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렬
  • 영역
  • 기간
  • 기자명
  • 단어포함
  • 단어제외

뉴스 검색결과 1,972건

  • (초점)이건희 회장, 전경련 참석등 대외활동 활발
  • [edaily 김수헌기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최근 들어 그룹 경영을 꼼꼼하게 직접 챙기고, 재계 모임에도 자주 모습을 내비치는 등 활발한 대내외 활동을 벌이고 있어 재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회장은 12일 전국경제인연합회 9월 회장단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회장이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한 것은 지난 5월 이후 처음이다. 그러나 6월에는 회장단 회의를 대체하는 골프모임 만찬에 나갔고, 8월은 휴가철이라 회장단 회의가 없었음을 감안할 때 7월 한차례를 빼놓고는 5월 이후 회장단 모임에 다 참석한 셈이다. 이회장의 이같은 행보에 대해 재계 일각에서는 그가 내년 2월 선출예정인 전경련 회장직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재계에서는 최근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이 기자간담회에서 "전체 회장단을 화합시키고, 재계를 리드할 수 있는 인물이 추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전경련 회장은 재계 대표성을 갖기 때문에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하기 싫다고 해서 안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한 사실을 볼 때 이건희 회장 정도의 "실세"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하고 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그러나 "이회장이 전경련 회장직에는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재계 모임에 자주 참석하는 것은, 재계의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고,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서로가 협조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하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기회가 되면 언제든지 재계모임에 나가겠다는 것이 회장의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이회장은 지난 5월 신라호텔에서 열린 회장단 회의 때 "해외출장이나 선약 등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재계 모임에 참석하겠다"면서 재계 화합을 강조했었다. 한편, 이회장은 올들어 특히 사장단 회의와 현장점검 등을 통해 그룹 경영도 직접 챙기고 있다. 계열사 경영진에게 직접 전화를 거는 일도 부쩍 늘었다는 것이 삼성측의 전언이다. 이회장은 4월~5월에는 전자, 금융계열사 사장단 회의을 주재하면서 자만하지 말고 글로벌 역량강화와 정도경영에 힘쓸 것을 지시했다. 또 서울과 제주 신라호텔에 머물면서 월드컵을 앞둔 호텔의 서비스수준을 직접 점검하기도 했다. 이어 올해 중반기에는 인재전략 사장단 워크숍과 디지털 제품 비교전시회에도 참석, 기술개발투자와 인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최근 한달여동안 일본에 머물면서 일본의 기술력, 중화권의 의욕과 노동력의 결합에 대비하기 위한 경쟁력 강화대책 수립 등을 지시하는가 하면 이달에도 부문별 사장단 회의를 열어 하반기와 내년 경영전략을 심도있게 논의할 예정이다. 삼성 관계자는 "올해 만 60세를 넘긴 이회장이 경영에 더욱 전념할 것"이라면서 "그러나 틈나는대로 재계 모임에도 꺼리지 않고 나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2002.09.12 I 김수헌 기자
  • (프라이머리 본드마켓 25시)LG카드 박광호 과장(상)
  • [edaily 하정민기자] 우리나라 채권시장는 발행잔액으로 400조원이 웃도는 거대한 시장이다. 한해 발행되는 채권만 200조원이 넘는다. 발행시장(primary market)은 자금이 필요한 기업, 국가 등을 채권 투자자와 연결시켜주는 시장이다. 발행시장은 하루에도 수조원의 자금이 오가는 거대한 채권시장의 근간을 이루는 곳이지만 유통시장만큼이나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채권시장 종사자들조차 발행시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랜기간 베일에 쌓여있던 채권 발행시장이 올들어 역동적인 변화를 나타내고있다. 듀얼FRN, 콜러블노트(callable note), 디지털노트(digital note) 등 갖가지 신종채권이 발행되면서 현선물 시장 및 금리스왑과 같은 파생상품 시장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 edaily는 채권발행의 제반 업무를 담당하는 각종 금융기관, 공사, 기업들의 발행 담당자들을 만나 발행업무의 상세한 과정을 들어보는 집중 시리즈를 연재한다. 그 첫번째 대상자는 LG카드 박광호 과장이다. 최근 카드업계의 눈부신 발전을 바탕으로 카드사들은 연일 채권을 찍어내며 발행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2000년 말부터 인버스FRN 등 다양한 신종채권들을 발행하는 데 앞장서 온 박 과장을 만나 수조원의 자금을 주무르는 카드업계의 채권발행 비법을 들어봤다. -LG카드 입사계기는 무엇인가요. ▲95년에 LG카드 인턴사원으로 근무했습니다. 1월부터 인턴으로 일하고 8월 졸업 후 정식으로 취직을 했죠. 사실 처음부터 카드사에 갈 마음은 없었어요. 그 때 당시에는 카드사들의 규모가 지금처럼 크지도 않았고요. 사실 그 당시 여자문제때문에 고민을 많이해서 원서를 제대로 내지도 못했어요. 하하 학교다닐 때부터 재무론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 과목을 열심히 들었는데 LG카드에 가면 금융팀에 바로 배치받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어느 회사보다는 부서를 고려한 거죠. 지금 인사팀장님으로 계신 상사께 "무조건 금융팀에 가겠다"고 말했고 부서배치도 그렇게 받았습니다. -금융기관의 트레이더를 생각해보진 않았습니까. ▲당시 공부 잘 하던 친구들은 종금사에 많이 갔는데 저는 성적이 안 돼서 못갔습니다. 그 친구들은 지금 중개업무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LG카드의 전체적인 자금조달 흐름을 설명해주시죠. ▲카드사들은 수신이 없으니 차입규모가 상당히 크죠. 저희 자산규모가 30조입니다. 자금부서에서 조달업무를 담당하는 팀이 차입과 유동화팀으로 나뉩니다. 차입팀에서 채권발행, CP발행, 콜 머니 조달 등을 담당하고 유동화 팀, 즉 ABS 담당팀이 따로 있습니다. 지금은 45:55 정도로 ABS 담당팀 비중이 좀 더 커졌습니다. 차입 만으로 20~30조원씩 자금조달하기에는 위험이 너무 크니까요. 회사가 성장하면서 유동화시장을 적극 이용하겠다는 방침이 섰습니다. 실제 지난해 유동화시장에서 저희가 발행한 물량만 20%를 넘게 차지할 겁니다. -채권발행 비중이 줄었다고 해도 채권발행 금액이 13~14조원 정도 되는군요. 무척 큰 금액인데요. ▲현재 잔액기준으로 12조원 정도 됩니다. 5월달에는 CP발행을 많이했고 채권발행은 3000억원 정도였지만 현 시장상황에서야 상당히 큰 금액이죠. 2000년에는 제가 발행한 채권만 4조원이 넘었습니다. 지난해에는 그룹 전체의 유동성을 고려, 차입금을 가급적 안 늘리는 쪽으로 업무를 진행해서 2조5000억원 정도 발행했죠. -위험관리는 어떻게 합니까. ▲자산 듀레이션을 짜서 관리하는 RM(risk management)팀이 있구요. CP 및 채권 만기만 저희가 결정합니다. RM팀이 이전에는 ALM(asset liability management)팀이라고 불렸는데 운 좋게 ALM팀 설립당시 업무를 관여했어요. 그 때 일이 채권발행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있습니다. -FRN 발행 붐을 조성하신 걸로 아는데요. 그 외 몇몇 신종채권들을 가장 먼저 발행하셨죠. ▲카드채 FRN을 제일 먼저 발행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2000년이었는데 처음에 3000억원을 발행했어요. 당시 투자자의 요구가 있어서 발행은 쉽게 됐는데 가격을 저희한테 불리하게 발행한 감이 없지않아요. 하하. 지금이야 스왑시장이 활성화돼서 스왑과 맞춰보면 가격이 유리한지 아닌지 분명하게 나오지만 그 때는 달랐습니다. 저희도 스왑을 잘 몰랐고 스왑을 했지만 비교도 어려웠어요. 이후 CD금리가 엄청나게 하락하면서 저희한테는 상당한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당시 발행했던 2년 채권들의 만기가 돌아오는데 상당히 잘했다고 자부합니다. 당시 FRN 1000억원을 발행하고 나서 저희가 스왑을 하면 스왑시장 전체가 흔들렸습니다. 비드-오퍼 스프레드도 20bp씩 됐고 거래할만한 은행도 2~3곳에 불과했습니다. -인버스FRN 발행은 언제 했습니까. ▲지난해 11월에 했습니다. 그때 인버스FRN과 기본 FRN을 합해서 금리수준을 6.5% 정도로 맞췄어요. 규모는 각각 1000억씩으로 총 2000억원을 발행했습니다. 그때는 다시 6%대 금리를 보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와서 보니 잘 한 것 같습니다. -여러 신종채권 발행을 처음으로 시도했는데 이유가 있습니까. 첫 발행이면 리스크도 클 텐데. ▲보고체계의 강점이죠. 보고체계가 순발력을 갖춘 구조라야 가능한데 저희는 기본적으로 매우 잘 돼 있습니다. -보고체계를 설명해주시죠. ▲채권발행의 책임과 권한이 상당부분 실무자에게 이양이 됐습니다. 매일같이 선네고를 하는데 금액이 크지않다면 제가 확정을 하고 팀장님께 보고하고 서류만 올려보내면 됩니다. 발행금액이 1000억원 정도 넘어가면 기안을 만드는 정도입니다. 작년에는 스왑 한 건하기도 힘들었어요. 그때는 모든 걸 사장님께 싸인을 받았습니다. 보고서 만들고 내려와보면 다시 스왑금리가 변해있는 일이 종종 있어서 가격을 맞추기가 매우 어려웠어요. 그래서 고안한 방법이 가격에 버퍼를 많이 발생시켜 보고를 드리고 그 안에서 확정을 지었습니다. 올해 위임장 전결규정이 바뀌고 나서 한층 탄력적인 대응이 가능해졌습니다. -상사에게 시장동향도 자주 보고합니까. ▲네. 채권발행도 무조건 사장님께 보고를 합니다. 신종채권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제가 "투자자 입장에서도 괜찮고 발행자도 조달금리를 낮추고 스왑뱅크도 먹을 수 있는 구조가 가능하다" 고 설명해드렸습니다. 그게 좀 의아하셨는지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어보시더군요. 제가 생각하기엔 이 모든 것이 수익률곡선에서 나온다고 보고 이러저러하다고 열심히 설명을 했죠. 