉은 여성들이 눈을 더 즐겁게 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19세기 당시 영국에서 벌어졌다면 당장 잡혀갈 일이지만, 까마득히 오래전 먼 나라의 일을 상상하는 것은 죄가 아니니까 말이다. △이윤희 큐레이터는… 1970년생. 대학을 다니던 20대 어느 겨울, 해외여행 자유화 덕분에 유럽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 인생에 미술을 들인 결정적 계기가 됐다. 누구나 들렀던 어느 미술관에서 뜻밖에 렘브란트의 ‘어머니 초상’이란 작품이 발을 붙들었다. 뭔가 꿈틀거리는 게 올라왔다. 세상을 감동시킨 그 수많은 작품을 설명하는 언어를 가지고 싶다는 열망도 함께였다. 이화여대에서 독문학과를 졸업한 뒤론 동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미술의 역사, 미술의 말을 공부했다. 이후 ‘공간’ 지 미술기자를 시작으로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학예실장, 청주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 등을 거치며 오래전 그 렘브란트의 감동을 현장으로 옮겼다. 번역서로 ‘그림자의 짧은 역사’(2006), ‘포토몽타주’(2003), ‘바디스케이프’(1999)가 있으며 저서로 ‘여성의 눈으로 보는 미술 키워드’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2022.02.05 I 오현주 기자
임인년 설날, 전통공연으로 '호랑이 기운' 받아가세요
  • 임인년 설날, 전통공연으로 '호랑이 기운' 받아가세요
  •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흑호랑이의 해’ 임인년(壬寅年) 설 명절을 ‘호랑이 기운’을 가득 담은 전통공연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연휴 기간 온 가족이 함께 즐길만한 전통공연을 정리했다.국립국악원 ‘호랑풍류’에서 선보일 대취타 공연 장면(사진=국립국악원)국립국악원은 다가오는 설 명절을 맞아 전통국악을 다채롭게 접할 수 있는 기획 공연 ‘호랑풍류’를 오는 2월 1일과 2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공연한다.새해의 희망과 호랑이의 역동적인 기운을 전통 음악과 노래, 춤으로 엮어서 선보이는 공연이다. 국립국악원 정악단·민속악단·무용단이 출연해 궁중음악, 전통 춤, 민요, 연희 등 총 6가지 종목의 전통 레퍼토리를 다양하게 구성해 선보인다. 소리꾼 김나니가 사회를 맡는다.국악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관객 체험 이벤트도 함께 마련한다. 예악당 옆에 위치한 국악박물관에서는 120년 전 임인년에 연행된 대한제국의 궁중 잔치 ‘임인진연’을 주제로 한 영상 전시와 유물 등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공연 예매 관객에게는 가족과 함께 윷놀이·제기차기·팽이놀이·딱지치기 등을 즐길 수 있는 ‘민속놀이 꾸러미’를 무료로 증정한다.국립무용단 ‘새날’ 중 ‘윷치기놀이’(사진=국립극장)국립극장 전속단체 국립무용단은 명절 기획공연 ‘새날’을 오는 2월 2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공연한다. 임인년 새해를 맞아 기운찬 한 해를 열고 모두의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풍성한 우리 춤 잔치다.‘새날’은 총 8개의 우리 춤 소품으로 구성된다. 웅장하고 역동적인 북의 울림으로 새로운 생명을 깨우는 ‘태’(안무 박재순), 한 해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는 ‘액막이’(공동안무 손인영·김미애), 전통 악기와 우리 춤을 접목한 ‘보듬고’(안무 박재순), ‘당당’(안무 송지영), ‘진쇠춤’(안무 조흥동) 등을 만날 수 있다. 공연의 대미는 손인영 국립무용단 예술감독과 단원 정길만이 공동 안무한 ‘윷치기놀이’가 장식한다.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온통 페스티벌’에서 선보이는 ‘전통 건축’ 공연 장면(사진=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은 온라인 전통예술 축제 ‘2022 온통 페스티벌’을 오는 2월 10일까지 2주간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진행한다. 재단이 비대면 상황에서 전통 예술가들의 지속 가능한 예술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기획한 52편의 영상을 공개한다.전통예술을 현대미술·건축·미술사·문학 등과 접목한 점이 특징이다. ‘전통×건축’에서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대표 건축물 뮤지엄 산에서 건축가 유현준과 전통 아티스트들의 만남을 선보인다. 안도 다다오가 보여주는 건축의 디테일을 유현준의 전문적인 해설과 함께 감상하는 ‘건축 해설투어 영상’, 전통음악과 재즈의 감성을 담은 뮤직비디오, 그리고 공연 ‘공간이 만든 공간’ 영상을 만나볼 수 있다.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 어린이들을 위한 재단 대표 레퍼토리 ‘동화음악회’ 신작 2편도 ‘전통×동화’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프랑스 세르주 블로크가 그림을 그리고 작가 송미경이 글을 쓴 ‘돌 씹어먹는 아이’, 2021년 볼로냐 라가치상 유아 그림책 부문 대상을 수상한 이지은 작가의 ‘이파라파냐무냐무’ 등을 선보인다.
2022.01.30 I 장병호 기자
전통×미술·건축·인문·동화…27일부터 '온통 페스티벌'
  • 전통×미술·건축·인문·동화…27일부터 '온통 페스티벌'
  •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하 재단)은 온라인 전통예술 축제 ‘2022 온통 페스티벌’을 오는 27일부터 2월 10일까지 2주간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진행한다.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2022 온통 페스티벌’ 포스터(사진=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번 페스티벌에서는 재단이 비대면 상황에서 전통 예술가들의 지속 가능한 예술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기획한 52편의 영상을 공개한다. 전통예술을 현대미술·건축·미술사·문학 등과 접목한 점이 특징이다.‘전통×현대미술’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덕수궁에서 현대미술 작가들과 함께한 ‘덕수궁 프로젝트 2021 : 상상의 정원’ 작품 중 김아연 ‘가든카펫’, 윤석남 ‘눈물이 비처럼, 빛처럼 : 1930년 어느 봄날’, 김명범 ‘원(ONE)’ 세 작품과 잠비나이의 김보미, 심은용이 만나 제작한 뮤직비디오를 공개한다.‘전통×건축’에서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대표 건축물 뮤지엄 산에서 건축가 유현준과 전통 아티스트들의 만남을 선보인다. 안도 다다오가 보여주는 건축의 디테일을 유현준의 전문적인 해설과 함께 감상하는 ‘건축 해설투어 영상’, 전통음악과 재즈의 감성을 담은 뮤직비디오, 그리고 공연 ‘공간이 만든 공간’ 영상을 만나볼 수 있다.‘전통×인문’은 서양미술사를 소재로 전통 창작무용과의 새로운 만남을 선보인다. 빛의 화가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입체파 화가 피카소의 ‘게르니카’ 등 예능 다큐멘터리 형식의 서양미술사 이야기와 작품 워크숍을 통해 영감을 받은 댄스 필름을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문학과 역사 속 인물의 이야기를 창작 전통음악과 함께 구성한 ‘전통×문학’ 프로그램으로는 음악극 ‘정조와 햄릿’을 공개한다. 중견 예술가들이 꾸미는 ‘문화공간×전통’은 거문고 연주가 허윤정, 25현 가야금 연주자 박순아가 중견 예술가들의 깊이 있는 음악 세계를 영상 작품으로 만들었다.또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 어린이들을 위해서는 재단 대표 레퍼토리 ‘동화음악회’ 신작 2편을 ‘전통×동화’로 소개한다. 프랑스 세르주 블로크가 그림을 그리고 작가 송미경이 글을 쓴 ‘돌 씹어먹는 아이’, 2021년 볼로냐 라가치상 유아 그림책 부문 대상을 수상한 이지은 작가의 ‘이파라파냐무냐무’ 등이다.‘온통 페스티벌’은 재단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보다 자세한 정보는 재단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22.01.25 I 장병호 기자
  • [미리보는 이데일리 신문]서울 분양 늘어도 서민에겐 '그림의 떡'
  • [이데일리 송승현 기자] 다음은 17일자 이데일리 신문 주요 기사다.△1면- 서울 분양 늘어도 서민에겐 ‘그림의 떡’- 정부-한은 ‘자중지란’ 물가·경기 다 놓칠판- “NFT·메타버스 동시 공략, 방탄NFT 내놓을 것”- 굼융당국, 4대 코인마켓 돈세탁 검증한다△종합- 코로나가 만든 ‘베짱이 세상’- 호랑이해 호령할 주식이 책 속에 있소이다△엇갈린 정책 공조- 정치논리에 밀려 사상 첫 1월 추경…인플레 우려에도 여야 “돈 더 풀어라”- 매파 고수한 한은…“대출부담 부작용 해소는 정부 몫”- 금리인상에 거리두기 연장까지 덮쳐…내수경기 위축 불가피△종합- 전전긍긍 영끌·빚투족…이자 불어나는데 집값·주식·코인은 뚝- 직장갑질금지법 後…괴롭힘 줄었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은 여전- LG엔솔 청약에 ‘계좌 개설’ 붐…증권사 신규계좌 최대 3배 폭증- 택배노조 “17일 13시까지 대화 나누자”…총파업 여론 악화에 ‘출구전략’ 꺼냈나△혼란 자초한 방역당국- 업종 특성 무시한채 획일적 적용…무리한 방역패스 확대로 ‘혼선’ 일으켜- 청소년 방역패스 좌초…접종률·정상등교 ‘빨간불’- 지역별 형평성 논란에…“누더기 방역패스 기준 바로잡아야”△정치- 李 “강원 평화특별자치도 추진”- 尹 “서울에 주택 40만가구 공급”- ‘숙고’ 심상정, 광주 붕괴현장 방문…이르면 오늘 ‘대국민 메시지’ 낼 듯- 김건희 녹취 공개에 내달 尹 출연 영화 개봉…野 첩첩산중- 文대통령, 중동서 수소·수출·수주 ‘3수 외교’ 돌입△경제- 수요 줄어도 계속 오르는 우윳값 제동…정부, 원유 용도별로 가격 차등화한다- 소상공인 방역지원금 설 전에 못 받는다- “올해도 유가 고공행진…배럴당 100달러 넘을 수도”- ‘통상인재 키우자’…산업부, 법무인턴 과정 첫 실시△글로벌- 올림픽 3주도 안 남았는데…오미크론에 뚫린 베이징 ‘비상’- 일촉즉발 우크라이나 美, “러, 내달 침공할수도”- 넷플릭스, 북미서 또 가격인상 1년 2개월 만에 1~2달러 올려- 환태평양 연안 쓰나미 경보…日 7개현 주민 21여명 대피△신년 인터뷰-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 일률 적용은 곤란- “저임금 노동자 주거 문제, 중앙·지방정부가 함께 나서야”△증권- 날개 없는 추락 아모레퍼시픽…멀어져 가는 ‘시총 10兆 클럽’- LG엔솔 IPO 역대급 흥행 예고에…LG화학 주주 “나 어떡해”- 미국 긴축 경계감 지속 LG엔솔 청약 수급 부담도△돈이 보이는 창- 억눌린 분양가…알짜단지 쏟아진다△돈이 보이는 창-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17년 만에 잠실 신축…‘로또 단지’ 기대감- 수도권 ‘활할’ 지방 ‘무더기 미달’…청약 ‘양극화’ 뚜렷△재무설계, 더 스마트하게- 네 손 안의 비서 재무관리사 따로 없네- 포트폴리오 SNS 공유하고, 유전자 검사까지…금융 넘어선 ‘인생 동반자’△아트테크&금융·ETF- ‘국보’가 사고파는 미술품이 될 수 있나요- 서학개미 ‘BITO’ 468억원 줍줍…비트코인 투자, ETF에 올라타자- 100세 시대 동반자 종신보험의 진화△산업- 이사회만큼 막강한 ‘MZ위원회’가 온다- 빅2 개편 좌초된 조선업계 경쟁이냐 협력이냐 갈림길- 8년 만에 빛보는 TV용 OLED…LGD 흑자전환 예감- 車 생산 350만대 붕괴…16년 만에 최악△ICT- 5년 된 코인 시장에 ‘500년 된 자본시장 룰’ 적용 안 된다- SW마에스트로 13기 모집- 컨트롤타워 재정비한 카카오…“위기 정면돌파”- ‘NFT가 판 흔들라’…대선주자들 엇갈린 반응△중소기업- 1M에 먼지 1개…최고 클린룸 기술, 이차전지·바이오로 확대- 혼코노미 시대…1인가구 맞춤형 ‘미니가전’ 뜬다- MZ세대 창업가 육성…청년창업사관학교 운영 ‘민간’ 확대△소비자생활- “덜 붐비고, 핫한 명품 많아”…MZ세대 청담 홀릭- 정작 ‘찐부자’는 샤넬에 시큰둥- “몰카부터 유해홍보물·위조품까지 전천후 감시”- 롯데마트 PB상품 ‘요리하다 다리집 떡볶이’ 출시 일주일 만에 매출 1위△스포츠- 박성현 “부활찬가”…고진영 “세계 1위”- 벤투 눈도장 받은 김진규·백승호 대표팀 중원 사령관 경쟁 불붙나- 연장서 버디 쑥…김주형, 새해 짜릿한 역전승- 백신 미접종 조코비치, 결국 호주오픈 참가 못하고 추방△부동산- 꽉 막힌 대출에 전셋값 부담까지…‘월세’로 내몰리는 서민들- LH, 오늘부터 4차 사전청약 일반공급·수도권 신희타 접수- 재건축 기대감 솔솔…‘사자’ 몰리는 헌 아파트- SK에코플랜트, 인천 뉴서울·현대아파트 재건축 수주△오피니언- 금리인상이 불러올 기업 자금 혹한기- K바이오, CMO·기술수출 너머를 보자- 중고차시장 개방, 사이다 장관의 고구마 행정- 최석운 ‘말타기’△피플- 예금보험 개편 당위성 공감…현실 감안해 조정할 것- 신한카드 ‘1위 생활 금융플랫폼’ 목표…“통합 월간 이용자 1000만명 넘겠다”- “혜택 줄게, 데이터 다오…고객과 ‘기브 앤드 테이크’ 하죠”- 애경산업, ‘가족친화 기업’ 재인증 획득△사회- 수색 장기화에 애타는 실종자 가족…손님 끊긴 주변 상인도 ‘발동동’- 공수처, 첫돌 행사 ‘비공개’ 입 닫을 수밖에 없는 이유- 증상악화에도 “기다리세요”…코로나 재택치료, 사실상 방치- 檢 정진상 소환…대장동 ‘윗선’ 밝혀지나- ‘채동욱 뒷조사’ 남재준 前 국정원장 무죄
2022.01.16 I 송승현 기자
노루페인트, ‘내맘쏙 모두의 그림책’ 전시회와 협업 진행
  • 노루페인트, ‘내맘쏙 모두의 그림책’ 전시회와 협업 진행
  • [이데일리 함지현 기자]노루페인트는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오는 3월 27일까지 진행하는 ‘내맘쏙 모두의 그림책’ 전시회에 페인트 협찬을 통한 전시 협업을 진행한다고 11일 밝혔다. 노루페인트 내맘쏙 모두의 그림책 전시(사진=노루페인트)노루페인트에 따르면 ‘내맘쏙 모두의 그림책’전은 책으로 만났던 그림을 작품으로 만들어 원화와 그림책에서는 볼 수 없었던 미공개 컷들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회다. 노루페인트는 총 4개의 전시 테마에 맞춤 컬러로 페인트를 시공해 각각의 공간이 마치 거대한 그림책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구성했다. 또 전시장 벽면을 가득 채운 다채로운 컬러로 관람객이 그림책 속으로 모험을 떠나는 듯한 경험을 제공했고 아이들이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전시를 즐겁게 관람할 수 있도록 명도와 채도가 높은 컬러를 사용했다. 이번 전시회에 시공한 팬톤페인트는 고채도의 팬톤 컬러로 생생하게 구현하는 뛰어난 컬러감이 큰 특징이다. 또 친환경과 항균 인증을 모두 획득한 제품으로 방역에도 장점이 있다.한경원 노루페인트 NSDS(노루서울디자인스튜디오) 실장은 “그동안 다양한 아트콜라보를 통해 노루페인트의 뛰어난 컬러감이 보여지면서 전시 업계와 다양한 산업에서 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다”며 “셀프 인테리어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색감이 뛰어난 팬톤페인트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 또한 늘고 있다”고 말했다.
