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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들 휴가 연장할래요"…靑 국민청원 등장
  • "우리 아들 휴가 연장할래요"…靑 국민청원 등장
  •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데일리 김민정 기자] “저는 아들만 셋입니다. 첫째는 육군, 둘째는 해군을 제대했습니다. 현재 셋째가 공군에 근무 중인데 이번 휴가 나오면 복귀 안 시키고 전화해서 휴가 연장해볼 겁니다. 저도 육군하사로 제대했구요. 가능한 일인지 답변 좀 주세요”국방부가 지난 10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서모(27)씨의 카투사 복무 시절 휴가가 적법하다”는 취지의 설명자료를 낸 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같은 글이 올라왔다.지난 11일 ‘우리 아들 휴가 연장할래요’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이 청원은 15일 오후 3시 현재 5600여 명이 동의했다.서씨는 지난 2017년 주한 미8군 한국군지원단 미2사단지역대 소속 카투사로 복무하면서 총 23일에 걸쳐 1·2차 병가와 개인휴가를 연달아 사용했다.이 과정에서 추 장관 부부와 전 보좌관 등이 휴가 연장 문제로 군 관계자에게 수차례 문의 전화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같은 날 채널 A 뉴스에 따르면 국방부가 추 장관 아들 서씨 처럼 전화만으로 휴가 연장이 가능하다고 밝힌 이후 국방부 민원실에는 부모들의 항의 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휴가가 제한되고 있지만 “전화를 했으니 우리 아들도 휴가를 내달라”며 조롱 섞인 민원을 접수하고 있는 것이다.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이 전화 통화를 끊으면 저는 이런 (휴가 문의) 전화를 또 받을 거다. (항의성 민원) 계속 받고 있다”면서 “우리나라 대통령이든 미국 대통령이 전화하든 누가 전화를 해도 저희가 휴가를 어떻게 해 드릴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이런 가운데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이날 카카오톡으로 군 휴가 연장 신청을 할 수 있다고 말해 군 복무 경험이 있는 예비역을 중심으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추 장관 아들 서모 씨의 각종 의혹을 감싸려 군대의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이어 김 의원은 “팩트는 젊은이가 군복무 중 무릎 수술을 받았고, 경과가 좋지 않아서 치료를 위해 개인 휴가를 연장해 사용한 것”이라며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을 이 사안이 야당의 무분별한 정치 공세에 의해 엄청난 권력형 비리인 것처럼 비화됐다”고 평가했다.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와 한정애 정책위의장이 15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윤희석 국민의힘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국방부가 어설픈 해명으로 전국의 어머니들과 청년들 가슴에 불을 질렀다”고 꼬집었다. 3성 장군 출신인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도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 군단장, 군사령관들은 이제 어떡하라는 것인가”라며 “부모들이 수없이 전화로 휴가 연장을 신청하고 번복한다면 무엇으로 감당할 것인가”라고 지적했다.한편 서울동부지검 형사1부(김덕곤 부장검사)는 15일 국방부 감사관실과 민원실, 국방전산정보원 등에 수사관들을 보내 추 장관 아들 의혹과 관련된 전산자료를 확보하고 있다. 검찰은 압수 대상을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나, 추 장관 측의 아들 휴가 연장 민원과 관련한 서버 기록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0.09.15 I 김민정 기자
정경두, 추미애 아들 軍 특혜 의혹 "일부  행정조치 안돼"
  • 정경두, 추미애 아들 軍 특혜 의혹 "일부 행정조치 안돼"
  •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1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복무 시절 특혜 휴가 논란에 대해 관련 서류가 미비해 행정절차상 오류가 일부 있다고 밝혔다.정 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신원식 미래통합당 의원이 “추 장관 아들 서씨가 군의관 진단서와 지휘관 명령도 없이 19일간 병가를 갔다”고 지적하자 “추가 행정조치를 완벽히 해놔야 했는데 일부 안 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장관은 “절차에 따라 병가와 휴가가 진행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고, 간부의 면담 일지에는 기록이 돼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면서도 “지적한 대로 일부 행정처리 이런 것들을 정확하게 하지 못했다”고 했다.정 장관은 “지휘관이 구두 승인을 했더라도 휴가 명령을 내게 돼 있다”면서 “서류상에 그런 것들이 안 남겨져서 행정 절차상 오류는 있을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신 의원은 “19일간의 병가에 아무 근거가 없었고, 국방부도 전혀 자료가 없다고 확인했다”면서 국방위에 무단휴가 의혹 규명 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특히 그는 서씨의 상사였던 권모 대위가 추 장관 보좌관으로부터 휴가 연장을 요구하는 전화를 받았다고 지난 6월 서울동부지검에서 진술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이에 대해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 일병은 군에 가기 전에 무릎 수술을 했다. 그 결과 군에 안 갈 수 있는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사회적 위치 때문에 군에 간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 문제를 갖고 무슨 위원회를 새로 만든다는 건 지나친 정치적 공세로밖에 비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4성 장군 출신인 같은 당 김병주 의원도 “병사에 대한 휴가 권한은 대대장과 해당 지휘관에 있다”면서 “조사를 해서 절차가 잘못됐으면 해당 대대장이 책임지면 되는 것이지 이걸 갖고 국방위에서 조사를 한다는 것은 지나치다. 군의 권한을 국방위가 침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정 장관은 서씨에 대한 질의가 이어지자 “검찰에서 조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결과가 상세히 밝혀질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한편, 추 장관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의원 시절 자신의 보좌관이 아들의 휴가 연장을 부대에 요청했다는 보도에 대해 사실 무근이라고 부인했다.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20.09.01 I 김관용 기자
백선엽 장군 사흘째 추모행렬…김관진·정몽준·정의선 조문
  • 백선엽 장군 사흘째 추모행렬…김관진·정몽준·정의선 조문
  •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고 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빈소에 사흘째 각계각층의 조문이 이어지고 있다.백 장군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는 13일 오전부터 조문 행렬이 계속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인 박지만 EG 회장은 이날 오전 혼자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돌아갔다.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이날 오전 11시쯤 빈소를 찾아 유족을 위로했다. 1·21사태 때 남파된 무장공비 출신으로 빈소를 방문한 김신조 서울성락교회 원로목사는 “백 장군은 대한민국 자유수호의 뿌리로 존경하는 분”이라고 했다.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13일 오후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백선엽 예비역 육군 대장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박영옥 전 국방부 차관, 김진호 재향군인회 회장 등도 이날 빈소를 찾았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허창수 전경련 회장, 오세훈 전 서울시장, 이수성 전 국무총리, 원유철 미래한국당 전 대표, 안상수 전희경 전 의원 등도 조문행렬에 동참했다. 박한기 합참의장과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유엔군 사령관)은 이날 오후 2시 45분께 백 장군 빈소를 찾아 유가족을 위로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방명록에 ‘유엔군 사령관을 대표해 백선엽 장군의 가족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적었다.박 의장과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분향한 뒤 백 장군 영정을 향해 함께 경례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유족에게 “백 장군은 한미동맹의 ‘심장’이자 영혼‘이었다. 그의 복무에 깊이 감사한다”며 “훌륭한 사람이며 깊이 애도를 표한다”고 위로했다.박 의장과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접견실로 이동해 15분간 유족과 이야기를 나눈 뒤 빈소를 나왔다.조문을 마친 박 의장은 취재진에게 “장군은 풍전등화의 대한민국을 구했고, 평양 입성을 선도한 지휘관이었다”며 “장군의 뜻을 이어받아 확고한 군사대비태세를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한마디 해달라’는 취재진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은 채 빈소를 떠났다.지난 10일 100세 일기로 별세한 백 장군의 장례는 11일부터 5일간 육군장(葬)으로 치러지며, 안장식은 오는 15일 대전현충원에서 거행된다.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13일 오전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백선엽 예비역 육군 대장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이 13일 오후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백선엽 예비역 육군 대장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2020.07.13 I 김미경 기자
신현준 전 매니저 "죽음 생각해" 부당 대우·모친 시중 '갑질 폭로'
  • 신현준 전 매니저 "죽음 생각해" 부당 대우·모친 시중 '갑질 폭로'
  • 신현준. 사진=이데일리DB[이데일리 정시내 기자] 배우 신현준의 전 매니저가 13년간 부당대우 받았다고 폭로했다. 배우 신현준 전 매니저 김 모 대표는 9일 티브이데일리를 통해 “신현준과 함께 13년간 일을 했지만 계속되는 갑질에 죽음까지 생각했다”며 부당한 대우를 폭로했다. 보도에 따르면 신현준은 늘 매니저들에 불만이 많아 매니저들을 자주 교체했으며, 매니저들을 향해 ‘개XX’라고 욕설과 압박을 서슴지 않았다. 또 공과사를 넘어 신현준의 모친은 김 대표에 심부름을 시키기도 했다고. 신현준의 어머니는 매일 아들의 상황과 안부를 보고하라고 주문했다. 또 크리스마스가 되면 어머니로부터 교회에 같이 가자고 전화가 왔다고. 이는 사실상 교회에 데려다 주고, 예배가 끝나면 집까지 운전을 해달라는 의미였다. 결국 김 대표는 신현준에게 이 같은 상황을 전했지만 신현준은 “우리 엄마가 허리가 안 좋아서 그런데 그런 것도 못 해주냐”고 짜증을 냈다고 한다.김 대표는 모친의 요구 중 가장 싫었던 것은 무턱대고 은행에서 사은품을 가지고 오라고 할 때였다고 한다. 은행에서 공짜로 나눠주는 사탕을 한 봉지 채 가져오라는 황당한 심부름도 해야 했다.김 대표는 9:1의 유리한 배분마저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13년간 신현준과 함께 일하며 얻은 순수한 수익이 1억 원도 되지 않는다고. 김 대표는 “한 개인을 매도하려는 게 아니다. 매니저를 인격체로 대하지 않는 상황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며 “지금도 어딘가에서 이런 일은 벌어지고 있다”고 호소했다.한편 이와 관련 신현준 소속사 측은 “전 대표는 이미 오래 전 그만둔 인물로 그의 주장은 거짓”이라며 입장을 정리해 발표하겠다고 전했다.한편 신현준은 1990년 영화 ‘장군의 아들’로 데뷔한 뒤후 대종상 신인상을 시작으로 영화 ‘비천무’, ‘가문의 영광’, ‘맨발의 기봉이’ 등에 출연했다. 지난 2013년 12세 연하의 첼리스트와 결혼해 현재 슬하에 5세, 3세 아들을 두고 있다.
2020.07.09 I 정시내 기자
신현준, '슈돌' 출격… 31년 만에 가족 첫 공개
  • 신현준, '슈돌' 출격… 31년 만에 가족 첫 공개 [공식]
  • [이데일리 스타in 윤기백 기자] 배우 신현준이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해 두 아들과의 일상을 최초로 공개한다. 6월 중순에 첫 촬영을 완료했으며 오는 12일 방송을 앞두고 있다.(사진=KBS2)신현준은 1990년 데뷔 이후 현재까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활발한 방송 활동을 하고 있지만, 가족에 대한 노출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었기에 이번 출연에 더욱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신현준은 1990년 영화 ‘장군의 아들’로 데뷔 이후 대종상 신인상을 시작으로 영화 ‘비천무’ ‘가문의 영광’ ‘맨발의 기봉이’ 등 선 굵은 연기부터 섬세한 감성 연기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며 지난 ‘2019 KBS 연예대상’에서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그의 아내는 12세 연하의 첼리스트로, 지난 2013년 5월 결혼에 골인. 현재 5세, 3세 아들을 두고 있다. 5세 첫째 아들 민준이는 배우인 아빠의 감수성을 물려받아, 어른들 못지않은 풍부한 감정표현으로 제작진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는 후문. 그리고 3세 둘째 아들 예준이는 아빠를 쏙 빼닮은 외모에 애교 많은 성격으로 시청자들로 하여금 미소를 머금게 할 예정이다. 신현준이 출연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결혼도 늦어지고 더불어 출산과 육아도 늦어지는 한국 사회에 쉰 넘은 아빠도 할 수 있다는 선한 영향력을 선사하고 싶어서라는 후문이다.배우 신현준이 아닌 ‘아빠’ 신현준의 리얼한 육아 일상은 12일 오후 9시 15분 방송되는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 338회를 통해 첫 공개될 예정이다.
