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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휠체어 탄 김지우씨 “한국 사회, 무해한 장애인 원해”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5호선 광화문역에서 열린 ‘제34차 출근길 지하철탑니다’에서 지하철 승하차 시위를 하고 있다. 전장연은 내년도 본예산에 장애인 권리 예산 반영, 장애인 권리 4대 법률 제개정, 서울시의 장애인 탈시설 지원 조례 재정 등을 요구하며 지난해 12월부터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을 진행 중에 있다(사진=뉴시스).[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한국 사회는 무해한 장애인을 원합니다. 도와줘야 하는 불쌍한 존재로 인식할 때는 호의적이지만, 장애인이 권리를 요구하면 비난과 조롱의 말을 서슴지 않죠.”뇌병변 장애를 가진 유튜버 김지우(21)씨가 경험해온 한국 사회의 민낯이다. 최근 온라인 화상 인터뷰를 통해 만나 김씨는 시청자들이 자폐 스펙트럼을 다룬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에는 열광하지만, 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해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이어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에 차가운 시선을 보이는 이유의 지점이 여기에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드라마 ‘우영우’의 등장에 대해서는 “반갑다”면서도 “현실에서는 장애인을 만나는 일도 쉽지 않다. 양날의 검처럼 느껴졌다. EBS ‘딩동댕 유치원’에 나오는 휠체어를 탄 친구 ‘하늘이’처럼 서사를 지닌 인물이 아니라, 그냥 학교, 놀이터에서 마주치는 것이 진짜 편견을 없애는 길”이라고 했다.첫 책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휴머니스트)를 펴낸 뇌병변 장애인 유튜버 김지우 씨가 매달 자신의 ‘휠체어 꾸미기’ 작업을 통해 선보이고 있는 ‘이달의 휠체어’ 모습. 웨딩드레스, 한복 등 다양한 의상을 입고 그에 맞는 휠체어 디자인을 선보이는 화보 프로젝트로, 단순히 휠체어의 외형만 바꾸는 게 아니라 삶에서 휠체어를 어떻게 패션으로 치환하는지, 타인의 시선을 당당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사진=포토그래퍼 유흐름 제공).◇“출근길에 장애인이 없다”김씨는 7년차 인기 유튜버다. 고등학생 시절인 2017년부터 유튜브 채널 ‘굴러라 구르님’을 운영하며 장애 이슈를 다루고 있다. 그는 어리고 장애가 있는 여성이라는 사회적 약자라는 점에서 장애 이슈를 건드릴 때마다 자주 소환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그의 첫 책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휴머니스트)는 유투버이자 20대 여성, 휠체어를 탄 뇌병변 장애인으로서 겪어온 일상과 관계의 면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김씨는 “아무래도 Z세대(199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 출생자)이다보니 활자보다 영상에만 익숙해지더라. 유튜버 활동을 해오면서 언젠가 내 이야기를 정리된 무언가로 풀어내야겠다는 생각은 꾸준히 갖고 있었다”면서 “글로 만날 수 있는 독자층은 또 다를 텐데, 이번 작업을 통해 많은 독자를 만나길 기대하고 있다”고 웃었다.김씨 유튜브에 구독자가 많은 이유는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근사한 농담처럼 건넨다는 점이다. 이 같은 강점은 김씨의 책에도 잘 녹아있다. 이를테면 김씨 자신의 부모님 이야기를 꺼낼 때 엄마가 아닌 ‘현미’라고 지칭하는 식이다.“어린 내가 겪어야 했던 배타의 과정을 감당한 건 내가 아니고 현미였다. 그래서 현미는 자연스레 ‘쌈닭’이 됐다. 어릴 때 내게 익숙했던 현미의 모습은 뭔가 부당한 일이 생겼을 때 따박따박 따지는 거였다. (중략) 나와 분리되지 않는 삶을 산 현미는 어떤 것들을 견뎌야 했을까. 이제는 현미를 마주할 때다.”김씨는 엄마를 이름으로 부른 의도에 대해 “장애인인 저를 이야기할 때 가족 얘기를 빼고 쓸 수 없다. 좋든 싫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장애인으로서 가족들에게 돌봄을 받고 자란다. 다만 ‘엄마’ ‘아빠’라고 쓰면 사회적 맥락에서 모성애, 희생 같은 것들이 너무 쉽게 달라붙을 것 같았다. 장애인 부모로서 읽히는 게 아닌 그냥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자 했다”고 말했다.성에 대한 얘기도 책에 거침없이 썼다. 그는 “장애 여성으로서 다층적 차별을 겪게 되더라. 출산을 장려하면서도 장애여성들은 임신중절을 권유받기도 한다”며 “당연한 욕망인 성욕도 장애인이 이야기를 꺼내면 공격 당하는 일도 적지않다. 정당하지 않다”고 했다. 