2022.01.11 I 함지현 기자
지니뮤직, 오디오 콘텐츠 '내귀에 미술관' 공개
  • 지니뮤직, 오디오 콘텐츠 '내귀에 미술관' 공개
  • 지니뮤직과 마이아트뮤지엄은 ‘샤갈 특별전’을 더욱 특별하게 즐길 수 있게 콜라보 오디오 콘텐츠 ‘내귀에 미술관’을 제작했다.(사진=지니뮤직)[이데일리 스타in 윤기백 기자] 지니뮤직과 마이아트뮤지엄은 ‘샤갈 특별전’을 더욱 특별하게 즐길 수 있게 컬래버 오디오 콘텐츠 ‘내귀에 미술관’을 전격 공개했다.‘내귀에 미술관’은 20세기 최고의 화가 마르크 샤갈(1887~1985)의 성서 작품 속 이야기를 담은 오디오 콘텐츠다. AI오디오 플랫폼 지니의 ‘스토리G’에서 감상할 수 있다. 지니뮤직이 지난 10월 새롭게 오픈한 오디오 콘텐츠 서비스 ‘스토리G’는 전자책 1위 업체 밀리의 서재 베스트셀러 오디오북과 MBC 완전체 라디오 다시듣기 서비스, 일명 백색소음으로 불리는 ASMR 집중력 사운드 등 다양한 오디오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지니뮤직이 새롭게 제작한 ‘내귀에 미술관’은 전시회 현장에서 QR코드 인식을 통해서도 사용 가능하다. 따라서 전시장 섹션2에 전시된 샤갈의 그림 105점에 얽힌 성서이이야기를 담은 오디오콘텐츠 ‘내귀에 미술관’을 들으며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내귀에 미술관’은‘ ‘스카이캐슬’, ‘펜트하우스’ 성대모사로 유명한 유튜버 성우 쓰복만의 위트있는 나레이션으로 제작됐다.지니뮤직은 ‘샤갈 특별전’에 지니고객만을 위한 초대 이벤트도 마련했다. 이벤트에 참여하려면 오는 31일까지 지니 매거진에 샤갈 전시회에 대한 기대평을 남기면 된다. 지니뮤직은 추첨을 통해 이벤트에 참여한 지니 유료회원 400명에게 1인2매씩 초대권을 제공할 예정이다. 또한 전시회현장에서 지니 유료회원들에게 ‘샤갈 특별전’ 관람티켓을 3000원 할인하는 이벤트도 연다.이상헌 지니뮤직 전략마케팅실장은 “다채로운 색채와 몽환적인 화풍의 샤갈 그림을 깊이있게 이해하고 감상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당사가 오디오콘텐츠 ‘내귀에 미술관’을 제작했다”며 “앞으로도 AI오디오플랫폼 지니는 오디오콘텐츠와 하이브리드 영역융합을 시도해 고객에게 콘텐츠를 새롭게 즐기는 방식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1.12.21 I 윤기백 기자
오늘도 나는 '낙원'을 가꾼다<15>
  • 오늘도 나는 '낙원'을 가꾼다[이윤희의 아트in스페이스]<15>
  • 고대 부유한 로마인의 별장이 있던 스타비아에의 아리아나빌라 한 침대에서 1759년 발견된 프레스코화 ‘플로라 혹은 봄’이다. 빌라를 지은 서기 15∼45년부터 화산재에 묻힌 서기 79년 이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는 작가미상의 작품이다. 오른손으로 꽃을 따 왼손에 든 바구니로 옮겨담는 맨발의 여인이 홀로 등장하는데, 여인의 모델이 사람인지 요정인지는 확실치 않다. 당시 정원을 엿볼 만한 배경 외에도,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노란색 키톤, 머리의 티아라, 팔의 브레이스 등 의복사에서도 중히 여기는 작품이다. 프레스코, 38×32㎝, 이탈리아 나폴리 국립고고학박물관 소장.200여년 전 소설 ‘오만과 편견’이 탄생한 곳은 낡은 책상이었답니다. 종이 몇 장과 잉크병, 깃대펜이 전부인 그곳이 바로 영국작가 제인 오스틴의 작업실이었던 셈입니다. 장서가 그림처럼 꽂힌 책장, 큼직한 책상이 근사한 ‘서재’란 공간은 남성 작가만 차지할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서재뿐인가요. 화가의 공간이던 ‘아뜰리에’도 그랬고,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카페’와 ‘술집’ ‘광장’도, 한 가정집의 ‘부엌’과 ‘식당’ ‘침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속해 있던 공간이지만, 그곳이 모든 이들에게 늘 공평했던 것은 아니었던 겁니다. 오랜 시간 미술관을 일터로 삼아온 이윤희 큐레이터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장면,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때론 객관적 기록으로, 때론 상징을 담아, 때론 비틀린 풍자를 숨겨낸 ‘그림으로 읽는 공간이야기’ ‘그림으로 읽는 사람이야기’입니다. 주말 독자 여러분을 아트인문학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편집자주> [이윤희 큐레이터·미술평론가] 천국, 낙원, 극락…. 무엇이라 부르든 간에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에서 가장 좋은 곳이라면, 그곳은 적어도 초고층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는 장소는 아닐 것 같다. 가장 세련된 도시도, 가장 멋들어진 건물도, 호화찬란한 인테리어가 있는 방도, 잠깐은 좋을 수 있겠으나 근본적이고 영원한 행복의 이미지가 되기는 어려운 것이다. 사람이 숨을 크게 들이쉬며 지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장소는 아무래도 자연이다. 물론 행복한 상상 속 자연은 사람을 집어삼킬 듯한 컴컴한 밀림이거나 얼어 죽을 것 같은 추위로 꼼짝도 못하게 하는 곳이 아니라, 꽃이 피고 물이 맑고 그 안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닐 수 있는, 말하자면 창세기의 에덴동산 같은 곳이 아니겠는가. 밥벌이를 찾아 도시의 좁은 공간에 구겨져 살더라도 우리가 화분에 식물을 키우고 거기서 꽃이 피면 즐거워하는 이유도, 자연의 일부를 내 공간에 들여 숨 쉴 구석을 만들어내고 싶기 때문이다. 도시를 떠나면 간단해지는 문제인가 생각해보면, 물론 도시인의 환상을 자극하는 농촌이라고 해도, 어디서나 삶의 방식은 마찬가지라는 것, 이상은 환영일 뿐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된다. 그저 삶의 터전이 어디든 가능하기만 하다면,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고 그 안에서 안전하게 뛰노는 아이들을 보고 싶은 것이다. ◇고대부터 이어진 정원을 향한 갈망정원에 대한 갈망은 고대인에게도 있었다.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순식간에 화산재에 덮여버린 폼페이는 로마 귀족들의 별장이 있던 고급스러운 도시였지만, 건축물의 실내는 어두컴컴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벽의 두께와 기둥으로 천장을 지탱해야 하는 건축구조라, 창을 뚫기 어려웠던 탓이다. 그래서 그들은 벽에 그림을 그려 창밖으로 보고 싶은 풍경을 대신했다. 고스란히 묻혀 있다가 1700년대가 돼서야 본격적으로 발굴된 폼페이의 가옥들에 그려진 벽화에는 여러 가지 소재가 있었지만, 그중 정원을 표현한 벽화, 일명 ‘플로라’라고 불린 ‘플로라 혹은 봄’(서기 79년 이전)이 그 하나다. 회벽에 프레스코기법으로 그린 ‘플로라’는 맨발로 사뿐히 걸어 다니며 꽃을 꺾어 모으는 여인의 뒷모습을 그린 것이다. 발걸음을 옮기다가 지나친 꽃을 돌아보기 위해 고개를 약간 뒤로 젖힌 여인의 뒷모습은, 살랑거리는 바람 한 자락을 보여주는 옷깃과 더불어 조용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처음 그려졌을 때는 지금보다 더 선명했을 이 그림의 주인공을 두곤 여러 추정을 했지만, 실제 인물인지 아니면 신화 속 꽃의 요정 플로라인지는 정확하게 판단할 근거가 없다. 다만 그림에서 우리는 적어도 고대 로마 사람들이 벽 너머 무엇을 보고 싶어 했는지 정도는 알 수 있다. 그들도 현대의 우리처럼, 정원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사람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고 이상적이며 그리운 풍경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중세인은 벽으로 담을 둘러친 밀폐된 정원을 가꾸며 이를 성모 마리아의 순결함에 대한 상징으로 종종 그림에 담았다. ‘라인강 상류의 대가’라고만 알려진 독일화가가 그린 작은 정원 속에는 책을 읽고 있는 성모마리아와 악기를 가지고 놀고 있는 아기 예수, 날개 달린 천사, 마리아의 시중을 드는 이들이 고루 등장한다. ‘천국의 작은 정원’(1410∼1420)이라 불리는 이 그림에는 얼핏 봐도 쉽게 알아맞힐 수 있는 갖가지 꽃과 열매가 세심하게 그려져 있다. 이보다 풍요로운 정원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화면 왼쪽의 오렌지색 치마를 입은 여성은 나무에 매달린 열매를 따서 한바구니를 모았고, 그 아래 장방형 우물은 바닥의 자갈이 다 보일 정도로 맑다. ‘천국의 작은 정원’(1410∼1420). 라인강 상류의 대가로만 알려졌을 뿐 작가가 정확치 않은 작품에서 눈여겨볼 것은 역시 정원이다. 담장이 둘러쳐지고 그 안에서 키우던 온갖 꽃과 식물은 중세 수도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 천국에 대한 암시로 지상에 구현한 천국을 의미한 낙원의 정원, 마리아의 정원이란 의미를 품었다. 꽃과 열매, 우물 등 정갈하고 풍요로운 전경으로 성모 마리아의 미덕을 상징했다. 나무패널에 템페라, 26.3×33.4㎝, 독일 프랑크푸르트 역사박물관 슈타델미술관 소장.◇마리아의 내면 담은 ‘천국의 작은 정원’ 이 모든 풍요와 깨끗함은 성모 마리아의 미덕을 상징하는 것이라, 이 정원의 주인공은 당연히 책을 읽고 있는 마리아다. 한 손으로는 책을 받치고 다른 손으로는 책장을 넘기며, 책의 내용에 푹 빠져든 듯 마리아는 고개를 숙이고 옅은 미소까지 띠고 있다. 손에 든 책은 성경일 것이다. 실제 마리아의 삶에서 이렇게 평화로운 날은 결코 없었으리라. 영아 살해를 피해 임신한 채 이집트로 가서 남의 집 마구간에서 예수를 낳았고, 범상치 않은 아들의 치다꺼리에 여념이 없었을 것이며, 아들의 비참한 죽음을 가까이서 목격해야 했는데, 꽃피는 정원에서 책장을 넘길 여유가 언제 있었을 것인가. 하지만 중세의 모든 그림은 상징의 총체다. 마리아의 삶이 고난의 여정이었을지라도 그 정신은 누구보다 온화하고 평화로우며 아름답다는 의미를 담아 ‘풍요로운 정원’ 속에서 영원한 복을 누리는 성모의 모습으로 그린 것이다. 다른 한편 귀족들에게 정원은 자신이 가진 권세와 부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저택의 정원을 배경으로 한 단독 초상화나 가족 초상화를 당대 유명화가에게 주문·제작했으며, 인기 있는 작가에게는 줄을 서서라도 아름다운 정원의 풍경화 겸 초상화를 받아내 자랑삼아 걸어두곤 했다. 앙겔리카 카우프만(1741∼1807)이 그린 ‘나폴리공국의 왕 페르디난도 4세와 그의 가족’(1783) 초상이 바로 정원을 배경으로 한 가족 초상화의 예다. 스위스 태생이지만 이탈리아 여행으로 일찍이 고전을 습득했고, 영국으로 건너가 로열아카데미 창립 회원이 됐으며, 종국에는 로마에 정착한 카우프만은, 유럽을 종횡무진하며 만난 귀족과 왕족뿐 아니라 괴테와 헤르더 같은 문인으로부터 ‘유럽에서 가장 교양 있는 여인’으로 칭송받을 정도로 당대를 휩쓸던 인물이었다. 4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글로벌 인재’였을 뿐 아니라, 상업적인 재능도 뛰어나 어느 지역에 정착하든 고객을 줄 서게 해 단기간에 부를 축적하곤 했다. 나폴리공국의 왕 페르디난도 4세는 마침 이탈리아에 머무는 카우프만에게 가족 초상화를 의뢰했고, 정원 풍경을 배경으로 한 왕가의 가족 초상을 완성한 것이다. 앙겔리카 카우프만의 ‘나폴리공국의 페르디난도 4세와 그의 가족’(1783). 여성화가를 인정해주지 않던 18세기에 부와 명예를 다 거머쥘 만큼 재능과 수완이 좋았던 카우프만은 12세부터 화가로 이름을 알렸다. 프레스코화가던 아버지와 다닌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화풍에 다졌는데, 영국에서 초상화가로 큰 성공을 거뒀으나 역사화로 인정받으려 한 꿈이 좌절되자 다시 이탈리아로 떠났고, 그때 페르디난도 4세에게 가족 초상화를 의뢰받았다. 인물들과 어우러진 장엄한 자연 그대로의 꾸미지 않은 정원이 돋보인다. 캔버스에 유채, 310×426㎝, 이탈리아 나폴리 카포디몬테박물관 소장.◇계몽주의 영향…자연스러움 중시한 18세기 정원 그림의 배경은 얼핏 보면 사람의 손길이 별로 닿지 않은 자연처럼 보이지만, 손대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한 인공 정원이다. 당시는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이 이탈리아에도 영향을 미쳐, 정원을 인공적으로 꾸미지 않는 게 유행이었던 것이다. 대신 커다란 석조 좌대와 그 위에 함께 조각한 항아리가 이 정원의 품격을 인증하고 있다. 이 가족 초상화는 동일한 그림으로 몇 개의 버전을 더 제작했고, 어떤 작품에는 왕과 왕비, 여섯 명의 왕자와 공주 외에, 이즈음 사망한 요셉 왕자까지 포함해 그렸다. 정원을 배경으로 초상화를 그리는 것은 당시 유행이기도 했지만, 프랑스혁명 소식에 민감한 나폴리 시민들의 눈을 의식해 그린 이 초상화는 위엄있는 왕가보다는 자연스럽고 사랑스러운 가족으로 그려졌다. 울타리조차 보이지 않는 꾸밈없는 정원은 이 초상화의 의도를 한층 북돋우는 역할을 했다. 이처럼 자연스럽든 질서정연하든, 담을 높게 치든 담이 없든, 사람이 만든 정원은 자연에서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곁에 두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한 것이다. 물론 정원에 담아내고자 하는 이상은, 실제로는 더 먼 곳으로 나아가야 맞닥뜨릴 수 있는 자연의 어떤 순간일 것이다. 그 순간을 재현하기 위해 사람은 정원을 가꾼다. 자랑할 정원이든 비밀의 정원이든, 광대하든 손바닥만 하든, 예나 지금이나 정원을 만들고 가꾸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서민의 삶에서는 만만히 누릴 수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자신만의 정원이 있다면 그것을 현세의 작은 낙원이라고 부를 만하지 않을까. △이윤희 큐레이터는… 1970년생. 대학을 다니던 20대 어느 겨울, 해외여행 자유화 덕분에 유럽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 인생에 미술을 들인 결정적 계기가 됐다. 누구나 들렀던 어느 미술관에서 뜻밖에 렘브란트의 ‘어머니 초상’이란 작품이 발을 붙들었다. 뭔가 꿈틀거리는 게 올라왔다. 세상을 감동시킨 그 수많은 작품을 설명하는 언어를 가지고 싶다는 열망도 함께였다. 이화여대에서 독문학과를 졸업한 뒤론 동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미술의 역사, 미술의 말을 공부했다. 이후 ‘공간’ 지 미술기자를 시작으로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학예실장, 청주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 등을 거치며 오래전 그 렘브란트의 감동을 현장으로 옮겼다. 번역서로 ‘그림자의 짧은 역사’(2006), ‘포토몽타주’(2003), ‘바디스케이프’(1999)가 있으며 저서로 ‘여성의 눈으로 보는 미술 키워드’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2021.12.18 I 오현주 기자
