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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일재 미망인 "남자답고 바른 분, 품위있게 떠나셨다"
  • [단독]故 이일재 미망인 "남자답고 바른 분, 품위있게 떠나셨다"
  • 이일재(사진=JTBC ‘닥터의 승부’ 방송캡처)[이데일리 스타in 박현택 기자] “의지가 강한 분이라 끝까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주무시던 상태로 편안하고 품위있게 돌아가셨습니다.”폐암 투병을 하다 5일 숨을 거둔 배우 고 이일재의 미망인 황지선 씨는 이 같이 전하며 오열했다.미망인은 이날 이데일리에 “2017년 3월 폐암 판정을 받으신 후, 중간에 호전돼 방송까지 출연하셨는데 올해 2월, 2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으셨다”며 “이후로는 편안하게 마음의 정리를 하며 영정 사진도 찍고 추모공원 자리도 가보며 삶의 끝을 맞이하셨다”고 설명했다. 고인은 가족에게는 따뜻했고 희생적이었으며 밖에서는 강직했고 남자다웠다. 미망인은 “2개월간 가족끼리 많은 대화를 나누고 결혼기념일에는 가족끼리 여행을 가서 추억도 만들고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줬다”며 “남편은 딸들에게 어떤 남자를 만나야 하는지, 세차는 어떻게 하는게 좋은지 같은 조언까지 해줬다”고 전했다. 이어 “밖에서는 늘 약자 편에 서시던 남자다운 분이셨다”며 “톱스타 반열에 계실 때도 단역 배우 밥과 신발을 사주며 챙기던 그 선한 마음을 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故 이일재 (사진=영화 ‘장군의아들’ 中)이일재는 이날 새벽 입원해있던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병송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향년 59세.1960년생인 이일재는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1981년 연극배우로 데뷔했다. 얼굴을 알린 건 1990년 개봉한 영화 ‘장군의 아들’다. 극중에서 김동회 역으로 인기를 얻었다. 이일재는 ‘장군의 아들’ 1~3편에 출연한 뒤 1993년 ‘제3의 공화국’ ‘푹풍의 계절’ 등에 출연하며 TV 무대로 활동 영역을 넓혀 활발하게 작품 활동했다. 2000년대에는 ‘야인시대’ ‘무인시대’ ‘장길산’ ‘연개소문’ ‘왕과 나’ ‘대왕 세종’ 등 주로 시대극에 출연하며 중후한 매력으로 극에 무게를 더했다. 2017년에는 영화 ‘보안관’에 특별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이일재는 2000년 아내 황지선씨와 결혼, 슬하에 두 딸이 있다.
2019.04.05 I 박현택 기자
폐암 투병 배우 이일재, 오늘(5일) 별세
  • [단독]폐암 투병 배우 이일재, 오늘(5일) 별세
  • 이일재(사진=JTBC ‘닥터의 승부’ 방송캡처)[이데일리 스타in 박미애 기자]폐암 투병을 해오던 배우 이일재가 5일 숨을 거뒀다. 향년 59세.연예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일재는 이날 새벽 입원해있던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이일재는 폐암 투병 중이었다. 지난해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폐암 4기 판정을 받은 사실을 밝힌 바 있다. 그는 당시 방송에서 폐암 진단 이후 주변에 걱정을 끼치는 게 싫어서 투병 사실을 알리지 않았으며, 암을 극복한 후 다시 열심히 활동하고 싶다는 강렬한 의지를 드러내 동료들과 시청자들의 응원을 받았다. 건강 회복에 대한 의지가 강했지만 끝내 눈을 감았다.1960년생인 이일재는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1981년 연극배우로 데뷔했다. 얼굴을 알린 건 1990년 개봉한 영화 ‘장군의 아들’다. 극중에서 김동회 역으로 인기를 얻었다. 이일재는 ‘장군의 아들’ 1~3편에 출연한 뒤 1993년 ‘제3의 공화국’ ‘푹풍의 계절’ 등에 출연하며 TV 무대로 활동 영역을 넓혀 활발하게 작품 활동했다. 2000년대에는 ‘야인시대’ ‘무인시대’ ‘장길산’ ‘연개소문’ ‘왕과 나’ ‘대왕 세종’ 등 주로 시대극에 출연하며 중후한 매력으로 극에 무게를 더했다. 2017년에는 영화 ‘보안관’에 특별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이일재는 2000년 아내 황지선씨와 결혼, 슬하에 두 딸이 있다.
2019.04.05 I 박미애 기자
고양시, 3·1운동 100주년 기념 항일음악회 연다
  • 고양시, 3·1운동 100주년 기념 항일음악회 연다
  • (사진=고양시)[고양=이데일리 정재훈 기자]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한 항일음악회가 고양시의 과거 일본군 주둔지역에서 열린다.경기 고양시는 오는 13일 화전동에 위치한 육군 30사단 운동장에서 광복군가와 독립군가로 구성된 항일음악회를 개최한다고 4일 밝혔다.이번 행사는 일제강점기 일본군 주둔지였던 30사단에서 피해자들의 아픔을 되새기고 다시는 이런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의미를 담아 추진됐다.음악회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희망을 시민들과 함께 노래하고자 ‘개똥벌래’ , ‘터’ 등을 부른 싱어송라이터 가수 신형원을 비롯 고양시 교향악단과 고양시립합창단 및 신한류예술단 등 예술단체 및 항일음악 관련 공연팀들이 참가해 약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다.고(故) 노동은 교수가 편찬한 항일음악 330곡 중, 민족문제연구소로부터 자문을 받아 엄선한 곡이 무대에 오르며 노 교수의 아들인 음악가 노관우 씨가 항일음악의 해설과 공연팀으로 함께 참가 할 예정이다. 또 가수 신형원은 본인의 노래뿐 아니라 항일음악도 같이 공연해 그 의미를 더할 예정이다.한편 시는 이번 음악회의 항일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되새기고자 신흥무관학교 설립자이자 임정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의 증손자인 이항증 씨와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인 이준식 독립기념관 관장을 초청했다.
2019.04.04 I 정재훈 기자
文대통령, 초임 해군 장교들에 "북극항로 개척, 남쪽 바다 평화 지켜낼 것"
  • 文대통령, 초임 해군 장교들에 "북극항로 개척, 남쪽 바다 평화 지켜낼 것"
  •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5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 위치한 해군사관학교 연병장에서 열린 제73기 해군사관생도의 졸업 및 임관식에서 해양강국을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졸업 및 임관하는 신임 해군 장교들에게 “우리 앞에 펼쳐질 새로운 시대의 해군은 선배들이 가보지 못한 바다, 북극항로를 개척하게 될 것”이라며 “더 많은 무역이 이뤄질 남쪽 바다의 평화를 지켜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이날 대한민국 해군 역사상 처음으로 해상 입장했다. 대통령의 해상입장은 해양주권 수호와 해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라는게 해군 측 설명이다. 행사 직전 문 대통령이 탑승한 대통령 헬기는 행사장 앞바다에 도열한 독도함 갑판으로 착륙했다. 문 대통령의 독도함 방문 또한 이번이 처음이다. 다음은 문 대통령의 해군사관학교 제73기 졸업 및 임관식 연설문 전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오후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제73기 졸업 및 임관식이 끝난 뒤 충무공 동상 앞에서 신임 소위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다 ‘사랑의 하트’를 그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147명의 해군, 청년 장교들이 임관합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후예들을 기쁜 마음으로 함께 축하해주시기 바랍니다.‘이 나라 해양과 국토를 지키는 길’을 기꺼이 선택하여 영광된 자리에 선 해군사관학교 제73기 생도들의 졸업과 임관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아들·딸들을 자랑스럽게 잘 키워주신 가족 여러분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호국간성(護國干城)의 양성을 위해 노력해주신 교직원, 훈육관 여러분도 수고하셨습니다.오늘 이 자리에는 우리 해군을 창설한 손원일 제독과 민영구 제독의 가족분들이 함께해주셨고, 백두산함 생존 승무원을 비롯한 해군창설 유공자 여러분께서도 자리를 빛내주고 계십니다. 후배들이 “나라를 위해 몸을 잊는” 호국망신, 역사와 전통을 늠름하게 이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며 매우 뿌듯하시리라 생각합니다. 해군의 역사가 대한민국 국군의 역사입니다. 해군의 발자취가 국민 군대의 발자취입니다. 광복 후 불과 6일밖에 되지 않은 1945년 8월 21일, ‘이 나라 해양과 국토를 지킬 동지를 구함’이란 벽보가 거리에 붙었습니다. 독립운동가와 민간 상선사관들이 애국애족의 마음 하나로 자발적으로 모였습니다. 일본군 출신이 아닌, 온전히 우리 힘으로 3군 중 최초로 창군했습니다. 해군사관학교도 1946년 1월 해군병학교로 시작하여 1949년 최초의 사관학교인 해군사관학교로 태어났습니다. 대한민국 해군의 역사적인 첫걸음이었습니다. 가난한 신생 독립국의 해군은 창군 후에도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우리의 첫 함정 충무공함은 일본 해군이 건조하다 버리고 간 경비정이었습니다. 최초의 전함 백두산함도 군인의 부인들이 삯바느질에 세탁까지 해가며 돈을 보태고 국민 성금을 모아 마련했습니다. ‘바다를 지켜야만 강토가 있고, 강토가 있는 곳에 조국이 있다’는 해군가처럼 바다를 지키고자 고군분투한 해군의 노고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했음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창군의 어려운 와중에도 해군은 국민 군대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습니다. 해방 후 일본에서 우리 동포들은 고향으로 돌아올 수 없어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우리 해군의 첫 임무는 이분들을 조국으로 모셔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전쟁 상이군인들을 위해 가장 먼저 나선 것도 해군이었습니다. 해병대 군목사로 재직 중이던 박창번 소령은 군인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기술교육에 나섰습니다. 여기에 사령부의 결단과 부인회의 모금이 더해져 최초의 군 전직지원 교육기관이 해병대에 설립되었습니다.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의 일입니다.국난의 시기에도 전쟁 이후 조국의 미래를 고민한 선구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진정한 국민의 군대’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습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통령으로서 우리 해군의 역사가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도 큰 자부심을 가슴에 품고, 선배들의 길을 따르길 바랍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청년 장교 여러분, 바다는 변화무쌍합니다. 고요했다가 갑자기 큰 파도를 만나기도 하며, 순풍이 부는 날만큼 폭풍을 만나는 날도 많습니다. 안보 환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주변국을 둘러보면, 지금은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 완화가 최우선 과제이지만, 동시에 세계 4대 군사강국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 최강의 해양강국들입니다. 이들 나라 사이에 해양력의 우위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치열합니다.바다를 둘러싼 다양한 갈등이 표면화되기도 합니다. 해양관할권, 통행의 자유 확보 등 자국의 해양전략을 힘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해군력을 주도면밀하게 확충하고 있습니다. 테러·재해재난 같은 비군사적 위협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해군도 이에 대응해가야 합니다. 모든 면에서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평화를 단지 지켜내는 것을 넘어 평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더 강한 국방력이 필요합니다. 국경을 초월하는 다양한 위협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등장할 새로운 형태의 전력에도 대비해야 합니다. 최대한 전쟁을 억제하되,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군대가 되어야 합니다. ‘국방개혁 2.0’, ‘스마트 해군’ 전략을 중심으로 우리 해군이 하나로 뭉쳐 포괄안보 역량을 갖춰 나가야 합니다. 군 스스로의 혁신을 통해 평화를 만드는 군대, 어떤 위협에도 국민을 지킬 수 있는 군대가 되리라 믿습니다. 정부는 해군의 역량이 강화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입니다. 해군과 함께 우리의 바다를 끝까지 수호할 것입니다.오늘 헬기로 독도함에 내렸습니다.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바다를 통해 이순신 장군이 최초로 대첩을 거둔 이곳 옥포만에 왔습니다. 지난해 국제관함식에 이어 우리 해군의 위용을 다시 한번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는 불과 20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이지스함과 잠수함이 우리나라 해군의 달라진 위상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2045년, 해군창설 100주년에는 온전히 우리 과학과 기술로 만든 한국형 이지스함과 구축함, 잠수함, 항공기가 우리 앞에 있을 것입니다. 더욱 강력한 위용으로 해양강국의 모습을 구현하게 될 것입니다.병영문화와 장병의 복무여건도 개선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대의 장병들이 발전하는 기술 속에서 인격을 존중받으며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군대문화를 확립할 것입니다. 조국에 대한 헌신은 언제나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정부는 오늘 이 늠름한 청년 장교들과 함께 이 나라의 아들·딸들이 무사히 복무를 마치고 건강하게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사랑하는 청년 장교와 생도 여러분, 올해는 3.1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의 뜻깊은 해입니다. 새로운 100년은 진정한 국민의 국가, 평화로운 한반도를 완성하는 100년입니다. 우리는 국군의 강한 힘을 바탕으로 한반도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결정하는 길에 나섰습니다. 우리의 용기있는 도전으로 한반도는 평화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남북 간의 만남으로 한반도의 바다와 땅, 하늘에서 총성이 사라졌습니다. 우리가 의지를 갖고 한결같이 평화를 추구한다면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는 반드시 올 것입니다. ‘평화경제’의 시대가 이어질 것입니다. 특히, 해군에게 많은 역할이 주어질 것입니다.우리의 고대, 중세 왕조들은 발달한 조선기술을 바탕으로 산동과 요동, 일본, 나아가 이슬람권까지 오가며 해양력을 떨쳤습니다. 우리는 해양력의 쇠퇴가 국력의 쇠퇴로, 나아가 아픈 역사로 이어졌던 지난 날을 성찰하며 절치부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1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강한 해양력을 바탕으로 우리의 바다를 지키고 대양으로 나아갈 수 있을 때 비로소 강한 국가가 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 국익을 빼앗기고 홀대받을 수밖에 없습니다.우리 앞에 펼쳐질 새로운 시대의 해군은 선배들이 가보지 못한 바다, 북극항로를 개척하게 될 것입니다. 더 많은 무역이 이뤄질 남쪽 바다의 평화를 지켜낼 것입니다. 해군에서 배운 결속과 단합, 기술력과 전문성, 세계시민의식은 항상 여러분을 빛나게 해줄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는 무궁무진한 기회가 열려있습니다. 가끔은 지도를 뒤집어 한반도의 눈앞에 열린 광활한 해양을 보기 바랍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기회 앞에서 거침없이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마음껏 꿈꾸고, 막강 해군의 기개를 떨쳐주길 바랍니다. 청년 장교들의 꿈이 국민의 꿈과 만나 해양강국, 평화로운 한반도로 꽃피기를 희망합니다. 청년 장교 여러분, 오늘 해군사관학교 제73기 신임 해군 장교들에게 국군 통수권자로서 첫 명령을 내립니다. 첫째, 함께 고된 훈련을 하며 쌓은 전우애, 세계의 바다를 누비며 경험한 동기들과의 추억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둘째, 사랑하기에 부끄러움 없는 조국, 헌신하기에 아깝지 않은 조국을 만드는 데 앞장서 주십시오.2년 전 여름, 진해만에서 전투수영훈련을 하던 여러분의 싱그러운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때의 꿈을 항상 가슴에 품고 키워야 합니다. 언제나 국민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국민은 여러분이 선택한 군인의 길에 언제나 함께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무운과 영광을 빕니다.
