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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텐트 밖은 유럽' 실전 캠핑 첫 방송, 최고 시청률 7.9% 돌파
- 사진=tvN[이데일리 스타in 유준하 기자] tvN ‘텐트 밖은 유럽 - 스페인 편’이 스페인 캠핑의 서막을 올리며 호기로운 출발을 알렸다. 2일 첫 방송된 ‘텐트 밖은 유럽 - 스페인 편’에서는 스페인으로 향한 조진웅, 최원영, 박명훈, 권율의 좌충우돌 캠핑 도전기가 그려졌다. ‘텐트 밖은 유럽 - 스페인 편’ 첫 방송은 닐슨코리아 수도권 가구 기준 평균 6.2%, 분단위 최고 7.9%를 돌파하며 케이블과 종편 포함 동시간대 시청률 1위에 올랐다. 전국 가구 기준 시청률에서도 평균 5.1%, 최고 6.5%를 기록했다. 특히 tvN 타깃인 남녀 2049 시청률에서는 수도권 기준 평균 2.1%, 최고 2.6%로 지상파 포함 전채널에서 동시간대 1위를 기록하며 첫 방송부터 시청자들의 마음을 제대로 사로잡은 것으로 드러났다.첫 방송에서는 스페인을 배경으로 캠핑을 통해 부쩍 가까워진 네 배우들의 브로맨스를 담아내며 힐링과 재미를 모두 잡았다. 배우들의 눈으로 본 스페인의 이국적인 아름다움도 시청자들에게 오롯이 전달됐다. 무엇보다 이들 4인방의 유쾌한 케미스트리가 눈 뗄 수 없는 재미를 안긴 첫 방송이다. 캠핑을 하는 내내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는 조진웅과 멤버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멀티 플레이어 최원영, 새싹 캠퍼이지만 한없이 긍정적인 박명훈, 나이는 가장 어리지만 누구보다 듬직한 막내 권율까지, 초보 캠퍼들의 도전이 드디어 막을 올리며 설렘과 기대를 자아냈다. 방송의 시작은 여행을 떠나기 전 멤버들의 사전 모임이었다. 출발 전 한 자리에 모인 조진웅, 최원영, 박명훈, 권율은 남다른 티키타카를 보여주며 유쾌한 분위기를 이끌었다. 조진웅은 팀내 유일한 캠핑 경력의 소유자이자 동갑내기 절친인 최원영에게 “너만 믿고 있다”면서 신뢰를 드러냈다. 조진웅이 스페인 여정의 주요 운전을 담당하기로 했고, 권율은 총무 역할을 맡았다. 맏형인 박명훈 역시 캠핑 경험이 전무하지만 “새로운 것에 거부감이 없다”면서 도전 의지를 불태웠다. 이어진 장면에서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멤버들의 모습이 담겼다. 멤버들은 캠핑장으로 향하기 위해 렌터카 업체부터 먼저 찾았다. 렌터카를 사전 예약한 권율은 유창한 외국어 실력까지 보여주며 믿음직스러운 면모를 빛냈다. 그런가 하면 최원영은 선글라스를 트렁크에 떨어뜨린 지 모른 채 동분서주 찾아다니는 해프닝으로 ‘동네 허당형’의 새로운 매력을 예고했다. 네 사람은 렌터카를 타고 무사히 공항을 빠져나왔다. 조진웅이 능숙하게 운전대를 잡았고, 이들은 캠핑장으로 향하기에 앞서 마트에 들러 장을 보기로 했다. 특히 총무인 권율은 멤버들이 계란, 파, 감자 등 식재료를 집어들자 가격부터 먼저 확인해 폭소를 안겼다. 마침내 캠핑장에 도착한 네 사람은 본격적으로 텐트를 설치했다. 이들은 1인 텐트 설치를 모두 마무리한 뒤 라면 먹방과 함께 3개의 삶은 감자를 나눠 먹으며 소소한 행복감을 만끽했다. 우여곡절이 있었던 유럽의 첫날 밤이 지나고 캠핑장의 하늘이 밝았다. 가장 먼저 눈을 뜬 최원영은 아침 식사로 끓인 누룽지를 준비했다. 뜨끈한 누룽지에 최원영이 가져온 반찬까지, 멤버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아침 식사였다. 멤버들은 부지런히 텐트 철수를 시작했다. 렌터카를 타고 캠핑장을 빠져나온 네 사람은 쾌청한 날씨가 깃든 스페인의 정취를 제대로 즐겼다. 특히 멤버들은 바르셀로나 거리 곳곳 가우디의 손길이 닿아있는 건축물에 감탄했다. 네 사람이 가기로 한 곳은 바르셀로나의 랜드마크 사그라다 파밀리아. 하지만 성당 출입은 온라인 티켓 예매를 해야만 가능했고, 미리 표를 구입하지 않은 네 사람은 성당을 눈앞에 두고 출입할 수 없었다. 이들이 과연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웅장함을 두 눈에 담을 수 있을지 궁금증을 남긴 채 ‘텐트 밖은 유럽 - 스페인 편’은 다음 여정을 예고했다. tvN ‘텐트 밖은 유럽’은 호텔 대신 캠핑장, 기차 대신 렌터카, 식당 대신 현지 마트를 이용하여 세상 자유로운 방식으로 유럽을 여행하는 캠핑 예능 프로그램. 매주 목요일 저녁 8시40분 방송된다.