공부는 누가 하나<14>
  • 공부는 누가 하나[이윤희의 아트in스페이스]<14>
  • 앙드레 앙리 다르겔라스가 1860년 그린 ‘세계여행’. 한바탕 난리법석인 교실풍경을 그려냈다. 파스텔톤의 부드러운 붓선으로 도시 안팎의 정겨운 전경을 그렸던 다르겔라스가 유독 몰입했던 소재는 ‘아이들’이었다. 동네 골목길 또 언저리 숲에서 놀이를 하거나 집안에서 사고를 연신 쳐대던 장난기는 학교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또래의 왕성한 에너지 집합소가 된 학교를 그린 작품에선 자유스러운 교실 분위기까지 입혀 누구나 떠올릴 유년시절의 서정성을 짙게 풀어놨다. 캔버스에 유채, 46×37.5㎝, 개인 소장.200여년 전 소설 ‘오만과 편견’이 탄생한 곳은 낡은 책상이었답니다. 종이 몇 장과 잉크병, 깃대펜이 전부인 그곳이 바로 영국작가 제인 오스틴의 작업실이었던 셈입니다. 장서가 그림처럼 꽂힌 책장, 큼직한 책상이 근사한 ‘서재’란 공간은 남성 작가만 차지할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서재뿐인가요. 화가의 공간이던 ‘아뜰리에’도 그랬고,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카페’와 ‘술집’ ‘광장’도, 한 가정집의 ‘부엌’과 ‘식당’ ‘침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속해 있던 공간이지만, 그곳이 모든 이들에게 늘 공평했던 것은 아니었던 겁니다. 오랜 시간 미술관을 일터로 삼아온 이윤희 큐레이터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장면,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때론 객관적 기록으로, 때론 상징을 담아, 때론 비틀린 풍자를 숨겨낸 ‘그림으로 읽는 공간이야기’ ‘그림으로 읽는 사람이야기’입니다. 주말 독자 여러분을 아트인문학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편집자주> [이윤희 큐레이터·미술평론가] 등·하교하는 학생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큰소리로 서로를 불러대는 모습이 요즘처럼 그리울 때가 있을까. 영원히 변치 않을 풍경인 줄 알았는데, 전쟁도 천재지변도 아닌 지나가는 역병에 그 풍경은 너무 쉽게 바뀌었다. 하지만 과거 역사를 되돌아보건대 인간은 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멈춰 본 적이 없다. 오래전부터 지혜가 있는 사람들은 더 어린 이들을 모아 가르쳐 왔고, 1000년 전부터 공적인 교육시스템을 만들어 왔으며, 지금은 학교를 다니는 일이 당연한 삶의 과정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이 흐르기 전에 반드시 학교는 예전과 같은 모습을 되찾을 것이라 믿는다. 학교의 교실 풍경은 이전 시대에도 오늘날과 매우 비슷했다는 것을 옛 그림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14세기 전반기, 그러니까 중세 후반기에 양피지에 그린 이탈리아 화가 라우렌티우스 데 볼토리나의 ‘헨리쿠스 데 알레마니아의 윤리학 수업’(1300s)에는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듯한 학생들이 보인다. 어려운 화가의 이름이나 교수의 이름에 신경 쓰지 않은 채, 또 수염을 기르거나 중후한 모자를 쓴 나이 지긋한 학생들이란 사실을 뒤로 하고 그림을 바라보면, 피식 웃음이 날 정도로 학창시절의 장면이 떠오르게 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셋째 줄 맨 앞에 보이는 학생이다. 도저히 졸음을 참을 수 없는지 팔을 베고 그만 잠들어버렸다. 너그럽게 봐주자면 전날 밤을 새우면서 공부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눈이 초롱초롱한 학생들은 앞줄에 앉는 법, 펼친 책을 똑바로 쥐고 교수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배움의 기쁨에 뭔가 질문을 쏟아낼 것 같은 학생들은 앞줄과 둘째 줄에 모여 있다. 하지만 둘째 줄 끝으로 보이는 학생부터 턱을 괸 자세 등 상태가 좀 달라지기 시작해, 세 번째 줄에서의 산만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한 학생은 아예 잠들었고, 가운데 두 학생은 교수가 뭐라 하거나 말거나 천연덕스럽게 얼굴을 맞대고 대화 중이다. 마지막 줄에도 아예 일어나 수업을 빼먹으려는 학생과 멍하니 딴 곳을 쳐다보는 학생, 또 ‘나는 누구며 여기는 어디인가’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든 것 같은 얼굴도 보인다. 헨리쿠스 데 알레마니아 교수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어 수업이 어떤 내용인지는 구체적으로 알기 어려우나, 중세의 대학이란 특수하게 허락된 공간에서도 공부하는 학생은 하고, 노는 학생은 놀고, 조는 학생은 졸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재미있는 그림이 아닐 수 없다. 수염이 덥수룩한 어른들의 교실이라도 말이다. 라우렌티우스 데 볼토리나의 ‘헨리쿠스 데 알레마니아의 윤리학 수업’(1300s). 중세 말 강의실의 풍경. 교수나 학생의 외양만 보고 기대했던 엄숙한 수업 분위기는 ‘반전의 디테일’에 여지없이 깨지고 만다. 졸고 떠들고 무념무상에 빠진 학생들을 캐치한 화가의 재치가 보인다. 양피지에 채색, 18×22㎝, 독일 베를린 쿠퍼슈티히카비네트미술관 소장.◇18세기 서민에게도 교육 길 열렸지만…근대 이전 시기에 귀족은 훌륭한 가정교사를 들여 자녀를 교육했지만, 먹고사는 일에 급급했던 일반 서민에게 교육은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 지역에 따라서는 신분제가 완화됐고,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서민층 어린 학생들이 교육 받는 일도 가능해졌다. 약간 여유가 있는 부모들이 더 좋은 일자리를 가지면서 계층 상승의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자녀를 학교에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프랑스 화가 앙드레 앙리 다르겔라스(1828∼1906)의 ‘세계여행’(1860)은 19세기 중반 프랑스 시골학교 교실의 생생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교실 천장에 학습용으로 매달아 놓은 지구본에 기어코 한 아이가 올라탔고, 다른 한 아이는 지구본을 밀고, 또 다른 아이는 잡아당기는 중이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두 손으로 줄을 단단히 잡고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지구본에 두 다리를 단단히 붙인 이 아이는 보나마나 이 학급에서 최고의 말성꾸러기일 것이다. 그림에는 일곱 명의 아이가 등장하는데, 가장 멀리 보이는 아이는 이 신나는 일탈의 놀이보다 야단맞을 일이 더 걱정인지 교실 문을 열고 황급히 뛰어들어오는 선생님을 쳐다보고 있다. 거의 일어서듯이 지구본을 탄 아이를 바라보는 붉은 옷의 아이는 이 광경을 꿈꾸는 듯한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다. 혼날 것을 각오하고 지구본에 올라탄 친구가 부러워서일 수도 있고, 저 동그란 구에 붙어 있는 이국의 세계에 언젠가 가보고 싶다는 용기가 샘솟는 중일 수도 있을 것이다. 교단에 앉아 얌전하게 책을 펼친 아이도 이 시끄러운 놀이에서는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이 사태를 진정시키러 들어오는 선생님이 아니라면 아이들은 줄을 서서 이 ‘세계여행’을 한 번씩 즐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앙드레 앙리 다르겔라스의 ‘세계여행’(1860) 부분. 교실 천장에 학습용으로 매달아 놓은 지구본에 올라탄 한 아이와 밀고 있는 아이의 표정이 제법 진지하다. 이 장난에 동참하지 못한 붉은 옷의 아이는 이 광경을 꿈꾸는 듯한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다.이 교실 풍경에서 여학생은 보이지 않는다. 19세기 중반인 이 시기에 여자아이는 남자아이에 비해 교육의 수혜를 덜 받았다. 학교를 다니더라도 여자아이에게는 세계여행을 꿈꾸게 하기보다 기존의 좁은 사회적 역할에 충실하게 성장하는 게 목표였다. 물론 글자와 숫자를 익히고 책도 읽겠지만, 양재 같은 실용적인 과목을 배워 장차 현숙한 여인으로 성장해 좋은 어머니가 되는 것을 장려했던 것이다. 물론 이 중에서도 특출난 재능으로 모든 방해물을 스스로 제치고 어떻게든 공부할 길을 찾아 후에 노벨상을 받게 된 마리 퀴리 같은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일반적으로 교육에 깔린 성별의 차등 외에 각 분야의 전문영역에서는 뭐가 좀 달랐을까. 미술 분야만을 보자면 별로 그렇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오늘날 미술대학의 전신인 유럽의 미술아카데미들, 특히 왕립으로 운영하던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여성의 참여가 아예 허락되지 않거나 소수 인원으로 한정해 기회가 주어졌다. 영국의 로열아카데미는 처음 설립한 1768년에 34명의 회원으로 시작해 40명까지 허락됐는데, 여성회원으로 스물네 살이던 메리 모저와 스물일곱 살이던 앙겔리카 카우프만이 창립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초상화로 자리한 모저·카우프만의 비운이들은 함께 토론하고 서로의 작품을 품평하고 전시하고 수업을 만들어 참여하기도 했다. 이들이 함께한 수업의 모습은 독일 화가 요한 초파니(1733?∼1810)의 ‘로열아카데미 회원들’(1771∼1772)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체를 탐구하기 위한 누드교실이 그림의 배경이다. 오른쪽으로 남성 두 명이 옷을 벗고 포즈를 취하거나 잠시 쉬는 모습이 보이고, 회원들은 이들을 관찰하거나 토론을 하고 있다. 그림은 당시 흔했던 집단 초상화의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회원들의 얼굴이 잘 보이도록 그려져 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도 모델을 포함해 전부 남성으로만 그려져 있을 뿐이다. 어이없게도 여성 화가의 얼굴은 오른편 벽에 걸린 두 점의 초상화 속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요한 초파니의 ‘로열아카데미 회원들’(1771∼1772). 남성들끼리 ‘그들만의 수업’을 꾸려가던 18세기 영국 한 미술아카데미의 교실을 들여다봤다. 수업에 참석하는 여부를 자신의 의지대로 결정하지 못했던 당시 여성들은 벽에 걸린 초상화에 걸린 채 수업에 참석 중이다. 캔버스에 유채, 101.1×147.5㎝, 영국 런던 왕가 컬렉션 소장.두 명의 여성 회원 중 모저는 정물화를 그리는 화가였고, 카우프만은 영국 귀족의 가족초상화를 그려 이미 명성이 높은 화가였다. 하지만 카우프만은 초상화에 만족하지 않고 역사화에 지속적으로 도전해 역사화가로 이름을 남기고 싶었던 야심찬 화가였다. 따라서 역사화에 필수적인 인체 탐구를 반드시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남성의 누드를 관찰한다거나 위대한 장르인 역사화에 도전하는 것은 여성의 미덕에 해를 끼치는 일이란 판단에 의해, 두 명의 여성 회원은 이 수업에서 배제당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초기 로열아카데미 회원의 초상화를 전부 그려야 했던 초파니는 고민 끝에 이들의 얼굴을 벽에 걸린 초상화로 넣어준 것이다. 