2019.03.05 I 김관용 기자
① 일제가 남긴 적산가옥, 왜 보존하나
  • [남겨진 일제의 흔적]① 일제가 남긴 적산가옥, 왜 보존하나
  • 군산 신흥동 히로쓰가옥(사진=문화재청)일제는 패망했지만 잔재는 남았다. 식민통치 36년의 흔적은 한반도 곳곳을 할퀴었다. 국민들도 일제가 남긴 흔적이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한국갤럽을 통해 진행한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국민인식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친일잔재 청산 여부에 대한 질문에 ‘청산되지 않았다’는 답변이 80.1%를 차지했다. 또한 친일잔재 청산이 3·1운동 정신의 계승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응답도 29.8%로 가장 많았다. 일본인이 살던 적산가옥부터 친일논란이 진행 중인 대한민국의 상징, 여물지 않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은 아직도 사과받지 못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이 땅에 남은 일제의 잔재를 살폈다. 그리고 새로운 100년으로 향하는 한일관계를 전망했다. <편집자주>[이데일리 이정현 기자] “한반도 수탈의 상징을 왜 보존하나.” “적산가옥을 살릴 예산이 웬말이냐.” “귀신이 나올 듯한 일제의 공간이다.”지난달 손혜원 의원의 목포 적산가옥 매입과 관련한 소식이 전해진 후 반응이다.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년, 자주 독립을 향한 선조들의 열망을 재확인 하는 해에 ‘적산가옥’이 뜨거운 감자가 됐다. 문화재청이 목포와 군산, 영주 등에 근대역사문화거리를 조성하겠다고 한 계획이 바람을 일으킨 셈이다.일제의 잔재를 보존해서는 안된다는 주장과 역사적으로 지켜야할 우리의 역사라는 주장이 엇갈린다.△‘침략의 상징’ 없애는 게 답?적산가옥(敵産家屋)에서 ‘적산’은 영토나 점령지 안에 있는 적국의 재산 또는 적국인의 재산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해방 후 일본인이 남겨놓고 간 집이나 건물 등을 지칭한다. 일각에서는 용어를 ‘귀속재산’(歸屬財産)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내놨다. 해방 후 미군정이 미군정청령에 따라 특별관리를 했으며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적산가옥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한국전쟁과 재개발 등으로 빠르게 소실 중이다.적산가옥을 보는 일반적인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일제가 남긴 한반도 수탈의 흔적을 지워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군산과 목포에 유난히 일제강점기 때 건물이 많은 건 당시 호남에서 생산한 쌀을 일본으로 반출하는 거점이었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적산가옥을 보존해야 한다고 본다. 일제가 남긴 침략의 증거이며 치욕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교훈의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치독일이 남긴 흔적을 오히려 되살린 프랑스와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유대인들이 사례다.논란의 시작인 목포·군산·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 역시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이 살았던 공간이 아니라 한국근현대사를 상징하기에 문화재로 등록 고시됐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당시에 있었던 일본영사관과 동양척식회사 건물과 더불어 대한제국 당시 개항한 근대항만의 역사와 근대산업화시기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조선시대부터 대한제국, 일제강점기와 현재로 이어지는 100년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곳이라는 설명이다.△인적청산 부재의 후유증… 교훈 삼아야적산가옥은 주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 완전철거한 조선총독부청사나 현재 외형만 보존한 옛 서울시청사(현 서울도서관)도 대표적인 적산이다. 일본과 가까운 부산에는 과거 일본식 가옥이 1만4000채가 넘는다고 알려졌다.최근에는 문화공간으로 주목받기도 한다. 전시공간이나 게스트하우스, 카페 등으로 개조해 활용하는 경우다. 일본인이 지은 건물인 만큼 ‘이색적이다’라는 평가 속에 젊은 층에 인기다. 전북 군산에 있는 대표적인 적산가옥인 ‘히로쓰 가옥’은 영화 ‘장군의 아들’ ‘바람의 파이터’ 촬영지로 쓰이기도 했다. 비판 속에 관광 자원으로 활용되는 아이러니다.안창모 경기대 교수 및 문화재위원회 근대분과 위원은 “적산가옥이 문화재냐 아니냐는 건 해방 후 친일 인적청산이 부재했던 우리나라에서만 불거지는 논쟁”이라며 “일제가 남긴 침략의 증거를 보존해 다시는 침략당하는 역사가 되풀이하지 않도록 후손에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적산가옥이 문화재로 가치있는 것은 아니며 역사나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건축물만이 자격이 있다고 덧붙였다.안 교수는 “문화유산의 가치는 찬란함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세대에 어떤 교훈을 주느냐에 달렸다”며 잘못된 역사관을 자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화려한 역사만 부각하고 부끄럽고 창피한 역사는 지우려는 건 잘못됐다는 것이다. 오히려 “물적청산을 강요해 침략의 증거를 일부러 없애 일제에 당한 설움을 잊자고 주장하는 이들의 저의를 의심해보아야 하지 않겠나”라고 비판했다.
2019.03.05 I 이정현 기자
박상민, 11세 연하 일반인과 4월 결혼
  • 박상민, 11세 연하 일반인과 4월 결혼
  • 박상민(사진=CJ ENM)[이데일리 스타in 김윤지 기자]배우 박상민이 오는 4월 초 결혼한다고 소속사 위브나인엔터테인먼트가 27일 밝혔다.박상민은 11세 연하 예비신부와 예식 장소를 서울 은평구 홍은동 밀레니엄 서울 힐튼으로 확정했다. 소속사 측은 “예비 신부가 평범한 일반인이기 때문에 결혼식은 양가 가족과 가까운 친지, 지인들만 초대해 비공개로 조용히 치르려고 한다”고 설명했다.박상민은 예비신부와 지인들과 함께 만나는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은 후 사랑을 키워왔다. 박상민은 3월 초 새 드라마 OCN ‘빙의’의 방송을 앞두고 있어 함께 하는 제작진과 출연진에게 자칫 부담이 되지 않도록 조용히 결혼식을 준비해왔다.박상민은 1990년 영화 ‘장군의 아들’로 데뷔해 곧바로 스타덤에 올랐다. ‘젊은이의 양지’와 ‘태양은 가득히’, ‘자이언트’ 등에 출연했다.다음은 박상민 측 공식입장 전문.안녕하세요. 배우 박상민 씨의 소속사 위브나인엔터테인먼트입니다.박상민 씨의 결혼 소식에 대해 본인에게 확인한 내용을 전해드립니다.박상민 씨는 오는 4월 초 서울 밀레니엄 서울 힐튼에서 결혼식을 올립니다. 예비 신부가 평범한 일반인이기 때문에 결혼식은 양가 가족과 가까운 친지, 지인들만 초대해 비공개해 조용히 치르려 합니다. 더불어 예비신부의 자세한 신상을 전해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두 사람은 지인들과 함께 만나는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은 후 사랑을 키워왔습니다. 박상민 씨는 무엇보다 예비 신부의 사려깊은 마음과 배려심, 긍정적인 마음에 반해 인생의 동반자가 되기로 결심하게 됐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한 깊은 믿음과 사랑을 바탕으로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된 것에 대해 축하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박상민 씨는 3월 초 새 드라마 OCN ‘빙의’의 방송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함께 하는 제작진과 출연진에게 자칫 부담이 되지 않도록 조용히 결혼식을 준비해왔습니다. 이 드라마에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결혼 후에도 배우로서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보여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감사합니다.
