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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이 내친 불운한 '지상의 낙원', 이제라도 찾아주려고"
- 조영 실비아올드&포킴재단 이사장이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학고재갤러리 ‘지상의 낙원을 그리다: 뉴욕의 한인화가 포 킴’ 전에 건 포 킴의 회화 ‘물 밑의 빨강’(2009·182.9×152.4㎝) 옆에 섰다. 92세에 작업한 이 작품을 두고 조 이사장은 “죽는 날까지 못 이룰지도 모르겠다면서도 낙원을 표현하려 한 순수한 작품세계, 그 한 길을 올곧이 걸었던 작가”였다고 포 킴을 회고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6월 첫 주말 오후. 미술관과 화랑이 밀집한 서울 종로구 삼청동은 말 그대로 북새통이었다. 차도는 물밀듯 밀려든 자동차가, 인도는 끝없이 몰려든 인파가 달구고 있었다. 이들의 방향은 대체로 세 갈래로 나뉠 텐데, 얼추 개방 한 달쯤 돼 가는 청와대를 향해 밀려가는 무리, 내친김에 경복궁에서 ‘궁바람’까지 즐기려는 무리, 6일 폐막하는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마지막 관람에 올라타려는 무리. 덕분에 바빠진 건 인근 갤러리들이다. 갑작스러운 ‘관람객 특수’를 맞은 거다. 모처럼 집밖에 나선 이들이 달랑 ‘원웨이 나들이’에 그칠 리 만무하니 말이다. 이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상의 낙원을 그리다: 뉴욕의 한인화가 포 킴’ 전을 열고 있는 학고재갤러리. 2시간쯤 머문 갤러리 안은 관람객이 끊임없이 들고 났다. 대략 20∼30명은 계속 ‘관람 중’인 상황이랄까. 그 틈에 그들을 지켜보며 감회에 젖는 한 사람이 있었다. “5년 만에 한국에 다시 찾은 걸 알고들 있었던 건지. 마침 모든 게 개방돼 김포 선생을 알리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가 됐다.” 학고재갤러리 ‘지상의 낙원을 그리다: 뉴욕의 한인화가 포 킴’ 전에서 작품을 감상 중인 관람객들. 6월 첫 주말, 전시장은 가족을 동반한 관람객으로 내내 북적였다. 왼쪽으로 포 킴의 ‘날아가는 새와 물고기’(2006·182.9×152.4㎝), 정면으로는 ‘소녀와 별’(2009·91×122㎝)이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조영(64) 실비아올드&포킴재단 이사장. 그이는 ‘지상의 낙원을 그리다’ 전을 성사시킨 인물이다. 한 점만 빼고 전시한 회화작품 전부를 미국 뉴욕에서 공수해 왔다. 그래도 그렇지, 당장 그림 사겠다고 나서는 것도 아닌데, 그저 그림 앞에 머물다 돌아설 뿐인데, 그런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 흐뭇한 미소를 거두지 못한다. 이쯤 되면 세상의 모든 작가재단을 운영하는 수많은 관리자 중 한 사람이려니, 속 편히 넘겨짚을 수도 없는 것 아닌가. “타계하기 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1995), 국립현대미술관(2007), 경남도립미술관(2013), 또 타계 후엔 환기미술관(2017)에서 김포 선생 전시를 몇 차례 열었는데, 아무래도 뮤지엄 전시로는 한계가 있더라. 때마침 학고재갤러리에서 연락이 와 바로 응했다.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리는 데는 화랑을 통하는 게 긴요하겠더라 싶었다.” 그렇게 ‘뉴욕의 한인화가’는 한국 서울의 상업화랑에서 데뷔전을 열었다. 