- '빵지순례'도 유행인데…한국 팥이 사라졌다
- [이데일리 윤정훈 기자] ‘연세우유 단팥생크림빵’, ‘포켓몬크리미단팥호빵’, ‘근대골목단팥빵’.최근 줄을 서서 구해야 할만큼 인기가 높다는 공통점이 있는 제품이다. 또 다른 공통점은 중국산 팥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팥을 함유한 제품의 수요는 늘고 있지만 국산 팥이 생산량을 뒷받침하지 못하면서 중국산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CU가 판매하는 연세우유 단팥생크림빵, SPC삼립 잠만보의 크리미단팥빵호빵, 근대골목단팥빵, 동원F&B 양반 밤단팥죽, CJ제일제당 햇반 동지팥죽, 순수본 통단팥죽. 모두 중국산 팥이 들어간다.(사진=각 사)◇한국 팥이 사라졌다…단팥빵부터 팥죽까지 中 점령25일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작년 중국산 팥의 수입금액은 4099만달러(506억원)로 전년대비 16.2% 증가했다. 수입 중량도 1만9218t으로 같은 기간 10% 늘었다. 국내 가공식품 업체들이 중품질의 가격이 낮은 중국산 팥을 주로 사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재 국내 팥 자급률은 20%에 불과하다.팥은 예로부터 요리에 첨가물로 사용된 식재료로 팥죽의 원료뿐만 아니라 떡, 빵의 앙금, 팥빙수 등에 다양하게 사용돼왔다. 안토시아닌과 사포닌, 비타민 B1 등이 풍부해 소화와 이뇨를 돕고, 피로회복에도 도움을 준다.국산 팥은 중국산에 비해 알이 크고 쓰면서 은은한 단맛을 내는 게 특징이다. 반면 중국산은 알이 작고 크기가 균일하고 쓴맛을 낸다. 하지만 가공식품의 경우는 맛으로 팥 원산지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중국산이 주로 쓰인다.파리바게뜨, 뚜레쥬르 등 시중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뿐만 아니라 편의점과 유명 제과점에서 판매되는 팥 앙금 함유 빵에서도 국산을 찾아보기 어렵다. 설빙 등 팥빙수 업계도 중국산 팥을 쓴다. 국내 3대 빵집으로 불리는 군산 이성당, 대전 성심당, 대구 삼송빵집의 단팥빵에 있는 앙금 역시 중국산 팥이다.국산 팥을 쓰는 베이커리로는 ‘옥루몽’, ‘소적두’ 경주 ‘황남빵’ 등으로 손에 꼽는다. 소적두는 강원도 지역의 농부와 계약재배로 2011년부터 국산 팥을 공급받고 있다. 황남빵은 경주지역의 팥농가에서 재배된 팥을 사용한다.죽 시장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국내 1위 죽 전문점 ‘본죽’은 국내산 팥을 사용한 팥죽 등을 공급하다가 코로나 기간 중국산으로 재료를 교체했다. 팥죽 밀키트 시장도 중국 팥이 장악한 지 오래다. 엄선된 재료로 만들었다고 홍보한 말이 무색할 정도다. CJ제일제당(097950)의 햇반 동지팥죽, 동원F&B(049770)의 양반 밤단팥죽, 풀무원(017810) 새알동지팥죽, 오뚜기(007310) 동지팥죽, 샘표 동지 찹쌀 통팥죽 등 시중에 판매되는 대부분 제품은 중국산 팥을 원재료로 사용했다.연세우유 단팥생크림빵, 순수본 통단팥죽, CJ제일제당 동지팥죽 성분표(사진=각사)◇비싼 가격에 국산 팥 외면...“농가·식품업계 협업 늘려야”식품 업계가 국산 팥을 쓰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가격이다.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올해 1월 붉은 팥 국산 상급 상품의 도매(40㎏) 가격은 36만5587원이다. 같은 기간 중급 품종의 수입산 팥의 가격은 27만5747원으로 국산 팥의 75% 수준이다. 실제 가공업체가 수입해서 쓰는 중국산 팥 가격은 40㎏ 기준 8만~12만원으로 국산 대비 3~4배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중국산은 국산만큼 재배이력 관리가 되지 않기 때문에 위생 등 관점에서는 안심할 수 없다. 실제 한국만큼 팥을 많이 소비하는 일본은 중국 현지에 팥 앙금 공장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다.