2019.02.27 I 김윤지 기자
'작은 고추 더 맵다'…2019년 관객을 놀라게 할 다양성 영화들
  • '작은 고추 더 맵다'…2019년 관객을 놀라게 할 다양성 영화들
  • 왼쪽부터 ‘우상’·‘오 문희’·‘배심원들’[이데일리 스타in 박미애 기자]“기존 흥행 공식이 무너졌다. 기획영화의 문제점이 드러난 만큼 점검이 필요한 시기다.” A 투자배급사 관계자의 말이다. 지난해 100억원대 영화가 잇따라 망하면서 영화계는 규모보다 내실이라는 체질개선 필요성이 대두했다. 신생 투자배급사들의 공격적 행보로 대작의 전체 편수는 지난해와 비슷하다. 올해는 대형 투자배급사들이 대작의 편수를 줄이고 중·저예산 영화를 골고루 편성해 리스크를 줄이는 추세다. “볼 게 없다”는 일각에서 대두한 한국영화의 위기론과 대안으로 떠오른 중·저예산 영화를 소개하는 투자배급사들의 라인업을 살펴봤다.◇한석규 설경구 나문희 문소리…CGV 아트하우스, 명배우 포진업계와 관객의 신뢰를 한 몸에 받는 명배우들이 다양한 영화에 목마른 관객과 만난다. 한석규·설경구·나문희·문소리가 주인공이다. 한석규와 설경구는 ‘우상’으로 나문희는 ‘오 문희’, 문소리는 ‘배심원들’로 의미 있는 소통을 시도한다. ‘우상’은 아들로 인해서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은 두 아버지의 이야기다. 한석규와 설경구를 한 작품에서 볼 있는 데다 7일 열리는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의 비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받아 관심을 모은다. ‘우상’은 ‘한공주’를 연출한 이수진 감독의 5년 만의 신작으로 ‘한공주’의 천우희도 출연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아이 캔 스피크’로 그해 각종 시상식의 여우주연상을 석권하다시피 한 나문희가 차기작으로 선택한 영화는 ‘오 문희’다. ‘오 문희’는 아들과 함께 손녀의 뺑소니 범인을 찾아나서는 치매 할머니의 이야기로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홈드라마다. 배우로 감독으로, 또 배역의 크고 작음 없이 활동하며 충무로에서 가장 운신의 폭이 넓은 문소리는 ‘배심원들’을 선택했다. ‘배심원들’은 2008년 국내 첫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의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제국의아이들 출신으로 배우로 전향한 박형식의 첫 장편영화 데뷔작이기도 하다.△CGV아트하우스=‘어쩌다, 결혼’(감독 박호찬·박수진, 2월 개봉 예정) ‘배심원들’(감독 홍승완, 상반기) ‘뎀프시롤’(감독 정혁기, 상반기) ‘우상’(감독 이수진, 상반기) ‘유열의 음악앨범’(감독 정지우, 하반기) ‘오 문희’(감독 정세교, 하반기)왼쪽부터 ‘얼굴들’·‘이월’·‘시인 할매’·‘칠곡 가시나들’◇영화제가 주목…인디스토리·인디플러그·시네마달·무브먼트 독립영화1980년대 한국영화 리얼리즘의 선구자 이장호 감독은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 당시 “한국영화의 미래는 독립영화에 있다”고 말했다. 독립영화 배급사들은 국내 유수의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작품들로 자신 있는 라인업을 완성했다. 현실과 세계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 사고와 시야를 넓혀줄 작지만 강력한 작품들이 관객을 찾는다.지난 달 24일 개봉한 ‘얼굴들’은 고등학교 행정실 직원 기선, 고등학생 기수, 기선의 전 연인 혜진, 택배 기사 현수, 네 인물의 일상을 담백하게 그린다. 이 영화는 ‘파산의 기술記述’ ‘보라’ 다큐멘터리를 선보였던 이강현 감독의 첫 픽션으로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가상,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 심사위원상 및 독불장군상 등을 수상했다. 이 영화에 박종환 김새벽 백수장 윤종석 독립영화계 스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30일 개봉한 ‘이월’은 공무원 지망생 민경을 통해 꿈은커녕 취업도 쉽지 않은 불안한 현실과 청춘의 모습을 그려낸 영화다. 냉혹한 현실에 생존을 위해서 도둑질과 거짓말을 서슴없이 일삼는 주인공의 모습이 기이한 동시에 강렬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비전-감독상과 넷팩상,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졸업’은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장편상을, ‘내가 사는 세상’(3월 개봉 예정)은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 CGV아트하우스 창작지원상을, ‘한강에게’는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 특별언급·제18회 전북독립영화제 옹골진상(대상)을, ‘국경의 왕’은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회 특별상·제20회 대전독립영화제 심사위원특별언급 수상했다.‘졸업’은 사학비리재단에 맞선 상지대 학생들과 교수들의 10년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며, ‘내가 사는 세상’은 디제이를 꿈꾸는 퀵서비스 기사 민규를 통해서 현실에 굴하지 않고 꿈을 좇는 청춘의 모습을 그렸다. ‘한강에게’는 연인을 잃고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국경의 왕’은 동유럽을 배경으로 우연히 만난 두 남녀의 여행을 통해서 영화와 인생을 고민하는 이야기다.‘욜로’(You Only Live Once)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열풍을 이어갈 영화들도 곧 관객과 만난다. 5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시인 할매’와 오는 27일 개봉하는 ‘칠곡 가시나들’이다. 두 영화는 각각 시, 한글과 사랑에 빠진 할머니들의 이야기로 현대인들의 메마르고 지친 마음을 달래줄 영화다. ‘시인 할매’는 제10회 DMZ국제다큐영화제의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인디스토리=‘내가 사는 세상’(감독 최창환, 3월 개봉 예정) ‘한강에게’(감독 박근영, 4월 개봉 예정) ‘굿바이 썸머’(감독 박주영, 6월 개봉 예정)△인디플러그=‘칠곡 가시나들’(감독 김재환, 2월27일 개봉) ‘앨리스 죽이기’(감독 김상규, 상반기)△시네마달=‘얼굴들’(감독 이강현, 1월24일 개봉) ‘굿바이 마이 러브, NK’(감독 김소영) ‘졸업’(감독 박주환) ‘작은빛’(감독 조민재) ‘라스트씬’(감독 박배일)△무브먼트=‘이월’(감독 김중현, 1월30일 개봉) ‘국경의 왕’(감독 김중현, 2월 개봉 예정) ‘히치하이크’(감독 정희재, 3월 개봉 예정)
2019.02.07 I 박미애 기자
행촌동 ‘흉물’ 잊혀진 3·1운동의 목격자
  • [우리 곁 3·1운동①]행촌동 ‘흉물’ 잊혀진 3·1운동의 목격자
  • 22일 서울 행촌동에 있는 딜쿠샤의 모습. 복원 공사가 한창이다. 개축한 부분을 뜯어내고 건립 당시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3·1운동 100년을 기념해 올해 중 일반에 개방할 예정이었으나 거주민과의 소송으로 늦어졌다. 서울시는 2020년 7월까지 복원 및 보강 공사를 끝낸다는 계획이다.(사진=이정현 기자)[이데일리 이정현 기자] 2019년은 3·1운동, 임정 100년을 맞는 해다. 서울에서 찾은 3·1운동, 임정 100년의 흔적을 찾아 모두 1월부터 6회에 걸쳐 매달 연재한다. 최초 독립선언문 낭독과 3·1운동의 출발점이 된 탑골공원(사적 354호)부터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김구선생 집무실인 경교장(사적 465호), 일제강점기 민족교육의 장르이자 지도자를 배출한 서울중앙고등학교(사적 281호) 등 ‘우리 곁에 3·1운동’을 찾아간다.<편집자 주>‘딜쿠샤’는 오랫동안 잊혀진 집이었다. 행촌동 언덕에 자리잡은 서양식 빨간 벽돌집을 놓고 설왕설래가 오갔다. 지금은 없어진 일제강점기 때 신문사 사옥이었다 카더라. 아니라더라. 음산한 분위기 때문에 근처 주민들은 ‘귀신이 나오는 집’이라 불렀다. 삐거덕 거리는 창틀을 넘어 집 없는 이들이 몰렸고 10여가구가 살았다. 그곳에 있으나 왜있는지 모르는 낡은 집. 도시의 흉물이었던 이곳은 2005년에 와서야 제 이름을 찾았다. 장독대를 걷어낸 자리에서 찾은 머릿돌에서 ‘DILKUSHA’라는 이름을 찾으면서다. 수십년의 시간을 지나 ‘빛나는 궁전’이 돌아왔다.△잊혀진 궁전 ‘딜쿠샤’를 아시나요?딜쿠샤는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란 뜻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에 살았던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와 메리 테일러 부부가 짓고 살았던 집이다. 사업가이자 AP통신 기자였던 앨버트 테일러는 3·1운동과 독립선언서를 기록하고 외국에 알렸다. 일제에 저항한 한민족의 의지를 세계에 전한 최초 사례다. 이후 테일러 부부는 일제에 의해 추방당했다. 딜쿠샤도 이때 주인을 잃었다.딜쿠샤의 정체가 밝혀진 건 우연이다. 미국에 살던 앨버트 테일러의 아들인 브루스 테일러가 어릴적 살던 집을 찾는다는 소식이 국내에 전해졌다. 그가 기억하는 건 집 옆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성곽이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은행나무에서 이름을 따온 ‘행촌동’이 시작이었고 그곳에 방치된 서양식 건물이 딜쿠샤라는게 밝혀졌다. 직접 딜쿠샤를 찾았자. 행촌동에서는 지도를 들여다보는 것보다 커다란 은행나무를 찾는게 빠르다. 권율 장군이 심었다는 수령 400년의 나무다. 사직터널 위로 우뚝 솟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독립문역 사거리를 지나 광화문으로 가는 방향, 나무를 바라보며 야트마한 언덕을 걸어 오른다. 터널의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빙글 둘러 가야 딜쿠샤를 만날 수 있다. 막다른 길이라 처음 가는 길이라면 헷갈릴 수 있다. 문화재로서 정비가 되지 않아 표지판도 찾기 힘들다.복원 공사가 한창이라 안전 펜스 너머로 지켜봤다. 입구는 막혀있고 군데군데 토사가 쌓여있다. 작은 굴삭기와 빗자루를 든 인부들이 흙을 쓸어냈다. 화장실로 쓰려고 붙여놓은 하얀 욕실타일을 뜯어내니 붉은 벽돌과 아치형 창문이 나왔다. 얼기설기 붙여놓은 판자를 덜어내면 또 다른 얼굴을 볼 수 있을게다. 이 집을 지었던 부부가 가꿨던 정원의 흔적도 기대해본다. 테일러 부부가 살던 시기의 딜쿠샤. 앨버트 테일러의 손녀인 제니퍼 테일러가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해 현재 기획전시중이다. ‘행촌동’이란 이름의 기원이 된 은행나무가 건물 뒤편으로 보인다.(사진=서울역사박물관)△3·1운동 100년 복원 불발… 그래도 시민 품으로딜쿠샤는 1923년에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조선신궁보다 높은 곳에는 건물을 지을 수가 없어서 그보다 낮은 위치에 지었다. 지하1층~지상2층 건물로 지하는 창고로 활용됐고 1층에는 중앙계단을 중심으로 거실, 주방 등이 있었다. 한반도의 또렷한 사계절을 반영해 응접실엔 큰 창을 달았으며 추위를 피하기 위한 벽난로도 있다. 1926년 낙뢰로 인해 가옥 일부가 파손되기도 했다. 테일러 부부는 이곳에서 25년간 살았다.딜쿠샤는 3·1운동을 세계에 알린 한 외국인이 살았던 공간이자 독특한 양식으로 건축사적으로도 가치있다. 1963년 국가 소유가 되었으나 정부의 방치로 상당부분이 훼손된 안타까운 경우다. 2016년 서울시를 중심으로 기획재정부, 문화재청, 종로구 등과 보존과 관리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으며 이듬해 8월 등록문화재 687호로 지정했다.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됐던 딜쿠샤는 조금씩 제 모습을 찾는 중이다. 애초 3·1운동 100년을 맞아 복원을 마친 후 2019년 3월1일에 일반에 공개할 계획이었으나 딜쿠샤에 살던 불법 거주민의 퇴거가 늦어지면서 틀어졌다. 딜쿠샤가 1963년 국유화된 후 관리가 소홀해진 틈을 타 건물을 무단 점유한 이들이다. 소송 끝에 지난해 8월부터 복원 공사를 시작했다. 지붕은 방수포에 덮였고 가스관과 전깃줄이 아직 복잡하게 얽혀있으나 본모습을 짐작 못 할 정도는 아니다. 누군가 붙인 기차 모양 스티커도, 낙서들도 이제는 벗겨낸다. 외형을 갖추면 내부도 예전 모습 그대로 복원한다. 테일러 부부가 쓰던 가구와 소품도 복제 등의 형태로 자리를 잡을 예정이다. 꼭 100년 만이다.새단장 중인 딜쿠샤는 2020년은 지나야 복원한 내외부를 일반에 공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공사 전 정밀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은 만큼 건축물 보강 공사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 문화본부 역사문화재과 관계자는 이데일리에 “내년 7월까지로 공사기간을 정하고 복원 공사를 진행 중”이라며 “거주민의 퇴거가 늦어지면서 공사가 늦어졌으나 새로운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2020년까지 복원을 완료하겠다”고 밝혔다.사직터널 위로 돌아 딜쿠샤로 가는 길. 독립문 사거리에서 딜쿠샤 까지 가는 길에서 만난 유일한 안내판이다. 흰색 현대식 건물 뒤로 딜쿠샤의 일부 벽과 은행나무가 보인다.(사진=이정현기자)딜쿠샤로 가는 언덕길. 딜쿠샤를 끝으로 막다른 길이라 지나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딜쿠샤 앞으로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 바깥에서 발견하기 어렵다.(사진=이정현기자)딜쿠샤의 과거 모습(사진=서울역사박물관 제공)
2019.01.31 I 이정현 기자
이일재 폐암 4기 극복 다짐 "살아남아 동료들과 함께 해야겠다"
  • 이일재 폐암 4기 극복 다짐 "살아남아 동료들과 함께 해야겠다"
  • tvN ‘둥지탈출3’ 25일 방송 장면[이데일리 박한나 기자] 폐암 투병 중인 배우 이일재(58)가 연기 복귀 의지를 드러냈다. 이일재는 25일 방송된 tvN ‘둥지탈출3’에서 그를 응원하기 위해 찾아온 친구 정흥채, 박준규와 함께 자신의 집에서 식사했다.이 자리에서 이일재는 아직 미성년자인 두 딸 등 가족들을 생각하며 투병 생활을 극복하고 있다고 밝혔다.이일재는 “무조건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살아남아 동료들과 함께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좀 괜찮아지면 다시 일을 시작할 생각이다”라고 밝히며 복귀할 의사가 있음을 강조했다.앞서 ‘둥지탈출3’ 첫 방송에서도 “제가 제 나이에 아이들이 컸으면 상관이 없는데 이제 중, 고등학생이니까 부모로서의 책임감을 다할 수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며 투병 중에도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드러냈다.정흥채는 “오늘 (이일재의) 눈빛이 건강했던 때의 눈빛과 똑같았다”며 “다시 무대에서 멋진 인생을 펼쳐보자”며 그의 쾌유를 빌었다. 박준규 역시 이일재를 향해 “형님은 나와 작품을 함께 하게 될 것”이라며 응원했다.최근 tvN ‘둥지탈출3’에 출연해 폐암 4기로 투병 중인 사실을 알린 이일재는 지난 1989년 영화 ‘장군의 아들’로 데뷔한 중견 배우다. 영화 ‘선유락’, ‘게임의 법칙’, ‘해적’,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깡패 법칙’ 등과 드라마 ‘폭풍의 계절’, ‘야인시대’, ‘무인시대’, ‘불멸의 이순신’, ‘대왕의 꿈’ 등에 출연했다.