책에는 장애 이슈를 다루는 기획자로서 장애인의 삶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지, ‘덜’ 준비된 사회를 향해 어떻게 목소리를 낼지 등에 대한 사유와 통찰이 녹여져 있다. 준비가 ‘덜’된 사회를 향한 촌철살인도 잊지 않는다. 김씨는 책에서 “뇌성마비의 걸음이란 한 발자국, 손을 흔드는 타이밍까지 계산해야 안전하게 걸을 수 있다.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있는 출구와 내가 가야 할 장소가 정반대라든지,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다는 안내문을 본다든지, 환승을 하려면 리프트를 다섯 번 타야 한다거나 출구로 나가 100m 정도를 가서 다시 내려가야 하는 일 역시 다반사다. 지하철은 ‘대중교통’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꾸 대중이라는 말 안에 장애인이 있는 것은 까먹는 모양이다. 여전히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았고, 책임을 져야 할 사회는 조용한데 열의가 있는 개인만이 고군분투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꼬집는다.이길보라 영화감독 겸 작가는 추천사를 통해 “이 책은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틈새를 유쾌하고 발칙하고 근사하게 가로지른다”며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휠체어를 탄 여성으로 살아가는 작가의 이야기는 정확하게 한국 사회의 단면을 짚어낸다”고 적었다.그는 요즘 휠체어 꾸미기에 빠져있다. 지난해 9월부터 매달 한복, 웨딩드레스, 교복 등 다양한 의상을 입고 그에 알맞은 휠체어 디자인을 선보이는 화보 프로젝트 ‘이달의 휠체어’를 진행 중이다. 줄임말로 일명 ‘휠꾸’로 통한다. 단순히 외형을 꾸민다는 데 나아가 ‘당당함’을 획득하자는 의도를 담았다. 휠체어가 타인의 시선을 받아내는 수동적 존재였다면 타인의 눈길을 끄는 패션쯤으로 그 시선을 즐긴다고 했다.김씨는 ‘휠꾸’를 하나의 문화로 만들겠다는 포부다. 어릴 적 ‘왜 나는 다른 친구들과 다르지?’라는 생각을 품었던 만큼 장애 아동들을 모아 나만의 휠체어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다니는 김씨는 지난해 4월 ‘서울대 배리어프리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을 결성해 현재까지 관악구 예산지원으로 서울대 인근 식당 32곳에 경사로를 설치하기도 했다. 공중파 방송출연, ‘세바시’ 강연, 평창동계패럴림픽 성화 봉송 주자, 연극 배우, 잡지(보그) 화보 촬영 등을 하며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 왔다.그는 대표로 나서는 일이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물음에 “‘대표’ 자리에 올려지는 것은 대단한 권리인 동시에 사회적 소수자에겐 그 자체로 소수자성을 재확인시키는 일이기도 하다”면서 “그럼에도 직접 나서 이야기하는 것은 한국사회에서는 아직도 장애인을 보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김씨는 “어릴 적 나는 어른이 되면 내 장애가 낫는 줄 알았다. 알려주는 사람도, 나 같은 장애를 가진 친구도 없었다”며 “장애인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김지우 씨가 자신의 휠체어에 그라피티를 새긴 뒤 촬영한 화보(사진=포토그래퍼 장모리 제공).
- LA아트페어 첫 한국화랑 '완판작가'…곽훈이 여든에 떠난 '고래사냥'
- 작가 곽훈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 개인전에 건 120호 규모의 작품 ‘할라잇’(2022·193.9×130.3㎝) 옆에 섰다. 알래스카 이누이트의 고래잡이를 소재로 망망대해에서 사투를 벌이는 고래와 사람을 강한 붓선으로 그려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1975년 미국으로 떠날 때 다신 한국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런데 고국에서 부르니 흔들립디다.” 숙명이든 운명이든 시작은 가느다란 한 줄 인연에서부터다. 작가 곽훈(81)의 숙명도, 운명도 그랬던 듯하다. 그이에게 ‘한 줄’은 전화선이었는데. 김창실(1935∼2011) 선화랑 설립자와의 인연이 말이다.“어느 날 김 사장이 미국으로 국제전화를 했습디다. 그땐 한국화랑협회장 자격이었는데. 한국에서 화랑들이 결의해 ‘LA국제아트페어’(지금의 ‘LA아트쇼’)에 나가기로 했다고, 미국에서 바로 선화랑 부스로 합류할 수 없겠느냐고 묻데요.” 미국에서 데뷔하고 작품활동을 하던 터라 미국화랑이 데리고 나간 아트페어에 몇 번 참여하긴 했단다. 그런데 한국화랑과 조인은 처음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1987년 이 장면에 또 다른 ‘처음’이 있었다는데. 한국화랑이 해외 아트페어에 나서는 게 최초였다는 거다. 곽훈의 ‘기’(1984·85×141㎝)와 ‘기’(1985·148.5×140㎝). 