국산 팥의 가격은 비싼 것은 수확량이 적은 것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장마와 가뭄 등에 영향을 받으면서 그나마 이 수확량도 일정하지 않다. 작년 국내 농가의 팥 재배면적은 3834ha(3834만㎡)으로 최근 5년 중 가장 작다. 최근 팥 수요가 증가하고, 가격이 우상향하는 추세를 감안하면 국내 팥 재배 면적을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일선 농가에서는 재배면적이 증가하면 가격 하락이 불가피한 만큼 이를 늘리지 않고 있다.송석보 국립식량과학원 밭작물개발과 연구사는 “국산 팥은 건강을 고려하는 일반 소비자들만 구입하고 가공식품업체는 가성비가 좋은 중국산을 사용하고 있다”며 “식품업체가 농가와 직접 연계해서 우수한 국산 품종의 팥을 사용한다면 국내 팥 재배환경이 한층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성당과 묘역, 문화재 된다
-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기념성당과 묘역이 국가등록문화재가 될 전망이다. 20일 문화재청은 ‘안성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성당’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하고, ‘1950년대 낙하산 블라우스’ ‘1960년대 신생활복’과 ‘목포측후소 기상관측 기록물’을 등록 고시했다.‘안성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성당’(사진=문화재청).‘안성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성당’은 한국 최초 천주교 사제인 김대건 신부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성당 및 묘역들로 해당 유구들을 통해 한국 천주교의 발전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기념성당의 원형이 상당히 잘 유지되어 있고, 성당 앞에 위치한 묘역들이 성당의 상징성·장소성을 더욱 잘 보여준다.‘1950년대 낙하산 블라우스’는 6·25전쟁 직후 대구 피난시절 디자이너 최경자가 폐낙하산을 재활용해서 제작해 판매하다가 인기를 얻자 수입한 나일론 원사를 편물로 제직해 만든 블라우스이다. 당시 사치품으로 분류돼 수입이 금지된 나일론 섬유가 여성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게 된 당시 시대상황과 편물기술, 봉제 기술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이다. ‘1960년대 신생활복’은 국민의 의복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신생활복장’을 제정하고 이를 널리 보급시키기 위해 전개한 국민재건운동의 단면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이 역시 최경자 디자이너가 디자인했다. 당시 생활복식사와 한복의 현대화과정을 엿볼 수 있는 가치가 있다. 당시 정부가 제시한 신생활복의 표준안을 재해석해 저고리와 치마를 분리하지 않은 원피스 형과 저고리는 단추로 여미고 탈부착형 고름을 달아 장식 기능을 더하는 등의 디자인을 했다. ‘목포측후소 기상관측 기록물’은 1904년 3월 25일 전남 신안군 옥도리 제2 목포 임시관측소에서 공식적인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후 1963년까지 작성된 관측 자료다. 매일 5~6회씩 주기적으로 관측된 기후요소(기온, 강수, 바람, 기압, 구름 등)별 관측 값이 기록된 관측야장 524점과 이를 기초로 각각 월, 연 단위로 평균 및 극한값을 산출해 작성된 월보원부 55점, 연보원부 85점, 누년원부 16점으로 구성돼 있다. 또한 기상현상의 발생 일시, 강도 등 주요 특성이 상세히 설명돼 있다. 관측기기의 오차를 보정하는 등 현대 기상관측에 준하는 수준의 기록이 이루어졌다는 특징을 지녔다.‘1960년대 신생활복’(사진=문화재청).