2018.12.26 I 박한나 기자
'MBC연예대상' 전현무·김구라·이영자·박나래, 후보공개
  • 'MBC연예대상' 전현무·김구라·이영자·박나래, 후보공개
  • 김구라, 전현무, 이영자, 박나래(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순)(사진=각 소속사)[이데일리 스타in 김윤지 기자] 방송인 전현무·김구라·이영자·박나래가 대상을 놓고 경합한다. 11일 MBC에 따르면 네 사람은 오는 29일 방송하는 2018 MBC 방송연예대상 대상 후보에 올랐다. 올해는 ‘무한도전’ 시즌 종영 후 첫 MBC 예능 시상식인 만큼 ‘올해의 예능 프로그램상’과 대상 수상자에도 관심이 쏠린다.첫 번째 후보는 MBC 예능 지난해 대상 수상자이자 ‘MBC가 키운 아들’ 전현무다. MBC를 대표하는 간판 예능 ‘나 혼자 산다’, ‘전지적 참견 시점’의 메인 MC을 맡았고, ‘무한도전’ 후속 프로그램이었던 ‘뜻밖의 Q’ 진행을 맡았다. MBC의 성실일꾼 김구라도 있다. 김구라는 MBC ‘라디오스타’와 함께 ‘복면가왕’, ‘선을 넘는 녀석들’, ‘토크 노마드’ 등에 출연했다. ‘나 혼자 산다’의 박나래는 고정 출연자뿐만 아니라 무지개 라이브에 출연하는 게스트 모두와 훌륭한 조화를 보여줬다. 박나래는 ‘나 혼자 산다’로 올 한 해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는 평가다. 이영자도 있다. MBC 대표 예능 프로그램이 된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먹교수·먹장군·영자미식회 등 수 많은 수식어를 만들어냈다. ‘2018 MBC 방송연예대상’은 전현무·혜리·승리가 MC를 맡는다.
2018.12.11 I 김윤지 기자
  • 트럼프 "더는 수백만 목숨잃을 걱정할 필요없다"…北성과 '자찬'(종합)
  • (서울=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더는 수백만 명의 목숨을 잃을 걱정을 하거나 일본 상공으로 핵무기가 날아다닐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주리 주 컬럼비아에서 열린 중간선거 공화당 지원유세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관계가 매우 좋다”며 이같이 밝혔다고 영국 일간 익스프레스 등 외신이 보도했다.트럼프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아는데 우리는 (북한과) 전쟁할 준비가 돼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잘 지내고 있다. 로켓도, 아무것도 없다”라고 강조했다.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매우 성공하기를 원한다”며 북한이 다양한 합의를 지킨다면 제재를 해제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이날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외교 성과를 깎아내리는 미국 언론의 보도에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그는 북한으로부터의 로켓 발사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 뒤 “미디어는 ‘왜 그는 더 빠르게 진전시킬 수 없는가’라고 말한다”라며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을 하더라도 ‘더 빨리했어야 한다’고 그들은 말할 것”이라고 지적했다.국내 현안으로는 이미 폐지를 공언했던 출생시민권 문제를 또다시 쟁점으로 내세웠다. 미 의회전문지 더힐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해외 독재자들이 미국 땅에서 태어나면 자동으로 시민권을 주는 제도를 악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세에서 “중국에서 (원정출산하러) 많이 온다. 놀라겠지만, 중국이 1위다. 남미, 라틴아메리카가 아니라 아시아의 중국이다. 정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생각해봐라. 당신이 우리의 적국이고, 전쟁을 치르는 장군이고, 우리가 싫어하며 우리와 맞서는 독재자라고. 그리고 그 독재자가 아내로 하여금 미국 땅에서 아이를 갖게 있다고”라며 “축하한다. 당시의 아들이나 딸은 이제 미국 시민권자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출생시민권 정책이 ‘원정출산 산업’을 창출하고 있다며 폐지 방침을 거듭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정책은 심지어 원정출산이라 불리는 전체 산업을 만들어냈다. 전 세계 임신부들이 당신이 가진 복지, 공공혜택 등 모든 것을 보장받을 수 있는 평생의 시민권을 자기 아이들에게 주려고 미국에 온다. 결국 출생 시민권자들은 연쇄 이민을 통해 자기 대가족을 미국으로 데리고 온다”고 주장했다.
김유신은 왜 말의 목을 베었을까
  • 김유신은 왜 말의 목을 베었을까
  • [이데일리 이정현 기자]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문화재 발굴 현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전문가와 함께 신라의 역사와 고고학에 관한 궁금증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제4회 ‘대담신라’를 내달 8일 경주에서 개최한다. 이번 주제는 신라의 장수인 김유신이다.대담은 김유신에 대한 두 가지 소주제로 구성했다. 문헌 기록을 중심으로 한 ‘우리가 몰랐던 김유신’과 ‘말의 목을 베고 결의를 다진 사건’이다.김유신에 대해 김부식(1075∼1151)과 신채호(1880~1936)의 평가를 살펴보고, 그 가운데 신채호가 ‘음흉한 정치가이자 장군’으로 평가한 시각에 주목해본다. 실제로 김유신의 가문이나 살아온 삶을 추적해 보면 유학에 대한 깊은 소양을 가진 합리적이고 자주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이면서 당나라나 왜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던 7세기 후반 동아시아의 유명한 인물이다. 말년에 중풍을 앓았으며, 전쟁에서 패하고 살아서 돌아온 아들 문제로 고심했던 사례를 통해 인간적인 면모도 살펴볼 수 있다.두 번째 소주제는 말의 목을 베었다는 김유신의 일화를 바탕으로 신라 시대의 말에 관해 이야기한다. 기마인물형 토우, 말갑옷, 월성 해자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다수의 말뼈 등에서 신라인들의 말에 관한 관심을 알 수 있다. 신라인이 아끼고 사랑했던 말에 대해 전문가들과 토론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낼 예정이다. ‘대담신라’는 그동안 신라의 개, 점술, 자연재해 등의 주제를 가지고 모두 3차례에 걸쳐 관련 종사자와 일반 시민 그리고 역사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이 참여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역사학과 고고학적인 전문 지식을 일반인과 공유하는 새로운 시도였다는 점에서 참여자들로부터 호평과 주목을 받았다.
2018.10.25 I 이정현 기자
文대통령 ‘국군의 날’ 기념식 연설 “힘을 통한 평화는 軍의 사명”
  • [전문]文대통령 ‘국군의 날’ 기념식 연설 “힘을 통한 평화는 軍의 사명”
  •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서 열린 제70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경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데일리 김성곤 기자]문재인 대통령은 1일 “힘을 통한 평화는 군의 사명이며, 평화시대의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강한 군대”라고 말했다.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서 열린 제70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이제 우리 군이 한반도 평화의 맨 앞자리에 서야 할 때”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특히 “저는 오늘, 한반도에서 전쟁 위협을 끝내고 평화의 시대를 이야기할 수 있어 아주 가슴이 벅차다”며 “그러나 단번에 평화가 오지는 않는다. 평화는 우리의 힘이 바탕이 될 때 지속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국방부 장관, 육·해·공군 참모총장, 한미연합사령관 및 부사령관, 군 주요지휘관, 유공장병, 국군·UN참전용사 및 일반시민 등 3500여명이 참석했다. 국군의 날 행사 최초로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서 열린 것은 국군·유엔 참전 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고 강하고 든든한 국군의 힘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겠다는 평화 수호의지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다음은 제70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 문재인 대통령 연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국군장병 여러분, 우리 군은 지난 70년,우리 영토와 주권을 단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지켜냈습니다.국군장병 여러분의 노고를 치하하며모든 국민과 함께 국군의 날 70주년을 축하합니다.우리는 지금,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 서있습니다.“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기억하라”는 경구가이 광장에 새겨져 있습니다.우리는 여전히 전쟁의 참혹함을 기억합니다.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평화가 더욱 절실합니다.우리 국군의 희생과 헌신이 없었다면우리는 평화를 향해 단 한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조국 수호에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이 있었기에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이 자리에 계신 퇴역장병과 군 원로, UN참전용사들이전쟁을 기억하며 평화의 시대를 열어낸 주역들입니다.깊은 경의를 표합니다.지금 이 순간,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있는 국군장병들과 해외파병 용사들이 참으로 든든합니다.국민의 이름으로 장병들을 치하하며 가족들에게 감사드립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한반도에서 전쟁 위협을 끝내고평화의 시대를 이야기할 수 있어아주 가슴이 벅찹니다.지난 9월 19일 평양공동선언에서 나와 김정은 위원장은 남과 북의 전쟁종식과 한반도 평화를 천명했습니다. 15만 평양시민들 앞에서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한반도, 평화의 한반도를 약속했습니다.그러나 단번에 평화가 오지는 않습니다.평화는 우리의 힘이 바탕이 될 때 지속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군이 한반도 평화의 맨 앞자리에 서야 할 때입니다.힘을 통한 평화는 군의 사명이며,평화시대의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강한 군대입니다.우리는 불과 반세기만에 전투기와 전차를 만들고3천 톤급 전략 잠수함까지 갖췄습니다.국방력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뤘습니다.지금은 강력한 국방개혁을 통해 국민의 군대로 거듭나고 있습니다.나는 우리 군의 저력을 믿습니다.우리 군은 어떤 위협으로부터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낼 것이며,우리의 땅, 하늘, 바다에서 우리의 주도하에작전,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낼 것입니다.믿음직한 군대로 반드시 평화를 만들어나갈 것입니다.국군장병 여러분,국민과 함께 하는 군대가 가장 강한 군대이며강한 군을 만드는 핵심은 장병입니다. 장병들이 차별 없이 존중받고진정으로 국가와 군을 자랑스러워할 때용기와 헌신을 갖춘 군인이 될 것입니다.이제 우리 군은 국민의 딸과 아들을 귀하게 여기는 군대가 되어야 합니다.전력에서도 최고가 되어야하며민주주의에서도 최고가 되어야 합니다.공정한 군대, 소통하는 군대로 복무환경을 개선하고,군 생활이 사회 단절로 이어지지 않도록군 복무기간에 따른 맞춤형 취업을 지원하겠습니다. 경찰관, 해경, 소방관 등에 제대군인 채용도 확대하겠습니다.군 의료지원체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군의 육아여건을 보장하기 위한 공동육아나눔터, 군 어린이집도 늘려나갈 것입니다.남녀 군인들 간의 차별해소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일 것입니다.군복무 기간에는 자신의 역량을 기르고제대 후에는 민주사회의 시민으로 공헌할 수 있을 때우리 군의 애국심은 더욱 고양될 것입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국군장병 여러분,함께해야 이깁니다.국민과 함께해야 하며, 지휘관과 장병이 함께해야 합니다.육·해·공군이 함께해야 하고, 동맹 우방국과 함께해야 합니다.미래를 선도해야 이깁니다.이순신 장군은 거북선이라는 신무기와 학익진이라는 새로운 전략으로 승리했습니다.우리 국방도 4차산업혁명에 접목하여스마트 국방과 디지털 강군으로 도약해야 합니다.우리는 지금 평화의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명예로운 군인의 길이 한반도의 새 역사를 쓸 것입니다.우리 군은 지금까지 조국수호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고,앞으로도 변함없이 국민을 지켜낼 것입니다.나는 우리 장병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있으며,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감사합니다.