어쨌든 그 분들이 전적으로 맡겨주신 덕에 발행이 쉬웠습니다. 스왑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그 부분을 정리해드리기도 했습니다. 스왑을 얼마 규모로 하고, 누구랑 할 것이냐는 내부 방침도 새로 만들었죠. 거래 상대방 신용등급도 살펴보고 디폴트 리스크도 산출해서 각 업체나 스왑은행과 거래할 수 있는 비중을 산출했습니다. 윗분들도 서류가 계속 쌓이니깐 생각이 달라지셨나봐요. 예전엔 결제받으러 올라가면 기안서만 잔뜩 놓여있었는데 지금은 채권, 스왑시장 현황 등 관련 서류를 많이 가지고 계시더군요. 하하 -신종채권을 처음 판매할 때는 어땠나요. 투자자들도 처음 보는 거니까 당황했을 텐데요. ▲어려웠죠. 한번은 부장님이 다음날 출장이신데 인버스FRN만 1000억원을 네고중이었습니다. 부장님은 보고를 해야하는데 출장이시니깐 무척 바쁘셔서 보고할 시간이 없었어요. 제 생각에는 "1000억원 인버스FRN는 정말 좋은 기회니까 다 해야한다. 그리고 헤지를 위해서 보통 FRN을 내일 시장이 열리자마자 매수하자"고 말했습니다. 부장님이 놀라시면서 "다 살 수 있겠냐"고 하세요. 그래서 "하다 안되면 옵션CP라도 하겠다"고 강경하게 말씀드렸죠. 결국 다음날 다 잡았습니다. 당시 금리수준이 "CD+70bp" "CD+80bp" 였는데 "CD+100bp" 으로 잡았습니다. 그렇게 잡았어도 나중에는 먹으니까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제가 딜러는 아니지만 그럴 때 이 일의 묘미를 느끼죠. 출장간 부장님이 홍콩에서 다시 전화를 하시더군요. "시장에서 잡아서 다 헤지했으니까 편하게 돌아오시라"고 말했죠. -최초 인버스FRN을 산 투자자는 기억하십니까. ▲외국계 투신사에서 가져갔는데 나중에 바이백해달라고 왔더군요.인버스FRN은 금리가 하락해야 좋은데 지난 연말에 금리가 많이 올랐잖습니까. 현재까지 들고왔으면 좋았을텐데 12월말에 금리가 막 올라가니까 겁이 난 모양이더라구요. -듀얼FRN은 좀 나중에 하셨죠. ▲듀얼FRN은 다른 캐피탈사에서 먼저 발행했습니다. 오퍼를 받긴했는데 금리수준이 맘에 들지않았어요. 먼저 발행한 쪽은 "테이블+a"로 발행했는데 테이블 파나 언더로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밀어붙었습니다. 설날 지나고 발행했는데 처음에는 파로 찍고 나중에는 언더로 했습니다. -듀얼FRN은 최근 유행하는 콜러블이나 디지털에 비해 발행물량이 많았습니다. 누가 사는지 체크하십니까. ▲누가 사 가는지 다 파악합니다. 그때 듀얼FRN이 정말 열풍이었습니다. 말그대로 패션이었죠. 은행들도 사고 투신도 사고 보험도 사고 골고루 들어왔습니다. 발행사들끼리 경쟁도 심해요. 브로커들도 "어디도 했는데 너희도 이거 해라" 라는 식으로 찾아오죠.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2002.06.12 I 하정민 기자
  • (edaily 인터뷰)홍석주 조흥은행장
  • [edaily 양미영기자] "미래 금융지도 다시 그려야..지주사 절실" "파도가 휩쓸고 간 모래사장을 보셨습니까. 모습은 같지만 예전의 모래는 아닙니다. 고객도 마찬가집니다. 향후 5년뒤 지금 은행이 영위하는 고객은 모두 빠져나갈 것입니다. 미래상황을 파악해 금융지도를 다시 그려야 합니다. 그 대안으로 지주회사를 택했습니다." `40대 토종행장` 명함을 단 홍석주 조흥은행장은 edaily와 가진 인터뷰에서 지주회사 설립의 당위성을 이렇게 강조하고 금융권의 변화추세에 맞춰 지주사 설립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은행산업의 승부는 신용카드, 투신운용, 방카슈랑스 3대 핵심부문에서 결정된다"며 "이에 역점을 둬 연내 지주사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금융권 화두인 합병에 대해서는 "항상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며 "서울은행의 경우 모든 은행에 제안서가 갈 경우 인수전에 뛰어들겠지만 정부의 자격제한이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조흥은행 홍석주 행장과 가진 일문일답. - 지주회사를 채택하지 않은 금융회사 중에서도 성과가 큰 사례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또 미국의 경우 지주사 도입후 성공한 그룹과 그렇지 못한 그룹이 명확히 차별화되는데 지주사 설립의 당위성을 설명해 달라. 지주회사 설립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핵심역량은. ▲현 금융산업의 발전구도를 볼 때 지주회사 설립은 대세다. 현 상태로 은행경영을 영위한다면 생존할 수 없다. 은행들이 주력하고 있는 고유 업무들은 향후 5년안에 독립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추세에 맞춰 분사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게 급선무다. 결국 승부는 신용카드, 자산운용, 방카슈랑스 3대 핵심부문에서 결정될 것이다. 조흥은행도 이에 역점을 둬 지주사 설립을 연내 추진할 계획이다. 은행도 수익을 내야 살 수 있다. 지주사는 수익력을 높일 수 있는 필수요건이다. 현재 분사를 추진중인 신용카드의 경우 은행 밖으로 끌어냈을 때 얻을 수 있는 수익력은 기존의 배에 달한다.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고객 데이터베이스도 무궁무진하다. 통합된 고객정보를 활용, 교차판매를 통해 수익력을 높일 수 있다. 단순히 자회사로 분리하는 게 아니라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으로 성장시킬 것이다. 지주사를 세우면 효과적인 제휴 파트너도 유치할 수 있다. 신규사업의 진입과 퇴출도 자유로워진다. 고객들에게는 차별화된 브랜드를 통해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금융산업 변화의 보루로 지주사 택했다 - 자회사 설립에 걸림돌이 많아 보인다. 분사 및 제휴의 진행상황은. 또 방카슈랑스 등 신규로 추진중인 사업은 진전이 있나. ▲지주사 설립은 이제 시작단계다. 뭔가를 기대하는 건 아직 이르다. 신용카드의 경우 분사 인가를 위한 사전절차를 진행중이다. 또 전략적 제휴를 통한 지분매각은 이미 알려진대로 해외투자가들이 의사표명을 한 상태다. 주간사를 통해 제휴가 추진되고 있다. 지켜봐 달라. 방카슈랑스는 우선 국내외 선진 금융기관과의 제휴 등 현재 추진전략 수립단계며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 직원연수 등 내부 준비는 순조롭다. - 지주사 설립을 위해 내부적인 정비를 많이 한 것으로 안다. 경영전략부와 금융지주회사설립국 등이 그 예인데 구체적인 역할은 어떻게 되나. 지주사 설립 일정은. ▲경영전략부는 은행의 중장기 발전전략과 향후 지주사 전략 수립을 담당한다. 경영전략부의 경우 향후 3~5년, 길게는 10년까지 중장기적인 플랜을 짜게 된다. 현재 지주사 설립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작성중이며 완성되는 대로 지주사 인가 등 관계당국과의 협의를 추진할 계획이다. 금융지회사설립국은 지주사 설립을 위한 실무를 담당하게 된다. - 국내외 지주사들 가운데 특별히 벤치마킹하고 있는 모델이 있는지. ▲어느 한 곳을 표방하기 보다는 국내외의 여러 모델을 고려하고 있다. 과거 규모경쟁 시대의 백화점식 구색 맞추기에 그치지 않겠다. 은행의 가장 큰 강점인 다양한 채널과 고객 데이터베이스, 결제기능 등을 최대한 활용하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겠다.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통해 최적의 모델을 모색하고 있다. - 앞으로 은행권에서 대형화 및 겸업화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인식이 강하다. CEO로서 은행산업의 현주소를 간단히 짚어본다면. ▲지금까지 은행들은 어느 정도의 자산 건전성을 확보했다. 이제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수익경쟁이 본격화될 것이다. 향후 금융권의 선도 경쟁력은 고객 니즈의 다양화와 고급화 추세로 인해 단순한 규모에 의해 승부가 나지는 않는다. 수익모델과 서비스, 자산관리의 질, IT 투자능력 등을 키워야 한다. 조흥은행이 중점을 둬야 하는 부문도 단순한 시장점유율이 아니라 겸업화와 전문화를 통한 전략적인 성장이다. 결국 지주사 설립도 그 일환이다. ◇합병을 하되 실패는 하지 말아야 - 합병과 지주사 설립을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서울은행 매각·합병작업이 내달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향후 합병계획과 서울은행이 합병 파트너가 될 가능성은. ▲항상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향후 5년후 금융산업 지도는 달라질 것이다. 그 안에 합병, 인수, 피합병 가능성이 존재하고 이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 합병에 대해서는 어떤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가격 등 조건만 맞는다면 어느 은행과도 합병을 추진한다는 게 기본적인 입장이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단순한 대형화보다는 서로의 강점을 살려 실질적인 시너지가 가능한 조합을 추구하겠다. 일례로 JP모건 체이스맨하탄 은행의 경우 합병이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격을 너무 높게 책정했고 통합작업에도 실패했다. 합병을 하되 실패는 하지 말아야 한다. 서울은행의 경우 주간사가 모든 은행에게 접촉하는 걸로 가정한다면 조흥은행도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인수자격을 제한할 수 있다고 밝혔기 때문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서울은행 합병에 대해서는 매력이 있다고 본다. 합병후 인력문제에 대해서도 여러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신용카드나 자산운용회사 등 인력 활용 가능성은 충분하다. 급하게 다룰 사안은 아니다. ◇향후 은행의 경쟁력은 "사람 싸움" - 젊은 CEO여서 외부에서 개혁에 대해 거는 기대도 크다. 최근 발탁인사와 업무혁신 등에서 노력을 많이 하고 있는데 그밖에 달라진 부분이 있나. 앞으로의 추진계획은. ▲은행경영에서 불필요한 부분은 모두 없앴다. 주3회 하던 상임위를 대폭 축소하고 전국점포장회의도 줄였다. 또 본부장선에서 의사결정을 하도록 했다. 가능한 한 의사결정 권한을 아래로 위임할 생각이다. 아는 즉시 실행에 옮기도록 해야 한다. 평가 및 보상시스템도 혁신할 방침이다. 또 행장 취임 첫주부터 직접 현장에 나가 현황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일주일에 두번 정도 점포와 거래기업을 방문할 생각이다. 취임후 처음 반월공단을 방문해 거래기업들을 찾았다. 또 대기업과 대구, 부산지역의 고객들을 직접 만났다. 