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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수입-지출 목표 세우셨나요[가계부 쓰다가]
- 8년째 가계부 쓰고 있는 월급쟁이 글쟁이의 소소한 경제이야기. 제 기사를 가장 많이 보는 ‘40대’, 특히 저와 같은 ‘보통의 급여생활자’를 중심으로 많은 독자와 돈 관리 관련 고민과 의견을 틈틈이 공유하려 합니다. 댓글, 이메일 등 통한 소통 환영합니다. <글쓴이>(사진=이미지투데이)[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올해 수입-지출 목표 세우셨나요. 2015년부터 8년째 가계부를 쓰며 매월, 매년 수입-지출의 대략적 목표를 세우고 있는데 올 초만큼 불확실성을 느낀 적은 것 같습니다. 곧 만3세가 되는 아이를 위한 돈이 늘어나는 게 크지만, 매일 경제 관련 동향을 살피며 침체의 그림자를 느낍니다. 물가·환율·금리의 ‘3고(高) 현상’은 이미 기사가 아닌 개인의 현실이 됐습니다. 다들 느끼듯 일주일치 장 한번 보면 10만~20만원이 순식간입니다. 올겨울 난방비 지출 증가도 유독 두드러집니다.◇올해 목표는 ‘작년만큼’올해 수입-지출 목표는 ‘작년만큼’ 혹은 ‘작년보다 약간만 더’ 남기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사실 작년부터 좋지 않았습니다. 이익률(수입-지출)은 휴직했던 기간을 빼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렸습니다. 번 돈의 약 5분의 1(20%) 정도만 저축·투자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는 이보다 좀 많은 4분의 1을 저축한다는 목표(25%)입니다. 현실적으론 작년만큼만 해도 나쁘진 않을 듯합니다.개인적인 이슈는 둘째치고 이미 작년부터 오르기 시작한 물가는 올해 더 오를 게 확실해 보입니다. 작년엔 소비자물가지수가 5.1% 올랐는데 올해도 3.5% 더 오른다고 합니다. 재작년까지 1% 전후였던 걸 고려하면 체감이 꽤 큽니다. 올해 상승률이 내린다지만 개인 입장에선 2년 누적 8~9%입니다.올해 물가가 정부 목표인 3.5% 이내에서 잡힌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세계 물가를 끌어올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지리멸렬한 장기전에 들어선 상황입니다. 아끼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집에선 만2세 아이가 무럭무럭 크고 있고 집을 얻기 위한 빚에선 이자와 원금이 또박또박 나갑니다. 여러분도 지출 늘어날 일은 한둘씩 있겠죠.개인적으론 아직 고정금리 기간이 유지되고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인 편입니다. 빚이 없었다면 더 좋았겠지만요. 문제는 제 고정금리 기간이 끝나고 변동금리 기간이 시작할 때까지도 금리가 쉬이 내릴 것 같진 않습니다. 미국의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올해도 기준금리를 좀 더 올린다고 합니다. 당분간 내리지 않을 거라고도 합니다. 연준이 올리면 한국은행도, 시중은행도 금리를 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경기침체가 오면 금리를 내리겠지만 그 어느 쪽도 달갑지 않습니다. 경기침체가 심화하면 글 쓰며 월급 받는 제 경제생활 기반 자체가 흔들릴 겁니다. 그때가 되면 금리가 내려도 갚을 돈이 없겠죠. 최근 1~2년 빚내서 주택·주식·코인을 산 ‘영끌족’도 걱정입니다.◇이참에 가계부 써볼까고물가라는 사회적 부담과 자녀 양육이라는 개인적 부담 속 ‘작년만큼’이란 목표를 달성하려면 더 아껴야 합니다. 사업자라면 더 벌어서 더 많이 남길 수 있습니다. 잘 나가는 IT 대기업 직원이라면 업무 성과에 집중해 연봉을 수백~수천씩 올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 같은 보통의 급여생활자에게 수입을 큰 폭 늘리는 게 쉽지 않습니다. 공격적인 투자에도 위험이 따릅니다.현 시점에선 아끼는 게 가장 확실한 투자입니다. 일단 내가 지금 어디에 돈을 쓰는지, 무엇을 더 아낄 수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무엇을 더 줄일 수 있고, 줄일 수 없는지 파악해 소비 구조를 합리적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경험상 가계부 작성도 나쁘지 않습니다. 오랜 기간 지출 내용을 정리하고 항목별로 집계해오다 보니 돈의 흐름이 한눈에 보입니다. 어느 정도 예측도 가능합니다. 제 경우 전체 지출의 절반까지 커진 양육·가족 관련 지출은 더 늘었으면 늘었지 줄진 않을 겁니다. 세금과 통신비, 소소한 후원도 사실상 고정입니다. 나머지 절반 이내의 범위 내, 특히 특정 항목에서 아껴야 합니다.주 1~2회씩은 시켜 먹던 배달음식을 줄이기로 했습니다. 맞벌이로서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집에서 조리해 먹는 일은 소비 절감 효과가 생각보다 큽니다. 요샌 간편식도 잘 나와 급할 때 활용합니다. 외식도 업무 관련이거나 특별한 날을 빼곤 잘 안 합니다. 개인 기호식품이나 취미·레저비도 일정 비율 이내로 관리할 계획입니다. 개인 소비를 촉진해야 전체 경제가 활성화하는 건 압니다. 그러나 불확실한 환경 속 개인으로선 불필요해 보이는 비용은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사진=이미지투데이)◇누구나 현실 파악은 필요사람마다 상황은 다릅니다. 소득이 적은 영세 사업자나 소득이 없는 미취업자는 소득을 만드는 게 우선입니다. 지출 관리도 중요하겠지만 소득 없인 답이 안 나옵니다. 다른 의미로 능력이 뛰어난 고소득자나 큰 돈을 보유한 자산가도 지출을 관리할 시간에 소득을 늘리거나 가진 돈 잘 굴리는 게 나을 수 있겠죠.다만, 개인의 수입-지출 내역을 파악하는 건 거의 대부분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본인이 이달, 혹은 올해 내가 얼마를 벌었고 얼마를 썼는지 알아야 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한지 알 수 있으니까요. 꼭 아끼자는 게 아니라, 아낄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는 파악해 놓자는 거죠. 돈 많은 사람이 오히려 이런 작업을 더 열심히 하는 것 같습니다. 정부와 기업, 기관도 대부분 이런 작업을 합니다. 상장기업과 공공기관은 감사도 받고, 평가도 받습니다.개인도 생각보다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리를 알아서 해주는 앱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유튜버를 중심으로 ‘무지출 챌린지’ 같은 관련 브이로그도 유행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본인에게 맞는 방식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참고로 전 가계부는 체크카드 지출내역을 참조해 월 1~3회 엑셀로 정리합니다. 또 경제뉴스와 어피티 같은 경제 뉴스레터를 보고 계획을 세웁니다. 목표는 내 수입에서 지출을 뺀 이익률이 얼마인지를 수시로 파악하고, 내 경제 활동의 지속 가능성을 점검하는 겁니다. 연초인 만큼 여러분도 한번 시작해보면 어떨까 제안해봅니다.내 상황을 알면 남들과 객관적 비교도 가능합니다. 통계청은 분기마다 가계동향조사를 통해 전국 평균치를 냅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한 가구당 매월 487만원을 벌었고 372만원을 썼습니다. 저소득~고소득층을 모두 아우르는 평균치인 만큼 이보다 많고 적음에 큰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세부 내용을 보면 내 수준과 필요에 맞는 꽤 자세한 비교가 가능합니다. 내 주변이나 연예인, 인스타그램 속 돈 자랑보다는 의미 있는 분석이 가능합니다.
- 아빠, 졸음운전은 안 돼! [아홉 번째 수수께끼]
- 편석준 작가이데일리는 IT적인 상상력을 키우는데 지혜를 주는 편석준 작가의 칼럼을 매주 월요일 연재하려 합니다. 그는 세상의 디지털전환을 앞당기는데 전사 역할을 하게 될, 아이들의 사고력을 높이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아이들의 사고력을 높이는 방법은 많지만, 아이들에게 직접 기획적 사고를 해보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편 작가는 이데일리를 통해 <아빠와 함께 풀어보는 수수께끼들-주기장(週企帳)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출처 : 특허, (현대자동차) 운전자 졸음 및 피로 감지 시스템, 현대자동차주식회사상희 가족은 아빠, 엄마, 아들 상희 세 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겨울방학이 끝날 때쯤 회사 발령으로 엄마는 제주도에서 일 년 정도 일하게 되었다. 대신 아빠는 육아휴직을 내고 상희를 돌보기로 했다. 아빠는 일 년 동안 상희와 마음껏 놀 생각도 하고 있었지만, 한편으로 상희를 어떻게 하면 잘 가르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저 돈만 내고 걱정하면서, 스트레스 받는 것을 노력했다고 자위하면서 이런저런 학원에만 보내면 될까? 아빠는 평소에도 “생각하는 법”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 열 살이 된 아들에게 직접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 주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주기장(週企帳)이었다. 일주일에 하나씩 ‘기획(企劃)’을 해보고 기록하는 공책이란 뜻이었다. ‘기획’이란 현실 위에 미래를 꿈꾸며 그리는 그림이었다. 생각이 먼저 있은 다음에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아빠는 상희가 주기장을 처음 접해보기 때문에 의욕을 돋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기장을 작성해야 매주 용돈을 주기로 했고, 나중에 비싼 물건을 살 수 있도록 상희 이름으로 된 통장에 별도의 적립금도 입금해주기로 했다. 적립금은 일종의 보너스로 보너스 지급 여부와 금액은 아빠가 결정하기로 했다. 아빠와 상희는 본 내용으로 계약서를 작성했고 서로 지장을 찍었다. 그리고 서두에 “주기장은 상희가 아빠에게 돈을 내고 배워야 정상이지만, 아직 상희의 나이가 어려 경제활동이 어렵고 혈연관계임을 감안해 특별히 무상으로 교육함을 밝힌다.”라고 쓰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 ‘기획’이란 말은 아이에게 어렵기 때문에, ‘수수께끼’란 말을 사용하기로 했다. [본문]오늘 상희 가족이 공주로 가는 날이었어요. 공주는 상희의 외가인데, 엄마가 이틀 휴가를 냈거든요. 복잡한 시내를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접어들었어요. 상희는 옆에서 엄마가 희미하게 코 고는 소리를 들었어요. 라디오 DJ의 말소리, 자동차의 규칙적인 진동 소리, 거의 같은 속도로 지나가는 푸른 바깥 풍경과 하얀 구름……상희도 곧 잠에 빠져들 것 같아요. 그때 백미러를 통해 아빠의 감겨가는 눈이 보였어요. 순간 상희는 갈등했어요. 이대로 잠들어버릴까 아니면……하지만 평소에 엄마가 안전에 워낙 민감했기 때문에 상희는 잠의 유혹을 다행히 뿌리치고 꽥하고 비명을 질렀어요. 그 소리에 엄마도 화들짝 깨고 아빠도 놀랐는지 차가 아주 잠시 비틀거렸지만, 다시 바르게 나아갔어요.“상희야, 무슨 일 있니?”“무슨 일은 아빠에게 있다고.”터널을 지나고 다행히 갓길 옆에 쉬는 공간이 있었어요. 그제야 상희는 자초지종을 말했고, 아빠는 겸연쩍었는지 아무 말 못 하고 가져온 커피만 연거푸 몇 개를 마셨어요. 그때 엄마가 말했어요.“상희야, 여기에서 아홉 번째 수수께끼를 내볼까?”“엄마도 수수께끼를 내는 거야?”■ 수수께끼 9 : 아빠가 졸음운전 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대신 공주에서는 신나게 놀고 가자. 모처럼의 가족 휴가인데, 알겠지? 서울 집에 돌아가면 시작하는 거야.”웃는 얼굴로 상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상희는 속으로 휴 하고 한숨을 쉬었어요.‘그럴 거면 서울에 가서 문제를 내면 좋을 텐데. 고민하지 말라고 해도 난 이미 고민을 시작했다고요.’● 수수께끼 9 : 졸음운전 하는 아빠를 깨우기● 해결 방법을 생각한 배경 : 졸음운전하는 아빠를 깨우려면, 아빠가 졸음운전 하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 해결 방법 : 졸음운전 할 때의 객관적 특징을 파악해야 할 것 같다. 졸음운전 할 때란 것은 깨어있는 상태에서 잠든 상태로 넘어가는 단계로 정의해야 한다. 