2018.10.01 I 김성곤 기자
조관우, 아무도 몰랐던 파란만장 인생사…'이혼·15억 빚·연기'
  • 조관우, 아무도 몰랐던 파란만장 인생사…'이혼·15억 빚·연기'
  • (사진=MBC ‘사람이 좋다’)[이데일리 김민정 기자] 1994년 데뷔한 조관우는 데뷔 24년 차의 중년 가수다. 수 많은 히트곡을 내며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그는 거듭된 불운으로 신용불량자가 돼 나락에 떨어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지난 11일 방송된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는 가수 조관우가 출연해 두 번째 이혼 조정과 신용불량자가 된 사연, 그리고 가수에서 배우로 전향하게 된 계기까지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데뷔 24년 차에 4회 연속 100만 장 이상이 음원 판매고를 올린 90년대 대표 가수인 조관우는 노래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알고 보니 성대결절로 인한 고생을 겪었던 것. 그는 “그게 ‘나는 가수다’ 때 다친 상처가 미국 공연이랑 이어졌다. 이후 일이 끊겼다”며 “처음엔 부담스러워서 (연기 제안을) 처음에 거절했다. 감독님께서 ‘믿어라. 나를 믿으면 된다’고 하더라. 그 모습이 이순신 장군 같았다. 그래서 믿고 시작했다”고 말했다.이후 조관우는 2011년 드라마 ‘청담동 살아요’, 2015년 영화 ‘조선 명탐정 : 사라진 높의 딸’을 통해 배우로 존재감을 굳혔다. 영화 관계자는 조관우에 대해 “연기를 보거나 리딩을 할 때 항상 배우의 눈빛을 본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도 선배님 눈빛이 소름 끼치더라. 대단한 배우의 눈빛을 가지고 있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칭찬했다.설상가상 조관우의 시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인의 배신으로 수억의 빚더미에 오른 것. 15억의 빚 중 이제 2억이 남았다고 전했다. 이로 인해 재혼으로 어렵게 이룬 가정까지 깨졌다고.(사진=MBC ‘사람이 좋다’)조관우는 4개월 전부터 큰 아들의 월셋집으로 거처를 옮겨 생활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재후 아들과 딸을 낳았지만 경제적인 요인 때문에 함께 살지 못하고 있다”며 “이제 집도 없지 않나. 이것밖에 안 되는 아빠라서 마음이 아프다. 지금 한창 사랑 주면서 자라나야 할 아이들을 지금 내 상황 때문에 같이 못 있다”며 가슴아파 했다.최근 삭발까지 감행한 조관우. 그는 “과연 내가 삭발할 수 있는 용기가 있을까. 내가 변한 이 마음을 가지고 새로 다짐할 수 있을까 싶었다”며 “이기적으로 살았고 나 혼자만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생겼다는 나에 대한 시위였다. 그래서 어느 순간 머리를 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이같은 시련에도 조관우는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는 “다시 일어서기 위해 다시 노력 중”이라며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겠습니다”라고 의지를 드러냈다.특히 이날 부친이자 대한민국의 판소리 명창인 조통달 부부와 1년 만에 재회하는 모습도 그려졌다. 아버지 조통달은 아들의 모습을 보고 “여러모로 볼 때 너무 속상하다. ‘늪’ 이상으로 뜰 수 있는 그런 실력을 가진 아이인데 안타깝다. 아들 들으라고 말하는 거다. 정신차리고 이겨냈으면 좋겠다”고 격려했다.
2018.09.12 I 김민정 기자
오늘 우리에게 절실한 의병정신
  • [목멱칼럼]오늘 우리에게 절실한 의병정신
  •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얼마 전 임진왜란 때 왜적과 싸우다 본인은 물론 두 아들과 함께 목숨을 바친 전라도 고경명(高敬命, 1533-1592) 의병장의 거룩한 애국 정신을 다룬 출판기념회에 다녀왔다. 의병장의 당시 활동상을 들으면서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다. 요즘 한반도를 둘러싸고 급격하게 전개되는 전쟁과 평화의 냉·온탕식 기류변화를 체험하고 있는 오늘의 우리가 역사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 바로 이것이구나 싶었다.지금부터 420여 년 전 이 땅에서 벌어진 임진왜란 7년 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혹독한 상처를 안겼다. 일본열도를 통일한 막강한 정예 왜병은 불과 두세 달 만에 조선 땅을 거의 유린했다. 관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무너졌고, 명나라 원군은 얼마 지나서야 일부 지역의 수복 전투에만 참전했다. 충무공의 활약도 주 무대는 바다였다. 이런 와중에 육지 곳곳에서 왜적과 맞서 싸운 것은 의병들이었다.의병은 누구인가? 대부분 농사를 짓던 민간인이었다.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무기도 변변치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조총으로 무장한 왜병과 맞서 분연히 일어섰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나섰을까? 그런 판단 이전에 평소 존경하던 향촌의 선비가 의병장으로 앞장서기에 그 결정을 믿고 뒤따랐을 뿐이다. 지도층의 리더십이 저절로 작동한 순간이었다.고경명은 당시 60세의 노 선비이자, 전쟁 1년 전 동래부사를 끝으로 고향으로 물러나 글을 읽던 한낱 전직 관료였다. 그런 그가 두 아들과 함께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의병을 일으켰던 것이다. 자신과 아들의 몸만 바친 것이 아니고 주위의 수많은 사람을 의병으로 이끌어냈다. 또 무기와 군량도 본인 책임 아래 마련하였다. 나라가 어려우면 떨쳐나서는 것이 선비의 본분이라는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전쟁의 승패와 일신의 안위보다 오직 무엇이 옳은지 만을 행동의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고경명과 두 아들 그리고 대부분의 의병은 그렇게 차례로 전장에서 순국하였다.어디 고경명 장군만 그랬던가? 같은 호남 땅의 김천일(金千鎰, 1537~1593)이 그랬고, 충청도의 조헌(趙憲, 1544~1592)도 700 의병과 싸우다 장렬히 순절하였으며, 경상도의 곽재우(郭再祐, 1552~1617) 또한 붉은 갑옷을 입고 신출귀몰해 왜적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이외에도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다.우리는 흔히 공동체를 위한 지도층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이야기 할 때 서양 상류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거론한다. 그들은 축적한 부를 사회에 과감히 환원하고 전쟁이 나면 먼저 앞장서는 전통을 부단히 만들어 왔다. 그러나 우리 선비들은 그보다 더 나으면 나았지 결코 못지않은 솔선수범의 문화를 일구었다. 궂은일은 앞서 맞고 즐거운 일은 남에게 먼저 양보하는 선우후락(先憂後樂)의 정신이 그것이다. 이 때문에 전쟁이 나면 솔선하여 의병을 일으켜 가족과 아랫사람들까지 합류시켰다. 국가 권력 밖에 있는 비정규 조직이기에 무기와 각종 보급품도 스스로 조달했다. 주로 정규군 지원을 통해 봉사한 서양 상류층의 행동과는 결이 다른 거룩한 헌신이 아닐 수 없다.인류 전쟁사에서 민간인이 주력 부대를 이루면서 전쟁을 전면에서 수행한 나라는 조선왕조 이외에는 유례가 거의 없다. 조선왕조 말에도 전국에서 일어난 의병이 온갖 희생을 무릅쓰면서 강력한 일본 정규군과 맞서 치열하게 싸웠다. 승패를 떠나 얼마나 자랑스러운 전통이자 문화인가? 오늘을 사는 우리도 나라가 위기에 직면하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려면 외교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외교에서 성공하려면 상대가 우리를 만만히 볼 수 없도록 힘을 길러야 한다. 나라의 힘은 어떻게 배양되는가? 애국심에 뿌리를 둔 국민의 단결심이 토양이다. 그 토양은 또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지금까지의 역사가 보여준 대로 지도층의 솔선수범을 통해서이다. 이것이 우리가 역사 속 선비의 의병정신을 오늘에도 되새겨야 하는 까닭이다.