이를 통해 본부의 역할이 무엇인지 자각했고 고객들의 니즈도 파악했다. 이를 경영전반에 반영하겠다. - 연수원을 인재원으로 개칭하고 행장 직속으로 개편했다. 이에 대해 행장으로서 거는 기대가 크다고 들었다. ▲향후 은행간 경쟁은 사람싸움이다. 얼마나 능력있는 인재를 보유하느냐가 성공을 결정할 것이라고 본다. 미래 경쟁력에 대응해야 한다. 은행의 향후 핵심이 자산관리인 만큼 은행원들을 재무상담사로 키우겠다. 이들에 대해서는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 은행권에서는 최고자리인 CEO까지 올랐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행장자리에 오른 만큼 포부도 클텐데 개인적으로 다시 세운 목표가 있나 ▲개인적으로 마틴 루터킹의 "내겐 꿈이 있다"는 멘트를 좋아한다. 은행에 있으면서 CEO는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위성복 전임행장이 조흥은행을 중견은행까지 끌어올렸다면 이제 IMF 이전에 누렸던 리딩뱅크로서의 위상으로 돌려놓는 것이 행장으로서 가지는 포부다. 자리에 대한 욕심은 없다. 항상 혜택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행장 퇴임후에는 받은 혜택을 사회에 돌려줄 수 있는 NGO 등의 일을 하고 싶다. 현재도 봉사활동을 하고 있지만 행장의 이름을 달고 하기에는 제한적인 요소가 많다. 내가 가진 경험과 능력을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 ◇홍석주 행장 약력 1953. 서울 출생 1971. 경복고 졸업 1976.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1976. 조흥은행 입행 1985. 미국 펜실베니아대 경영대학원 졸업 1998. 리스크관리실장 2000.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2000. 기획부장 2001. 기획재무본부장(상무) 2002. 은행장 취임
2002.04.30 I 양미영 기자
  • 전일(19일) 장마감 후 주요 종목뉴스
  • [edaily] 다음은 전일(19일) 장마감후 나온 주요 종목뉴스로 오늘 주식시장에서 주가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은 내용입니다. ◇거래소 ▲KTF= SKT이어 시장지배사업자 추가지정 전망. KTF가 지난해 한솔엠닷컵 합병으로 매출액 4조4946억원을 달성, 정통부가 정하고 있는 PCS역무의 시장지배적 사업자 지정 요건인 매출한도 2조5000억원을 79%이상 초과 달성했기 때문. KTF는 지난해말 가입자수 959만1000명을 유치, 국내 이동전화시장점유율 33.0%를 기록. 정통부 관계자는 "현행 시장지배적 사업자 지정제도가 M&A 등 통신시장의 급격한 시장변동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며 "실질적인 경쟁상황을 고려한 유효경쟁체제 구축과 공정경쟁 제도개선을 위해 다음달부터 일정기간의 경쟁상황 주시를 통해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수시로 지정할 계획"이라고 밝힘. ▲LG증권=440만주 자전..LG상사→개인대주주. 19일 LG증권 430만주가 대량 자전거래. 이 주식은 LG상사가 348만3000주, LGMRO 35만주, LG백화점 48만주 등. 지주회사 재편과정에서 지주회사에 포함돼 있지 않은 계열사들이 보유한 주식을 그룹대주주인 구씨와 허씨에 넘긴 것으로 알려짐. 특히 LG상사는 이 자금으로 차입금 상환에 나설 계획이며 향후에도 남아있는 LG증권 511만7000주를 비롯 LG마이크론, 극동가스 등 보유 유가증권을 차입금 상환 목적으로 처분할 예정. ▲동양에레베이터= 순익 23%감소..23억원. 공시를 통해 지난해 순이익이 23억1832만원을 기록, 전년대비 23.3% 감소했다고 정정. ▲조일제지= "자본전액잠식". 자본총계가 마이너스 14억5700만원으로 자본전액잠식을 기록했으며 감사의견은 "적정"을 받았다고 밝힘. ▲농심= 주당 750원 현금배당. 액면가(5000원)의 15%에 해당하는 주당 750원의 현금배당을 실시키로. 배당성향은 14.92%이고 배당금총액은 52억3400만원. ▲한전= 작년 순이익 1조7783억원. 발전부문 분리 첫 해인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전년도와 비슷한 1조 7783억원을 기록. 발전회사 분할에 따른 부채배분으로 이자비용이 전년도 2조 2925억원에서 1조 1153억원으로 5315억원 감소했고, 전년도에 비해 외환평가손이 크게 줄어든 것이 실적 호전의 요인. ▲쌍용자동차=10대1 감자 결의. 액면가 5000원주식 10주를 1주로 병합하는 무상균등 감자를 실시키로. 이에 따라 자본금은 종전 5조7220억4922만원에서 5722억492만원으로, 발행주식수는 11억4440만9845주에서 1억1444만984주로 감소. 감자기준일은 오는 6월4일이며 다음달 5일부터 6월4일까지 구주권 제출을 받고 6월26일 신주권을 교부할 예정. 전환사채 전환청구시 발행예정주식수 104만6600주를 감자대상 주식수에 포함. ▲데이콤= 데이콤크로싱에 127억 출자 ▲신화실업= 감사의견 "한정" 공시요구-거래소. 이에 대해 증권거래소는 감사결과가 감사범위제한에 의한 한정의견이 확인될 경우 관리종목으로 지정할 계획이라고 밝힘. 신화실업은 현재 증선위의 감리결과조치로 매매거래가 중단된 상태. ▲태창= 구조조정조합 JKL1호가 최대주주.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함에 따라 총 1471만4190주(41.22%)를 보유한 제이케이엘 1호외 1인이 최대주주가 됨. ▲모나리자= 법정관리 탈피..정리채무변제 완료. 자본잠식 사유 해소 남아. 모나리자가 19일 법원으로부터 법정관리종결 결정을 통보받음. 모나리자는 이미 한차례 자본잠식상태를 기록했으나 사업보고서 제출기한(4월1일)까지 자본잠식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공시할 경우엔 주권의 상장폐지 우려 일소 가능. 이와 관련, 모나리자 재경팀의 관계자는 "자금력있는 제3자의 인수로 정리채무가 변제됨에 따라 법원이 법정관리종결 결정을 내렸으며, 특히 이같은 채무변제로 인해 자본잠식상태도 해결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화성산업= 주가급등 공시요구-거래소 ▲케이피케미칼=21일상장..동시호가로 기준가결정. 21일 오전 8~9시 동시호가에서 기준가격을 정한 후 9시부터는 일반종목과 동일하게 접속매매로 거래가능. 기준가는 최저호가 5원과 최고호가 4220원(분할전 회사의 시가총액을 케이피케미칼의 발행주식수로 나눈 가격)사이에서 책정. 한편 고합의 주권은 같은날 기준가격과 호가제한폭이 없이 정리매매종목으로 변경상장. ▲한세실업= 하나은행 주식 3만주 처분. 투자수익 실현 목적. ▲대우차판= "주가급등 이유없어" ▲한창= "자본잠식"..매매정지-거래소. 외부감사인의 감사보고상 전액자본잠식 상태로 나타난 한창에 대해 20일 오전 8시부터 매매거래를 정지. 또 한창에 대해 자본잠식 조회공시 답변을 요구. ▲대호= 6개 SO 주식 1122억 현대백화점에 매각. 디씨씨, 서초종합유선방송 등 6개 케이블TV 종합유선방송국(SO) 주식 2813만주를 1122억2813만원에 현대백화점,현대홈쇼핑, 현대쇼핑 3사에 매각. ▲한보철강= AK캐피탈에 4억불선 매각…내일 채권단회의. 매각금액을 4억달러선으로 확정하고 실사후 상하 9.5% 선에서 최종 가격조정키로 합의. 인수대금 납입이 완료된 이후에 발생하는 우발채무에 대해서는 전액 인수자측이 책임지기로 합의. 이달말 MOU가 체결되고 법원인가를 받은후 4월중순 예정대로 실사가 시작되면 늦어도 8월말께 본계약을 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 ▲대양금고=투자유의..경영계획서 미제출. 19일까지 경영개선계획서 미제출로 금융감독위원회의 조치가 수반될 전망, 투자 유의. 대양금고는 자본잠식 등의 사유로 지난달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영업정지 처분을 받아왔으며 경영개선계획서를 제때 제출하지 못함에 따라 회사정리절차를 밟을 전망. ◇코스닥 ▲리노공업=설비증설에 14억원 투자. 설비증설과 서울사무소 구입에 14억4900만원을 투자키로. 투자기간은 오는 9월30일까지이며 전액 자기자금으로 충당할 예정. 또 품질 향상을 위해 머신센터, 전자측정기 등 8억 7000만원 규모의 검사장비를 구입. ▲유일전자=휴대폰용 키패드 특허 취득 ▲비테크= 지씨텍과 업무협정 계약 체결. 계약기간은 1년. ▲동양반도체=해외증권발행 결정사항 없어 ▲부산신금= 부산상호저축은행으로 사명 변경 ▲국제종건= 758억원 출자전환. 채권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758억2080만원 규모의 채무를 출자전환키로 결정. 오는 25일 출자전환이 이뤄지고 다음달 23일 758만2081주가 추가 등록. ▲써니YNK=7.3억원 게임 일본 수출. 오는 30일까지 선적 완료 예정. ▲한신평정보=67억원 자사주 매입 결의. 자사주 20만주를 37억3000만원을 들여 오는 25일부터 6월24일까지 장내매수키로 했다고 공시. 이와 함께 조흥은행과 30억원 규모의 자사주 신탁 계약을 체결, 자사주를 취득키로 결정했다고 밝힘.
2002.03.20 I 홍정민 기자
  • 퓨처포유,대기업 동창회사이트 확장 개편
  • [edaily] 국내 유일의 대기업 전·현직자 동창회 사이트인 퓨처포유(www.futureforyou.co.kr 대표 김기성)는 기존 15개 그룹에 대우와 금호, 두산, 코오롱, 보험업종 등을 추가하면서 50개의 일반 그룹, 공기업, 그리고 은행과 증권, 보험 등으로 확장 개편했다고 19일 밝혔다. 이에 따라 퓨처포유는 이번 개편으로 주요 기업들을 총망라하면서 대기업 동창회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이번에 추가된 그룹으로는 대우, 금호, 두산, 동양, 신세계, 제일제당(CJ), 코오롱, 한솔, 해태, 효성, 보험, 지방. 국책은행을 포함하는 은행Ⅱ, KT그룹, 포스코그룹, 한전그룹 등이다. 이와함께 강원산업과 거평, 고합, 극동건설, 뉴코아, 대림, 대상, 동국제강, 동원, 삼보컴퓨터, 새한, 신동아, 신호, 쌍방울, 아남, 진로, 청구, 한보, 한일, KCC 등 20여개그룹을 하나로 묶어 추가했다. 또 옛 직장 동료를 찾아보는 것 뿐만 아니라 같은 업무를 하던 다른 그룹 관계자, 대기업에 입사했던 동창이나 군대 동료 등의 소식도 찾아볼 수 있도록 동료찾기 부분을 강화했다. 김기성 대표는 "사이트가 15개 그룹으로 출발한 뒤 포함되지 않은 다른 그룹 출신들의 확대 요구가 이어졌다”며 "이번 추가로 종합 대기업 동창회의 틀을 갖추게 돼 앞으로 사이트의 질적인 향상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퓨처포유는 지난해말 대기업 선.후배, 동료들간에 인적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나아가 비즈니스도 지원한다는 계획아래 삼성, 현대, LG, SK, 한진, 한화, 쌍용, 롯데, 동부를 비롯해 해체된 동아, 기아, 한라, 그리고 공기업, 은행, 증권 등 15개 그룹으로 출발했다. 퓨처포유는 개설이후 50대 전직 임원급부터 20대초의 다양한 연령층을 비롯해 미국과 캐나다, 뉴질랜드, 홍콩, 프랑스 등 20여개국 거주자들이 가입하면서 회원수는 전·현직자 약 1300명에 이르고 있다.