이미 졸았다면 이미 사고가 났을 테니까. 사람이 깨려하지만 계속 졸릴 때의 특징을 생각해보면 깨어있을 때보다 눈꺼풀이 자꾸 닫히고, 눈도 반쯤 감겨있는 것이다. 그리고 눈이 자주 감기면 반대로 눈을 깜빡이는 횟수는 줄 것이다. ● 문제점 :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눈의 모양이나 평소에 눈이 열려있는 정도도 다를 것이다. 그리고 사람마다 눈 깜빡이는 횟수도 다를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 같다. ● 문제점 해결책 : 차에서의 운전자의 눈에 관한 습관을 미리 파악해두면, 그것과 대비해 졸음운전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 전체 과정① 아빠가 평소에 운전할 때 눈의 움직임을 파악해둔다. ② 졸음운전이라고 판단하는 여러 값이 아빠의 평소 습관과 아주 다르면, 졸음운전이라고 판정한다.③ 여러 가지 장치를 통해 아빠를 깨운다. 경고음을 크게 내거나, 아빠의 좌석을 충격을 주어 깨운다. 아빠는 상희가 이제 주기장을 쓰는 게 한창 자연스러워졌다고 느꼈어요. 물론 주기장을 쓰는 게 여전히 힘들긴 하겠지만, 그래도 이제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아빠는 주기장 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며, 오른쪽에 아빠의 생각을 적기 시작했어요.상희의 생각과 가장 가까운 특허를 찾아보니 현대자동차의 ‘운전자 졸음 및 피로 감지 시스템’이란 게 있더구나. 그 특허에서는 아래의 기준으로 졸음운전 여부를 파악하고 있었어.● 눈이 감긴 정도● 1분간 눈을 깜빡이는 횟수● 1분간 하품하는 횟수● 고개를 끄덕이는 횟수그리고 상희의 말대로 사람마다 운전 습관이 다르기 때문에, 평소의 운전자 습관을 미리 알아둬야 한다고 했어. 그리고 운전 중일 때 졸음운전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적외선 카메라로 얼굴, 누, 입 주변 등을 관찰해야 한다고 했어. 상희의 생각과 거의 일치했어. 상희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그리고 졸음운전에 대한 경고를 내기 전에, 졸음운전 정도를 미리 정리해둬야 된다고 했어. 운전자의 상태에 따라 5가지 레벨로 나누었어(DS 레벨, driver status).● 레벨 1 : 운전자의 표정이 풍부하거나, 시선의 이동이 빈번하거나, 눈의 깜박임의 주기가 안정적인 경우● 레벨 2 : 레벨 1과 큰 차이는 없지만 시선 이동의 움직임이 둔해지거나, 눈꺼풀이 무겁고 눈의 개안정도가 DS 레벨 1 보다 낮은 경우● 레벨 3 : 눈깜박임의 횟수가 감소하였다가 증가허는 경우. 즉 무의식 속에서 눈깜박임의 횟수가 감소하였다가 의식상태로 돌아와 다시 증가하여 눈깜박임의 주기가 불안정해지거나, 눈의 개안정도가 현저히 낮아지고, 하품하는 경우● 레벨 4 : 시선 변화량이 적고, 폐안 시간이 3초 이상으로 길어지며, 하품의 발생이 빈번히 일어나는 경우● 레벨 5 : 폐안이 빈번해지고 고개를 끄덕이는 경우5개의 레벨 중에서 어떤 경우에 경고할 것인지 특정 레벨 이상으로 정할 수도 있을 거야. 아니면 5개의 레벨마다 경고의 정도를 달리해서 정할 수도 있고, 아니면 운전자가 운전 전에 졸음운전 경고 레벨을 선택하게 해서 그 레벨이 됐을 때만 경고하게 할 수도 있을 거야. 상희야 이번에도 주기장을 쓰나 고생 많았어!편석준 작가는 아이와 성인을 대상으로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 연습을 돕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책으로 특허동화 『상상이상 미래세상』, 일반동화 『이제 내가 대장이야』 『토끼 손잡이와 여섯 손가락』을 출간했으며, 어른들을 위한 책으로 에세이 『너는 내일부터 치킨집 사장이다』, 인문교양서 『구글이 달로 가는 길』, 소설 『10년 후의 일상』, 경제경영서 『사물인터넷』, 『사물인터넷, 실천과 상상력』, 『가상현실』, 『스타트업 코리아』, 『왜 지금 드론인가』, 『전기차 시대가 온다』 『4차산업혁명 IT트렌드 따라잡기』, 『미래의 직업전망』 등을 출간했습니다.
- [여행]영화 ‘탄생’의 배경이된 ‘나바위’를 찾아가다
- 영화 ‘탄생’의 배경이 된 전북 익산의 나바위성당[익산(전북)=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성령이 하시는 일은 모르지만, 지금 제 가슴이 뜨겁습니다.”영화 ‘탄생’ 중 청년 김대건(윤시윤 분)의 대사다. ‘탄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가톨릭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어린 시절부터 마지막 순교까지 시간순으로 전개해 나가는 영화다. 그의 삶을 모랐더라도 이 영화 한 편으로 충분히 들여다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영화 속 김대건에게 집중하다 보면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도록 이야기가 이어진다. 영화에서는 그가 최초의 신부라는 꿈을 품게 된 시점부터 마카오 유학을 시작으로 프랑스 군함 승선, 동서 만주 육상과 서해 횡단, 그리고 백령도 입국로 개척 등 실제 김대건 신부가 겪고 펼쳤던 일들이 펼쳐진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김대건은 페레올 주교 다불뤼 신부와 함께 서해를 통해 황산포 나루터(나바위)에 첫발을 내디딘다. 그곳이 지금의 전북 익산 망성면 화산리다. ◇우리나라 최초의 가톨릭 사제 ‘김대건 신부’김대건 신부는 우리나라 최초의 가톨릭 사제다. 그는 1821년에 태어났다. 전국에 콜레라가 창궐하던 시기다. 몇 달 새 1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그 난리 통에 미래의 성인(聖人)이 탄생한 것이다. 출생지는 충청도 면천군 송산리. 지금의 충남 당진시 솔뫼로 132번지다. 솔뫼는 ‘소나무가 많은 산’의 우리말 지명이다.이곳은 4대에 걸쳐 11명이 순교한 김대건 가문의 ‘신앙의 못자리’다. ‘한국의 베들레헴’으로도 불린다. 그가 태어났을 때 증조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는 순교한 뒤였다. 18세 때는 아버지가 순교했다. 그 또한 26세로 뒤를 이었다.국내 유일 한옥과 고딕양식이 조화를 이룬 나바위성당그가 일곱 살 나던 해에는 온 집안이 박해를 피해 경기 용인 골배마실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소년기를 보낸 그는 15세 때 프랑스인 신부 피에르 모방의 눈에 들어 신학생으로 발탁됐다. 골배마실에서 3㎞ 떨어진 은이(隱里·숨어 사는 마을) 공소에서 ‘안드레아’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해 동갑내기인 최양업과 한 살 위인 최방제도 신학생으로 뽑혔다. 세 소년은 곧 파리외방전교회가 중국 마카오에 세운 조선신학교에서 신학과 라틴어, 프랑스어, 철학 등 서양학문을 배우기 시작했다.나바위성당 역사관에 걸려있는 김대건 신부 초상화24세 때인 1845년 8월 17일, 그는 상하이 진자샹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조선인 최초로 사제품을 받고 신부가 됐다. 2주일 후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 11명의 교우와 작은 어선 ‘라파엘호’를 타고 귀국길에 올랐다. 그러나 풍랑으로 산둥성을 거쳐 제주 해안까지 표류하다 42일 만인 10월 12일 밤에야 금강 하류인 전북 익산 나바위에 도착했다. 교회사에 따르면, 라파엘호가 닻을 내린 화산리가 조선 본토 중 첫 착지처(着地處), 즉 처음 발을 내디딘 곳으로 기록돼 있다. 이후 김대건 신부는 약 1년간 조선교구 부교구장으로 전교하다 관헌에게 붙잡혀 1846년 9월 16일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했다.나바위성당 예수상과 나바위성당◇국내 유일 한옥과 고딕 양식 갖춘 ‘나바위성당’김대건 심부가 순교한 지 36년 뒤, 1882년 나바위에 공소가 설립됐다. 나바위성당인 그로부터 한참 뒤인 1907년에 건립됐다. 명동성당 설계자인 푸아넬 신부의 설계로 처음엔 한옥으로 지었는데, 이후 흙벽을 벽돌로 바꾸고, 성당 입구에 고딕식 벽돌로 종탑을 세웠다. 국내에서도 유일하게 ‘한옥’과 ‘고딕’ 양식을 보여주는 성당이다. 채광을 위한 팔각형 창문은 밤이면 더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소나무와 조화를 이룬다. 원래 이름은 화산 천주교회였지만, 지금은 ‘나바위성당’으로 개명했다. 이러한 역사성과 건축양식으로 인해 나바위 성당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성당 내부에는 남녀 자리를 구분하던 칸막이 기둥이 남아 있다. 창문에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니라 한지가 붙어 있다. 채색 유리판을 구하기 어려웠던 당시 신자들이 한지에 그림을 그려 붙이던 전통은 10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김대건 신부 순교비나바위성당은 국내 손꼽히는 천주교 성지답게 그에 따른 볼거리를 갖추고 있다. 김대건 신부 순교비가 첫번째다. 김대건 신부 순교비는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에 세워졌다.두 번째 볼거리는 성당 뒤편 화산까지 가는 길에 조성한 ‘십자가의 길’이다. 이 십자가의 길을 따라 정상에 오르면 ‘김대건 신부 순교 기념비’와 ‘망금정’이 있다. 화강석 축대 위에 설치된 순교 기념비는 총 높이가 4.5m다. 이곳이 김대건 신부가 사제품을 받고 조선에 첫발을 내디딘 곳임을 알리기 위해 김 신부가 타고 왔던 ‘라파엘호’와 똑같은 크기로 지어졌다.나바위성당 내부순교 기념비 뒤쪽으로 금강 황산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망금정이 있다. 망금정이라는 이름은 ‘아름다움을 바란다’는 뜻이다. 1915년 베로모렐 신부가 초대 대구교구장인 드망즈 주교의 피정을 돕기 위해 지은 정자다. 예전에는 망금정 아래까지 금강 강물이 넘실거렸으나 1925년 일본인들이 이 일대를 간척하면서 금강 줄기가 바뀌어 지금은 평야로 변했다.망금정이 있는 너럭바위 아래 바위 벽면에는 마애삼존불이 그려져 있다. 천주교와 불교가 한곳에서 공존하고 있는 모습이 색다르면서도 묘한 동질감을 준다.1915년 베로모렐 신부가 초대 대구교구장인 드망즈 주교의 피정을 돕기 위해 지은 정자인 ‘망금정’◇국내 대표적인 천주교성지 ‘여산면’여산 땅은 국내 대표적인 천주교성지로 불린다. 이 땅에는 모두 7곳의 천주교 순교지가 있다. 숲정이·뒷말·배다리·장터·기금터·감옥터·백지사터다. 여산성당은 1951년 건립됐다. 1868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천주교 신자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당시 고산·지산·금산 등에서 붙잡힌 김성첨 가족 6명 등을 포함해 잡혀온 천주교 신자들이 동헌 앞 백지사터와 감옥, 숲정이, 장터 등지에서 순교했다.백지사터여산성당에서 길을 나서 걸음을 조금 옮기면 백지사터다. 여산동헌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대원군 집정 당시 병인박해가 계속 진행돼 대학살이 감행되는 동안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한 장소다. 백지사는 당시로는 매우 잔인한 처형 방법이었다. 사형 집행인들은 이곳에서 천주교인의 얼굴에 물을 붇고 백지 붙이기를 여러 번 거듭해 질식사시켰다고 한다. 그만큼 조선 조정은 천주교인을 무자비하게 박해했다.숲정이성지는 여산동헌 부근에 있던 숲으로, 병인박해 때 천주교인들을 처형했던 곳이다.백지사터 바로 위는 여산동헌이다. 천주교인은 물론 죄인들을 문초하던 곳이다. 동헌에는 옛 부사들의 선정비와 불망비, 대원군이 천주교를 타도하도록 세운 척화비가 있다. 이 척화비는 이후 누군가가 뽑아 받침으로 썼고, 다시 마을의 한 클럽 표지판이 되기도 했다. 1975년 당시 여산성당 주임신부가 발견해 지금의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여산동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숲정이성지가 있다. ‘숲정이’는 순우리말로 ‘마을 근처에 있는 숲’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여산동헌 부근에 있던 숲으로, 병인박해 때 천주교인들을 처형했던 곳이다. 기록상으로는 당시 이곳에서 22명이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순교자들의 무덤은 천호산 천호 공소 부근에 있다. 이곳에서 신앙의 여부와 상관없이 그들의 삶을 되돌아보면 마음이 먹먹해진다.사형 집행인이 천주교인의 얼굴에 물을 붇고 백지 붙이기를 여러 번 거듭해 질식사 시킨 ‘백지사터’.