2020.07.06 I 윤기백 기자
영화 '장군의 아들' 각본 쓴 윤삼육 감독 별세…향년 83세
  • 영화 '장군의 아들' 각본 쓴 윤삼육 감독 별세…향년 83세
  • 고 윤삼육 감독[이데일리 이재길 기자] 영화 ‘장군의 아들’ 각본을 쓴 윤삼육(윤태영) 감독이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유족에 따르면 윤 감독은 지난 2일 오전 요양원에서 숨을 거뒀다. 윤 감독은 8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져 자택에서 투병생활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윤 감독은 영화 ‘그늘진 삼남매’(1963) 시나리오로 데뷔해 고영남 감독의 ‘소문난 잔치’, 유현목 감독의 ‘장마’, 이두용 감독의 ‘피막’ ‘뽕’,‘내시’, 임권택 감독의 ‘아다다’‘장군의 아들’ 등 200여편의 시나리오를 썼다. 이중 180여편은 영화화됐다.연출로는 ‘참새와 허수아비’(1983)로 데뷔해 네 편을 만들었다. ‘살어리랏다’(1993)에 출연한 이덕화는 이 작품으로 모스크바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윤 감독은 2016년 대종상영화제에서 영화발전 공로상을 받았다.윤 감독은 일제강점기 영화감독이자 배우였던 고(故) 윤봉춘의 장남이다. 여동생인 배우 윤소정은 3년 전 패혈증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유족으로는 장녀 윤선희(시나리오 작가), 차녀 윤소영(드라마 작가), 장남 윤대근(안무가), 사위 석범수(회사원)·김승용(프로그래머)이 있다.빈소는 서울 성모장례식장 14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4일 오전 6시 50분, 장지는 안성 유토피아 추모관이다.
2020.07.03 I 이재길 기자
文대통령, 현충일 추념사 “희생과 헌신에 국가는 반드시 보답”
  • [전문]文대통령, 현충일 추념사 “희생과 헌신에 국가는 반드시 보답”
  •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6일 오전 대전시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65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 추도 묵념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이데일리 김영환 김정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6일 제65회 현충일을 맞아 “모든 희생과 헌신에 국가는 반드시 보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문 대통령은 이날 대전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해 “우리 정부는 지난 3년 동안 국가유공자와 유가족들의 삶을 뒷받침하고 기억과 계승을 위한 보훈에 최선을 다해왔다”면서 이 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도 ‘생활조정 수당’과 ‘참전명예 수당’을 지속적으로 인상해 국가유공자와 유가족들의 명예로운 삶을 지원하고, 의료지원도 한층 강화하겠다”고 밝혔다.다음은 문 대통령의 제 65회 현충일 추념사 전문존경하는 국민 여러분,국가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6·25전쟁 70주년인 올해, 예순다섯 번째 현충일을 맞았습니다.독립과 호국이 나라를 세우고 지켜낸 애국의 뿌리임을 되새기는 날입니다.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은가장 빛나는 시기 자신의 모든 것을 조국에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헌신과 희생 위에 서 있습니다. 이곳에 잠들어 계신 한분 한분 모두가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들어낸 분들입니다. 애국 영령과 국가유공자들께 존경을 표하며,유가족께 깊은 위로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국민 여러분, 국립 대전현충원의 현판을 안중근 의사의 글씨체로 교체하게 되어 매우 뜻깊습니다.안중근 의사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씨는 ‘위국헌신 군인본분’이었습니다. 광복군을 거쳐 지금의 우리 군까지 이어지고 있는 군인정신의 사표입니다.올해 안중근 의사 순국 110주년을 맞아 대한의 자유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 당당히 죽음을 맞이한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뜻이 모든 애국 영령들과 함께할 것이라 믿습니다.내일은 봉오동전투 전승 100주년 기념일입니다.100년 전인 1920년 6월 7일, 홍범도·최진동 장군이 이끈 독립군 연합부대가봉오동에서 ‘독립전쟁 첫 번째 대승리’를 거뒀고,10월에는 김좌진·홍범도 장군이 주축이 된 연합부대가‘청산리대첩’이라는 독립전쟁 사상 최고의 승리를 이뤘습니다.194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창설한 광복군의 뿌리가 독립군이었고,2018년 국방부는 독립군과 광복군을 국군의 기원으로 공식 확인했습니다.해방 후 많은 독립군, 광복군이 국군이 되었습니다.독립정신을 호국정신으로 계승하여 6·25전쟁에 참전했습니다. 광복군 참모장 김홍일 장군은 ‘한강 방어선 전투’를 지휘했습니다.장병들과 함께 혼신의 힘을 다해 북한군의 남하를 막아냈고, 반격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광복군 유격대장 장철부 중령은 기병대 대장으로 활약했습니다.많은 전투에서 전공을 세운 후,1950년 8월 4일, 대대 지휘소가 점령되기 직전 포로로 잡히지 않기 위해 스스로 스물아홉의 생을 마감했고, 이곳 대전현충원에 잠들어 계십니다. 목숨을 바쳐 용맹하게 싸운 장병들뿐만 아니라,부상병을 헌신적으로 돌본 보이지 않는 영웅들도 있습니다.독립운동가 이상설 선생의 외손녀 이현원 중위는국군간호사관학교 1기생으로 1953년 3월 임관해 참전했고,간호장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시절, 헌신적으로 장병들을 돌보셨습니다.이현원 님은 오랜 시간 자신의 공훈을 알리지 않으셨습니다.2017년 9월, 러시아 동포 간담회에서 뵙고,오늘 국민의 마음을 담아 국가유공자 증서를 드리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이 자리에 함께하신 이현원 님께 따뜻한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독립군의 딸, 故오금손 대위는6·25전쟁 때 ‘백골부대’ 간호장교로 복무했고,전역 후 오지의 환자들과 가난한 독립운동가들을 돌봤습니다.이곳에 잠들어 계신 故김필달 대령 역시 1950년 11월 간호장교로 임관해 6·25전쟁과 베트남전에 참전했고, 간호병과장을 역임했습니다.‘위국헌신 군인본분’을 실천한 간호장교들이 있어가장 위태롭고 절박한 순간에도병사들은 삶의 희망을 가질 수 있었으며,이 역사는 70년이 지난 오늘, 후배들에게 이어지고 있습니다.올해, 2020년 3월 3일, 국군간호사관학교 60기 졸업생 일흔다섯 명이 임관과 동시에 코로나와 힘겨운 싸움을 펼치던 대구로 향했습니다.오늘 ‘경례문’을 낭독한 이혜민 소위는 그날 임관식에서 “6·25 참전용사인 할아버지를 본받아, 국민과 군을 위해 목숨 바칠 각오로 임무를 완수하겠다”고 말했습니다.일흔다섯 명의 신임 간호장교들은 모두 맡은 임무를 당당히 완수하며, 국민들에게 커다란 용기와 자부심을 주었습니다. 우리 군은 국민의 곁에서 헌신적으로 코로나와 맞섰습니다.20만 명이 넘는 장병들이 물자 운송지원, 방역과 소독, 공항·항만 검역 등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땀 흘렸습니다.헌혈에 가장 먼저 팔을 걷어붙인 것도 군 장병들입니다. 철통같은 안보태세 속에 방역에도 임무를 다한 우리 군을 애국선열들과 호국영령들도 자랑스러워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저 역시 국군통수권자로서 국민과 함께한 우리 장병들이 참으로 든든하고 자랑스럽습니다. 국민 여러분,故임춘수 소령은 1951년 7월 강원도 양구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마지막 순간까지 가슴 깊이 딸의 돌사진과 부치지 못한 편지를 품고 있었습니다.오늘 따님 임욱자 님이70년 만에 아버지에게 보내는 답장을 낭독해주셨습니다.임춘수 소령의 편지 한 통은가족에 대한 사랑이 조국을 지키는 힘이라는 것을 전해주고,따님의 답장은 호국 영웅이 “가족을 많이 사랑한 평범한 아버지”였음을알려주고 있습니다.이 편지들은 6·25전쟁이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오늘 우리의 삶에 닿아 있는, 살아 있는 역사임을 증명합니다.국가의 공식기록 못지않은 무게로 애국과 호국의 역사가 한 개인과 한 가족의 역사임을 증언하고 있습니다.이제 나와 내 가족, 내 이웃이 지켜낸 대한민국은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조국’, ‘우리 모두의 나라’가 되었습니다.평화는 국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이며,두 번 다시 전쟁이 없는 평화의 한반도를 만드는 것은국민이 부여한 국가의 책무입니다.정부는 평화를 지키고 만들기 위해더욱 강한 국방, 더욱 튼튼한 안보에 전력을 다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분들을 영원히 기억하고 역사에 새길 것입니다. 저는 또한 오늘 현충일을 맞아, 코로나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다 순직하신 신창섭 주무관과 피재호 사무관을 여러분과 함께 기억하고자 합니다.고인들의 안식을 기원하며,유가족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정부는 지난해 7월, ‘6·25 무공훈장 찾아주기 조사단’을 출범시켰습니다. 6·25전쟁 당시 훈장 수여가 결정됐지만, 훈장과 증서를 받지 못한 5만6천여 명의 유공자와 유가족을 찾아 무공훈장과 국가유공자 증서를 전해드리는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모두 5천여 명의 유공자를 찾았고, 생존 유공자들께 훈장을 전달해드렸습니다.당시 화랑무공훈장을 받았지만, 증서를 받지 못한 예비역 병장 김종효 님께오늘 국가유공자 증서를 수여하게 되어 매우 뜻깊습니다.참전용사 한 분이라도 더 생존해 계실 때 훈장과 증서를 전달해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영창 님은 미 극동사령부 비군인 특수부대 소속으로 참전하여 복무기록이 없었지만, 공적을 찾아내어 오늘 국가유공자 증서를 드렸습니다. 이름도, 계급도 남기지 못한 3만2천여 유격군들의 공적도 함께 발굴하고 기리겠습니다. 유해발굴 사업도 계속해나갈 것입니다.지난해 비무장지대 화살머리고지에서 찾은 6·25전쟁 전사자 故박재권, 故남궁선, 故김기봉 이등중사를 이곳 대전현충원에 모셨고,故정영진 하사의 아드님께 화랑무공훈장을 전달했습니다.신혼에 헤어져 혼자 아들을 키워온 이분애 님은오랜 기다림 끝에 아흔 나이에 故김진구 하사의 유해와 상봉했습니다.사흘전 6월 3일, 대구 앞산 충혼탑에서 귀환행사가 열렸습니다.가족들의 유전자 검사 협조가 있었기에우리는 영웅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故김진구 하사의 형님은 2006년, 반드시 유해를 찾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유전자 검사를 해주셨습니다.정부는 올해에도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예순일곱 구로 추정되는 유해를 추가 발굴했습니다.발굴한 호국용사의 신원확인에는 유가족들의 유전자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유가족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드립니다.정부도 호국용사들을 가족의 품으로 모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가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모든 희생과 헌신에국가는 반드시 보답해야 합니다.우리 정부는 지난 3년 동안국가유공자와 유가족들의 삶을 뒷받침하고, 기억과 계승을 위한 보훈에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앞으로도 ‘생활조정 수당’과 ‘참전명예 수당’을 지속적으로 인상해 국가유공자와 유가족들의 명예로운 삶을 지원하고,의료지원도 한층 강화하겠습니다.현재 국립 대전현충원에 4만9천 기 규모의 봉안당을 건립하고 있습니다.내년에는 전국 35만 기의 안장 능력을 44만 기까지 확충하고,2025년에는 54만 기 규모로 늘려예우를 다해 국가유공자를 모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지난 6월 2일 ‘군인재해보상법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했습니다. 군 장병의 헌신과 희생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한층 강화할 수 있게 되어 매우 뜻깊습니다.병사들의 일반장애 보상금을 대폭 인상하고,교전으로 인한 장애는 일반장애 보상금의 2.5배를 지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유족연금 지급률도 근무 기간에 관계없이 일원화했고,유가족 가산제도를 신설해 가족이 많은 경우 더 많은 연금을 받도록 했습니다.국가유공자와 유가족들에 대한 보훈은정부의 가장 중요한 정책과제 중 하나입니다.보훈이야말로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일 뿐 아니라국가를 위해 생명까지 바칠 수 있는 애국심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독립과 호국이 오늘 우리가 누리는 대한민국의 뿌리입니다.나라를 지켜낸 긍지가 민주주의로 부활했고,가족과 이웃을 위해 희생한 수많은 의인을 낳았습니다.독립·호국·민주 영령들은 각자 시대가 요구하는 애국을 실천했고, 새로운 시대정신과 역동적인 역사의 물결을 만들어냈습니다.우리의 애국은 오늘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더욱 강해지고 있습니다.서로 양보하고 타협하며 상생 협력의 길을 넓히고 있습니다.누군가의 아들과 딸이었으며,아버지였고 어머니였던 평범한 이웃들이우리의 오늘을 만든 애국 영령들입니다.독립·호국·민주의 역사를 일궈온우리 국민의 저력을 가슴 깊이 새기며,애국 영령들께 다시 한번 깊은 존경을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2020.06.06 I 김영환 기자
냉전이 만든 역사…적에서 동지 된 美·獨
  • 냉전이 만든 역사…적에서 동지 된 美·獨