세상 만물의 기운을 뻗쳐낸 표현주의 추상회화 ‘기 시리즈’ 중 두 점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아이고, 화랑 여주인들의 옷차림이 난리도 아니었어요. 열두 명쯤 됐나. 한복을 차려입고 보석반지에 장신구를 있는 대로 달고 죽 서 있는데 볼 만하데요.” 바로 어제 일인 양 그 현장을 기억해내는 작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돈다. 당시 한국화랑은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출신 화가들이 주름잡고 있을 때였단다. 서양화보단 단연 동양화였다. 컬렉터가 길게 줄을 선 채 ‘먹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작품을 채 가던’ 바로 그 시절이었던 터. 그럼에도 미국에서 서양화를 그리는 작가를 단박에 알아보고 아트페어 부스를 개인전처럼 채우게 한 ‘김 사장’의 안목을 그이는 아직도 높이 사고 있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 ‘곽훈 개인전’ 전경. ‘겁 시리즈’가 걸린 전시장에 한 관람객이 ‘겁’(1991·213.5×183㎝) 앞에 오래 머물렀다. 오른쪽으로 ‘겁’(1992·153×183㎝)이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과연 결과는 어땠을까. “벨기에의 유명 갤러리인 필립 기니오에서 개막도 하기 전에 2점을 사갑디다. 아트컨설턴트란 미술품 딜러 200여명이 부스를 들락거리고. 결국 출품작의 2.5배쯤 팔았지. 몽땅 팔고 다시 채우고 또 팔고 채우고 그렇게 해서.” 그 인연이 서울 화랑가에 곽훈의 붓과 발, 그림과 얼굴을 제대로 들이게 했다. 1988년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게 된 거다. 옛 명맥을 잇고 있는, 인사동에 몇 안 남은 그들 중 하나인 선화랑이 45주년에 ‘작가 곽훈’을 전시장에 다시 세운 이유기도 할 거다. 1988년 그 ‘첫’은 이후 1990년, 1991년, 1993년, 1995년으로 회를 거듭했고, 이젠 끊어졌나 싶을 만큼 긴 27년이나 지난 올해 그 ‘한 줄’을 기어이 찾아 다시 이어냈다. 오십대 중반의 중견작가는 여든의 원로작가가 돼 돌아왔다. 작가 곽훈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 개인전에 건 500호 규모 ‘기’(1985·367×214㎝) 앞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알래스카서 찾은 고래뼈, 반구대 암각화서 살 붙여 작가의 화업을 굳이 한 단어로 뽑아내자면 ‘표현주의 추상회화’라고 할 거다. 크게 세 갈래로 가지를 뻗는데. 세상 만물의 기운을 뻗쳐낸 1970년대 ‘기 시리즈’, 생성과 소멸의 반복적 흐름을 재료적 물성으로 시각화한 1990년대 ‘겁 시리즈’, 2010년 이후 이른바 ‘고래사냥’으로 통하는 ‘할라잇(Halaayt) 시리즈’까지. 군더더기 없이 ‘곽훈 개인전’이란 타이틀로 연 전시는 이 모두를 망라한 사실상 ‘회고전’으로 꾸렸다. 1980∼1990년대 대표작 위에 바로 올해 작업한 신작을 올려 50여점을 걸었다. 최소한 ‘할라잇’ 이전이라면, 그이가 관통해온 바탕은 동양의 철학이고 한국의 서정이다. 서양화단에 내건 작품에 우리만 알아볼 코드가 보이니 말이다. ‘시리얼볼’(1981)이란 서양타이틀 속에 다완이 보였고, ‘인캔테이션’(주문·1980) 연작에선 짚더미가 등장했다. 이는 ‘겁’ 시리즈로 옮아가며 추상성이 깊어지는 과정에서도 심심찮게 발견되는데, 나무팽이나 절구, 아니면 한자를 박아서라도 정체성을 드러냈다고 할까. 혹여 잘 띄지 않더라고 했다면, 없어서가 아니라 잘 감춰둬서라고 해도 될 정도다. 곽훈의 ‘겁’(1992·153×183㎝)과 ‘겁’(1993·153×183㎝)이 나란히 걸렸다. 생성과 소멸의 반복적 흐름을 재료적 물성으로 시각화한 연작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그랬던 화면에 반전을 만든 건 역시 ‘할라잇’이다. 날갯짓하듯 해수면을 박차고 튀어오르는 고래, 그 허연 뱃가죽, 요동치는 파도 끝에 매달린 작은 조각배와 그 위에 올라탄 어부들까지, 마치 추상을 뚫고 나온 구상이라 해도 될 만큼 형체를 입고 있다. “1990년대 초 미국 알래스카를 여행할 때였다. 해변가에 널린 고래뼈를 보고 있자니 망망대해에서 목숨 걸고 고래사냥을 하던 이누이트족이 보였다.” 신의 강령이란 뜻을 가진 이누이트어 ‘할라잇’이 그이의 작품세계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는 순간이었다. 그 고래뼈에 살을 붙인 건 울산 반구대 암각화란다. “10여년 전 찾아가 직접 봤는데 단순한 원시미술이 아니구나 싶더라. 7000년 전 우리 조상은 고래를 잡았다는 거 아닌가.” 곽훈의 ‘할라잇’(2022·145.5×112.1㎝)과 ‘할라잇’(2022·145.5×112.1㎝). 해수면을 박차고 튀어오르는 고래, 요동치는 파도 끝에 매달린 작은 조각배와 그 위에 올라탄 어부들까지, 추상을 뚫고 나온 구상이라 해도 될 만큼 형체를 입고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물론 고래를 제대로 본 적은 없다. 잡아온 건 바로 육지에서 퍼지니까. “작품을 위해 알래스카 민속박물관은 여러 번 찾아갔더랬다”고 했다. 