- [미리보는 이데일리 신문]韓中 우량기업 담은 ETF 22일 첫 상장
- [이데일리 윤기백 기자] 다음은 7일자 이데일리 신문 주요 뉴스다.△1면-韓中 우량기업 담은 ETF 22일 첫 상장-9억짜리 집도 年 4%대 보금자리론 받는다-샤테크·슈테크… 더이상 ‘공짜 수수료’는 없다-믿었던 둔춘주공마저 1순위 경쟁률 3.7대 1-미국발 긴축 공포 코스피 2400선 붕괴-[사설]파업 감싸며 기업 비명엔 모르쇠… 野, 민생 우선 맞나-[사설]남녀 임금격차 OECD 1위, 구조적 차별 더는 안 된다△줌인&-빌드업 DNA 심고 ‘고집 아닌 뚝심’ 증명… 굿바이, 벤버지-연금개혁 사회적 합의 위해선 재정부담 투명하게 보여줘야△화물연대 파업 장기화 갈림길-대형노조 발빼고, 조합원 속속 복귀… 명분없는 파업에 동력마저 상실-5대 업종 손실 벌써 3.5조… 주유소 기름은 바닥-“중재경험 많은 경사노위가 나설 때… 정치권 개입은 금물”△종합-고분양가에 발목… ‘재건축 최대어’ 둔춘주공도 부동산 혹한기 못 피했다-UAE 찾은 이재용 회장… “중동은 기회의 땅”-한덕수 “실내 마스크 해제, 새해 1월말 가능”△리셀 플랫폼 유료화 속도-‘자체 수익 창출’ 시동… 불어난 손실 메우고, 외부투자 의존도 낮춘다-MZ 잡아라… 신세계·롯데도 ‘리셀 마케팅’-“한국, 이커머스 발달하고 유행에 민감… 매력적 시장”△종합-메모리 1위 삼성, 배터리 1위 CATL 한 바구니에… 취약분야 보완 기대-취약층 중도상환수수료 면제… 연간 부담 600억 줄어든다-은행 저축성보험 판매 한달새 3배 쑥… 당국 “고금리 자제” 주문-교육부 디지털·저출산 대응 조직개편… 대학규제개혁국 신설해 구조개선 추진△정치-윤석열·이재명표 예산만 남았다… 원내대표 주도로 최종 담판-국정원 고위간부 100명 대기발령… 野 “정치 보복에 눈먼 권력” 반발-‘관저 식사정치’ 이어가는 尹… 소통이냐, 당권주자 교통정리냐-“북한군은 적”… 6년만에 국방백서 명시-이상민 장관 탄핵소추안 카드 두고… 셈법 복잡한 민주당△경제-저무는 강달러 시대… “내년 하반기 1200원대 안착”-신한울 원전 1호기 오늘부터 상업운전-지난해 태어난 아이 평균 83세까지 산다-동물 학대 행위자, 양육 금지하고 처벌수위 높인다△금융-한시가 급한데… 햇살론 비대면 심사 지연 논란-9부능선 넘은 애플페이, 한국 상륙 마지막 관문은-“연말 카드 쓸 일 많은데”… 사라지는 ‘무이자 할부’-두번째 하나X우리… 미사지구에 공동자동화점포 오픈△글로벌-전세계 숨은 달러 파생상품 부채 65조달러… “금융위기 예측 어려워져”-14억 중국인 3분간 숨죽여… 習 “서방 압력 굴하지 않은 지도자”-美 인텔, 파운드리 목표 달성… “내년 하반기 3나노 생산”-美·사우디 관계 악화 틈타… 빈 살만 만나러 가는 시진핑-“연준, 최종금리 5% 이상으로 올릴 수도”△산업-‘3040 리더십’ 전면 배치… 젊은 인재·기술력으로 ‘뉴삼성’ 가속-SK온, 美 최대 배터리공장 첫삽… “3년내 ‘글로벌 톱3’ 오르겠다”-한-베트남 기업인 “디지털·그린에너지로 협력 확대할 것”·경제 6단체 “노란봉투법, 불법파업 조장법”△ICT-SK C&C·카카오·네이버, 한달내 사고원인 개선-“1.6만 노조원, 구현모 대표 연임 지지”-위믹스 거래량 97%는 韓서 유통… 국내 투자자 피해 클 듯-‘페이코’ 서명키 유출에 악성앱 주의보… “링크 누르지 말아야”△소비자생활-대형마트 ‘평일 휴무·새벽배송’ 논의 급물살… 족쇄 풀리나-밀크플레이션 부담던다… CU, 우유·가공유 할인-8강 못가 아쉽지만… 편의점은 웃었다-찬바람 부는 골프웨어 시장… 프리미엄 브랜드만 약진△증권-올해 열세번째 IPO 철수… 희미해진 공모대박의 꿈-제품가격 올리니 주가도 오르네-위믹스코인 상폐, 오늘 운명의 날… 위메이드, 1년 새 84% 추락△증권-“연 수익률 5% 육박… 돈 몰리는 은행채 ETF”-신규투자 메마른 기관들 “허리띠 졸라매고 버틸 때”-길어지는 M&A 보릿고개… 초우량 딜도 지연-차익 실현 나선 임원들… 네옴시티 관련株 ‘뚝뚝’△부동산-분당 리모델링 속도내는데… 제동 걸린 서울, 왜-서귀포에 조경 비율 40% 에코 타운-해외건설 큰 장 서는데… 경쟁력 뒤처진 韓, 빈손 우려-‘급급매 줍줍’해 갭투자… ‘20억 갭’ 거래 강심장도△건강-처진 피부, 눈가 주름… 최신 의료장비·맞춤형 시술로 고민 싹~-노로바이러스 주의보… 굴, 85℃서 1분 이상 끓여야-축구선수에 흔한 ‘십자인대파열’… 형태·범위 따라 치료법 달라△콰타르2022-태극전사가 소환한 ‘중꺾마’ 열풍-“다음 월드컵요? 능력 된다면 해야죠”-브라질 선수들, 한국전 끝난 뒤 ‘펠레 쾌유 기원’-16강서 소멸한 ‘아시아 돌풍’△Book-사랑이 있는 고생은 행복이더라-여성이 ‘담밍아웃’ 고민않는 세상되길-그림이 삶이고 삶이 곧 그림-[200자 책꽂이]반항의 기술 外△오피니언-[이코노믹 View]금리인상 끝나도 갈 길 먼 ‘부동산의 봄’-[데스크의 눈]안전은 채찍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기자수첩]선전한 일본, 전패한 카타르… 뭐가 달랐나-[e갤러리]조가연 ‘인왕산의 덩어리’△피플-코로나19로 외로웠던 시간, 지금은 사랑이 필요할 때-변협회장 선거 출사표… 안병희 “유사직역 침탈 막겠다”-한미글로벌, 신임 사장에 최성수-SK인천석유화학 ‘대한민국 자원봉사대상’ 대통령표창-정기선 사장 “새로운 50년 핵심동력은 AI”-‘피파온라인4’ 넥슨 “韓축구 미래 유소년 본격 지원”-KS더블유, ‘천만불 수출의탑’ 수상… 해외시장 개척 우수-환경운동가 최병성 목사 제10회 리영희상 수상 -[알림]함께하는 나눔, 지속가능한 미래△사회-法 “최, 위자료 1억·재산분할 665억원 지급… SK 주식은 분할 제외”-한동훈, ‘술자리 의혹’ 제기 김의겸에 10억 배상 청구-서울중앙지법원장 후보 투표 시작-김어준 떠나는 TBS… 서울시 지원금 살아날까-‘李 측근’ 정진상 9일 기소될 듯… 檢, 법정서 공개할 ‘증거’ 주목-조직 효율화 팔걷은 정부… 51개 부처 직제 일괄 개정-겨울왕국으로 변한 화성행궁
- [미리보는 이데일리 신문] ‘소개영업’ 열만 올리고…관리감독 손놓은 금융사
- [이데일리 윤정훈 기자]다음은 6일자 이데일리 신문 주요 뉴스다.△1면-‘소개영업’ 열만 올리고...관리감독 손놓은 금융사-휴머노이드 시대 곧 온다는데 ‘휴보’ 이후 맥 끊긴 韓프로젝트-한·베트남 ‘포괄적 동반자’ 격상...안보·경제 함께 간다-삼성전자 첫 여성 사장 탄생-[사설]업무개시명령 확대 초읽기, 정치파업 근절 계기돼야-[사설]헷갈리는 실내 마스크 논란, 방역 혼선 부추겨선 안돼△종합-자장면·김밥도 10%대 껑충 뛰는 물가 위에 나는 외식비-옷값도 5.5% 올랐다...10년來 최대폭 상승-대기업 절반 “내년 투자계획 없다”-로또 1등 최고액 당첨금 407억원△역대급 부동산 거래절벽-강남 똘똘한 한채도, 재건축 대어도 외면...아파트 경매 10건 중 9건 유찰-‘헐값엔 안 팔아’...매매물건 14%↓ 임대는 46%↑-실수요는 13만가구인데...내년 16만가구, 2년 연속 공급폭탄△韓·베트남 정상회담-베트남 희토류 함께 개발하고...한국은 첨단기술·인프라 협력 확대 약속-韓 인·태 전략의 핵심...아세안 소통창구 역할 기대-尹정부 첫 국빈 방문에...靑영빈관 재개관해 만찬 개최△갈 길 먼 ‘휴머노이드 로봇 시대’-로봇·인간 공존시대 눈앞인데...정부 직접지원 예싼 0원, 장기투자 절실-美 ‘달리기봇’, 日 ‘아바타봇’...한국만 제자리-규제에 갇혀...사람없이 혼자 못다니는 자율 로봇△이재용 회장 첫 사장단 인사-성과 낸 반도체·5G 인재 대거 발탁...생활가전은 제외 ‘신상필벌’ 강화-뉴삼성 시동 건 JY, 글로벌 ‘광폭 행보’-JY복권 효과...삼성전자 ESG 등급 A로 상향△종합-금융지주 8곳 중 2곳만 자산관리상품 판매 선정 기준 두고 있어-“무주택자, 집값 뛰면 결혼·출산 포기”-北, 동·서해 완충구역에 130여발 포격...9·19합의 위반-추가 업무개시명령 vs 민노총 총파업 강행△경제-여야 ‘대통령·공공기관장 임기 일치’ 법제화 시동-같은 사이즈 요가복, 실치수는 제각각-임금 10% 인상시 제조업 제품 가격 2% 오른다-달러화 가치 하락에...외환보유액 넉 달 만에 증가세 전환△정치-여야, ‘尹·李’ 정책예산 간극 좁혔지만...이태원 참사 국조는 ‘공전’-美 스텔스 폭격기 ‘B-21’ 공개...동북아 정세 파급력 주목-“北 7차 핵실험 내년으로 넘어갈 수도”-‘운송거부 차주에 유가보조금 중단’...국회, 법 개정 놓고 충돌 불가피-與, 국회 상임위원장 5명 교체△금융-은행권 연말 ‘희망퇴직’ 바람...카드사도 들썩-비서실 줄이고 홍보기능 강화 경기침체 대비하는 은행연합회-‘사장님 모시기’ 나선 인터넷은행-안심전환대출 신청 8조 돌파...목표액 32% 채워△Global-美 IRA에...유럽도 “보조금 투입” 맞불-모건스탠리 “中 방역완화 기대” 투자의견 2년 만에 상향 조정-中, 전 세계서 ‘비밀 경찰서’ 100곳 불법 운영-日, 상대국 미사일 거점 공격 포함 ‘IAMD’ 구축 검토-최악 인플레에 자동차도 오래 타는 美△산업-반년 넘긴 후판가격 협상, 올해 넘기나...철강·조선업계 줄다리기 팽팽-포스코케미칼, 美에 ‘9393억 규모’ 흑연음극재 수출-이게 저비용 항공사 서비스라고? 비엣젯 ‘스카이보스 비즈니스’-삼성전자 ‘1200억불 수출의 탑’ 수상△산업-네이버, 특화 DA·확장매칭 SA로...카카오는 광고지면 확대-네이버·카카오로 병원예약 세나클소프트 ‘마오름’ 출시-아이스크림·커피값도 쑥...밀크플레이션 현실화-“얼어붙은 소비심리, 한파가 녹였다” 백화점 겨울세일 실적 반등△제약·바이오-‘툴젠 창업자’ 김진수, 관련 기술로 ‘딴집살림’ 문제없나-HLB, 2410억 유증 청약률 106% 기록-‘직판’으로 글로벌 승부수 던진 K-바이오-FDA 재수생 메지온 “임상 불안요인 걷어내”△증권-한겨울 증시, 아랫목 열기 즐기는 보험·에너지-마이너스의 늪 빠진 동학개미 올 순매수, 작년 3분의 1 그쳐-공매도의 저주 벗어나나...기지개 펴는 리오프닝주△증권-‘금투세 유예’ 정쟁에...시장만 속탄다-‘KB운용 국고채30년 ETF’ 개인 순매수 500억-국내 첫 오피스로만 구성된 리츠 6% 후반대 배당수익 가능하죠△Qatar2022-메시·케인·음바페·각포...자존심 대결 후끈-‘아알못’ 아저씨가 BTS 팬 됐네-임성재, 17일 ‘품절남’...18일엔 김시우·오지현 ‘프로골퍼 부부’ 탄생‘-프랑스 어린이의 롤모델 음바페 ’술광고는 안해‘-’새 빙속여제‘ 김민선, 4대륙선수권 1000m 우승△이데일리가 만났습니다-쌀 생산 줄여야 하는 판에...’정부 의무매입‘은 농민에 도움 안돼△피플-호텔방 하나 치료실로 꾸며 선수들 컨디션 관리에 만전-구자균 LS일렉트릭 회장의 ’바다 사랑‘-곽동신 한미반도체 부회장, 사랑의 열매에 1억원 기부-’자랑스러운 한양 언론인상‘에 허남진·신동휘-“여권있는 노르웨이산 연어 품질관리는 세계 최고죠”-“인생영화 ’물랑루즈‘ 뮤지컬 주연 맡은 건 기적같은 일이죠”-KBS 김의철 사장, 아태방송연맹 부회장 선출△오피니언-[법조프리즘] ’자본시장 파수꾼‘이 제 역할하려면-[생생확대경] 국토부-서울시, 쪽방촌 갈등 매듭지어야-타협보다 파업 부추기는 ’노란봉투법‘-[e갤러리]’이페로 ‘크리스마스가 온다’△전국-재개발·재건축 ‘2~3년’에 끝내는 본보기 보여줄 것-유흥가 주변에 클래식 공연장? 인천 계양구 건립사업 제동-고덕대교 vs 구리대교...한강다리 이름 ‘서울 강동-경기 구리’ 기싸움△사회-文 “서해 사건 당시 최종승인”...이원석 검찰총장, 文 정조준 하나-대전 이어 충남까지 ‘NO 마스크’...당국은 연일 반대-한국 남년 임금격차 26년째 OECD 1위-고교생이 “XX크더라, 기쁨조해” 교원평가서 성희롱 당하는 교사들