  •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러시아가 싸웠던 동부전선은 20세기 후반 냉전이라는 상황 아래 그 실상이 심하게 뒤틀려버렸다. 독일은 가해자였고 소련·러시아는 피해자였지만,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는 이미지 역전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홀로코스트에 관한 인식이 널리 확산되고 나치친위대의 만행이 폭로되면서 근본적인 오해가 바로 잡힌 건 최근의 일이다. 여전히 독일의 렌즈를 통해 제2차 세계대전을 바라보는 잘못된 이미지가 각종 매체를 통해 재생산되고 있다.책은 이런 현실에 큰 문제의식을 느낀 미국 유타주립대학 역사학과의 독일사 전공자인 로널드 스멜서와 미국사 전공자인 에드워드 데이비스 2세가 오랜 시간 각종 사료를 모으고 연구해 집필한 것이다. 주로 2차 대전 중 독일과 소련이 벌인 전쟁을 미국인이 기억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췄다. 신문, 잡지, 뉴스, 영화 등 러시아에 벌어지던 전쟁에 관해 미국인에게 전달된 자료들을 광범위하게 살폈고, 20세기 냉전으로 인한 역사관의 변화도 짚었다.1945년 4월 미군(왼쪽)과 소련군이 독일 동부 토르가우에서 처음 만나 반갑게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사진=산처럼).◇독일군 영웅화 과정은독·소전쟁은 1941년 6월 독일의 소련 침공으로 시작해 1945년 5월 소련이 베를린을 점령하면서 막을 내렸다. 2차 대전 중 나치 독일은 미국과 소련의 공동의 적이었다. 독일이 소련을 기습침공한 지 여섯 달 후 일본이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했고, 히틀러가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미국과 소련은 동맹을 맺었다. 당시 미 언론은 독일에 맞서 싸우는 동맹국 소련을 영웅적으로 묘사했다. 전쟁터로 가는 아들을 전송하는 러시아 가족에 대한 기사와 사진을 보면서 미국 독자들은 눈물을 흘렸다.하지만 전쟁 직후 미·소 냉전이 이어지면서 극적인 전환이 일어난다. 과거 동맹국의 영웅적 면모는 기억에서 사라지고, 소련군이 베를린에 입성할 때 독일 여성들을 강간한 사실 등이 중요하게 다뤄졌다. 전쟁이 끝난 후 적국 독일은 미국이 공산주의 종주국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나라로 바뀌었다. 새로운 국제 질서에서 이제 독일은 미국의 동맹국이 된 것이다.마크 여거, 리하르트 란트베어 등의 미국인 저자들은 독일이 러시아에서 벌인 싸움을 낭만화하는 대중용 출판물에서 독일국방군 신화를 퍼뜨렸다. 무장친위대 군인들을 예우하면서 이 군인들이 동방에서 벌인 인종 노예화와 말살의 전쟁에 관해서는 침묵했다. 새로운 독일국방군의 인기와 존경은 광범위한 문화로 스며들었다. 전쟁게임, 인터넷 웹사이트, 채팅방 등 오늘날까지 미국의 여러 하위문화를 구성하는 대중 활동의 밑바탕을 만들어냈다.‘역사재연동호활동’도 독일국방군에 대한 환상을 부추겼다. 자기 영웅들의 제복을 입고 주말과 휴가를 보내면서 ‘결백한’ 독일국방군이라는 환상을 적극적으로 실행한 것이다. 그들은 히틀러가 실수를 한 것일 뿐 장군들은 결코 실수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독일군이 승리했을 것이라고 마음속에 그리는 ‘~했더라면 어땠을까 식 역사(What-if-history)’가 잘못된 신화를 부채질했다고 지적한다.◇거짓 신화 한국에도 영향독일군에 대한 거짓 신화의 실체를 밝히는 것은 우리에게도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서만 세계 역사와 한반도의 역사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냉전기에 미국의 영향력은 너무나 컸기에 미국인의 인식은 거의 예외 없이 한국인의 인식이었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거짓 신화는 그대로 한국에 전달됐고, 오히려 강화됐다. 많은 한국인의 의식 속에 소련군은 인명 피해를 무시하고 그저 병력 수로만 밀어붙여 싸운 사악한 군대로 인식돼 있다. 반대로 독일군은 현대적 전략 전술을 구사하면서 고성능 무기로 싸웠지만, 병력이 달린 탓에 안타깝게 패배한 멋진 군대로 새겨져 있는 것이다.제2차 세계대전의 과정과 결과는 한반도의 현대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제2차 세계대전의 신화 깨기, 즉 독일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20세기 한반도의 역사를 바로 보는 올바른 출발점이라고 강조한다.
2020.05.13 I 이윤정 기자
'라스' 문세윤, 봉준호 감독 "천재적" 극찬에 '영상편지'
  • '라스' 문세윤, 봉준호 감독 "천재적" 극찬에 '영상편지'
  • 문세윤, 유세윤. 사진=유세윤 인스타그램[이데일리 정시내 기자] 개그맨 문세윤이 봉준호 감독에게 영상편지를 보낸다. 22일 방송되는 MBC ‘라디오스타’는 김태균, 황제성, 최성민, 문세윤이 출연하는 ‘슬기로운 개그생활’ 특집으로 꾸며진다.그간 문세윤은 ‘이태원 클라쓰’의 박새로이, 조이서는 물론 대갈장군, 봉준호 감독 등 시의적절한 분장으로 큰 웃음을 안겼다.특히 봉준호 감독 분장은 온라인에서 큰 이슈 몰이를 하며 봉준호 감독에게 직접 극찬을 받았다. 이와 관련해 문세윤이 봉준호 감독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성대모사를 재연, 그에게 한 가지 부탁이 담긴 영상 편지를 보내 관심을 집중시킨다. 앞서 개그맨 유세윤, 뮨세윤은 봉준호와 그의 통역사 샤론 최의 특유의 행동과 표정을 디테일하게 패러디해 이목을 모았다. 이에 봉준호 감독은 “유세윤 씨는 참 천재적인 것 같다. 존경한다. 문세윤 씨도 최고의 엔터테이너인 것 같다”고 전한 바 있다. 또한 이날 함께 출연한 김태균은 통 큰 후배 사랑을 보여줘 감탄을 모은다. 후배들의 도움 덕분에 ‘두시탈출 컬투쇼’를 외롭지 않게 진행 중이라고. 이를 계기로 후배들과 많이 가까워졌다는 그는 후배들을 위해 아낌없는 FLEX를 선보여 놀라움을 더했다. 아들에 대한 사랑도 만만치 않다. ‘아들 바보’로 소문이 난 김태균은 아들 덕분에 자신의 소원을 이루고 있다며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고. 그러나 정작 다른 남편들에게는 욕을 먹는 이유를 공개해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한편 ‘슬기로운 개그생활’ 특집은 오늘(22일) 밤 11시 5분 방송되는 ‘라디오스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020.04.22 I 정시내 기자
"의리녀들 있어 '외쳐 조선'은 끝까지 갑니다"
  • "의리녀들 있어 '외쳐 조선'은 끝까지 갑니다"
  • [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 갈증을 풀어줘서가 아닐까요? 매번 비슷한 내용과 캐스팅에 싫증난 뮤지컬 관객들에게 우리 공연이 무척 독특하고 신선했던 것 같아요. 우리 애들이 어린 나이에도 곧잘 하니까 기특했던 것도 있었던 것 같고요.(하하)”송혜선 PL엔터테인먼트 대표송혜선 PL엔터테인먼트 대표는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이하 ‘외쳐 조선’)의 인기 비결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지난 6일 서울 중구 신당동 PL엔터테인먼트 사무실을 찾았다.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기자를 맞은 송 대표는 “팬들에게 줄 포토카드 작업을 하느라 밤을 샜다”면서 “외쳐 조선이 앙코르 공연을 시작한 후 부쩍 일이 많아졌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피곤했던 기색도 잠시. 그는 ‘외쳐 조선’ 얘기를 꺼내자, 빨개진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처음엔 누가 봐도 무모한 도전이었다. 낯선 서울예대 ‘학공’(학생 공연) 원작에 주역 배우들은 모두 신예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송 대표는 뮤지컬 제작이 처음이었다. 성공보단 실패의 조건이 많이 갖쳐진 상황. 하지만 ‘외쳐 조선’은 놀랄 만한 ‘반전 스토리’를 쓴다. 입소문으로 서서히 관객을 불려가더니, 초연 폐막 즈음인 지난해 8월에는 매진 사례가 심심찮게 나왔다. 흥행 차트를 역주행한 ‘외쳐 조선’은 고희경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장의 제안으로 폐막 6개월 만인 지난 2월 앙코르 공연을 시작했다. 예상못한 깜짝 성공이었다. ‘외쳐 조선’ 지킴이를 자처한 열혈 팬들이 있어 가능했던 일이다. 송 대표는 “넉넉지 않아 홍보· 마케팅을 많이 하지 못했는데도, 우리 공연을 아껴주시는 팬들이 마치 영업사원처럼 관객들을 모아 공연장을 찾는 걸 보고 감동했다”면서 “처음부터 한결같이 응원해준 팬들 덕에 앙코르 공연까지 할 수 있었다”라고 강조했다. 밤새 포토카드 작업에 참여하는 등 팬들에 각별한 애정을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송 대표는 인터뷰 틈틈이 이 열혈 팬들을 ‘의리녀’라 불렀다. 상한가를 치던 ‘외쳐 조선’은 코로나19라는 ‘대형 악재’를 만나 부침을 겪고 있다. 감염증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된 뒤로는 공연 중단 여부를 고민할 만큼 수익이 줄었다. 하지만 송 대표는 공연을 끝까지 끌고 가기로 마음 먹었다. 지난 달 25일 모든 배우들이 한 무대에 오른 ‘잔칫날’ 공연에 객석을 가득 메운 ‘의리녀’들의 함성 소리를 듣고는 ‘멈출 수 없다’고 결심했다. 송 대표는 “배우, 스태프와 회의 끝에 ‘단 한 명의 관객이 오더라도 우리는 무대에 서야 한다’라는데 의견을 모았다”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배우도, 관객도 모두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공연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대부분은 신인급인데, 공연이 취소되면 (이들이) 갈 곳이 없다”며 “세상이 망하지 않는 한 해결책은 나올 것이고, 앞으로 상황은 점점 호전되는 방향으로 가지 않겠느냐”라고 부연했다. 스타 마케팅과 라이선스 공연이 주를 이루는 뮤지컬계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공 스토리’를 써내려가고 있는 송혜선. 올해 60세를 맞은 그에게 도전하고픈 목표가 하나 더 생겼다. 바로 ‘외쳐 조선’을 뮤지컬 영화로 제작하는 것이다. 태흥영화사 등 영화계에서 20년 이상 근무하면서 ‘서편제’, ‘장군의 아들’ 등의 제작에 참여했던 그의 눈에 ‘외쳐 조선’은 영화로도 ‘될 성 부른 떡잎’이다. 송 대표는 “작품 곳곳에 영화적 상상력이 떠오르는 장면들이 무척 많아 욕심이 생긴다”면서 “언젠가는 ‘외쳐 조선’을 뮤지컬 영화로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송혜선 PL엔터테인먼트 대표
2020.03.16 I 윤종성 기자
文대통령 “전쟁의 승패·억지력 모두 공군의 ‘혁신’에 달렸다”
  • [전문]文대통령 “전쟁의 승패·억지력 모두 공군의 ‘혁신’에 달렸다”
  •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청주 공군사관학교에서 졸업 및 임관식 중 성원우 소위에게 대통령상을 수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4일 “전쟁의 승패와 억지력 모두 공군의 ‘혁신’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문 대통령은 이날 충북 청주 공군사관학교 제68기 졸업 및 임관식에 참석해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도전들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 될 것”이라면서 이 같이 밝혔다.문 대통령은 “국경을 초월한 다양한 위협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하고, ‘과학전’, ‘정보전’, ‘항공전’ 같은 미래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라며 “무인 항공기나 드론처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위협에도 당당히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다음은 문 대통령 발언 전문공군사관학교 제68기 사관생도 여러분, 졸업과 임관을 축하합니다.엄중하고 힘든 시기이지만, 여러분을 축하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 국민들은 여러분의 늠름한 모습에서 안보의 든든한 힘을 느끼실 것입니다.많은 청년들이 공군사관학교를 지망하고, 입학에서부터 치열한 경쟁과 엄격한 테스트를 거칩니다.여러분은 지난 4년간 ‘메추리 훈련’부터 가장 힘들다는 ‘중력가속도 내성강화 훈련’에까지 힘든 군사훈련과 학업을 훌륭히 마쳤고, 이제 하늘을 나는 당당한 보라매가 되었습니다.우수 졸업생 아홉 명과 여군 장교 열 명을 비롯해 알제리, 필리핀, 태국, 베트남에서 온 생도들의 남다른 성취에도 박수를 보냅니다.이제 여러분은 사관학교를 떠나 ‘하늘로, 우주로’ 힘차게 비상하게 됩니다.믿음직한 158명의 청년 장교를 키워낸 박인호 학교장과 교직원 여러분의 노고를 치하하며, 오늘 참석하지 못한 생도 가족들께도 축하 인사를 전합니다.특별히, 이 자리에는 우리 공군 창군의 주역 최용덕 장군의 손녀와 6·25 전쟁 때 공군 최초 100회 출격으로 혁혁한 공을 세우신 김두만 장군의 아들, 부자가 대를 이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고 박명렬 소령과 고 박인철 대위의 유족께서도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 헌신과 희생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오늘 여러분은 ‘몸과 마음을 조국과 하늘에 바친’ 선배들의 헌신을 이어가기 위해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격변하는 안보 환경 속에서, 국민들이 의지할 수 있는 공군, 믿음과 희망의 청년 장교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청년 장교 여러분,오늘 단상 앞 좌우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전투기 ‘F-51D 무스탕’과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 ‘KF-X’가 있고, 그 중심에 청년 장교 여러분이 있습니다.우리 공군의 눈부신 역사가 한자리에 모였습니다.100년 전 노백린 장군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최초의 ‘한인 비행사 양성소’를 설립해 독립전쟁을 준비했습니다.바로 대한민국 공군의 효시입니다.임시정부 광복군 총사령부의 최용덕 장군은 ‘공군설계위원회’를 발족시켰고, 1949년 이를 기반으로 대한민국 공군이 창설되었습니다.6·25 전쟁에서 우리 공군의 활약은 참으로 대단했습니다.