2018.06.25 I 최은영 기자
 탁 트인 바다보며 '섬 속의 섬'을 거닐다
  • [여행] 탁 트인 바다보며 '섬 속의 섬'을 거닐다
  • 소무의도 명사해변을 걷고 있는 여행객. 바다 너머로 인천 송도의 마천루들이 어렴풋이 보인다[인천 무의도= 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인천에는 168개의 아름다운 섬이 있다. 그중에서도 조수간만의 차이가 만들어낸 신비의 바닷속 대이작도 ‘풀등’, CNN에서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섬 33곳 중에 1위로 뽑힌 선재도 부속섬 ‘목섬’, 자연이 깎아내린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서해 최북단 백령도 두무진 등 제각각 특색있는 빼어남을 자랑하는 섬도 부지기수다. 소무의도는 본섬인 대무의도와 인도교로 이어진 작고 아름다운 섬이다. 인천 앞바다의 그림 같은 풍경을 감상하며 느릿느릿 걸을 수 있는 둘레길은 휴식 그 자체다. 이 봄이 가기 전 봄기운 물씬 풍기는 소무의도를 찾아 하늘과 바다 사이의 푸른 산자락을 걸어보자.소무의도 둘레길인 바다누리길 8구간 키작은소나무길 하도정에서 바라본 서해와 송도의 모습. 희뿌연 미세먼지사이로 인천 송도의 마천루가 어렴풋이 보인다.◇ 한나절 여행으로도 충분한 ‘무의도’잠진도는 무의도로 가는 통로다. 두 섬은 5분 거리다. 하지만 아직 다리가 없어 뱃길이 살아있다. 갯벌에서는 주민들이 허리를 굽혀 호미질한다. 그때마다 씨알 굵은 바지락들이 알몸을 드러낸다. 뻘밭의 농사다. 뱃머리를 돌리자마자 여객선은 무의도 큰무리 선착장에 도착한다. 잠진도 선착장에서는 30분 간격으로 배가 뜬다. 5분이면 선착장에 닿는다. 배 시간에 맞춰 마을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실미도 유원지, 하나개해변, 소무의도 인도교까지 갈 수 있다. 단, 배에서 내리는 승객이 없을 때는 버스가 운영하지 않으니 참고해야 한다.영종도의 대표적 일출 배경 중 하나인 샤크섬무의도는 말을 탄 장군이 옷깃을 휘날리며 달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무희의 옷처럼 보이기도 해 붙은 이름이다. 대무의도와 소무의도로 나눠져 있다. 대무의도는 면적 9.432㎢, 해안선 길이 31.6㎞에 이른다. 이곳 주민들은 대무의도 보다는 큰무리섬이라 부른다. 섬 주변으로 소무의도, 실미도, 해리도, 상엽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무리 지어 몰려 있어서다. 아마도 이 섬 중 가장 큰 섬이라고 해서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대무의도 북쪽에는 당산이 있고 중앙에는 국사봉이, 남쪽에는 호룡곡산(245m)이 있다. 국사봉에서는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 정상에서는 절터와 금동불상, 토우 등이 발견되기도 했다. 사실, 인천 지역의 섬들에는 국사봉이란 이름을 가진 산들이 많다. 덕적도와 영흥도, 자월도 등에도 국사봉이 있는데 이들 모두가 국가에서 하늘에 제사를 모셨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호룡곡산에는 호랑이와 용이 싸웠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섬에는 하나개해변과 실미도해변 등 두 개의 아름다운 모래 해변이 있다. 그중 하나개해변은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도 소문난 곳이다. 고운 모래가 깔린 백사장 위로 방갈로 수십 동이 이국적인 풍광을 연출하고, 백사장 남쪽으로 기암괴석이 장관이다. 특히 드넓은 갯벌을 붉게 물들이는 일몰이 인상적인데, 대무의도에서 하룻밤 묵어도 좋을 만큼 낭만적이고 아름답다.무의도와 소무의도를 잇는 인도교◇ 대무의도와 소무위도를 하나로 잇다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 소무의도로 향한다. 대무의도 광명항으로 내려오면 인도교 너머 소무의도가 보인다. 소무의도는 1.22㎢, 해안선 길이 2.5km의 작은 섬이다. 이곳 사람들은 ‘떼무리’라고 부른다. ‘대무의도 본섬 일부가 떼어져 나간 섬’에서 유래했다. 300여 년 전 박동기란 이가 세 딸을 데리고 이 섬에 들어온 것이 시초다. 그 후 기계 유씨 청년을 데릴사위로 삼으면서 지금은 유씨 집성촌을 이뤘고, 당산 터 옆에는 시조묘(박동기 묘)가 남아 있다.한때 안강망(鮟鱇網·조수의 흐름을 이용한 고기잡이 그물)어선이 40여 척에 달했고, 수협출장소가 있을 만큼 생기가 넘쳤다. 이후 1992년 인천국제공항 건설을 시작하면서 큰 시련을 겪는다. 공항 건설을 위한 영종도·용유도 매립공사로 근해 어장이 막대한 피해를 봤다.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은 뭍으로 떠났고, 이제는 섬에 남아 있는 주민이 40여 명에 불과하다. 다행히 2011년 소무의인도교(414m)가 놓이고 어장도 살아나면서 섬은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다.소무의도 바다누리길 8구간인 키작은소나무길 중간에 있는 하도정에서 관광객이 서해를 바라보고 있다.섬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무의바다누리길’은 2012년 조성했다. 해변과 어촌, 숲을 따라 한 바퀴 돌아 나오는 2.48km의 짧은 걷기 길이다. 각기 다른 주제인 8구간이 있다. 여기에 진입광장에서 몽여해변을 잇는 0.75km의 바다를 접한 해안트레킹도 즐길 수 있다. 쉬엄쉬엄 걸어도 1시간이면 살펴볼 수 있고, 어귀마다 쉼터와 벤치도 있어 쉬어갈 수 있다.무의바다누리길 1구간은 대무의도에서 소무의도로 이어진 ‘인도교길’이다. 2구간은 인도교 끝에서 왼쪽 시계방향 서쪽마을로 들어서는 ‘마주보는길’, 3구간은 ‘떼무리길’, 4구간은 ‘부채깨미길’, 5구간은 ‘몽여해변길’, 6구간은 ‘명사해변길’, 7구간은 ‘해녀섬길’, 8구간은 ‘키작은소나무길’ 등으로 이뤄져 있다. 서해의 수려한 풍경을 감상하며 타박타박 걸어도 2시간 정도면 충분히 걸어볼 수 있다.해녀섬이 한눈에 보이는 소무의도 바다누리길 키작은소나무길.(사진=강경록 기자)◇ 서해 감상하며 타박타박 걷다 소무의도 명사해변길. 멀리 바다너머로 인천 송도의 마천루가 어렴풋이 보인다.(사진=강경록 기자)무의바다누리길을 즐기는 방법은 두 가지다. 섬에 들어서자마자 왼쪽 작은 어촌마을인 서쪽마을로 들어서며 2구간인 ‘마주보는길’로 향하거나, 인도교를 건너자마자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당산 정상으로 향하는 ‘키작은소나무길’을 따라 반대로 도는 길이다. 어느 곳으로 향하던 서해 푸른 바다를 모두 즐길 수 있으니 각자 취향에 맞춰 선택하길 바란다.인도교를 들머리로 삼는다. 바다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인도교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덧 다리 끝. 여기서 계단을 따라 당산을 오른다. 곳곳이 전망 포인트이지만, 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하도정에서 바라본 모습은 가파른 계단 길을 땀 흘리며 오른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풍경이다. 명사의 해변까지 이어지는 길 또한 전망이 좋다. 이어 중절모처럼 생긴 섬과 마주한다. 소무의도 남쪽에 있는 작은 섬인 해녀섬(해리도)이다. 전복을 따던 해녀들이 쉬었던 섬이라 해서 이름 붙었다. 과거 연안부두 조성을 위해 채석장으로도 이용했지만, 보존을 위해 채석을 금지한 이후 현재의 모습으로 남았다. 소무의도 바다누리길 키작은 소나무길에서 만난 각시붓꽃명사의 해변은 전 박정희 대통령이 가족들과 함께 이곳 해안에서 휴양을 즐겼던 곳이다. 물이 완전히 빠져야만 통행이 가능하니, 썰물 때를 미리 알아봐야 한다. 해변에 있는 촛대 모양의 기암 ‘장군바위’도 장관이다. 바위 모습이 마치 장군의 모습과 닮았다고 해 붙은 이름이다. 과거 이 바위를 보고 해적이 도망쳤다는 전설이 있다. 몽여해변으로 향한다. 과거 굴양식이 성행했던 해변이다. 자갈밭으로 여름이면 조용히 해수욕을 즐기러 온 사람들이 찾던 해변이다. 해변 우측으로 물이 빠지면 바위섬이 되는 몽여가 있어 몽여해변이라 불렀다고 한다. 해변을 지나 한때 새우잡이로 부유했던 동쪽마을로 들어선다. 마을은 허물어진 집들이 여럿 보일 만큼 쇠락했다. 이곳에 소무의도에서 가장 오래된 우물이 있다. 지금도 마르지 않는 우물로, 과거 소무의도 주민들의 식수를 해결해 주던 고마운 우물이다. 동쪽마을 지나 서쪽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모예재를 넘어가야 한다. 동쪽마을에 사는 어머니를 서쪽마을에 살던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 문안을 위해 매일 같이 넘어 다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서쪽마을과 동쪽마을을 잇는 고개로 고개가 너무 높아 마을 사람들이 파내어 골을 낮추고 길을 확장했다고 한다. 서쪽마을로 나와 다시 인도교를 걸어 나온다.소무의 인도교◇여행메모△가는길= 공항철도를 이용한다면 서울역에서 인천공항 1터미널까지 논스톱으로 운행하는 직통열차(43분 소요)와 모든 역에 정차하는 일반열차(약 60분 소요)를 이용할 수 있다. 무의도까지는 공항철도와 자기부상열차로 가는 게 편리하다. 자기부상열차는 인천공항1터미널 교통센터 2층에서 용유역까지 15분 간격으로 무료 운행한다. 용유역에서 20분쯤 걸어가면 잠진도선착장이다. 승용차로 갈 때 배에 승용차를 선적할 수 있어 무의도 광명항까지 곧장 갈 수 있다. 3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무의도행 뱃삯은 1인 성인 왕복 기준 3800원(승용차 선적 시 2만 원 별도).△먹을 곳= 을왕리해변과 왕산해변 일대와 도로변, 거잠포 포구 등에 횟집·조개구이집들이 즐비하다. 음식값은 비싼 편이다. 선녀바위해변 입구 도로변의 ‘선녀풍’(물회 2만 원), 용유역에서 거잠포마을회관 쪽의 ‘소나무식당’(해물밥상 1만5000원) 등으로 관광객이 많이 간다. 영종도 소나무식당 조개탕
2018.05.11 I 강경록 기자
 文대통령 육사 졸업식 축사 “육군사관학교, 대한민국 수호 역사”
  • [전문] 文대통령 육사 졸업식 축사 “육군사관학교, 대한민국 수호 역사”
  •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후 서울 태릉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제74기 육사 졸업 및 임관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6일 “육군사관학교의 역사가 곧 대한민국 수호의 역사”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서울 공릉동 육군사관학교 화랑연병장에서 열린 육군사관학교 제74기 졸업 및 임관식에 참석, 축사를 통해 “힘든 군인의 길이지만 자랑스럽게 걸어 갈 수 있도록 나도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하겠다”고 격려하며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아울러 “조국을 지킨다는, 불타는 의지와 사명감으로 어려운 교육과정을 훌륭하게 이수해 냈다. 자랑스럽다”며 “군에 몸담고 있는 동안 여러분 스스로를 더욱 강하게 단련하는 바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문 대통령 축사 전문자랑스러운 육군사관학교 74기 졸업생 여러분,가족 여러분, 내외 귀빈여러분,오늘 223명의 졸업생이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명예로운 첫 걸음을 내딛습니다.앞으로 우리 군을 이끌어 갈젊은 장교들의 모습이 참으로 당당하고 늠름합니다.귀한 딸?아들들이 위국헌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뒷받침해주신 가족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호국 간성의 양성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해주신 교직원, 훈육관 여러분께도 특별히 감사드립니다.이 곳 화랑연병장은 대한민국 수호의 요람입니다. 청춘의 땀방울이 애국과 충성으로 다져진 곳입니다. 고된 훈련 뒤에도 졸업생들은 무거운 눈꺼풀을 참아가며 밤새워 공부했습니다.화랑관 기숙사에는 고군분투의 날들이 남겨져 있습니다.20kg 장비를 매고 300m 상공에서 뛰어내린공수낙하훈련도 멋지게 이겨냈습니다.조국을 지킨다는, 불타는 의지와 사명감으로어려운 교육과정을 훌륭하게 이수해 냈습니다.자랑스럽습니다.군에 몸 담고 있는 동안여러분 스스로를 더욱 강하게 단련하는 바탕이 될 것입니다.사랑하는 졸업생과 사관생도 여러분,지난 삼일절, 육군사관학교 교정에독립군과 광복군을 이끈 영웅들의 흉상이 세워졌습니다.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과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의 정신이여러분들이 사용한 실탄 탄피 300kg으로 되살아났습니다. 조국을 위해 몸 바친 선열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군인정신으로 이어가겠다는 다짐입니다.참 뜻깊은 일입니다.