- 추락하는 위기에서 기필코 살아남는 법[정하윤의 아트차이나]<7>
- 인슈전의 ‘트로이인’(Trojan·2016∼2017). 비행기에서 비상상황을 맞았을 때 좌석에 앉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자세를 취한 여인을 형상화했다. 그리스·로마신화의 ‘트로이목마’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명, 높이 6m에 육박하는 압도적 규모 등이 거대한 위협을 맞닥뜨린 긴박한 상황을 자동연상케 한다. 환경문제, 경제위기, 전쟁·테러 등 지구적 위협 외에 많은 중국 예술가가 처해 있는 상태를 비유한 비틀린 아이콘이란 해석도 있다. 철골·헌옷, 570×220×470㎝, ⓒ인슈전·페이스갤러리 제공.중국 그림을 보지 못한 지 한참입니다. 한국 미술시장이 자못 뜨거웠던 지난해와 올해, 세계의 작가와 작품이 우리를 기웃거리던 때도 중국은 없었습니다. 중국 ‘큰손’ 컬렉터의 규모와 수가 미국을 제쳤다는 얘기도 이미 2~3년 전입니다. ‘으레 미술은, 그림은 그런 것’이라며 반쯤 우려하고 반쯤 체념했던 한국화단을 뒤흔든, 기발한 감수성으로 뒤통수를 내리쳤던 중국 작가들이 하나둘 사라졌습니다. 예술을 예술이 아닌 잣대로 들여다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술에 기대하는 희망 역시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정치에도 경제에도 답이 없다 생각할 때 결정적인 열쇠를 예술이 꺼내놨습니다. 오랜시간 미술사를 연구하며 특히 중국미술이 가진 그 힘을 지켜봤던 정하윤 미술평론가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지점 그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때마침 ‘한중 수교 30주년’입니다. 다들 움츠리고 있을 때 먼저 돌아보는 시간이고 먼저 찾아가는 길입니다.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깊고 푸른 ‘아트차이나’로 안내합니다. <편집자 주> [정하윤 미술평론가] 높이가 6m에 육박하는 여인이 웅크리고 앉아 있다. 흰옷을 입고 머리를 풀어헤친 채. 무슨 슬픈 사연이라도 있는 건가. 자세히 보면 여자가 앉은 의자가 비행기좌석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여자의 웅크린 모양 역시 비상상황이 발생했을 때 승객들이 취해야 하는 자세다. 여자는 에어백도 가슴에 꼭 품었다. 이 작품의 제목은 ‘트로이인’(2016∼2017)이다. 트로이인이라. 그리스·로마신화에 등장하는 ‘트로이목마’가 떠오른다. 나무로 집채만 한 말 형상을 만들고, 그 안에 숨어든 병사들이 적진의 중심을 파고드는 이야기 말이다. 어쩌면 여자의 웅크린 모습은 트로이목마 속 병사들의 자세일 수도 있겠다. 비상착륙을 앞둔 비행기 안 승객이든 적진침투를 앞둔 트로이목마 속 군인이든 아무튼 곧 닥칠 위험에 대비한 모습인 건 분명하다. 이 여자 앞에 놓인 위기는 대체 뭘까. 작품에 대한 답을 내려면 작품을 만든 작가에 대해 알아야 하는 법. 이 거대한 설치작품을 만든 인슈전(尹秀珍·59)은 베이징을 기반으로 국제미술계에서 활발히 활약하는 중국 미술가다. ‘트로이인’ 같은 대형 설치작업이 인슈전이 주로 하는 방식이지만, 대학 때 전공은 사실 회화였다. 일찍이 ‘자연을 그리는 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던 인슈전은 “여자가 무슨 공부냐, 돈이나 벌어 와라”는 아버지의 반대와 재정의 어려움을 무릅쓰고 미술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들어간 대학수업은 따분했다. 여전히 소련식 사실주의 그리기 방식이 전부였다. 사진처럼 똑같이 그리는 것. 미술가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훈련일 수는 있겠으나 1990년대에 미술가로 살아가기에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회화 전공 여성작가, 덩샤오핑 개혁 때 설치미술에 심취 인슈전의 흥미를 끈 것은 학교 밖 미술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 후반은 중국 미술에서 아방가르드란 꽃이 만개했을 때였으니까. 덩샤오핑의 개혁·개방·개발 파도를 타고 점차 느슨해지던 문화적 통제 아래, 중국의 젊은 미술가들은 새로운 형식인 설치, 비디오, 퍼포먼스 등을 마음껏 탐험했다. 이 가운데 인슈전은 공간을 압도하는 설치작업에 끌렸다. 한정된 크기의 캔버스에는 다 담을 수 없던 이야기를 설치미술로는 마음껏 풀어낼 수 있었다. 거대한 설치작업에 인슈전은 중국의 현실을 담았다. ‘폐허가 된 도시’(1996)가 그 대표적인 예다. 텅 빈 공간을 1400개의 회색 기와, 건물의 파편. 시멘트가루로 채운 작업이다. 이 모두는 베이징의 공사현장에서 나온 잔해들이다. 인슈전이 이 작품을 구상하던 1990년대 중반, 베이징에는 신축건물이 우후죽순 들어서는 중이었다. 특히 그가 살던 베이징의 옛 골목 후통은 시에서 진행하는 도시화 계획으로 낡은 집들이 빠르게 철거되고 있었다. 아침에 출근할 때는 있던 건물이 퇴근할 때는 사라지는 일이 일상이었던 거다. 인슈전은 그 무렵 어디를 가도 시멘트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인슈전의 ‘폐허가 된 도시’(Ruined City·1996). 베이징 한 건물의 철거현장에서 1400개의 기와와 건물 잔해, 가구·물건 등을 수거해 배치했다. 남편인 작가 쑹둥과 함께 사용한 나무의자 등 작가의 소유물도 포함됐다. 급격한 도시화로 정작 잃어버린 도시의 본질을 추모하는 형태로 꾸린 설치작품이다. 베이징 서우두사범대에 설치했을 때의 전경. 기와·시멘트가루·가구, 가변크기, ⓒ인슈전·페이스갤러리 제공.그곳에서 인슈전은 급격한 도시화 때문에 거주지를 잃어버리는 사람들도 목격했다. 더 저렴한 곳으로, 더 외곽으로 떠날 수밖에 없던 이웃 주민들. 그들을 보는 일은 괴로웠다. 이 작품에서 건물의 잔해 아래 배치한 의자·침대·화장대와 같은 가구는 현대화 과정에서 일상을 위협받던 사람들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인슈전은 이 작품을 베이징에 전시했다. 단 며칠간이었지만 인슈전의 인지도는 빠르게 상승했고, 국제미술계에서 수많은 러브콜을 받기 시작했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전역을 비롯해 영국, 네덜란드, 러시아, 뉴질랜드 등지에서 개인전이 연이어 열렸고, 베네치아·상파울루·시드니 등 다수의 비엔날레에 참여했으며,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수많은 단체전에 출품했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미술가가 되면서 인슈전은 여행가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유년시절에는 상상도 못했던 해외여행을 심지어 밥 먹듯이 하게 된 거다. 짐을 싸고 푸는 것을 반복하며 인슈전은 새로운 작품을 구상했다. 여행가방 안에 세계의 도시를 담는 작업, ‘휴대용 도시’(2001∼)다. 인슈전은 방문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입던 옷을 모아 그 도시의 모형을 만들고 캐리어 안에 설치한다. 지금까지 만든 것은 모두 마흔세 개. 인슈전은 그 가방들을 커다란 전시실에 함께 설치한다. 작품을 만들 때 인슈전은 각 도시의 개성을 나타내려 애쓴다. 그래서 에펠탑, 동방명주, 도쿄타워 같은 각 도시의 대표건축물을 꼭 포함시킨다. 그럼에도 작품 속 배경이 어떤 도시인지를 맞추기는 그리 쉽지 않다. 건축물 몇개를 제외하곤 그 모습이 비슷비슷해서다. 이에 대해 인슈전은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도시들이 개성을 잃어 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커다란 위기보다 더 큰 위기 극복의 의지 담아내 대서양과 태평양을 문간방 넘나들 듯 다니면서 얻은 것은 화려한 이력과 공고한 인지도만이 아니다. 더 값진 것은 확장된 시야다. 요즘 인슈전의 눈은 베이징뿐만이 아닌 온 세상을 향한다. 그러곤 자신이 마주하는 온갖 거대 이슈를 거대한 스케일의 작품에 담아낸다. 이를테면 세계평화. 인슈전은 알록달록하고 부드러운 무기 모형을 만들어 전시장에 대롱대롱 매달기도 하고, 가위나 칼같이 비행기에는 휴대할 수 없는 물건을 천으로 만들어 공항 검색대를 통과시키기도 한다. 