정작 작가는 생전에 하지도 못한, 꿈도 꾸지 않은 그 일들을, “서로 신뢰하고 존경했다”는 인생의 ‘친구’가 하나씩 풀어내는 중인 거다. 학고재갤러리 ‘지상의 낙원을 그리다: 뉴욕의 한인화가 포 킴’ 전 전경. 포 킴은 결국 자신을 내친 격인 한국은 두려워했지만, 핏속에 녹였을 아련한 그리움은 어쩔 수 없이 화면에 옮겨놨다. 한국에서 월드컵이 열린 해에 그렸다는 ‘호랑이 1’(2002·116.8×96.5㎝·왼쪽) 옆으로, ‘소녀와 꽃 3’(2000·45.7×60.9㎝), ‘탑’(2000·182.9×152.4㎝)이 나란히 걸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김환기·김창열 선생 넥타이공장에 취직시켜줘” 화가 포 킴(1917∼2014). 한국이름은 ‘김보현’이며, 조 이사장은 ‘김포 선생’으로, 그간 간간이 소개될 땐 ‘포 김’으로 불리기도 했다. 경남 창녕에서 나 일본 유학 후 국내서 활동하며 1946년 조선대 회화과를 만들고 교수에 학장까지 지냈더랬다. 그런 그이를 ‘뉴욕의 한인화가’라고 부른다. ‘작심’하고 고국을 떠나 60여년을 뉴욕에서 지내고 결국 그곳에서 생을 마쳤던 거다. 해방 후 좌우대립이 극렬할 당시, 여수·순천사건(1948)이 터지자 좌익으로 몰렸다. 정부군에게 전기고문까지 당하며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런데 한국전쟁 이후에는 친미반동이 됐다. 미군 대령의 딸에게 그림을 가르쳤단 이유다. 이번엔 인민군에게서 호된 고초를 겪었다. “그러니 조국이든 모국이든 다 팽개치고 떠나고 싶었을 것”이라며 조 이사장은 포 킴의 불운한 시절을 대신 회상했다. “1955년 일리노이대에 교환교수로 떠난 뒤 아예 눌러앉았다. 처음에는 불법이민자 신분이었던 거다.” 포 킴의 ‘따스한 섬’(1998·213.4×182.9㎝). 붉은 말을 배경으로 선 두 사람. 그 주위에 푸른 나무를 세우고 새 한 마리도 박아넣었다. 마침내 세상을 옭아맸던 모든 구속에서 해방을 맞은 어느 날의 풍경이라고 할까(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넥타이공장에서 돈벌이를 하며 그림을 그렸단다. “1960년대 뉴욕으로 온 김환기·김창열 선생을 넥타이공장에 취직을 시켜준 것도 김포 선생”이라는 조 이사장의 ‘증언’이 있을 만큼 ‘배곯던 화가’들은 서로에게 각별했나 보다. 배는 곯지 않았을 해외작가와도 친밀했단다. 일본 출신 미술가 쿠사마 야요이, 팝아티스트 로버트 인디애나, 추상미술가 아그네스 마틴 등. 두 살 많은 미국화가 실비아 올드(1915∼2012)를 만나 1968년 결혼에 이른 것도 그 시기였다. 이후 포 킴과 실비아 올드는 44년을 예술적 동반자로 지냈다. 포 킴을 두고 조 이사장은 전업작가로 가장 먼저 미국에 정착하고 장장 60년간 활동한 “한국미술사에 전무후무한 인물”로 꼽는다. “포 킴에 대한 서양의 평가가 높았다. 미국풍을 수용하면서도 동양의 흔적을 남긴, 한 단계 높은 작품세계라고. 1950년대부터 미국 메이저 뮤지엄의 컬렉션이 시작될 정도였으니까.” 포 킴의 ‘발리의 기억’(152.4×182.9㎝). 1970년대 말부터 중남미, 인도와 네팔, 동남아 등지로 여행을 자주 다녔다는 작가가 어디선가 눈에 담았을 어느 이국적 풍경을 옮겨놨다. 전시작 중 가장 가볍고 경쾌한 작품으로 꼽힐 만하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포 킴의 그 작품세계는 추상표현주의부터 구상회화, 초현실주의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1960년대 말까지 빠져 있던 추상표현주의에서 벗어난 뒤 10여년은 구상회화에 몰두했다. 