애국애민, 자유와 평화를 향한 우리의 군의 역사는한 순간도 끊어진 적이 없습니다.일제에 의한 강제 군대해산과 동시에 군인들은 국민과 함께 새로운 독립투쟁을 전개했고독립군과 광복군이 되어 불굴의 항전을 이어갔습니다.우리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는 깊고 강인합니다. 오늘 명예졸업증서를 받는독립군?광복군 대표 김영관 애국지사를 비롯한광복군 생존자와 유가족 여러분께이 자리를 빌려, 깊은 경의(敬意)를 표합니다.자랑스러운 청년장교 여러분,우리의 목표는 분명합니다.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입니다.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튼튼한 안보입니다.면책이 허용되지 않는 나와 군의 사명입니다.평화는 바로 우리의 생존이며, 번영의 조건입니다.그러나 강한 군대, 튼튼한 국방 없이는평화를 지킬 수도, 만들 수도 없습니다.평화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습니다.평화를 만들어가는 근간은바로 도발을 용납 않는 군사력과 안보태세입니다.우리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북한과 대화해야 합니다.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북핵과 미사일 대응능력을 조속히, 그리고 실효적으로 구축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4차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장비와 인력체계,새로운 국방전략을 발전시켜나가는 것은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과제입니다.사이버 안보에서도 독자적인 역량을 갖춰야 할 것입니다.국방개혁은 엄중한 안보환경 속에서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국민의 명령이자 소명입니다.국방개혁은 군이 스스로 당당해지는 길입니다.군이 국방개혁의 진정한 주체가 될 때우리 군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더욱 빛낼 수 있습니다.청년장교들이 이 길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나는 한미연합방위태세를 더욱 견고하게 발전시켜 갈 것입니다.한반도 평화를 위해 주변국을 비롯한국제사회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내는 노력도 계속해나갈 것입니다.나는 어제 북한에 특사단을 보냈습니다.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를 우리 힘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평화와 번영을 위한 여정을 시작했습니다.우리에게는 청년장교들의 불타는 애국심이 있습니다.또한 북핵보다 강한 민주주의가 있고민주주의를 지켜낸 자랑스런 국민들이 있습니다.나는 온몸으로 조국의 안보를 책임지는 청년장교들의 꿈이평화를 향한 국민들의 꿈과 하나가 되어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라는 원대한 목표에 도달하게 되길 바랍니다.사랑하는 졸업생과 사관생도 여러분,군인이 바라보아야 할 곳은오직 국가와 국민뿐입니다.여러분이 바라보아야할 국가는목숨을 걸고 지킬만한 나라다운 나라, 정의로운 나라여야 합니다.강한 군대가 되기 위해서는 국민의 한결같은 사랑과 지지를 받아야 합니다.장교의 길을 걷는 여러분뿐만 아니라병역의무를 이행하는 병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에게나 군 복무가 자랑스럽고 보람 있어야 합니다.장병들의 가슴에내가 꼭 지키고 싶은 나라가 있을 때장병 한 명 한 명의 사기와 전투력이 최고로 높아질 것입니다.진정으로 충성하고 싶은 나라를 함께 만듭시다.이 길에 여러분이 주춧돌이 되어줄 것을 당부합니다.여러분이 아주 귀한 존재이듯여러분이 지휘하게 될 부하장병들 또한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자 아들입니다.젊은 장병들에게 군대는 새로운 관계를 맺고새롭게 자신을 키워가는, 또 다른 사회입니다.부하장병들은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해져서가족의 품, 사회의 품으로 돌아가야 합니다.그것이 국민의 군대입니다. 지휘관부터 병사까지서로 존중하고 사기가 충만한 군을 만들어 나갑시다.국민으로부터 사랑받고 적과 싸워 반드시 이기는 강한 군대의 초석이 되어줄 것을 당부합니다.자랑스러운 육군사관학교 74기 졸업생 여러분,오늘 새로 임관하는 장교들의 긍지 넘치는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면서나는 마음이 든든합니다.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의 마음도 그러할 것입니다.지금의 대한민국은‘위국헌신 군인본분’의 자세로 나라를 지켜 온군인들의 헌신과 희생 위에 서 있습니다.국민들은 결코 그 사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육군사관학교의 역사가 곧 대한민국 수호의 역사입니다.힘든 군인의 길이지만 자랑스럽게 걸어 갈 수 있도록나도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여러분의 장도에 무운과 영광이 늘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감사합니다.2018년 3월 6일대한민국 대통령 문 재 인
2018.03.06 I 김성곤 기자
백범 등 애국지사 잠들어 있는 '효창공원', 국립묘역 지정 재추진되나
  • 백범 등 애국지사 잠들어 있는 '효창공원', 국립묘역 지정 재추진되나
  •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서울 용산구 효창동 효창공원 북쪽 높은 동산에는 독립운동가인 애국선열들의 묘역이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석오 이동녕 선생과 백범 김구 선생 뿐 아니라 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군무총장을 지낸 청사 조성환 선생, 임시정부 비서장을 지낸 동암 차이석 선생 등 임정요인 4인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또 윤봉길·이봉창·백정기 등 ‘3의사(義士)’의 묘소 뿐 아니라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모시기 위한 ‘가묘’(假墓)도 있는 곳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해 8월15일 제72주년 광복절을 맞아 효창공원 안에 있는 백범 김구 선생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애국선열 묘역이지만…중앙부처 아닌 지자체가 관리애국선열들의 묘소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관리하는 곳은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다. 문화재보호법의 적용을 받는 ‘사적공원’과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는 ‘근린공원’으로 지정돼, ‘공원’으로서의 성격이 강해 애국선열들이 국가적 차원의 예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내년이 3·1운동 100주년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는 가운데, 이들 애국선열 묘역에 대한 예우 문제가 다시 화두가 되고 있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장은 지난 19일 기자 간담회에서 “대한민국의 법통인 임시정부 주역을 모셔야 현충원이 대한민국 정통성을 상징하는 곳이 될 수 있다”며 김구 선생의 묘역 이전을 언급했다. 그는 “현재 효창공원에 안장돼 있는 김구와 윤봉길·이봉창·안중근 열사 등은 모두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 주역들이자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이라는 헌법적 가치에 부합하는 인물인데 국가적 차원의 참배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이들은 현충원에 안장될 법적·정치적·역사적인 자격을 지니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각 부처 장관 등이 올해 2일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참배를 위해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 들어서고 있다. [출처=국립서울현충원]◇백범, 항일 의미로 효창원에 독립운동가들 안장 앞서 김구 선생 묘소 이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추진됐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비교적 큰 규모로 조성돼 있는 김구 선생 등의 묘소를 현충원으로 이장할 경우 관련 규정에 따라 규모를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현충원 관련 규정에 따르면 군 병사와 대령까지의 묘역 면적은 3.3㎡(1평)이며 장군과 애국지사는 26.4㎡(8평)이다. 애국지사로 분류되는 김구 선생 등 7인의 묘역을 현충원으로 이장할 경우 8평 규모로 조성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통령 묘역은 264.4㎡(80평) 정도 된다. 특히 묘지 이장에 대해 유족회나 기념사업회 등은 효창공원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며 반대하고 있다. 과거 효창원으로 불린 효창공원은 조선 22대 왕 정조가 어린 나이에 사별한 맏아들 문효세자와 그의 생모 의빈 성씨 등을 모신 곳이다. 일제는 조선 왕가의 묘역인 이곳을 공원으로 만들고 왕실의 무덤도 다른 곳으로 옮겼다.김구 선생은 광복 이후 효창원에 터를 잡고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 유해를 이곳으로 이장했다. 유해를 찾지 못한 안중근 의사의 가묘를 쓴 것도 김구 선생이다. 일제에 의해 훼손된 효창공원을 항일운동의 상징으로 삼았다는 의미다. 김구 선생은 1949년 암살된 뒤 자신도 이곳에 묻혔다. 묘역 이장은 유족들이 신청해야 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백범 김구 선생(맨 앞줄 왼쪽 세 번째) 등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원들이 1921일 1월 1월 신년축하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출처=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효창공원 국립묘지화 추진됐지만…주민반발로 무산이 때문에 효창공원의 국립묘지 승격이 대안으로 떠오른다. 지난 2013년 당시 김광진 의원은 효창공원을 국가적 차원으로 관리하는 국립묘지로 승격 지정 하는 개정 법률안을 발의한바 있다. 하지만 국립묘지가 되면 공원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게 되고 집값 하락 우려도 있다는 지역주민들의 반발로 이 법안은 폐기됐다. 당시 서울 용산구의회는 효창공원의 국립묘지 지정 반대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에는 효창운동장을 용산 미군기지 터로 옮기고 효청공원과 합친 17만여㎡를 ‘효창독립공원’으로 성역화하는 계획을 수립한바 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축구계의 반대로 표류하다 결국 좌초했다. 김민석 민주연구원장은 “백범 김구를 비롯해 효창공원에 계신 윤봉길, 이봉창, 안중근 등 건국의 주역을 국립묘지에 모시는 일은 역사 인식과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운다는 면에서 반드시 필요하다”며 “이장이 어렵다면 지금 계신 효창공원을 국립묘지화하는 방안도 충분히 검토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보훈정책 전문가는 “독립운동 영웅들의 묘역을 공원으로 대접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면서 “효창공원은 성역화 돼야 하며 아직 가묘 상태로 있는 안중근 의사의 유해발굴사업도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현재 국립묘지법상 10개의 국립묘지로 한정하고 있는데, 이를 개정해야 효창공원의 국립묘지 승격이 가능하다”면서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의가 우선시 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대구 신암선혈공원은 법 개정을 통해 국립묘역으로 승격된바 있다. 독립운동가 묘소 50여기가 있는 이곳은 기존에 대구시가 관리하던 사적공원이었지만 법 개정으로 국립으로 승격돼 올해 5월 재개원한다.