바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테러와 전쟁에 대한 언급이다. 작품대로라면 어떠한 무기도 사람을 해칠 순 없다. 인슈전의 ‘휴대용 도시: 항저우’(Portable City: Hangzhou· 2011). 개인물품과 공공장소에 ‘기억’이란 카테고리를 결합해 세계화 이슈를 건드려온 연작 ‘휴대용 도시’ 중 한 점. 작가가 방문한 세계의 도시들에서 수집한 옷가지로 도시모형을 만들고 캐리어 안에 다시 배치하는 식으로 그간 43개의 여행가방을 제작했다. 여행가방·옷·돋보기·지도, 64×150×88㎝, ⓒ인슈전·페이스갤러리 제공.환경오염은 인슈전에게 특히나 중요한 문제다. 빠르게 개발되는 베이징에 살면서 하루가 다르게 환경이 나빠지는 것을 봤기에 그렇다. 그래서 일찍부터 수질오염을 염려하며 얼음을 깨끗이 닦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고, 비행기가 대기오염 때문에 착륙할 수 없는 모습을 커다랗게 만들기도 했다. ‘트로이인’이나 ‘휴대용 도시’와 같은 작품에서 사람들이 입던 옷을 재활용해 사용하는 것 또한 쓰레기문제에 대한 간접적인 언급이기도 하다. 인슈전은 딸을 키우면서 환경에 대한 염려가 더욱 커진다고 말한다. 다음 세대도 과연 숨 쉴 공기와 마실 물을 넉넉히 누릴 수 있을까. 그 기본적인 필요조차 위협받고 있음을 목도하며 인슈전은 슬픔을 느낀다. 자, 이제 마무리에 앞서 서두에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비행기좌석에서 웅크리고 있는 여자에게 닥친 위험은 무엇일까. 아쉽게도 이 작업만으로는 명확히 알기가 어렵다. 작가가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인슈전의 작품세계를 이해한다면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세계를 품은 인슈전은 필시 지구적인 환경문제나 글로벌 경제위기, 또는 국가 간의 전쟁이나 테러를 염두에 뒀을 거다. 물론 코로나19 같은 팬데믹일 수도 있다(인슈전이 팬데믹를 예견한 건 아니었지만 공교롭게도 이 작품을 코로나19가 시작되기 직전인 2019년 베네치아비엔날레에서 발표했다). 이 모두는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커다란 문제다. 이처럼 거대한 환경적·경제적·군사적 위협 앞에서 작품 속 여인은 몸을 꼭 웅크렸다. 좌절이나 낙망의 표현이 아니다. 충격에 대비하는 자세이자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는 의지다. 커다란 위기보다 더 큰 극복의 의지. 이것이야말로 인슈전 작업이 거대한 진짜 이유일 거다. △정하윤 미술평론가는…1983년 생. 그림은 ‘그리기’보단 ‘보기’였다. 붓으로 길을 내기보단 붓이 간 길을 보고 싶었단 얘기다. 예술고를 다니던 시절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 푹 빠지면서다. 이화여대 회화과를 졸업했지만 작가는 일찌감치 접고, 대학원에 진학해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내친김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중국현대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실 관심은 한국현대미술이었다. 하지만 그 깊이를 보려면 아시아란 큰물이 필요하겠다 싶었고, 그 꼭대기에 있는 중국을 파고들어야겠다 했던 거다. 귀국한 이후 미술사 연구와 논문이 주요 ‘작품’이 됐지만 목표는 따로 있다. 미술이 더 이상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란 걸 알리는 일이다. 이화여대 등에서 미술교양 강의를 하며 ‘사는 일에 재미를 주고 도움까지 되는 미술이야기’로 학계와 대중 사이에 다리가 되려 한다. 저서도 그 한 방향이다. ‘꽃피는 미술관’(2022), ‘여자의 미술관’(2021), ‘커튼콜 한국 현대미술’(2019), ‘엄마의 시간을 시작하는 당신에게’(2018) 등을 펴냈다.
- 집 3채 영숙·서울대 출신 옥순…'나는 솔로' 11기 솔로녀 정체
- [이데일리 스타in 김현식 기자] ‘나는 솔로’ 11기 솔로녀들의 직업과 나이가 공개됐다.16일 방송한 ENA PLAY, SBS PLUS 리얼 데이팅 프로그램 ‘나는 솔로’에서 11기 솔로녀들이 자신의 스펙을 공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선 영숙은 부산에서 주방기기 매매·철거 일을 하는 35세 사업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일한 지 3년 정도 됐는데 1년에 집 한 채씩 사서 집이 3채가 됐다”고 밝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정숙은 37세 변리사라면서 “현재 대학에서 특허 관리 업무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때 영철은 손을 번쩍 들어 “혹시 저 모르십니까?”라고 물었고, 정숙은 그제서야 영철이 6촌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뒤 민망해했다. 해당 장면을 지켜본 솔로녀들은 “이거 진짜냐?”, “어떻게 이럴 수 있나?”고 웅성거렸고, 정숙은 “빨리 (자리로) 들어가겠다”며 자기소개 타임을 황급히 마쳤다.한편 뒤이어 순자는 성악을 전공한 28세 재활 피트니스 강사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6년째 솔로로 지내고 있다”고 했다. 덧붙여 그는 “연애는 곧 결혼이라고 생각해서 결혼까지 갈 사람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영자는 금융사에서 IT 기획 업무를 담당하는 33세 직장인임을 알렸다. 그는 “인상이 차가워보이고 세보일 수 있는데 생각보다는 진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자시을 소개했다. “의리 있는 아내가 되고 싶다”고도 했다.옥순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뒤 청주에서 수학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으며 나이는 37세라고 밝혔다. 옥순은 “(인생을 통틀어) 총 연애 기간이 한 달이 안 된다. 응급해서 나오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어 “부모님이 사이좋게 있는 걸 본 적이 없다”고 언급하면서 가정사로 인해 연애와 결혼을 모두 망설였다고 부연했다.마지막으로 현숙은 “글로벌 패션 스포츠 브랜드 소싱 팀에서 일하는 35세”라고 자시을 소개했다. 이어 그는 “4남매 장녀라 저를 챙겨주는 분께 매력을 느낀다”고 이상형을 언급했다.자기소개 시간이 끝난 뒤 솔로남녀는 달라진 속내를 공유했다. 상철은 영숙이 집이 3채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했다. 옥순과 현숙은 영철의 댄디한 첫인상과는 180도 달랐던 코믹 자기소개에 “열심히 하는 게 느껴졌다”고 호감을 표시했다. 뒤늦게 ‘6촌 동생’ 영철을 알아본 정숙은 “나를 빤히 보길래 나한테 관심 있나 했다”며 “나의 선택지는 좁아졌다”고 말했다.첫 데이트 선택에서는 모든 커플이 ‘다대일 데이트’로 성사돼 파장이 일었다.정숙, 현숙은 영수를 선택했고, 옥순, 순자는 영철을 선택했다. 뒤이어 영숙, 영자는 상철을 선택했고, 영호, 영식, 광수는 0표를 받았다. 영수와 정숙, 현숙은 차를 마시며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영수는 두 솔로녀와 함께 있을 때에는 거의 침묵을 지켰는데, 정숙과 있을 때보다는 현숙과 있을 때 눈에 띄게 밝은 표정을 지어보여 눈길을 끌었다. 영수의 내향적이고 말이 없는 성격은 정숙에게는 플러스로, 현숙에게는 마이너스로 작용했다. 정숙은 제작진과의 속마음 인터뷰에서 “차분한 게 좋았다”고 영수와 대화 후 더 커진 호감을 표시했으나, 현숙은 “오래 만났던 남자친구가 영수님 같은 분이었는데 재미 없었다”고 밝혔다.영철과 순자, 옥순의 데이트에서는 불꽃이 튀었다. 순자는 “영철님이 처음에 제 캐리어도 들어주시고 저랑 많이 만났다. 전 운명론자”라며 호감을 표했다. 옥순 역시 “전 어제부터 선택이 안 바뀌었다”며 영철을 향한 ‘직진 애정’을 드러냈다. 뒤이어 진행된 ‘1:1 데이트’에서 영철은 순자에게 “저도 ‘운명론’에 대해 생각했다”며 호감을 내비쳤다. 또 그는 “가족과 잘 융화될 수 있는 남자를 만나고 싶다”는 순자의 말에 “전 어느 블록이든 맞출 수 있는 만능 블록남”이라고 적극 어필했다. 그러자 순자는 “내가 지금까지 외로움을 견딘 노력이 보상받는 느낌”이라고 화답했다.같은 시각, 옥순은 휴대폰으로 타이머를 돌리며 영철과 순자의 ‘1:1 대화’ 종료 시간을 체크했고, 기다리면서 미리 질문을 정리했다. 이어 그는 영철과 ‘1대1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질문을 포화처럼 쏟아냈다. 영철은 “기업 면접처럼 질문을 적어오셔서 긴장이 됐다”며 진땀을 흘렸다.상철, 영숙, 영자의 데이트 때 의미심장한 말들이 오갔다. 상철은 “누구 한 사람이 지치면 솔직히 끝이잖아요”라고 장거리 데이트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고, 영숙은 “좀 슬프다”고 답했다. 영자는 “상철님의 마음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냐?”고 물은 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머리를 싸매는 모습을 보여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자극했다.