단 1주일의 훈련으로 무스탕 전투기에 올랐지만, 조종사들은 총 만4000여 회를 출격하며 ‘빨간 마후라’의 신화를 썼습니다.여러분의 선배, 공사 1기 조종사들이 그 주인공입니다.그때 최초로 출격하는 공사 1기 선배에게 2기 후배들이 어깨에 매어준 태극기에 적힌 ‘임전무퇴’, ‘조국통일’, ‘신념’이라는 문구는 아직도 선명하게 우리 공군의 가슴에 새겨져 있습니다.창군 당시 경비행기 스무 대, 병력 1,600여 명에 불과했던 공군은 이제 첨단 항공기 700여 대, 6만5000여 명의 병력을 갖춘 국가안보의 핵심전력으로 성장했습니다.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통령으로서 우리 공군의 역사가 매우 자랑스럽습니다.우리 미래 공군의 주역인 여러분도 자부심을 품고 새 역사를 써나갈 것이라 확신합니다.청년 장교 여러분,하늘은 잠잠하다가도 갑자기 폭풍이 휘몰아칩니다.한 치 앞을 예상하기 힘들 만큼 변화무쌍합니다.안보 환경도 그렇습니다.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도전들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 될 것입니다.국경을 초월한 다양한 위협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하고, ‘과학전’, ‘정보전’, ‘항공전’ 같은 미래 전쟁에 대비해야 합니다.무인 항공기나 드론처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위협에도 당당히 맞서야 합니다.전쟁의 승패와 억지력 모두 공군의 ‘혁신’에 달려 있습니다.우리 공군은 ‘드론봇 전투체계’를 개발해 유무인 복합 공군 전투체계를 구축해왔습니다.‘지능형 비행훈련 시뮬레이터’를 도입하여 가상현실 기술을 적용한 조종훈련도 하고 있습니다.‘스마트 비행단’은 디지털 관제탑, 무인 경계시스템과 같은 신기술을 구축할 것입니다.우리의 첨단 ICT 기술을 공군력에 접목하면 ‘강하고 스마트한 공군’의 꿈을 실현하고, 국방과 민간분야 양면으로 큰 성장을 가져올 것입니다.청년 장교들은 앞으로 조종사, 방공무기통제사, 정비사, 행정장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임무를 수행합니다.대한민국 ‘스마트 항공우주군’의 당당한 주역으로 자부심을 갖고 소임을 다해주기 바랍니다.올해는 ‘6·25 전쟁’ 70주년이자 ‘6·15 공동선언’ 2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입니다.전쟁의 비극을 되돌아보면서 안보와 평화의 의지를 다지는 해가 될 것입니다.우리는 한반도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한반도의 하늘과 땅, 바다에서 총성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됩니다.철통같은 안보로 평화를 지키고 만들어내는데 여러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21세기 항공우주 시대는 “하늘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 합니다.이제 한반도의 평화로운 하늘이 여러분 손에 달려 있습니다.평화에는 강한 힘이 필요합니다.정부는 출범 초부터 국방예산을 꾸준히 늘려 올해 역대 최초로 국방예산 50조 원 시대를 열었습니다.방위력개선비만 16조7000여억 원에 달합니다.글로벌호크 도입과 군 정찰위성 개발사업으로 감시정찰 자산을 늘리고 있습니다.새로 도입한 공중급유기는 30분이었던 원거리 항공작전을 두 시간 이상 가능케 했습니다.이제 영공 수호를 넘어 방공 식별구역 전체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오늘 우리는 최신 F-35A 스텔스전투기가 390도 공중 선회하는 멋진 축하비행을 보았습니다.우리 공군의 위용에 마음이 든든했습니다.국민 여러분께서도 자랑스러우셨을 것입니다.‘국방개혁 2.0’, ‘스마트 공군’ 전략을 통해 우리 공군의 안보 역량을 더욱 강화할 것을 약속합니다.병영도 ‘사람이 먼저’입니다.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입은 군복이 긍지와 자부심이 되도록 병영문화와 복무여건 개선에도 힘을 쏟겠습니다.군 의료지원 체계도 획기적으로 개선해나갈 것입니다.장병들의 삶 하나하나를 더욱 세심히 살피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청년 장교 여러분,조국의 하늘은 광활합니다.대한민국의 미래는 창창하며 여러분 앞길에도 무궁무진한 기회가 열려있습니다.우리들의 꿈은 드넓은 하늘을 거침없이 누비고, 평화의 한반도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언젠가는 창공을 넘어 우주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가슴 속 끓는 피를 저 하늘에 뿌린다”라는 공군가의 구절처럼, 가슴 속 넘치는 꿈을 저 하늘에 펼치고, 미지의 세계를 향한 우리 모두의 꿈을 여러분이 앞장서 실현해 주길 바랍니다.여러분의 앞길에 명예와 영광이 가득하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2020.03.04 I 김영환 기자
동영상 한편에 무너진 '흙수저 신화'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
  • 동영상 한편에 무너진 '흙수저 신화'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
  •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최근 직원 조회에서 현 정부와 여성에 대한 비하 발언이 담긴 유튜브 영상을 틀어 물의를 일으킨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이 11일 서울 서초구 한국콜마 종합기술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허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이데일리 함지현 기자]2분 30초. 직원 4명과 시작한 회사를 29년간 일궈 1조원대 회사로 키운 윤동한(72) 한국콜마 회장이 경영권을 내려놓는데 걸린 시간이다.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질문은 따로 받지 않았다. 고개 숙여 사과하고 담담하게 발표문을 읽어 내려갔다. 회사와 고객사에 피해가 갈까 걱정됐는지 그 짧은 시간에도 “잘 봐 달라”는 당부는 잊지 않았다. 사실 스스로도 경영에서 물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고희에 접어들던 지난 2016년 직접 펴낸 책 ‘인문학이 경영 안으로 들어왔다’에서 “수년 내 경영자에서 물러나 나무를 심으며 자연과 벗 삼아 살아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회장’으로서의 마지막은 그의 바람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그를 자리에서 끌어내린 건 ‘막말·여성 비하’라는 의도치 않은 논란을 남긴 동영상 한편이었다. 윤 회장이 직원 700여명에게 보여준 동영상은 주로 일본의 무역보복에 따른 문재인 정부의 대응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아베가 문재인의 면상을 주먹으로 치지 않은 것만 해도 너무나 대단한 지도자”라는 등 ‘막말’이 포함돼 있었다. “베네수엘라의 여자들은 단돈 7달러에 몸을 팔고 있고 우리나라도 그 꼴이 날 것”이라는 극단적인 여성 비하까지 더해진 것으로 알려져 공분을 샀다.그러나 정부비난, 여성비하 어떤 것도 윤 회장 본인이 전달하려했던 ‘진심’과는 거리가 있었다. 한국콜마 고위관계자는 “미·중 무역전쟁에 이은 한·일 경제전쟁. 글로벌 시장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감정적인 대응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차원에서 예시로 문제의 동영상을 틀었던 것이지 동영상의 내용에 공감한다는 뜻은 아니었다”며 “최근 반일 감정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한 걸음 물러나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갖고 현 상황을 바라볼 필요가 있고, 작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기술력이 필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던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달을 가리키려던 손가락이 문제가 된 셈이다. 윤 회장은 지난 9일 입장문을 통해 “위기 대응을 위해 대외적 환경과 현상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특정 유튜브 영상의 일부분을 인용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사과했지만 여론은 가라앉지 않았다.고객들이 돌아선 것은 더 큰 문제를 불러왔다. 한국콜마 불매 운동이 퍼지면서 주가는 52주 신저가를 경신할 정도로 곤두박질쳤다. 관계사, 임직원들의 불안감도 커졌다. 이는 윤 회장이 한국콜마의 경영에서 손을 떼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는 11일 서울 내곡동 신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의 잘못된 행동으로 피해를 입게 된 고객사, 저희 제품을 신뢰하고 사랑해 주셨던 소비자·국민 여러분께 거듭 사죄드린다”며 “특히 여성분들께 진심을 다해 사과의 말씀 올린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태에 대해 깊이 반성하며 저 개인의 부족함으로 일어난 일이기에 모든 책임을 지고 이 시간 이후 회사 경영에서 물러나고자 한다”고 밝혔다.이번 사태가 있기 전까지 윤 회장은 자수성가한 사업가이자 흙수저 신화, K뷰티의 숨은 주역으로 평가받아왔다.수학여행을 포기할 정도로 가난했고, 지방대 출신이라는 학력 콤플렉스도 평생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다녔다. 1970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했지만 해외파견의 기회가 명문대생에게 집중되는 현실에 실력을 키워 자신만의 회사를 세워야겠다고 결심한다.1974년 대웅제약에 입사해 제약업계에 발을 들인 그는 최연소 부사장에 오를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1990년 일본콜마와 51대 49의 지분으로 한국콜마를 창업했다. 사업 초반에는 자신이 몸담았던 제약 동종업계가 아닌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화장품사업을 시작했다. 1993년에는 화장품 업계 최초로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방식도 도입해 큰 성과를 거뒀다. 추후 제약산업에도 진출해 한국콜마홀딩스 아래 화장품 ODM 및 제약 위탁생산(CMO) 업체 여러 곳을 거느린 회사로 성장시켰다. 지난해에는 CJ헬스케어를 인수하면서 연결 기준 1조3579억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승승장구했다.어린 시절 역사학자를 꿈꿨을 정도로 역사에도 조예가 깊다. 엄청난 독서광이기도 한 그는 역사적 인물로부터 현대의 경영과 관련한 영감을 얻고 실천에 옮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적으로 이순신 장군에게서는 판옥선을 개조해 거북선을 만든 연구개발(R&D) 능력을 배웠다. 이순신 장군의 자를 딴 서울여해재단을 설립해 이순신 학교를 운영하는 것도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배우고 전파하기 위해서다. 세종대왕으로부터는 인재의 단점보다 장점을 먼저 보는 리더십을, 삼우당 문익점에게서는 애민 정신을 바탕으로 한 혁신을 배웠다. 문익점 선생과 이순신의 조력자 정걸 장군에 대해서는 직접 책도 출간했다.윤 회장이 물러남에 따라 한국콜마홀딩스는 김병묵 대표이사가 진두지휘할 예정이다. 이밖에 주요 계열사들 역시 전문 경영인 체제로 운영될 것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한국콜마에 아들인 윤상현 총괄사장과 딸 윤여원 전무가 근무하고 있는 만큼 향후 경영권 변화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윤 총괄사장은 한국콜마홀딩스와 한국콜마의 지분을 각각 18.67%, 0.08%를, 윤 전무는 0.06%, 0.13% 보유하고 있다.
2019.08.12 I 함지현 기자
거장 임권택, "창의성보다 흥행만 생각하는 영화계" 지적
  • 거장 임권택, "창의성보다 흥행만 생각하는 영화계" 지적
  • [이데일리 스타in 박미애 기자]102편의 영화를 연출한 영화계 거장 임권택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창의성보다 흥행만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임 감독은 최근 SBS 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과 인터뷰를 갖고 “올해 한국 영화 산업이 100주년”이라는 소식과 함께 “영화의 질은 좋아졌지만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영화를 만들 때 ‘어떻게 하면 대박을 터트릴까’ 흥행 위주로만 생각한다”며 “창의성을 발휘하지 않고 흥행한 영화들의 아류작만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로 인해 영화의 다양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 감독은 “작고 창의적인 영화들의 탄생을 위해 대형 배급사와 제작사들도 힘을 써야 한다”고 당부했다.임 감독은 1962년 독립군을 소재로 한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영화계에 데뷔한 인물. 이후 ‘씨받이’ ‘장군의 아들’ 등 많은 히트작을 발표하며 한국 최고의 영화감독으로 이름을 알렸다. 2002년에는 조선후기 화가 장승업의 생애를 담은 ‘취화선’으로 한국인 최초 칸 영화제에서 수상한 바 있다. 최근에는 부산 동서대 센텀캠퍼스에 ‘임권택 영화박물관’이 개관되며 한국적이고 민족적인 자신만의 색채로 한국 영화의 위상을 드높인 임 감독의 업적이 재조명 받기도 했다. 임 감독은 또한 “지금까지 100여 편의 작품을 연출했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고 밝혔다. “인정 받은 작품들도 다시 보면 결함이 보인다”며 “스스로 만족할 만한 영화는 아직”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심지어 데뷔 후 10년 간 찍었던 초기작들은 쓰레기”라며 “그래도 오랜 시간 좋아하는 영화 속에 빠져 살아온 것이 행복했다”며 지난 60여 년을 회고했다.임 감독의 인터뷰 내용은 25일 오후 11시 방송된다.