2002.03.19 I 김기성 기자
  •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⑭조민식 한신평 이사(상)
  • [edaily] 우리나라 채권시장에는 수 만종의 채권이 있다. 이중 어떤 채권을 살 것인지 투자자들로서는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이 채권을 샀을 때 몇 년후 원금과 이자를 제대로 돌려받을 수 있으며 그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이런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 신용평가사의 역할이다. ‘채권시장의 인프라’인 셈이다.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주인공은 한국신용평가의 조민식 이사다. 조 이사는 국내에 신용평가가 도입된 초창기인 87년부터 한신평에 몸담아온 평가업계의 산 증인이다. 회계법인에 있다가 “친구따라 어영부영 이 바닥에 들어오게 됐다”면서도 14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외환위기 직전까지만 해도 신용평가사는 그 존재감이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외환위기 당시 무디스나 S&P 같은 세계적 평가기관이 국가 신용등급을 연거푸 하향시키면서 신용평가기관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특히 97년말에는 국내 신용평가업체들이 한꺼번에 100개가 넘는 기업의 신용등급을 하향시켜 “지금까지 등급에 버블이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외환위기의 징후는 상당히 일찍 감지했습니다. 기아자동차 같은 경우 펀더멘털만 놓고 본다면 등급을 낮추고도 남았죠. 그러나 ‘대마불사’라는 한국적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한계였죠. 우리는 ‘기업이 앞으로 얼마나 수익을 내느냐’가 아니라 ‘어느 정도까지 버틸 수 있느냐’를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조민식 이사는 개인적으로 6개월에 한번씩 내시경 검사를 받는다. 업무에 따르는 스트레스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십편의 리포트를 읽어야하기 때문에 업무중간 중간 돋보기 안경까지 쓴다. 투자자보호라는 대명제가 있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등급하향평정을 받는 기업이나 그 직원들에게는 치명타가 된다는 점이 늘 부담스럽다고 얘기한다. 조 이사는 채권시장과 기업, 신용등급의 역학관계를 잘 이해하고 있다. 기업들이 어떻게하면 좋은 평가등급을 받을 수 있는지도 살짝 공개했다. 정부가 내놓은 정크본드 펀드의 수익성도 높이 평가했다. 채권시장의 생리를 꿰뚫고 있는 조 이사는 “돈을 많이 들고있는 벤처기업이 가장 무섭다”고 말한다.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주식으로 몇배의 대박이 터지건간에, 채권시장에서는 제때 10%의 이자를 받으면 족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포함한 채권쟁이들을 “새가슴”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그는 입사초기, 대우그룹 평정에 있어 자기의 소신을 굽히지 않은 “강심장”의 소유자기도 하다. 10여년간 등급평정의 서늘한 칼날을 품고 살아온 그를 만나 신용평가업계의 과거와 현재 얘기를 들어봤다.(조민식 이사 약력은 인터뷰 하편 기사 하단 참조) <"친구따라" 한신평에 입사하다> -공인회계사 자격증이 있으시네요. ▲서울대 경영학과 4학년때 공인회계사가 됐습니다. 졸업은 84년에 했구요. 그 당시 규정은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따면 회계법인에서 의무적으로 2년을 근무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졸업전에 삼일회계법인에 입사했어요. 그런데 회계업무가 별로 재미가 없더라구요. 허허. 그래서 의무기간 2년만 채우고 그만뒀죠. 회계법인에서 근무하면서 대학원 공부를 병행했습니다. 86년에 대학원을 졸업한 후 석사장교로 짧은 군복무를 마치고 한신평에 입사한 겁니다. -80년대 후반이면 신용평가회사가 그다지 이름있는 곳도 아니었을텐데요...공인회계사에 합격하셨으면서 굳이 신평사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군 복무를 마친 후 회계법인으로 돌아갈지 다른 곳을 택할지 진로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기업구조조정위원회에 있던 이성규씨가 제 절친한 친구인데 이 친구가 당시 한국신용평가에 근무하고 있었어요. "회계법인 가면 뭐하냐. 여기와서 나랑 같이 있자"고 저를 꼬드겼고 어영부영 오게 됐습니다.(웃음) 성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확실히 하는 친구입니다. EMI같은 음반회사에도 잠시 몸담은 적이 있고...학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경제학과 석사를 마친 것도 특이하죠. 보통은 반대의 경우가 많은데 말이에요. 성규하고는 5~6년 정도 같이 일했습니다. 그 친구때문에 한신평에 왔는데 자신은 먼저 도망가버리더군요.(웃음) 저만 아직까지 여기 남아있는거죠. -한신평 초창기에는 이헌재 전 장관이 사장으로 오셔서 재미있는 일을 많이 했다고 들었는데. ▲당시에는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직원들도 한 30~40명 정도밖에 없었고요. 다들 소신대로 일을 하고 살았습니다. 우리는 88년부터 “결합재무재표”를 만들었습니다. 그룹이 발달한 한국 사회에는 여러가지 리스크외에 계열리스크라는게 하나 더 있죠. 그렇지만 계열의 상황을 볼 수 있는 창이 없었고 그 창을 만들자는 시도였습니다. 우리들 내부적으로 필요에 의해서 만들었었죠. 시간도 많이 들어가고 돈이 벌리는 것도 아니었고 게다가 기업들이 싫어했습니다. 옛날에는 그런 자료들이 발표되면 큰 일나는 걸로 생각했기 때문이죠. 외부에서 자기 그룹전체에 대해서 매출이 얼마고 부채 총계가 얼마고 순이익이 마이너스다 플러스다 이야기하는 것을 굉장히 꺼려했습니다. 당시 같이 일했던 사람중에 금감위에서 구조조정에 참여했던 서근우 박사도 있습니다. -한신평 평가업무를 총괄하는 위치도 중요하지 않습니까. ▲우리 회사는 분위기가 특이해서 결재라는 것을 기획팀에 있을 때만 하게됩니다. 그외에 결재서류는 절대 올리지 않습니다. 리포트는 쓰지만 등급은 전부 위원회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결재라는 것을 받을 필요가 없는거죠. 등급이 결정되면 형식적으로 위원장이 최종 승인은 하지만 등급을 주는 데는 개입할 수가 없습니다. 이헌재 전 장관이 사장으로 있을 때 만든 시스템인데 위에 있는 사람들이 등급평정에 개입하면 우리나라처럼 좁은 사회에서 여러가지 잡음이 생길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지난번에 하이닉스 반도체를 하향시킨 것도 사장님께 보고가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실무에서 결정이 되면 형식적으로 승인을 받고 바로 발표하는거죠. 등급평정은 항상 만장일치로 결정하는데 세번 정도의 과정을 거칩니다. <금융에서 자동차까지 평가…사옥 건설현장 감독까지>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발행사들의 입김으로 등급을 조정해준다든지 하는 일이 있지 않았나요? ▲87년도인가 입사초기에 대우그룹을 맡았습니다. 등급을 평정해보니 투자적격 등급이 나오질 않더라구요. 난리가 났어요. 당시 위원회에서 굉장한 격론을 벌였습니다. 위원회에는 계급장 떼고 들어가기 때문에 사실 말이 논쟁이지 감정으로 격화되기도 합니다.(웃음) 나는 이런 식으로 할 바엔 뭐하러 평정하느냐고 주장했죠. 나중에 대우쪽에서 평가의뢰를 취소했습니다. -87년도에 처음 입사해서는 어느 부서에 계셨나요 ▲평가부터 시작했죠. 연구조사실에서 한 2년 있었죠. 내가 이 회사에 14년째인데 평가관련해서 거의 모든 부서에서 근무해봤습니다. 90년초 사옥을 새로 지었는데 건설현장까지 감독했죠.(웃음) 총무부장만 빼고 정말 거의 다 해봤습니다. -첫 승진을 하신 때가 언제입니까. ▲한국신용평가는 자체 직급이 4단계밖에 없습니다. 연구원, 선임연구원, 책임연구원, 수석연구원 순서죠. 87년 3월에 입사해서 89년 1월에 선임으로 승진한 것 같습니다. 책임은 5년정도 지나서 됐고요. -어떤 산업을 담당해오셨나요? ▲금융, 건설, 자동차 등 안해본 산업이 없습니다. 유일하게 화학쪽만 못해봤습니다. 처음 3년정도는 같은 업종을 했지만 어느정도 올라가면 사실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업종이든 빨리 파악할 수 있게 되죠. 신입직원들이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한 업종을 오래 시켜달라고 부탁하는데 이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주식 애널리스트들은 그게 가능하지만 우리는 credit officer이기 때문에 때문에 다양한 업종을 해본 사람들이 가치가 있습니다. 적은 인원으로 전 업종을 커버하려면 되도록이면 여러 업종을 맡아보는게 좋고 그게 회사에게나 본인에게나 도움이 됩니다. (인터뷰 중편으로 이어짐)
2001.06.08 I 선명균 기자
  •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⑬박광철 금융감독원 팀장(중)
  • [edaily]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주인공은 금융감독원 자산운용감독국의 박광철 팀장입니다.(인터뷰 상편에서 이어짐) -자산운용감독국이 생기고나서 여러 중요한 일들을 많이 하셨죠? 투신 구조조정, 뮤추얼펀드 설립, 시가평가제 도입, 하이일드 펀드 설립, 최근의 MMF 사태까지... 우선 신세기투신과 한남투신 정리작업부터 얘기해 주시죠. ▲97년 12월 초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신세기투신이 법인 환매요구를 감당하다가 안되니까 증권금융에 1000억원의 자금지원을 요청했어요. 훗날 나중에 알고보니까 이미 역외펀드인 JP모건의 파생금융상품과 관련해서 엄청난 손실을 입고 있었던 상태였지만요. 신세기는 이미 한남보다 더 큰 부실을 안고 있었습니다. 신세기투신은 97년 10월부터 아는 사람은 이미 눈치를 챈 지경이었다고 하더군요.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현장으로 가보니 기가 막혔습니다. 전례가 없는 상황에서 일을 처리해야했고 투자자들은 아우성이고...제가 사태수습을 잘했느냐의 여부를 떠나서 솔직히 처음 당한 일을 그 정도로 마무리짓기도 어려웠다고 생각합니다. 고려증권 실사작업이 진행중인 과정에서 신세기투신이 터졌습니다. 당시에는 재정경제원이 감독권한을 가지고있었기 때문에 저희가 입장을 정리할 수 없었어요. 자산실사 쪽에서만 위촉을 받아 투입됐죠. <“왜 이자 안주냐고 대드는 상황에서 원금이 줄어들었다는 말을 하면 맞아죽을 분위기였어요”> -어떤 점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까. ▲증권과 투신업무가 가장 달랐던 점은 투자자들의 기본적인 생각이었습니다. 투자자들은 투신에서 원금을 잃는다는 생각자체를 가지지 않았어요. 한꺼번에 몰려와 "내 이자 내놔라. 왜 이자 안주냐"고 대드는 상황에서 원금이 줄어들었다는 말을 하면 맞아죽을 분위기였으니까요. 6개월이든 한달이든 내가 돈을 넣어놨으니까 그 기간만큼 이자를 달라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원금보장은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었네요. ▲그렇죠. 원금은 당연히 보장되는 것이고 이자를 내놓으라는 것이죠. 정말 황당한 일은 일반 기업들마저 매일매일 입출금이 이뤄지는 운용자금을 투신에 넣어놓고 이자를 달라고 요구했던 점입니다. 법인들이 "투신이 당좌예금보다 이자를 더 준다고 해서 들어왔는데 이자를 달라"고 생떼를 쓰는데 정말 아연실색했습니다. IMF 터지면서 우리나라가 굉장히 많은 학습비용을 냈고 그 비용이 국민들의 혈세로 충당됐습니다. 그 많은 비용이 소모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투신상품에 대한) 인식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고 생각해요. 정부가 이런 면에 있어서 좀 더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도 미국의 SEC(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증권거래위원회)처럼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기구가 필요합니다. 금융상품의 약관 자체가 잘못됐을 경우 파괴력은 엄청나고 그 손실은 모두 투자자가 감당해야 되잖습니까. 또 기본적으로 투자자도 무식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는 정부가 금융환경 규제를 전적으로 맡아왔고 투자자들은 금융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을 당하는 입장이었어요. 보험이든 투신상품이든 금융기관이 투자자들에게 선택을 강요하면 투자자는 "yes/no"만 결정하면 됐으니까요. 정보의 비대칭성이 극명하게 드러난 거죠.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합니다. 