이후엔 사람과 동물, 식물이 하나가 된, 구상·추상이 뒤엉킨 독특한 화풍을 꾸려내는데, 이번 전시작 대부분이 그 시기의 것들이다. 가로 6m에 육박하는 ‘파랑새’(1988)를 앞세워, ‘따스한 섬’(1998), ‘탑’(2000), ‘호랑이 1’(2002), ‘발리의 기억’(2003), ‘날아가는 새와 물고기’(2006), ‘물 밑의 빨강’(2009), ‘소녀와 별’(2009), ‘창작 1·4’(2010) 등을 걸었다. 22점이 뉴욕에서 날아왔고, 유일하게 ‘파랑새’만 조선대에서 옮겨왔다. “‘파랑새’는 생전 김포 선생이 조선대에 기증한 340점 중 하나”라고 조 이사장은 귀띔했다. 실비아 올드 작품 90여점도 함께였다. 2011년 조선대에 개관한 김보현&실비아올드미술관은 그 기증을 기념해 지어졌다. 학고재갤러리 ‘지상의 낙원을 그리다: 뉴욕의 한인화가 포 킴’ 전에서 작품을 감상 중인 관람객들. 6월 첫 주말, 전시장은 관람객으로 내내 북적였다. 왼쪽부터 포 킴의 ‘빨간 사각형’(2007·182.9×152.4㎝), ‘날아가는 생각’(2006·182.9×152.4㎝), ‘무제’(1999·182.9×152.4㎝), ‘날아가는 새와 물고기’(2006·182.9×152.4㎝)가 나란히 걸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학고재갤러리 ‘지상의 낙원을 그리다: 뉴욕의 한인화가 포 킴’ 전에서 한 관람객이 작품을 눈에, 또 스마트폰에 담느라 여념이 없다. 정면으로 포 킴의 ‘소녀와 별’(2009·91×122㎝)이, 오른쪽 바깥부터 ‘일곱 개의 머리’(1992·182.9×152.4㎝), ‘파란 커튼’(1992·101.6×121.9㎝)이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상업화랑 첫 전시지만 포 킴 알리는 게 최우선”어쨌든 상업화랑 전시란 게 작품을 팔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게 아닌가. “그렇다. 하지만 판매목적은 2순위다. 무엇보다 한국에 포 킴이란 작가를 알리는 게 최우선이다. 그 첫발을 이제 뗀 것으로 생각한다.” 조 이사장이 포 킴을 만난 건 1990년대 중반이라고 했다. “당시 뉴욕 총영사 부부가 김포 선생을 소개시켜줬고 이후 선생이 타계할 때까지 20여년을 지켜봤다. 세상을 뜨기 전날까지 고민했던 선생의 예술세계를 존경했고 서로간에 신뢰가 있었다. 오죽했으면 아내가 ‘부모, 장인·장모에게보다 잘한다’고 할 정도였겠나.” 그렇다고 조 이사장이 문화예술분야 전문은 아니다. 1981년 유학길에 올라 취직이 되면서 미국에 정착한 뒤 PWC컨설팅에서 파트너로 일하다가 은퇴했다. “문화예술을 좋아하고 그것이 사회를 아름답게 만든다고 믿는다”는 그이는 문화예술 관련 비영리재단을 운영하다가 2014년 실비아올드&포킴재단에서 이사장 직을 제안받고 수락한 뒤 지금껏 일하고 있다고 했다. 조영 실비아올드&포킴재단 이사장이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학고재갤러리 ‘지상의 낙원을 그리다: 뉴욕의 한인화가 포 킴’ 전에 건 포 킴의 회화 ‘파랑새’(1988·213.5×548.6㎝) 옆에 섰다. 전시작 23점 중 이 작품만 조선대에서 옮겨왔다. 나머지 22점은 조 이사장이 뉴욕에서 공수했다. 포 킴은 생전에 자신이 10년을 근무했던 조선대에 작품 340점을 기증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그간 한국 대중에겐 잊힌, 아니 인식될 기회조차 없던 포 킴이란 이름을 앞으론 종종 들을 듯하다. 당장 7월에 조선대에서 포 킴의 생전 모습을 기록한 사진과 생의 마지막 작품을 곁들인 전시를 연다. 현재 진행 중인 실비아 올드의 작품을 조명한 ‘새로운 만남’ 전(24일까지)이 끝난 직후다. 그전 학고재갤러리 전시는 12일까지 이어진다.