2019.07.24 I 박미애 기자
 차창 밖 빛나는 ‘섬의 군락’, 군산 고군산군도
  • [여름을 달리다②] 차창 밖 빛나는 ‘섬의 군락’, 군산 고군산군도
  • 대장봉에서 본 고군산군도와 다리들 전경[이데일리 강경록 기자]군산 고군산군도 가는 풍속도가 백팔십도 바뀌었다. 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배 타고 유람하는 일은 이제 추억이 됐다. 최근에는 자동차로 섬 깊숙이 들어선다. 선유도와 장자도 등 주요 섬은 시내버스도 오간다. 고군산대교가 연결되고 도로가 새로 뚫리면서 생겨난 진풍경이다.고군산군도는 10개 유인도와 47개 무인도로 이뤄진 섬의 군락이다. ‘신선이 노닐던 섬’인 선유도를 대표로 장자도, 대장도, 무녀도 등 수려한 해변과 어촌 풍경을 간직한 섬이 이어진다. 전에는 고군산군도에 배 타고 들어가 즐기려면 넉넉히 1박 2일은 잡아야 했다. 요즘은 반나절이면 섬을 구경하고 나온다. 군산 시간여행마을의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전하는 여행 팁은 명료하다, “요즘은 군산 여행 오면 대부분 선유도(고군산군도)에 들릅니다. 오전 일찍 출발해야 길이 안 막혀요.” 육지와 섬이 연결되면서 고군산군도 나들이가 군산 여행의 필수 코스로 슬며시 정착했다.버스오가는 고군산대교◇드라이브코스로 주목받는 ‘고군산군도’고군산군도로 향하는 길은 드라이브 코스로 손색이 없다. 새만금방조제를 잇는 도로 양쪽에 바다와 간척지가 펼쳐지고, 크고 작은 섬이 자맥질하며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고군산대교 완공으로 신시도와 무녀도가 연결되면서 고군산군도는 비로소 뭍과 한 몸이 됐다. 예전에는 자전거를 타고 선유도와 장자도, 무녀도를 연결하는 소박한 다리를 오가는 운치가 있었다. 요즘은 자동차 도로로 이어져, 새만금방조제와 맞닿은 신시도에서 끝자락 장자도까지 내달리는 데 10여 분이면 족하다.군산 섬 여행의 패러다임을 바꾼 고군산대교는 현수교다. 주탑이 한 개인 현수교는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공법이다. 길이 400m 고군산대교를 건너면 본격적인 고군산군도 여행이 시작된다. 주말이나 성수기에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주차 문제가 해결돼 편리하다. 버스나 승용차로 비응항까지 이동한 뒤 99번 버스로 갈아타면, 시야가 확 트인 2층 버스가 무녀도와 선유도를 경유해 장자도까지 내달린다.대장봉 전망대지나온 길과 다리, 섬의 윤곽이 궁금하면 차량의 서쪽 종착지인 장자도에서 여행의 첫걸음을 내딛는다. 장자도와 이어진 대장도 대장봉(142m)에 올라야 고군산군도의 참 멋이 느껴진다. 큰길, 작은 다리, 지도에서 보던 섬과 해변, 고기잡이 나서는 배, 유람선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장자도 앞바다는 예전에 조기잡이 배들이 밝힌 불빛이 장관을 이룬 ‘장자어화’의 명소다. 대장봉에 오르는 길은 나무 데크가 조성됐다. 예전 구불길은 풀숲을 헤치고 바위도 올라서야 했는데, 나무 데크 길이 가족 단위 여행객을 어렵지 않게 정상으로 안내한다. 오르는 길 초입에 장자할매바위가 외롭게 서 있다.남악리 몽돌해변과 자전거◇느리게 보아야 눈에 보이는 것들대장봉 아래 펜션과 카페도 제법 늘었다. 대장도, 장자도에서 선유도까지 보행교를 건너 느린 템포로 이동한다. 교통이 편리해졌지만 고군산군도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둘러봐야 진면목이 드러난다. 선유도에 접어들면 명사십리해변에 새로 솟은 전망대와 선유스카이SUN라인이 시선을 끈다. 짚라인을 타면 명사십리해변을 가로질러 솔섬까지 700m를 새처럼 날 수 있다. 해변 위에 한 줄 선이 그어졌지만, 명사십리해수욕장에서 바라보는 ‘선유낙조’는 고군산군도의 으뜸 풍경으로 꼽힌다. 예전에는 이 일몰에 취하기 위해 해변에서 하룻밤 머물다 가곤 했다.명사십리해변 입구에 군산시에서 운영하는 자전거대여소가 있다. 자전거를 타고 선유3구 골목을 누비며 기도등대, 남악리 몽돌해변에 들른다. 사람이 많은 명사십리해변과 다른 섬마을 정취가 구석구석에 깃들었다. 남악리 대봉전망대에서 보는 고군산군도의 윤곽은 또 다르다.선유1구 옥돌해변선유1구 옥돌해변의 해변데크산책로는 추천 명소가 됐다. 길이 뚫리면서 한적한 맛은 사라졌지만, 새로 조성된 해변데크산책로가 호젓함을 더한다. 이곳에서 건너편 무녀도 앞 무인도가 손에 닿을 듯하다. 장구도, 주삼섬, 앞삼섬과 고깃배가 오가는 풍취는 선유8경 중 ‘삼도귀범’에 속한다.고군산군도는 예부터 사연 가득한 섬이다. 《택리지》에는 “고기잡이 철이면 장삿배들이 섬 앞바다에 구름처럼 몰려들었으며, 섬 주민의 씀씀이가 육지 백성보다 더했다”고 나온다. 어청도와 인근에서는 고래도 잡혔다. 섬 안에 처마가 빼곡히 이어져 비를 맞지 않고 마을을 오갔다는 추억담도 있다. 군사적 요충지인 섬은 고려 때 수군 진영이 들어섰으며, 조선 시대에 군산진이 수군 진영과 함께 지금의 군산으로 옮겨 가면서 옛 군산이라는 뜻에서 고군산으로 불렸다고 전해진다.무녀도 쥐똥섬과 버스카페◇간조때 길이 열리며 드러나는 섬 ‘쥐똥섬’고군산군도에서 나가는 길에 들러볼 만한 곳이 쥐똥섬이다. 무녀도 끝자락에 있는 쥐똥섬은 간조 때 길이 열리며 갯벌이 드러난다. 고군산대교 옆에 자리 잡아 다리 개통과 함께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섬 앞에는 섬 주민이 스쿨버스를 개조한 노란색 버스 카페가 운치를 더한다.군산 시내에 들어서면 시간 여행을 부추기는 볼거리가 풍성하다. 신흥동 일본식 가옥(등록문화재 183호)은 일제강점기 군산에 살던 일본인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곳으로, 영화 〈장군의 아들〉 〈타짜〉 등을 여기서 촬영했다.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촬영한 초원사진관도 걸어서 둘러볼 만하다. 최근 이 일대에 일본풍 가옥을 새롭게 짓는 붐이 일었다. 100년 세월을 넘어선 근대 건축물인 호남관세박물관 뒤쪽에는 옛 창고를 리모델링한 인문학 카페가 문을 열었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은 야간 입장이 무료다. 경암동철길마을은 세대를 뛰어넘는 추억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일제강점기에 신문 용지 재료를 나르기 위해 철도가 개설됐고, 그 주변에 1970년대 본격적으로 마을이 형성됐다. 폐철도 주변 빈집에 상가가 들어서며 다시 온기가 돌았고, 최근에는 주말이면 북적거리는 명소가 됐다. 중년의 방문객은 친구들과 옛 교복을 빌려 입고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고, 아이들은 옛 군것질거리인 뽑기 등을 직접 만들어보며 신나는 체험을 즐긴다.호남관세박물관◇여행메모△여행코스= 고군산대교→대장봉→명사십리해변→옥돌해변→무녀도 쥐똥섬→숙박→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동국사→호남관세박물관, 군산근대역사박물관→경암동철길마을△가는길= 서울 출발 : 경부고속도로→논산천안고속도로→서천공주고속도로→서해안고속도로→군산 IC→군산·북새만금 방면→고군산대교△잠잘곳= 군산에는 숙박시설이 다른 중소도시에 비해 많이 있는 편이다. 여행 기분을 제대로 내려면 게스트하우스를 추천한다. 구영3길에는 ‘나비잠’이, 구영2길에는 ‘여정’이 있다. 가족 단위 여행객이나 연인끼리 여행한다면 새만금북로의 베스트웨스턴군산호텔이 좋다. △먹거리= 군산에는 의외로 맛집이 많다. 구영 6길의 군산맛촌은 생선구이, 구영5길의 영화원은 짬뽕이 유명하다. 내항2길로 들어서면 군산수산물종합센터가 있어 생선회도 즐길 수 있다. 장자도 1길의 어촌계횟집은 회정식이 유명하다. △주변 볼거리= 은파호수공원, 해망굴, 부잔교, 군산항쟁관경암동 철길마을
2019.06.08 I 강경록 기자
文대통령 "신한반도체제,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 운명의 주인되는 일"
  • [전문]文대통령 "신한반도체제,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 운명의 주인되는 일"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7월 독일 쾨르버재단 초청 연설에서 ‘신베를린 구상’을 밝히고 있다. (사진=청와대)[이데일리 원다연 기자]문재인 대통령은 7일 “촛불혁명의 영웅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집단적 힘이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독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 출판부가 출판 예정인 기고문집에 “평범함의 위대함-새로운 세계질서를 생각하며”라는 제목의 기고를 통해 이같이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기고는 FAZ 출판부측에서 올해 ‘새로운 세계질서’(가제)의 출간 계획을 알려오며 문 대통령의 기고문 수록을 요청하며 이뤄졌다. FAZ 출판부는 약 5년에 한 차례씩 전 세계 주요 정상, 재계 지도자, 종교계 주요 인사들의 기고문을 수록한 기고문집을 발간하고 있다. 우리 대통령으로는 △김영삼 대통령 ‘21세기를 위한 아젠다: 도전으로서의 미래’(1998) △김대중 대통령 ‘21세기를 위한 아젠다: 새로운 시대를 향한 길, 정치와 경제’(2000) △노무현 대통령 ‘권력자의 말’(2007) △이명박 대통령 ‘변혁의 시대’(2013)이 앞서 기고에 참여했다. 문 대통령은 기고문에서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의 부활로서의 2017년 촛불혁명을 평가하며 ‘평범한 사람들’의 힘을 강조했다. 다음은 문 대통령의 기고문 전문이다. “평범함의 위대함”- 새로운 세계질서를 생각하며1. 광주광주는 한국 현대사를 상징하는 도시입니다. 한국인들은 광주에 마음의 부채를 갖고 있으며, 지금도 많은 한국인이 광주를 생각하며 끊임없이 스스로 정의로운지 되묻고 있습니다.1980년 봄, 한국은 대학생들의 민주화운동으로 뜨거웠습니다. 유신체제는 막을 내렸지만 신군부 세력이 정권을 장악해가고 있었습니다. 신군부는 쿠데타를 일으키고 비상계엄령을 발동해 정치인 체포와 정치활동 금지, 대학교 휴교령과 집회·시위금지, 언론보도 사전검열과 포고령 위반자 영장 없는 체포 등 가혹한 독재를 시작했습니다. 서울역에 모인 대학생들은 신군부의 무력진압을 우려해 철수를 결정했습니다. 이때 광주의 민주화 요구는 더 활활 불타올랐습니다. 공수부대를 투입한 신군부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학살을 자행했고, 국가폭력으로 수많은 시민이 사망했습니다. 5월 18일 떨어지기 시작한 광주의 꽃잎들은 5월 27일 공수부대의 도청진압으로 마지막 꽃잎마저 지게 되었습니다. 광주의 비극은 처절한 죽음들과 함께 막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한국인에게 두 개의 자각(自覺)과 한 개의 의무를 남겼습니다. 첫 번째 자각은 국가폭력에 맞선 사람들이 가장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폭력의 두려움을 이기고 용기를 낸 사람들은 노동자와 농민, 운전사와 종업원들, 고등학생들이었습니다. 사망자 대부분도 이들이었습니다. 두 번째 자각은, 국가의 폭력 앞에서도 시민들은 엄청난 자제력으로 질서를 유지했다는 것입니다. 항쟁의 기간동안 단 한 차례의 약탈이나 절도가 없었다는 것은 이후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자부심이며 동시에 행동지침이 되었습니다. 도덕적 행동이야말로 부정한 권력에 대항해 평범한 사람들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행동이라는 것을 한국인들은 알고 있습니다. 도덕적 승리는 느려 보이지만 진실로 세상을 바꾸는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남겨진 의무는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일이었습니다. 광주에 가해진 국가폭력을 폭로하고 감춰진 진실을 밝히는 것이 곧 한국의 민주화운동이었습니다. 저도 부산에서 변호사로 일하며 광주를 알리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많은 젊은이가 목숨을 바치고 끊임없이 광주를 되살려낸 끝에 한국의 민주주의는 찾아왔고 광주는 민주화의 성지가 되었습니다.외로운 광주를 가장 먼저 세상에 알린 사람이 독일의 제1공영방송 일본 특파원이었던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였다는 사실이 매우 뜻깊습니다. 한국인들은 힌츠페터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고인의 뜻에 따라 그의 유품이 2016년 5월, 광주의 5.18묘역에 안치되었습니다.2. 촛불혁명, 다시 광주제가 1980년의 광주 이야기를 되새긴 것은 지금의 광주를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2016년 혹독한 겨울 한파 속에서 이뤄진 한국의 촛불혁명은 ‘나라다운 나라’란 과연 무엇인가를 물으며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경제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 되었습니다. 금융과 자본의 힘은 더 강해지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양산으로 노동환경은 악화되었습니다. 여기에, 특권계층의 부정부패는 국민의 상실감을 더욱 크게 만들었습니다. 급기야 한국의 남쪽 바다, 진도 맹골수도를 지나던 세월호에서 금쪽같은 아이들이 구조도 받지 못한 채 죽어갔고, 슬픔을 안은 채 한국의 국민들은 스스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촛불혁명은 부모와 자식들이 함께, 엄마와 유모차에 앉은 아이들이 함께, 학생과 선생님이 함께, 노동자와 기업인이 함께 광장의 차가운 바닥을 데우며 몇 개월 동안 전국에서 지속되었습니다. 단 한 번의 폭력사건 없이 한국의 국민들은 2017년 3월 헌법적 가치를 위반한 권력을 권좌에서 끌어내렸습니다. 가장 평범한 사람들이 가장 평화로운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냈습니다. 1980년 광주가 2017년 촛불혁명으로 부활했던 것입니다. 저는 한국의 촛불혁명을 노래와 공연이 어우러진 ‘빛의 축제’로 묘사하며,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 의식을 보여줬다고 극찬한 독일 언론을 감사한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지금의 한국 정부는 촛불혁명의 염원으로 탄생한 정부입니다. 저는 한시도 ‘정의로운 나라, 공정한 나라’를 원하는 국민의 뜻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공정하게 좋은 일자리에서 일하고, 정의로운 국가의 책임과 보호 아래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나라가 촛불혁명이 염원하는 나라라고 믿고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행복할 때, 한 나라의 지속가능한 발전도 가능합니다. 포용국가는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면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과 국가 전체가 함께 성장하고, 그 결실을 골고루 누리는 나라입니다. 한국은 지금 ‘혁신적 포용국가’를 지향하며 누구나 돈 걱정 없이 원하는 만큼 공부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꿈을 위해 달려가고, 노후에는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토대 위에서 이뤄지는 도전과 혁신이 민주주의를 지키고, 우리 경제를 혁신성장으로 이끌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포용국가는 사회경제체제를 포용과 공정, 혁신의 체제로 바꾸는 대실험입니다. 한국에서는 고용 부문에서 더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노동자들이 더 나은 삶을 누리고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추진하고 있습니다. 청년의 일자리 예산을 확대하고, 퇴직 이후에도 삶을 책임질 수 있도록 중년의 재취업 훈련을 지원했습니다. 기초연금을 인상했고, 어르신 일자리 예산을 늘렸습니다.경제 부문에서는 그간 한국경제의 대들보였던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혁신 창업·중소기업이 쑥쑥 커갈 수 있도록, 규제를 과감히 걷어내고 금융도 혁신친화적으로 바꿔가고 있습니다. 복지 부문에서는 생애주기에 맞춘 사회보장 체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습니다. 의료보험의 보장범위를 확대하고, 아이를 마음 놓고 키울 수 있는 돌봄 서비스를 국가 차원에서 확충해가고 있습니다. 누구나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위해 발달장애인의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을 세우고, 여성의 권익을 증진하는 한편 성차별에 단호히 대처하고 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자녀와 다문화 가정에 대한 지원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교육 부문에서는 입시경쟁과 암기식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성을 중시하는 혁신 교육으로 전환해 나갈 예정입니다.