미술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여성과 남성이 균등한 교육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여자아이도 교실에서 지구본을 망가뜨리고 대학 강의에서 전날의 숙취로 정신을 못 차리는 세상이 됐다. 눈을 반짝이거나 졸거나 떠드는 교실의 오래된 풍경 속에 여학생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 있는 것, 이는 과거의 그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었던 것이다. △이윤희 큐레이터는… 1970년생. 대학을 다니던 20대 어느 겨울, 해외여행 자유화 덕분에 유럽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 인생에 미술을 들인 결정적 계기가 됐다. 누구나 들렀던 어느 미술관에서 뜻밖에 렘브란트의 ‘어머니 초상’이란 작품이 발을 붙들었다. 뭔가 꿈틀거리는 게 올라왔다. 세상을 감동시킨 그 수많은 작품을 설명하는 언어를 가지고 싶다는 열망도 함께였다. 이화여대에서 독문학과를 졸업한 뒤론 동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미술의 역사, 미술의 말을 공부했다. 이후 ‘공간’ 지 미술기자를 시작으로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학예실장, 청주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 등을 거치며 오래전 그 렘브란트의 감동을 현장으로 옮겼다. 번역서로 ‘그림자의 짧은 역사’(2006), ‘포토몽타주’(2003), ‘바디스케이프’(1999)가 있으며 저서로 ‘여성의 눈으로 보는 미술 키워드’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2021.12.11 I 오현주 기자
작가 문준용 "비싼 장비대여 탓에 짧은 전시 아쉬워…큰 도전 됐다"
  • 작가 문준용 "비싼 장비대여 탓에 짧은 전시 아쉬워…큰 도전 됐다"
  • 작가 문준용(왼쪽)이 경기 파주 스튜디어끼에서 연 개인전 ‘어그먼티드 섀도: 별을 쫓는 그림자들’에 직접 나서 미디어아트 작품에 대한 시연과 설명을 동시에 하고 있다. 문 작가가 들어올린 컵처럼 생긴 손전등을 신호로, 그간 끊임없이 보태고 다듬어온 기술을 입은 그림자들은 공간 속 부유를 시작한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파주=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전혀 예상치 못한 풍경이었다. 한산하고 외로운 ‘그림자’들만 스치고 있을 거란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얘기다. 전시장은 북적이고 있었다. 들어서는 이들은 기대감에, 나서는 이들은 만족감에 웅성거리는 분위기 역시 우울한 추측을 완전히 벗겨 버렸다. 검은 암막 커튼을 젖히고 들어서자 30~40명쯤 되는 관람객 틈으로 삐죽해 보이는 ‘키’가 보였다. 그 사이를 바삐 오가며 작품설명에 여념이 없는 한 사람, 작가 문준용(39)이었다. 스산한 금요일 늦은 오후, 경기 파주 문발동 스튜디오끼를 찾았다. 파주출판단지 끝부분에 자리한 이 공간에서 문 작가는 개인전 ‘어그먼티드 섀도’(Augmented Shadow·증강그림자)를 열었다. 이른바 ‘그림자 증강현실’ 연작. 작가가 끊임없이 보태고 다듬으며 매번 진화하는 기술에 태운 그림자들이 주인공으로 나서는 미디어아트다. 이번에는 한 발 더 내밀었다. 그들의 몸에 그들의 스토리를 입혀낸 거다. 그저 나타났다 사라지는 게 전부던 그림자들이 이제야 제 사연을 풀어냈다고 할까. 덕분에 그럴듯한 타이틀도 달렸다. ‘별을 쫓는 그림자들’(2021)이라고. 이는 전시의 부제면서 그대로 작품명이 됐다. 문준용의 미디어아트 ‘어그먼티드 섀도: 별을 쫓는 그림자들’ 중 한 장면. 한 관람객으로부터 작대기 끝에 빛을 받은 한 그림자가 벽에 문을 내고 있다. 그 사이에도 노란 물고기떼는 끝없이 움직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그 ‘별을 쫓는 그림자들’을 이끈 문 작가를 다시 만났다. 사실 전시장의 변화만큼이나 당황스러운 변화는 하나 더 있었다. ‘부드러워졌다’고 해야 하나 ‘편안해 보인다’고 해야 하나. ‘싸움닭 문준용’이 사라진 거다. 관람객을 대하는 태도며 목소리에선 여유까지 피어나오는데. 게다가 눈빛까지 반짝인다. 내 일에 푹 빠진 사람만이 쏠 수 있는 그 레이저 눈빛. 짐짓 외면하며 “자꾸 봐 정들겠다”로 말문을 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문 작가와의 인터뷰는 이번이 세 번째다. 그것도 아버지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중에만. 전시하는 작가를 찾아가는 일이야 이상할 게 하나 없는데,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번번이 참 험난했더랬다. ◇지난해 논란된 ‘한국문화예술위 문예진흥기금’으로 제작사람과 인터랙션(interaction·상호작용)하는 15분짜리 미디어아트 작품. 큐 사인은 역시 사람이 줘야 했다. 누군가 컵처럼 생긴 손전등을 들면서. 그 안에 든 빛덩이를, 눈을 깜박이며 전시장 벽면에 기댄 6개의 그림자 중 하나에게 던져주면 그림자들의 ‘무빙’이 시작되는데. 심장으로 받은 빛을 작대기 끝에 올려 바닥에서 물고기를 낚는가 싶더니, 이내 거대한 물속으로 장면이 바뀐다. 바닥과 벽을 타고 노란 물고기떼와 그림자들이 부유하듯 춤을 추는 거다. 이후 다시 어두워진 배경에 작대기 빛은 마치 노련한 장비인 양 창을 내고 문을 내더니 밤하늘로 향한다. 별을 따서 세상을 비추는 거다. 문준용의 미디어아트 ‘어그먼티드 섀도: 별을 쫓는 그림자들’에 참여한 관람객들. 그중 한 관람객이 컵처럼 생긴 손전등을 들고 그림자에게 빛을 전달하는 중이다. 누군가 나서 교감을 주도해야 하는 인터랙션은 문 작가 작업에서 핵심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눈을 속이는 착시미술이고 공간을 차단한 몰입예술이다. 컵을 든 한 사람이 이야기를 진행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 장면을 바라보며 감상할 수 있다. 그림자에 빛을 던져주며 끊임없이 움직여야 그림이 바뀐다.” 누군가 나서 교감을 주도해야 하는 인터랙션은 문 작가 작업에서 핵심이다. 그 동반자인 ‘그림자’와는 10년지기가 됐다. 이번 작업에 유독 신경을 쓴 건 평면을 넘어 ‘입체’를 넘보는 새로운 그림자의 출현. 왜 굳이 입체여야 했을까. “평면이 입체가 됐다는 건 살아 움직인다는 것이니까.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 되고 기적이 만들어지는 장면을 직접 펼쳐 보여야 했다.” 간단하게 말하면 진행해야 할 과정이었고, 복잡하게 말하면 이겨내야 할 오기였다. 지난해 12월 난리북새통을 치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진흥기금’을 기억한다면. 맞다. 이번 작품은 그 6900만원으로 제작한 거다. ‘코로나19 지원금까지 낚아챈 대통령 아들’이란 오해·오명에 그는 심하게 시달렸다. 그러니 ‘나도 작가’란 걸 내보여야 했을 테고, 그 고충을 굳이 말로 해야 알 건가. 작가 문준용이 경기 파주 스튜디어끼에서 연 개인전 ‘어그먼티드 섀도: 별을 쫓는 그림자들’에 직접 나서 시연을 하고 있다. 둥글고 귀엽고 유연한 그림자들이 꿈을 찾아간다는 따뜻함까지 품은 미디어아트 작품은 관람객과의 공감대를 넓혔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제작비는 6900만원을 한참 넘겼다. 장비 대여에만 4000만원 남짓 들었다. 컴퓨터그래픽팀, 모델링, 애니메이션 제작 등에 투입된 전문가가 10여명은 된다. 오히려 장소대관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천장이 높아야 하는 조건을 맞출 곳을 찾는 게 쉽지 않았을 뿐.” ◇“생명 되고 기적 만들어지는 것 펼쳐 보여야 했다” 5m쯤 되는 층고에, 7∼10m쯤 되는 사각공간의 3면을 전시장으로 쓴 ‘별을 쫓는 그림자들’은 실제 곳곳에 올리고 붙인 5대의 프로젝터를 동시에 돌릴 만큼 정교하고 ‘비싼’ 작업이다. 눈을 미혹하는 화려한 영상 그 이상의 가량은 역시 ‘기술’에 있었다. 착시를 만드는 ‘아나모픽 기법’이 핵심이다. 일찍이 특허(‘증강현실에서 움직이는 광원의 위치를 반영하여 영상을 처리하는 방법 및 장치’)까지 받아둔 이 기술에 한해선 문 작가가 독보적이다. 여기에 결정적인 한방이 있었으니 ‘스토리’다. 문준용의 미디어아트 ‘어그먼티드 섀도: 별을 쫓는 그림자들’ 중 한 장면. 한 관람객으로부터 작대기 끝에 빛을 받은 한 그림자가 벽에 문을 내고 있다. 그 사이에도 노란 물고기떼는 끝없이 움직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이야기라는 게 따로 놀아선 안 된다. 하나의 세계관으로 엮여야 한다. 이야기의 일부가 돼야 진짜 기술이 되는 거다.” 그래서 문 작가가 “큰 도전”이었다고 말하는 지점은 따로 생겼다. 바로 그 이야기를 짜는 과정인데. “15분 분량에 이야기를 입히는 일은 이번이 첫 시도인데 내가 스토리 작가는 아니라서 괜찮은 것도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내로라할 미디어아티스트를 ‘헷갈리게’ 만드는 지점이 엉뚱하게 ‘이야기 짜기’였단 소리다. 그게 그리 중요했을까. “미디어아트를 미술관에서 빠져나오게 하려면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확장을 도모할 수 있다는 의미다. 게임도 만들고 동화책도 만들고. 이번 기회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다.” 그 서사 작업 덕분에 대중적인 공감대도 넓어졌다. 눈만 희번덕하던 날카로운 예전 그림자들과는 달리 둥글고 귀엽고 유연한 그림자들이 꿈을 찾아간다는 따뜻함까지 품지 않았나. 결국 이 모든 요소들 덕에 ‘별을 쫓는 그림자들’은 문 작가의 역작이 됐다. 달리 역작이 아니다. 작가를 편안하게 놔주고 관람객을 빠져들게 한, 그토록 원하던 소통을 이뤘다는 소리다. 문준용의 미디어아트 ‘어그먼티드 섀도: 별을 쫓는 그림자들’에 참여한 관람객들. 그림자들이 빛을 얻어 만든 벽 안쪽으로 입체감이 열리는 중이다. 작품은 컵처럼 생긴 손전등을 든 한 사람이 이야기를 진행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 장면을 바라보며 감상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실제 관람객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아이를 동반한 40대 중반의 한 여성은 “사실 우리나 아이들이 접하는 영상예술이라고 해봐야 유튜브에서 보는 게 전부일 텐데, 지금 세상에 딱 맞는 고퀄러티 전시라고 할 만하다”며 “특히 스토리가 마음을 적셨다”고 감동을 전했다. 전시를 지켜본 미술계 관계자의 평도 호의적이다. “미디어아트는 회화작가도 접목을 할 만큼 현대미술 최전방에 있다. 하지만 맹점은 차갑고 또 난해하다는 거다. 그런 점에서 관람자가 작품에 들어가 관계를 맺어야 완성되는 문 작가의 작업은 대단한 친밀감을 준다.” 전문가적 조언도 기꺼이 보탰다. “스토리가 좀더 단단해지면 작품에 파워가 생기겠다 싶다. 한국적인 것이든 휴머니티든 서사의 뿌리를 잡는 일이 필요하다.” 문준용의 미디어아트 ‘어그먼티드 섀도: 별을 쫓는 그림자들’에 참여한 관람객들. 부모와 함께 전시를 찾은 한 아이가 ‘그림자놀이’에 빠져 있다. 유독 가족단위 관람객이 많았던 전시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인터뷰는 그리 원활하지 못했다. 작가에게 감상을 털어놓는, 사진 한 장 찍자는 요청들이 쇄도해서다. 지난해 개인전, 쫓기듯 전시장을 오가던 때를 떠올리면 놀라운 변화가 아닌가. “금산갤러리 전시는 내 작업의 미니어처 개념이었다. 당시 상황이 소란스러워지면서 최상을 내보이지 못한 점에서도 당당할 수 없었고.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최신 최고를 보여주는 것이란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내친김에 물었다. 내년 대선 이후에는 평범한 작가로 돌아갈 수 있겠나. 처음으로 난감한 표정이 나왔다. “모르겠다, 정말로. 한편 궁금하기도 하다.” 작가 문준용이 경기 파주 스튜디어끼에서 연 개인전 ‘어그먼티드 섀도: 별을 쫓는 그림자들’에 직접 나서 시연을 하고 있다. 5m쯤 되는 층고, 7∼10m쯤 되는 사각공간의 3면을 전시장으로 쓴 규모 위에 정교한 기술과 띠뜻한 이야기까지 붙여낸 이번 작품으로 문 작가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전시는 29일에 막을 내렸다. 열흘 남짓한 짧은 전시가 아쉽다고 하자 “장비 대여료가 비싼 탓에 오래 할 수가 없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막판으로 갈수록 몰리던 관람객은 금요일 300명, 주말에는 1000여명에 달했다고 전시장 관계자가 귀띔했다. 세 번째 만남. 처음 만났을 때와 달라진 점이라면 이젠 굳이 그 이름 앞에 ‘대통령의 아들’이란 수식을 달지 않아도 된다는 걸까. 피천득은 수필 ‘인연’에서 “아사코와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거다”라고 썼더랬다. 그 묵직한 ‘세 번째’의 부담은 문 작가가 직접 덜어내줬다. 만나지 않았으면 섭섭할 뻔했다.