- (영상)베를린 호텔서 수족관 터져…열대어 1500마리 떼죽음
- [이데일리 이재은 기자] 독일 수도 베를린의 한 호텔 안에 있는 초대형 수족관이 터져 2명이 다치고 투숙객 350여명이 대피했다. 수족관 안에 있던 열대어 1000여마리는 떼죽음을 당했다. 16일 발생한 아쿠아돔 사고로 수족관 안에 있던 열대어 1500마리가 떼죽음을 당했다. (사진=AP통신)16일(이하 현지시간) 독일 rbb방송,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5시 45분께 베를린 대성당 인근 돔 아쿠아레 래디슨 블루 안에 설치된 높이 16m, 너비 11.5m의 수족관이 터졌다.이 사고로 수족관을 채우던 소금물 100만L와 유리 등 잔해가 건물 밖으로 흘러나왔고 수족관 안에 있던 100여종의 열대어 1500마리가 죽었다. 투숙객 350여명에게는 대피 명령이 내려졌다.또 수족관이 부서지며 나온 유리 조각에 2명이 다쳐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독일 수도 베를린의 한 호텔 안에 있는 초대형 수족관이 터져 2명이 다치고 투숙객 350여명이 대피했다 (영상=로이터)한 목격자는 “아주 큰 소리가 났고, 초대형 수족관이 깨진 것을 목격했다”며 “앞으로 나가 봤더니 쓸려 나온 여러 시설물이 도로에 흩어져 있었다”고 설명했다.현장에 출동한 경찰과 소방당국 인력 100여명은 인근 도로의 차량을 통제하고 추가 부상자가 있는지 수색하는 동시에 건물의 안정성을 조사하고 있다.아쿠아돔 사고로 수족관 안에 있던 소금물 100만L가 유리, 가구 잔해 등과 흘러나왔다. (사진=AP통신)경찰은 큰 소리와 함께 수족관이 터졌다며, 수족관이 설치됐던 호텔의 전면 중 일부는 도로로 날아갔다고 설명했다.소방 당국은 “수족관 안에 있던 물은 건물 밖 도로까지 완전히 흘러나왔다”며 “높은 수압으로 여러 물건이 휩쓸려 도로에 흩어져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16일 아쿠아돔 사고 이후 폐허가 된 호텔 내부 (사진=AP통신)이번 사고를 두고 영하 10도 이하의 기온으로 수족관 탱크에 금이 갔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으나 경찰은 정확한 증거가 없으며 현재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경찰 대변인은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에 제삼자 범행 가능성은 없다고 전했다. 수족관이 테러나 공격에 의해 파열된 단서가 전혀 없다는 취지다. 소방당국은 건물 벽과 천장에서 균열을 발견했지만 이 틈이 수족관 파열 이전에 발생했는지, 사고로 인한 결과인지는 불명확하다고 말했다.이리스 슈프랑어 베를린시 내무담당 국장(사회민주당 시의원)은 “첫 단서를 봤을 때 자재 피로도가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고 발생 전 아쿠아돔의 모습 (사진=AP통신)이번 사고가 발생한 아쿠아돔은 래디슨 블루 호텔 안에 있는 수족관으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아크릴 유리로 된 수족관 안을 통과할 수 있는 구조다. 아쿠아돔은 2003년 개장했으며 지하 수족관에는 수천마리의 가오리, 상어, 해마, 문어, 열대어 등이 살고 있다. 이 어종들은 다른 수족관으로 옮겨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건물은 전기 공급이 중단된 상태다.
- [여행]영화 ‘탄생’의 배경이된 ‘나바위’를 찾아가다
- 영화 ‘탄생’의 배경이 된 전북 익산의 나바위성당[익산(전북)=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성령이 하시는 일은 모르지만, 지금 제 가슴이 뜨겁습니다.”영화 ‘탄생’ 중 청년 김대건(윤시윤 분)의 대사다. ‘탄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가톨릭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어린 시절부터 마지막 순교까지 시간순으로 전개해 나가는 영화다. 그의 삶을 모랐더라도 이 영화 한 편으로 충분히 들여다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영화 속 김대건에게 집중하다 보면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도록 이야기가 이어진다. 영화에서는 그가 최초의 신부라는 꿈을 품게 된 시점부터 마카오 유학을 시작으로 프랑스 군함 승선, 동서 만주 육상과 서해 횡단, 그리고 백령도 입국로 개척 등 실제 김대건 신부가 겪고 펼쳤던 일들이 펼쳐진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김대건은 페레올 주교 다불뤼 신부와 함께 서해를 통해 황산포 나루터(나바위)에 첫발을 내디딘다. 그곳이 지금의 전북 익산 망성면 화산리다. ◇우리나라 최초의 가톨릭 사제 ‘김대건 신부’김대건 신부는 우리나라 최초의 가톨릭 사제다. 