2018.02.28 I 김관용 기자
 낡은 시간들만 가득한 풍경을 거닐다
  • [여행] 낡은 시간들만 가득한 풍경을 거닐다
  • 초원사진관 옆 벽화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경암동 철길마을[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전북 군산은 근현대사의 야외 박물관이다. 멀리 일제강점기부터 가까이는 1970~1980년대 이전까지 풍경을 간직한 건물과 골목들이 즐비하다. 그만큼 시간을 박제한 듯한 풍경들이 널려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과거를 배경으로 한 영화 촬영지로 인기가 많다. ‘8월의 크리스마스(1998)’ ‘타짜(2006)’ ‘변호인(2013)’ 등 많은 영화를 군산에서 촬영했다. 말하자면 오픈 세트장인 셈이다. 근대건축물이 많은 근대역사문화거리나 신흥동 일본식 가옥, 경암동 철길마을, 해망굴, 군산내항과 고군산군도의 섬 등은 여러 영화에 등장하고, 반대로 촬영을 위해 만든 세트장이 영화 흥행과 함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기도 했다. 낡은 시간들만 가득한 풍경 속에서 만난 뜻밖의 발견이다.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이곳저곳을 거니는 것은 또 다른 ‘시간 속으로 여행’이다.우리나라 3대 근대건축물로 손꼽힐 만큼 아름다운 건물 옛 군산세관◇일제강점기 아픔 고스란히 남은 ‘근대문화역사거리’군산근대건축관_군산 해저 발굴 주화시간여행은 군산내항 입구 근대역사문화거리에서 시작한다. 첫 발길은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에 머문다. 근대역사박물관은 군산의 근대역사와 해양문화를 테마로 한 박물관이다. 지난 2011년 9월 개관했다. 1층은 해양물류역사관과 어린이체험관, 2층은 특별전시관, 3층은 기획전시실과 근대생활관이 들어서 있다. 가장 인기 있는 곳은 근대생활관이다. 일제의 강압적 통제에도 굴하지 않고, 치열한 삶을 살았던 군산 사람들의 모습을 재현한 공간이다. 박물관 주변, 군산 내항 일대에는 1900년대 초에 지은 건물들이 번듯했다. 우리나라 3대 근대건축물로 손꼽힐 만큼 아름다운 건물인 옛 군산세관이 있다. 또 미곡창고 등 옛 건물들을 개조한 군산근대미술관과 장미공연장, 장미갤러리, 미즈카페 등에서 근대문화의 숨결 속에서 역사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다. 박물관 뒤편의 철길은 1912년 건설한 익산과 군산을 잇는 철도의 마지막 지점이다.신흥동일본식가옥3근대역사문화거리의 또 다른 주인공은 이른바 ‘탁류길’이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 등장하는 1930년대의 군산의 모습이다. 개항 100주년 기념광장 바로 옆에 조선은행과 군산지점 건물(현 군산근대건축관)이 퇴역한 쇼군(將軍)처럼 서 있고, 맞은편엔 미두장(米豆場)이 흔적으로만 남아 있다. 일제강점 미두거리는 군산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이 일대는 군산에서도 일제강점기의 풍경이 비교적 많이 남아있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1922년에 지어진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소설 ‘탁류’에서 주인공 초봉의 남편인 고태수가 근무했던 은행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일제강점기 경제수탈의 대표적인 금융기관으로 해방 이후에는 한국은행과 한일은행 군산지점으로 사용되었고, 일반으로 불하된 이후에는 유흥주점이 들어서는 등 여러 곡절을 거쳤다. 한동안 화재 등으로 방치되다가 군산시가 건물을 매입해 현재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미두장이 있던 자리에는 한국선박중개소 군산지점이 들어서 있다. 그앞으로 이곳이 마두장이었음을 알리는 자그만 표석만 남아 있을 뿐이다. 쌀의 시세를 팔고사던 자리에 선박을 사고파는 곳이 들어선 게 아이러니하다. 이 일대를 해방 이후 ‘장미동(藏米洞)’이라 부른 것도 미두장과 무관치 않다. 장미동에는 80년대까지 커다란 벽돌창고가 남아 있었는데 일본으로 실어 나르기 위한 쌀 창고였다.장미갤러리경암동 철길마을◇영화의 도시 ‘군산’1948년 이만홍 감독의 영화 ‘끊어진 항로’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군산에서만 모두 130여편의 영화가 촬영했다. 올해만 영화 18편이 군산에서 카메라 앵글을 돌렸다. 단골 배경으로 꼽히는 곳 가운데 으뜸은 신흥동 일본식 가옥이다. ‘장군의 아들’ ‘타짜’ ‘바람의 파이터’ ‘가비’ 등이 일본식 주택인 히로쓰 가옥에서 촬영했다. 이 주택은 일제강점기에 포목점을 운영하던 거상 히로쓰가 지은집이다. 근세 일본 무가(武家)의 고급주택 양식을 띄고 있는 목조 2층의 주택인데, 지붕과 외벽 마감, 내부, 일본식 정원 등이 건립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초원사진관1월명동의 초원사진관은 1998년에 제작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장소로 유명세를 탔다. 원래 차고였던 장소를 허진호 감독이 주인의 허락을 받고 초원사진관이란 이름으로 개조해 촬영을 진행했다. 이후 철거됐다가 군산시에서 이를 다시 복원해 관광객들이 꼽아 찾는 명소가 됐다.경암동 철길마을은 ‘남자가 사랑할 때’에서 주인공 황정민과 한례진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철길을 걸었던 장소다. ‘홀리데이’ ‘천년한’ 등도 이곳에서 찍었다. 철길 한쪽에는 70년대 건축한 낡은 2층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부속 건물인 듯한 작은 창고들이 아기자기 연결되어 있는 모습은 옛 추억을 떠 올리게 한다. 군산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집인 ‘빈해원’은 화교출신이 2대째 운영중이다. 1951년 문을 열어 올해로 66년째다. 허름하게 느껴지는 건물외관과 다르게 확 트인 내부와 높은 천장, 이국적인 인테리어의 고풍스러움이 영화 ‘변호인’과 ‘강남 1970’을 불러들였다.경암동 철길마을동국사 대웅전◇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은 일본식 사찰 ‘동국사’금광동의 동국사는 아주 독특한 곳이다. 동국사는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일본식 사찰이다. 일제강점기 군산에만도 일본 사찰이 5곳에 이르렀다고 하나, 현재는 동국사가 유일하다. 1913년 일본 조동종 승려 우치다가 ‘금강사’라는 이름으로 지은 사찰이었다. 해방 이후 ‘동국사’란 이름의 조계종 사찰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처음에는 금강사는 포교 목적의 사찰이 아니라 한국인들을 일본에 동화시키려는 목적으로 일본 정부에 의해 세워진 사찰이었다.동국사는 고은 시인이 출가한 절이기도 하다. 1933년 군산에서 태어난 시인은 동국사 인근 군산북중학교 교사로 지내던 중 한국전쟁의 혼란기에 동국사에서 머리를 깍고 불제자가 된다.동국사는 우리나라 전통사찰과 달리 처마에 장식이나 단청이 없다. 건물 외벽에 창문이 많고, 가파른 경사의 지붕 등 전형적인 일본식 사찰임을 보여준다. 주요 건물로는 대웅전, 요사채, 종각 등이 있는데 대웅전과 요사채는 복도로 연결되어 있으며, 가파른 팔작지붕 홑처마 형식에서 일본 에도시대의 건축양식을 확인할 수 있다.동국사 범종현재 대웅전 내부는 전시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나무에 흙을 입혀 만든 소조석가여래삼존상은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가섭존자와 아난존자가 좌우에 모셔져 있어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범종에는 금강사의 창간 내력과 함께 일왕을 찬양하는 시구가 적혀 있어 아픈 역사의 단면을 볼 수 있다.2015년 참사비 앞에 고광국 작가가 제작한 일본군 위안부기림 청동 평화상이 세워졌다. 평화의 소녀상이 사찰 경내에 조성되기는 처음이다. 소녀상 건립에는 자국의 잘못을 참회하는 일본인들이 성금을 보태 의미를 더하기도 했다. 소녀상 주변으로 77개의 검정 타일로 대한해협을 상징하는 사각 연못을 만들어 소녀상의 얼굴이 비치도록 설계했다. 태양의 각도에 따라 연못에 비친 소녀상이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이 특징이다.2015년 참사비 앞에 고광국 작가가 제작한 일본군 위안부기림 청동 평화상◇여행메모일홍옥 콩나물국밥△잠잘곳= 신흥동 히로쓰 가옥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고우당이 있다. 고우당은 군산 근대 역사를 체험하는 숙박시설로 운영하는 곳이다. 총 5동 21실의 일본식 다다미방이 있는데 냉·난방 등 현대식 편리함까지 함께 갖춰져 있다. 항도호텔(445-4151)은 군산 최초의 호텔을 리모델링한 곳이다. 옛 모습을 잃은 건 아쉽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이 묵어 가는 등 역사적 공간인 것만은 분명하다.△먹을곳= 월명동의 군산복국의 ‘복국’으로 유명하다. 복 생산지가 인근이고, 부식으로 쓸 수 있는 해산물 등 식재료들이 풍부하다. 일흥옥의 콩나물국밥도 겨울철 별미다. 여기에 주머니 가벼운 이들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가격이다.△여행팁= 3000원짜리 통합 입장권을 구입하면 근대역사박물관과 근대미술관, 근대건축관, 진포해양공원 위봉함을 모두 둘러볼 수 있다.군산복집1
2017.12.01 I 강경록 기자
46회 : 테헤란로 이야기-최태민
  • [손상봉의 중국 비즈니스 도전기]46회 : 테헤란로 이야기-최태민
  • 고향은 인생이라는 마라톤이 시작되는 곳이다. 그곳엔 부모 형제, 친인척, 선후배, 친구들과 이름은 몰라도 얼굴이 익은 동네 사람들이 있다. 산과 강이 있고 들판과 계곡, 파도가 넘치는 바다가 있다. 어릴 때 그렇게 높고 넓던 산과 강이 나중에 보면 낮고 좁게 보인다. 어린 눈에 남아 있는 고향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생각만 해도 웬지 푸근하고 정이 가는 곳이다. 그런 추억이 깃든 고향을 속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테헤란로에서 한 건 하려는 사람들에겐 다반사다. 학력을 숨기는 것보다 더 심할 수밖에 없다. 특히 영남과 호남 사람들과 사이에 숨기는 일이 많이 벌어진다. 왜, 언제부터 그렇게 됐는지는 따질 일이 아니다. 서울이 고향이라고 하면서 왜 사투리를 쓰느냐고 하면 서울이 고향인 아버님이 직장 관계로 호남에 가시게 돼 그곳서 출생, 초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사투리를 쓰게 됐다고 둘러댄다. 다른 지역 사람들도 한건 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은 엇비슷한 방법으로 숨긴다.고향을 왜 숨길까? 한국 성인 남자의 경우 한 다리 건너고 두세 번 질문해 보면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고향, 학교, 군대까지 등장하면 어디선가 걸린다. 상대가 누군지 금방 알게 된다. 그러니 학교와 고향, 군대, 성과 이름, 막판엔 종교까지 숨길 수밖에 없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상대가 자신을 모르게 해야 한다. 고향이 00이라고 하면 사거리 서울약국을 아느냐고 묻게 된다. 00중학교를 졸업했냐고 묻으면 바로 몇 회 졸업생이냐 그 유명한 ‘꽁치’를 아느냐고 묻는다. 다음으로 결혼 문제를 속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큰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소문조차 날 수 없는 것이 결혼 여부. 사업 하느라 결혼할 생각도 못했다, 결혼은 했지만 사별했다, 성격 차이가 심해 이혼했다, 하여튼 혼자라고 속인다. 결혼 사실을 숨기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테헤란로 주변에서 사기꾼이 노리는 물주 가운데 여성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돈 좀 있고 가방 끈이 짧고 허황된 여성의 경우 미국 유학파라고 하며 가끔 유창한 영어(?) 솜씨를 뽐내기만 하면 넘어가기 십상이다. 큰 물주라고 하는 여자들 가운데 미국 유학파에 아버지가 이름만 대면 알만한 남자, 성격 차이로 이혼해 홀몸인 사람, 카페에 가면 명작 영화 주제가 팝송을 멋지게 부르는 남자에게 홀릴 수밖에 없는 부류들이 많다. 흔하지는 않지만 아버지 직업을 속이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이 장군의 아들이니 지난 독재정권 시절 나는 새도 떨어 뜨리는 000와 육사 동기니 하면서 군대를 많이 판다. 여성 타자들의 경우 독재정권 시절 실력자와 밝힐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여서 비밀리에 숨겨 논 자금이 많은 여자라고 알려진 사람도 있다. 그러니 이런 저런 이유로 파리 떼가 모이고 파리 떼가 모이게 되면 판이 커지면 피해도 커질 수 밖에 없다. 기획부동산, 부실채권, 국채물납주식, 수출채권 담보 대출, 보물선 인양, 국보급 골동품 발굴, 별의별 다단계 사기행각 등등이 줄을 잇는다. 때가 때이니 이 대목에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국정농단 사건의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 너무나 희한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고 의혹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니 인터넷이 올라 있는 글만 잠깐 보자. 위키백과엔 최태민(崔太敏, 1912년~1994년)은 일제 시대엔 순사, 해방 후에는 경찰, 승려, 영세교 창시자, 구국선교단 총재, 샤먼, 영매사, 주술사 등 다양한 이력을 가졌던 인물이라고 기술돼 있다. 특히 최도원, 최상훈, 최퇴운, 공해남 등으로 개명했다가 1977년 3월부터 최태민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고 돼 있다. 모두 7개. 결과를 놓고 보면 그 목적은 우선 돈이다. 수천억대부자라는 소문이 있을 정도다. 그는 5번째 부인에게서 난 딸들에게 각각 수백억원대의 강남 소재 부동산을 유산으로 물려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처녀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내연관계에서 난 딸이 있다는 소문도 끊이지 않는다. 돈과 여자, 아니 이 경우 여자와 돈 순서인지 모른다. 하여튼 문제 아버지의 딸이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가 이룩한 나라의 대통령이 된 딸을 탄핵 받게 한 후 구치소에 보내고 말았다. 박근혜, 최순실 이름만 들어도 울화가 치밀지만 그 주변에서 이 나라를 떡 주무르듯 주무르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 촛불과 태극기가 혹한을 녹일 때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께 인사를 드리고 난 후 광화문 언저리에서 두꺼비 병을 비우게 했다.<다음회에 계속>중국전문가·언론인
2017.11.21 I 김일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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