그렇게 캔버스에 물감을 넓게 겹쳐 바르고 바짝 마른 물감을 긁어내기도 하는, 그만의 방식 그대로 고래사냥 아니 죽은 고래도 살려내는 작업을 해냈다. 곽훈의 ‘할라잇’ 드로잉(2022·각 76.5×57㎝). 종이에 혼합재료로 그린 9점이다. 오른쪽은 그중 여섯 번째 작품을 클로즈업했다. 비상하듯 뻗쳐오른 고래 아래 작은배에 올라타고 고래사낭에 나선 에스키모들이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80대 현역의 신조 “내 붓은 멈추지 않는다” 대구에서 나 1960년대 초 서울대 미대 회화과로 유학 후 졸업할 때만 해도 ‘내 붓길을 막을 일이 뭐 있을까’ 싶었을 거다. 그즈음 김구림·김차섭 등과 ‘AG’로 통하던 아방가르드협회를 만들고 전위미술운동에 흠뻑 빠졌던 터다. 1960년대 말부터 5∼6년은 이화여고에서 교편도 잡았다. 당시 예술가라면 누구나 그랬듯 ‘먹고 살기 위한’ 방편이었는데.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한 달이 되는 불안한 시절을 그이 역시 겪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 ‘곽훈 개인전’ 전경. ‘기 시리즈’가 걸린 전시장에 관람객들이 500호 규모 ‘기’(1985·367×214㎝)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오른쪽으로 200호 규모의 ‘기’(1988·274.5×167㎝)가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결국 예술의 발목을 잡는 건 예술보다 질긴 현실이 아니던가. 1975년 미국 이민길에 나설 때까지 이름 석자를 알리는 일에는 실패하고 만다. 설사 미국이라고 쌍수를 들어 그이를 환영했겠나. 도착해 4년 넘게 광고회사에서 전람회용 그림을 그리며 속깨나 태웠나 보다. “데뷔가 서른여덟이었으니 가장 아쉬운 점은 출발이 너무 늦었다는 거였다. ‘10년은 일찍 시작했어야 했구나’ 했더랬다.” 하지만 오래 걸리진 않았다. 이내 조신 양코 LA시립미술관장에게 발탁된 그이는 1980년 아트코어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며 현지 화단에 뿌리를 내렸다. 이후는 수순처럼 보였다. 1993년 국립현대미술관 개인전, 또 1995년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 개관에 제1회 초대작가로 선정된 일까지 ‘너무 늦었다’고 할 순 없으니까. “내 붓은 멈추지 않는다”는 게 그이의 자부이자 신조다. 요즘도 경기 이천 작업실로 매일 출근한다는 그이는 ‘고래사냥 이후’를 구상 중이라고 했다. 인터뷰 말미에야 간신히 물을 수 있었다. 47년 전 미국으로 향하며 왜 다신 돌아오지 않겠다고 했는지. 답은 짧고 간결했다. “좌익집안이라고 몰아세우는 통에….” 전시는 7월 16일까지. 작가 곽훈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 개인전에 건 120호 규모의 작품 ‘할라잇’(2022·193.9×130.3㎝) 옆에 섰다. 알래스카 이누이트의 고래잡이를 소재로 망망대해에서 사투를 벌이는 고래와 사람을 회색톤의 강한 붓선으로 그려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정웅인, '파친코'로 새로운 도전…"글로벌 경쟁력 보여주고파" [인터뷰]①
- 정웅인(사진=저스트엔터테인먼트)[이데일리 스타in 김가영 기자] “한국 작품에서도 열심히 해서 글로벌 경쟁력을 보여주고 싶어요.”배우 정웅인이 K콘텐츠 열풍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웅인은 최근 진행한 이데일리와 서면 인터뷰에서 “예전에는 ‘작품! 그래 한번 해보는 거지, 좋은 경험이지’에서 끝났다면 ‘기생충’, ‘미나리’, ‘오징어 게임’, ‘파친코’ 계보가 이어지니 욕심이 생긴다”며 “좋게 봐주신 분들이 찾는다면 기꺼이 할 것”이라고 말했다.정웅인이 출연한 ‘파친코’는 금지된 사랑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로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을 오가며 전쟁과 평화, 사랑과 이별, 승리와 심판에 대한 잊을 수 없는 연대기를 그리는 작품. 대표적인 비평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 지수100%를 기록했으며, 해외 언론의 극찬을 받으며 글로벌 흥행을 했다.정웅인은 ‘파친코’가 글로벌 흥행을 한 것에 대해 “배우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최선을 다해 살고 싶다. 앞으로 행보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좀 더 긍정적인 성과들을 파친코가 얻었으면 좋겠다. 애플TV+ 작품들을 찾아봐도 좋으실 것 같다. 완성도가 높은 것들이 많다”고 말했다.이어 ‘파친코’의 인기에 대해 “로튼 토마토 지수가 좋다는 것을 기사로 봤다. 그러기 쉽지 않은 곳인데? 날카롭게 보는 로튼토마토에서 좋게 봐준다는 것에 기분이 좋았고, 애플TV+ 작품이 여러 어워즈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지 않나. ‘파친코’도 그런 성과를 이룰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이어 “한국인의 역사를 소재 미국에서 제작한다는 게 흥미로웠다”며 “차별성이 있지 않은가. 