- 대통령실, 26일 청와내 내부 개방…누적 관람신청 543만명
- [이데일리 송주오 기자] 대통령실은 26일부터 청와대 본관 실내를 개방하고, 관저 건물 내부도 공개하겠다고 24일 밝혔다.대통령실이 청와대 본관을 개방하기로 했다. 관저 접견실 모습.(사진=대통령실)청와대 본관은 1991년 9월 준공된 이래 대통령의 공간을 상징하던 역사적 장소이다. 대통령 공식 집무와 접견을 위해 주로 사용했던 공간으로 참모 등이 근무하는 여민관과 분리되어 있다. 대통령실은 지난 10일 청와대 개방 기간 동안 많은 관람객들이 본관 내부를 관람하고자 희망하였기에, 국민의 뜻을 모아 이번 실내 개방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공개되는 청와대 본관 구역은 본관 1층의 영부인 집무실과 접견실이 있는 무궁화실, 다과 행사 시 사용되었던 인왕실, 2층의 대통령 집무실과 외빈 접견실, 동측 별채인 충무실 등이다.또한, 대통령과 가족이 쓰는 사적 거주공간이었던 관저는 10일 이후 관저 뜰이 개방되어 인수문 안쪽까지 관람객 방문이 가능해졌는데, 26일부터는 관저 뜰에서 내부까지 볼 수 있도록 관저 창문이 전면 개방될 예정이다.대통령실은 이번 본관과 관저의 내부 공개를 통해 대통령이 일하던 곳과 살던 집에 대한 전 국민적 궁금증을 일제히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도 상시 시설 점검과 최적의 동선 마련 등 관람 편의 개선을 위해 지난 23일부터 개방 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관계 부처인 문화재청과 긴밀히 협의할 방침이다..한편, 24일 0시 기준 청와대 관람 누적 신청 수가 543만 명을 돌파한 가운데, 지난 23일부터 내부 관람이 가능해진 영빈관과 춘추관의 경우 많은 관람객들이 연이어 방문하고 있으며, 23일 하루에만 영빈관은 7561명과 춘추관은 6871명이 방문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 "정말 행복하다"…윤 대통령 부부, 靑 방문한 그날엔
- [이데일리 권혜미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취임 후 처음으로 청와대를 방문한 가운데, 당일 현장 모습이 담긴 사진이 대통령실을 통해 공개됐다.지난 22일 윤 대통령 내외는 청와대 본관 앞 대정원에서 열린 ‘청와대 개방 기념 열린음악회’에 참석차 방문한 뒤 관람객 자격으로 청와대 본관을 찾았다.(사진=KTV 방송화면 캡처)청와대에서 열린음악회가 개최된 것은 1995년 이후 27년 만에 두 번째로, 가수 인순이와 거미, 이무진, 걸그룹 브레이브 걸스와 뮤지컬 배우이자 부부인 김소현·손준호, 국악인 김율희, 송소희 등이 참석했다.정보 홍보를 위해 개설된 유튜브 채널 KTV엔 이날의 비하인드 영상이 공개됐는데, 관람객 한가운데에 앉은 윤 대통령과 김 여사는 박수를 치며 함께 공연을 즐겼다.(사진=KTV 방송화면 캡처)또 사진 찍기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요청에 응하기도 했으며, 나란히 귓속말을 하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이어 진행자가 인사를 부탁하며 마이크를 건네자 윤 대통령은 “이렇게 5월의 멋진 날 밤에 여러분과 함께 아름다운 음악을 같이 듣게 돼서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며 “저도 열린 음악회 팬이다. 과거엔 KBS 스튜디오에 아내와 열린음악회를 보러 가기도 했다”고 말했다.열린음악회에 초청가수로 참석한 가수 인순이씨와 청와대 본관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제공)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본관에서 청와대 개방 특집 KBS 열린음악회에 출연한 합창단 어린이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제공, 뉴스1)그러면서 “청와대 공간은 아주 잘 조성된 멋진 공원이고 문화재다. 무엇보다 국민 여러분의 것”이라고 강조하며 “제가 좋아하는 열린음악회를 국민 여러분과 함께 청와대 본관 앞에서 함께 보게 된 것이 너무 기쁘고 정말 행복하다”고 전했다.공연이 끝난 뒤엔 기다리고 있던 시민들과 작별의 악수를 나눴으며, 출연 가수들과도 가벼운 인사를 나눴다.끝으로 청와대 본관 계단에서 어린이 합창단, 청소년 합창단과도 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다.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본관에서 청와대 개방 특집 KBS 열린음악회에 출연한 합창단 어린이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제공,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