2021.11.30 I 오현주 기자
晩秋, 궁궐에서 단풍놀이 즐겨볼까
  • 晩秋, 궁궐에서 단풍놀이 즐겨볼까
  •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가을이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그렇다고 아쉬워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창덕궁·창경궁·경복궁·덕수궁 4대궁의 단풍이 이달 20일까지 절정을 이루기 때문이다. 여기에 고즈넉한 궁궐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이번주 서울 도심 속 4대궁을 찾아 늦가을의 마지막 정취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지난 14일 창덕궁 규장각과 주합루 권역 특별관람 참가자들이 주합루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서울의 궁궐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자랑하는 곳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등록된 창덕궁이다. 창덕궁에는 숨겨진 정원이라 해서 ‘비원’이라고도 불리는 왕실의 정원이 있다. 주변 산자락과 지형 등 자연과 궁궐의 조화로운 배치가 뛰어난 후원에 들어서면 곱게 물든 단풍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창덕궁 전체 면적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로 큰 후원을 걷다 보면 가을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다. 오는 17일까지는 후원 내에 위치한 창덕궁 규장각·주합루 권역도 특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도 있다. 규장각은 왕립도서관이자 학문을 연마하는 연구소로, 정조 때 문예부흥의 산실이었던 곳이었다. 그간 일반인들의 접근을 제한했는데, 협소한 공간에 오래된 건물을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언덕 위에 위치한 규장각과 주합루 권역에 올라서면 후원에서도 아름답다고 꼽히는 부용지 일원을 내려다볼 수 있다. 네모난 연못에 담긴 부용정(보물 1763호)과 앞의 영화당, 그 주변을 수놓은 형형색색의 단풍의 모습은 한폭의 그림 같은 느낌도 든다. 또 ‘책의 향기가 있는 집’이라는 뜻인 서향각은 독서의 계절을 맞아 내부까지 들어가 볼 수도 있다.창경궁 역시 단풍 명소로 유명한 곳이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일제가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면서 전각들을 훼손했다. 이후 복원에 나서면서 궁 주변으로 소나무·느티나무·단풍나무 등 나무를 많이 심었다. 창경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은 충당지와 관덕정. 연못을 둘러싼 단풍들이 물에 비친 모습은 늦가을의 정취를 가득 품고 있다. 최근 3년만에 복원 공사를 마친 경복궁 향원정·취향교와 함께 어우러진 단풍 모습.(사진=연합뉴스)조선의 본궁인 경복궁에서는 좌우대칭으로 반듯하게 잘 관리된 단풍을 볼 수 있다. 친근함이 느껴졌던 창덕궁과 창경궁과는 달리 근엄함과 웅장함을 느낄 수 있다. 또 경복궁 내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건천궁 앞에는 최근 3년만에 복원한 향원정과 취향교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공사가 끝나고 가림막이 철거된 향원지 주변 나무는 고운 단풍으로 물들고, 멀리 보이는 백악산과 인왕산에도 울긋불긋한 단풍이 가득하다. 덕수궁에서는 보다 색다른 가을 모습을 맛볼 수 있다. 덕수궁은 1897년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서 나온 뒤 거처로 이용한 궁궐이다. 위계 질서가 엄격한 다른 궁궐과 달리 조선 후기에 들어서야 궁궐 역할을 했던 덕수궁은 야생화도 많이 심어져 있다. 구절초, 갯국화 등의 꽃과 함께 어우러진 단풍은 근현대기 격변의 한반도를 상상하게 한다. 여기에 덕수궁 곳곳에는 현대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덕수궁 프로젝트 2021:상상의 정원’이 오는 28일(매주 월요일 휴무)까지 열린다. ‘정원’을 매개로 덕수궁의 역사와 동시대 정원의 의미 를 생각하는 전시다. 즉조당과 준명당 앞 정원에는 십장생 중 하나인 사슴이, 고종이 눈을 감았던 함녕전 행각에는 대한제국 황실 전속 식물학자의 연구 공간을 상상력으로 꾸민 공간이 있어 100여년 전으로 시간여행에 빠져드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덕수궁에서 오는 28일까지 열리는 덕수궁 프로젝트 2021:상상의 정원’ 에 설치된 정원중요 무형문화재 ‘채화’ 장인인 황수로의 ‘홍도화’(사진=국립현대미술관)
2021.11.16 I 김은비 기자
"예술이란 생활의 흔적일 뿐"...침묵의 화가, 화폭에 담은 일기
  • "예술이란 생활의 흔적일 뿐"...침묵의 화가, 화폭에 담은 일기
  •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사실 그림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떤 자세로 살아가느냐가 문제지 예술이란 생활의 흔적일 뿐이라고 생각된다.”단색화 거장 윤형근 화백(1928~2007)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같은 메모를 남겼다. 생전 선비 같은 올곧은 자세로 유명했던 윤 화백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남색과 흙의 빛깔인 다색의 혼합 물감만으로 작업을 한 작품 역시 군더더기 없는 단순함으로 그의 성품을 드러낸다.윤 화백은 말이 많이 없어 ‘침묵의 화가’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사후까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세계적인 단색화 인기에 작품을 없어서 못 구할 정도다. 여기에 방탄소년단 리더 RM이 좋아하는 작가로 알려지면서 젊은층 팬까지 거느리게 됐다. RM은 지난 2019년 장기휴가 기간에 이탈리아 베네치아 포르투니 미술관에서 열린 윤형근 회고전에 다녀왔고, 같은 해 호암미술관 윤형근 작품 앞에서 찍은 사진을 올렸다. 지난해 뉴욕 데이비드 즈위너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에도 다녀왔다. (사진=PKM갤러리)윤 화백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최근 서울 종로구 PKM갤러리가 연 특별전 ‘윤형근의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는 14일까지 열리는 전시는 갤러리가 최근 윤형근 화백이 생전에 화첩, 메모첩, 서신 등에 남긴 기록을 엮은 단행본 ‘윤형근의 기록’ 출간을 기념해 특별전을 개최했다. 이번 특별전에 걸린 작품은 드로잉 40여점과 원화 8점으로 총 48점이다. 이 중 3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미공개 작품이다. 갤러리 관계자는 “윤 화백의 평소 생각과 생활 속 감정들이 솔직담백하게 묻어난 책이 더욱 울림있게 대중에 다가서기를 희망하며 기획했다”고 설명했다.전시는 지난달 개막 후 일평균 관람객이 300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20~30대 젊은 관람객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갤러리 관계자는 “코로나19 와중에도 관람객들이 많이 찾아와서 놀랐다”며 “RM 덕에 작가가 젊은층에 알려지기도 했고, 워낙 단색화의 거장인 만큼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싶은 컬렉터들이 호기심에 많이 찾아오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이번 전시와 단행본에서는 윤 화백이 하루에 있었던 일, 생각, 느낌 등 그의 기록을 그대로 옮겨놔 인간 윤형근의 면모를 읽을 수 있다. 작가가 ‘천지문(天地門)’이라 칭한 작업 개념부터 창작 과정에서의 고뇌, 예술에 대한 생각 등에서 삶과 예술을 일치시키고자 한 인생철학이 드러난다. 장인이었던 한국 추상화의 선구자 김환기와 이우환, 김창열, 박서보 등 한국 화단의 유명 인사들과 교류하던 삶을 엿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여러 차례 죽음 고비를 넘겼던 그의 삶도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으로 참혹한 시대에 청년기를 보낸 윤형근은 전쟁 중 서울에서 부역했다는 명목으로 1956년 6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했고, 숙명여고 미술교사였던 1973년에는 중앙정보부장이 관련된 부정입학 비리를 따졌다가 반공법 위반 혐의로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초기의 화사한 색채의 드로잉부터 그의 대표적인 작품인 굵고 검은 기둥을 그리기까지 과정도 볼 수 있다. 김환기의 영향을 받아 초기에 다양한 색채를 썼던 윤 화백의 그림은 점차 어두워진다. “언제부터인가 빛깔이 싫어져서 빛깔을 지워 버렸다. 그림이 반드시 색이 많다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지 않나” 등의 기록을 통해 그의 심경을 짐작해 볼 수 있다.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작품으로는 구체적으로 알기 힘들었던 작가의 삶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2021.11.09 I 김은비 기자
같은 카페, 같은 여인…붓은 다르다 말하네<9>
  • 같은 카페, 같은 여인…붓은 다르다 말하네[이윤희의 아트in스페이스]<9>
  • 빈센트 반 고흐가 1888년 그린 ‘밤의 카페’. 파리에서 아를로 이주한 반 고흐가 그 유명한 노란집에 들어가기 전 잠시 머물던 ‘카페 드 라 가르’의 풍경을 그렸다. 사흘밤을 자지도 않고 그렸다는 밤 카페 풍경, 특히 빨강·노랑·초록의 강한 대비에 “밝은 아를의 환경에도 불구하고 과로 때문에 점점 과민해가는 반 고흐의 육체적·정신적 상태를 표현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이즈음 반 고흐는 “간혹 낮보다는 밤이 더 생동감이 있어 색채가 넘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고도, “카페는 스스로를 망쳐버리거나 미치거나 범죄를 저지르기에 걸맞은 장소”라고 말하기도 했다. 캔버스에 유채, 72.4×91.1㎝, 미국 뉴헤이븐 예일대갤러리 소장.200여년 전 소설 ‘오만과 편견’이 탄생한 곳은 낡은 책상이었답니다. 종이 몇 장과 잉크병, 깃대펜이 전부인 그곳이 바로 영국작가 제인 오스틴의 작업실이었던 셈입니다. 장서가 그림처럼 꽂힌 책장, 큼직한 책상이 근사한 ‘서재’란 공간은 남성 작가만 차지할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서재뿐인가요. 화가의 공간이던 ‘아뜰리에’도 그랬고,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카페’와 ‘술집’ ‘광장’도, 한 가정집의 ‘부엌’과 ‘식당’ ‘침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속해 있던 공간이지만, 그곳이 모든 이들에게 늘 공평했던 것은 아니었던 겁니다. 오랜 시간 미술관을 일터로 삼아온 이윤희 학예연구관이 이데일리와 함께 그 장면,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때론 객관적 기록으로, 때론 상징을 담아, 때론 비틀린 풍자를 숨겨낸 ‘그림으로 읽는 공간이야기’ ‘그림으로 읽는 사람이야기’입니다. 주말 독자 여러분을 아트인문학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편집자주> [이윤희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 일 없이도 혹은 일을 가지고 앉아 있을 수 있는 집 밖의 장소는 ‘카페’다. 음악이나 옆 테이블의 소음을 배경으로 해서 홀로 책을 읽거나 작업을 하거나 지인을 만나 잡담을 나누는 풍경은 이제 일상이다. 달랑 커피 한 잔 시켜놓고 낮부터 저녁까지 앉아 있는 손님을 보면 주인은 속이 터지겠지만, 사실 이러한 패턴은 요즘 생긴 게 아니라 19세기에도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카페의 천국인 프랑스에선 당시, 문인이나 화가, 사상가들이 카페에 모여 토론을 하고 동지를 만들고 생각을 나누는 일이 다반사였다. 화가들은 비좁은 작업실에서 벗어나 카페의 한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다른 테이블의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렸고, 사상가들은 신문을 돌려 읽으며 세태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얻었으며, 문인들은 다른 작가의 작품에 대한 찬탄이나 신랄한 비평을 했던 장소가 카페였던 것이다. 그때의 카페가 오늘날과 다른 점이 있다면, 서민이 갈 수 있는 저렴한 카페에는 당구나 체스 등 오락거리가 마련돼 있고 부르주아가 가는 카페에는 음악이나 무용 등 고급문화를 즐길 무대가 있기도 했다는 점이다. 그 시절에도 커피와 음료가 주류였지만 저녁에는 술도 팔았고 심지어 밤새워 영업도 했다니, 요즘 카페보다 폭넓은 활동이 가능했던 셈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주로 모였던 곳은 그 유명한 ‘카페 게르부아’ ‘라 누벨 아테네’ 등이었다. 파리의 카페 게르부아는 인상주의 화가들이 존경했던 마네의 집 근처였고, 바로 그곳에서 서로 동지가 돼 첫 전시를 하기로 의견을 모으기도 했다. 약속을 하지 않아도 그곳에 가면 항상 누군가가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고, 전시를 도모할 때는 한 주에 한번 무슨 요일에 다같이 만나기로 일시를 정하기도 했다. 마네는 말이 많고, 드가는 자주 화를 냈으며, 피사로는 주로 듣는 편이었다고 하니, 시간을 거꾸로 돌려 그 시절 카페 게르부아에 가서 그들의 토론을 엿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싶다. 물론 카페는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의 전역에 퍼져 있었고, 작은 도시에도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카페가 있었다. 덕분에 풍속화를 그리는 화가들이 남긴 다양한 카페 그림이 많이 남아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카페를 고르라면 단연 이곳,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와 폴 고갱(1848∼1903)이 한때 같이 작업을 했던 프랑스 남부 아를의 ‘카페 드 라 가르’를 빼놓을 수 없다. ◇예술가들의 공동체를 꿈꾼 고흐 네덜란드 사람이던 반 고흐는 당시 미술의 중심지였던 파리로 가서 인상주의를 접하고 화풍에 많은 변화를 겪었다. 네덜란드 시절과는 달리 원색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인상주의자들보다 길게 뻗어나가는 붓터치로 자신만의 독자성을 구축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파리의 화가들과 평범한 교우관계를 유지하기에는 지나치게 열정적이고, 그림이 팔리지 않아 가난했으며, 대도시 생활에서 오는 우울감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반 고흐는 파리를 떠나 햇살이 가득한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아를로 이주하기로 결심했다. 동생에게 자금 지원을 받기는 했지만 늘 궁핍했던 반 고흐는 아를의 작은 집에 세를 얻어 그곳을 노란색으로 칠하고 활기찬 삶을 꿈꾸었다. 폴 고갱의 ‘밤의 카페, 아를’(1888). 빈센트 반 고흐의 초청으로 아를로 온 고갱이 그린 ‘카페 드 라 가르’의 풍경. ‘같은 공간 다른 표현’ 덕분에 반 고흐가 그린 ‘밤의 카페’와 자주 비교되는 작품이다. 손님이 빠져나간 공간을 퀭한 시선으로 그려낸 반 고흐에 비해, 차라리 북적이는 인물들로 꽉 채운 고갱의 그림이 ‘현실적’이란 평도 있다. 캔버스에 유채, 73×92㎝, 러시아 모스크바 푸시킨미술관 소장.이 시기에 그는 ‘예술가들의 공동체’를 만들고 싶은 꿈을 꾸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자의식이 강한 예술가들이 어울려 무슨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그가 공동체를 꿈꾸며 열정적으로 초대했던 인물이 다른 이도 아니고 고갱이란 점에서, 이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우울하지 않을 수 없다. 고갱은 반 고흐와 전혀 다른 기질을 가졌기 때문이다. 반 고흐는 화상이던 동생으로 하여금 고갱의 빚까지 탕감해주며 초대를 했지만, 고갱은 오자마자 좁아터진 숙소에 실망을 드러냈고 반 고흐의 열렬한 환영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그곳 시골마을의 사람들과 반 고흐는 진심을 담아 친근하게 지냈지만, 고갱은 오자마자 그곳을 뜨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던 거다. 이 시절 반 고흐가 그린 ‘밤의 카페’(1888)는 고갱이 도착하기 한 달 전쯤 동네의 카페를 사흘 밤낮으로 그려 완성한 작품이다. 그림 속 저 멀리에 있는 시계를 보면 시간은 밤 12시 15분쯤이다.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남아있는 이들은 누구며, 특히 흰옷을 입고 서 있는 남자는 누구일까. 당구대 옆에 선 흰옷의 남자는 카페주인 ‘지누’다. 주인 외에 테이블에 앉은 사람은 모두 다섯 명. 