덕분에 한복 같은 한국의 문화가 좀 더 친숙하고 정확하게 전달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정웅인은 가족들의 반응에 대해 묻자 “가족들은 아직 다 못 봤다”며 “일단 우리 아내는 지금 책을 읽고 있다. 드라마를 보고 책 읽는 게 좀 더 생생하지 않냐고 하니까 그래도 책부터 보고, 다 완결된 다음에 온 가족에 모여서 함께 1화부터 8화까지 쭉 정주행 할 심산이다”고 설명했다.지인 중에서는 배우 김윤진에게 연락을 받았다며 “저랑 몇 년전에 작품을 같이 했는데 최근에 연락 와서 파친코를 너무 잘봤다고 해줬다. ‘정 배우 최고’라고 해줘서 고마웠다. 최고라는 말 잘 안 쓰는데 너무 기분이 좋더라. 같이 드라마 찍는 배우들도 ‘파친코’를 보다가 선배님 나와서 깜짝 놀랐다고 해준다”고 말했다.정웅인이 등장하는 장면, 한수와 아버지의 사연은 원작 소설엔 없는 내용이다. 그는 “한수를 위해 만들어졌고 프로듀서 수 휴가 고심을 많이 했다고 했다. 7화를 한편의 영화처럼 만들고 싶어했으니 신중하게 이 회에 대해 접근했고 야심 차게 준비했다. 강렬한 비극을 표현하면서 배우들이 참 고생이 많았다”고 비하인드를 전했다.정웅인(사진=애플TV+)정웅인은 다수 작품을 통해 명연기를 펼친 ‘연기파 배우’다. 국내 작품을 통해 활발히 활동하고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 그런 정웅인이 글로벌 OTT 플랫폼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정웅인은 소속사의 권유로 오디션을 보게 됐다며 “대사를 전달받고 연기를 하는 식은 아니었고, 한국에서 검증된 배우라는 것은 알지만 이 캐릭터와 이미지, 어떤 에너지로 전달할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다. 사실 한국에서는 어느 정도 서로 하기로 마음먹고 미팅을 진행하지만 당시에 우린 결정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고 말했다.정웅인은 프로듀서 수 휴와의 대화에서 이 캐릭터를 생각하면 한수가 바라보는 아버지의 뒷 모습, 담배를 쥔 모습, 주판을 튕기는 아버지의 손가락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분량적으로는 짧은 시퀀스였기 때문에 그것에 담을 함축성이 숙제였고, 제주도 방언이나 일본어 보다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치열한 땀이 녹아 들게끔 표현하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다. 이 마음이 잘 전달됐고 정웅인은 해당 캐릭터로 합류를 하게 됐다.합류가 결정된 후에는 제주어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정웅인은 “번역하시는 분도 비대면으로 미팅했는데 ‘제주어가 어려우면 쉽게 풀이를 하게 할까요?’라는 제안을 해주셨다. 그런데 그러지 말자고 했다. 지금의 제주어와 그 시대의 1920년대 제주어가 다른 느낌일 것 같아서 실감이 느껴지게 표현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캐릭터를 그 시대 사람으로 살리고 싶은 연기자로서 그런 부분에 욕심이 있다. 역시나 너무 어려웠다. 좀 후회스럽기도 했지만 전세계에 제주도 방언이 스트리밍된다니 감격스럽기도 하다”고 연기에 대한 애정을 내비쳤다.글로벌 OTT 플랫폼과의 첫 작업. 약 1000억의 제작비가 든 것으로 알려진 ‘파친코’는 국내와 캐나다 등을 오가며 촬영을 했고 거대한 스케일로 주목 받기도 했다. 정웅인은 매니저 없이 홀로 캐나다에서 촬영을 했다며 “캐나다 현장은 스태프들이 맡은 직무가 좀 더 세분화되고 그 분야에 헤드들을 붙여놨다. 아무래도 좀 더 스케일이 크고 섬세했다”고 경험한 것을 털어놨다.이어 “또 인상적이었던 것은 오랜 경험을 가진 스태프들이 똘똘 뭉쳐있다는 것이었다. ‘레디! 액션!’만 외치는 분 마저도 50대였다. 한국 현장에는 주니어들이 많은데 이번 현장에서는 연륜이 지닌 밀도가 현장을 멋지고 수월하게 돌아가게 만들어줬던 것 같다”며 “경험이 많다 보니 훨씬 효율적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좋은 경험이었고 자극이 됐다”고 전했다.지진 장면에 대해서도 “앵글을 보니 대역 없이 직접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한국 배우들은 이런 특유의 집요한 집중력이 있는데 그런 걸 좀 보여 드린 것 같다. 현장에서 박수도 받았고 대역 없이 소화하면 출연료 더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도 주고 받았다”고 현장 이야기도 털어놨다.안주하지 않고 또 다른 경험과 도전을 한 정웅인은 ‘파친코’에 대해 “새로운 세상과의 연결 고리인 작품이다. 시청자분들에게는 우리 부모님들, 부모님의 부모님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가를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 부모님과 조부모님, 그 위의 분들에게도 따뜻한 말한마디 해주길.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음 좋겠다”고 전했다.