투자자들은 스스로가 다양한 상품을 알고 자신이 선택할 수 있어야하고 정부는 그러한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홍보에 많은 노력을 할애해야 합니다. <투신권의 구조적인 문제들, 환매시스템과 시가평가> -한남투신 사태는 지금 현대투신 문제와도 관련성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진행중인 일과 연계된 것이라 당혹스럽군요.(웃음) 솔직히 지금 이 순간 그 당시에 일어났던 일을 숨김없이 얘기해도 될만한 것인지도 모르겠고... 아직 우리경제가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니까요. 98년 한남투신 사태는 거평그룹때문에 촉발됐습니다. 한남투신의 원래 대주주는 동화석유라는 회사였죠. 대주주 지분을 거평이 인수한 것이죠. 거평은 인수 후 한남투신의 신탁계정을 그룹의 자금조달 창구로 이용했습니다. 거평이 무너지자 한남투신의 신뢰도가 결정적으로 떨어져버렸습니다. 투자자들이 한남투신으로 몰려와서 환매를 요구했지만 호남지역의 정서는 어떻게든 한남투신을 살려야한다는 쪽으로 맞춰졌어요. 그러나 부실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한남에서 스스로 영업정지 신청을 했습니다. -현대투신이 한남의 인수자로 결정된 사연은 무엇입니까. ▲그 얘기는 현단계에서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현대가 지금 AIG와 협상 중이고… 또 당시 가장 중요한 것은 한남투신 사태를 무리없이 수습하는 것이었으니까요. -외환위기를 넘기고 98년 이후 금리가 떨어지면서 투신권으로 돈이 왕창 몰리던 시기가 있었죠? ▲당시 투신권의 자금이 단기간에 105조에서 250조로 2배 이상 불어났습니다. 대우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초고속으로 늘어났으니까요. 98년 1월 투신감독권이 증감원으로 넘어왔고 실질적으로는 98년 4월1일 금감위가 발족되면서 투신감독을 하게됐죠. 그 전의 일은 뭐라고 이야기 할 입장이 아니구요. 저는 4월 이후 얘기만 하겠습니다. 98년 4월 이후 투신감독권한을 넘겨받기 이전부터 이미 분석작업에 착수했습니다. 부실원인이 뭐냐는 것이 가장 큰 화두였죠. 가장 큰 문제는 환매 시스템이 망가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적상품은 유가증권에 투자하는 것인데 이것을 당일 환매하라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당일환매를 무리하게 시행하다보니 부실로 자연스레 이어진 거죠. 두번째로는 투신이 수익증권을 팔 때 투신사 내부에서 차입을 해서 매출방식으로 펀드설정을 했거든요. 이 때문에 차입금에 대한 이자부담이 엄청났고 유가증권이 팔리지않으면서 미매각 수익증권의 평가손실로 이중부담을 안게됐죠. 세번째 문제가 근본적인 원인이었는데 펀드평가를 시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시가평가제도는 재정경제원 시절부터 채권시장 인프라 구축이다해서 수없이 논의됐던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시가평가를 하기 위한 기본적인 토양이 안 됐으니까 번번히 무위로 돌아간거에요. 시가평가를 하려면 어떤 기업이 채권을 발행할 때 그 기업에 대한 평가가 올바르게 돼야하거든요. 신용평가회사가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해도 문제점은 또 남습니다. 신용평가회사가 매긴 가격대로 채권이 거래될 수 있는 시장시스템이 구축돼야 하는거죠. 그런데 이 두 가지 토양이 조성되지 못하니까 투자자들은 채권투자시 어떤 가격이 정상적인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장부가 제도는 만병의 근원이며 이를 고집할 경우 더 이상의 수습은 불가능하다" 는 판단 하에서 금감원은 98년 11월 채권시가평가제 도입을 선언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2000년 7월1일 전면시행한다. 신규펀드는 막고 기존펀드는 자연소멸시키겠다"는 원칙을 수립하고 채권시가평가제도 시행이 이뤄졌습니다. <대우사태와 부분 환매 원칙> -시가평가를 기다리는 사이에 대우사태가 터져버렸단 말입니다. ▲시가평가제 도입에는 저희 나름의 상황 판단은 물론 제도준비 및 설립 등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둘러서 제도를 시행한 이유는 투신수탁고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시가와 장부가의 괴리가 점점 늘어났기 때문이에요. 투신사의 이면약정(제시수익률) 때문에 그나마 괜찮은 자산들도 부실화의 길을 걸을 것이란 우려감도 작용했죠. 그러나 업계는 시가평가제를 꺼려했죠. 제도도입이 지연되면서 속으로 상처는 점점 더 곪아가고 있었는데도 말이에요. 대우 CP(기업어음)를 25% 조건으로 3년 연장해서 사들인 곳까지 있었습니다. 25%에 CP를 발행하니 장부가 개념으로 신탁재산의 수익률은 올라갈 수 밖에 없었어요. 외관상으로는 수익률이 엄청났죠. -대우사태 당시 해법은 부분 환매에 응한다는 것이었는데요. 제 기억으로는 환매를 해줄 때 가격 계산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놓고 상당히 복잡한 논의들이 오간 걸로 압니다만. ▲제일 문제가 됐던 건 역시 전산시스템이었습니다. 펀드내에서 대우와 비대우 부분을 분리하는 작업이 제일 어려웠어요. 저희는 처음에 전산작업이 보름 정도면 충분하리라 생각했습니다. 대우와 비대우를 분리해야한다고 생각한 이유는 대우부분에 대해서는 가격이 나와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우채권은 장부가격만 나와있지 누구도 가격산정을 얼마로 해야할 지 몰랐어요. 또 부도가 났으니 잔존가치를 남겨두고 나머지는 상각해야 하는데 이 상각 부분도 평가할 수가 없었습니다. 잔존가치가 얼마인지를 모르니 판단이 불가능한 건 당연하죠.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 작업을 시행했고 최종실사가 끝나는 시점에서 단계별로 환매를 시작하기로 잠정적인 결론을 냈습니다. 투자자들이 환매를 해달라고 한꺼번에 몰려올 것을 고려해서 90일 미만은 50%, 90~180일 사이는 80%, 180일 이상은 95% 환매해 준다는 원칙을 정한 것이었죠. 충격을 점진적으로 흡수하기 위해서요. <"시장전체를 패닉으로 몰아가 시장붕괴를 초래할 수는 없다"> -당시 기억나시는 에피소드는 없나요. ▲금융대란 수습대책반에서 근무할 때는 정말로 소파에 쭈그리고 자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새벽 4시쯤 눈을 붙여서 채 2시간도 못자고 6시쯤 다시 일어났으니까요. 당시 워낙 사안이 중요하다보니 임원들께서 6시 정도면 출근하셨고 대책반에도 자주 들리셨어요. 피곤함때문에 소파에 앉자마자 곯아떨어집니다. 당연히 이불이고 뭐고 덮을 겨를도 없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잠깐 눈을 붙였다가 뜨면 꼭 누군가는 옷을 벗어서 덮어주는 거에요. 직원들의 우애가 돈독했습니다. 그러니 "아 이 정도면 내가 몸바쳐 일할만한 직장이다"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어요. -투신상품에 대해 환매를 보장해준 것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비판도 있습니다만. ▲투신상품은 실적상품인데 실적상품에 50, 80, 95%의 범위를 그어놓고 환매를 해준다는게 도대체 될 법이냐 하는 근거에서 말이죠. 저도 압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신탁재산 운용에 있어서 시장전체를 패닉으로 몰아가 결국 시장붕괴를 초래할 것이냐를 고려해야 한다는거죠. 투신들은 대우채권를 엄청나게 사들였습니다. 대마불사론을 신봉하던 투자자들도 투신권 펀드에 있는 대우채가 휴지조각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구요. 이러한 상황에서 시장이 붕괴되면 어떻게 됩니까. 시장 실패으로 일어나는 손실은 크레딧을 잘못 판단해서 생기는 손실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대우사태는 시장존립과 관계되는 문제였지 특정종목의 부실채권과 관련된 문제는 아니었어요. (인터뷰 하편으로 이어짐)
2001.06.01 I 정명수 기자
  •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⑫김성민 한국은행 팀장(중)
  • [edaily]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주인공은 한국은행의 김성민 채권시장팀장 입니다.(인터뷰 상편에서 이어짐) <”오퍼레이션은 타이밍이 가장 중요”> -외환위기 당시 심경은 어떠했습니까. 담당과장은 아니었다해도 ‘아 저렇게 되면 안되는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요. ▲원래 남이 하는 일에 대해서 평가하기는 쉽지만 결정을 내리는 당사자들은 심사숙고한 결과죠. 경험으로 보면 오퍼레이션이라는 것은 타이밍이 가장 중요합니다. 97년 7월15일 기아가 화의에 들어갔습니다. 기아 얘기를 들어보니까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왔어요. 그래서 그 당시 지준을 뽑아보니까 1조원 정도가 있더군요. 하루짜리라도 좋으니까 이 1조원을 풀어서 시장금리를 안정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장이 정말 혼동스러울 때 공개시장 오퍼레이팅을 담당하셨군요. ▲네. 97년 종금사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하면서 종금사 업무 정지명령을 내려야한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재경원은 예금인출 러쉬를 우려했죠. 한 가지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요. 97년 12월에 IMF 관계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이 친구는 제가 IMF에 근무하던 시절의 동료였어요. 둘이 얘기를 나누던 와중에 그 친구가 제게 “한국의 종금사는 몇 개나 생존할 것 같으냐”고 물었습니다. 우선은 잘 모른다고 대답했어요. 그게 사실이었으니까. 그리고 나서 곰곰 생각해본 다음 큰 마음을 먹고 “10개 정도”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씩 웃고 아무 말도 안하는 거에요. 그래서 역으로 제가 너는 몇 개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친구 대답은 “less than five(많아야 5개)” 였어요. 당시에는 깜짝 놀랐지만 결과적으로 그 친구의 예측이 맞지 않았습니까. <외환위기와 채권시장의 격동을 온몸으로 체험하다> -그 무렵 채권시장은 외환위기에 대해 어떤 식으로 반응했습니까. ▲당시 채권시장은 지금과는 달랐습니다. 90% 이상이 은행보증채권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사실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어요. 무보증채권이 있었으면 사정이 달랐죠. 어떤 면에서는 다행이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만. 97년 11월 중순에 금융시장안정대책이 발표됐습니다. 투신사 보유채권 1조원을 한국은행이 사고 은행신탁도 사들인 걸로 기억해요. 그것으로도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자 나중에는 유통 채권까지 사게 됐습니다. 하여간 저희는 14일짜리 통안증권을 발행하면서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습니다. 한 가지 기억나는 게 있군요. 97년 12월말 은행들이 BIS 비율을 맞춘다고 야단법석인 때가 있었습니다. 은행들이 적절하게 오퍼레이션을 조절해달라고 부탁했고 하루에 대여섯 번씩 오퍼레이션을 한 적도 있습니다. 전자입찰 시스템을 사용하다보니 그 맹점도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캘린더가 1998년1월1일로 넘어가니까 날짜가 안 맞아 전자입찰을 할 수 없는 거에요. 난리가 났죠. “전산부에 얘기해서 시스템을 고치자, 또 뭐하자”고 소동이 벌어졌는데 제가 판단을 해보니까 그렇게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서면입찰로 한다. 서류 가지고 와라”라고 말했죠. 하여간 별 이상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 통안채의 성격상 발행량 변화가 외환보유고와 똑같이 움직일 수 밖에 없다.”> -그 때 통안채를 대량발행한 것이 지금도 부담으로 남아있는데요. ▲통안증권이 늘어나는 것은 외환보유고와 연결해 보셔야 합니다. 외환위기가 나기 직전 통안증권은 잔액은 28조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환란을 겪으면서 잔액이 21조로 급격히 줄었다가 70조까지 늘어났거든요. 외환보유고도 마찬가지에요. 외환위기 직후 엄청나게 감소했다가 지금은 큰 폭으로 늘어나지 않았습니까. 통안증권의 성격상 통안증권의 움직임은 외환보유고와 똑같이 움직일 수 밖에 없습니다. (편집자주: 통화안정증권은 시중의 통화량 조절을 위해 발행하는 것이다. 외환보유고가 늘어난다는 것은 달러 유입이 늘어나는 것이고 이는 통화량이 증가하는 것을 뜻한다. 한국은행이 달러 통화가 늘어난 만큼 원화 통화를 흡수하기 위해 통안채를 발행했다는 설명이다.) -한은은 내심 통안채를 국채로 바꿔주기를 바라지 않나요. 통안채의 기능이 변질된 측면도 있지 않습니까. ▲외환보유고를 가지고 운용한다는 의미는 국방비 지출의 개념과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통안증권 발행도 재정에서 부담할 수 있어요. 