그러나 익숙해진 관습에서 벗어나 변화하는 과정에는 갈등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 사이에 대화하고, 조정하고, 타협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를 통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찾아가야 합니다. 대실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대타협이 동반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국은 식민지와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불과 70여 년 만에 세계 11위 경제 대국이 되었습니다. 이런 성과를 우리는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면서 이뤄냈습니다. 농업에서 경공업, 중화학공업, 첨단 ICT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나라도 해내지 못한 엄청난 변화를 스스로 이뤄내며 2차 세계대전 후의 신생 독립 국가 중 유일하게 선진국으로 도약했습니다. 한국은 맨손에서 성공을 이룬 저력이 있습니다. 한국 국민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능동적으로 이용하는 국민입니다.이즈음 광주에서 의미 있는 사회적 대타협이 이뤄졌습니다. 적정임금을 유지하면서 더 많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노동자와 사용자, 민간과 정부가 각자의 이해를 떠나 5년이 넘게 머리를 맞댔습니다. 노동자는 일정 부분의 임금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사용자는 일자리를 보장하면서 노동자의 복지를 책임지는 가운데 비용을 유지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인간다운 삶을 지키고자 하는 민간의 요구가 강했고, 각종 법규를 조정하고 안정적인 기업운영을 지원해야 하는 정부 또한 타협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양보와 나눔으로 결국 대타협을 이뤘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만들어진 일자리를 ‘광주형 일자리’라고 부릅니다. 한국인들은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광주정신’이 이뤄낸 결과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민주화의 성지 광주가 사회적 대타협의 모범을 만들었고, 경제민주주의의 첫발을 내디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광주형 일자리’는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보다 성숙해진 한국 사회의 모습을 반영합니다. 산업구조의 빠른 변화 속에서 노동자와 사용자, 지역이 어떻게 상생할 수 있을지 보여주었습니다. ‘광주형 일자리’는 ‘혁신적 포용국가’로 가는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한국인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조금 느리게 보여도 사회적 합의를 이루면서 함께 전진하는 것이 모두에게 좋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조금씩 양보하면서 함께 가는 것이 결국은 빠른 길이란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1980년 5월의 광주가 민주주의의 촛불이 되었듯, ‘광주형 일자리’는 사회적 타협으로 새로운 시대의 희망을 보여주었고 포용국가의 노둣돌이 되었습니다.포용은 평범함 속에서 위대함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평범함이 모여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을 조성하는 일입니다. 한국 정부는 지금 ‘광주형 일자리’의 성공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포용과 혁신을 가장 이상적으로 구현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평화로운 방법으로 통일을 이뤄낸 역사와 포용과 혁신으로 사회통합을 이룬 사례는 우리에게 언제나 영감을 주었습니다. 한국의 광주도,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길 희망합니다.3. 평범한 사람들의 세계한국에서는 정확히 100년 전, 평범한 사람들의 힘이 모여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던 사람들이 1919년 3월 1일부터 독립만세운동을 시작했습니다. 202만 명, 당시 인구의 10%가 참가한 대규모 항쟁이었습니다. 나무꾼, 기생, 맹인, 광부, 머슴,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앞장섰습니다. 한국에서 3.1독립운동이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 운동을 통해 시민의식이 싹텄다는 것입니다. 국민주권과 자유와 평등, 평화를 향한 열망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왔고 이를 통해 계층, 지역, 성별, 종교의 장벽을 뛰어넘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왕정의 백성에서 국민으로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웠습니다. 임시정부는 일제에 대한 저항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나라를 꿈꿨습니다. 1919년 4월 11일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임시헌장’을 공포하며 대한민국은 군주제가 아닌 민주공화국임을 명확히 밝혔습니다. 임시헌장 3조에서 “대한민국 인민은 남녀·귀천·빈부·계급을 막론하고 평등하다”고 명시했습니다. 여성을 포함한 모든 국민의 선거권과 피선거권도 보장했습니다. 당시 임시정부 구성에 참여했던 한국의 독립운동가 안창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과거에 황제는 한 명이었지만, 금일은 2000만 국민이 모두 황제입니다.” 민주공화국에 대한 참으로 명쾌한 표현입니다. 임시정부는 27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망명지에서 식민지해방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세계 식민지해방운동사에서 전무후무한 사례입니다. 임시정부가 있었기에 열강들이 카이로선언을 통해 한국의 독립을 보장하게 됩니다. 둘째는, 마음을 합하는 것처럼 큰 힘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서로를 믿으며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로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당시 3.1독립운동에 참여했다가 일제의 감옥에 갇힌, 한국의 근대 소설가 심훈은 어머니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습니다.“어머님! 우리가 천번 만번 기도를 올리기로서니 굳게 닫힌 옥문이 저절로 열려질리는 없겠지요. 우리가 아무리 목을 놓고 울며 부르짖어도 크나큰 소원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리도 없겠지요. 그러나 마음을 합하는 것처럼 큰 힘은 없습니다. 한데 뭉쳐 행동을 같이하는 것처럼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그 큰 힘을 믿고 있습니다.”한국의 근현대사는 도전의 역사였습니다. 식민지와 분단, 전쟁과 가난을 넘어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향해 전진해왔습니다. 그 역사의 물결을 만든 이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3.1독립운동 이후 100년의 시간 동안 한국인 모두가 저마다의 가슴에 샘 하나씩을 품고 살아왔습니다. 위기마다 함께 행동했습니다. ‘잘살고 싶지만 혼자만 잘살고 싶지는 않다’, ‘자유롭고 싶지만 혼자만 자유롭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들이 모여 역사의 힘찬 물결이 되었습니다. 저는 민주주의가 제도나 국가 운영의 도구가 아니라 내재적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주는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냄으로써, 국민으로서의 권리,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찾을 수 있다고 여깁니다. 우리는 더 좋은 민주주의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존 듀이의 말처럼 민주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행하는 수밖에 없습니다.민주주의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존중되고 보완되며 확장되고 있습니다. 제도적이고 형식적인 완성을 넘어 개인의 삶에서 일터, 사회에 이르기까지 실질적인 민주주의로 실천되고 있습니다. 평범함의 힘이고, 평범함이 쌓여 이룬 발전입니다.100년 전 식민지의 억압과 차별에 맞서 싸웠던 평범한 사람들이 민주공화국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자유와 민주, 평화와 평등을 이루려는 열망은 10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뜨겁습니다. 나라가 나라답지 못할 때 3.1독립운동의 정신은 언제나 되살아났습니다. 4. 평범함을 위한 평화동양에서는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난세야말로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려가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영웅은 탄생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불행에 빠지는 시대입니다.중국의 고전 ‘사기’의 ‘손자오기열전’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人曰, 子卒也, 而將軍自?其疽, 何哭爲” 사람들이 말하기를 “아들이 졸병인데 장군이 몸소 아들의 종기를 입으로 빨아주었소. 어째서 우는 것입니까?” 울 필요가 없는데 왜 우느냐는 뜻입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장군의 행동에 감격해 전쟁터에서 죽기살기로 싸우다가 죽을까봐 운 것입니다. ‘사기’에는 그 어머니의 남편 또한 똑같은 일을 겪고 죽기살기로 싸우다가 죽었다고 나옵니다.‘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장군 오기의 훌륭한 행동을 이야기하려는 것이지만, 이 이야기에는 남편을 잃은 부인의 안타까운 처지가 행간에 숨어있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영웅담에는 항상 스스로의 운명을 빼앗긴 평범한 사람들의 비극이 감춰져 있습니다.한국 분단의 역사에도 평범한 사람들의 눈물과 피가 얼룩져 있습니다. 분단은 개인의 삶과 생각을 반목으로 길들였습니다. 분단은 기득권을 지키는 방법으로, 정치적 반대자를 매장하는 방법으로, 특권과 반칙을 허용하는 방법으로 이용됐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분단이라는 ‘난세’ 동안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사상과 표현, 양심의 자유를 억압받았습니다. 자기검열을 당연시했고, 부조리에 익숙해졌습니다.이 오래되고 모순된 상황을 바꿔보고자 하는 열망은 한국인들이 촛불을 들은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민주주의를 지켜냄으로써 평화를 불러오고자 했습니다. 촛불이 평화로 가는 길을 밝히지 않았다면 한국은 아직도 평화를 향해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을 것입니다. 촛불혁명의 영웅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집단적 힘이었습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동양의 옛말은 “평범한 힘이 난세를 극복한다”는 말로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계절이 변화하는 것처럼 인간사에도 과정이 있다고 믿습니다. 동ㆍ서독 간 철의 장막이 유럽을 관통하는 거대한 생명띠 ‘그뤼네스 반트’로 완전히 변모한 것처럼, 한반도의 평화가 동서를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DMZ)에만 머물지 않고 남북으로 뻗어 나가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시아, 유럽까지 번져나갈 것을 기대합니다. 한반도 전역에 걸쳐 오랜 시간 고착된 냉전적 갈등과 분열, 다툼의 체제가 근본적으로 해체되어 평화와 공존, 협력과 번영의 신질서로 대체될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것을 ‘新한반도 체제’라 이름 붙였습니다.‘新한반도 체제’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대전환을 의미합니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충돌하는 단층선에 있습니다. 유럽의 발칸반도와 비슷합니다. 이로 인해 역사적으로 잦은 전쟁의 수난을 겪어왔습니다. 특히, 남한과 북한이 비무장지대를 경계로 나눠진 이후 한국은 사실상 대륙과의 연결이 가로막힌 ‘섬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한반도에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은 섬과 대륙을 연결하는 연륙교를 만드는 일입니다. 작년 4월 저는 판문점에서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습니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한국전쟁 이래 남한 땅으로 처음으로 넘어온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서로 간의 군사적 적대행위를 멈추자고 약속했습니다. 그 첫 번째 조치로 비무장지대의 초소 일부를 철수하고, 주변 지역의 지뢰제거 작업도 실시했습니다. 비무장지대 안에서 남과 북을 잇는 도로가 개설되었고, 13구의 유해도 발굴하여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러한 작업을 진행하던 중 작년 11월에는 각각 남쪽과 북쪽에서 출발한 군인들은 한국전쟁 마지막 격전지였던 화살머리 고지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총구를 내린 채 서로 악수하며 뜻밖의 조우를 즐겼습니다. 정전협정 65년 만에 이렇게 비무장지대에 봄이 왔습니다. 한반도의 봄은 베를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2000년 ‘베를린 선언’에 이어 다시 한번 2017년 7월, 촛불혁명의 열망을 담아 베를린에서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구상을 얘기했습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은 단지 희망사항에 불과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한반도의 겨울은 좀처럼 물러날 것 같지 않았고, 북한은 계속해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위기를 조성하고 있었습니다. 주변국들도 제재의 강도를 점차 높여가면서, ‘4월 위기설’, ‘9월 위기설’이 돌았고 한국인들은 실제로 전쟁이 일어날까 염려했습니다. 빌리 브란트 전 총리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는 것보다 작은 걸음이라도 나아가는 게 낫다”고 했습니다. 저의 생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언가 시작하지 않으면 국민들의 열망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작은 꿈을 꾸면,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 힘이 없다’고 했던 괴테의 글을 떠올렸습니다. 겨울을 뚫고 봄의 새싹이 올라오려면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라는 큰 꿈을 이야기해야 했습니다. 국민들과 함께 이룰 수 있는 큰 꿈이어야 했습니다.북한은 2018년 1월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할 용의를 표했고, 한국의 큰 꿈에 화답해 왔습니다. 이어 평창동계올림픽의 참가 의사를 전달해왔습니다. 주변국들과 유럽의 국가들까지 한반도의 해빙에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었습니다. 