- '돌싱글즈2' 최동환♥이소라, 남다커플 만났다 "결혼 얘기도 나와"
- 돌싱글즈[이데일리 스타in 김가영 기자] 돌아온 ‘소환 커플’이 가장 보통의 연애를 보여줬다.지난 13일 방송된 MBN ‘돌싱글즈 외전-괜찮아, 사랑해’(이하 ‘돌싱외전2’) 2회에서는 이소라, 최동환 커플이 대구와 동탄을 오가며 장거리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부터 ‘남다 부부’와 처음으로 만나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하루가 그려졌다.앞서 이소라가 사는 대구로 내려와 주말 데이트를 했던 최동환은 이소라의 20년지기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노포 느낌의 식당에 들어선 두 사람은 이소라의 초등학교 동창 2명이 나타나자 긴장한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최동환은 곧 두 친구들에게 깜짝 선물을 전달했으며, 센스 있는 최동환의 모습에 친구들은 “오빠(최동환)를 만난다고 하면, 1년 동안 연락이 안 돼도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며 합격점을 줬다.이소라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친구들은 “혹시 가족들이 (이소라를) 어떻게 생각하시냐?”라고 조심스레 물었다. 최동환은 “부담이 안 된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이 친구가 더 이상 상처받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그걸 제일 신경 쓰고 있다”고 밝혀 감동을 자아냈다. 이를 지켜보던 스튜디오 MC 이지혜 역시 최동환의 묵직한 한마디에 감동의 눈물을 쏟아냈다.친구들과의 만남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한 ‘소환 커플’은 다시 대구역에서 애틋하게 이별했다. 이후 이소라는 집으로 돌아와서, 친구들과 본격 식사를 즐겼다. 그러면서 이소라는 ‘돌싱글즈3’에서 인연이 닿지 않았지만, 이후 최동환의 진심에 마음이 움직였던 과정을 털어놓으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특히 이소라는 “원래 이혼하고 나서 다시는 재혼을 안 할 거라고 했는데, 이제 그런 마음은 없어졌다”고 털어놓는 한편, “현재는 서로 좋아하는 감정에 충실하면서 잘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며칠 뒤 이소라는 최동환의 동탄 집으로 놀러갔다. 깔끔하지만 다소 휑한 최동환의 집에서 이소라는 거실 커튼 달기에 나섰고 두 사람은 ‘꽁냥꽁냥’하면서 월동 준비를 마쳤다. 한층 포근해진 거실에서 두 사람은 ‘돌싱글즈3’를 함께 봤다. 당시 영상을 보며 또 다시 오열하는 이소라를, 최동환은 조용히 감싸안고 눈물을 닦아줘서 뭉클함을 더했다‘돌싱글즈2’의 남다 부부와의 만남도 성사됐다. 예쁜 레스토랑에서 만난 네 사람은 서로의 팬임을 밝히며 빠르게 친해졌고, 급기야 이다은은 “최동환님과 오빠(윤남기)가 비슷한 것 같다. 혹시 (MBTI가) ‘INTJ’시냐? ‘INTJ’들이 다 멋있나 봐”라고 ‘평행이론’을 펼쳤다.또한 ‘딸 엄마’인 이다은과 이소라는 단 둘이 커피를 마시며 깊은 공감대를 쌓아갔다. 이다은은 “처음에 자격지심이 심했던 것 같다. 오빠가 육아도 같이 하니까 뭔가 다 미안하고, 대역죄인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관계에 악영향을 주는 것 같아서 편하게 마음을 먹었다. 그 후 관계가 좋은 방향으로 발전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너무 걱정 마시고 현재에 충실하시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이소라는 “저도 처음엔 ‘을’의 입장이 되었는데, 오빠(최동환)가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말해줬다. 그 후에 마음이 편해졌다”며 공감했다.최동환도 윤남기와 단둘이 남은 시간 동안, 속마음을 나눴다. 최동환은 “지금 진짜 좋다”면서, “제2의 남다 커플이라는 호칭과 함께, 결혼 이야기도 나오더라”고 주위의 과한 관심에 대한 부담감을 내비쳤다. 윤남기는 “다은이가 처음엔 재혼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제가 계속 노력을 했다. ‘이 여자를 놓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후회되더라도 해보고 후회하자고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최동환은 “두 분을 만나보니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구나’하는 마음이 들었다”며 웃었다. 소환 커플과 남다 부부는 다음 만남을 기약하면서 기분 좋게 헤어졌다.얼마 뒤, 소환 커플은 춘천으로 첫 여행을 떠났다. 이소라는 “춘천은 처음”이라며 “여행 가서 음식 만들어 먹는 걸 좋아한다. 닭갈비를 만들어주겠다”고 해 최동환을 놀라게 했다. 이어 아담한 한옥에 채소가 가득한 텃밭이 있는 숙소에 도착한 두 사람은 “너무 행복해”라며 연신 감탄했으며, 커피를 내리는 순간에도 뽀뽀를 하는 등 애정행각을 이어갔다. 저녁이 되자 이소라는 닭갈비부터 된장찌개, 오이고추무침, 파절임 등을 순식간에 차려냈고, 최동환에게 애정이 담긴 푸짐한 쌈을 싸줬다. 최동환은 “나 죽을 것 같다. 맛있어서”라며 행복해했다. ‘소환 커플’의 닭살 모먼트가 죽어 있던 연애 세포를 모조리 깨울 정도로 달달함을 ‘한도초과’시킨 한 회였다.‘연인’이 된 이소라-최동환의 끝나지 않은 사랑 이야기를 담은 MBN ‘돌싱외전2’ 3회는 오는 20일 일요일 오후 10시 방송된다.
- '사라져버린 물글씨'가 '버릴 수 없는 것'에 묻는다[정하윤의 아트차이나]<6>
- 국제무대에서 크게 주목받는 개념미술가인 쑹둥의 ‘버릴 수 없는’(Waste Not·2005). 2009년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개인전에 출품했을 당시 설치전경이다. 쑹둥은 공연·설치·비디오·조각·회화·서예 등을 비롯해 다양한 매체를 결합하는 작업으로 가는 곳마다 파란을 일으켜왔다. 어머니가 평생 모은 잡다한 일상용품을 통째 옮겨내 자신의 가정사까지 드러낸 이 작품은 ‘쑹둥’이란 이름을 세상에 알린 대표작이 됐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어, 2006년 광주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버릴 것 없는’이란 작품명으로, 산업화로 급변하는 중국인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변크기, ⓒ쑹둥·페이스갤러리 제공.중국 그림을 보지 못한 지 한참입니다. 한국 미술시장이 자못 뜨거웠던 지난해와 올해, 세계의 작가와 작품이 우리를 기웃거리던 때도 중국은 없었습니다. 중국 ‘큰손’ 컬렉터의 규모와 수가 미국을 제쳤다는 얘기도 이미 2~3년 전입니다. ‘으레 미술은, 그림은 그런 것’이라며 반쯤 우려하고 반쯤 체념했던 한국화단을 뒤흔든, 기발한 감수성으로 뒤통수를 내리쳤던 중국 작가들이 하나둘 사라졌습니다. 예술을 예술이 아닌 잣대로 들여다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술에 기대하는 희망 역시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정치에도 경제에도 답이 없다 생각할 때 결정적인 열쇠를 예술이 꺼내놨습니다. 오랜시간 미술사를 연구하며 특히 중국미술이 가진 그 힘을 지켜봤던 정하윤 미술평론가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지점 그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때마침 ‘한중 수교 30주년’입니다. 다들 움츠리고 있을 때 먼저 돌아보는 시간이고 먼저 찾아가는 길입니다.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깊고 푸른 ‘아트차이나’로 안내합니다. <편집자 주> [정하윤 미술평론가] 스산한 늦가을이다. 꽃이 시들고, 나무가 우수수 낙엽을 떨구는 계절. 눈에 보이는 많은 것이 소멸하는 이때면 생각나는 미술가가 있다. “삶이 곧 작업”이라 말한 중국 미술가 쑹둥(宋冬·56)이다. 1966년 베이징에서 태어나 어느덧 국제적인 작가로 우뚝 선 쑹둥. 젊은 시절 그는 ‘사라짐’을 작업의 주제로 삼았다. 예를 들면 ‘물로 쓴 일기’(1995∼). 작품명이 그렇듯, 이 작업에서 쑹둥은 매일 일기를 썼다. 먹이 아닌, 물만 묻힌 붓을 들고. 종이가 아닌, 돌 위에. 하지만 붓에는 물만 묻어 있기에 아무리 열심히 써도 돌 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기억하기 위해 쓰는 하루가 그렇게 사라진다. 1990년대 쑹둥의 작업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주전자에 담긴 뜨거운 물을 흘리며 베이징의 좁은 골목을 달리거나 골목의 흙바닥에 물 묻은 붓으로 시각을 썼다. 발이 닿는 방향으로 남겨지던 물의 선은 금세 사라졌고, 순간을 붙잡으려는 듯 써내려간 숫자도 금방 증발해버렸다. 사라지는 것들을 그는 애써 잡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 과정을 카메라로 담을 뿐. 물 묻은 붓으로 글자나 숫자를 쓰는 것은 중국의 오랜 전통이다. 쑹둥은 어릴 때 그 전통을 따라 붓에 물을 묻혀 한자를 쓰며 글을 배웠다. 유년의 기억은 성년의 퍼포먼스 작업이 됐다. ◇중국 전통 따른 유년의 기억, 퍼포먼스 작업으로 연결 1990년대 국제 미술계에서 퍼포먼스는 이미 흔한 방식이었지만, 중국에서는 완전 새로운 것이었다. 30년 가까이 외부와 교류가 차단된 채 오직 정치적 구호를 전면에 드러낸 구상회화만이 미술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급변한 것은 마오쩌둥의 사망 이후였다.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했고,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서양미술에 대한 정보가 한번에 쏟아져 내렸다. 마치 댐의 수문이 열린 것처럼. 인상주의자 클로드 모네부터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까지, 다다이스트 마르셀 뒤샹부터 대지미술가 크리스토 부부까지. 더 자유로운 내용과 새로운 형식을 갈구하던 중국의 젊은 미술가들은 100년에 걸친 서양미술 모두를 게걸스럽게 탐식했다. 수많은 방식 중 쑹둥은 퍼포먼스를 취했다. 퍼포먼스의 미술이라면, 물 묻은 붓으로 글씨를 쓰던 유년의 행위도 예술일 수 있었던 것이다. ‘퍼포먼스’란 형식이 유년의 기억과 서구의 영향에서 비롯됐다면, ‘사라짐’이란 내용은 성년시절의 체험에 기인한다. 1990년대의 중국은 덩샤오핑의 경제발전계획에 따라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수도 베이징의 변화는 특히나 급격했다. 쑹둥은 후통이라 불리는 베이징의 오래된 골목에 살았는데, 그곳에서는 아침에 서 있던 건물이 저녁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쑹둥은 붙잡을 수 없었다. 변화의 바람은 거대했고, 그는 너무 작았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바라보는 일뿐이었다. 허망하게 사라져버리는 것들을 덤덤하게 시각화하는 쑹둥의 작업은 그렇게 탄생했다. 쑹둥의 ‘물로 쓴 일기’(Water Diary·1995). 중국 아방가르드 예술계의 강력한 주자로 꼽히는 쑹둥이 초기 시절부터 이어온 퍼포먼스. ‘사라짐’이란 주제를 위해 ‘물’을 선택해, 돌 위에 물 묻힌 붓으로 글 쓰는 과정을 기록했다. 퍼포먼스 대부분을 ‘관람객 없이’ 진행해, 행위를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매체는 사진·영상이다. 사진, 40×60㎝, ⓒ쑹둥·페이스갤러리 제공.그런데 쑹둥의 2000년대를 대표하는 설치작품 ‘버릴 수 없는’(2005)은 전혀 다른 성격을 보인다. 여기서는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 거대한 설치작업은 방대한 양의 물건으로 구성돼 있다. 수만가지의 살림살이, 예를 들면 옷, 신발, 치약, 칫솔, 페트병, 의자, 책, 비닐봉지, 펜, 손목시계, 머리빗, 병뚜껑, 보온병, 망치 등등. 말하기도 구차한 자질구레한 일상의 잡기들이 작품의 재료이자 주제다. 하나의 종류가 수십, 아니 수백개를 이루는 것도 있다. 모두 낡고 오래된 것이다. 신발만 해도 할머니의 것부터 조카의 것까지 아우른다. 한 사람이 모은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양이지만, 이 모두는 쑹둥의 어머니가 직접 모아 오랜 시간 간직해온 물건이다. 엄마와 아들이 어쩜 이렇게 다를까. 어머니가 아무것도 버리지 못했던, 어떤 것도 사라지게 놔두지 못한 이유는 뭘까. 쑹둥의 어머니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그 시대 여느 가정처럼 마오의 시절에 급격히 쇠락했다. 