주머니 돈이 쌈지돈이라는 말도 있지만 한국은행에서 이익이 나면 다 재정흑자로 통합됩니다. ‘통안증권에 대한 이자를 누가 부담하느냐’ 하는 문제는 회계장부상으로는 민감하게 다뤄질 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하나로 귀결됩니다. 정부의 개념을 광의로 정의하면 저희가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이 되잖습니까. 예를 들어 한국은행이 8조의 이익을 냈는데 통안증권 이자로 3조를 지출했다고 가정해보죠. 그러면 8조 늘어났어야 정상인 정부세수가 5조로 줄었다는 사실 말고는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저희가 정부에 줄 돈이 5조라는 계산상의 문제만 남는겁니다. -공개시장팀에서 오퍼레이팅을 하신 기간이 전체적으로 얼마나 되나요. ▲2년 2개월간이었습니다. 몸이 안좋을 때라 공개시장팀에서 고생좀 했죠. 99년 5월 한은의 직제가 팀으로 바뀌면서 채권시장팀으로 옮겨왔습니다. 채권시장팀에 와서도 한 두어달 편히 지낸다했더니 더 바빠졌습니다. 5월 중순에 채권시장팀으로 발령받았는데 99년 7월 대우사태가 터지자 모든 문제가 저희 팀으로 넘어왔거든요. -일복이 많으시군요.(웃음)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었습니까. ▲그런말 마십시오.(웃음) 대우가 그렇게 뻥하고 터질 줄 몰랐어요. 시장 모니터링부터 시작해서 대책회의를 하게되면 자료 만들고..하여간 업무량이 상당했습니다. <대우사태와 채권시장의 관계> -말 나온 김에 대우사태 얘기를 구체적으로 해 보죠. 지금도 그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고 여기저기 남아있는 것이 사실인데요. 대우를 어떻게 할 것이냐에 관해 논란들도 많았구요. 당시 한은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나요. ▲저희는 이미 98년 하반기에 회사채 문제를 거론했습니다. 외환위기가 터지고 경제가 흔들리면서 98년 하반기부터 은행들이 보증을 안 해주기 시작했어요. 회사채에 대한 은행보증이 중단되면서 시장상황이 급변했죠. 제 기억으로는 97년 말 당시 MMF를 포함, 투신사 채권형 펀드 규모가 총 70조원 정도였는데 98년 말에는 170조원으로 100조원 이상 늘어났어요. 돈이 막 몰려들기 시작하면서부터 “투신사에 돈이 저렇게 많이 몰리면 언젠가는 문제될 것”이라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사전에 어떻게 했어야한다”는 식의 말은 지금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 문제가 미래로 연장돼 현재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거론하지 않을 수는 없겠죠.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정부가 시장메커니즘을 완전히 무시하면서 대우사태를 처리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우쇼크로 금리가 급등하자 정부는 시장자율보다는 채권시장안정기금을 설립, 인위적인 시장 안정을 시도했는데요. 채안기금의 활동범위에 관해 정부와 한은 간에 손발이 맞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공과에 대해서는 말씀드리기가 참 뭣하군요. 도덕적해이 문제가 불거지긴 했지만 그것말고 다른 대안이 있었느냐고 물어보면 쉽사리 대답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니까요. 채안기금에 관한 제 생각은 너무 부정적으로도 긍정적으로도 볼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다행인 것은 금리가 이후 하락해서 (채안기금이) 손실을 안 봤다는 거죠.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투신사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겠습니까. 이런 문제는 정말 정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가격변동위험에 대해서는 과소평가, 신용위험에 대해서는 과대평가> -올해 초 전철환 한은 총재의 “국고채 과열 발언”이 상당히 이슈가 됐습니다. ▲채권시장에는 가격리스크도 있고 신용위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우, 새한그룹 사태가 불거지면서 시장은 가격변동위험에 대해서는 너무 과소평가하고 신용위험에 대해서는 너무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과도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말이죠. 전 총재의 발언은 결국 그런 점을 주의하라고 하신 뜻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발언강도나 타이밍에 관해서는 사람마다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시장에 주의를 당부한 말씀이라고 봅니다. 문제는 시장이 한은 총재의 말씀에 너무나도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것이죠. 울고 싶을 때 누가 뺨을 때려주면 효과가 가중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 경기회복론에 대해 지나친 낙관도 비관도 필요없다”> -최근들어 한국은행이 통안채 발행 등 오퍼레이팅을 매우 유연하게 하시는 편인데… 시장관계자들은 과연 이 기조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에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건 개인적인 의견임을 알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더이상 금리가 올라갈 구석이 있느냐를 냉정하게 따져보면 답은 분명합니다. 최근 인플레이션이 이슈가 됐지만 인플레이션 문제는 사실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어요. base effect(전년동기대비 효과)로 인해 전년동기보다 상승하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닙니까. 또 과거경험으로 보면 물가상승이 가장 뚜렷한 시기는 항상 1분기였습니다. 한해 인플레이션률이 얼마라고 가정하면 그 70%가 1분기에 이뤄지고 그러니 물가가 높게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죠. 그런데 2000년에는 상반기 물가가 낮고 하반기물가가 높게 나왔어요. 이것이 비정상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합니다. 하반기가 되면 물가는 안정추세로 접어들 겁니다. 환율도 걱정을 많이들 하시더군요. 그렇지만 환율급등이 금리에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미치느냐의 문제는 논란이 많습니다. 달러/원 환율만 환율은 아니거든요. 원화가치가 낮아지면 그 수준이 다를 뿐이지 타국의 통화가치도 같이 낮아지게 돼 있어요. 저는 경기회복론에 대해 지나친 낙관도 비관도 모두 필요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경제가 회복하는 것은 미국 경기회복에 달렸다고 모두 말하지만 미 경기회복이 가능하느냐의 여부도 반반이거든요. 수출회복이 안되면 한국 경제의 본격적 회복이 어려운데 반도체를 비롯해 미국으로 수출되는 하드웨어 부품들의 수출전망도 아직은 불투명하지 않습니까. GDP상으로 저점을 통과했다해도 이것이 기업투자로 연결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 투자가 늘어나도 지금 문제가 되고있는 IT산업보다 굴뚝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수도 있어요. 저는 정말로 하반기에 펀더멘털이 좋아질지에 관해서는 아직 신중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퍼레이션이 시장의 추세를 바꾸지는 않아> -그렇다면 오퍼레이팅 과정에서 유동성을 넉넉하게 가져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경제의 불확실성이 아직 높은 상황에서 일정 수준의 당위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가가 하반기에 안정될 것이라는 건 분명하지만 경기에 대해서는 뭐라고 얘기하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하반기 물가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오퍼레이팅에 여유가 있다. 뭐 그런 말씀인가요. ▲콜금리를 5%수준으로 유지하는 동안에는 단기적인 조절이 가능합니다. 지급준비율 마감일에는 다 줄이면 되니까요. 그러나 기조를 바꾸는 것은 콜금리인하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저희가 어떤 정책을 편다고 해도 금융시장의 추세 자체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외환시장같은 경우에도 한은이 이러저러하게 움직였다는 것은 속도가 늦춰진다는 의미이지 기조전환을 나타내는 것은 절대 아니거든요. 추세는 그렇게 꺾이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강력한 정책을 시행하려면 펀더멘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뒷받침돼야만합니다. 그런데 지금 그것이 불가능하잖습니까. 계속 말씀드렸지만 경기회복 논란이 여전한 상태에서 어떻게 펀더멘털을 논할 수가 있겠어요. (인터뷰 하편으로 이어짐)
2001.05.25 I 정명수 기자
  •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⑪이동진 HSBC 부지점장(하)
  • [edaily]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주인공은 HSBC의 이동진 부지점장입니다. (인터뷰 중편에서 이어짐) -HSBC로 옮기신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습니까. ▲BTC로 돌아와서 처음에 제가 한 일은 물론 예전에 하던 채권 딜링 업무도 있었지만 강 행장의 일을 도와드리는 것에 가까웠습니다. 일종의 비서실장이라고나 할까요. 그 때 BTC가 러시아에 많이 물려있는 상태였습니다. 복귀하자마자 합병설이 나돌기 시작했고 2개월 만에 도이치뱅크로 합병됐습니다. 십몇년 동안 은행을 다니면서 친지들에게 “(다른 더 좋은 곳을 다닐 수도 있을텐데) 외국계 은행을 다니냐”는 말도 종종 들었지만 적어도 저는 한 가지 자부심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외국계 은행을 이리저리 옮겨다니지는 않는다는 거였죠. BTC가 대우도 좋고 좋은 사람들이 많았음은 물론이었구요. 그러나 복귀했을 당시 제가 현직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합병을 하고 보니까 제 자리가 보이지 않더라구요. 무엇을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강 행장님은 도이치뱅크 서울지점에서 서울은행으로 가셨고. 그런데 마침 HSBC에 제가 맡고 있는 지금 이 자리가 공석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옮겼습니다. -친동생께서도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에서 비슷한 일을 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하하 네. 원래 동생은 국내 기관에서 근무했었습니다. 그러다 제가 씨티은행을 소개했죠. 2년정도 근무하다가 스탠다드차타드로 옮겨가더군요. -적극적으로 이쪽 일을 권유하신 거네요. “이거 재밌겠다. 해봐라” 라고. 형제분들이 만나실 때 소위 “공장(채권딜링)” 얘기도 하십니까. ▲안 합니다. 프로페셔널답게 해야죠. 물론 시장이 어떻게 될 것 같으냐는 질문이야 하지만 동생이 저보다 더 잘 맞추는 것 같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저야 이제 이 바닥에서 오래된 사람인걸요. 하하 < “동경에 지진이 나면 일본 건설회사 주식을 사고 체르노빌에서 핵사고가 터지면 보리(곡물) 상품선물을 사라”> -사실 이동진 부지점장님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93년 8월 금융실명제가 도입됐을 때 얘기를 많이 합니다. 우리나라 금융시장에 일종의 쇼크가 온 것인데요. 당시 금리가 급등했다가 하락했는데 그 무렵 채권시장을 ‘좌지우지’하셨다면서요. 그때 얘기 좀 해주세요. ▲누가 그러던가요? 정말 과장입니다. -금융실명제 때문에 주식, 채권은 물론 금융시장 전체가 엄청난 소용돌이에 휘말렸죠. 금융실명제 쇼크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BTC가 매우 공격적으로 채권거래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시장을 만들 정도까지는 아니었고… 사실 저도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웃음) 실명제 발표 하는날 저녁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친구들과 저녁을 같이 먹기로 돼 있었는데 재경부에 근무하는 친구가 못 나온다는 겁니다. 기다리면서 심심하니까 식당 방에서 TV를 틀었더니 금융실명제 얘기가 나오더군요. ‘아 이 친구 이래서 못나오는군’ 싶었죠. 그 당시 시장상황은 패닉 그 자체였습니다. 