한국의 국민들은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뜻을 모았습니다. ‘베를린 선언’에서 저는 북한을 향해 “쉬운 일부터 하자”고 하며 4가지를 제시했습니다. 평창올림픽 참가, 이산가족 상봉, 남북한 상호 적대행위 중단 그리고 남북 간 대화와 접촉을 재개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놀랍게도 이 4가지는 2년이 지난 지금 모두 현실이 되었습니다. 작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남북 대표선수단은 세계인들이 보는 앞에서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했습니다. 이산가족들이 다시 만났고 이제 언제든지 화상상봉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한반도의 하늘과 바다, 땅에서 총성은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북한 땅 개성에 연락사무소를 개소하면서 일상적으로 서로가 대화하고 접촉하는 통로를 만들었습니다. 한반도의 봄이 이렇게 성큼 다가왔습니다.그동안 제가 안타깝게 생각했던 일은 한국의 국민들이 휴전선 그 너머를 더 이상 상상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한반도에서 남과 북이 화해하고, 철도를 깔고, 물류를 이동시키고, 사람을 오가게 한다면, 한국은 ‘섬’이 아닌 해양에서 대륙으로 진출하는 교두보, 대륙에서 해양으로 나아가는 관문이 됩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상상력이 넓어진다는 것은 곧 이념에서 해방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국민들의 상상력도, 삶의 영역도, 생각의 범위도 훨씬 더 넓어져서 그동안 아프게 감내해야 했던 분단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남북의 문제는 이념과 정치로 악용되어서는 안 되며, 평범한 국민의 생명과 생존의 문제로 확장해야 합니다. 남과 북은 함께 살아야 할 ‘생명공동체’입니다. 사람이 오가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병충해가 발생하고 산불이 일어납니다. 보이지 않는 바다 위의 경계는 조업권을 위협하거나 예상치 못한 국경의 침범으로 어민들의 운명을 바꾸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이 바로 항구적 평화입니다.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평화를 넘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위한 평화입니다.‘新한반도 체제’는 수동적인 냉전질서에서 능동적인 평화질서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과거 한국 국민은 일제 강점과 냉전으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일입니다.한반도와 동북아의 기존질서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동시에 동북아에 심어진 ‘냉전 구조’와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전후처리 과정에서 한국인들의 의사와 다르게 분단이 결정되었고, 비극적 전쟁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때 한미일의 남방 3각 구도와 이에 대응하는 북중러의 북방 3각 구도가 암묵적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냉전구도는 1970년대 데탕트와 1990년대 구소련 해체, 중국의 시장경제 도입으로 상당부분 해소되었지만, 아직 한반도에서만은 그대로입니다. 남북한은 분단되어 있고, 북한은 미국, 일본과 정상적 수교관계를 맺고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북한은 작년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을 통해 서로 간의 적대행위 종식을 선언함으로써 항구적 평화정착의 첫 번째 단추를 채웠습니다. 동시에 북한과 미국은 비핵화 문제와 함께 관계정상화를 위한 대화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북미대화가 완전한 비핵화와 북미수교를 이뤄내고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완전히 대체된다면 비로소 냉전체계는 무너지고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체계가 들어설 것입니다평화는 또한 함께 잘사는 나라로 가기 위한 기반입니다. ‘新한반도 체제’는 평화경제를 의미합니다. 평화가 경제발전으로 이어져 평화를 더 공고히 하는 선순환적 구조를 의미합니다. 남과 북은 항구적 평화정착을 촉진하기 위해 함께 번영할 수 있는 길을 고심하고 있습니다. 이미 끊어진 철도와 도로 연결에 착수했습니다. 한국의 기술자들이 분단 이래 처음으로 북한의 철도 현황을 실사했습니다. 철도와 도로 연결 착공식도 개최했습니다. 남북경제교류 활성화는 주변국과 연계하여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와 유라시아의 경제회랑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남북한과 러시아는 가스관을 잇는 사업에 대해 실무적인 협의를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8월에는 동북아 6개국과 미국이 함께하는 ‘동아시아철도공동체’를 제안한 바 있습니다. 저는 ‘유럽석탄철강공동체’를 모델로 ‘동아시아철도공동체’를 동북아시아의 에너지공동체, 경제공동체로 발전시키고자 합니다. 나아가 이 공동체는 다자평화안보체제로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한국이 추진하고 있는 ‘신남방정책’과 ‘신북방정책’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경제는 더욱 확대될 것입니다. 신북방정책은 유라시아와의 경제협력 물꼬를 트는 것입니다. 북한은 작년 6월 처음으로 유라시아 국가들이 모두 참여하는 국제철도협력기구에 한국이 가입하는 것을 찬성했습니다. 부산에서 베를린까지 철도로 이동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한국은 남북화해를 기반으로 동북아 평화의 촉진자가 될 것입니다.신남방정책은 한반도가 아세안, 서남아시아와 함께 새로운 전략적 협력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사람(People), 평화(Peace), 번영(Prosperity)의 공동체를 핵심 가치로 삼아 주변국과 인적, 물적 교류를 강화해나갈 것입니다. 아시아가 지닌 잠재력을 함께 실현하고, 공동번영의 길을 모색할 것입니다. 한국 국민은, 평범한 사람들의 자발적인 행동이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힘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힘은 마지막 남은 ‘냉전체계’를 무너뜨리고, ‘新한반도 체제’를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평범한 한 사람이 자기의 의지와 무관하게 불행에 빠지는 일을 막는 일입니다. 평화를 이루는 것도 결국 평범한 국민들의 의지에 의해 시작되고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게 되길 희망합니다.5. 포용적 세계질서를 향하여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역시 냉전의 한복판으로 휩쓸려갔습니다. 각국 정부들은 새로운 동맹전략을 모색했습니다. 냉전으로 분단된 독일은 평화를 향해 담대한 발걸음을 내디디며 유럽의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베를린 장벽으로 하루아침에 생이별한 45만 명의 독일 시민들이 통일과 평화에 대한 염원을 가지고 1963년 6월, 서독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모였습니다. 그 해, 빌리 브란트 시장은 크리스마스 기간에 헤어진 가족과 친척을 만나게 하자는 협상을 제안했습니다. 동방정책의 시작이었습니다. 동서독이 서로를 경쟁과 봉쇄의 대상이 아닌 협력과 상생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동독의 라이프치히에서는 1980년대 초부터 월요일마다 작은 기도회가 열렸습니다. 이 작은 기도회는 1989년 10월 9일, 선거와 여행의 자유, 독일 통일을 요구하는 평화행진으로 발전했습니다. 처음 7만 명으로 시작된 평화행진은 불과 2주 만에 30만 명을 넘었습니다. 한 달 후인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유럽의 평범한 시민들이 평화를 만드는 일에 나섰고, 적극적으로 각국 정부를 움직였기에 유럽의 질서가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유럽 시민들의 의지와 행동은 1952년 유럽연합의 모태가 된 ‘유럽석탄철강공동체’를 발족시켰고, 1975년 현재 유럽 안보 질서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안보협력회의’를 태동시켰습니다. 유럽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국가 간 관계에서 포용성은 매우 중요합니다. 국경과 분야를 넘어 포용하고, 공정한 기회와 호혜적 협력을 보장할 때 세계는 함께 잘 살고 함께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후 질서의 근간인 자유무역주의와 국제주의가 현저히 약화되면서 다시 보호무역주의와 자국이기주의가 꿈틀대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제적 위기는 포용과 협력의 정신을 사라지게 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각국의 책임과 규범을 강조하는 협력의 정치가 절실합니다. 다시, 평범한 사람들이 중요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바꿀 수 있는 것은 국내 문제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국가를 바꾸면, 세계질서도 바꿀 수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 누구나 국가 운영을 자신의 권리와 책임으로 여기고, 세계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과 연결지어 생각할 때 새로운 세계질서는 만들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국경과 인종, 이념과 종교를 뛰어넘어 서로 연대하고 협력할 때, 세계는 더불어 잘 사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것입니다.사회적 약자를 배제하지 않고, 일한 만큼 노동의 대가를 받으며 안정적인 복지로 다수가 성장의 과실을 누리는 세계가 포용적 세계입니다. 이미 우리는 한국과 유럽, 세계 곳곳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포용을 통해 만들어온 성취를 알고 있습니다.독일은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추구하면서 고용불안, 임금격차, 빈곤, 노후불안 등 각종 사회적 위험에 대한 보장을 함께 제공하여 사회통합을 이뤄냈습니다. 북유럽의 국가들은 높은 비용을 수반하는 복지체계가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지 않도록 끊임없는 교육 투자를 통해 국가의 혁신역량을 보전했습니다. 특정 국가나 공공부문의 노력만으로 기후변화 같은 지구 전체의 의제를 해결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지난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구온난화 1.5℃ 보고서’를 채택했습니다. 기후 전문가들은 산업화 이전에 비해 지구 온도 상승이 1.5도에 그치면 2도 올랐을 때보다 1천만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예견합니다. 국제적 지원과 협력으로 기후변화에 모든 나라가 공동 대응해야 이룰 수 있는 목표입니다. 세계적으로 포용성을 수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기원전 2000년부터 아시아 국가들은 ‘치산치수(治山治水)’를 성공적인 국가운영의 첫 번째 덕목으로 삼았습니다. ‘산과 물을 다스린다’는 의미 안에는 ‘자연을 존중한다’는 정신이 담겨있습니다. 나무를 가꿔 산사태를 방지했으며 물을 가두기보다 자연스럽게 흐르게 하여 홍수와 가뭄의 피해를 줄이고자 했습니다. 인간과 자연, 개발과 보전을 둘로 나누어 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세계가 추구하는 지속가능한 발전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재, 여전히 많은 국가들이 경제발전과 환경보호를 별개의 것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역지사지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우리뿐 아니라 미래 세대들이 함께 살아갈 지구를 위하여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와 평범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포용의 힘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 그럴 때 새로운 세계질서와 지속가능한 발전의 꿈은 현실이 될 것입니다. 각 나라가 포용성을 강화해 국가 간 격차를 줄이고, 국민들이 세계시민으로서 사고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할 것입니다. 평범한 시민이 이룬 유럽의 통합과 번영은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인류에게 의지와 용기를 북돋아 줄 것입니다. 6. 평범함의 위대함평범한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갈 수 있는 것, 일상 속에서 희망을 유지할 수 있는 것, 여기에 새로운 세계질서가 있습니다. 역사책에는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 사람들, 이름이 아니라 노동자나 나무꾼, 상인이나 학생 등 일반명사로 나오는 사람들, 이 평범한 사람들이 한 사람 한 사람 자기 이름으로 불려야 합니다, 세계도, 국가도, ‘나’라는 한 사람으로 비롯됩니다. 일을 하고 꿈을 꾸는, 일상을 유지해가는 평범함이 세계를 구성한다는 것을 우리는 소중하게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그러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삶이 존중받아야 합니다. 한 사람의 삶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스스로도 알아나가야 하겠지만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재평가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행동이 주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 또 어떤 행동이 확산되며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이야기되고 기록에 남겨져야 할 것입니다.평범함이 위대해지기 위해서는 자유와 평등 못지않게 정의와 공정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인류의 모든 이야기는 “착한 것을 권하고, 악한 것을 벌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깁니다. 동양에서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이라는 사자성어로 표현합니다. 이 간명한 진실이 정의와 공정의 시작입니다. 무한경쟁의 시대가 계속되고 있지만, 정의와 공정이 더 보편화 된 질서가 되어야 합니다. 정의와 공정 속에서만 평범한 사람들이 세계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모든 것이 진행 중인 듯하지만, 인류가 지난 온 길에 새로운 세계 질서에 대한 해법이 있습니다. 동양의 옛 글은 “곡식 창고가 넉넉하면 예절을 알고, 옷과 음식이 풍족하면 영예와 치욕을 안다” 말하고 있습니다. 정의와 공정으로 세계는 성장의 열매를 골고루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며, 이를 통해 모두에게 권한이 주어지고 의무가 싹트며 책임이 생길 것입니다. 세계가 지금 위기라고 여기는 것들은 평범한 삶이 해결해야 할 것들입니다. 이것은 한 국가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며 한 사람의 위대한 정치인의 혜안으로 이뤄질 수 없는 일입니다. 힘든 이웃을 돕고, 쓰레기를 줄이고, 자연을 아끼는 행동이 쌓여야 합니다. 이 행동들이 한 사람에게 한정될 때,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수 있지만 이 작은 행동들이 쌓이면 물줄기가 크게 변합니다. 결국 우리는 세계를 지키고 서로의 것을 나누면서, 평화의 방법으로 세계를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그러하듯, 괴테가 남긴 경구처럼 ‘서두르지 않고 그러나 쉬지도 않고’.