그중 문 옆에 있는 두 인물 가운데 한 명은 여성이다. 이 여성은 밤늦게까지 카페에 머물며 호객을 하는 매춘부로 해석된다. 테이블에는 치우지 않은 술잔이 가득하고, 전면 의자들은 마구 흐트러져 있으며, 앉아 있는 사람들은 술에 취했거나 졸리거나 침울해 보인다. 배경은 또 어떤가. 붉은 벽면에 켜져 있는 등불은 당구대에 진한 그림자를 드리울 정도로 환하게 켜져 있지만, 노란색과 녹색이 어우러져 퍼져나가는 빛의 곡선들은 어쩐지 속이 울렁거릴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붉은 벽과 노란 바닥, 녹색 천정은 강한 보색대비를 이루지만 강렬하고 화려하기보다는 암울한 느낌을 배가시킨다. 반 고흐가 그린 이 밤의 카페 풍경은 한밤중 갈 곳 없이 떠도는 사람들의 외로움, 적막감에 더해 그들에 대한 반 고흐의 연민이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이다. ◇지누 부인을 대하는 두 화가의 시선 하지만 한 달 후 아를에 도착한 고갱이 그린 카페 드 라 가르는 조금 달리 보인다. 물론 술에 취해 테이블에 엎드린 사람도 있지만 고갱은 기본적으로 활기를 띠는 곳으로 ‘밤의 카페, 아를’(1888)을 그렸다. 멀리 한 테이블에서 세 명의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는 수염 기른 남자는, 아를 시절 반 고흐의 절친한 친구 우체부 조셉 룰랭이다. 반 고흐는 룰랭의 단독 초상화를 여섯 점이나 그렸고, 그의 부인을 비롯한 가족을 수없이 그렸다. 룰랭의 친절함과 따스함에 큰 용기를 얻었고 그의 지혜에 늘 감동했으며 정신적으로 의지했던 것이다. 하지만 고갱은 반 고흐의 절친 룰랭을 밤늦은 시간 매춘부들과 수다나 떠는 인물로 그려놨던 것이다. 고갱이 파놓은 함정은 이뿐만이 아니다. 화면 앞쪽에 턱을 괸 채 그림을 그리는 고갱을 바라보며 묘한 눈웃음을 짓는 이 여인은 카페 주인 지누의 부인이다. 부인의 앞에는 술병과 잔, 안주 접시가 놓여 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아를의 여인, 지누 부인의 초상’(1888∼1889). 반 고흐가 머물던 카페의 주인 지누의 부인을 그린 작품. 반 고흐 특유의 신비로움을 띤 인물화 중 한 점으로, 배경이 된 노란색은 지누 부인의 모습을 부각하려는 의도적인 선택으로 해석한다. 반 고흐는 이외에도 지누 부인을 모델로 한 그림 5점을 더 그렸다. 캔버스에 유채, 91.4×73.7㎝,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그런데 이 그림의 모델인 지누 부인은 사실 고갱이 반 고흐와 작업실에서 함께 그린 것이다. 같은 공간 속 같은 인물을 그린 뒤 고갱은 그 배경을 카페로 변형시켰는데, 부인이 실제 앞에 뒀던 것은 술병이 아니라 책이었다. 실제로 반 고흐의 ‘아를의 여인, 지누 부인의 초상’(1888∼1889)에서 부인은 책을 읽고 있다. 이처럼 한 인물이지만 분위기가 전혀 다른 것은 두 화가의 개성이기도 하지만 관점의 차이기도 하다. 고갱은 아를을 빨리 탈출하고 싶었고, 아를의 사람이라면 반 고흐의 친구든, 친구의 부인이든 존중이나 애정을 가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카페 그림은 같은 장소를 그려도 화가의 시선에 따라 얼마나 달리 나오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물론 누구의 그림이 더 좋은가는 취향의 차이겠으며, 여기서는 별개의 문제다. 다만 19세기 후반 반 고흐와 고갱이 아를의 허름한 카페에서 느끼고 본 것의 차이는, 같은 공간 같은 인물은 물론 비슷한 색이라도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이윤희 학예연구관은… 1970년생. 대학을 다니던 20대 어느 겨울, 해외여행 자유화 덕분에 유럽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 인생에 미술을 들인 결정적 계기가 됐다. 누구나 들렀던 어느 미술관에서 뜻밖에 렘브란트의 ‘어머니 초상’이란 작품이 발을 붙들었다. 뭔가 꿈틀거리는 게 올라왔다. 세상을 감동시킨 그 수많은 작품을 설명하는 언어를 가지고 싶다는 열망도 함께였다. 이화여대에서 독문학과를 졸업한 뒤론 동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미술의 역사, 미술의 말을 공부했다. 이후 ‘공간’ 지 미술기자를 시작으로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학예실장, 청주시립미술관 학예실장 등을 거치며 오래전 그 렘브란트의 감동을 현장으로 옮겼다. 지금은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으로 일한다. 일터에 나가면 미술작품들이 바로 곁에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전시기획을 하고, 글을 쓴다. 번역서로 ‘그림자의 짧은 역사’(2006), ‘포토몽타주’(2003), ‘바디스케이프’(1999)가 있으며 저서로 ‘여성의 눈으로 보는 미술 키워드’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2021.11.06 I 오현주 기자
돌팔이 이발사가 외과 명의 되기까지<8>
  • 돌팔이 이발사가 외과 명의 되기까지[이윤희의 아트in스페이스]<8>
  • 18세기 네덜란드 화가 야코프 카츠가 1787년 그린 ‘여성의 머리에서 돌을 빼내는 이발사 겸 외과의사’. 인류역사에서 행해졌던 비과학적 의료행위를 꼬집은 풍자화다. 외과의사를 ‘겸직’했던 이발사가 여인의 이마에 구멍을 뚫어 ‘광기의 돌’을 빼내는 장면이다. 광기의 돌은 인간의 이마에 박혀 이상행동의 원인이 된다고 생각했던 가상의 돌이지만, 멀쩡한 사람의 이마에 구멍을 뚫는 행위는 ‘실제로’ 진행이 됐다. 종이에 수채, 41×31.9㎝, 영국 런던 웰컴갤러리 소장.200여년 전 소설 ‘오만과 편견’이 탄생한 곳은 낡은 책상이었답니다. 종이 몇 장과 잉크병, 깃대펜이 전부인 그곳이 바로 영국작가 제인 오스틴의 작업실이었던 셈입니다. 장서가 그림처럼 꽂힌 책장, 큼직한 책상이 근사한 ‘서재’란 공간은 남성 작가만 차지할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서재뿐인가요. 화가의 공간이던 ‘아뜰리에’도 그랬고,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카페’와 ‘술집’ ‘광장’도, 한 가정집의 ‘부엌’과 ‘식당’ ‘침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속해 있던 공간이지만, 그곳이 모든 이들에게 늘 공평했던 것은 아니었던 겁니다. 오랜 시간 미술관을 일터로 삼아온 이윤희 학예연구관이 이데일리와 함께 그 장면,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때론 객관적 기록으로, 때론 상징을 담아, 때론 비틀린 풍자를 숨겨낸 ‘그림으로 읽는 공간이야기’ ‘그림으로 읽는 사람이야기’입니다. 주말 독자 여러분을 아트인문학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편집자주> [이윤희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 모든 사람의 생각이 비슷했을 것이다. 나 살아생전에, 더구나 21세기에 전염병의 대유행이 지구 전체를 삼켜버리는 일을 목도하리란 예상은 거의 못했을 것이란 말이다. 물론 과거 역사를 보면 주기적으로 역병이 돌아 많은 인구가 죽음에 이르렀다고는 하나, 동물복제가 가능하고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는 요즘 시대에 전염병의 팬데믹이라니. 하지만 지구 곳곳에서 여러 종류의 백신이 빠르게 개발됐고 마치 공장에서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듯 동네마다 병원에서 착착 백신을 맞고 15분 후에 걸어나오는 사람들의 풍경을 매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별별 전염병이 다 돌았을, 오래 전 병원의 모습이 어땠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이발소 간판의 빨강과 파랑·흰색이 동맥과 정맥, 붕대를 상징한 것이고, 이발사가 의사를 겸했다는 소문은 사실일까. 놀랍게도 사실이다. 기원전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가 의사로서 성스러운 선언을 했다지만, 그후로도 1000년 이상을 이발소에서 이도 뽑고 상처의 봉합이나 절단수술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는 중세 1000년 동안 해부학이 엄격하게 금지돼 과학으로서의 의학발달을 막았던 역사와 관계가 깊다. 네덜란드 화가 야코프 카츠(1741∼1799)가 그린 ‘여성의 머리에서 돌을 빼내는 이발사 겸 외과의사’(1787)를 보면, 18세기까지도 존재했던 비과학적 의료행위를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이발사는 날카로운 칼이나 가위를 누구보다 잘 다루는 전문가다. 하지만 면도를 잘못해 어쩌다 피를 보는 것과 수술을 하는 것은 천지차이일 텐데, 도구를 잘 다룬다고 수술까지 맡기다니 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가. 직업의 미분화는 어느 분야에나 있는 일이지만, 오늘날 의료와 이발은 아주 극단적으로 다른 분야라 그저 놀라울 뿐이다. 카츠의 그림 속 이발소는 제법 전문적인 치료실 같은 분위기마저 풍긴다. 선반에는 알코올과 각종 향유를 비롯한 약재들이 든 병이 가지런히 정돈돼 있고, 붉은 벨벳 의자에 나이 든 여성이 수술을 받고 있다. 수술의 부위는 이마다. 이발사는 여인의 이마에 구멍을 뚫어 일명 ‘광기의 돌’(the stone of madness)을 빼내는 중이다. 야코프 카츠의 ‘여성의 머리에서 돌을 빼내는 이발사 겸 외과의사’(1787)를 클로즈업했다. 왼쪽은 이발사가 ‘이미에서 빼냈다’고 환자를 속인 ‘광기의 돌’을 담은 접시. 오른쪽은 창쪽 선반에 놓인 가위와 칼 등을 수납한 가죽지갑과 이발사 겸 외과의사의 전문성을 보여주기 위해 전시한 두개골.◇상상이 만든 ‘광기의 돌’ 꺼내려 이마에 구멍을…광기의 돌은 인간의 이마에 박혀 이상행동의 원인이 된다고 생각했던 가상의 돌이지만, 이것을 ‘실제로’ 빼내는 수술이 만연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마 안에 무슨 돌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광기의 돌을 빼내는 것이야말로 실력 있는 이발사 겸 외과의사의 본분이었다. 때문에 수술하는 손이나 다른 손에 살짝 작은 돌을 숨겼다가 환자의 이마에 구멍을 뚫고 피를 낸 후 슬쩍 피묻은 돌을 떨어뜨리는 것은 이들의 흔한 속임수였다. 화면 왼쪽 테이블에는 머리에서 빼낸 무수한 돌을 담은 접시를 볼 수 있다. 자신의 병증을 고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여인은 고통을 참고 있다. 한 손은 의자의 팔걸이를 꽉 쥐고 다른 손은 힘껏 주먹을 그러쥔 채 말이다. 창쪽 선반에서는 가위와 칼 등을 수납할 수 있는 가죽지갑과 함께 두개골이 보인다. 두개골은 원래 삶의 허무함을 잊지 않기 위한 목적으로 둔 일종의 책상기물이었지만, 여기서는 이발사 겸 의사의 전문성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다. 환자에게 두개골을 가리키며 ‘이즈음에 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용도였을 것이다. 화면 오른쪽 벽에 걸어둔 가죽 수납함에는 가위의 머리가 삐져나와 있고, 이발사의 등 뒤에도 가위가 걸려 있어, 이 사람이 가위를 쓰는 이발전문이란 것을 여기저기서 말해주고 있지만, 수술을 집도하는 표정은 진짜 의사처럼 진지하다. 하지만 그림이 그려진 때는 이미 전문교육을 받은 실제 의사가 활동하던 시기를 한참 넘겼기 때문에, 그림은 그런 어리석음에 대한 풍자화로 그려진 것이다. 이발사 겸 의사들은 시장 등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집기를 가지고 나와 수술 공연을 하기도 했다. 예의 그 방법, 환자의 이마에 상처를 내고 숨겼던 돌을 빼내는 속임수를 써 사람들을 감탄케 하고 자신의 실력을 공공연하게 증명하는 용도로 말이다. 오늘날 전문병원이 천지라도 민간의료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은 것을 보면, 오래 믿어왔던 치료법이 선진의술과 공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렘브란트의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1632). 해부학을 강의하는 툴프 박사와 7명의 청강생을 그린 렘브란트의 첫 집단초상화다. 이발사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은 당시 진짜 외과의사의 수준을 엿보게 한다. 렘브란트가 외과의사조합의 주문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가위를 든 툴프 박사는 실존인물이다. 캔버스에 유채, 265.5×169.5㎝, 네덜란드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미술관 소장.◇1000년 금지 해부학 허용…현대의술 선구자들의 초상화다만 이보다 100여년 전 렘브란트(1606∼1669)가 그린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1632)는 이발사와 전혀 다른 체계로 의학이 수준 높게 성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툴프 박사는 네덜란드 라이덴대에서 의학을 공부한 외과전문의로, 외과의사 길드의 조합장을 맡고 네덜란드의 의료환경에 큰 기여를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중세 1000년 동안 해부학은 엄격하게 금지돼 있었지만 르네상스 이후 의사는 물론 화가들까지 해부학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했다. 이때 해부할 수 있는 대상은 교수형에 처해진 죄수의 시신이어야 했고, 한 해에 한 번뿐인 기회였기 때문에 해부 의사 외에도 다른 의사 동료와 학생들이 참관할 수 있었다. 그림에 모자를 쓰고 시신의 팔을 길게 절개해 겸자로 근육을 들어 올리는 이가 툴프 박사고, 이를 지켜보면서 책의 내용과 비교하거나 기록하고 있는 이들은 의사조합의 회원들이다. 그들은 이 해부과정을 통해 피부 아래 근육과 인대, 뼈의 관계를 숙지하고 각자 자신의 의료행위에 적용하게 될 것이다. 렘브란트가 20대에 그린 천재적인 이 그림은 실제로는 의사조합의 집단초상화로, 시신을 제외한 의사들 각각이 렘브란트에게 그림값을 지불했다. 덕분에 잘 차려입은 의사들의 면면이 개성적으로 세심하게 잘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때만 하더라도 의사들은 외과수술, 다시 말해 몸을 절개하는 일에는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을 때라 그림은 시대를 앞서 나가는 선구자들의 초상화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토머스 에이킨스의 ‘애그뉴 박사의 클리닉’(1889). 19세기 미국에서 행해졌을 거라 보이는 수술풍경을 묘사했다. 인물뿐만 아니라 흰 가운을 입은 의사, 마취와 수술집도, 맥막 체크 등 과정까지 세밀하다. 사실주의적 작품이 나온 배경에는 미술공부 외에도 의과대에서 해부학을 공부했던 화가의 견고한 지식이 바탕이 됐다. 캔버스에 유채, 214×300㎝,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소장.이후로도 수술실의 모습이 발전해 나가는 모습은 미국 사실주의 화가 토머스 에이킨스(1844∼1916)의 그림들로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다. 그중 한 점이 ‘애그뉴 박사의 클리닉’(1889)이다. 드디어 의사는 흰 가운을 입고, 마취와 수술집도, 맥박 체크까지 하고 있으며, 이를 보조하는 간호사를 대동하고 있는 것이다. 원형극장에서 공개적으로 이뤄진 수술만 아니라면 오늘의 수술풍경과 거의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코로나시대, 인간의 신체가 너무나 유약한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됨과 동시에, 민간의료시대에서 전문의사시대로 넘어온 것이 소름이 돋도록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18세기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호흡곤란으로 괴로워하자 백악관에 불려온 의사들이 2ℓ가 넘는 사혈을 해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는 것이나, 불과 100년 전 장미가시에 찔린 상처가 아물지 않아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사망하고, 화가 에곤 실레가 겨우 스물여덟의 나이에 스페인독감으로 부인과 동시에 세상을 떴던 것을 떠올려보면, 우리가 진료를 받는 병원은 어찌나 믿음직스러운지. 과거 그림들로 확인해볼 때 병원다운 병원이 생겨나기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그런 시절을 지나 1분에 1명씩 백신을 맞고 병원을 나서는 오늘에 새삼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윤희 학예연구관은… 1970년생. 대학을 다니던 20대 어느 겨울, 해외여행 자유화 덕분에 유럽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 인생에 미술을 들인 결정적 계기가 됐다. 누구나 들렀던 어느 미술관에서 뜻밖에 렘브란트의 ‘어머니 초상’이란 작품이 발을 붙들었다. 뭔가 꿈틀거리는 게 올라왔다. 세상을 감동시킨 그 수많은 작품을 설명하는 언어를 가지고 싶다는 열망도 함께였다. 이화여대에서 독문학과를 졸업한 뒤론 동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미술의 역사, 미술의 말을 공부했다. 이후 ‘공간’ 지 미술기자를 시작으로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학예실장, 청주시립미술관 학예실장 등을 거치며 오래전 그 렘브란트의 감동을 현장으로 옮겼다. 지금은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으로 일한다. 일터에 나가면 미술작품들이 바로 곁에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전시기획을 하고, 글을 쓴다. 번역서로 ‘그림자의 짧은 역사’(2006), ‘포토몽타주’(2003), ‘바디스케이프’(1999)가 있으며 저서로 ‘여성의 눈으로 보는 미술 키워드’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2021.10.30 I 오현주 기자