- "전통·모던 적절히 섞은 '발레 춘향' 해외서도 먹혔죠"
-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동양과 서양의 문화를 잘못 섞으면 촌스러워지기 쉽죠. ‘발레 춘향’은 전통 속에 모던함을 적절히 조화시키는데 초점을 맞췄어요. 그게 해외 무대에서도 통했다고 생각합니다.”최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발레단에서 만난 문훈숙(59) 단장이 꼽은 ‘발레 춘향’의 성공 비결이다. ‘발레 춘향’은 유니버설발레단이 ‘심청’에 이어 선보인 한국적 소재의 창작발레로 2007년 초연 이후 국내외 무대에서 여러 차례 공연하며 호평을 받았다. 3년 만의 재공연이자 2022년 시즌 개막작으로 오는 18~20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을 앞두고 있다.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이 최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유니버설발레단)◇“차이콥스키 음악 이용한 건 신의 한 수”‘발레 춘향’의 탄생 배경에는 한국적인 창작발레가 필요하다는 문 단장의 철학이 있었다. 문 단장은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활동 당시 ‘심청’의 주역으로 국내외 무대를 누볐다. 발레단장이 된 뒤에도 한국적 창작발레에 대한 고민을 이어왔다. 2007년 한국무용가 배정혜가 안무한 ‘춤, 춘향’에서 영감을 얻어 ‘발레 춘향’을 제작했다. 현재 공연 중인 ‘발레 춘향’은 2014년 유병헌 예술감독이 재안무를 맡아 대대적인 개정 작업을 거친 버전. 문 단장은 “유 예술감독의 제안으로 차이콥스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을 이용한 것이 ‘신의 한 수’가 됐다”고 말했다.‘발레 춘향’이 보여주는 전통과 모던의 조화는 원작의 재해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춘향이 강단과 신념으로 불의해 항거하고 사랑을 지켜낸 진취적인 여성으로 그려지는 것이 대표적이다. 1막 후반부 이별 장면 속 화려한 여성 군무, 그리고 2막 장원급제와 어사출두 장면을 장식하는 역동적인 남성 군무는 ‘발레 춘향’에서만 만날 수 있는 볼거리다. 문 단장은 “특히 2막의 남성 군무는 아름다우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발레리노의 춤에 한복이 더해져 신비로운 장면을 연출한다”고 명장면으로 꼽았다.개정 작업으로 완성도를 높인 ‘발레 춘향’은 2015년 오만 무스카트 로열오페라하우스, 2018년 콜롬비아 보고타 훌리오 마리오 산토도밍고 마요르 극장 등 해외 무대에 선보이며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2018년 ‘제6회 이데일리 문화대상’ 무용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흥행성도 입증 받았다.문 단장은 다음 한국적인 창작발레 소재로 ‘흥부전’을 고민 중이다. 문 단장은 “아직은 아이디어만 있는 정도라서 영감이 올 때를 기다리고 있다”며 “지난해 ‘트리플 빌’에서 선보인 소품 ‘코리안 이모션’처럼 전막 발레가 아니더라도 한국적인 소재의 창작발레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고자 한다”고 말했다.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이 최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유니버설발레단)◇한국 발레 저력, 해외 알리기에도 힘써문 단장은 현역 무용수 시절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 겸 예술감독과 함께 한국 발레의 저력을 해외 무대에 알렸다. 선화예술학교, 영국 로열발레학교, 모나코 왕립발레학교를 거쳐 워싱턴발레단에 입단하며 전문 무용수로 활동을 시작했고, 1984년 유니버설발레단 창단 멤버로 활동하며 발레단의 역사를 써왔다. 1995년 수석무용수 겸 단장으로 취임한 그는 2002년부터 현역에서 은퇴한 뒤 발레단 운영에 매진하며 창단 40주년을 앞둔 유니버설발레단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최근 코로나19로 유니버설발레단도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늘 객석을 지켜주는 관객이 큰 힘이 됐다. 특히 지난해 선보인 공연들은 대부분 전석 매진을 기록할 정도였다. 문 단장은 “이제 한국 발레는 뛰어난 실력을 갖춘 무용수들을 많이 배출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이들이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인프라는 아직 부족하다”며 “민간 발레단을 위한 정책적인 지원과 기업의 후원, 기부 등이 함께 간다면 한국 발레가 지금보다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문 단장에게 발레는 운명이자 친구다. “처음 발레를 할 때는 원하든 원치 않든 가야만 하는 길이었기에 처음엔 힘도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후회하지 않아요. 삶의 아름다움과 예술에 대한 감각을 알게 해준, 발레는 정말 많은 것을 저에게 준 벗이니까요.”