그는 1821년에 태어났다. 전국에 콜레라가 창궐하던 시기다. 몇 달 새 1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그 난리 통에 미래의 성인(聖人)이 탄생한 것이다. 출생지는 충청도 면천군 송산리. 지금의 충남 당진시 솔뫼로 132번지다. 솔뫼는 ‘소나무가 많은 산’의 우리말 지명이다.이곳은 4대에 걸쳐 11명이 순교한 김대건 가문의 ‘신앙의 못자리’다. ‘한국의 베들레헴’으로도 불린다. 그가 태어났을 때 증조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는 순교한 뒤였다. 18세 때는 아버지가 순교했다. 그 또한 26세로 뒤를 이었다.국내 유일 한옥과 고딕양식이 조화를 이룬 나바위성당그가 일곱 살 나던 해에는 온 집안이 박해를 피해 경기 용인 골배마실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소년기를 보낸 그는 15세 때 프랑스인 신부 피에르 모방의 눈에 들어 신학생으로 발탁됐다. 골배마실에서 3㎞ 떨어진 은이(隱里·숨어 사는 마을) 공소에서 ‘안드레아’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해 동갑내기인 최양업과 한 살 위인 최방제도 신학생으로 뽑혔다. 세 소년은 곧 파리외방전교회가 중국 마카오에 세운 조선신학교에서 신학과 라틴어, 프랑스어, 철학 등 서양학문을 배우기 시작했다.나바위성당 역사관에 걸려있는 김대건 신부 초상화24세 때인 1845년 8월 17일, 그는 상하이 진자샹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조선인 최초로 사제품을 받고 신부가 됐다. 2주일 후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 11명의 교우와 작은 어선 ‘라파엘호’를 타고 귀국길에 올랐다. 그러나 풍랑으로 산둥성을 거쳐 제주 해안까지 표류하다 42일 만인 10월 12일 밤에야 금강 하류인 전북 익산 나바위에 도착했다. 교회사에 따르면, 라파엘호가 닻을 내린 화산리가 조선 본토 중 첫 착지처(着地處), 즉 처음 발을 내디딘 곳으로 기록돼 있다. 이후 김대건 신부는 약 1년간 조선교구 부교구장으로 전교하다 관헌에게 붙잡혀 1846년 9월 16일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했다.나바위성당 예수상과 나바위성당◇국내 유일 한옥과 고딕 양식 갖춘 ‘나바위성당’김대건 심부가 순교한 지 36년 뒤, 1882년 나바위에 공소가 설립됐다. 나바위성당인 그로부터 한참 뒤인 1907년에 건립됐다. 명동성당 설계자인 푸아넬 신부의 설계로 처음엔 한옥으로 지었는데, 이후 흙벽을 벽돌로 바꾸고, 성당 입구에 고딕식 벽돌로 종탑을 세웠다. 국내에서도 유일하게 ‘한옥’과 ‘고딕’ 양식을 보여주는 성당이다. 채광을 위한 팔각형 창문은 밤이면 더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소나무와 조화를 이룬다. 원래 이름은 화산 천주교회였지만, 지금은 ‘나바위성당’으로 개명했다. 이러한 역사성과 건축양식으로 인해 나바위 성당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성당 내부에는 남녀 자리를 구분하던 칸막이 기둥이 남아 있다. 창문에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니라 한지가 붙어 있다. 채색 유리판을 구하기 어려웠던 당시 신자들이 한지에 그림을 그려 붙이던 전통은 10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김대건 신부 순교비나바위성당은 국내 손꼽히는 천주교 성지답게 그에 따른 볼거리를 갖추고 있다. 김대건 신부 순교비가 첫번째다. 김대건 신부 순교비는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에 세워졌다.두 번째 볼거리는 성당 뒤편 화산까지 가는 길에 조성한 ‘십자가의 길’이다. 이 십자가의 길을 따라 정상에 오르면 ‘김대건 신부 순교 기념비’와 ‘망금정’이 있다. 화강석 축대 위에 설치된 순교 기념비는 총 높이가 4.5m다. 이곳이 김대건 신부가 사제품을 받고 조선에 첫발을 내디딘 곳임을 알리기 위해 김 신부가 타고 왔던 ‘라파엘호’와 똑같은 크기로 지어졌다.나바위성당 내부순교 기념비 뒤쪽으로 금강 황산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망금정이 있다. 망금정이라는 이름은 ‘아름다움을 바란다’는 뜻이다. 1915년 베로모렐 신부가 초대 대구교구장인 드망즈 주교의 피정을 돕기 위해 지은 정자다. 예전에는 망금정 아래까지 금강 강물이 넘실거렸으나 1925년 일본인들이 이 일대를 간척하면서 금강 줄기가 바뀌어 지금은 평야로 변했다.망금정이 있는 너럭바위 아래 바위 벽면에는 마애삼존불이 그려져 있다. 