남자의 서재 여자의 서재, 그 오만과 편견<7>
  • 남자의 서재 여자의 서재, 그 오만과 편견[이윤희의 아트in스페이스]<7>
  • 안토넬로 다 메시나가 1474년경 그린 ‘성 제롬’(St. Jerome). 15세기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던 화가 메시나는 종교화·초상화를 다수 남겼다. 미묘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화풍은 그가 어린 시절 플랑드르 미술을 접한 영향으로 본다. 여기에 공간배치에 공을 들이고 사실적 묘사를 추구하는 이탈리아 미술을 결합해 그만의 독특한 경향을 창조해낸 것. 영어이름인 ‘제롬’ 대신 서재에서 연구에 몰두하는 성인이란 뜻을 담아 ‘연구실에 있는 성 히에로니무스’라고도 불리는 작품은 화가 특유의 기하학적 구조를 구현한 공간에 빛의 움직임을 따른 방식으로 그려졌다. 나무패널에 유채, 45.7×36.2㎝,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 소장.200여년 전 소설 ‘오만과 편견’이 탄생한 곳은 낡은 책상이었답니다. 종이 몇 장과 잉크병, 깃대펜이 전부인 그곳이 바로 영국작가 제인 오스틴의 작업실이었던 셈입니다. 장서가 그림처럼 꽂힌 책장, 큼직한 책상이 근사한 ‘서재’란 공간은 남성 작가만 차지할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서재뿐인가요. 화가의 공간이던 ‘아뜰리에’도 그랬고,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카페’와 ‘술집’ ‘광장’도, 한 가정집의 ‘부엌’과 ‘식당’ ‘침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속해 있던 공간이지만, 그곳이 모든 이들에게 늘 공평했던 것은 아니었던 겁니다. 오랜 시간 미술관을 일터로 삼아온 이윤희 학예연구관이 이데일리와 함께 그 장면,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때론 객관적 기록으로, 때론 상징을 담아, 때론 비틀린 풍자를 숨겨낸 ‘그림으로 읽는 공간이야기’ ‘그림으로 읽는 사람이야기’입니다. 주말 독자 여러분을 아트인문학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편집자주> [이윤희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뭐가 떨어진다는 협박성 속담은 이제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시대가 왔다. 요즘 남자 연예인들은 어찌나 요리를 잘하는지. 게다가 외식요리의 대가로 명성이 높은 이도 남성이고, 요리 경연프로그램에서 채점을 하는 전문요리사도 남성인 세상이다. 남성이 손을 대면 수천년 동안 여성의 영역이던 요리조차도 전문성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 하지만 한 가정으로 돌아오면, 아무리 맞벌이 부부라도 가족식사를 책임지는 이는 여전히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기 때문에 아직도 부엌은 여성이 더 많이 머무르는 공간이다. 공간은 그 자체로 중성적이지만 부엌처럼 특정한 성별과 연관짓는 경우는 분명히 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서재’도 유사하다. 부엌과는 달리 대표적인 남성의 공간으로 여겨왔던 것이다. 서재는 침해받지 않은 권리를 가지는 사적 공간이다. 거실이나 침실 등에서 분리돼 나온 서재는 인간으로 하여금 생각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시간을 만들어준다. 이미 중세의 끄트머리인 14∼15세기, 궁전 혹은 부르주아의 가옥에서 발견됐는데, 대체로 가장인 남성이 홀로 자신의 독서와 집필, 사색의 공간으로 활용했고 열쇠로 채워 다른 가족이 드나들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과거 그림들 속에서도 책에 둘러싸여 머리를 싸맨 채 글을 쓰거나 지구본을 놓고 세계의 원리를 고민하는 주체는 남성이었다. 자신만의 서재에서 책상에 앉아 있는 인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 중 하나는 성 제롬(St. Jerome·347?~420)이다. 그는 수십년간 구약성경을 히브리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해 서방세계에 기독교 교리를 안착시키는 데 커다란 공을 세운 사제였다. 번역사전이 있을 리 만무했던 서기 1세기에 일반인은 다 읽기도 어려운 구약성경의 내용을 번역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학식을 필요로 했을 테고, 이러한 필생의 업적 때문에라도 그의 모습을 그리는 데는 책상이 있는 서재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르네상스시대의 화가 안토넬로 다 메시나(1430?~1479)가 그린 ‘성 제롬’(1474년경)은 수도원 안에서 책을 읽는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추기경 복장을 하고 있는 그는 아치가 뾰족한 고딕식 건물 안에 있는 서재의 책상에 앉아 허리를 꼿꼿이 편 자세로 책을 읽고 있다. 붉은색 추기경의 모자는 책상 뒷선반에 얹혀 있다. 책상의 앞과 옆으로는 책장이 있는데, 한치도 빈틈없이 묘사한 건물의 구조와 인물의 자세에 비해 책장의 책들은 금방 읽고 급하게 얹어놓은 듯 펼쳐져 있다. 번역이란 이러저러한 자료를 고루 참조해야 가능한 일이라, 화가는 그가 일하는 방식이 이러했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가시를 빼준 성 제롬을 평생 따라다녔다는 사자주변에 그를 방해하는 것들은 없으나, 여러 동물이 그림 속에 배치돼 또 다른 재미를 준다. 그의 발치를 따라가 보면 두 개의 화분 앞에 회색 고양이가 얌전히 앉아 있고, 화면 앞쪽에는 새 두 마리가 두드러져 보인다. 또 멀리 오른쪽 회랑에서는 그림자에 가려진 검은 동물이 다가오고 있는데, 그것은 실제로 건물 안에서는 키울 수 없는 동물, 사자다. 성 제롬이 사막에서 수도하던 시절, 발에 가시가 박혀 괴로워하는 사자의 가시를 빼줘 살렸고, 그 사자가 평생 그의 곁을 따랐다는 일화에서 비롯된 도상이다. 그래서 어느 그림에서 책상에 앉은 남성 곁에 뜬금없이 사자가 보인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성 제롬인 것이다. 안토넬로 다 메시나의 ‘성 제롬’(St. Jerome) 중 부분. 그림에 등장하는 여러 동물 상징 중 사자를 클로즈업했다. 성 제롬이 수도시절 사자의 발에 박힌 가시를 빼내 살려줬고, 그 사자가 평생 그의 곁을 따랐다는 일화를 반영하고 있다.이에 반해 성 제롬과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학자라면 히파티아(Hypatia·355∼415)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당대 철학자이자 수학자이며 천문학자였던 그는 여성이다. 17세기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가 공전의 곡선이 원형이 아니라 타원형임을 발견해 천문학의 혁명을 이뤘다면, 그보다 1400년 먼저 이 법칙을 발견한 사람은 히파티아였다고 알려져 있다. 학자인 아버지로부터 교육을 받고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학식을 쌓았을 뿐 아니라, 학생들에게 인기있는 교수기도 했던 히파티아의 최후는 비극적이었다. 마녀로 몰려 길거리에서 머리채를 몽땅 뽑히고, 옷이 벗겨진 채 날카롭게 간 조개껍데기로 베어낸 살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종국에는 화형으로 일생이 끝나버린 것이다. 하지만 히파티아의 학문적 업적은 후대에도 남겨져, 르네상스의 대가 라파엘로가 바티칸성당 내 교황의 개인서재 벽에 그린 ‘아테네학당’(1510∼1511)에도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더불어 여러 사상가 중 한 명으로 그려져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히파티아의 일생에서 화가들이 가장 그리고 싶어했던 것은 학자로서의 모습보다는 벌거벗은 최후의 모습이었을까. 영국 화가 찰스 윌리엄 미첼(1854∼1903)이 그린 ‘히파티아’(1885)는 벗겨진 맨몸을 긴 머리카락으로 가리며 온몸으로 뭔가를 호소하는, 극도로 당황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인류사에 남긴 학문적 업적, 비극적인 죽음을 그려내는 데 미첼이 그린 희고 늘씬한 맨몸은 방해가 될 뿐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성이 고초를 겪다니 안타깝다는 것 이외에 이 그림이 학자로서의 히파티아에 대해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찰스 윌리엄 미첼의 ‘히파티아’(Hypatia·1885). 인류 역사에서 식별 가능한 인물 중 최초의 여성 수학자로 꼽히는 히파티아가 죽임을 당하기 직전을 그렸다. 히파티아의 죽음이 ‘자유로운 고대 학문이 지고 중세 암흑시대를 예고한 사건이 됐다’는 분석 외에, 젊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히파티아를 이미지화한 남성 중심 시각은 왕왕 도마에 올랐다. 캔버스에 유채, 244.5×152.5㎝, 영국 뉴캐슬 랭아트갤러리 소장.현대 이전에는 여성의 공교육이 제한됐고, 최근까지도 종교적 신념이나 교리 또는 빈부격차로 인해 여성은, 교육은 물론 정상적인 사회활동마저 불가능한 지역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따로 방법을 찾은 여성이 있으니, 교회에 수녀로 들어가는 일이었다. 결혼에 따른 제약을 피해 독신의 삶을 살면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흔치 않은 직업이 수녀였던 것이다. 17세기 스페인 식민지였던 멕시코에서 수녀의 삶을 선택한 후아나 이네스 델라 크루스(1648∼1695)는 뛰어난 저자고, 시인이며, 작곡가였다. 일명 소르 후아나로 불리는 그는 일찌감치 자신의 재능을 펼치고 지속적인 공부를 하기 위해 남장을 해서라도 대학에 입학하고자 했다. 그러한 무모한 시도가 좌절되자, 한 가정에 예속된 삶을 거부하고 역설적으로 좀더 자유로운 학문과 활동이 가능한 수녀원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소르 후아나를 담은 그림은 여러 점 남아 있지만 사후에 그려진 것으로 멕시코 화가 미구엘 카브레라(1695∼1768)의 ‘후아나 이네스 델라 크루스의 초상’(1750년경)이 있다. 미구엘 카브레라의 ‘후아나 이네스 델라 크루스(Sor Juana Ines dela Cruz)의 초상’(1750년경). 존경받는 멕시코 수녀이자 뛰어난 학자로 꼽히던 후아나 이네스 델라 크루스를 그렸다. 한 손은 묵주를 쥐고, 다른 손은 책장을 넘기고 있는 동작 외에도 앞을 향해 시선을 똑바로 고정한 눈빛에서 당당한 자신감이 묻어나온다. 캔버스에 유채, 70×50㎝, 멕시코 멕시코시티 역사박물관 소장.흥미로운 점은 서재에 앉아 있는 초상이란 것이다. 이 그림에서 소르 후아나는 수녀복장을 하고 있지만 사제의 보조로서가 아니라 거대한 서가에 둘러싸여 자신만의 집필을 하는 책상 앞에 앉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후대의 문학가 버지니아 울프는 소르 후아나가 매우 적대적인 상황 속에서도 ‘자기만의 방’을 만드는 데 성공했던 여성으로 평가하고 있다. ◇제인 오스틴·브론테 자매도 서재 없이 식탁에서 글 써 서재는 매우 사적이면서도 생각을 목적으로 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남성만의 공간이었다. 대개 남성 문필가들이 자기만의 서재를 당연하게 가지고 있던 데 반해, 제인 오스틴이나 브론테 자매처럼 잘 알려진 여성작가들조차 공용 식탁이나 좁은 다탁을 집필공간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1993년 흑인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토니 모리슨도 결혼 이후 음식물이 덜 치워진 식탁에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니. 과연 언제쯤 여성들은 당연히 주어지는 서재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여성 역시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자기만의 시간이 있어야 한 인간으로서 영혼의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지 않겠는가. △이윤희 학예연구관은… 1970년생. 대학을 다니던 20대 어느 겨울, 해외여행 자유화 덕분에 유럽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 인생에 미술을 들인 결정적 계기가 됐다. 누구나 들렀던 어느 미술관에서 뜻밖에 렘브란트의 ‘어머니 초상’이란 작품이 발을 붙들었다. 뭔가 꿈틀거리는 게 올라왔다. 세상을 감동시킨 그 수많은 작품을 설명하는 언어를 가지고 싶다는 열망도 함께였다. 이화여대에서 독문학과를 졸업한 뒤론 동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미술의 역사, 미술의 말을 공부했다. 이후 ‘공간’ 지 미술기자를 시작으로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학예실장, 청주시립미술관 학예실장 등을 거치며 오래전 그 렘브란트의 감동을 현장으로 옮겼다. 지금은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으로 일한다. 일터에 나가면 미술작품들이 바로 곁에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전시기획을 하고, 글을 쓴다. 번역서로 ‘그림자의 짧은 역사’(2006), ‘포토몽타주’(2003), ‘바디스케이프’(1999)가 있으며 저서로 ‘여성의 눈으로 보는 미술 키워드’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2021.10.23 I 오현주 기자
4일부터 '2021 한글주간'..국내외서 풍성한 '비대면 행사'
  • 4일부터 '2021 한글주간'..국내외서 풍성한 '비대면 행사'
  • [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문화체육관광부는 제575돌 한글날을 기념해 4일부터 10일까지 ‘2021 한글주간’ 행사를 개최한다. 올해 한글주간의 주제는 ‘우리의 한글, 누리를 잇다’다. 세상을 뜻하는 순우리말 ‘누리’라는 단어를 사용해 한글로 세상을 연결하자는 염원을 담았다. 행사는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한글주간 홈페이지’에서 비대면으로 진행하며, 전국 국어문화원, 전 세계 재외 한국문화원, 해외 세종학당 등에서도 다양한 행사들이 개최된다. 국내에서는 4일 ‘우리말 겨루기’ 한글주간 특집(KBS1)을 시작으로 한글날 기념방송 ‘노래가 된 시’(KBS1), 특집 다큐멘터리 ‘말의 미래’(MBC)를 방송한다. 또 ‘한글주간 4행시’, ‘외래어 순우리말 바꾸기’ 등 SNS를 통해 다양한 비대면 행사를 진행한다. 국경일인 9일 한글날에는 주요 방송사에서 ‘제575돌 한글날 경축식’을 중계한다.해외에서는 프랑스 한국문화원이 국립한글박물관과 함께 특별전 ‘한글 디자인: 형태의 전환’을 개최한다. 미국 LA 한국문화원은 2019년 제정된 미국 ‘캘리포니아주 한글날’을 기념해 한글의 조형미와 과학적 우수성을 표현한 캘리그라피(멋글씨) 공연과 연수회를 연다. 독일 한국문화원은 독일인 한국문화 유튜브 창작자와 협업해 제작한 특집 영상을 공개한다.민간예술단체에서도 각종 한글주간 행사를 마련했다. 극단 도깨비는 ‘신나는 한글여행’ 공연 영상을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배포하고, 원주문화재단은 ‘한글과 함께하는 그림책 여행’을 주제로 체험 행사를 운영한다. 사비나미술관은 ‘한글, 공감각을 깨우다’ 전시로 한글을 새롭게 조명하고, ‘전국 국어학 학술대회’도 비대면으로 열린다. 오는 8일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정부포상을 전수한다.세종문화상 수상자로는 △‘한국문화’ 부문에 한글과 컴퓨터 △‘예술’ 부문에 백시종(백수남) 소설가 △‘학술’ 부문에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국제문화교류’ 부문에 이찬해 프놈펜국제예술대학교 총장 △‘문화다양성’ 부문에 CJ문화재단이 각각 선정됐다. 세종문화상은 세종대왕의 위업을 기리고 창조 정신을 계승하고자 1982년 제정된 대통령 표창이다. 한글 발전 유공자로는 △‘보관문화훈장’ 고 안상순 전 금성출판사 사전팀장 △‘화관문화훈장’ 김칠관 전 인천성동학교 교감 △‘문화포장’ 강익중 미술가, 윤인구 KBS 아나운서, 셰리쿨로바 미나라 중앙아시아 한국대학 총장 △‘대통령표창’ 김호식 하상복지재단 상임이사, 제주특별자치도 △‘국무총리표창’ 최낙복 전 동아대 명예교수, TBS 아나운서팀, 독일의 함부르크 한인학교 등 개인 7명과 단체 3곳이 수상자(단체)로 선정됐다.한편 문체부는 영화 ‘미나리’의 국제 영화제 수상과 ‘방탄소년단’(BTS)의 세계적 인기로 한글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이 커짐에 따라 한글 관련 정책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해외 세종학당을 2022년까지 270개소로 늘리고, 다국어 학습 콘텐츠 등을 확충해 우리말과 한글을 전 세계에 확산한다. 국내에서도 올바른 언어문화가 정착할 수 있도록 신문·방송·인터넷 등에서의 쉬운 우리말 쓰기 기획 사업, 전문용어 정비, 외국어 새말 제공 체계 구축 등 다양한 정책을 꾸준히 추진할 계획이다.황희 문체부 장관은 “이제 한글은 의사소통의 수단을 넘어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대한민국의 핵심 콘텐츠로서, 이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국제적 경쟁력을 키워줄 신산업을 창출하도록 하겠다”며 “요즘 세대 간 이해하기 어려운 말과 글을 쓰는 일이 점점 늘어나는데, 한글날을 계기로 곱고 바른 말과 글을 쓰도록 함께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2021.10.04 I 윤종성 기자