- '반중정서'에 어리둥절 중국, '반한감정'은 어느정도?[중국은 지금]
- [베이징=이데일리 신정은 특파원] “한국 내에서 반중(反中)정서가 이렇게 심각해? 스포츠 경기에서 이런 일이 한 두 번도 아닌데 대사관이 성명을 낼 정도라니”-20대 사업가 A씨주한중국대사관이 이틀 연속 성명을 냈던 지난 9일 중국인 지인들로부터 웨이신(위챗) 문자를 받았다. “일부 한국 언론과 정치인이 중국 정부와 베이징 올림픽 전체에 대해 창끝을 겨누고 심지어 반중정서를 선동해 양국 국민의 감정에 해독을 끼쳤다(毒化)”고 중국 대사관이 주장했던 날이다. 중국 대사관이 편파판정 논란에 대한 입장을 내면서 관심이 없던 중국인들도 괜한 반감을 갖게 된 것이다지난 2012년 9월 18일 중국 원저우에서 반일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다. (사진=AFP)그래서 다시 반문했다. 한국인들의 반중정서가 커진 건 단순 이번 올림픽 때문이 아니라 중국이 동북공정을 지속하고 김치나 한복이 중국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목소리를 내왔기 때문이라고. 이에 대해 금융인 B씨는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이런 한국 문화가 중국에서 왔다고 한 적 없어요. 일부 네티즌들의 목소리일 뿐이죠. (한복 유례가 중국이라는) 바이두 백과는 위키백과처럼 누구나 쓸 수 있어 공신력이 떨어져요. 그렇게 따지면 한국 정부는 단오절 문화를 가져가지 않았나요?”라고 답했다. 한국이 ‘강릉 단오제’를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신청했던 2004년 중국 정부는 한국을 ‘문화약탈국’으로 묘사했고 그 인상이 여전히 중국인들 사이에는 남아 있는 것이다. 단오절은 명칭이나 의의는 비슷하지만 한중 양국의 풍습은 오늘날 크게 다르다.중국 조선족 C씨에게도 이번 논란에 대해 물었다. “한복은 당연히 한국에서 온 거죠. 그걸 부정하는 조선족은 없을 거에요. 조선족은 중국에서 소수민족의 권리를 가지고 한복, 김치 등 관련 문화를 계승해왔습니다. 그걸 부정한다면 저희의 뿌리도 한반도가 될 수 없는 거 아닌가요.” 조선족이 중국에서 한복을 입은 역사가 백년이 넘었고, 신중국 건립 때부터 55개의 소수민족으로 인정됐었는데 이제와서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극단적인 네티즌이나 클릭수를 높이고자 하는 블로거는 온라인상에 늘 존재했다. 최근 올림픽 편파판정 논란을 계기로 한국 언론들이 한중 양국간 네티즌들의 이런 극단적인 글을 앞다퉈 보도하며 양국에서 반중정서, 반한정서가 극에 달한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하지만 중국 현지에서는 느껴지는 반한감정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이후 이미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 최근 중국은 미국 등 서방국과 경쟁하면서 그들을 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중국인들에게 ‘우리가 넘어야 할 경쟁상대는 미국’이라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한국에 대한 적대감은 그리 크지 않다. 적어도 중국 대사관이 연일 입장문을 내고 이 내용이 확대 재생산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또한 2012년 중국인들이 일본에 가졌던 반일, 혐일 감정과도 확연히 다르다. 당시 일본과 중국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한 영토 분쟁을 벌이면서 중국 내 반일감정이 극에 달해 중국 120여 곳의 도시에서 대규모 ‘반일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시위대는 오성홍기를 흔들며 반일 구호를 외쳤고, 일본 공관 앞을 지날 때마다 돌멩이 등을 집어던졌다.결국 지금 한국에 보도되고 있는 중국 내 반한 움직임은 현지 분위기와는 다르게 과장된 부분이 있는 것이다. 추궈홍(邱國洪) 전 주한 중국대사 역시 지난해 8월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어떤 나라나 비슷하겠지만 네티즌의 반응은 극단적인 편이며 이것이 사회의 모든 여론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볼 순 없다”며 김치와 한복 기원 논란에 선을 그은 바 있다. 반중정서에 불을 지핀 지난해 중국의 김치 논란도 저작권 인식이 거의 없는 중국 내 언론 환경을 잘 모른 한국 언론들의 침소봉대식 보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중국 국영매체인 환구시보(環球時報)가 중국이 ‘김치’의 국제표준을 얻었고, ‘김치 종주국 한국의 굴욕’이라고 표현했다는 사실이 국내에 알려졌다. 하지만 당시 그 글을 환구시보가 쓰지 않았다는 것은 중국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이해할 수 있다. 중국은 저작권 인식이 높지 않아 많은 언론사 SNS 운영자들이 클릭수를 위해 블로거나 개인 창작자은 물론 타 언론사의 글도 자신의 바이두 계정에 올린다. 김치 국제표준 소동을 일게 한 글도 환구시보가 직접 작성한 게 아니란 얘기다.또한 중국은 14억명의 인구를 가진 나라다. 중국 내 댓글 1000여개가 달린 글을 한국처럼 ‘여론’이라고 보기 어렵다. 중국 내 정서가 어찌됐던 한국 내 반중이 고조되는 만큼 양국 정부의 신중한 태도가 요구된다. 