남편마저 반동분자로 몰려 ‘재교육’을 받기 위해 집을 떠나야 했고, 오래도록 가족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 사이 어머니는 가난을 배웠다. 배급품은 늘 부족했고, 식구들은 항상 배가 고팠다. 정부가 약속했던 풍요는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부족하니 아껴야 했다. 다신 갖지 못할 수도 있으니 아무것도 버려서는 안 됐다. 아껴야 잘 산다는 자린고비 정신도 아니고, 추억의 물건을 간직하겠다는 낭만도 아니다. 절박한 상황이 개발한 처절한 생존전략이다. ◇‘아무것도 못버린다’는 처절한 생존전략, 거대 설치로 어머니의 강박은 중국의 수장이 바뀌고 사회가 변해도 계속됐다. 여전히 무엇도 버릴 수 없었고, 물건은 반세기에 걸쳐 켜켜이 쌓여 갔다. 그 물건들이 작품이 된 것은 2002년, 쑹둥의 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나면서다. 급작스레 남편을 잃은 어머니는 절망에 빠졌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남겨진 물건들 속에 홀로 파묻혀 있었다. 쑹둥은 어머니를 슬픔에서 건져 올리고자 집안의 물건 일부를 정리했다. 어머니가 산뜻하게 새출발하기를 바라는 효심에서였지만, 그녀는 극도로 화를 냈다. 쑹둥은 ‘어떤 것도 버릴 수 없다!’는 어머니의 울부짖음을 들으며 그녀가 모은 물건들을 가지고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쑹둥과 어머니는 일일이 셀 수도 없는 물건들을 종류별로 나누고, 상자에 담아 옮기고, 전시장에서 다시 배치하는 과정을 함께 했고, 아들은 이 작업에 ‘버릴 수 없는’이란 제목을 붙였다. 주어는 생략돼 있지만 관람자는 안다. 그것이 무엇이라도 버릴 수 없던 쑹둥의 어머니, 나아가 무엇도 버릴 수 없던 그녀의 세대라는 것을. 쑹둥은 이 작품을 처음 선보이는 전시에서 “걱정마세요 아버지, 저희는 잘 있어요”란 문장을 벽면에 적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안심시키는 문장이지만, 곁에 있는 어머니를 위로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렇게 아무것도 떠나보내지 못하던 어머니는 2009년에 세상을 떠났고, 쑹둥은 이제 작품을 통해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억한다. 증발해버린 물의 흔적을 기억하는 것과 꼭 같은 방법으로. 둥의 ‘같은 침대 다른 꿈 No.3’(2018). 중국 도시개발사업 때 철거된 개별 가옥에 있던, 실제 가정에서 사용한 문짝·창문·조명 등을 모아 제작했다. 사소하고 일상적인 소재로 ‘가치 없는 것’을 재조명해 새로운 가치를 찾아가는 쑹둥의 작품세계가 구조물로 섰다. 철·나무창·문·침대·거울·조명·일상잡기·도자기·채색유리, 254.5×224.5×361㎝, ⓒ쑹둥·페이스갤러리 제공.요즘 쑹둥은 사라지는 것들을 모아 견고한 작품을 만든다(‘같은 침대 다른 꿈 No.3’ 2018). 베이징의 재개발로 철거돼 버려지는 문짝이나 창문·조명 등을 모아 크고 작은 조각 또는 구조물을 만드는 거다. 사라지는 것들을 그저 바라만 보던 청년 쑹둥이 아무것도 사라지지 못하도록 몸부림치는 어머니와의 작업을 거쳐 고안한 작품이다. 사라져버리는 것을 붙잡는 그만의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젊은 시절의 그보다는 적극적이고, 어머니보다는 자유스럽다. 세상의 모든 것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물은 증발하고, 꽃은 시들고, 잎은 떨어진다. 영원한 재물이나 명예도 없다. 관계는 변하며, 숨도 언젠가는 사그라진다. 이 모든 사라짐을 대하는 당신은 어떠한가. 1990년대의 쑹둥처럼 무기력한가, 아니면 그의 어머니처럼 강박적인가. 다 사라져 버린다고 체념하자니 삶이 허무하고, 사라지지 못하도록 발버둥치자니 인생이 딱하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태도를 취하겠는가. 이 가을에 쑹둥의 작품이, 떨어지는 낙엽이 묻는다. △정하윤 미술평론가는…1983년 생. 그림은 ‘그리기’보단 ‘보기’였다. 붓으로 길을 내기보단 붓이 간 길을 보고 싶었단 얘기다. 예술고를 다니던 시절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 푹 빠지면서다. 이화여대 회화과를 졸업했지만 작가는 일찌감치 접고, 대학원에 진학해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내친김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중국현대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실 관심은 한국현대미술이었다. 하지만 그 깊이를 보려면 아시아란 큰물이 필요하겠다 싶었고, 그 꼭대기에 있는 중국을 파고들어야겠다 했던 거다. 귀국한 이후 미술사 연구와 논문이 주요 ‘작품’이 됐지만 목표는 따로 있다. 미술이 더 이상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란 걸 알리는 일이다. 이화여대 등에서 미술교양 강의를 하며 ‘사는 일에 재미를 주고 도움까지 되는 미술이야기’로 학계와 대중 사이에 다리가 되려 한다. 저서도 그 한 방향이다. ‘꽃피는 미술관’(2022), ‘여자의 미술관’(2021), ‘커튼콜 한국 현대미술’(2019), ‘엄마의 시간을 시작하는 당신에게’(2018) 등을 펴냈다.
- 반 고흐는 되고 르누아르는 안되고…인상주의 수난기[정하윤의 아트차이나]<5>
- 천청보의 ‘쑤저우 강가: 프랑스 조계지’(1929·캔버스에 유채). 일본에서 서양의 화풍을 접한 천청보가 상하이에서 활동하던 시절 그린 작품이다. 강렬한 원색, 두꺼운 질감, 거친 붓터치를 특징으로, 20세기 초 유럽에 넓게 번졌던 ‘야수파’가 비친다. 주변 일상을 소재로 중국 산수화의 서정성에 서양 회화의 기법을 얹는 독특한 방식을 개발하던 때기도 하다. 천청보가 그랬듯 1920년대 초반 상하이에는 서유럽 모더니즘 스타일의 작품이 많이 그려졌고, 언론에 자주 소개되기도 했다.중국 그림을 보지 못한 지 한참입니다. 한국 미술시장이 자못 뜨거웠던 지난해와 올해, 세계의 작가와 작품이 우리를 기웃거리던 때도 중국은 없었습니다. 중국 ‘큰손’ 컬렉터의 규모와 수가 미국을 제쳤다는 얘기도 이미 2~3년 전입니다. ‘으레 미술은, 그림은 그런 것’이라며 반쯤 우려하고 반쯤 체념했던 한국화단을 뒤흔든, 기발한 감수성으로 뒤통수를 내리쳤던 중국 작가들이 하나둘 사라졌습니다. 예술을 예술이 아닌 잣대로 들여다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술에 기대하는 희망 역시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정치에도 경제에도 답이 없다 생각할 때 결정적인 열쇠를 예술이 꺼내놨습니다. 오랜시간 미술사를 연구하며 특히 중국미술이 가진 그 힘을 지켜봤던 정하윤 미술평론가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지점 그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때마침 ‘한중 수교 30주년’입니다. 다들 움츠리고 있을 때 먼저 돌아보는 시간이고 먼저 찾아가는 길입니다.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깊고 푸른 ‘아트차이나’로 안내합니다. <편집자 주> [정하윤 미술평론가] “인상주의 전시는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 미술계에 도는 우스갯소리지만 엄연한 팩트기도 하다. 인상주의는 누가 뭐래도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는 사조니까. 그런데 이런 ‘인상주의 불패 신화’가 적용되지 않은 시공간이 있었으니, 바로 마오쩌둥 시기의 중국이다. 마오의 중국에서는 인상주의 작품이 전시될 수도, 그런 류의 그림을 그릴 수도 없었다. 서유럽과 모든 교류를 끊는 데서 나아가, 서쪽 버터향이 나는 모든 미술을 ‘타락한 부르주아 예술’로 철저히 금지했기 때문이다. 체제의 다름이 문화적 통제로 이어진 결과였다. 그렇지만 마오시대 이전의 중국은 서유럽과 긴밀하게 교류하고 있었다. 특히 1920∼1930년대 상하이는 ‘어떤 유행이 오늘 파리에 있다면, 내일은 상하이에 있다’라고 할 정도였다. 미술도 그랬다. 20세기 초 중국의 미술잡지는 서유럽의 모던아트를 신속하고 활발하게 소개했다. 마네·모네와 같은 인상주의, 고갱과 반 고흐, 세잔의 후기 인상주의, 마티스의 야수파, 피카소의 입체파, 칸딘스키의 추상미술 등등이 생생한 도판에 상세한 설명을 곁들여 보여졌고, 그 영향을 받은 그림 역시 많이 그려졌다. ◇천청보, 1920년대 야수파풍 작품 그려일본에서 서양의 야수파를 접한 천청보(陳澄波·1894~1947)의 ‘쑤저우 강가: 프랑스 조계지’(1929)는 이 시절의 주요 작품으로 꼽을 만하다. 천청보가 상하이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그린 이 그림은 두껍게 발라올린 물감에서 반 고흐나 야수파 시절의 마티스 느낌이 물씬 난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마오의 중국에서 이내 사라졌다. 유통하던 잡지들은 깡그리 회수돼 도서관 지하실로 들어갔다. 중국 공산당은 그 판도라의 상자에 누구도 접근할 수 없도록 막았다. 아방가르드 낌새가 나는 작품들은 모두 파괴됐다. 집안을 수색하던 홍위병이 발견해 불태우기도 했고, 발각될까 무서웠던 미술가들이 스스로 없애버리기도 했다. 소련식 사회주의 사실주의를 제외한 모든 외래 미술이 마오의 중국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러던 1957년, 돌연 인상주의가 등장했다. 비록 그림을 그리거나 보인 것은 아니지만, 당에서 출간하는 ‘미술’이나 ‘미술연구’ 같은 잡지에 마네·드가·르누아르 등의 그림이 대거 실려 유통되기 시작한 것이다(한 예로 ‘미술연구’ 1957년 3월호는 마네가 1863년 그린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표지작으로 올렸다). 놀라운 일이다. 어찌된 일일까. ‘미술연구’ 1957년 3월호 표지.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풀밭 위의 점심식사’(1863)를 표지작으로 올렸다. 마오쩌둥의 중국에서는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다.그해 초 시작한 ‘백화쟁명’ 캠페인 때문이다. 마오쩌둥은 ‘백 가지 꽃이 피게 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사람들에게 사회문화 전반에 대해 무슨 말이든 해보라 독려했다. 주야장천 사상교육을 받으며 입을 닫았던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말실수는 곧 죽음이 아니던가! 마오는 이에 백화쟁명이 ‘산들바람과 보슬비’와 같이 부드러운 운동이라며 염려하는 이들을 안심시켰다. 쭈뼛대던 사람들은 하나둘 입을 열었고, 대학 교정의 대자보와 토론회, 잡지와 거리집회 등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미술인도 다르지 않았다. 당의 노선을 잔말 않고 따르던 이들이 슬금슬금 작품에 대해 자기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들 논의의 중심에 인상주의가 있었던 것이다. 왜 하필 인상주의냐고? 그건 소련 때문이다. 원래 소련은 인상주의를 ‘자본계급 예술 중 한 유파로, 사상성이 결여된 반인민의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고 정의하며 철저히 금지했다. 그런데 스탈린의 뒤를 이은 흐루쇼프(1894∼1971)가 서구와 문화 교류를 트면서 대우가 달라졌다. 1955년과 1956년, 소련의 주요 미술관은 드가와 모네 등 인상주의 회화작품 여러 점을 전시했고, 인상주의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가 오갔다. 당시 중국은 소련을 형처럼 잘 따르고 있었다. 형이 하면, 아우도 하는 거다. 소련에서 인상주의 얘기를 한다면, 중국에서 해도 됐고, 또 해야 했다. ◇“술잔 부딪치며 노닥거리는, 르누아르는 안돼”중국 미술계는 인상주의에 대해 꽤 많이 논의했지만, 결국 관심은 하나였다. 인상주의를 허락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게 무슨 논쟁거리일까 싶지만, 마오의 중국에서는 중대한 문제였다. 사상을 그 어떤 기준보다 우선시한 사회였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 진영에서 태어난 미술을 허락하느냐 마느냐는 민감한 사안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백화쟁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만 해도 인상주의를 허락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인상주의는 부르주아 계급을 위한 예술일 뿐이란 논리였다. 