 한국 미술시장과 NFT
  • [이상미가 전하는 아트테크] 한국 미술시장과 NFT
  • [이상미 이상아트 대표] ‘국민 가수’, ‘국민 배우’, ‘국민 MC’. 전문 직종 앞에 ‘국민’이 붙었다는 것은 대중적인 유명세가 있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한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한국 근현대를 대표하는 ‘국민 화가’는 누구일까? 취향과 관심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중섭(1916~1956), 박수근(1914~1965), 김환기(1913~1974) 등은 아마 이 후보에 오를 것 같다. 예술에서 미적인 가치에 따라 위계를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므로 딱히 누가 1순위라고 우열을 가릴 필요는 없다. 다만, 셋 다 유명한 작가이고 작품의 가격이 고가이다 보니 종종 위작 사건이 생기곤 한다. 특히 이중섭은 위작 사건이 잦다. 그 이유는 이중섭이 소, 닭, 어린이, 가족 등 한정된 소재를 반복적으로 그린 데다, 강렬하고 최소한의 선으로 표현한 형태를 구축했기 때문에 표현법이 더 복잡한 김환기, 박수근보다 모사하기 쉬운 특징이 있다.NFT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작품의 진위를 보증해주는 기능이 있다. 파일로 존재하기에 복제가 쉬운 디지털 아트는 위작이나 진위 논란이 많았다. 하지만 작품을 NFT화 하기 위해 ‘민팅’ 하면 해당 작품의 진위성을 증명하는 고유번호가 만들어지면서 복제나 위작 같은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렇다면 NFT가 실물 작품에도 똑같이 적용돼 위작이 골칫거리인 미술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줄 수 있을까?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 같은 유명 화가의 위작 문제도 NFT가 해결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이를 가늠해볼 수 있는 사건이 올해 일어났다.◇ 온라인 경매로 나온 이중섭·박수근·김환기 NFT 작품 논란NFT가 몰고 온 열풍은 한국 미술시장에도 영향을 주었다. 크리스티와 소더비 등 세계적인 경매회사들이 NFT 미술시장에 뛰어들자, 국내 최대 경매사인 서울옥션도 자회사인 서울옥션 블루를 통해 NFT 미술시장에 진출할 계획을 밝혔다. 2021년 5월 말 한국 근현대미술의 거장인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의 그림까지 NFT로 전환돼 온라인 경매에 나오며 큰 주목을 받았다. 이중섭의 ‘황소’. (사진=워너비인터내셔널)종합광고대행사인 워너비인터내셔널은 자사의 디지털 아트 통합 플랫폼인 ‘Bitcoin NFT’(BTC-NFT)를 통해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의 작품을 NFT 예술품으로 처음 선보인다고 밝혔다. 해당 작품은 1955년 미도파백화점 화랑에서 열린 이중섭의 개인전에서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황소’(51x44cm), 1938년 작인 박수근의 ‘두 아이와 두 엄마’(42x34cm), 1943년 작인 김환기의 ‘전면점화-무제‘(72.7x53cm) 등 총 세 점이다. 6월 16일부터 6월 18일까지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등으로 날마다 온라인 경매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 프랑스, 영국 등 총 22개국 동시로 열기로 돼 있었다.박수근의 ‘두 아이와 두 엄마’. (사진=워너비인터내셔널)하지만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가 “소장자와 별도로 저작권자 허락을 받아 NFT를 제작해야 하는데, 저작권은 작가 사후 70년간 상속인에게 있기에 이중섭은 소멸했지만 박수근과 김환기는 유효하다”면서 작품의 진위 의혹을 제기했다. 여기에다 이들 작품을 소장하고 있던 환기재단과 박수근미술관, 저작권을 가진 유족들은 워너비인터내셔널이 NFT로 제작하는 것과 관련해 저작권 관련 협의가 없었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김환기의 ‘전면점화-무제’. (사진=워너비인터내셔널)경매를 진행하려던 워너비인터내셔널은 작품 소장자와 경매 협의를 했고, 작품 소장자는 작품의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위작 논란으로 사태가 심각해지자 워너비인터내셔널은 “NFT 작품에 대한 관련 제도의 부재와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앞으로 이런 논란이 없도록 원작에 대한 검증과 거래 이후의 관리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할 계획”이라고 사과하며 경매를 잠정 중단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이었을까? 아니면 우리나라 미술시장이 NFT 미술품을 받아드리기에 아직은 설익은 걸까?◇ 작품을 NFT로 만들 때의 저작권은?사실 이번 NFT 미술품 경매에 대한 저작권 이슈는 우선 복제권과 전송권 침해에 있다. 미술 작품을 민팅하는 사람이 해당 작품의 저작권자가 아니라면 ‘복제권’을 침해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저작권자가 아닌 이가 민팅한 저작물을 NFT 플랫폼에 올리는 경우라면 ‘전송권 침해’에 해당한다. 작가명을 타인으로 기재해 판매한다면 ‘저작인격권 침해’가 발생한다.저작권과 소유권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저작권 논란이 발생한 것이다. 2013년 개정된 저작권법(법률 10807호)에 의하면, 1962년 12월 31일 이전에 사망한 작가의 작품은 사후 50년까지 보호되는 반면, 1963년 1월 1일 이후에 사망한 작가의 작품은 사후 70년까지 보호된다. 1962년 12월 31일 이전인 1956년 작고한 이중섭의 경우 사후 50년이 지났지만, 박수근과 김환기의 경우 저작권이 남아있다. 저작권법적으로 저작권자가 아닌 소장자는 작품을 ‘민팅’ 할 수 없다. NFT로 만들 수 없기에 애초부터 이번 NFT 경매는 불가능했다. 뱅크시의 판화 작품인 ‘멍청이’(Morons)를 구매해 불태우기 전에 NFT로 만든 ‘인젝티브 프로토콜’(Injective Protocol)의 행위도 저작권법을 어겼다고 할 수 있다. 작품 소장자는 맞지만, 저작권까지 소유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이중섭처럼 저작권이 만료된 작가의 작품을 민팅해 판매한다면 어떻게 될까?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지만, 누구나 이용 가능한 저작물을 활용해 불법적인 방법으로 수익을 취하는 행위이기에 윤리적으로는 문제가 된다. 올해 3월 싱가포르에 있는 글로벌아트뮤지엄(Global Art Museum)이라는 단체가 구스타프 클림트, 빈센트 반 고흐, 에드가 드가, 폴 세잔 등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을 NFT화 해서 판매를 시도했다가 암스테르담 국립미술박물관 등의 소장 미술관들의 문제 제기로 중단한 사례가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1년 6월 4일 NFT 기반 저작권 침해 논란과 관련해 저작물 이용형태 등 사실관계를 고려한 저작권 보호 기반, 이용허락 여부, 저작권 양도계약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적극 대응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에 대한 침해를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저작물이 아니더라도 NFT로 만들어 판매할 수 있다. 비슷한 문제가 재발할 여지가 있으므로 조속한 제도 마련이 요구된다. ◇ 잇달아 열리는 NFT 전시회한국 미술시장에 논란만 있는 건 아니다. NFT 전시회가 잇달아 열리며 눈길을 끌었다. 88명의 한국의 NFT 아티스트가 가상공간에서 NFT 작품을 전시하는 ‘제1회 KOREAN ARTIST OASI’S가 올해 4월 17일부터 24일까지 열렸다. NFT 아티스트도 활동하는 한동이 작가와 가상공간 제작 업체인 NFT OASIS VR(설립자 Will O’Brien)이 공동으로 개최했다. 이어 5월에는 서울 성수동 뿐또블루에서 NFT 아트 전시회인 ‘토큰 선언서‘(The Token Manifesto)가 열렸다. 디지털로만 접할 수 있던 NFT 작품들이 오프라인으로 나왔다. 관람객들은 스마트폰이나 스마트기기로 QR코드 접속을 통해 NFT 작품을 마주했다. 서울에 있는 유진갤러리는 국내에서 주목받는 NFT 작가인 김재욱, 이규리, 275C, 최주열(JHU) 등을 소개하는 전시인 ’마이 컬렉션 위드 NFT‘(My Collection with NFT)를 올해 7월 10일부터 27일까지 열었다. 유진갤러리 측은 “미술시장의 급진적 변화와 함께 컬렉션의 문화가 대중에게도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라며 “컬렉션을 함께 향유하고 새로운 컬렉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될 NFT 작품을 지속적으로 소개한다”라고 밝혔다. 88명의 한국의 NFT 아티스트가 가상 공간에서 연 NFT 작품 전시회인 제1회 KOREAN ARTIST OASIS. (사진=유튜브)◇ 한국 고미술품에 이어 국보 ‘훈민정음’까지 NFT 출품한국 고미술품까지 NFT로 출품되고 있다. 고미술품경매사 마이아트옥션은 프로젝트팀 타이거리스트(TIGERLIST)와 함께 19세기 조선 궁중 장식화 ‘십장생도 6폭 병풍’ NFT 작품 소유권(총 35억 원)에 대한 공모에 나서, 세 차례로 나눠 판매했다. 국내 최초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은 국보 제70호인 ‘훈민정음’(1446)을 NFT 100개 한정판으로 개당 1억 원에 판매한다는 계획을 2021년 7월 22일 발표했다. 블록체인 기반 테크 미디어 기업 퍼블리시가 NFT 발행에 대한 기술을 담당한다. 책 실물이 아닌 디지털로 만든 NFT의 원본성과 소유권을 살 수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한글 창제 목적과 제작 원리 등을 담은 해설서로 1962년 국보로 지정됐다. 국보가 NFT로 제작되는 일은 처음이다. 2020년 보물 불상 2점을 경매에 내놓아 판매한 적이 있을 정도로 재정난을 겪고 있는 간송미술관은 이번 훈민정음 NFT 판매 수익금을 미술관 운영 및 문화재 연구 기금 등에 활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국내 문화재를 관리하는 문화재청은 “법률 근거를 포함해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라는 입장이다.국보 제70호 훈민정음. (사진=간송미술문화재단)NFT 미술품을 두고 ‘거품’이니 ‘투기’니 하는 문제 제기도 많지만, 하나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한국 미술시장의 규모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선진국에 비해 작다고 할지라도 작품의 수준은 크게 다르게 않다. 하지만 실물 미술품이 오가는 미술시장에서 한국의 미술품이 제값을 받는 경우는 흔치 않다. 저평가되어 있는 게 사실이다. NFT 미술시장은 새로운 가능성이자 기회이다. NFT가 쏘아 올린 변화는 계속된다. 다음 편에는 NFT로 뛰어든 예술가들을 만나보자. ◇이상미 이상아트 대표는...2010년 프랑스 정부 산하 문화통신부에서 프랑스 문화재 감정과 문화재 서비스 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했다. 전시기획사인 이상아트(주)의 대표이사이자 유럽 문화예술콘텐츠 연구소 소장으로 예술감독, 전시기획자, 칼럼니스트, 강연자 등 활발한 대외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21.10.02 I 류성 기자
의정부미술도서관, '독서의 계절' 맞아 다양한 프로그램 마련
  • 의정부미술도서관, '독서의 계절' 맞아 다양한 프로그램 마련
  • [의정부=이데일리 정재훈 기자] 의정부미술도서관이 독서의 계절을 맞아 어린시절을 회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경기 의정부시는 의정부미술도서관에서 오는 16일을 ‘그림책 만들기’원데이클래스를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각각 진행한다고 27일 밝혔다.의정부미술도서관.(사진=의정부시 제공)참가자들은 자연이 가득한 계절 밥상 등 다수의 그림책을 출간한 곽영미 작가와 함께 나만의 소소한 행복을 담은 그림책을 만들 수 있다.이어 23일에는 오후 1시부터 ‘아기양 캐릭터 키링만들기’수업을 진행,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귀여운 아기 양 얼굴을 양모펠트 공예 기법을 활용해 만들어보며 작은 여유를 느껴볼 수 있다.31일에는 할로윈을 맞아 오후 1시부터 그림책‘유령잡는 안경’의 김진희 작가와의 만남을 진행한다.강연은 초등학교 1~3학년 어린이를 대상으로 진행하며 김진희 작가와 함께 책을 읽고 유령만들기 등 독후 활동을 통해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기감정을 이해하는 시간을 갖는다.수강신청은 10월 1일 오전 10시부터 의정부미술도서관 홈페이지를 통해 할 수 있고 기타 궁금한 사항은 도서관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참고하거나 전화로 문의하면 된다.
2021.09.27 I 정재훈 기자
 "생각이 커지는 그림책 품은 미술관, 아이와 오세요"
  • [인싸핫플] "생각이 커지는 그림책 품은 미술관, 아이와 오세요"
  • 전국 유일의 그림책 특화 미술관 ‘그림책미술관’[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전북 완주의 삼례. 과거 한양에서 해남을 잇는 삼남대로와 통영대로가 만나는 갈림길에 자리해 과거 국가 통신기관인 역참이 설치될 만큼 교통의 요지였다. 게다가 만경강 상류에 자리해 일 년 내내 곡식이 풍성하고 물길이 마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같은 천혜의 환경은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비극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만경평야에서 생산되는 막대한 양곡에 편리한 교통요건까지 갖췄으니 군량미 수탈에 열을 올리던 일본의 눈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일제는 삼례역을 짓고 철도를 이용해 근처 군산으로 대량의 쌀을 빼돌렸다. 삼례역 주변에는 농민들에게서 빼앗은 쌀을 저장하기 위한 저장창고들이 세워졌다. 지금도 삼례역 주변에는 당시에 지어진 양곡창고들 일부가 남아 가혹한 수탈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이 양곡창고들이 지금은 쌀 대신 책과 예술작품 등 색다른 볼거리로 채워졌다. 삼례문화예술촌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주민을 위한 예술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그렇게 세상에 알려진 이름이 ‘삼례책마을’이다. 이 책마을에 최근에는 전국 유일의 그림책 특화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세계문화적 가치가 높은 그림책과 그림책의 원화 작품을 수집, 연구, 전시하는 국내 유일의 그림책 특화 미술관이다. 미술관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양곡창고를 개축해 미술문화의 공간으로 재탄생했다.전국 유일의 그림책 특화 미술관 ‘그림책미술관’미술관 내부는 1층 기획전시 공간과 2층 상설전시 공간, 그리고 1층과 2층을 연결해 관람객의 문화행사 참여와 휴식을 위한 어울림 계단으로 구성했다.미술관에 들어서면 1층과 2층이 한눈에 보일 정도로 아담하지만, 작품 하나하나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작가 G. 그레이브스의 친필 원고와 아일랜드 그림책 작가 나오미 헤더의 원화 또한 최초로 공개했다. 1940년경에 완성됐으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출판되지 못하고 그동안 잊혔던 작품들이다. 그림책 원화의 이미지를 조형작품으로 형상화한 것도 독특한 재미다.상설전시로는 ‘빅토리아시대 그림책 3대 거장전’이 열린다. 19세기 후반 세계 그림책 역사에 영원히 남을 걸작들을 쏟아낸 랜돌프 칼데콧과 게이트 그린어웨이, 월터 크레인 등 빅토리아 시대 그림책 3대 거장의 그림책과 원화, 친필 편지 등을 전시 중이다.작지만 알차게 구성돼 있다. 미술과 접목한 조형물과 책 속의 그림을 활용한 작품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글을 모르는 아이들도 생각을 넓게 만들어주는 공간이 바로 ‘그림책미술관’이다.전국 유일의 그림책 특화 미술관 ‘그림책미술관’
2021.09.24 I 강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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