제가 그 무렵 예비군 동원훈련을 갈 예정이었어요. 그런데 다음날 아침 출근을 해보니 시장은 완전 공황상태에 빠졌지 사람들은 우왕좌왕하지 난리도 아니더라구요. 예비군이고 뭐고가 없었죠. 그 다음주 시장을 좀 지켜보다가 채권을 사기 시작했어요. 당시 실명제 파장은 엄청났습니다. 그 제도가 시행되리라는 것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실명제 후의 금융시장이 어떻게 움직일 것이라는 것은 더더욱 아무도 몰랐습니다. 지금처럼 한국 채권시장이 다이내믹하게 돌아간다면 또 모를까 시장참가자들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그런 일을 당하니 참 막막하더군요. BTC도 별다른 준비를 못했었고 이미 주식시장 은 엉망이 된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대처한 방법은 “컨트라리 뷰(contrary view: 역발상)”라는 것이었습니다. “동경에 지진이 나면 일본 건설회사 주식을 사고 체르노빌에서 핵사고가 터지면 보리(곡물) 상품선물을 사라” 는 것과 비슷한 거죠.(편집자 주: 이 같은 대형 사건이 터지면 심리적인 불안감으로 주가 등 금융자산의 가격이 곤두박질한다. 그러나 지진 이후 복구 과정에서 건설사들이 누릴 특수나, 농작물이 핵에 오염돼 공급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되면 이와 관련된 금융상품을 적극적으로 사들여야 한다는 원리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일어나 모든 사람이 한 방향으로 던지기 시작하면 그 반대포지션을 잡는 게 유리하다는 겁니다. 물론 약간의 고통은 감수해야 하나 시장은 반드시 정상화된다는 이론이에요. 그 당시 그 이론을 연구하고 분석해서 실행한 것도 아니었고 저 혼자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상황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윗분들과 얘기해서 “(채권을)사도 되지 않겠느냐”는 조심스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듀레이션을 조금 늘렸고 결과도 무척 좋았습니다. 당시 장기신용은행에서도 저희보다 더 많이 샀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까 장은에서는 BTC보다 훨씬 공격적으로 했더군요. 그러니 제가 시장을 좌지우지했다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시장이 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과도하게 움직인다고 생각하고 거래에 뛰어들었고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금융실명제 발표 후 듀레이션을 늘리겠다는 결정을 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렸습니까. 혼자 결정한 것은 아니라고 하셨지만 그런 큰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텐데요. ▲제 기억으로는 실명제 발표 당시 주말이 끼어있었습니다. 실명제발표가 목요일인가 금요일이었다고 기억하니까요.(93년 8월12일 목요일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명령’이 발표됐다.) 채권을 사기로 결정한 것은 그 다음주 월요일, 화요일 정도였습니다. 결정 후 바로 행동에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이번 주말까지는 이 범위에서 어느 정도 해보고 하자. Stop-loss는 얼마다. 그 다음에는 이렇게 한다”는 식의 전략을 세워놓았습니다. -운영규모는 기억하시나요? ▲3000억~4000억원 정도라고 생각됩니다. <결정에 대한 두려움, “물론 두렵죠. 왜 두렵지 않겠습니까. 잠도 못잡니다.”> -두렵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손절매 기준을 정해놓았다 해도 패닉에 빠진 시장이 복구되려면 일정한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요. ‘생각했던 것처럼 시장이 움직여주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에 시달렸을 것 같습니다만. ▲손절매 기준은 원칙적으로 정해놓는 거였고…물론 두렵죠. 왜 두렵지 않겠습니까. 잠도 못잡니다. 아니 잠이 안 와요.(웃음) 선배들과 같이 했기 때문에 딜러가 느끼는 부담은 좀 적은 편이었습니다. -금리가 내려가기 시작하니까 어떤 기분이 들던가요? 밤잠을 못잘 정도로 걱정하며 얻어낸 결과가 아닙니까. ▲짜릿하죠. 짜릿하다는 표현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시장상황이 아니고 극도로 위험천만했음에도 불구하고 매매시점을 잡았으니까요. 딜러들은 표현방식이 “cool”합니다. 저도 딜러 생활을 13년 정도 했지만 저희 집사람은 집에 들어서는 제 얼굴만 보고서도 오늘 어땠는지를 짐작해요. 얼굴에 써있으니까요. 잘하면 잘하는대로 못하면 못하는대로 어쩔줄을 모르죠.(웃음) <짜릿함을 위하여! 그러나 “막상 그 순간이 되면 결정하는 것은 엄청나게 어렵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외환위기와 같은 금융 쇼크가 또 온다면 금융실명제 때와 똑같은 행동을 하실 건가요. ▲아마 그럴 겁니다. 그런데 지나고보면 쉽지만 막상 일이 닥치면 그런 결정이 쉽지많은 않겠죠. 어쨌든 경제 펀더멘털과 관계없이 외생변수에 의해 시장이 흔들린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노려볼만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합니다. 리스크에 비해서 리워드가 상대적으로 많은 경우에는 리스크를 피할 이유가 없어요. 어차피 리스크가 전무한 상태에서 리워드만 가질 수 있는 상황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사실 올해도 1~2월 채권시장에서 누가 금리 바닥이라고 생각했겠습니까. 다들 더 간다고 난리였는데. 제가 말은 멋있게 했지만 막상 그 순간이 되면 결정하는 것은 엄청나게 어렵습니다.(웃음) 우리 같은 사람들은, 한물간 사람들이 꼭 “우리” 라고 표현하죠. 하하. 저 같은 사람은 올 1월 금리가 4.99% 가기 전에 벌써 털어버립니다. 시장이 급격하게 꺾이고 올라가는 것을 많이 봐왔기 때문입니다. ‘이건 과하다’는 인식이 강했죠. 연초 6.6%에서 5.5%로 내려왔을 때부터 과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들이 많이 벌 때는 그만큼 못 벌겠지만 현재 밤잠 못 이룰 정도는 아닙니다.(웃음) 선배분들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하신 적도 있어요. “채권은 참 쉬운 것 같다. 금리가 빠질 것 같으면 (채권을) 사고 오를 것 같으면 팔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그것처럼 편한 얘기가 어디있습니까. 우선 금리변동을 예측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냔 말이에요.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금리가 확 빠지면 분명 보스가 와서 그렇게 말할 겁니다. “너 왜 채권 안 사냐.”고. 100억 정도 규모면 200억도 괜찮다고 부추기겠죠. 이게 올해 들어 금리 5.5%일때 채권딜링룸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사례일겁니다. 여기서 금리가 더 빠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보스가 와서 또 말하겠죠. “야. 좋은 정보 얻었어. 내 친구가 어디어디에 있는데 금리 3%간대” 라고 말입니다. 거꾸로 금리가 올라가면 반대경향이 나타나요. “너 아직까지 채권 안 팔고 뭐해”(웃음) 그러니 쉬운 일이 없어요. <“뭔지는 모르지만 한국 채권시장의 발전을 위해서 내가 기여하는 것이 있다"> -그럼 지금은 어떤 상황입니까. ▲제 견해를 조심스럽게 밝히자면 더 빠지기는 힘들지않나 생각합니다. 저야 이제 뭐 시장의 큰 손도 아니고, 채권시장 전체 규모도 엄청나게 커졌어요. 제가 예측해봐야 ‘투신이나 연기금, 보험 같은 메이저기관이 어떻게 할까’를 찍어서 맞추려는 것 뿐이죠 뭐. 국내 거대기관이 시장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외국계 은행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채권 시장의 방향을 예측한다는 것은 일정부분 한계가 있습니다. 또 현재 돈이 없어서 금리가 올라간 건 아니거든요. 그러니 한은이 금리를 내린다고 해서 금리가 빠지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다만 돈이 많이 있는 상태니까 큰 폭 상승도 어려울 거라고 봐요. 말해놓고 보니 참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얘기네요. 하하 -아직도 딜링을 하십니까? ▲조금 하긴 하죠. 하지만 딜러로서의 역할은 크지 않습니다. -국내기관이 외국계 은행들에게 콜 자금을 잘 주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데요. 지금은 꼭 그렇지 않지만 외국계 은행의 딜러는 채권시장 안에서도 독특한 취급을 받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외국계 은행에서 외국자본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편견 같은 것도 있고… ▲제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외국계 은행을 옮겨다니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안 옮겨다닌 이유는 BTC가 돈을 많이 줬기도 했지만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뭔지는 모르지만 한국 금융, 한국 채권시장의 발전을 위해서 내가 기여하는 것이 있다”는 생각을 가졌어요. 앞으로 이것이 분명 가야 할 방향이고 제가 그것을 먼저 행한 사람들 중의 하나라는 거죠. <채권의 재미, 머리를 굴릴 여지가 많다> -후배 딜러들에게도 맏형처럼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하신다면서요. ▲맏형이라 불리울 분들은 따로 계십니다. 저는 그 그룹의 막내 위치를 점하고 후배들에게 나름대로 조언을 해준 것 뿐이에요. 젊은 친구들이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사람들이 빨리빨리 떠나가는 경향이 있었으니까요.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어디에서든 충실하게 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꼼수부리는 것은 오래 못 가요. 제가 매니저가 되니까 그것이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되더라구요. 제 개인적인 호불호와 관계없이 말없이 묵묵하게 일하는 친구들이 참 보기 좋습니다. -성실하지만 능력이 좀 떨어지는 직원과 태도는 별로지만 일을 잘하는 직원이 있다면 어느 쪽에 점수를 주시겠어요. ▲성실한데 일을 잘 못한다는 것도 문제가 있겠군요. (웃음) 하지만 상대적으로 전자가 롱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채권의 재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채권시장이 다른 금융시장보다 더 재미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채권시장이 근래 들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80년대에는 누가 채권시장에 관심을 가지기나 했습니까. 과거에 브로커들이 수수료많이 받을 때나 관심을 가졌을까 그게 없어지니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더군요. 주식의 재미는 종목발굴이에요. 외환은 한 종목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거구요. 채권은 그 중간이라고 할까요. 커브를 탈 수 있다는 것이 묘미인 것 같습니다. 다른 분야보다 머리를 굴릴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거죠. 물론 다른 분야에는 머리가 필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자기 취향에 맞게 리스크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가 없겠구요. (이동진 부지점장 약력) -60년 출생(본적 서울) -서울 중동고 졸 -79년 서울대 경제학과 입학 -85년 미국 미시간대학 MBA -85-97년 뱅커스트러스트(Bankers Trust Company) 서울지점 -97-98년 나라종금 -98-99년 뱅커스트러스트(Bankers Trust Company) 서울지점 -99년~ HSBC 서울지점
2001.05.18 I 정명수 기자
  • 주가지수, 심한 부침속 13%상승(DJ정부 3년)