천주교와 불교가 한곳에서 공존하고 있는 모습이 색다르면서도 묘한 동질감을 준다.1915년 베로모렐 신부가 초대 대구교구장인 드망즈 주교의 피정을 돕기 위해 지은 정자인 ‘망금정’◇국내 대표적인 천주교성지 ‘여산면’여산 땅은 국내 대표적인 천주교성지로 불린다. 이 땅에는 모두 7곳의 천주교 순교지가 있다. 숲정이·뒷말·배다리·장터·기금터·감옥터·백지사터다. 여산성당은 1951년 건립됐다. 1868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천주교 신자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당시 고산·지산·금산 등에서 붙잡힌 김성첨 가족 6명 등을 포함해 잡혀온 천주교 신자들이 동헌 앞 백지사터와 감옥, 숲정이, 장터 등지에서 순교했다.백지사터여산성당에서 길을 나서 걸음을 조금 옮기면 백지사터다. 여산동헌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대원군 집정 당시 병인박해가 계속 진행돼 대학살이 감행되는 동안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한 장소다. 백지사는 당시로는 매우 잔인한 처형 방법이었다. 사형 집행인들은 이곳에서 천주교인의 얼굴에 물을 붇고 백지 붙이기를 여러 번 거듭해 질식사시켰다고 한다. 그만큼 조선 조정은 천주교인을 무자비하게 박해했다.숲정이성지는 여산동헌 부근에 있던 숲으로, 병인박해 때 천주교인들을 처형했던 곳이다.백지사터 바로 위는 여산동헌이다. 천주교인은 물론 죄인들을 문초하던 곳이다. 동헌에는 옛 부사들의 선정비와 불망비, 대원군이 천주교를 타도하도록 세운 척화비가 있다. 이 척화비는 이후 누군가가 뽑아 받침으로 썼고, 다시 마을의 한 클럽 표지판이 되기도 했다. 1975년 당시 여산성당 주임신부가 발견해 지금의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여산동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숲정이성지가 있다. ‘숲정이’는 순우리말로 ‘마을 근처에 있는 숲’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여산동헌 부근에 있던 숲으로, 병인박해 때 천주교인들을 처형했던 곳이다. 기록상으로는 당시 이곳에서 22명이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순교자들의 무덤은 천호산 천호 공소 부근에 있다. 이곳에서 신앙의 여부와 상관없이 그들의 삶을 되돌아보면 마음이 먹먹해진다.사형 집행인이 천주교인의 얼굴에 물을 붇고 백지 붙이기를 여러 번 거듭해 질식사 시킨 ‘백지사터’.
- 시간마저 쉬어가는 곳, 켜켜이 쌓인 역사를 만나다[여행]
- 다낭의 랜드마크인 바나힐 골든 브릿지[다낭·호이안·후에(베트남)=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베트남 땅은 길다. 북부의 수도 하노이에서, 남부 도시 호찌민까지 1600km에 달한다. 북쪽에 있는 행정 수도 하노이와 남쪽의 경제 수도인 호찌민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 무역항으로 자연스럽게 커진 도시가 바로 다낭이다. 지금은 베트남 다섯개 직할 시 중 하나로 성장했다. 적당한 도시 규모 덕에 있을 건 다 있는 그야말로 살기 좋은 환경을 지닌 도시다. 베트남 중부지방을 여행한다면 다낭을 중심에 두는 것이 좋다. 다낭에 숙소를 두고 남쪽의 호이안과 북쪽의 후에를 하루씩 여행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여행법이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도시 ‘다낭’여행객에게 다낭은 매력적인 도시다. 도시 중심을 가로지르는 한강과 손짜반도라는 독특한 지형 탓에 마치 섬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준다. 특히 손짜반도에서 호이안 해안까지 남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미케해변은 깨끗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북쪽으로 이어지는 랑코해변 역시 마찬가지다. 여행객들은 이 해변들을 중심으로 들어선 호텔이나 리조트에서 머물며 휴식을 취하다 맛집을 찾거나, 시내를 탐방하고 한강 주변을 걸어보며 야시장을 찾는다.볼거리도 있다. 다낭 대성당과 까오다이 사원, 베트남 최대 불상인 해수관음상 및 영응사(링엄사) 등은 다낭을 대표하는 유적이다. 다낭 외곽에 자리한 오행산도 한국인 여행객이 즐겨 찾는다.손짜반도에서 호이안 해안까지 남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미케해변최근에는 가장 인기 있는 공간은 ‘바나힐’(바나산)이다. 바나힐은 쯔엉선산맥 해발 1487m에 위치한 테마파크. 프랑스 식민 시절 프랑스인들이 베트남의 습하고 더운 날씨를 피해 바나힐 꼭대기에 별장을 지어 휴양지로 사용했다. 프랑스인들이 돌아간 이후 방치돼 있던 바나힐은 베트남 정부의 지원과 베트남 최고의 기업인 ‘썬그룹’의 투자를 통해 지금의 테마파크로 재탄생했다.