반면 인상주의를 허락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조금씩 생겨났는데, 그들은 마네나 모네 같은 화가들이 나름 자기 주변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렸기 때문에 그럭저럭 봐줄 만하다고 주장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인상주의를 선별해서 허락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절충파라고나 할까. 그들에 따르면 반 고흐는 허락해도 괜찮았다. 왜? ‘감자 먹는 사람들’ 같은 탄광의 인부나 ‘씨 뿌리는 사람’ 같은 농부를 그렸으니까. 노동자와 농부를 최고로 삼던 중국의 노선에 반 고흐의 그림들은 너무 알맞았다. 드가는 애매했다. 어떻게 보면 드가 역시 노동자를 그린 화가였다. 무대 위 화려한 발레리나도 따지고 보면 노동하는 중이지 않은가. 게다가 드가는 소묘 실력도 뛰어났고, 형태를 변형시키지도 않았다. 사실적인 미술만 용인한 당의 정책에 어긋나지 않았던 거다. 하지만 여전히 꺼림칙한 것은 드가가 금수저 출신이란 것, 무희들의 화려한 의복이 지나치게 눈에 띈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절대 안 되는 화가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르누아르. 그의 그림은 너무 예뻤다. 여유 있는 사람들이 보트 위에서 술잔을 부딪치며 노닥거리는 작품 따위는 눈에 흙이 들어온 대도 허락할 수 없었던 거다. 쇠라도 마찬가지. 일요일 오후 섬에서 야유회를 즐기는 장면은 역겨웠다. 그런 작품은 노동자의 눈물이라곤 한 방울도 들어가 있지 않은 퇴폐한 것이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 밀레를 따라’(1889·캔버스에 유채, 80.8×66㎝·왼쪽)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뱃놀이 일행의 오찬’(1880∼1881·캔버스에 유채, 130×173㎝). 유럽에서 인상주의·후기인상주의를 대표하던 두 화가는 엉뚱하게도 중국에서 명운이 갈렸다. 20세기 초 중국에 유입됐으나 마오쩌둥 집권 이후 사라졌던 ‘인상주의’를 중국 사회에 허락하느냐 마느냐로 논쟁이 일어나면서다. 일하는 서민을 그린 반 고흐는 ‘적합’, 즐기는 부유층을 그린 르누아르는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이들의 주장은 자칫 괴변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당시의 글들을 찬찬히 읽어보면 서양미술에 대한 지식이 방대하고 정확해 놀랄 수밖에 없다. 1949년 신중국 설립 이전에 습득한 서양미술에 대한 지식이 중국에 남아 있던 덕분이다. 또 하나 신기한 것은 논자들 모두 당의 노선을 판단의 준거로 삼았다는 점이다. 인상주의를 허락해야 한다는 쪽도, 금지해야 한다는 쪽도, 선별해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쪽도 ‘노동자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야 한다’는 원칙만큼은 철저히 따랐다. 아니,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당의 노선이 생각의 틀이 돼버린 거다. 그래서 마오의 말대로 ‘백 가지 꽃’은 피웠는지 몰라도, 화단 자체를 갈아엎을 수는 없었다. ◇급히 끝난 백화쟁명…‘태풍전야’였던 셈그러나 이만큼이나마 서로 다른 의견이 오가던 시절조차 금방 끝났다. 백화쟁명이 급하게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제 할 말을 했던 순진한 사람들은 바로 ‘우파’가 돼 혹독한 값을 치렀다. 인상주의는 다시 금지됐고, 인상주의에 대해 왈가왈부하던 사람들은 자기 비판문을 쓰거나 심한 경우에는 당에서 제명됐고, ‘교육’을 위해 이주당하기도 했다. 결국 백화쟁명은 ‘산들바람과 보슬비’가 아닌, ‘태풍전야’였던 셈이다. 1957년 중국에서 있었던 인상주의 논쟁을 살펴보면, 대체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이 왜 이토록 어려운 일이어야 하는지 한탄하게 된다. 생각을 내뱉을 자유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숨 막힐지도 괴로워하며 상상해보게 된다. 요즘 한국에서는 인상주의 작품을 다양한 형태로 선보이고 있다. 그 작품을 망설임 없이 보고,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이 새삼 감사하다. △정하윤 미술평론가는…1983년 생. 그림은 ‘그리기’보단 ‘보기’였다. 붓으로 길을 내기보단 붓이 간 길을 보고 싶었단 얘기다. 예술고를 다니던 시절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 푹 빠지면서다. 이화여대 회화과를 졸업했지만 작가는 일찌감치 접고, 대학원에 진학해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내친김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중국현대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실 관심은 한국현대미술이었다. 하지만 그 깊이를 보려면 아시아란 큰물이 필요하겠다 싶었고, 그 꼭대기에 있는 중국을 파고들어야겠다 했던 거다. 귀국한 이후 미술사 연구와 논문이 주요 ‘작품’이 됐지만 목표는 따로 있다. 미술이 더 이상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란 걸 알리는 일이다. 이화여대 등에서 미술교양 강의를 하며 ‘사는 일에 재미를 주고 도움까지 되는 미술이야기’로 학계와 대중 사이에 다리가 되려 한다. 저서도 그 한 방향이다. ‘꽃피는 미술관’(2022), ‘여자의 미술관’(2021), ‘커튼콜 한국 현대미술’(2019), ‘엄마의 시간을 시작하는 당신에게’(2018) 등을 펴냈다.
- 4m골목에 떠밀린 인파...그 일대 모두 위험했다
- [이데일리 한승구 인턴기자] 29일 이태원로 좁은 골목에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내리막길의 좁은 골목길에서 수천 명의 시민이 한꺼번에 몰렸다가 떠밀린 사람들이 넘어지며 참사는 시작됐다. 사고가 발생한 골목길은 인근에 지하철역, 유명 상가 등이 모여 있어 평소에도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공간이었고, 그 주변엔 좁고 경사진 골목길이 다수 있었다. 비단 사고가 발생한 골목 뿐 아니라 그 일대 자체가 위험했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을지, 또 좁은 지역에 과도하게 인구가 밀집된 경우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스냅타임에서 알아봤다. (압사 사고가 발생한 골목. 출처: 한승구 인턴기자) 이날 이태원에는 경찰 추산 약 10만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참사가 일어난 골목길은 길이 45m에 폭은 3m 내외로 사람 5~6명이 한 번에 지나갈 수 있는 정도였다. 거기에 경사도 역시 10% 정도 되는 급한 내리막이었다. 사고는 그 좁은 골목에 인파가 몰리면서 발생했다. 인파에 쌓인 사람들이 몸에 강한 압박을 느끼고,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휩쓸리듯 연쇄적으로 쓰러진 것이다.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적학 교수는 “1m²에 5명을 초과하면 위험한데, 이미 사고가 발생한 골목의 경우 그 수가 한참 넘었다”며 “좁은 공간에 몰린 사람들이 서있는 상태로 휩쓸리는 분위기에 한 명이 넘어지면 다수가 연쇄적으로 넘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해밀턴 호텔 옆 골목 부근은 근처에 지하철역이 있고, 세계 음식 거리로 유명해 평소에도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장소였다. 이태원에서 3년간 장사를 한 상인은 “해밀턴 호텔 양 옆으로 난 골목이 평소에도 사람들이 많이 붐빈다”며 “위로 유명 상가들이 있고, 술집이나 클럽 등이 있어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코로나19로 인해 상권이 침체돼 사람들이 몰리는 구간이 한정적인데 사고가 발생할 것을 미리 대처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대규모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하고 사전에 대처할 수 있지 않았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좁고 경사진 골목...근처에 더 있었다 (출처: 네이버 지도) 사고 발생 지점 근처에도 압사 사고의 위험성이 큰 골목들이 많았다. 해밀턴 호텔 옆 골목 주위에는 좁고 경사진 골목들이 얽혀있었다. 사고가 발생한 골목 위로는 세계 음식 거리가 쭉 이어져 있고, 그 사이로 다른 골목들이 나있는 형태였다. 다른 골목들 역시 좁고 경사진 형태였으며 한 골목은 사람 2~3명이 지나가기도 버거워 보였다. 또다시 인파가 몰리게 된다면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이 교수는 “이번 골목의 경우가 압사 사고가 발생하기 쉬운 조건이었다”며 “좁은 골목과 내리막 경사, 그리고 높은 인구밀집이라는 3가지 조건이 동시에 작동하면 압사 사고의 위험이 커진다”고 설명했다.실제로 사건이 발생한 골목 외에도 압사 사고 위험이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람이 몰리기 시작한 저녁 7시 전까지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우측 보행을 하며 통행을 이어갔지만, 인파가 더 몰리면서 그것마저도 소용없었다. 이날 현장에 있던 목격자가 인터넷에 올린 글에 따르면 “단풍나무집(세계 음식 거리) 앞에서 한 번 압사 사고가 날 뻔했고, 사람들이 더 몰리는 것 같아 무서워서 친구와 집에 돌아갔다”고 전했다. (사고 발생 근처 골목들. 골목 모두가 좁고 경사져있다. 2022.10.31 사진=한승구 인턴기자) 전문가 “이미 인파가 몰리면 수습 어려워. 질서 유지가 최우선”전문가는 이미 많은 인파가 몰리고 나면 수습하기 어렵다며 질서를 통한 예방을 강조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 교수는 “이번 사태의 경우 인구밀집이 높음에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1m²당 최대 5명을 넘지 않도록 일방통행, 우회, 도로 제한 등의 질서 유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고 설명했다.주최 측이 모호해 책임소재가 불명확하다는 점도 꼬집었다. 이 교수는 “이번 행사는 개인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진 탓에 경찰이 개입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개인의 자발적 참여도 경찰 등의 집단이 관여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동선에 있어 장애물 치우고 출입구를 확보해서 병목현상 완화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사고가 발생한 골목에는 좁고 경사진 데다, 바닥도 울퉁불퉁한 상태였다. 거기에 테라스 의자, 테이블 등 가게에서 내놓은 물건들로 가뜩이나 좁은 골목이 더 비좁았다. 수많은 인파가 몰리면 도로에 장애물이 통행에 불편을 초래할 수 있어 각별히 주의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압사 위험 느낄 시 대응법서울은 인구밀도가 높은 탓에 각종 행사가 열리면 수많은 인파가 한 장소에 모인다. 만원 지하철도 이와 같은 경우인데, 압사, 질식 사고 등이 일상에 늘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는 먼저 인파가 많은 장소에 각별한 주의를 가지며 최대한 피할 것을 강조하며, 부득이하게 장소에 있게 될 시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한다.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 내과 교수는 “호흡기의 압박으로 기도가 눌리게 되면 아예 숨을 쉴 수 없다”면서 “갈비뼈가 부러져 폐나 복강 등을 찌를 수도 있기 때문에 압사 위험은 곧 생명과 직결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체중이 작고 마른 분들은 압박에 더 버티기 힘들다”면서 “압사 위험을 느낄 시 팔짱을 끼고 두 팔을 최대한 앞으로 뻗거나, 가방 등을 앞으로 매서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