2019.05.07 I 원다연 기자
여행하기 좋은 봄 "역사 속 설화 가득한 경기북부로 떠나자"
  • 여행하기 좋은 봄 "역사 속 설화 가득한 경기북부로 떠나자"
  • 포천 산정호수 둘레길의 말을 타고 있는 궁예의 모습을 형상화 한 동상.(사진=경기도)[의정부=이데일리 정재훈 기자] 나들이하기 좋은 계절, 봄이 왔다. 4월 27일부터 5월 12일까지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정한 2019년도 봄 여행주간이기도 하다. 이럴 때일수록 사랑하는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 담긴 의미 있는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김효은 경기도 평화대변인은 “한반도의 중심 경기북부는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어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명소들이 많다”며 “여행하기 좋은 봄을 맞아 역사와 이야기가 가득한 경기북부에서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고 말했다.대중교통으로도 충분히 갈 수 있고 청정의 자연 속 역사와 이야기가 넘실대는 경기북부 여행명소 5곳을 추천했다.포천 명성산.(사진=경기도)◇후삼국시대, 궁예의 한이 서린 ‘포천 명성산’후삼국 시대 태봉국의 왕 궁예의 전설이 내려오는 포천의 대표적인 명산이다. 이곳에서는 왕건에게 패배해 도망가던 궁예가 이 산에서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져온다. 생에 최후를 맞이한 궁예가 망국의 슬픔에 통곡하자 산까지 따라 울었다고 해 ‘울음산’으로도 불린다.한 시대의 끝과 시작이 교차하는 역사적 명소인 셈이다. 과거 큰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 ‘태조 왕건’의 팬이라면 더욱 뜻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특히 이곳은 전국 5대 억새군락지 중 하나로 정상 부근에는 억새밭이 장관을 이룬다. 5월초에는 곳곳에 철쭉들이 완연한 봄을 드러내고 기암괴석마다 숨어있는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산행객을 환영한다. 인근에는 국민관광지인 산정호수가 있어 가족단위 나들이객에게 좋은 소풍 장소다.양주 회암사지.(사진=경기도)◇태조 이성계의 별궁이자 조선 왕실 불교의 성지 ‘양주 회암사지’전해지는 기록에 따르면 인도 마갈국(마가다국)에서 태어나 원나라에서 고승으로 이름을 날리던 지공선사가 고려에 찾아와 “산수가 천축국 나란타사와 같아 불법을 펼치면 흥할 것”이라며 이곳에 회암사를 창건했다고 한다.특히 회암사는 조선시대 왕실의 적극적 후원을 입은 조선 최대의 왕실사찰로 한국 불교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왕자의 난 이후 상왕으로 물러난 태조 이성계는 이곳에 머물며 희생당한 이들의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일종의 별궁역할을 한 것인데 실제 이곳은 용문기와나 계단 구조, 월대 등이 경복궁과 유사해 태조의 또 다른 왕궁이라 칭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태종의 아들이자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은 회암사의 중창을 추진하며 이곳에서 대규모 불사를 개최하기도 했으며 명종 시절 문정왕후는 회암사를 중수하고 400점의 불화를 제작하는 등 이곳을 조선불교 진흥의 중심으로 삼았다.안타깝게도 임진왜란 전후로 일어난 화재로 원래의 절은 터만 남았다. 다행히 1998년부터 2012년까지의 발굴 작업으로 다른 사찰과 달리 궁궐과 유사한 건축양식임이 확인됐고 각종 왕실 유물들이 다량으로 출토됐다.현재 이곳에는 회암사의 역사와 가치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회암사지박물관’이 들어서 있으며 인근에는 순조의 명으로 이름을 이어 지어진 새로운 회암사도 소재해 있다. 회암사가 위치한 해발 423m의 천보산은 양주의 진산이기도 하다. 곳곳에 핀 봄꽃을 즐기며 산 정상에 오르면 탁 트인 양주 시내를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다.동두천 소요산.(사진=경기도)◇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 이야기를 찾아서 ‘동두천 소요산’소요산은 통일신라시대의 고승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전해지는 동두천의 대표 명산이다.원효가 요석공주를 떠나 소요산에 들어와 수행하던 중 아름다운 여인이 그를 찾아와 유혹했다. 설법으로 유혹을 물리친 원효는 그 여인이 관세음보살이었음을 깨닫고 수행을 더 정진하는 의미에서 이곳에 절을 짓고 ‘자재암’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소요산 곳곳에는 원효대, 원효폭포, 원효교, 요석공주별궁지 등 원효대사와 관련된 명소들이 많다.특히 요석공주별궁지는 요석공주가 그의 아들인 설총과 함께 원효대사의 수행지 근처에 별궁을 짓고 아침, 저녁으로 원효가 있는 곳을 향해 절을 올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인근에는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과 자유수호박물관 등 어린아이를 두고 있는 가족이라면 방문하기 좋을 시설들도 소재해 있다.구리 아차산 고구려 대장간마을.(사진=경기도)◇고구려의 혼, 온달장군 최후의 격전지 ‘구리 아차산’아차산은 한강유역을 차지하려던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다툼이 활발하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특히 아차산은 고구려 후기 평강공주의 남편, 온달장군이 전사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삼국사기에 따르면 온달은 “죽령 서쪽을 되찾지 못하면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신라군과 맹렬히 싸웠지만 격전 끝에 아차산성에서 적의 화살을 맞고 전사했다. 이후 고구려인들이 온달을 장사지내려 하는데 관이 움직이지 않자 평강공주가 관을 어루만지며 애원하자 그제야 움직였다는 전설이 내려져 온다.이를 증명하듯 이 산 일원에서는 아차산성, 고구려 보루군(堡壘群) 등 각종 유적·유물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으며 온달이 가지고 놀았다는 지름 3m크기의 ‘공기돌바위’와 온달이 태어났다는 온달샘 등도 유명하다.산을 오르다 보면 서울시내와 한강일대를 조망할 수 있으며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영화사’와 고구려 시대 마을을 재현한 고구려대장간마을 등도 함께 둘러보면 좋다. 매년 10월에는 온달장군 추모제향 행사도 열린다.파주 임진강 화석정.(사진=경기도)◇나라를 구한 율곡이이의 지혜 ‘파주 임진강 화석정’임진강 화석정은 조선시대 대학자 율곡 이이가 벼슬에서 물러난 뒤 시를 짓고 명상을 하며 문인들과 학문을 논하던 곳으로 유명하다.화석정이 임진왜란 시기에 불탔다는 것은 기록으로 남아있는데 여기에는 한 가지 설화가 전해져 온다. 전설에 따르면 율곡 선생은 평소 틈이 날 때마다 들기름으로 화석정의 마루와 기둥을 닦도록 했고 어려움이 있을 때 읽어보라며 봉투 하나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율곡이 죽고 8년 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급히 피난길을 재촉하게 되었는데 마침 임진강을 맞닥뜨리게 됐다. 문제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강을 건너기가 어려웠다는 것. 마침 율곡 선생의 유언이 생각난 이항복이 봉투를 열어보니 그 속에는 ‘화석정에 불을 지르라’고 쓰여 있었다. 이에 따라 화석정에 불을 붙이니 대낮처럼 밝아져 무사히 피난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현재 화석정은 임진강의 풍광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명소로도 유망하다. 특히 민통선 내 비경을 간직한 임진강변 생태탐방로는 물론, 임진각 평화누리와 반구정, 자운서원, 통일촌 장단콩 마을 등 함께 둘러볼 만한 명소들이 인근에 많이 있다.
2019.04.27 I 정재훈 기자
文대통령, 부친 별세에도 조종석 잡은 공군1호기 기장에 감사 인사
  • 文대통령, 부친 별세에도 조종석 잡은 공군1호기 기장에 감사 인사
  •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부친 별세에도 공군1호기 조종석을 떠나지 않는 박익 기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러한 사연은 문 대통령의 SNS를 통해 공개됐다. 문 대통령은 이날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 마지막 방문지인 카자흐스탄을 떠나면서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인사말을 남겼다. 문 대통령은 특히 “순방 뒤에는 언제나 묵묵히 자기역할을 다해주시는 분들이 있다. 이번 순방중 공군1호기 박익 기장의 부친 박영철님께서 영면하셨다”며 “육군 소령으로 예편하신 아버님은 아들에게 ‘임무를 다하고 돌아오라’는 유언을 남기셨고, 아들도 끝까지 조종석을 떠나지 않았다. 애도와 감사의 인사를 함께 드린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카자흐스탄 방문 성과와 관련, “누르술탄 공항에서 독립유공자 계봉우, 황운정 두분 지사님 내외의 유해를 고국으로 모셨다”며 “독립운동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뿌리이다. 유해봉환을 도와주신 카자흐스탄 정부, 유족들과 고려인 사회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또 “알마티의 고려극장은 연해주에서부터 고려인 동포들의 애환을 보듬으며 공동체의 구심점이 되어왔다. 청산리,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이 말년에 몸을 의탁한 곳”이라면서 “이제는 당당한 카자흐스탄의 국민이 된 고려인들이야말로 양국을 이어주는 튼튼한 가교”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카자흐스탄은 멘델레예프 주기율표의 모든 광물을 가진 자원부국이다. 유럽-중동-아시아를 연결하는 지리적 요충지 카자흐스탄은 우리의 ‘신북방정책’에 더없이 좋은 파트너”라면서 “스스로 핵보유국의 지위를 포기하고 비핵화의 길을 택해 외교적 안정과 경제 발전을 이룬 카자흐스탄의 경험은 한반도 평화의 여정에 큰 교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우리의 인종, 언어, 문화적인 동질감과 오랜 역사적 인연을 가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과 함께 ‘철의 실크로드’ 시대를 여는 것은 우리의 미래”라면서 “순방의 성과가 우리 경제의 활력으로 이어지도록 챙기겠다”고 다짐했다.
2019.04.23 I 김성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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