바나힐에 올라가 보면 고대 프랑스의 어느 작은 마을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마을을 둘러싼 아기자기한 집과 광장, 그리고 교회도 볼 수 있다. 프랑스의 로맨틱하고 멋진 공간들이 이곳에 그대로 구현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현지인은 물론 한국인 여행객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바나힐에서는 하루가 짧다. 테마파크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어트렉션을 즐길 수 있어서다. 대표적인 어트렉션으로는 스위스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열차를 타고 꽃 정원과 와인창고, 리웅 파고다를 둘러보는 ‘산악열차’와 3D, 4D, 5D 영화 시스템, 29m의 자유 낙하 타워, 암벽등반 체험, 90가지가 넘는 무료 게임을 제공하는 ‘판타지파크’, 스피드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체험해봐야 할 ‘알파인 코스터’가 있다.다낭의 랜드마크인 바나힐 골든 브릿지바나힐에서 가장 이름난 곳은 ‘골든 브리지’다. 해발 1402m의 높이에 길이 150m의 이 다리는 두 개의 거대한 손이 다리를 받들고 있는 모양인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2018년 6월 다리가 개방되자 세계 각지에서 온 많은 관광객과 언론에 의해 유명세를 떨치며 여러 차례 국내 및 국제상을 받았을 정도다.◇길에서 만나는 소소한 풍경의 ‘호이안’다낭에서 30km 정도 떨어진 남쪽에 자리한 호이안은 유네스코 문화 도시다. 다낭을 찾는 여행객들에게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이 도시를 처음 방문하면 몇 가지 의문이 든다. ‘사람들이 왜 이리 많은가’가 첫번째 의문이다. 특히 서양 사람들이 많다. 두번째는 큰 전쟁을 치른 베트남에서 유독 오래된 건물들이 이곳에만 많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세번째는 중국식, 일본식, 유럽식 건물들이 뒤섞여 있는 건축양식들이다.호이안 구시가지 길거리 풍경여기에 대한 답은 호이안의 역사에 있다. 무려 1000년 전부터 해상 무역항으로, ‘해상 실크로드’의 중심 도시였다. 투본이라는 큰 강이 호이안 도심을 스치며 흐르고 있어 배가 드나들기 쉬웠기 때문이다. 과거 거친 파도에 시달리던 배가 이곳으로 들어와 휴식을 취하고 자연스럽게 물물교환을 하게 되면서 무역항의 여건을 갖추게 됐다. 그러던 중 15~16세기부터 서양 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호이안은 서양과 동양이 만나는 해상 무역의 중심으로 번성하기 시작했다.호이안 구시가지 밤거리 풍경당시 이곳에는 중국, 일본, 네덜란드, 인도 등에서 온 상인들로 북적였다. 그러면서 차츰 각국의 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집단 거주 지역도 생겨났다. 이들의 생활 문화는 당시 건축물에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그중 몇몇은 아직 올드타운(구시가지)에 남아 있다. 이 모습에 유네스코는 지난 1999년 호이안 올드타운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바 있다.호이안은 작은 마을이다. 오밀조밀하고 아기자기해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유럽 사람들이 이곳에 오면 며칠씩 진을 치고 갈 정도. 관광객이 꼭 들르는 장소는 중국인 거리의 ‘광조회관’과 ‘복건회관’, 일본인 거리를 이어주는 ‘내원교’ 등이 있다. 이 외에 ‘꾸언탕가’, ‘풍등의 집’, ‘쩐가사당’ 등도 인기가 있다.호이안 투본강 강위로 소원배를 타고 여유를 즐기는 여행객들그중 ‘프레셔스 헤리티지 뮤지엄’은 꼭 한번 들러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베트남 모든 소수민족의 소중한 유산을 기록으로 남기려 한 프랑스 사진작가 레한의 발자취가 그대로 담겨 있는 공간이다. 19세기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지어진 고택이 박물관으로 개조돼 2016년 문을 열었다. 레한 작가가 2010년부터 10년간 직접 촬영한 200점 이상의 사진과 부족장들이 기꺼이 기증한 전통의상이 전시돼 있다.호이안 투본강 강위를 빼곡히 채운 소원배와 꽃등이름난 관광지에서 만나는 오래된 건물이나 풍경도 좋지만, 호이안에서 가장 마음에 꽂히는 것들은 길에서 만나는 소소한 풍경이다. 그리고 곳곳에 있는 카페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거나, 수공예품을 돌아보며 천천히 걷다 보면 시간도 금방 지나간다. 