  • 오늘(25일)로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 3년을 맞았다. 소위 경제의 성적표라는 주식시장은 이기간 어땠을까. 종합주가지수는 김대통령의 취임당시 516P에서 지난주말 583P로 마감, 약 13%대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궤적을 따라가보면 취임직후엔 개혁에 거는 기대보다는 불안이 더 크게 다가왔다. 98년 상반기에 거래소시장은 280P(98년6월16일)까지 떨어졌다. 부실 금융기관과 부실기업의 퇴출로 투자심리가 극도로 위축해진 상태였다. 이후 구조조정이 "약발"을 발휘하며 지수는 급한 상승커브를 그렸다. 이에따라 98년을 600P 직전에서 마감했다. 이듬해인 99년들어 국가투자등급이 "투자적격"으로 상향 조정되고 자금시장도 안정을 찾으며 주식시장은 상승흐름을 이어갔다. 99년 상반기 종합주가지수는 800선에 올라섰고 드디어 7월초에는 네자릿수대(7월7일 1005P)에 등극했다. 이후에는 1000P대를 유지하려는 거래소시장과 "벤처"를 앞세운 코스닥시장의 치열한 세력다툼이 진행된다. 증시의 "뉴밀레니엄 데이"인 2000년 개장일 종합주가지수는 1059.04P를 정점으로 내리막길에 들어선다. 취임 3년차에 들어서자 서서히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기의 위축 우려감이 커지며 주식시장은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특히 국내 최대그룹인 현대그룹이 유동성 곤란을 격게되고 구조조정 부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면서 시장분위기는 빠른 속도로 악화됐다. 이와함께 벤처기업인들의 부도덕성이 잇달아 적발, 증권시장 자금 순환구도가 깨지며 지수는 연말께 500P로 급락했다. 올해들어서는 연초 미국의 금리인하를 신호탄으로 유동성 장세 기대감이 고조되며 반등을 시도하고 있다. 다음은 김 대통령 취임 3년간의 주요 증시일지. ◇증시 주요일지 (98년도) 1.16 제일, 서울은행 감자 명령 1.30 10개 종금사 폐쇄 2.2 단기 금융시장 (CP,CD, 표지어음)조기개방 2.19 한국 신용등급 상향조정(S&P사 B+→BB+) 3.1 가격 제한폭 확대(8%→12%) 5.25 외국인 한도 철폐 6.18 퇴출기업 발표 6.29 금감위 5개 퇴출은행 발표 8.17 러시아 모라토리엄 선언 12.7 가격제한폭 확대(12%→15%) (99년도) 1.25 S&P한국신용등급 상향조정(투자부적격→투자적격) 2.1 가용외환보유고 500억불 돌파 2.19 워크아웃 15개 그룹, 195개 계열사 정리 4.1 1단계 외환자유화 실시(은행 예금금리 인하) 7.19 대우 구조조정 발표 9.20 대우관련 금융안정대책 발표 9.22 대만지진 발생 12.13 코스닥시장 건전화 대책 발표 (2000년도) 2.2 증권거래소 활성화대책 발표 2.28 대우차 편입 수익증권3차(95%보전)환매 4.10 6월 남북정상회담 평양 개최 합의 4.11 자본시장 발전안 발표 4.13 제 16대 국회의원 총선 실시 4.17 사상 첫 서킷브레이크 발생(↓93.17pt) 5.15 전후장 구분폐지 5.19 새한그룹 워크아웃 신청 5.25 현대 사태 10.13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10.23 정현준 게이트(동방상호신용금고) 11.7 미국 대선 11.8 대우차 부도처리 ◇주가지수 그래프
2001.02.25 I 김희석 기자
  • "출자 한도 맞춰라"-현대 계열사, 잇따른 자전거래
  • 현대 계열사들이 내년 4월 부활되는 출자총액한도를 맞추기 위해 잇따라 출자한 주식을 자전거래했다. 26일 거래소 등에 따르면 현대 엘리베이터는 이날 증시가 마감된 후 시간외 거래를 통해 계열사인 현대전자의 주식 572만주를 팔았다가 다시 사는 자전거래를 했다. 앞서 지난 22일에도 현대자동차와 현대종합상사가 보유하고 있던 계열사 주식 등을 대량으로 자전거래 했다. 이날 자전거래된 종목은 조흥은행 263만1000주, 인천제철 350만1000주, 진흥금고 40만주, 현대강관 2095만4000주, 현대상선 56만주, 현대종합상사 68만5000주, 울산종금 6만주, 고려산업개발 274만주, 현대건설 487만주, 현대엘리베이터 124만주 등이다. 회사별로는 현대차의 경우 인천제철, 조흥은행, 현대강관 등을, 현대종합상사는 현대엘리베이터, 고려산업, 현대건설 등을 집중적으로 자전거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10월27일에는 현대상선이 보유중인 현대전자주식 4535만주(9.25%)와 증권주식1768만주(17%)를 전량 자전거래하기도 했었다. 이에 대해 현대의 한 계열사 주식담당자는 "현대 계열사 주식들이 연초나 장부가액에 비해 크게 떨어졌기 때문에 장부가를 현실화할 필요성이 있어 자전거래했다"고 밝혔다. 특히 연말 종가를 기준으로 하는 결산방식에 따라 자산의 증감은 일어나지 않아 재무구조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대가 이처럼 장부가를 현실화하는 이유는 현대의 각 계열사간 출자규모를 낮추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현대엘리베이터 관계자는 "지난 10월말현재 회사의 출자한도가 269억원이지만 비계열사를 포함해 전체 출자규모는 1185억원에 이르고 있다"며 "때문에 출자규모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계열사 출자분을 해소해 나가야 할 입장"이라고 밝혔다. 출자규모를 줄이는 것은 내년 4월 부활되는 출자총액한도제에 따라 30대그룹은 순자산의 25%범위내로 계열사출자를 낮춰야 하며 4월이후 계열사에 대한 신규출자가 금지되도록 한 정부의 조치때문. 특히 현대는 각 계열사들마다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주가 현실화를 통해서 쉽게 출자규모를 낮출 수 있는 잇점이 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우 전자주식이 장부가상으로는 주당 1만4000원대(총 800여억원)지만 이날 주당 4025원(228억원)으로 자전거래함으로써 무려 500억원이상의 출자분을 해소한 것이다. 이와 함께 현대자동차의 계열분리 등으로 출자한도가 달라지는 점도 이같은 자전거래를 서두르게 하는 요인이다. 하지만 그룹에서 분리되는 현대자동차그룹도 최근 자전거래를 통해 출자한도를 낮춰 일부에서는 "새로운 출자를 위해 출자규모를 낮추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현대차 재무담당 관계자는 "계열분리에 앞서 미리 출자규모를 한도범위내에서 여유있게 해두자는 것일뿐 신규 출자를 고려하고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며 부인했다.
2000.12.26 I 문주용 기자
  • (초점)기업분할 활발, 관련 기업과 주가영향은
  • 기업분할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기업분할은 사업체를 쪼개 우량회사와 덜 우량하거나 부실한 회사로 분리해 우량한 회사는 더 우량해지고 그렇지 않은 회사는 몸집을 줄여 기동성을 갖춘 회사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런 기업분할의 취지가 주가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업종전문화를 위해 기업들은 분사(스핀오프)제도를 많이 활용했다. 그러나 지난해 상법개정으로 기업분할 절차가 간편해지면서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동원산업과 동원F&B= 동원산업은 해양수산부문과 식품사업부가 지난 1일자로 두 개의 회사, 즉 같은 이름의 동원산업과 동원F&B로 쪼개졌다. 분할승인을 위한 주주총회는 지난 9월 29일이었다. 분할 결정에 따라 해양사업부문은 동원산업이 그대로 운영하고 식품사업부문은 동원F&B가 맡았다. 동원F&B는 자본금 150억원, 부채비율 130%, 자산총계 3125억원의 신설회사로 재출발했다. 식품사업부문은 외형에 비해 저수익사업으로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좋은 해양사업부에 대한 의존도가 심했다. 분할을 통해 식품사업부문의 인력 및 저수익성 품목들을 정리하는 등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할 전망이다. 애널리스트들은 분할 후의 동원산업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SK증권의 경우 지난 15일 "기업분할 이후 해양사업부문만 남게된 동원산업은 그동안 실적 악화의 원인이던 식품부문을 털어냄으로써 수익성 향상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동원산업은 실제로 지난 14일 새로 상장된 이후 이틀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그뒤 시장의 침체분위기로 상승세가 이어지지는 않았다. 반면 23일 재상장된 동원F&B는 전날보다 1490원 하락한 8500원에 마감했다. 시장분위기 탓도 있지만 동원산업의 "비우량부문"을 분리해 생긴 회사라는 인식이 큰 영향을 줬다는 지적이다. ◇분할 앞둔 LG화학= LG화학은 출자부문을 담당하는 그룹내 화학지주회사인 LG CI와 석유화학 산업건자재 정보전자소재 등의 LG화학, 생활용품 화장품회사인 LG생활건강 등 3개사로 분할될 전망이다. 자본금 분할비율은 18:66:16으로 기존주주는 내년 4월1일 분할기준일을 기해 상장주식을 교부받는다. LG화학은 기업분할을 통해 화학부문과 생활건강이 각각 경쟁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그룹내 지주회사 역할을 떠맡으면서 투자수익성 등의 판단없이 계열사주식을 매집하는데 동원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낳고 있다. 굿모닝증권 이광훈 애널리스트는 "과거 계열사주식 불공정매입, 투자자산에 대한 추가적 출자부담을 느끼지 않고 본업에만 충실하게 됨에 따라 경영투명성 제고 및 기업가치 극대화의 전기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그는 "재벌기업 풍토아래서 LG화학의 기업분할은 확실한 호재"라고 강조했다. 그는 보수적 전제하에 기업분할 후 LG화학의 적정주가를 1만7910원, LG생활화학은 1만4800원, LG CI는 2만1550원으로 제시했다. 자본금 분할비율로 이들 3개사의 적정주가를 가중평균한 가격은 1만8060원으로 현주가 대비 55% 상승여력이 있다며 "매수"추천했다. ◇기업분할 관련주= 제3시장 지정업체인 타운뉴스는 23일 기업분할설과 관련한 조회공시를 통해 "기업분할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으며 최종적인 검토결과에 대해서는 내달 22일 까지 재공시하겠다"고 밝혔다. 기라정보통신은 최근 다층인쇄회로기판(MLB)사업을 분리했다. 회사측은 MLB사업 부문을 분할해 11월 1일에 디지텍이라는 법인을 설립하면서 기라정보통신의 부채 155억원을 이전, 부채비율을 낮췄다고 밝혔다. 분할등기는 지난 13일에 완료됐다. 세아제강은 계열사인 해양도시가스가 기업을 분할했다고 공시했다. 대우중공업은 대우조선 대우종합기계 대우중공업(잔존법인) 등 3개사로 분할됐다. 이르면 다음 달 중순쯤 재상장할 계획이다. 투자자들 사이에선 대우조선에 거는 기대가 크다. (주)대우도 무역 건설 잔존회사로 3분됐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1일 호텔사업 부문을 별도의 회사로 분리하는 기업분할을 실시키로 결의했다. 호텔 휴게소 사업과 관련한 자산 부채를 떼내 신설회사 "호텔현대"를 설립키로 한 것이다. 분할방법은 호텔사업 부문을 떼내 별도의 회사를 설립하고 현대백화점은 그대로 존속하면서 신설회사의 주식의 100% 보유하는 물적분할 형태다. 분할로 이전하게 되는 자산은 442억9700만원, 부채는 143억9400만원으로 초기 납입자본은 100억원이다. 기업분할은 내년 1월1일을 기준으로 실시되며 기업분할과 관련한 주주총회는 12월15일 열릴 예정이다. 거래소기업인 (주)진양은 합성수지사업부문을 진양화학(주)로 신설분할하되, 부산공장 소재 파이프부문은 제품생산 중단으로 분할대상 사업부문에서 제외했다. (주)진양의 주주는 본인의 주주비율과 동일한 비율로 진양화학(주)의 주주가 되며 (주)진양은 존속한다. 진양화학 주식은 내년 1월29일 상장될 예정이다. 분할주총일은 11월25일, 분할보고총회 및 창립총회일(신설사)은 내년 1월2일이다. 이에 앞서 코스닥기업인 한국정보통신도 스타브리지커뮤니케이션이라는 신설회사를 만들어 인터넷을 통한 지역정보포탈서비스 제공사업 등을 분리했다. 이 회사는 액면가 5000원짜리 주식 100만주를 발행했다. 분할후 한국정보통신이 존속하고, 분할되는 신설회사의 주식 100%를 소유하는 방식이다. 분할등기일은 10월2일이었다. 코스닥기업인 제이씨현시스템도 지난 9월22일 분할을 마쳤다. 신설된 회사는 엘림넷으로 자본금 100억원에 200만주를 발행했다. 결산기는 12월이다. 풍선전기도 지난 8월1일 분할등기를 마쳤다. 분리된 피에스텍의 자본금은 70억원, 풍성전기는 30억원이다. 이밖에 새롬기술 동서산업 등도 올들어 기업분할을 마친 회사다. ◇주가 영향= 주주는 물적분할, 즉 분할자산을 넘겨받은 회사 주식을 분할전 모기업이 100% 보유하는 경우에는 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 기업의 가치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주가 영향도 크지 않다. 그러나 서로 다른 내용의 사업을 각자 활발히 전개해 수익성 등 펀더멘털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기대가 형성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보다는 LG화학 동원산업처럼 분할후 재상장을 추진하는 "인적분할"(주주가 주식까지 나눠 가짐)의 경우엔 선별 상승이 일반적이다. 동원F&B보다 동원산업이 더 높은 평가를 받고, 대우중공업이 분할 후 대우조선쪽에 무게가 실릴 것이라는 예상이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실제 분할이 이뤄지기 전에 "분할"재료가 반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분할 공시가 나오기 전 "분할설(說)"에 더 큰 영향을 받고 있다.
2000.11.23 I 허귀식 기자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