당국의 잘못된 말 한마디가 숨어있던 반한, 한중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외교부 한 당국자는 “중국대사관 측에 ‘기본적으로 공관이 주재국 언론 보도나 정치인의 발언 등에 대해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할 때는 주재국의 상황과 정서 등을 존중해서 각별히 신중을 기해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라며 “한중 관계와 양국 국민 간 우호적 감정을 조성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8일 특파원단과 간담회에서 중국 내 반한 정서에 대한 질문에 “중국 입장에서는 한국을 작은 나라로 생각했을텐데,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대한민국이 되니 불편함이 있는 것 같다”며 “코로나19 상황이 일단 진정되고 나면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화합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적극 가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 베이징올림픽 '한복 논란'에…"中에 우리 동포들 존재" 강민진 주장
- [이데일리 권혜미 기자] 중국이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조선족 대표로 한복을 입은 여성을 출연시켜 논란이 된 가운데,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가 “중국 국민으로 살아가는 우리 동포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5일 강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림픽 한복 논란, 중국동포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이라는 제목의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그는 “이번 사건은 중국의 반복된 역사 왜곡 논란의 맥락 위에서 민감해진 사안이라고 생각한다”며 “중국은 한복이 한푸에서 기원했다는 식의 문화패권주의와 역사 왜곡을 반드시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4일 오후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한복을 입은 한 공연자가 손을 흔들고 있다(사진=연합뉴스)하지만 또 다른 관점을 설명하며 “중국 국민으로 살아가는 우리 동포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중국 국적을 갖고 중국 영토 내에서 살아가는 우리 동포들이 존재한다. 한복은 우리의 것일 뿐 아니라 동포들의 것이기도 하며, 중국의 국민으로 살아가는 조선족 동포 역시 자신들의 문화와 의복을 국가로부터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강 대표는 “중국의 다양한 민족 의상 중에 한복만 제외되었더라면, 중국에서 살아가는 동포들의 입장에서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까요”라고 문제를 제기하며 대한민국이 점차 이주사회로 변모해가고 있음을 지적했다.그러면서 “한국으로 이주해온 중국 동포들의 인구수가 적지 않지만,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각종 차별과 혐오에 노출되고 있다”고 꼬집으며 “정치권은 이른바 ‘조선족 혐오’ 부추기는 외국인 건강보험 논란을 일으키지 않는 것부터 해야 한다”고 강하게 말했다.끝으로 강 대표는 이주민에 대한 제도적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하며 “동등한 시민으로서 대우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는 것, 지금 대선후보들이 해야 하는 더 시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사진=강민진 청년의당 대표 페이스북)앞서 지난 4일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개회식에서 중국 56개 소수민족 대표 중 한 명으로 한복을 입은 여성이 등장했다. 국기 전달식에 참여한 그는 흰색 저고리와 분홍색 치마를 입고, 댕기 머리를 한 채 반갑게 손을 흔들며 등장했다.해당 모습을 본 누리꾼들은 “중국이 한국을 자기네 문화라고 우기고 있다”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고, 논란이 커지자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전날 취재진들과 만난 자리에서 직접 해명을 이어갔다.황 장관은 “중국 측에선 조선족이 소수 민족 중 하나라고 한 건데 소수 민족이라 할 때는 그 민족이 하나의 국가로 성장하지 못한 경우를 주로 말한다”며 “양국 간 좋은 관계에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4일 중국 베이징 국립 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한복을 입은 여성이 오성홍기를 든 소수민족 중 하나로 표현됐다.(사진=뉴스1)이어 “중국 신화통신과 인터뷰에서도 ‘한국 문화가 전 세계로 퍼지는 상황에서 한 나라로 성장하지 못한 민족을 주로 가리키는 소수 민족으로 조선족을 과감하게 표현한 것은 양국 간 오해 소지가 있고, 안타깝다’고 말했다”고 유감을 표했다.한편 지난해부터 중국은 동북공정(고조선사·부여사·고구려사·발해사가 중국사라는 주장)뿐만 아니라 한복, 김치, 판소리, 갓 등의 한국 고유문화까지 자신들 것이라 주장하며 드라마, 영화, CF 등의 문화 콘텐츠에도 노출시키며 비난 여론이 형성됐다.외교부는 중국이 한복을 입은 여성을 출연시킨 것에 대해 “중국 측에 고유한 문화에 대한 존중과 문화적 다양성에 기초한 이해 증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지속 전달하고 있으며 이러한 노력을 계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