여기에 투본강에서 보트를 타고 도자기 마을과 목공예 마을을 돌아보는 것도 호이안을 즐기는 방법이다. 특히 저녁 어스름이 질 무렵부터 투본강 위를 빼곡히 채운 소원배와 소원 꽃등이 강 위로 휘황찬란하게 밝히는데, 그 모습 또한 이색적이면서도 몽환적이다.◇베트남의 경주로 불리는 ‘후에’ 후에는 베트남의 대표적인 문화유적 도시다. 우리로 치자면 경주나 공주, 부여, 익산 같은 도시다. 다낭에서 후에를 가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산을 넘거나, 터널을 통과하는 방법이다. 2005년 개통한 하이반 터널을 이용하면 후에까지 두 시간가량 걸린다. 대신 하이반 고갯길을 넘는 구도로로 가면 한 시간이 더 걸린다. 다낭에서 후에까지 왕복한다면 두 길을 모두 이용해 보는 것도 좋다. 하이반 정상(496m)에는 작은 카페가 있는데, 베트남 청춘남녀들이 오토바이를 몰고 와 이곳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다낭의 랜드마크인 바나힐 골든 브릿지후에는 베트남 국토를 통합한 최초의 왕조이자, 마지막 봉건왕조였던 응우옌 왕조가 수도로 삼았던 곳이다. 140여 년 전만 해도 베트남 왕조의 기세는 등등했다. 남부지역을 점령해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이루고는 중국 청나라와 대등한 황제국임을 자부했을 정도다. 1802년부터 1945년까지 145년간 베트남을 통치했던 응우옌 왕조는 13대 왕 바오다이가 호찌민의 베트남 민주공화국 독립 선언으로 퇴위당하면서 끝났다.이후 후에는 베트남 전쟁을 겪으며 도시 전체가 심각한 파손을 당했다. 이후 공산정권 초기에는 봉건시대의 유적이라는 이유로 방치돼 있다가 베트남 정부의 정책 변화 후 유적 복원을 시작했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지는 예전의 모습을 그나마 많이 간직하고 있어 1993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베트남의 마지막 왕조 응우옌의 궁터인 ‘후에성’후에 여행의 기점은 구시가지에 있는 ‘황궁’이다. 여기서 티엔무 사원과 뜨득왕릉, 카이딘 왕릉도 함께 돌아보는 것이 좋다. 하지만 유적지가 분산돼 있어 도보여행은 불가능하다. 단체 여행이 아니라면 일일 투어를 신청해 다녀올 수 있다. 후에 시내에서 출발하는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후에 황궁은 황제의 거처였기에 규모가 크고 곳곳의 장식도 화려하다. 중국의 자금성을 모방해 만들었다는 건축물들의 위용은 자못 당당하다. 황제가 앉았다는 금박으로 장식된 옥좌는 화려하게 번쩍이고, 기둥과 지붕을 타고 올라간 용 문양은 현란하다. 베트남 황실이 가졌던 무게는 이제 겨우 복원한 유적만으로도 충분히 짐작되고 남는다.인센스 향이 가장 좋다고 알려진 투이 쉬안 인센스 빌리지응우옌 왕조의 황제들은 재위 중 자신이 묻힐 무덤을 치장하는 데 몰두했다. 103명의 후궁을 뒀다는 뜨득 황제는 4년 동안 3000명의 군사를 동원해 자신의 무덤을 만들었다. 자신의 공적을 새길 20t짜리 비석을 50㎞ 떨어진 지역에서 운반하는 데만 꼬박 4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황제의 시신은 어디쯤 묻혔는지 알 수 없다. 200명을 동원해 황릉의 한쪽에 비밀리에 자신의 묘를 만들도록 한 뒤 이들을 모두 몰살했다고 전한다.카이딘 황제는 한술 더 떠 11년 동안 무덤을 만들면서 국고를 탕진했다. 그가 죽은 뒤 세워진 공덕비 뒷면에는 한때 황제를 비난하는 낙서와 욕설로 가득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후에의 봉건왕조 유적은 이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외국인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주요 관광수입원이 되고 있다.후에 카이딘 황제릉◇여행메모=베트남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베트남의 국영 항공사인 베트남항공을 이용하는 것이 혜택이 많다. 베트남항공의 가장 큰 장점은 국제선을 이용하면서 여행기간 중 현지 이동을 위해 국내선도 함께 구매할 경우, 국내선 항공료가 무료라는 점이다. 단 스톱오버의 경우는 소정의 이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베트남항공은 현대식 와이드 보디 항공기인 보잉 787과 에어버스 A350을 동시에 운항하는 아시아 태평양 최초의 항공사다. 한국에서는 베트남의 하노이, 다낭, 호찌민, 나짱 등 총 4개 도시와 연결되는 직항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인천/부산~하노이/호찌민 노선에 최신예 항공기인 에어버스 A350-XWB와 보잉 B787-10 드림라이너를 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